▲ 조정래 작가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등단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2020.10.12 ⓒ 연합뉴스
지난 12일 기자간담회 때 소설가 조정래는 소위 '토착왜구'들을 비판하면서 "민족정기를 다시 세우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반민특위는 반드시 부활해야 합니다"라고 한 뒤 "일본의 죄악을 편들고 역사를 왜곡하는 민족반역자들에 맞서는 운동에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려 합니다"라며 친일청산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바로 옆에서 일본 우익이 자꾸 꿈틀대고, 안에서는 그들과 보조를 맞추는 친일파나 토착왜구들이 지난 75년간 과거사 정리를 저지하며 한국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조정래가 10월에 쏟아낸 이 한(恨)은 75년간 축적된 우리 사회 전체의 한을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한은 71년 전 이맘때 특히 많이 생성됐다. 조정래가 여섯 살 되던 해인 1949년 10월, 이 땅에서는 역사를 퇴행시키는 죄악이 벌어졌다. 조정래가 "반드시 부활해야 합니다"라고 역설한 바로 그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친일파와 이승만 정권이 해체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반민특위는 이때 갑자기 해체된 게 아니라 지속적인 공격을 받다가 해체됐다. '마침내'를 뜻하는 한자 수(遂)를 써서 반민특위 해체를 보도하는 기사들이 나온 것은 그것 때문이다. 1949년 10월 6일자 <동아일보> 기사 '반민법개정법 등 4일부 수(遂) 공포'는 반민특위의 최후를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아래 기사 속의 급(及)은 '~와, ~과'를 의미하고, '계속(繫屬)'은 사건이 법원의 재판 대상이 돼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과반 국회를 통과한 반민족행위처벌법 중 개정법률과 반민족행위특별조사기관조직법 급(及) 반민족행위특별재판부부속기관조직법 폐지에 관한 법률이 지난 4일부로 공포되었다. 이 법률은 모두 공포일로부터 실시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반민 재판은 단심제로 대법원에서 하게 되었으며, 범죄 수사와 소송절차 급(及) 형의 집행은 일반 형사소송법으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사 및 기소는 대검찰청 검찰관이 이것을 하게 되었고, 이 개정법 시행 당시 수사 혹은 심의 중의 사건도 모두 대검찰청 또는 대법원에 계속(繫屬)하게 되었다. 이로써 금후로는 수사·기소 등 수속이 완결되지 못한 것은 대검찰청에서 행할 것이며, 이미 기소되어 있는 사건은 대법원에서 심판을 하게 된 것이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기관조직법은 국회에 설치된 반민특위의 세부 조직에 관한 법률이고, 반민족행위특별재판부부속기관조직법은 반민족행위특별재판부 및 반민족행위특별검찰부의 세부 조직에 관한 법률이다.
10월 4일자로 반민특위·재판부·검찰부가 사라지지만, 반민족행위처벌법은 폐지되지 않고 개정만 됐다고 했다. 친일파와 이승만 정권이 반민족행위처벌법만큼은 남겨놓은 것을 놓고, 이들이 최소한의 양심은 갖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반민족행위처벌법은 본문 3개 장과 총 32개조(부칙 포함)로 돼 있었다. 제1장은 '죄', 제2장은 '특별조사위원회', 제3장은 '특별재판부 구성과 절차'였다. 제2장과 제3장은 친일파 처벌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한 부분으로 이 법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1949년 10월 4일 개정 때 제2장과 제3장이 없어졌다. 법의 '액기스'가 사라진 것이다. 이로 인해 32개 조문 중에서 8개만 남게 됐다. 친일청산을 위한 특별기구들을 없애고 이 법을 일반 법원의 관할로 넘길 목적으로 이렇게 했던 것이다.
반민'특'위는 친일파들을 상대로 '특'별히 파워를 보여준 기구가 아니었다. 친일파들한테 '특'별히 당한 기구였다. 친일파 시위대가 반민특위 본부를 공격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해 6월 6일에는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포위하고 공격하는 일까지 있었다(6·6 사건). 이런 사건들은 '친일파 처벌을 시도하면 이렇게 된다'는 경고를 법원과 검찰에 던지는 것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반민족행위처벌법이 개정되어 반민특위가 해체되고 일반 법원·검찰로 사건이 넘어갔기 때문에, 일반 판검사들이 친일파 사건을 철저히 다루기는 힘들었다. 10월 4일의 개정을 주도한 세력이 노린 것은 바로 이것이다. 실제로 반민족행위처벌법으로 인한 사형집행은 단 1건도 없었고, 감옥에 갇혔던 친일파들도 특위 해체 뒤 전부 다 감옥 문을 열고 햇빛을 보게 됐다.
그로부터 얼마 뒤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8개월도 안 됐을 때인 1951년 2월 14일이었다. 이날 법률 하나가 통과됐다. 조문도 없이 본문 1개 문장으로 구성된 법률이었다. "법률 제3호 반민족행위처벌법과 동(同)개정법률 제13호, 제34호 및 제54호는 폐지한다"라는 반민족행위처벌법 폐지법률이었다.
1949년 10월에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완전히 폐지하지 못한 친일파 세력은 1·4후퇴로 서울을 빼앗겨 국민들이 정신없을 때를 틈타 이렇게 반민족행위처벌법을 뿌리째 뽑아버렸다. 그 전쟁 와중에도 반민족행위처벌법이 마음에 걸려 있었던 모양이다.
김종인의 조부, 김병로
▲ 김병로 전 대법원장과 함께한 이승만 대통령 ⓒ e영상역사관
반민특위가 법적으로 와해된 71년 전 이맘때를 가장 힘들게 보냈을 사람들이 있다. 그중 한 사람은 반민족행위특별재판부장이다. 대법원장으로서 특별재판부장을 겸했던 김병로(1887~1964)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그의 손자다.
김병로는 김옥균 갑신정변 3년 뒤인 1887년 지금의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다. 그는 정의심이 강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18세 때인 1905년에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이 강요되자 최익현의 의병부대에 가담해 활동하기도 했다.
1913년에 메이지대학을 졸업한 김병로는 경성법전 조교수 등을 거쳐 1919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광주학생운동, 6·10만세운동, 원산파업사건, 단천노조사건 등의 무료 변론을 맡았고, 40세 때인 1927년에는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장이 되었다. 이런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반민족특별재판부장을 겸하는 것은 매우 든든해 보이는 일이었다.
든든하게 보였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든든했다. 그는 이승만 정권에 맞서 반민특위의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2016년에 <서울대학교 법학> 제57권 제2호에 실린 한인섭 서울대 교수의 논문 '반민족행위자의 처벌과 김병로 - 반민특위 특별재판부장의 역할을 중심으로'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승만 정권은 반민특위의 약화 및 와해를 위해 갖가지 수단을 구사하였다. 처음엔 권력분립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위헌론을 제기하고 특별담화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에 대해 김병로는 위헌 시비는 헌법위원회에서 판정할 일이고, 법률에 따른 반민특위의 행동 역시 불법이 아니며, 문제가 있다면 입법 개정안을 제출해야 할 것이라고 깨끗이 정리하였다.
김병로의 대응에 대해 이승만 정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들은 심지어 무력을 동원하기까지 했다. 위 글의 이어지는 대목이다. 인용문 속의 '검찰총장'은 반민족행위특별검찰부장을 겸한 권승렬 검찰총장이다.
이렇게 법리 논쟁이 정리되자 이승만 정권은 아예 노골적인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경찰 간부가 체포되자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고, 검찰총장이 휴대한 권총까지 탈취할 정도에 이르렀다. 당시 이 사건은 6·6 사건 혹은 경찰 쿠데타로 불렸다. 이승만 대통령 본인이 이를 비호하는 데 이르자, 김병로는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이와 같은 조치는 '직무를 초월한 과오로서 불법'이고 가차 없는 법적 심판을 받아야 함을 명언하였다.
▲ 가인 김병로. ⓒ EBS
김병로는 법률가 마인드를 가진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이승만 정권의 무력 공격에 맞서 이 정도라도 대응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런 그가 1949년 10월 4일의 반민특위 해체를 어떤 심정으로 지켜봤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반민특위 해체에 관한 입법 조치가 9월 22일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10월 4일의 공식 해체가 임박해진 9월 하순에, 그는 대법원장으로서 소극적인 유감 표명밖에 할 수 없었다. 그해 9월 26일자 <동아일보> 기사 '사전연락 없어 유감'에 따르면, 김병로는 9월 23일 다음과 같은 유감 표명을 내놓았다.
"우리로선 국회에서 통과한 법을 충실히 실행할 의무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반민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킴에 하등의 사전 연락이 없었으므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었던 특수한 사무처리규정을 삽입할 수 없었으며, 다만 사무처리를 대법원에서 하라고 규정지었으니 현재도 대법원의 인원과 기타 문제로 그를 원만히 처리함에 곤란한 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병로는 친일청산을 열렬히 응원했다. 그랬기 때문에, 이승만 정권의 반민특위 해체에 대한 그의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상황의 불리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전 연락도 없이 이런 식으로 대법원에 사건을 떠넘기면 어쩌란 말이냐? 대법원 인력으로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식의 소극적인 유감 표명밖에 할 수 없었다. 가슴 속 분노를 억누르면서 극도로 절제해서 유감 표명을 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대법원장 김병로도 소설가 조정래가 품은 것과 동일한 한을 품었을 것이다. 김병로가 품은 한은 1949년을 살았던 사람들의 대부분과 2020년을 사는 사람들의 상당부분이 품은 한과 동일할 것이다. 21세기판 반민특위가 부활해 친일청산을 마무리하기 전까지 이런 한은 우리의 가슴에 계속해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전 민족적으로 한이 켜켜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일본을 노골적으로 편들며 친일청산을 대놓고 훼방하고 있다. 그들은 동족의 한을 '반일 종족주의'로 폄하하는 책까지 펴내고 있다. 그런 책을 쓰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조금도 품지 않는다. <반일 종족주의> 제2탄인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 서문에서 공동저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2019년 7월에 출간된 <반일 종족주의>는 공저자의 한 사람인 저에게는 자유인의 선언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종족주의가 강요한 자기 검열에 걸려 실로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털어놓았기 때문입니다. 한 편, 두 편 글을 쓰면서 어떠한 터부도 두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했습니다. 그리고선 큰 해방감을 맛보았습니다. 대학에서 33년간 교수 생활을 하며 이 사회로부터 큰 혜택을 입었습니다. 그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을 했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민족적 한이 맺힌 친일청산 노력을 비하하는 글을 쓰면서 '자유인의 선언을 했다', '속 시원하게 털어놓았다', '해방감을 맛보았다', '33년간 받은 혜택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을 했다' 등등의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반민특위를 반드시 부활해 역사를 왜곡하는 세력들에 맞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오를 갖게 만드는 언사가 아닐 수 없다.
올해 인플루엔자(독감) 예방 접종이 시행된 이후 21일 현재 총 9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아직 백신과 사망 사고 간 연관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2건은 급성 쇼크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질병관리청은 자체 조사 결과 백신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 만큼, 국가예방접종은 계속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연이어 사망 사고가 보고돼 국민의 불안감이 큰 가운데, 이날 오후 질병관리청은 충북 청주 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개최해 여태 접종 현황을 보고했다.
질병청은 "아직 (사망과) 백신과의 직접적인 연관성,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과 사망과의 직접적인 인과성이 확인되지는 않았다"며 "특정 백신에서 중증이상반응 사례가 높게 나타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예방접종을 중단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밝혔다.
다만 질병청은 사망 사고 중 2건의 경우 아나필락시스(급성 쇼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청은 부검 결과, 의무기록 조사 등을 통해 인과관계를 추가 확인키로 했다.
지난 14일 인천 17세 남학생의 사망으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이날까지 총 9건으로 늘어났다. 이날 오전 2건의 사망사고가 추가된 데 이어, 오후에도 2건의 사망 사고가 확인됐다.
청은 이들 사망 사례 중 7건에 대해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다. 2건의 경우 유족의 요청에 따라 사망자 정보 등을 공개하지 않았다.
역학조사를 결정한 7명 중 청은 유족의 동의를 얻어 2명을 부검했으며, 1명의 부검을 결정했다. 나머지 4명의 부검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7명의 상세 정보는 인천 17세 남학생(부검 중, 접종 후 42시간 만에 사망), 전북 고창 77세 여성(부감 중, 22시간), 대전 82세 남성(부검 예정, 28시간), 대구 78세 남성(12시간 후 사망), 제주 68세 남성(부검 예정, 17시간), 서울 53세 여성(75시간), 경기 89세 남성(51시간)이다.
▲질병청이 밝힌 9건의 사망자 관련 정보(2건은 유가족 요청으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음). ⓒ질병관리청
청은 이 가운데 이날 오전까지 보고된 6명의 사망자를 대상으로 백신 내 독성물질 함유 여부, 아나필락시스 여부, 기저질환 여부 등 세 가지 항목을 중점적으로 검토한 결과 백신 내 독성물질이 함유됐을 가능성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피해자 중 두 명의 경우 아나필락시스와의 관련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나, 이 경우도 정확한 의학적 근거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고 청은 전했다. 다만 두 사례의 경우 각각 접종 후 2시간 30분, 17시간 이후 사망으로 이어져 "급성기 과민반응과 관련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김중곤 질병청 예방접종피해조사반장은 전했다.
기저질환과 백신 접종 간 연관성도 완전히 규명되지는 않았다고 청은 전했다. 다만 전체 6명의 사망자 중 5명은 기저질환을 갖고 있었음이 확인됐다. 김 반장은 "(백신 접종과) 기저질환과의 연관성은 부검을 통해 조금 더 확실히 규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여태까지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확실히 결론내려진 건 백신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김 반장은 이에 따라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사업은 지속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세계보건기구(WHO)도 지난 9월 21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시점에서 고령자, 임산부, 기저질환자, 소아, 의료 종사자들에게는 특히 예방접종을 꼭 실시하도록 강력히 권고했다"고 언급했다.
정은경 질병청장은 "신속하게 역학조사를 통해 예방접종 인과관계와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라며 "아나필락시스 등 중증 이상반응 방지를 위해 건강상태가 좋은 날에 예방접종을 받아주시고, 접종 대기중에는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라고 권고했다.
또 "(접종 전) 예진시 아픈 증상이 있거나 평소에 앓고 있는 만성질환은 반드시 의료인에게 알리시고, 접종 후 반드시 의료기관에서 15~30분간 이상반응 여부를 관찰하는 등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해 예방접종수칙을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청에 따르면 올해 독감 예방접종은 이날까지 총 1297만 건 진행됐으며, 이 중 국가예방접종은 836만 건이었다.
지난 달 25일부터 시작한 만 12세 이하 1회 접종 대상 어린이의 약 68.8%, 임산부의 34.1%가 접종을 완료했다. 이달 13일 시작한 만 13~18세 접종 대상자의 48.2%가 접종을 완료했고, 19일 시작한 어르신의 31.1%가 접종을 완료했다.
여태 접수된 접종 후 이상반응은 431건이었으나, 예방접종과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세부 내역은 국소 반응 111건, 알레르기 119건, 발열 93건, 기타 104건이었으며 사망 4건이 포함돼 있다. 이날(21일) 5건의 사망 사례는 최신 내용이라 이상반응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정은경 청장은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이상반응으로 사망 신고된 사례는 2009년 이후 총 25건이며, 이 중 이상반응으로 인정된 사례는 1건"이었다며 "그 외의 사례 대부분은 기저질환과 연관성으로 정리됐다"고 말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청장, 가운데)과 김중곤 교수(예방접종 피해조사반장, 서울의료원 소아청소년과장)가 2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에서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 사업과 관련한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8일 중소벤처기업부 등을 대상으로 한 산자위 국정감사에서,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액정에 기포 없이 보호 필름을 붙일 수 있는 중소기업의 특허 기술을 탈취해 다른 협력업체에 빼돌렸다고 폭로했다.ⓒ국회 영상회의록시스템
삼성전자가 협력사 기술탈취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피해기업에 ‘불공정 합의서’ 체결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21일 삼성전자 협력사 DMT 곽동근 대표와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5월 곽 대표에게 액정 보호 필름 부착 장비 관련 합의서를 메일로 송부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8일 국정감사에서 “불공정 계약도 이런 불공정이 없다”고 지적한 합의서다. 해당 합의서에는 삼성전자가 곽 대표 기술을 다른 협력사에 유출하고, 곽 대표를 입막음해 무마하려 한 정황이 담겼다. 합의 주체로는 ‘삼성’과 ‘DMT’가 명시돼있고 삼성 측 서명인 란에는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이름이 쓰여 있다.
문제가 된 액정 보호 필름 부착 장비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생산 라인에서 쓰는 장비다. 삼성전자는 2018년경부터 스마트폰 생산 과정에서 액정 보호 필름을 부착한 상태로 단말기를 출고했다. 액정 모서리가 둥글게 마감 처리된 엣지형 디스플레이에 필름을 붙이기 어렵다는 소비자 반응을 반영한 조치로 풀이된다. 엣지형 디스플레이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았으나, 모서리 부분에 필름이 뜨면서 먼지가 들어간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곽 대표가 개발한 장비는 기포 없이, 쉽고, 빠르게 필름을 부착할 수 있다. 이 장비가 개발되면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생산 속도에 맞춰 적은 인력으로 스마트폰에 필름을 붙일 수 있게 됐다.
도움 받은 적 없는데 ‘협력 개발’ 강요…“특허권 무상 사용 포석”
곽 대표는 DMT 설립 전 도원테크라는 삼성전자 협력사의 부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필름 부착 장비를 개발했다. 도원테크는 삼성전자에 금형과 사출품을 납품하는 업체다. 곽 대표는 기술탈취 문제로 도원테크와 삼성전자 간 거래 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해 회사를 나와 DMT 세웠다. 필름 부착 장비 생산을 위한 설비와 영업권, 특허권 등을 이전받았다.
삼성전자가 제시한 합의서는 DMT의 법적 대응을 원천봉쇄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합의서에는 DMT가 필름 부착 장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협력했다고 명시됐는데,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인다. 도원테크는 2018년 3월 삼성전자로부터 필름 부착 장비 제작을 의뢰받았으나, 협력사 선정 과정에서 탈락했다. 기술적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곽 대표는 경일대학교 산학협력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아 장비를 개발했다. 곽 대표와 회사 소속 연구원 등 2명이 장비 개발에만 매달린 끝에 같은 해 6월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 시제품을 납품하는 성과를 거뒀다.
곽 대표는 “장비 개발 과정에서 삼성으로부터 기술적·금전적 지원은 없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무리하게 협력을 강조한 건 장비 관련 특허권을 무상으로 사용하기 위한 ‘꼼수’로 보인다. 특허법은 선사용에 의한 통상실시권을 허용하고 있다. 특허 발명자를 지원하면서 해당 기술을 활용한 사업을 실시·준비 중이었다면, 출원된 특허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곽 대표가 필름 부착 장비 개발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협력했다고 인정하면 삼성전자가 통상실시권을 취득할 여지가 있다.
DMT에 자문을 주는 한길국제특허법률사무소 이상철 변리사는 “삼성전자가 합의서에 협력 개발 문구를 넣은 건 선사용에 의한 통상실시권을 얻기 위한 포석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엣지 디자인이 적용된 삼성전자 갤럭시 S8. 좌우 양쪽 모서리가 곡선으로 처리돼있다.ⓒ삼성전자
장비 빼돌려 경쟁 협력사에 제공하고 “기술탈취 책임 묻지 마”
곽 대표는 삼성전자가 도원테크 경쟁사에 장비를 빼돌려 납품업체를 이원화했다고 호소한다. 국감에서 공개된 곽 대표와 경쟁사인 J사 측 통화 내용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J사에 필름 부착 장비의 핵심 부품인 롤러와 안착지 등을 제공했다. J사는 삼성전자 측이 샘플을 제공했냐는 곽 대표 물음에 “당연히 줬지.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 하나, 아무것도 없는데”라며 “다 받아서 실측했다”고 답했다.
삼성전자는 J사에 넘겨준 건 도원테크의 장비이지 도면이 아니기에 기술탈취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종민 삼성전자 무선사업무 상무는 국감에서 “일반적으로 기술자료는 제품에 대한 사양이 들어 있는 도면을 이른다”고 말했다.
이 상무 주장은 현행법에 규정된 내용과 차이가 있다. 상생협력법·부정경쟁방지법·하도급법에서 기술자료 또는 영업비밀이란 제품 생산 등 영업에 유용한 정보이며, 이를 타인에게 부정하게 제공하면 제재 대상이 된다. ‘정보’가 ‘도면’에 국한된다는 내용은 없다.
이 변리사는 “장비에는 도면에 기재되지 않은 재질·성분·내부구조 등 더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며 “장비를 넘겨주는 건 도면보다 훨씬 더 정확한 기술을 유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상 ‘정보’에는 도면뿐 아니라 장비 자체도 포함된다”며 “영업비밀은 영업상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것,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도면이 아닌 장비를 넘겨줬기에 기술유출이 아니라는 삼성 측 주장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기술탈취 관련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DMT 측에 제시한 합의서에 ‘입막음’ 조항을 넣었다. 합의서에는 “제3자를 통한 제품 공급 등에 관해 삼성이나 제3자가 지식재산권 관련 법령을 위반하거나 권리를 침해한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관련 법령을 위반하거나 권리를 침해해도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하고 일체의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과거에 발생했거나 향후 발생할 기술탈취 등 법 위반에 대해 책임을 묻지 말라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기술유출에 대해 도원테크 동의를 받았다는 주장을 폈다. DMT 설립 이전에 도원테크 대표를 통해, 장비를 다른 업체로부터 납품받는 데 대해 합의한다는 서명을 받았기 때문에 납품업체 이원화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으로는 2019년 6월 도원테크와 특허권에 대한 통상실시권 무상허여 계약을 체결했다는 주장이다. 통상실시권이란 특허권자가 아닌 제3자가 특허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이른다.
삼성전자가 도원테크와 계약을 맺었다고 해도 법적 효력에 있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곽 대표가 개발한 장비의 특허 출원인은 도원테크·경일대학교산학협력단·하나이엔지 3자다. 하나이엔지는 도원테크에 장비 부속품을 납품하는 업체다. 현행 특허법은 특허권을 다수가 공유할 경우 통상실시권을 제3자에 허락하려면 모든 출원인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내세우는 무상허여 계약은 경일대산학협력단과 하나이엔지 측 동의 없이 진행돼 법적 효력이 없다는 게 류 의원실과 곽 대표 설명이다.
이종민 삼성전자 상무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중소벤처기업부·특허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 출석해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납품사 이원화로 단가 후려치기…변호사 대동해 합의 종용하기도
삼성전자는 법 위반 소지가 있음에도 무리하게 이원화를 강행했다. 2018년 12월 도원테크에 이원화 계획을 알리고 2019년 2월 J사로부터 필름 부착 롤러를 납품받기 시작했다. J사의 납품 사실을 파악한 도원테크는 삼성전자에 특허 침해 위험성을 경고했다. 삼성전자는 경고를 무시하고 J사 물량을 늘려갔다. 도원테크 납품 물량은 2019년 4월 월평균 1억원 수준이었으나, DMT의 지난달 거래 규모는 수백만원으로 줄었다.
필름 부착 장비의 주요 수입은 롤러에서 나온다. 신형 스마트폰이 나올 때마다 그에 맞게 개선한 롤러를 납품한다. 또한 롤러는 소모품이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한다. 스마트폰이 많이 팔려야 롤러 주문량도 늘어난다. 삼성전자가 신형 모델용 물량을 J사에 몰아주면서 DMT는 판매량이 적은 구형 모델용 물량만을 납품하게 됐다.
삼성전자는 필름 부착 장비 납품처를 이원화하면서 단가 인하 효과도 누렸다. J사는 납품을 시작하면서 단가를 도원테크보다 20%가량 낮췄다. 원청 대기업이 기존 협력사 기술을 다른 기업에 빼돌리고 새로운 협력사 단가를 낮추는 건 불공정 거래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새로운 협력사는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 부담 없이 거래를 확대할 수 있고 원청은 원가를 감축할 수 있다. 기존 협력사는 기술을 뺏기고 버려진다. 도원테크는 최소한의 물량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 단가를 약 30% 낮춰야 했다. 특허 기술 상용화에 따른 고마진이 상쇄돼버린 셈이다.
삼성전자는 합의서 한 장으로 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거듭했다. 삼성전자가 처음 DMT에 합의서를 보낸 건 지난 4월이다. 곽 대표는 합의서 내용이 부당하다고 판단해 수정안을 제시했다. 협력 개발 문구를 빼고 특허권 보호 조항을 보강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DMT 수정안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2차 합의서를 들이밀었다. 곽 대표는 이 역시 체결을 거부했다.
삼성전자는 2차 수정안을 보낸 직후, 담당자 5명을 대동해 곽 대표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사내 IP(지식재산권) 센터 소속 변호사와 책임연구원, 무선사업부 구미사업장 소속 변호사와 차장급 인원이 동원됐다. 장소는 한길국제특허법률사무소였다. 곽 대표와 이 변리사에 따르면, 당시 삼성전자 측은 다짜고짜 “얼마면 되겠냐”며 합의를 제안했다. DMT 측은 먼저 특허권 침해에 대해 인정하라고 요구했으나, 삼성전자 측은 이를 거부했다. 양측 대화는 접점 없이 평행선을 달렸다. 곽 대표는 “삼성전자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변호사를 앞세워 협력사에 무리한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DMT는 지난 4월 J사의 필름 부착 장비 관련 특허에 대해 무효 청구하고 기술침해 행위를 특허청에 신고했다. J사는 지난해 말 필름 부착 롤러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곽 대표 측은 J사 특허가 모인출원이라고 주장한다. 기존 특허를 베껴서 출원했다는 것이다. 현재 특허 무효 심판과 기술침해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원청인 삼성전자 측에는 법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거래관계가 완전히 끊길 것이 걱정돼서다. 삼성전자가 특허권 분쟁은 DMT와 J사 간 문제라며 방관자적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이유다.
곽 대표는 “장비를 직접 빼돌렸으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협력사끼리 싸움을 붙이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원화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특허 기술을 사용하려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책임 있게 나서 거래를 정상화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표결에서 당론에 반해 기권표늘 던져 당의 징계를 받았던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일 탈당을 선언했다.
금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더 이상 당이 나아가는 방향을 승인하고 동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마지막 항의의 뜻으로 충정과 진심을 담아 탈당계를 낸다”고 밝혔다. 그는 “공수처 당론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재심을 청구한 지 5개월이 지났다”며 “민주당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데, 차라리 제가 떠나는 것이 맞겠다”고 덧붙였다.
금 전 의원은 “이같은 뭉개기가 탈당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며 “지금의 민주당은 편가르기로 국민들을 대립시키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범법자나 친일파로 몰아붙이며 윽박지르는 오만한 태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편에 대해선 한없이 관대하고 상대방에게는 가혹한 ‘내로남불’, 이전에 했던 주장을 아무런 해명이나 설명없이 뻔뻔하게 바꾸는 ‘말 뒤집기’의 행태가 나타난다”며 “우리는 항상 옳고, 우리는 항상 이겨야하기 때문에 원칙을 저버리고 일관성을 지키지 않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긴다”고 비판했다.
금 전 의원은 “이런 모습에 대한 건강한 비판이나 자기반성은 ‘내부 총질’로 몰리고 입을 막기 위한 문자폭탄과 악플의 좌표가 찍힌다”며 “여야 대치의 와중에 격해지는 지지자들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당의 지도적 위치에 계신 분들마저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눈치를 보고 정치적 유불리만을 계산하는 모습에는 절망했다”고 했다.
다음은 금 전 의원 탈당선언 SNS전문.
<민주당을 떠나며>
민주당을 떠납니다.
공수처 당론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처분을 받고 재심을 청구한 지 5개월이 지났습니다. 당 지도부가 바뀐 지도 두 달이 지났습니다. 그간 윤리위 회의도 여러 차례 열렸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토론도 없었습니다. 결정이 늦어지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당의 판단이 미래에 미칠 영향을 성실히 분석하고 고민하는 모습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저 어떻게 해야 가장 욕을 덜 먹고 손해가 적을까 계산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따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제가 떠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징계 재심 뭉개기’가 탈당 이유의 전부는 아닙니다. 민주당은 예전의 유연함과 겸손함, 소통의 문화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습니다. 국민들을 상대로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서슴지 않는 것은 김대중이 이끌던 민주당, 노무현이 이끌던 민주당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편 가르기로 국민들을 대립시키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범법자, 친일파로 몰아붙이며 윽박지르는 오만한 태도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우리 편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상대방에게는 가혹한 ‘내로남불’, 이전에 했던 주장을 아무런 해명이나 설명 없이 뻔뻔스럽게 바꾸는 ‘말 뒤집기’의 행태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항상 옳고, 우리는 항상 이겨야’하기 때문에 원칙을 저버리고 일관성을 지키지 않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깁니다.
이런 모습에 대한 건강한 비판이나 자기반성은 ‘내부 총질’로 몰리고 입을 막기 위한 문자폭탄과 악플의 좌표가 찍힙니다. 여야 대치의 와중에 격해지는 지지자들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당의 지도적 위치에 계신 분들마저 양념이니 에너지니 하면서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눈치를 보고 정치적 유불리만을 계산하는 모습에는 절망했습니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저의 책임도 큽니다. 정치적 불리함과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든 비난을 감수하고 해야 할 말을 하면서 무던히 노력했지만, 더 이상은 당이 나아가는 방향을 승인하고 동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항의의 뜻으로 충정과 진심을 담아 탈당계를 냅니다.
독일의 정치학자 칼 슈미트는 “정치는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이라는 얼핏 보기에 영리한 말을 했지만, 그런 영리한 생각이 결국 약자에 대한 극단적 탄압인 홀로코스트와 다수의 횡포인 파시즘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까지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집권여당이 비판적인 국민들을 ‘토착왜구’로 취급한다면 민주주의와 공동체 의식이 훼손되고 정치에 대한 냉소가 더욱더 판을 칠 것입니다. 탄핵을 거치면서 보수, 진보를 넘어 상식적인 세력들이 협력하고 경쟁하는 정치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음에도 과거에만 집착하고 편을 나누면서 변화의 중대한 계기를 놓친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정치는 단순히 승패를 가르는 게임이 아닙니다. 우리 편이 20년 집권하는 것 자체가 정치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될 수도 없습니다. 공공선을 추구하고 우리 사회를 한 단계씩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선의를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한 일이라도 옳은 것은 받아들이고, 스스로 잘못한 것은 반성하면서 합의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나갈 때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게 됩니다. 특히 집권여당은 반대하는 사람도 설득하고 기다려서 함께 간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1987년 대선 때 생애 첫 선거를 맞아 김대중 후보에게 투표한 이래 계속 지지해왔고, 6년 전 당원으로 가입해서 대변인, 전략기획위원장 등 당직을 맡으며 나름 기여하려고 노력했던 당을 이렇게 떠나게 되었습니다. 민주당에 있는 동안 고마운 분들도 많이 만났고 개인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일한 분들께 마음속 깊이 감사드립니다. 민주당이 예전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활기를 되찾고 상식과 이성이 살아 숨 쉬는 좋은 정당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모든 분들의 건승을 빕니다.
2019년 9월 28일 오후 4시 40분께 인천공항 제2터미널 3층 246번 탑승구 인근에서 하의 속옷만 입은 채 앉아 있는 30대 외국인 남성 A씨가 발견됐다. 이 사실은 오후 4시 41분 국정원, 경찰, IOC(인천공항 오퍼레이션 센터), 인천공항공사 여객서비스팀에 전파됐다.
이후 순찰 보안요원(16:42), 기동타격대(16:45), 인천공항공사 여객서비스팀(16:45), 경찰(16:53), 항공사 직원(16:57),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청 및 송환대기실 직원(17:06) 등이 차례로 현장에 도착했다. 오후 4시 51분 옷을 차려 입었으나 계속해서 난동을 이어간 A씨는 오후 6시 25분이 돼서야 잠잠해졌다. 이후 순찰 보안요원의 '주변관망 순찰'을 받던 A씨는 오후 8시 18분 경찰, 항공사 직원과 함께 면세구역 내 환승호텔로 이동했다.
그런데 다음날 오후 2시 44분 "A씨가 의식불명 상태"란 신고가 국정원, 경찰,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청, 세관, IOC, 항공사에 전해졌다. A씨는 오후 3시 5분 인천공항 제2터미널 공항의료센터를 거쳐 오후 3시 24분 인하대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그날 인천공항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국정원까지 전파된 '공연음란' 신고
▲ 2019년 9월 28일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돼 인천공항을 거쳐 다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돌아가야 하는 승객이 소란을 피우자 인천공항 관계기관 직원들이 이를 제압하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박영순 더불어민주당 의원(대전 대덕,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을 통해 입수한 인천공항 제2터미널 대테러상황실 보고서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9월 28일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돼 인천공항을 거쳐 다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돌아가야 하는 승객이었다.오전 11시 36분 인천공항에 도착한 A씨는 면세구역에 머물고 있다가 오후 4시 56분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비행기(248번 탑승구)를 탔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오후 4시 40분께 246번 탑승구 인근에서 '공연음란' 상태로 발견됐다.
이후 상황에 대해 보고서에는 "오후 4시 42분 순찰 보안요원이 현창에 도착해 소란행위자(A씨)에게 옷을 입으라고 안내했으나 의사소통이 불가했다"며 "오후 4시 45분 기동타격대가 현장에 출동해 소란행위자 옷을 이용해 임시로 (몸을) 가렸고 오후 4시 51분 소란행위자가 옷을 입었다"라고 나와 있다.
오후 5시 6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청 및 송환대기실 직원이 현장에 도착하면서 이때 A씨의 사정(일본에서 입국이 거부돼 쿠알라룸푸르로 돌아가야 함)이 확인됐다. 오후 5시 25분 그의 가방에선 일본에서 처방받은 신경안정제, 수면유도제, 전립선약 등이 다수 발견됐다.
▲ 2019년 9월 28일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돼 인천공항을 거쳐 다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돌아가야 하는 승객이 인천공항에서 소란을 피우는 일이 벌어졌다. 그의 가방에선 일본에서 처방받은 신경안정제, 수면유도제, 전립선 약 등이 다수 발견됐다.
오후 6시 25분 잠잠해진 A씨는 오후 8시 18분 경찰, 항공사와 면세구역 내 환승호텔로 옮겨졌다. 이때 문제가 생겼다.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A씨를 환승호텔에 홀로 두기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결국 A씨는 송환대기실 직원에게 떠넘겨졌다.
송환대기실은 입국 허가를 받지 못한 외국인 승객이 한국을 떠날 때까지 머무는 면세구역 내 공간으로 인천공항뿐만 아니라 전국 9개 공항·항만에 설치돼 있다. 지난해 1년 동안 승객 5만 5547명이 거쳐가는 등 출입국 관리를 위한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지만, 정부나 인천공항공사가 아닌 여러 항공사가 연합해 만든 항공사운영위원회(AOC)의 하청 인력업체 직원들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 2019년 9월 28일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돼 인천공항을 거쳐 다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돌아가야 하던 외국인 승객 A씨가 인천공항 관계기관 직원들 사이에서 삿대질을 하며 소란을 피우고 있다.
송환대기실 수용 승객이 아니던 A씨는 원칙적으로 송환대기실 직원의 상시 관리 대상이 아니다. 더구나 송환대기실 직원(항공사운영위원회의 하청 인력업체 소속)이 돌발행동을 보이던 A씨를 원활히 관리할 수 있을 만큼 법적 권한이나 행정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전달받거나 현장에 나왔던 국정원,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청, 경찰, IOC, 인천공항공사 여객서비스팀, 순찰 보안요원, 기동타격대, 경찰, 항공사 등 어느 곳도 A씨 관리를 맡지 않았다. 결국 가장 권한이 없는 송환대기실 직원이 우선해 공적 의무를 떠맡은 셈이다.
당시 환승호텔에서 A씨를 관리한 송환대기실 직원 B씨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갑자기 그 승객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라고 떠올렸다. 그는 "갑자기 벽시계를 깨 (유리 파편으로) 자해를 시도하고 이를 말리는 저를 공격했다"라며 "우리에게 (그를 제압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그저 몸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잠시 잠잠해졌다가 또 소리 지르고, 발작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몸으로 누르기도 하고 팔을 잡기도 하면서 제지했다"라며 "도저히 안 되겠어서 끈으로 묶었다 다시 풀어주기도 하는 상황도 있었다. 저도 목과 손에 상처를 입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밤을 샜던 B씨는 "A씨가 겨우 잠들었고 잠꼬대도 하고 그래서 '다행이다, 조금 이따가 쿠알라룸프르행 비행기에 태우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다"라며 "그런데 이불을 다시 덮어주러 갔는데 호흡이 미약한 것 같아 119를 불렀다"라고 떠올렸다. 앞서 인천공항 제2터미널 대테러상황실 보고서엔 이후 상황이 이렇게 담겨 있다.
14:47 구급대 및 보안요원 현장 도착
14:58 환자 이동, 동편 상주직원통로 내 화물 엘리베이터 사용
15:03 인천공항 제2터미널 공항의료센터 도착
15:24 구급차량 이용 외부 인하대병원으로 이송
16:39 응급환자 사망 최종 확인
▲ 2019년 9월 28일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돼 인천공항을 거쳐 다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돌아가야 하던 외국인 승객 A씨가 인천공항에서 소란을 피워 환승호텔로 옮겨졌다. 그는 환승호텔에서 벽시계를 깨 자해를 시도하는 등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문제는 이후 벌어졌다. B씨를 비롯해 A씨를 관리한 송환대기실 직원 3명이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 B씨는 "1차 공항경찰대에게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으나 검찰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어 감금치사 혐의를 받아 조사를 받게 됐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 사건 이후 1년이 넘었는데 검찰 조사를 받기까지 아무도 보호해주는 곳이 없었다"면서 "원래도 하청 인력업체라 고용이 불안한데다가 코로나19 때문에 더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혐의를 받는 것만으로 인천공항 출입증이 안 나오는 등 불이익이 있을 수 있어 답답하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당시 현장에 인천공항 내 머무는 공공기관의 직원들이 다 왔음에도 어느 누구도 (A씨를) 책임지지 않았다"라며 "저희는 하청 인력업체 직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데도 (A씨를) 떠맡았다. 우리가 권한을 갖고 있었더라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노조(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송환대기실분회)의 김혜진 분회장은 "(A씨의) 사망 원인과 우리 직원의 상관관계가 드러난 것도 아닌데 1년 동안 우리 직원이 고통을 겪고 있다"라며 "권한이 있는 국가기관은 발을 빼고 힘없는 우리만 등 떠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송환대기실 관리 주체를 국가로 명확히 하고 직원들을 공무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라며 "그래야 이런 안타까운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이후 직원들이 엄한 일로 피해를 입는 일이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2019년 9월 28일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돼 인천공항을 거쳐 다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돌아가야 하던 외국인 승객 A씨가 인천공항에서 소란을 피워 환승호텔로 옮겨졌다. 밤새 환승호텔에서 난동을 피운 A씨는 다음 날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송환대기실이 이렇게 운영되는 이유는 출입국관리법 때문이다. 출입국관리법 제76조는 입국이 불허된 승객의 송환 의무는 물론 그 과정의 비용까지 "운수업자"가 지도록 정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박주선 의원("운수업자에게 책임이 없을 경우 수송 비용을 제외한 송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도록 한다")과 윤영일 의원("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에게 송환대기실을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이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 다시 법안 개정에 나선 박영순 의원은 "송환대기실 업무는 국가 공권력과 행정력이 엄격하게 작동해야 하는 공간임에도 운영 주체가 불분명한 불합리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라며 "해당 사망 사건에서 보듯 정부가 민간 인력업체 소속인 송환대기실 직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겨선 안 되고 이들을 보호할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송환대기실 운영이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업무 인력을 공무직화해야 한다"라며 "이를 통해 국가 공권력과 행정력의 위상을 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내용의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국정감사 직후 발의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22일 국정감사 현장조사를 통해 인천공항 송환대기실 문제를 들여다 볼 예정이다.
검찰개혁 완수하려는 현 정권과
무소불위 힘 지키려는 검찰
추-윤, 기질·성격으론 설명 안돼
집권초 검찰에 적폐청산 맡기고
‘조직에 충성’ 윤석열 임명 ‘화근’
권력 분산때까지 다툼 이어질 듯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리는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근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라임 사건과 윤 총장 가족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것은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을 규정한 검찰청법 8조에 따른 합법적 조처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인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
이 조항은 1949년 검찰청법 제정 당시부터 있었다. 정무직 공무원인 법무부 장관이 수사·재판 등 검사 업무에 직접 관여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검사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려는 안전장치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김종빈 검찰총장을 상대로 강정구 교수 불구속 수사를 지시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 전에는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구태여 수사지휘권을 발동할 필요가 없었다.
두 가지 이유다.첫째, 대통령과 청와대가 검사의 수사·재판에 개입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심복이었다. 둘째, 장관이 검찰총장은 물론이고 검사들에게 구체적인 사건 처리를 지휘·감독하는 것도 일상이었다. 법무부 장관은 대부분 검사 출신이었다.노무현 정부에서 두 가지 관행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을 장악하지 않고 정권으로부터 독립시키려 했다.
올바른 방향이지만 순진한 생각이었다. 통제받지 않는 관료 집단은 괴물로 변하는 것이 필연이다. 검찰은 정치적 중립이 아니라 검찰 자신을 권력화하는 길을 택했다.2005년에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쓸 수 있는 수단은 수사지휘권밖에 없었다. 김종빈 검찰총장은 물러났지만, 검사들은 칼을 갈았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 벌어진 수사는 검찰의 보복 성격이 짙다.15년이 지났다. 비슷한 장면이 전개된다. 노무현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도 순진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 가지를 잘못했다. 첫째, 집권 초기에 적폐청산 작업을 검찰에 맡긴 것이다. 둘째, 검찰주의자 윤석열 검사를 검찰총장에 임명한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조국 사태’로 물러난 조국 법무부 장관 후임에 여당 대표 출신 추 장관을 임명한 것은 윤 총장 인사가 잘못됐음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하지만 임기 2년의 검찰총장을 그만두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추 장관과 윤 총장의 충돌은 두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 차이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검찰개혁을 완수해 국정의 성과를 쌓으려는 정치권력과 무소불위의 힘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검찰권력의 대립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다.
추 장관이나 윤 총장 어느 한쪽이 물러나도 후임자들에 의해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대통령이 바뀌고 심지어 야당이 집권해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국민은 이 지겨운 싸움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 검찰이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을 분산시키고 되돌릴 수 없도록 만들면 검찰개혁은 일단 성공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정치권력과 검찰 권력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추 장관의 수사지휘가 합법이라고 해도 정치적으로 정당한 것은 아니다. 청와대가 20일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에 대해 ‘불가피한 것’이라며 힘을 실어줬지만, 실제로 여권 내부에선 곤혹스러워하는 기류가 읽힌다. 윤 총장 가족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까지 한 것은 추미애 장관이 너무 나갔다는 평가가 많다.
정의당에 김종철 대표 체제가 들어섰다. 김종철 대표는 1970년생으로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대표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젊을 뿐만 아니라 정의당 안에서도 비주류라 평가받던 흐름에 속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대표에 당선됐다는 사실은 총선 이후 정의당을 혁신하려는 당원들의 의지와 열망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준다. 부디 정의당 당원들의 이런 과감한 선택이 진보정당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 전반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정의당의 새 집행부에게 덕담만 건네기에는 앞으로 정치 일정이 참으로 만만치 않다. 불과 몇 개월 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두 도시(서울, 부산)에서 광역자치단체장 보궐선거가 실시되고, 다시 1년 뒤에는 대통령선거와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잇달아 있다. 총선에서 큰 타격을 입은 지 얼마 안 되는 소수정당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에는 너무 빠듯한 일정이고, 힘에 부치는 시험의 연속이다.
새로 진용을 짠 정의당은 이런 험난한 도전 속에서 과연 어떤 정치적 목표를 이뤄내야 하는가?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진보정당의 진퇴를 평가해야 할까? ― 그것은 바로 사회 변화의 주체를 복원 혹은 다시 구성하는 일이다. 촛불 항쟁 이후 오히려 더 큰 혼란에 빠지고, 더 나아가 해체되고 있기까지 한 그 주체를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당면 과제다.
사회 변화의 주체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좌파에게 사회 변화의 주체는 명백해 보였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노동계급이 변혁의 주역으로 떠오른다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사정이 복잡해졌다. 노동계급은 여전히 사회 변혁을 논할 때에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집단이지만, 그렇다고 현실의 노동자들을 가리키기만 하면 사회 이론부터 정치 전략까지 모두 해결되는 시대는 더 이상 아니다.
우리 시대에는 일종의 '일반화' 작업이 필요하다. 과거에 노동계급이 사회 변화의 주인공이라 식별됐던 주된 이유이자 이후에 노동계급의 속성으로 전제됐던(때로는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무비판적으로 전가됐던) 조건들을 추출해보자. 대략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첫째 조건은 자본주의에서 흔히 '경제'라 불리는 시장 안의 선택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 자기 문제를 해결해나가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존 지배 질서의 재생산을 조금이라도 뒤흔들고 바꾸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노동 시장이든 부동산 시장이든, 대중이 시장 안의 경쟁을 통해 자기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믿는 한, 지배 질서는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이런 전망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선택은 기존 질서의 지속과 안정을 완성시켜주는 사슬의 마지막 고리가 될 뿐이다.
그것과는 다른 영역, 다른 경로, 다른 행동 방식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우선 있어야 한다. 이제껏 그런 노력들이 쌓여 만들어진 장이 '정치'이고, 따라서 사회 변화의 주역이 발 딛고 설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정치'에 대한 믿음과 기대, 이를 향한 열정의 발산이다.
둘째 조건은 타자를 경쟁 상대로 여기는 '경제' 영역의 일상 규범과는 정반대로, '정치'를 통한 문제 해결을 위해 광범한 연대를 구축하려 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경쟁이 일상 규범이다. 여기에서 타인이란 따돌리고 물리쳐야 할 상대일 따름이다. 그렇기에 이 규범에 승복한 대중은 점점 더 작은 부족으로 잘게 나뉘길 반복한다. 그러나 '정치' 영역의 논리는 전혀 다르다. 이 영역에서는 '나'가 아니라 '우리'의 힘이 필요하다. '정치'를 통해 현상태를 바꾸려면 더 많은 타인들이 '우리'로 결집해야 하며, 변화의 폭과 깊이가 광대할수록 '우리'의 경계는 한없이 넓어져야 한다. 즉, 경쟁이 아니라 연대가 승부를 결정하며, 그래서 변화를 바라는 모든 정치는 자본주의 사회의 평균 수준을 넘어서는 윤리의 가능성을 함축한다.
마지막 조건은 연대의 힘을 발휘하는 적극적인 수단으로서 자발적 결사체들을 조직하며 그 활동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 영역에서 연대는 흔히 투표 연합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무력하다. 선거가 없는 일상 시기에도 가시적이며 실제 왕성히 활동하는 자발적 결사체들(혹은 연합, associations)이 있어야 하고, 다시 이들 사이의 긴밀한 연대가 있어야 한다. 평소에 이런 문화에 익숙한 대중만이 정당, 노동조합, 협동조합 등등의 조직을 역동적으로 활용하며 심원한 변혁 과정을 열 수 있고 그 힘겨운 과정을 견뎌나갈 수도 있다. 또한 진정으로 새로운 사회를 그들의 손으로 설계하고 키워 나갈 수도 있다.
우리 시대 위기의 근원인 지구자본주의를 극복하자면, 어느 사회에든 이 세 조건을 구비한 대중이 형성돼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나는 미래 좌파의 대안이 '민주적 생태적 사회주의'라 생각하지만, 그 방향이든 아니면 20세기 전통에 좀 더 미련을 보이는 두 흐름, '사회민주주의'나 '혁명적 사회주의'든 다 마찬가지다. 세 조건을 만족시키는 대중이 성장해 있지 않다면, 개혁이건 혁명이건 어떤 변화도 불가능하다.
오늘날 상황을 보면, 세 조건을 모두 구비한 대중을 찾기 쉽지 않다. 특히 둘째 조건과 셋째 조건은 역사상 유례없이 해체된 상태다. 다만,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대서양 양안의 여러 나라들에서 첫째 조건만은 많이 복구됐다.
그러나 이것이 꼭 보다 나은 미래의 출발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둘째, 셋째 조건을 동반하지 않은 첫째 조건의 복원은 샹탈 무페(Chantal Mouffe)가 말하는 '포퓰리즘 국면(populist moment)'을 낳았다(<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이승원 옮김, 문학세계사, 2019). 연대 문화나 자발적 결사체 전통과 멀어진 대중은 일단은 극우 포퓰리즘에서 자신의 정치적 무기를 찾고 있다.
민주주의의 오랜 퇴행 끝에 다시 '정치'를 발견한 대중은 과연 그에 걸맞는 연대의 추구, 자발적 결사체들의 복원-활성화로까지 나아가게 될까? 이것이 21세기의 커다란 물음이다. 물론 한국 사회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2020년대 벽두의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의 사활적인 과제
촛불 항쟁 직후에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한국 사회에 '정치'의 계절이 새롭게 돌아오길 기대했다. 대중이 '정치'를 재발견하되, 대서양 양안 국가들과는 달리 극우 포퓰리즘이 아닌 형태로 '정치'를 복원해 신자유주의 이후의 세계에서 길을 열어가길 바랐다. 지금 우리 현실에 비춰 보면, 불과 3년 전의 이 바람은 얼마나 천진난만했던가!
촛불 항쟁 직후에도 서로 반대되는 조짐들이 함께 나타나기는 했다. 한편에서는 미투운동이 있었고,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 조직 확대가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비트코인 투기 열풍이 불었다. 촛불 항쟁의 자연스러운 귀결로서 '정치'를 통한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흐름이 있었는가 하면, 지난 20여 년간 한국 사회에 뿌리 내린 시장 경쟁 논리의 연장과 확대에서 출구를 찾으려는 흐름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후자가 전자를 완전히 압도해 버렸다. 부동산 투기 시장은 불패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자극받은 젊은 세대는 '영끌'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키며 주식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주식 시장을 발판 삼아 부동산 시장에 입성하겠다는 것이다. '정치'에서 해법을 찾기는커녕 신자유주의 전성기에 그랬던 것보다 더 많은 이들이 자기 삶을 시장 경쟁과 일치시킨다. 그것도 미래 변화의 열쇠를 쥔 청년 세대일수록 더 그렇다.
3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가장 큰 책임은 역시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에 있다. 이른바 '촛불 정부'는 부동산 시장 과열을 막겠다고 떠들지만, 정작 더 큰 열성을 보이는 것은 부동산 시장 붕괴를 막는 쪽이다. 그러면서 젊은 세대의 주식 시장 열풍에 박수를 보내며 '한국형 뉴딜'마저 금융 상품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한다. 사회 개혁의 기대감을 짓밟아 '정치'를 통한 문제 해결 경로를 닫는 대신 다들 '경제'인이 되어 인생의 승부를 보길 장려한다. 무엇보다 정권 담당자들 자신이 일급의 자산 시장 투자자 아닌가.
혹자는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을 '포퓰리즘'이라 진단한다. 그러나 이는 몇 가지 증상의 유사성을 확대 해석한 오진이다. 2008년 이후 자본주의 중심부의 포퓰리즘은, 극우 포퓰리즘조차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해법에 대한 실망 혹은 단념을 전제로 '정치'의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몸부림에 바탕을 둔다. 현 정부-여당의 선택은 정확히 그 반대다.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기대를 애써 봉쇄하면서 '경제'적 탈출구 추구를 적극 권장한다. 이는 2017년 이전뿐만 아니라 2008년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낡은 해법의 시대착오적 고수다.
이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사악하기까지 한 선택이다. 왜 '사악'한가? 지금의 혼란을 더욱 악화시키는데다 이 혼란을 극복할 주체의 성장마저 가로막고 방해하기 때문이다. 위에 정리한 세 가지 조건을 갖춘 대중이 시급히 성장해야 할 이 때에 오히려 가장 많은 미래 가능성을 지닌 세대로 하여금 낡은 도박판에 희망을 걸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다 필연적으로 이 도박판의 한계가 드러나면, 많은 이들이 뒤늦게, 가장 그릇된 방식으로 '정치'에 다시 호소하게 될 것이다. 이때에 비로소 한국 사회에는 극우 포퓰리즘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촛불 항쟁 이후 역사의 전개로서 이보다 더 비극적인 경우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이 해야 할 바가 있다. 당직 선거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새로 정한 정의당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역사적 과업이 있다. 그것은 '정치'가 희화화된 상황에서 투기판 문이라도 두드릴 수밖에 없게 된 이들이 하루빨리 다시 모종의 '정치'에 기대를 걸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리하여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이 열고 있는 역사의 가장 나쁜 전개 경로를 닫고, 사회민주주의든 생태사회주의든 바람직한 사회 변화를 실현할 주역들의 씨앗을 지키는 일이다.
이 글에서 자세히 짚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 주된 전장은 현재 투기 시장의 때 아닌 팽창이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곳들이 될 것이다. 주거/부동산, 노후 대책, 수도권 집중, 그린 뉴딜/생태 전환 등등이 중첩되는 영역들. 이 영역들에서 투기 시장 동참과 대별되는 '정치'적 해법을 제시하고, 이것만이 지속 가능한 대안이며 현실에서 충분히 실현될 수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이런 내용들을 중심으로 잇단 선거에 임해야 한다.
정의당 당직 선거에서 나온 공약이나 의제들을 보면,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는 분위기다. 부동산을 포함한 '기본자산' 개념이 제시되거나 수도권 집중 해소를 위한 권역별 거점 육성 같은 구상이 나온 것이 그러한 사례다. 이제 이러한 맹아들을 좀 더 과감하고 단단한 대안들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는 진보정당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 전체의 운명과도 직결된, 참으로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다. 결코 회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정의당 김종철 신임대표 등 6기 지도부가 11일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서울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택배노동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택배 박스를 나르고 있다. (자료사진)ⓒnews1
40대 택배노동자 김모씨가 대리점의 갑질과 생활고를 호소하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씨의 사망으로 올해 목숨을 잃은 택배노동자는 11명이 됐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김씨는 20일 오전 3~4시경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 터미널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해당 터미널 관리자가 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책위에 따르면 김씨는 오전 2시 41분경 함께 일하던 동료에게 자필 유서 3장을 직접 찍어 메신저로 보냈다.
김씨가 남긴 유서. 대책위에 따르면 로젠택배의 경우, 택배노동자를 소장으로, 대리점을 지점으로 지칭한다.ⓒ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A4용지 3장 분량의 유서는 “억울합니다”로 시작한다.
김씨는 “우리(택배기사)는 이 일을 하기 위해 국가시험에, 차량구입에, 전용번호판까지(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200만원도 못 버는 일을 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대리점으로부터 당한 갑질을 나열했다.
그는 “로젠 강서지점 지점장과 부지점장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고용해야할 직원 수를 줄이고 수수료를 착복해 소장(택배기사)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여름 더위에 하차 작업은 사람을 과로사하게 만드는 것을 알면서도 이동식 에어컨 중고를 150만원이면 사는 것을 사주지 않았다”며 “(오히려) 20여명의 소장들을 30분 일찍 나오게 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부지점장은 화나는 일이 생겼다고 하차작업 자체를 끊고 소장을 불러서 의자에 앉으라 하고 자기가 먹던 종이 커피잔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화를 냈다”며 “소장을 소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직원 이하로 보고 있음을 알았다”고 폭로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김씨는 수입이 줄어 은행권 신용도가 떨어져 기존 대출금에 대한 이자가 상승해 관두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려 했다. 그러나 계약서상 퇴사 시 후임자를 데려와야하고, 그렇지 못할시 그것에 대한 인건비를 김씨가 부담해야하는 상황에서 퇴사도 하지 못했다. 김씨는 사망 직전까지 본인의 차량에 ‘구인광고’를 붙이고 다녔지만 구하지 못했다.
김씨는 “아마 3개월 전에만 사람을 구하던지, 자기들(대리점)이 책임을 다하려고 했다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은 없었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끝으로 “제가 죽어도 관리 직원에게 다 떠넘기려고 할 것”이라며 “다시는 저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시정조치를 취해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대책위는 “고인은 입사과정에서 보증금 500만원을 지점(대리점)에 지급하고, 300만원의 권리금까지 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수입이 나오지 않는 구역을 일방적으로 떠맡기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택배노동자의 사망이 로젠택배의 구조적인 문제와 대리점장의 갑질이 불러온 사건인 만큼 정부와 로젠택배는 철저히 진상조사를 하라”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을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 “(고인은) 과도한 권리금 등을 내고 일을 시작했고 차량 할부금 등을 지불하고 나면 월 200만원도 못 버는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며 “수입이 적어 신용도가 떨어지고 원금과 이자 등을 한 달에 120만원 정도 부담하고 있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양이 의원은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이 늘어나면서 택배 물량이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이 같은 죽음의 행렬을 어떻게 멈출지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 체제선 ‘환경보다 경제’ 불가피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 방법 찾아야
더 일찍 준비할수록 더 쉬워진다
미국 대선은 정치를 넘어선 사안
트럼프 재선 타당하지 않다
그레타 툰베리가 16일 한겨레 취재진과 화상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내가 하는 일을 존중해준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행동으로) 증명해달라.
행동이 말보다 훨씬 의미 있다.” ‘기후위기 운동의 얼굴’이자 ‘미래 세대의 대변인’으로 불리는 스웨덴의 17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그는 지난 16일 <한겨레>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후위기 대응에 소극적인 각국 지도자들을 통렬하게 꾸짖어온 10대 환경운동가가 한국의 지도자에게 보낸 첫 메시지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스웨덴 총리 방한 당시, 툰베리가 <타임>이 선정한 역대 최연소 ‘올해의 인물’이 된 것을 축하하며, “세계 최초의 화석연료 없는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스웨덴의 노력이 세계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칭송한 바 있다. 이어 툰베리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린’(이라는 단어)을 사용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그린뉴딜’로 그리고 있는 장밋빛 미래를 비판적 시각에서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툰베리가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트남 석탄발전에 투자한 사실에 대해서도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답했다. 이어 “(세계를 이끄는) 리더로 불리는 나라들도 경우에 따라 ‘악당’이 될 수 있다. 기후위기 문제 해결에 앞장선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작 (경제를 위해) 하고 싶은 일들을 거의 다 하는 경우들이 있다”고 말했다.특히 다음달 3일 치러지는 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툰베리는 “(일국의) 정치를 넘어선 사안”이라며 “지금까지 배출된 온실가스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에는 특별한 책임이 있다. (새 대통령은) 과학을 근거로 기후변화를 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만일 이번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미국은 곧바로 세계 197개국이 합의한 파리기후변화협정을 공식 탈퇴하게 된다.툰베리는 2018년 8월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1인시위를 시작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그의 시위는 각국으로 확산됐고 현재는 한국을 포함한 133개국 160만명이 동참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당신들은 우리를 실망시켰다. 여러분이 우리를 저버린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각국 정상들을 쏘아보던 그의 눈빛과 말투는 기후위기 문제를 단숨에 전세계인들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9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연설 중인 그레타 툰베리. 그는 이 자리에서 분노를 드러냈다. 세계 정상들을 향해 “당신들은 우리를 실망시켰다. 여러분이 우리를 저버린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세계인들에게 기후위기 운동을 각인시켰다. 연합뉴스.
2019년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그레타 툰베리를 선정했다. 역대 최연소였다.
아래는 툰베리와의 인터뷰 전문
“지구의 가장 위대한 변호인”지난해 9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그레타 툰베리를 이렇게 추켜세웠다. 미국을 찾은 툰베리를 만난 직후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말대로,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이자 대표적 환경운동가로 떠올랐다. 2007년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뒤 잠잠해진 기후위기 담론에 다시 불을 지폈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18년 학교에 가지 않는 ‘결석 시위’를 시작해 각국으로 확산시킨 그는, 새로운 환경운동을 ‘하드캐리’(실력자가 게임을 승리로 이끈다는 뜻)하고 있다. 수백만명의 팔로어(트위터 420만명, 인스타그램 1050만명)가 있고, 담당 미디어팀이 따로 있는 세계적 ‘셀럽’(유명인)이기도 하다. 지난 16일에는 툰베리의 활동과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아이 엠 그레타>가 개봉돼 국가별로 순차 상영을 시작했다.툰베리는 기후위기 문제는 엄중한 데 비해, 각국 정부와 정치인들의 행보는 더디다는 현실에 주목해왔다. 현재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인 100여년 전보다 1도가량 올랐다. 이대로 인류가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해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이상 오르게 되면 지구 기후는 인류의 노력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변화를 겪게 된다.지난 16일 화상으로 이루어진 툰베리 인터뷰는 <한겨레>가 올해 4월 기후변화팀 신설 뒤 수차례 요청한 끝에 성사됐다. 이날도 ‘미래를 위한 금요일’ 결석 시위를 마치고 온 그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집에서 7000㎞ 떨어져 있는 서울의 기자들과 눈을 맞췄다.
분노하고 저항하는 미래 세대의 아이콘
―올해 기상이변, 코로나19 등 환경 이슈가 많았다. 당신에게 올해는 어떤 해였나?“모든 사람에게 올해는 위기의 해다. 우리는 인간이 매우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됐다. 우리의 위기 극복 능력을 지금까지 과대평가해왔는데, 우리가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 자신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다시 점검할 때다.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아무도 본 적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결석 시위를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다. 어떤 변화를 느꼈나?“우리가 이렇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 점이 놀라웠다. 누구도 예상 못 했을 것이다. 매우 놀라웠다. 사람들은 청소년들이 그저 이기적이고 자기만 생각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공동의 문제의식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 이제 많은 사람이 청소년들이 결석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우려를 표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점에서 매우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각국 정부는 이런) 상황을 위기로 생각하지 않고 온실가스도 크게 줄고 있지 않다.”그는 전사다. 기후위기 문제를 가해자(온실가스 과배출 정부, 기업, 이를 방조한 어른 세대)와 피해자(저배출 국가, 미래 세대)로 나누어 누구의 편에 설 것인지 묻는다. 더는 북극곰을 살려달라는 호소에 그치지 않고, 더는 교양 있는 지구인의 선의를 기대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자녀의 미래를 훔치”는 것이라고 한 지난해 9월 유엔에서의 연설은 기후위기 문제에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어른 세대의 심장에 화살을 꽂아넣었다.“모두가 잘못한 게 아니라 몇몇이 잘못한 거예요. 지구를 구하려면 그 몇몇 사람들과 그들의 기업 그리고 그들에 돈에 맞서 싸워야 해요. 그들이 잘못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고요.” (그의 가족이 쓴 책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 133쪽 그가 한 말)그의 솔직하고 용감한 발언이 전세계 수백만명의 청소년과 청년을 학교가 아닌 거리로 나오게 했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태평양 섬 나라가 물에 잠기는 것은 안타깝지만, 나의 삶과 솔직히 상관이 없다’고 속으로 생각했던 사람들도 10대 청소년들의 분노와 절규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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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툰베리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를 타지 않고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다. 일부 사람들이 그에게 ‘보여주기식’ 행동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는 질문에 그는 “내 행동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라기보다 기후 위기 논의를 진작시키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했다. 그레타 툰베리 인스타그램 갈무리.
그는 지지 않는다. 그에게 “분노 조절 문제에 신경쓰라. 진정해”라며 조롱하듯 트위터 글을 남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에 공감이 가지 않는다”고 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기싸움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분노조절 문제에 신경쓰는 20대 청소년. 현재 진정하고 친구와 좋은 옛 영화를 보고 있음”이라고 자기 소개를 바꾸며 트럼프의 조롱을 가볍게 방어했다. ‘스트롱맨’들과 맞서는 용감한 10대 소녀는 환경 운동을 넘어 어른 세대에 저항하고 분노하는 미래 세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진보적 사고로 젊은 세대로부터 지지를 받는 루스 베이다 긴즈버그 미국 대법관을 추모하는 글이 그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와있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스트롱맨’과 맞서는 그레타 툰베리는 젊은 세대의 분노와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일러스트 이민혜.
“그린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 말라”
―1년 전 유엔에서 당신을 향해 박수 친 각국 지도자들이 있다. 그들이 당신의 연설 내용을 정책에 반영했다고 생각하는가?“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현실을 보면 거의 아무런 조처도 하지 않았다. 아직 기후위기를 위기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내 답은 ‘아니다’이다. 지금까지 배출한 온실가스 총량 등 역사적인 책임을 봐야 할 필요도 있다. 어떤 나라들은 다른 나라보다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고,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파리협정에서도 부유한 나라들이 저개발 국가에 삶의 질을 개선할 기회를 제공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 참석할 당시, 청와대는 툰베리의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후 문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가 한국을 찾았을 때, 미국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역대 최연소 ‘올해의 인물’에 툰베리가 선정된 것을 축하한다고 전했다. 툰베리에게 보인 관심과 달리, 한국은 대외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미온적이며, 심지어 석탄발전에 여전히 투자하고 있는 ‘기후악당’으로 꼽혀왔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을 두고, ‘무늬만 그린’이라는 혹평이 제기되기도 했다.그는 한국의 이러한 상황을 알리는 사전 질문지에 “특정 국가만의 잘못이 아니라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잘못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그러나 실제 인터뷰에서는 ‘그린’을 앞세운 정치인과 정부에 대한 경계심을 강조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참여한 그레타 툰베리가 ‘미래를 위한 금요일’ 결석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도 세계 11위의 온실가스 배출국가(2017년 기준)다. 한국의 그린뉴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수 있나.“전세계 여러 나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그린, 그린딜, 그린뉴딜, 친환경 투자 (green investments)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그런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린은 단지 색깔에 불과하고 우리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차원에서 사용되고 있다. 누구도 그린이 어떤 의미인지 결정한 적이 없다. 그린이라는 말이 아무 의미도 없을 수 있다. 단지 좋게 들릴 뿐이다.”―한국에선 ‘환경보다 경제가 우선’이라는 논리가 여전하다.“현재 시스템에서는 그들이 맞다. 과학이 지적한대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우리 사회 자체를 완전히 폐쇄할 수는 없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수십년 전부터 준비했어야 했다. (이제라도) 더 일찍 시작할수록, 더 쉽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한국의 한국전력이 베트남에 석탄발전소에 투자하기로 최종 결정했다.“매우 큰 문제다. 기후 문제에 ‘리더’라고 불리는 국가들이고 ‘악당’인 경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기후문제 앞장선다고 알려져있지만 하고 싶은 일들은 거의 다 하고 있다. 어떤 국가들은 리더 국가들이 해 놓은 일들 비판받기도 하는데 매우 정당하지 않다”―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문 대통령이 내가 하는 일을 ‘존중한다’(admires)고 말했다면, 행동으로 증명해주면 좋겠다. 행동이 말보다 훨씬 더 의미가 있다.”11월3일 치르는 미국 대선은 요즘 그의 최대 관심사다. 툰베리는 지난 10일 자신의 트위터에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 투표하자”는 글을 남겼다. 올해 미국 대선은 기후위기 문제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 짐작된다.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이전 오바마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무력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그는 ‘왜 트럼프는 안 되는가’라는 질문에 웃으며 “(웃으며) 나는 어떤 경우라도 정치 관련된 이야기는 해오지 않았다. 기후위기는 정치를 넘어선 문제다. 올해 미국 대선은 정치를 넘어선 사안”이라며 “다음 미국 대통령은 다른 모든 리더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을 근거로 기후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은 매우 부유한 나라이기 때문에 특별한 책임이 있다. 지금까지 배출된 전세계 온실가스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고 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탄광 속 카나리아…툰베리를 움직이는 동력은?
그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탄광 속 카나리아’였다. 쉬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온실가스로 포위된 지구에서 숲이 파괴되고 동식물이 사라져가는 소식에 그와 같이 환경감수성이 충만한 이들은 아프기 시작한다. 마치 탄광의 차오르는 가스를 미리 감지하고 죽어가는 카나리아같다고 생각했다.섭식장애가 있어 평소 매우 소량의 식사만 매우 천천히 하는 그는 지난해보다 더 야윈 모습이었다. 야스퍼거 증후군(사회관계형성에 어려움을 겪으며 특정 상황에 집중을 잘 하는 발달장애 일종)을 겪는 그는 인터뷰가 진행될 수록 렌즈를 통해 눈을 맞추지 않고 시선을 옆으로 두고 말을 이어갔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작은 몸에서 큰 에너지를 내기까지는 그에게 기후위기 문제가 매우 극심한 스트레스라는 것은 분명했다.
8살의 그레타 툰베리. 인스타그램 갈무리.
<한겨레>는 청소년기후행동을 통해서도 그에게 궁금한 질문을 모았다. 많은 청소년들이 그와 같은 슬픔과 아픔을 경험한다고 했다. 그들은 기후위기 문제로 인해 미래를 저당잡힌 삶, 그리고 이 미래가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이미 지구에서 누릴 것을 다 누린 어른 세대의 무관심과 무책임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는 점때문에 더욱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들은 그와 함께 한국에서 ‘결석 시위’에 참여했고, 지난 3월 “기후위기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정부와 국회때문에 생명권 등 기본권이 침해받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당신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운동에 함께 하는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 모두와 함께 기운을 북돋고 있다. 우리 가족과 강아지. 그리고 이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도 내가 포기하지 않게 하고 있다. 앞으로 있을 일을 우리는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갖고 있는 힘을 다 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서, 이 세상이 더 나아지도록 해야 한다.”
그레타 툰베리는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족과 강아지, 청소년들과의 연대 등을 꼽았다.
2018년 8월 시작한 ‘미래를 위한 금요일’ 결석 시위는 160개 국가로 확산됐다.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사람들은 청소년들이 그저 이기적이고 자기만 생각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공동의 문제의식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 이제 많은 사람이 청소년들이 결석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우려를 표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청소년들은 당신에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푸틴 러시아 연방 대통령과 같은 기후위기 부정론자들과 싸우는 것이 두렵지 않냐고 물었다.“흥미로운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이제 어디에도 숨을 데가 없다. 그래서 청소년들을 공격하고 있다. 그 사람들은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한다.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자신들이) 논리적인 주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청소년들에 대한 공격이 다른 무엇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기특하다, 잘 한다”고 하면서 정작 청소년들의 외침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 어른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물었다.“그건 매우 좌절감을 주는 일이다. 우리의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하는 일은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받거나 기특하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나 우리와 셀카를 찍게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실제적인 변화를 위해서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얼마나 서로 큰 간극이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지난 2월 영국 브리스톨에서 기후 파업에 나선 시민들과 그레타 툰베리. 연합뉴스.
―기후위기 문제를 알아갈수록 미래가 어둡다는 사실에 우울하다고 느끼는 청소년들이 많은 것 같다.“처음에는 나도 그랬다.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우울했고 슬펐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안 했고 우울감을 느꼈다. 그러다 가장 좋은 약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바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누가 이 문제에 가장 민감한지, 누가 불편한 질문들을 하는지, 누가 낙관적 생각을 갖고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아무 것도 바꿀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한국의 청소년들에게 할 말은.“우리는 함께 맞서야 한다. 이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 다른 방식으로, 그 크기는 다르지만 결국 우리 모두가 영향을 받게 된다. 우리는 모두 결속해 함께 행동해야 하고 필요한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 3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의회 환경위원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건강은 괜찮나. 1년 동안의 안식년을 마무리하고 학교에 돌아왔는데 기분은 어떤가.“좋다. 학교에 돌아와 평범한 10대가 돼 좋다.”―지구를 위한 시간이 얼마나 남았다고 생각하나.“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만큼의 시간은 언제나 있다. 기후위기를 막지 못하게 되는 특정한 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악화되는 것을 막을 시간이 있다. 앞으로의 시간이 중요하다. (더 나빠지지 않고) 현재 상태를 유지시키는 시간 말이다.”그가 요트를 타고 유럽에서 미국으로 대서양을 건너갔을 때 일부 언론과 사람들은 그의 행동이 보여주기식이라고 비판했다. 자신은 비행기를 타지 않아 온실가스를 배출시키지 않았지만, 요트를 수리하고 조종하는 노동자들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 것을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시켰다는 분석이 더해지면서 그의 활동을 폄하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사람들이 나를 돕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것은 그들의 선택이다. 나의 행동은 우리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행동”이라며 “요트를 타는 것은 내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후 관련 논의를 진작시키기 위해서였다”라고 단호하게 설명했다.미래 어느 순간 지구인들은 오늘을 돌아볼 때 어떤 감정이 들까.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걸고 지구를 대변하는 그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할까. 그의 야윈 얼굴과 대비되는 형형한 눈빛이 계속 미안함을 느끼게 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기후위기 문제를 인식하고 행동에 나서달라”는 당부였다.(※인터뷰 전문과 동영상은 <한겨레> 누리집(www.hani.co.kr)과 한겨레 티브이,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최우리 김지은 기자 ecowoori@hani.co.kr
지난해 12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COP25에서 연설 중인 그레타 툰베리. 연합뉴스.
그레타 툰베리는 ‘탄광 속 카나리아’같다. 탄광의 가스 농도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카나리아처럼, 지구인들 중 지구와 환경의 위기를 가장 먼저 느끼고 아파한다. 모든 지구인들은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레타 툰베리 인스타그램 갈무리.
▲ 택배연대노조가 최근 숨진 택배노동자 고(故) 김원종씨를 기리고, CJ대한통운을 규탄하기 위해 17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행진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
택배노동자의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CJ대한통운 40대 김원종씨를 비롯하여 불과 일주일 사이에 3명이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올 들어서만 10번째 사망사고이다. 지쳐 쓰러져 죽을 때까지 일을 한다니 채찍만 없을 뿐 고대 노예나 다름없는 참으로 잔인한 죽음이다.
문제는 이것이 예견된 사태라는 데 있다.
공짜노동, 장시간노동, 신속노동, 저임금노동, 불안정노동이라는 5중고에 코로나19로 폭증하는 배달물량을 소화하다보니 예년에 비해 사망률이 3배나 증가했다. 5만여 택배종사자들이 지금 멀쩡하다고 볼 수 없는 심각한 지경이다.
택배노동자들은 주당 71시간, 야간·초과근무가 일상화됐지만 순소득은 약 234만원 수준으로 시간대비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택배배송업무는 실제 7~8시간이나 택배업체는 거의 6시간 정도의 분류, 상‧하차 작업에 택배노동자를 공짜로 부려먹는다. 결국 하루 노동은 13~16시간으로 늘어난다. 숨진 한진택배 김씨는 하루 420개의 물량을 배달했고 새벽 4시까지 일했다고 카카오톡에 남겼다. 20년 경력의 택배기사 김원종씨는 매일 하루 14~15시간 일했다. 심할 경우 3분에 한 가구씩 배달을 해야 한다. 초보자나 배송구역이 넓은 노동자는 끼니를 거르면서 뛰어다녀도 배송을 다 마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게다가 코로나19로 배달물량은 예년 평균에 비해 30%가 늘었고, 추석명절 시기에는 50%나 폭증했다.
택배노동은 분류·상차·하차·운송·배달 작업을 진행하는데, 여기에는 하청·특수고용·단기 고용 등 온갖 비정규직이 다 몰려있다. 쿠팡에서 일하는 일용공이었던 장씨가 정규직이 되고 싶어 오후 7시부터 새벽 4시까지 야간조로 근무하면서 신속배송시간을 맞추기 위해 강도 높은 실시간 노동을 하다가 쓰러진 비극에는 바로 이러한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CJ대한통운, 한진택배, 쿠팡은 대표적인 택배물류재벌들이자 코로나사태의 최대 수혜자이다. 그런데 이들이 사죄와 책임은커녕 택배노동자의 사인을 놓고 과로사를 인정하지 않거나 모르쇠로 나오는 파렴치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을 조작한 정황까지 나오고 있다. 당장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처벌할 것은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공짜노동의 원흉인 장시간 분류작업문제를 해결하고, 산재보험 적용제외신청제도 자체를 폐기하는 것은 시간을 끌 문제가 아니다.
▲ 한진택배 택배기사 김동휘 씨가 세상을 떠나기 4일 전 동료에게 보낸 SNS 메시지 [사진 : 택배연대노조]
그러나 택배물류산업이 계속 확대되는 조건에서는 보다 구조적인 특단의 대책을 내와야 한다. 마치 코로나19 중환자에게 복합집중처방을 가하듯이 택배산업과 택배노동전반에 대한 집중적 대책을 정부와 정치권이 앞장서서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30대 40대 건장한 노동자들이 쓰러지는 비극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장적 측면에서 산업구조의 변화를 반영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신속하게 입법해야 한다.
생활물류는 디지털화와 비대면 시대 국민들의 일상을 책임지는 필수산업이 되었지만, 탈법이 횡행하고 과로사가 속출해 왔다. 기존 화물운수법은 대형·중량의 기업 간 화물운송산업물류에 적용되는 법으로 소형·경량의 소화물을 배송하는 생활물류 관련조항이 아예 없거나 예외조항으로 되어 있어 사각화되어 있다. 이에 이미 20대 국회에서 발의되었으나 처리하지 못했고, 최근에는 노동조합, 정부여당, 시민단체가 입법협약식까지 맺은 만큼 택배·퀵·배달 생활물류산업의 특징을 반영하고 해당 노동자들의 보호조항을 일정하게 담은 생활물류서비스산업법을 차질없이 의결해야 한다.
다음으로 중대산업재해를 일으킨 기업과 대표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과로사하게끔 방치한 것은 중대 과실이다. 최근 잇단 창고화재사건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살인기업에 대한 처벌은 거의 없거나 미약한 형편이다. 제도적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해 고의·중과실을 응징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에게 저항권을 주는 것이다.
지금 택배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 응당 누려야 할 노동3권을 특수고용노동자라는 핑계로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물류재벌들이 마음놓고 공짜노동을 시키고 과로사로 내모는 중요한 이유는 택배노동자들이 중층적 다단계 비정규직 고용구조속에서 일하고 있고 자본의 횡포에 저항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도 주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택배노동자들의 연이은 과로사에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은 택배노동자 자신이다. 그들이 자기문제를 풀 수 있는 손발을 묶어 놓았으니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이건 반칙이다.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주면 무슨 큰 일이 일어날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큰 일은 지금 택배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전태일법이라고 불리우는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권리는 마땅히 주어야 할 그들의 당연한 권리이다.
올해 2020년은 광복(또는 해방) 75주년이자 6.25전쟁(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에겐 해방이 곧 분단이었으니 분단 75주년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3/4세기 동안이나 분단된 상태로 살아야 했던가? 왜 우리는 해방과 함께 분단이라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을 맞아야 했던가? 우리는 왜 해방 3년 만에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고 마침내 5년 만에 전쟁이라는 참화를 겪어야 했던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해방 전후사에 들어 있다. 해방 75주년, 한국전쟁 70주년의 해에 해방 전후 역사를 다시 돌아보는 이유다. 이 연재는 매주 월요일에 게재된다. / 필자 주
미군의 남한 점령과 미군정 체제의 수립
9월 9일 8시부터 미 24군 본진이 서울역에 도착해 총독부를 비롯한 서울시내 중심부 요소에 배치되었다. 주요 위치마다 일본군이 늘어선 가운데 미군의 행진이 계속 되었다. 군중들은 조용히 미군의 행진을 지켜보았다. 미군 부대는 주요 시설에 분산, 배치되었다. 미군 비행기들이 굉음을 내며 비행함으로써 조선인과 일본인 모두에게 미군의 군사적 힘을 과시하였다.
9월 9일 오후 4시 연합군과 일본측 사이에 항복문서 조인식이 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열렸다. 미국측은 재조선 미군사령관 하지 육군중장과 미해군 대표 킨 케이드 해군대장이, 일본측은 조선군관구 사령관 카미츠키 요시오 육군중장, 진해만경비사령관 야마쿠치 기사부로 해군중장,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육군대장 출신)가 참석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25분에 걸쳐 영문과 일문으로 된 항복문서에 일본측과 미국측이 서명하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4시 45분, 일본기가 내려오고 성조기가 올려졌다. 일본을 대신해 미국이 남한의 통치자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치였다.(주1)
1945년 9월 서울에 진주한 미군과 시민들.
한편, 양측이 서명한 항복문서 제5조에는 “일본의 문무관은 면직되지 않는 한 현직에 유임한다”고 되어 있었다. 미군은 조선총독부 기구를 그대로 유지하고 이용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남의 모든 행정권은 본관(맥아더)에 귀속된다’는 9월 9일자 맥아더 포고 제1호와 배치되었다. 미 점령군은 남한 주민들의 일본에 대한 반감 등을 고려하여 군정체제를 수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 사령부는 일본 내각을 존속시킨 채 간접통치를 시행했으나 한국에는 그럴만한 정부가 없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었던 것이다.(주2)
그러나 남한에는 이미 건국준비위원회(건준)->인민공화국(인공)을 비롯해 각 지역에는 인민들이 자주적으로 조직한 인민위원회가 사실상의 권력기관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미군은 이를 인정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북한지역을 점령한 소련군이 건준이나 인민위원회 등을 통합해 좌우합작 형태의 인민정치위원회 등으로 개편하도록 하여 간접통치를 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남한의 경우, 그렇게 하면 좌익이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기 때문에 미군으로서는 직접 통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북한에서 소련이 했던 것처럼 기존의 인공과 우익을 결합시켜 좌우합작 형태의 자치기관을 조직하도록 하고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미국으로서는 그렇게 해서 남한의 정치적 주도권을 확실히 장악할 수 없었다. 이남지역에서 혁명을 방지하고 미국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군정을 통한 직접 통치 방식 밖에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9월 12일 하지 중장은 아베 총독과 경무국장 니시히로츄우난을 정식으로 해임하고, 제7사단장 아놀드 소장을 38선 이남의 군정장관에, 조선주둔군 헌병대장 쉬크(L. E. Shick) 준장을 경무국장에 임명했다. 군정장관으로 임명된 아놀드 소장 또한 행정 경험이 전혀 없는 야전군인 출신으로 1946년 1월 4일 러치 소장에게 인계할 때까지 114일 동안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짓는 데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아놀드는 군정장관 자리를 아놀드에게 넘겨주면서 “총독부는 일본인이 착취하기 위한 기구였지만 당분간 사용할 기관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미군정의 행태를 합리화했지만 이는 한국인의 의사와 실정을 무시한 지극히 기능적이고 편의적인 발상이었다.(주3
한편, 하지는 별도의 지시가 없으면 모든 관리들은 그 직책에 계속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일본인에 대한 해고는 계속되었다. 9월 15일 재조선 미육군사령부는 경성의 명칭을 ‘서울’로 통일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수도 명칭이 ‘서울’이 된 것이다. 9월 16일 한국인 전규홍이 군청부 법부국 특별감찰청장에 임명되었으며, 경무국장 쉬크는 군정부포고령 위반자를 체포하라고 명령했다.(주4)
9월 15일 군정장관 아놀드 소장 엔도 정무총감과 국장들을 해고하고 그 자리를 미군 장교들을 임명했다. 정무총감에 해리스(C. S. Harris) 준장, 재무국장에 고든(C. J. Gordon) 중령, 광공국장에 언더우드(J. C. Underwood) 대령, 농상국장에 마틴(J. Martin) 중령, 법무국장에 우달(E. J. Woodall) 소령, 학무국장에 라카드 대위, 교통국장에 해밀턴 중령, 체신국장에 헐리(W. J. Herlihy) 중령 등을 임명했다.(주5)
한편, 남한 점령군 사령관 하지 중장은 9월 12일 오후 2시 반 부민관에서 조선의 각 정당 대표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한국인들이 시위를 그만 두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임무가 일본의 항복 접수와 법과 질서의 회복이라면서, 카이로회담에서 조선의 독립이 적절한 시기에 이뤄질 것이라고 했지만 시간이 필요하고 만일 무리하게 독립을 달성하려고 하면 도리어 원치 않는 혼란과 파국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맥아더 장군이 언론과 출판,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선언했으나 조선인들이 그것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주6)
무장한 차량을 타고 미군들이 서울 시내를 지나가고 있다.
** 미군군표를 법화로 사용한다는 내용을 담은 ‘포고령3호’. 통화권 장악은 국민생활의 실질적인 기초가 되는 경제 질서를 장악하는 것이고, 이는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물질적 사회적 토대인 것이다. 군대와 경찰, 그리고 통화권 장악은 미군정의 일차적인 출발점이었다.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포고 제3호
조선주민에게 포고함.
본관은 태평양육군최고지휘관으로서 아래와 같이 포고함.
제1조 법화
제1항 점령군에서 발행한 보조군표인 “A”인(印)의 원(圓) 통화는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지역에서 공사의 변제에 사용하는 법화로 정함.
제2항 점령군에서 발행한 보조군표 “A”인의 원 통화와 현재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지역에서 통용되는 법화인 보통의 원 통화는 일본은행과 대만은행에서 발행한 태환권을 제외하고는 액면대로 교환 가능함.
제3항 기타의 통화는 북위 38도 이남의 지역에서는 법화로 인정하지 않음.
제2조 일본군표인 원 화폐
제4항 일본제국정부나 또는 일본육해군에서 발행한 군표와 일본점령군이 사용한 통화는 모두 무효, 무가치하고, 또한 이와 같은 통화의 유통은 어떠한 거래에서라도 금함.
제3조 통화의 수출입금지
제5항 지폐, 보조화폐 또는 채권의 수출입을 포함한 대외금융거래는 본관의 허가한 경우 이외에는 금함.
제6항 금융거래는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지역내에서 시행하는 것을 제외하고 다른 것은 대외금융거래로 간주함.
제4조 다른 통화에 관한 법규
제7항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지역에서 현재의 통용되는 법화인 보조군표나 또는 원 지폐 외에 다른 통화의 유통은 본관의 허가없이는 이것을 금함.
제5조 처벌
제8항 이상의 군정포고조항을 범한 자로서 점령군군율회의에서 유죄의 판결을 받은 자는 동 회의의 정한 바에 의하여 이를 처벌함.
1945년 9월 7일
태평양미국육군최고지휘관미국육군대장 D.맥아더
미군정의 한국인화 정책과 ‘고문정치’ ‘통역정치’의 폐해
미군의 진주 이후 총독부 고위관리들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미군 장교들을 앉히면서 미군정 체제가 등장, 가동하기 시작했는데, 9월 20일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약칭 ‘미군정청’)이 설립되어 미군사정부(미군정)의 남한 통치가 본격화했다. 미군정청은 처음 일본인을 행정고문에 임명했으나 이들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 10월 5일에는 한국인 고문 11명을 임명했다. 그 11명은 김성수, 전용순, 김동원, 이용설, 오영수, 송진우, 김용무, 강병순, 윤기익, 여운형, 조만식 등이었는데, 여운형을 제외하면 한민당 일색이었다. 이들 가운데 평양에 있던 조만식은 이북에서의 일이 바빴던 탓에 서울로 오지 못했고, 여운형은 한민당 일색인 것에 항의하며 10월 14일 사임하고 말아 한민당이 모두 장악한 꼴이 되었다. 미군정은 1945년 12월 한국인의 역할을 늘리기 위해 미국인과 한국인의 양국장제를 시행하고, 1946년 가을부터는 각부서 책임자를 한국인으로 임명하고 미군은 자문역으로 물러앉음으로써 한국인화를 가속화했다. 또한 1947년 2월 민정장관으로 안재홍이 취임하고 같은 해 5월 17일 군정청을 남조선 과도정부로 개칭함으로써 군정의 한국인화 정책이 결실을 맺었다.(주7)
그러나 이처럼 외형적으로 한국인을 주요자리에 앉혔다고 해서 군정청(남조선 과도정부)을 한국인의 자주적인 기관으로 인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구개편은 형식적인 차원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한국인의 대표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미군정 기관에서 일본인은 점차 배제되었지만 일제 시기 일본인들 아래서 협력했던 친일파들이 주요 위치를 차지하면서 친일파들이 친미파로 변신하는 형태만 바뀌었을 뿐 외세의 앞잡이 노릇을 한 인간들이 권력기관을 차지했다는 점에서 내용은 거의 유사했다. 미군정의 정책자문 역할이 점차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바뀌었지만, 처음 일본인들이 친일파를 천거했고, 친일파들이 다시 친일파를 천거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군정에서 한국인 통역의 역할이 막강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미국이나 유럽 유학 경험이 있는 이들이었다. 이런 사실은 미군정당국도 인정했다. 하지의 정치고문이었던 랭던(William R. Langdon)은 국무장관 앞으로 보낸 1945년 11월 26일자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군정에서 대중적인 좌익인사들을 배제시키면서 부호들을 끌어들인 점에 대해서는, 사실 초기에 우리가 지나치리만큼 부호와 보수적인 인사들을 많이 선발했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면부지의 민중 가운데서 누가 누군지를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현실적인 목적 때문에 우리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을 임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사실 영어란 것이 한국인들 사이에선 사치스러운 것이었을 만큼 이들 인사들과 동료들은 자연히 돈 많은 사람들 중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태가 발생했던 것입니다.”(주8)
그런데 미군정이 영어를 아는 부자출신들을 기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우리가 인정하더라도 그 ‘통역정치’의 폐해가 너무 심각했다는 점을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45년 11월 8일자로 관방정보과장보로 발령받은 이묘묵의 경우이다. 미군은 시러큐스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코리아타임즈 창간 기자로 활동했으며 연희전문학교에서 영어와 역사를 가르쳤던 이묘묵에 대해 단순히 영어를 하는 수준을 넘어 일정한 자격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보고 신뢰하여 하지의 통역 겸 고문역을 맡겼는데, 국내정치에 대한 판단에서도 그에 대한 평가에 크게 의존하였다. 그런데 이묘묵이 하지를 만나자마자 ‘여운형이 친일파’라고 비난하는 내용을 담은 장장 8쪽에 걸친 보고서를 제출하며 음해 활동을 하였다. 조선주둔 일본군과의 무선 통신을 통해 받은 나쁜 인상도 있었던 하지는 여운형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는 순간부터 그는 미군의 안전을 위협하는 ‘음험한’ 공산주의자 내지는 ‘악질적인’ 친일파로 인식되었던 것이다.(주9)
하지는 이묘묵의 이런 보고서를 바탕으로 여운형에 대해 아주 나쁜 판단을 하고 있었으나 여운형이 이끄는 인민공화국이 남한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이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가져야 했다. 10월 5일에야 여운형을 만난 하지 중장의 첫 질문은 “왜놈과 무슨 관련이 있지?”였다. 여운형이 ‘아무 관련 없다’고 대답하자 “왜놈으로부터 돈을 얼마나 받았지?”라고 물었다. 남한 점령군사령관 하지를 비롯하여 미군정 지휘부는 이묘묵 등이 여운형을 친일파, 일제의 앞잡이, 공산주의자, 일본인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공금을 횡령한 자 등으로 모략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1946년 12월 중앙청에서 열린 남조선과도입법의원 개원식에서 연설하는 존 하지 중장. 하지 중장의 왼쪽은 하지의 통역 겸 정치고문인 이묘묵이고, 뒤쪽에 의장 김규식의 모습이 조금 보인다. 앉은 사람은 미소공동위원회 미국 대표인 브라운 소장(왼쪽)과 아처 러치 군정장관을 대신해 참석한 찰스 헬믹 준장이다. 앞쪽은 전규홍 사무총장이다.(주10)(사진=국사편찬위원회/ 한겨레, 2019.7.20.)
미군이 38선 이남을 점령할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조선총독부는 소련군이 한반도 전체를 점령할 것으로 보고 공산당과도 통할 수 있는 여운형과의 협상을 통해 일본인의 안전을 확보하려 하였다. 총독부의 요청에 여운형은 정치범과 경제범 석방, 식량 확보, 치안 활동에 대한 간섭 불허 등 5개 요구요건을 내걸고 이를 받아들였고, 이에 총독부는 여운형의 활동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재정지원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묘묵은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하지에게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여운형과 건국준비위원회에 대해 ‘일제의 앞잡이, 친일파, 민족반역자, 공금횡령자’ 등으로 중상모략과 악선전을 했던 것이다. 이묘묵은 1945년 9월 10일 음식점 명월관에서 미군 장교와 미국 언론인들을 초청한 연회 자리에서 “건준지도부에 대해 공산주의자라고 왜곡”하고 “해방 후 남한 정세를 왜곡해 브리핑”하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주11)
하지의 두 번째 물음에 또 다시 여운형이 “그런 적 없다”고 대답하고 자리를 뜨려 하자 하지는 “군정청 고문이 되어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여운형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미군정 고문으로 임명된 11명 중 조만식은 평양에 있어서 올 수 없었고, 나머지 10명 중 여운형을 제외한 김성수, 송진우 등 9명은 하나로 움직여 9대 1의 구도가 형성된 상황에서 여운형은 의미가 없다고 보고 10월 14일 군정 고문을 사임하고 말았다.(주12)
하지의 통역 겸 정치고문이 된 이묘묵이 1945년 9월 10일 미군장교와 미국 언론인들에게 남한 정세를 왜곡하고 건준의 여운형 등을 비방하는 내용의 8장짜리 보고서 중 마지막 부분. 마지막에 이묘묵(Myo-Mook Lee)의 이름이 보인다. 이묘묵의 이글 첫 페이지 상단에는 ‘연희전문학교’라는 머리말이 타자되어 있다. 이 보고서의 절반가량은 일본 패망 이후 조선이 당면한 문제들, 법과 질서의 유지, 식량과 연료 확보, 일본인 귀환과 그들의 조선내 재산의 처리, 통화량 증발과 인플레, 재일조선인 귀환 등 일제의 패망에 따른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다루었으나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내용은 ‘건준’에 대한 왜곡이었다.(주13)(사진=정용욱/ 한겨레, 2019.7.20.)
미군정의 성립과 국가구조
미군정의 남한통치는 우선 미군이 남한 전지역에 대한 군사적 점령을 완료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미 전술군(전투와 작전을 위한 군의 단위부대)의 38선 이남 지역의 점령은 9월 8일 인천에 상륙한 뒤 서울·경기 일원에서 시작해 11월 10일 제주도를 점령하기까지 단계적으로 전개되었다.
제1단계는 9월 12일부터 23일까지 사이에 서울 주변 50마일 둘레의 개성·춘천·수원 등에 대한 점령을 완료하였다. 제7사단의 3개 연대와 24군단지원단(인천지역)이 중심을 이루었다. 제2단계는 경남북지역의 점령이었다. 4개 연대, 727명의 장교, 1만2,939명의 사병으로 구성된 40사단이 9월 22일 인천으로 들어와서 10월 15일까지 경남북지역의 점령을 완료했다. 이 시기 7사단의 점령지역도 확대되어 10월 10일까지 경기 전지역과 강원 전지역이 작전지역에 포함되었다. 제3단계는 제96사단 대신 들어온 제6사단 1만3,584명이 10월 25일까지 전남북 지역의 점령을 완료하였다. 제6사단 20보병연대가 11월 10일 최종적으로 제주를 점령함으로써 미전술군의 남한 배치는 완료되었다. 미군의 군사적 점령은 시, 도, 군, 읍, 면의 순으로 확대되었다. 서울과 부산, 전주에 각각 사단사령부를 두었고, 주요도시에는 연대본부를 두고 예하 각 대대가 수개 군의 관할지역을 담당하면서 관할지역 내의 시, 읍에 분견대를 두었다.(주14)
미전술군은 남한지역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각 지방에 조직되어 있던 인민위원회, 치안대 등 민중정권기관과 충돌, 대립하였다. 8.15 직후 중앙의 건국준비위원회, 인민공화국 등이 조직되는 것과 함께 각 지역에서 그 실정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자주적인 인민정권기관들이 건설되어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전술군은 처음 주둔과정에서 일정기간 이들 민중자치기관과 유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사실상 이중권력 상태를 형성했다. 그러나 1945년 말경에는 미군정에 우호적인 지방권력은 잔존하여 개편되었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는 장갑차까지 동원한 미군의 물리력에 의해 진압, 제압되었다.
1946년 1월 14일 하지 사령관은 각 지역의 군정부대들에 대한 통제권을 전술지휘관으로부터 분리하여 군정사령관으로 이관하였다. 그동안 전술군에 의한 작전군정이 각 지역을 통제하던 것을 정치훈련을 받은 민사반 혹은 군정부대로 구성된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주한미군정’. USAMGIK: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으로 전환한 것이다. 군정청의 최고 책임자인 군정장관은 처음 아놀드 소장이었으나 1946년 1월 4일 러치 소장으로 교체되었다.
미군의 한반도 남단 점령은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고 총독부로부터 항복을 받은 다음, 이를 대체할 미군정 국가권력을 수립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미군정 국가권력은 남한에 미국에 우호적인 정치세력을 형성, 육성하여 소련과의 협의를 통해 한반도 전역에 세워질 임시정부 또는 한국인의 정부가 미국에 적대적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 남단에서 좌익세력의 발호를 단호히 제어,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물리력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국가권력과 이를 뒷받침할 국가기구들이 필요했다. 미군정은 간단히 말해 남한 지역에 소련과 공산세력의 팽창, 발호를 제어할 수 있는 강력한 반공체제가 되어야 했다. 이를 위해 미군정은 전술군의 강력한 물리적 지원을 바탕으로 억압적인 국가기구들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미군정이 남한에 대한 통치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행정체계를 정비하고 행정 관료기구를 구축해야 했다. 미군정은 일본의 통치기구였던 총독부 구조를 최대한 활용하고 필요한 부분에서 손질하고 재편하는 방식으로 행정관료 기구를 구축하였다.
남한에서 미군 점령군의 효력이 발생한 것은 1945년 9월 조선총독이 미군 태평양 방면 총사령관 맥아더 대장의 대리인인 하지 중장에게 항복한 그 시각부터 시작되었다. 맥아더는 이날자로 ‘조선 인민에게 고함’이라는 포고 제1호, 제2호, 제3호를 각각 발표했는데 독립국가의 헌법에 준하는 위상을 갖고 있었다. 맥아더 사령관 포고 제1호는 38도 이남의 모든 통치권과 행정권이 맥아더 사령부의 군정 아래서 시행된다고 밝혔으며, 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어떤 조직도 주권을 행사할 수 없고 미군사령부만이 배타적이고 유일한 주권의 주체라고 선언했다.(주15)
1945년 9월 12일 하지 사령관은 아베 일본 총독을 해임하고 아놀드 군정장관을 임명했으며, 9월 17일 미군사령부는 총독부 기존 기구를 활용하여 8개 국장(총무, 경무, 재무, 농림, 재무, 학무, 식산, 사정)에 미군 장교들을 임명했다. 미군정은 10월 15일 총독부 기구를 바탕으로 조직을 개편하였다.(<표2> 참조)
이후 미군정은 국가기구 개편을 통해 통치체제를 정비해갔다. 그 과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미군정의 국가기구 개편(주요 내용)
- 1945.8.17. 총독부기구 존속시켜 8개 국장 임명
- 1945.10.5. 군정장관의 고문 한국인 11명 임명(위원장 김성수)
- 1945.12.5. 군사영어학교 설립
- 1945.12. 한국인과 미국인 양국장제
- 1946.2.14.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 하지 사령관의 자문기구로 출범
- 1946.5.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좌우합작 지원(여운형의 중간파 분리 위해)
- 1946.12.19. ‘남조선과도입법의원’ 개원(의장 김규식)
- 1947.2.10. 과도입법의원 안재홍을 민정장관에 임명
- 1947.4.5. 중앙정부를 13부 6처로 확대 개편
- 1947.5.17. 각 부처의 장을 한국인으로 임명, 미국인 고문으로 후퇴. 미군정청, 한국인으로 운영되는 ‘남조선과도정부’로 개칭
- 1947.9.17. 한국문제의 유엔 이관
- 1945.8.15. 대한민국정부 수립(미군정 폐지)(주16)
1945년 말에는 군대를 창설하기 위해 기존의 군정청 기구에 군무국을 설치하고 기존의 경무국과 통합하여 국방사령부를 발족시켜 국가 기구의 단일 통제체제를 더욱 강화했다. 또한 1945년 12월부터는 한국인화 정책에 따라 군정청 기구에 미군 장교 1명과 한국인 관료 1명을 임명한 양국장제를 시행하였다.(<표3-1>, <표3-2> 참조)
<표2> 미군정청 기구 조직표(1945년 10월 15일 현재)
주한미군사령부, 『주한미군사 3』(HUSAFIK)(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표3-1> 미군정청 중앙 조직(1945년 12월 31일 현재)
주한미군사령부, 『주한미군사 3』(HUSAFIK)(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표3-2>미군정의 국가구조(1945년 말 현재)
주한미군사령부, 『주한미군사 3』(HUSAFIK)(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지방행정조직의 경우 1945년 말 대부분의 지역에서 틀을 갖추었는데, 도 군정관 아래 비서처가 조직되고, 지방행정 관할기구로 6개국이 두어졌다.(<표3> 참조)
<표3> 미군정청 지방 행정 조직(1945년 12월 1일 현재)
안진, 『미군정기 억압기구 연구』, 새길, 1996, 103쪽
전국적으로 군정 행정통치기구가 조직, 정비되면서 1946년 3월 29일 중앙조직의 경우 국(局)을 부(部)로 승격했으며, 1947년 7월 남조선 과도정부 수립과 함께 13주 6처의 기구를 갖추게 되었다.(아래 <표4> 참조)
<표4> 미군정의 중앙 조직(1947년 7월 현재)
안진, 『미군정기 억압기구 연구』, 새길, 1996, 104쪽
입법, 사법, 행정 각 기관을 망라하여 남조선 과도정부가 성립되고 민정장관 안재홍을 비롯하여 각 부장 및 입법, 사법 기관의 관리들이 모두 한국인으로 교체되었으나 군정장관의 거부권 행사, 각 부처 내의 미국인 고문의 부결권 행사와 간섭 등으로 사실상 자율적인 행정 통제 권한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한편, 미군정은 1946년 6월 29일 한국 민족의 대표기관으로 입법기관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하였고, 군정 법령을 제정한 뒤 1946년 말에는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설립을 공포하였다. 그러나 입법의원은 군정장관의 해산권 및 새 의원 임명권, 선거 요구 권한 등으로 한국인의 대표기구가 아닌 미군정 통치의 보조기관에 불과했다. 입법의원은 관선의원 45명, 민선의원 45명 등 90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관선의원의 경우 군정장관이 임명권을 갖고 있었고, 민선의원 선거 또한 10월 항쟁 와중에 좌익 정치지도자들이 모두 검거된 상황에서 이루어져 좌익의 참여가 조직적으로 배제되었다. 인민위원회 조직이 와해되지 않았던 제주도에서만 인민위원회 출신이 선출되었고, 대부분 한민당과 독촉계 등 극우인사들이 당선되었다. 한국민주당 12명, 독촉국민회 17명, 무소속 13명, 한독당 4명, 기타 4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무소속은 이승만, 신익희, 이갑성, 이종근 등 한민당과 친이승만계열의 단정지지자, 극우인사들이었다.(주17)
이에 대해 1946년 11월 4일 좌우합작위원회 공동의장인 김규식은 선거 부정이 심하고 친일파가 주류인 민선의원에 대해 재선거를 요청했으나 미소공위 미국측 대표인 브라운 소장은 이를 거절했다. 관선의원의 경우는 민선이 끝난 후 당시 좌우합작위원회의 심사위원이었던 김규식, 원세훈, 최동오, 송남헌 등이 추천한 자들 중에서 하지 중장이 최종 결정했는데, 합작위원 6명, 우익 12명, 중간파 12명, 기타 15명으로 결정되었다. 좌익의 통일전선체인 ‘민전’(민주주의민족전선)은 단정수립을 준비하는 입법기구 수립에 반대하여 선거에 불참했으며 관선의원에 지명된 민전 위원을 제명하겠다고 했다.(주18) 이렇게 해서 미군정 국가 행정기구뿐만 아니라 입법의원조차도 친일파, 한민당계, 친이승만계 등 친미세력 일변도로 구성되었다.
한민당계·친일파의 요직 장악과 친일관료의 재기용
미군정은 통치기구를 지극히 중앙집권화된 형태로 재편했으며, 그 요직에 일제시기의 친일관료들과 한민당 계열의 인사로 충원했다. 관료 충원에 대한 군정청의 원칙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영어구사력이 있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미국의 자유주의 이념을 옹호하는 친미적 성향의 인물이어야 했다. 한국정부 수립 직전까지 행정 분야에서 영어에 유창한 인물이 400여명 가량 있었는데 이들은 대개 지주나 부농 출신으로 미국 유학 경험이 있는 자들이었다. 시라큐스 대학 출신의 이묘묵, 콜롬비아 대학 출신의 오천석, 위스콘신 출신의 이훈구, 임영신 등과 같은친미인사들은 대부분 한민당 지지자들로서 인공 등을 극도로 폄하하는 극우인사들이었다. 이들 ‘통역관’ 출신들의 영향력이 컸던 탓에 에스가 스노우는 미군정을 “통역관 정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관료 충원에 한국인 통역관 못지 않게 영향을 미쳤던 인물들은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알았던 극소수의 미군정 요원들이었다. 개성에서 전도 사업을 했던 목사의 아들 윌리엄스(G. Z. Williams)는 한민당 간부들과 절친했고 미국에서 교제가 있었던 조병옥을 경무국장에 발탁한 것을 비롯해 관료 충원에서 큰 역할을 했다. 윌리엄스와 마찬가지로 선교사의 아들로 한국에서 출생한 윔즈(C. Weems) 또한 관료 충원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주19)
미군정의 관료 충원의 두 번째 원칙은 공산주의와 관계가 있는 한국인을 배제한다는 것이었다. 미군정은 공산주의자들은 비협조적이며 소련에 의해 조종되는 공산당의 노선에 집착하기 때문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이 같은 원칙 때문에 군정 관료 충원에서 조선공산당 계열의 인물들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원칙은 행정 관료뿐만 아니라 경찰, 군, 사법부에 대해서도 일관되었다. 결국 이렇게 되면서 군정청 관료기구에는 한민당계 인사들을 비롯하여 친일파 출신들이 대부분 진출하였다.(주20)
미군정은 1945년 말까지 군정 초기 3개월간의 기간 동안에 약 7만5천여 명의 한국인 관리들을 유임 또는 신규 임용하였는데, 공개 채용이 아니라 추천에 의한 임용으로 충원되었다. 이러한 임명 방식은 좌익세력을 배제하는데 효과적이었다. 미군정은 1946년 4월 20일 군정법령 제69호를 공포하여 중앙인사행정 기관인 인사행정처를 신설하고 공개시험에 입각해 성적 위주로 임용한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그러나 미군정 전기간을 통해 공경경쟁 시험은 한 번도 실시되지 않았다.(주21)
안진, 『미군정기 억압기구 연구』, 새길, 1996, 112쪽
이렇게 해서 행정, 입법, 사법의 핵심 요직을 한민당계 인사들이 대부분 장악하였다. 1945년 10월 5일 한국인 군정 자문위원 11명을 임명했는데, 독립운동을 한 인사는 여운형과 조만식밖에 없었다. 김성수, 송진우, 김용무, 강병순, 김동원, 이용설, 오영수, 윤기익 등 한민당계가 대부분인 이 고문회의는 초기 미군정청 관료 엘리트 충원에서 큰 영향을 미쳤고, 한민당원들이 군정청 요직에 진출하는 데 교량 역할을 했다. 대법원장 김용무, 경무부장 조병옥, 수도경찰청장 장택상, 문교부장 유억겸, 지방법원장 윤원상·강병순·윤명용 등이 모두 한민당원들이었다. 또한 김준연, 김도연, 홍성하 등 한민당의 핵심인사들이 5명으로 구성된 중앙노동조정위원회에, 한민당 선전부원이었던 백낙준은 경성대학(서울대 전신) 총장에 임명되었고, 중앙방송국 편성부장에 임명된 임병현, 한국상품공사 이사에 임명된 이동제, 서울시 행정처장에 임명된 이운 등도 한민당계였다. 그 외에도 대법관 김찬영, 노진설, 사법부장 김병로, 법제처장 권승렬, 형정국장 최병석, 수사국장 구자관, 경무부 공안국장 함대훈, 제주감찰청장 김대봉, 제5관구경찰부청장 강수창, 공안과장 이만종, 보안과장 박찬현, 정보과장 김헌, 여자경찰과장 황현숙, 노동부장 이훈구, 농무부장 윤보선, 보건후생부장 이용설, 체신부 총무국장 박종만, 외무처장 문장욱, 물가행정처장 최태욱, 인사행정처장 정일형, 기획처 통계국장 이순택 등 중앙조직의 핵심요직에 한민당계열 인사들이 기용되었다. 한민당 세력은 군정청의 중앙기구뿐만 아니라 지방의 도·군 행정기구에서도 핵심 요직을 장악했다.(주22)
미군정 행정 관료의 충원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총독부 친일관료들이 대거 진출했다는 사실이다. 한민당계의 친미적 인사들이 요직에 진출했지만 이들은 수적으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중하위 수준의 직위에는 친일관료들을 대거 기용하였다. 미군정은 포고령 1호를 통해 구총독부 관리들의 유임을 명령했고, 이에 해방 직후 친일파로 비난받아 도피, 은둔했던 중앙과 지방의 경찰·행정관료들이 재차 복귀하였으며, 대부분 하급관리였던 이들은 일본인 관료들이 해임됨에 따라 중간급 관리자로 상승할 수 있었다. 한편, 북한에서는 1945년 가을 친일파에 대한 처단이 조기에 이뤄짐에 따라 친일관료들이 대거 월남함으로써 미군정이 활용할 수 있는 총독부 출신 친일관료의 가용자원은 2배로 늘어났고, 이들은 미군정 기구의 비대화로 대부분 승진, 흡수되었다.(주23)
그런데 더욱 중요한 사실은 친일관료들이 대부분 한민당 인사이거나 한민당과 연결된 인물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모스크바 협정을 둘러싸고 신탁통치 분쟁이 벌어지면서 ‘반공애국주의’를 구실로 과거의 원죄에서 벗어나 이승만의 남한 단정노선에 기대어 국가권력을 장악, 운영하였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친일경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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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최영희, 『격동의 해방3년』,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1996, 26쪽
2) 이완범, “전후 세계질서와 미국의 대한 정책”, 『한국사17-분단구조의 정착(1)』, 한길사, 1994, 157〜158쪽
박순철 남부지검장이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2020.10.19ⓒ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라임자산운용 사태에 '야권 정치인'이 연루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당시 수사를 지휘하던 서울남부지검장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직접 보고한 것을 두고 의혹을 덮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순철 현 서울남부지검장은 라임 사태에 대한 보고와 관련해 "부임할 때 확인해보니 지난 5월에 전임 검사장이 윤석열 검찰총장과 면담하면서 보고한 걸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윤 총장에게 야당 정치인의 라임 관련 의혹을 보고한 전임자는 라임 사태 수사의 총지휘를 맡았던 송삼현 전 남부지검장이다. 송 전 지검장은 지난 7월 사임했고 이후 현재 남부지검장인 박 지검장이 8월 부임했다.
당시 주무부서인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는 라임 사태와 관련된 야당 정치인에 대한 비위 정보는 보고받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관련 의혹은 정식으로 보고된 것과는 다르게 윤 총장에게만 보고했던 것이다.
이를 두고 여당 의원들은 야당 정치인 연루 의혹을 숨기기 위해 '직보'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검장이 야당 정치인과 관련된 의혹을 총장에 구두로 보고하고 이걸 반부패부장이 모르고 있다면 이상하다"면서 "통상적인 절차에서 벗어난 건데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백혜련 의원도 의도적으로 반부패부를 '패싱'했다고 비판했다.
백 의원은 "야당 인사와 관련된 수사는 시시각각 보도되고 구체적인 액수 등이 보도되는데 야당 정치인 의혹은 단 한번 보도도 안 됐다"면서 "그러나 야당 유력인사와 관련된 의혹은 총장에 직보됐고 반부패부는 패싱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무부에도 (관련 내용이) 전혀 보고가 안 됐고, 기본 보고체계도 무시됐다"이라며 "이 사건은 윤 총장의 자세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여당,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 총장의) 전선이 형성된 상황인데 의도가 의심스러울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윤 총장이 라임 사건에 대한 선택적 수사를 진행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도 윤 총장에 관련 의혹이 직보된 상황에 대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라고 동의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2020.10.19ⓒ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김용민 민주당 의원 역시 "청와대 정무수석 5천만원 의혹이랑 야권 유력 정치인 수억원대 의혹을 놓고 보면 금액적으로도 수억원이 더 큰 것 아닌가"라며 "어째서 (정상보고에서) 그 내용이 누락됐나. 덮으려고 한 거 아니냐"라고 따졌다.
라임 사태 수사팀이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을 66회나 소환해 조사한 데 대한 지적도 나왔다.
앞서 김 전 회장은 옥중편지를 통해 '보석으로 재판을 받게 해주겠다'다는 회유·협박을 검찰 출신 변호사로부터 받고 수사팀으로부터도 여러번 조사받으며 원하는 진술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김 전 회장의 수사 과정에서 변호사가 참여했기 때문에 투명하게 진행됐다"는 박순철 남부지검장의 말에 "김 전 회장을 6개월 동안 66회 불렀는데 전부 변호사가 출석했을까 싶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의원은 "지검장 말대로면 피의자 때는 변호인이 입회했을 것 같지만, 피고인이 아닌 참고인 조사나 임의 조사에는 입회 안 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관련 내용을 확인해 달라고 남부지검에 주문했다.
24주동안 66회, 일주일에 최대 4번이나 불러 조사한 것을 두고 인권침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종민 의원은 "아직도 수사가 이렇게 되는지 충격이다. 예전에 독재정권에 공안사건 조작을 했다는 옛날 이야기는 있지만, 정치사건이 이렇게 수사된다는 데 충격받았다"고 지적했다.
백혜련 의원도 "해당 수사가 신속하고 공정하게 끝난 다음에는 수사방식 전체를 돌아봐야 한다"면서 "검사들 수사 방식이 이렇게 안바뀔 수 있나 예전에 지적 당했던 것들이 하나도 안 바뀌었다"고 질타했다.
이와 관련, 박 남부지검장은 김 전 회장에 대한 66회 조사 동안 작성된 신문조서를 제출해달라는 여당 의원들의 자료 요청에 "조사 중인 사건"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9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영구적으로 종식되어야 한다.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언급한 이후 김종인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0월 12일, "종전선언은 대한민국의 종말을 불러올 수 있는 행위로서, 국가 안보와 국민 안위를 저버리는 반헌법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김종인 위원장이 종전선언을 비판하는 배경과 이론적 근거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혹시라도 비핵화가 안 된 상태에서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이 철수하지 않을까, 그리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이는 오늘날의 동북아 국제정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비현실적인 전망이요, 기우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16일 폼페이오 장관과 면담 후 "종전선언이 비핵화 과정에서 따로 놀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고, 문제는 종전선언이 비핵화 과정에서 선후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비핵화와의 결합 정도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북-미의 뜻이 맞아 종전선언을 하더라도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 나가는 과정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미국은 당장 평화협정 협상을 중단시킬 것이다. 종전선언은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이 되고. 이를 통해 미국이 북한의 체제안정을 보장해주면, 이에 대한 대가로 비핵화를 성사시키는 내용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순간 비핵화가 마무리되고. 북한이 그토록 갈망하는 북미수교도 마무리되는 것이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이 종전하고 불가침만 보장해준다면 우리가 왜 핵을 갖고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겠습니까"라고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기와 평화협정을 바꾸고 싶다는 속내를 문 대통령에게 드러냈다. 김정은 위원장의 말 속에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비핵화의 상관관계가 압축적으로 설명되어 있는 셈이다.
2018년 6월 12일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의 말의 진정성을 인정했기에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1항)',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2항)', 한반도 비핵화(3항)의 공동선언에 합의한 것이다. 북미수교-평화협정-비핵화가 상호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공동선언은 미국의 정권이 바뀌어도 북핵문제 해결의 이정표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한편 2018년 9월 12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EEF)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당사자인 남-북-미가 결자해지해야 한다"며 종전선언에 불참할 뜻을 시사했다. 그동안 중국이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당사국으로서 종전선언 과정에 적극적인 참여를 주장해왔던 입장과는 사뭇 변화된 모습이었다. 시 주석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시작점으로 추진되고 있는 한국전쟁 종전선언의 주체를 남-북-미로 제한했다.
그러나 종전선언 이후 전개될 평화협정 협상 단계에서는 개입하겠다는 취지도 분명히 했다. 시 주석은 "중국과 러시아는 합의된 공동의 로드맵이 있다. 한 축으로는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면서 다른 한 축으로는 한반도 평화 보장 기제를 건립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즉 비핵화 속도를 높이기 위해 중국이 종전선언에 참여하지 않을 테니, 미국도 북한 체제를 보장하는데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이고, 한반도 정세 안정을 위해 중국은 북한이 바라는 종전선언을 돕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중국의 시 주석도 종전선언과 비핵화의 '선후관계와 결합정도'를 이해하고 있고, 남-북-미 당사국 3자가 종전선언을 하는 것을 돕겠다고 나서는데, 우리 정치권은 종전선언을 정쟁의 이슈로만 삼고 있다.
혹시라도 김종인 위원장이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북미수교가 되면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상황이 올까 걱정해서, 그 입구에 해당하는 종전선언이 '대한민국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 걱정한다면 이것 또한 기우다.
종전선언으로 시작해서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비핵화가 되고 북미수교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주한미군은 철수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그동안 북한이 주한미군 주둔을 조건으로 북미수교를 제안했었기 때문이다. 둘째, 현재의 동북아 국제정치 구조상 앞으로 상당 기간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1992년 1월, 김일성 주석은 김용순 노동당 국제비서를 미국에 보내 미 국무부 차관에게 "미국이 수교만 해주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 통일이 된 뒤에도 미군은 조선반도(한반도)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울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에게 "미국이 수교만 해준다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 오히려 탈냉전 후에도 한반도의 미군 주둔이 동북아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해나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말했던 북한이 평화협정 협상 과정에서 미군 철수를 요구한다면, 북미수교도 물 건너가고 평화협정도 그 날로 중단될 것이다. 나아가 미국의 불가침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북한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미군철수를 가져오고 한반도 전쟁 재발로 이어진다는 공포는 지나친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주한미군이 철수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미중관계 때문이다. 빠른 경재성장의 결과로 집중적으로 군비투자를 해온 중국은 2차대전 이후 동북아에서 누려온 미국의 헤게모니(Hegemony)를 넘보기 시작했다. 오바마 정부 이래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으려는 미국의 노력은 트럼프 정부에 이르러 더욱 구체화‧노골화되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 포위를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에 기초한 '쿼드 플러스(Quad+) 구상으로 중국 포위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2차대전 이후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절대적인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 것은 미군의 한반도 주둔과 일본 주둔이다. 이제는 중국 때문에라도 미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못할 것이다. 주한미군이 바로 중국의 코앞에서 중국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있기 때문에 서태평양을 비롯한 태평양 전체가 아직도 미국의 바다로 남아 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미중관계를 '신냉전의 언덕을 올라가고 있다'고 할 정도로 미중관계가 복잡해지는 마당에 종전선언으로 주한미군이 철수한다? 걱정 안 해도 될 일이다.
여야가 따로 없이, 온 국민이 나서서 종전선언을 지지해도 속내가 복잡한 미국을 설득하기 모자랄 판에 종전선언을 정쟁의 이슈로 삼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북미간 협상이 교착된 상황에서 남북간 관계를 주도적‧자주적으로 풀어가기 위한 전략적 초석이 남-북-미 종전선언 제안이기 때문이다. 이쯤 설명하면 김종인 국민의 힘 비대위원장도 '종전선언은 한국종말'론을 거둬들이지 않을까?
국감 땐 부인하던 삼성서울병원
고영인 의원실로 두 차례 찾아가
수의계약 통해 용역 몰아주면서
서울시 승인받지 않은 사실 인정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모습.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삼성 계열사에 1400억원대의 외주용역비를 몰아줬다는 의혹에 대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를 부인했던 삼성서울병원이, 국감 이후 복지위 소속 의원실을 두차례나 찾아 관련 사실을 인정하며 “법을 잘 몰랐다. 시정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삼성서울병원이 해당 의원실에 낸 추가 자료를 보니, 지난해 삼성서울병원은 용역비(1412억원)의 91%(1281억원)를 수의계약으로 계열사에 몰아주고 있었다.
18일 <한겨레>가 더불어민주당 고영인(안산 단원갑) 의원실에서 받은 녹취록을 보면, 삼성서울병원 행정부원장 등 관계자 5명은 지난 13일과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있는 고 의원실을 방문했다. 이들 자리는 지난 8일 국회 복지위 국감에서 불거진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삼성서울병원이 “해명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13일 모임에서 고 의원실 관계자가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운영하는 삼성서울병원은 사회복지법인이라 지방계약법의 적용을 받는다”며 “지방계약법상 2000만원 이상 수의계약을 할 경우 관할관청인 서울시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하자, 삼성서울병원 이아무개 행정부원장은 “이 법은 몰랐는데요, 잘…”이라고 답했다. 이에 고 의원실 관계자가 다시 “수의계약을 할 수는 있는데, 승인받은 적 없지 않냐”고 묻자 전아무개 지원팀장이 “네”라고 답했다. 관할청의 승인 없이 수의계약으로 계열사에 용역비를 집행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16일 자리에서도 지방계약법 위반 논란이 불거진 뒤 고 의원실 관계자가 “법률 검토하는 변호사님(법무팀장)이 계신데 왜 제대로 안 하냐”고 하자 최아무개 법무팀장은 “이번에 기회가 돼서 서울시에도 확인을 해보고 말씀해주신 부분은 다 시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7일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안산 단원갑)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고영인 의원실 제공
앞서 <한겨레>는 삼성서울병원이 2018~2019년 삼성생명보험과 식음 브랜드인 삼성웰스토리, 에스원, 삼성에스디에스 등 24개 계열사에 모두 2666억원을 용역비로 지출했다고 보도(8일치 9면)한 바 있다. 실제 삼성서울병원이 고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9년 총 1412억원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는 모두 사실이었다. 앞서 국감 증인으로 나온 권오정 삼성서울병원장은 “다른 업체와 비교(공개 입찰)해서 거래한다”고 말한 바 있다. 과도하게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해 순이익이 적자를 기록하면서, 삼성서울병원은 법인세를 최근 4년 동안 한푼도 내지 않았다.
고 의원은 “공익법인이라는 삼성생명공익재단과 비영리 삼성서울병원이 계열사 배불리기 구조로 활용되는 것이 확인된 이상, 감사원 감사,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거래 조사, 국세청 세무조사는 물론이고 검찰 수사까지 필요한 지경이다. 의원실에서 며칠 만에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을 복지부 등 감독당국이 그동안 적발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5개월간의 도피행각 끝에 경찰에 붙잡힌 라임자산운용 환매중단 사태의 주범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지난 4월 24일 오전 경기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으로 이송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2020.04.24.ⓒ뉴시스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건(라임 사건)이 최근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정·관계 로비 의혹 때문이다.
특히 라임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여권뿐만 아니라 야권 인사에 대한 로비를 벌였다는 주장을 하면서 파장이 커지는 양상이다.
‘라임 사건’ 무마하려 정·권계 로비 시작, 청와대 행정관 등 여권 인사들 연루
당초 라임은 사모펀드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던 곳이다. 그러다가 라임이 속칭 좀비기업(한계기업)의 전환사채(CB) 등을 편법 거래하면서 부정하게 수익률을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쉽게 말해 투자자들에게 안내한 대로 투자를 하다가 부실한 부분이 발생하자 이를 감추기 위해 대형 증권사와 공모해 투자자를 속였다는 것이다.
의혹이 커지자 지난해 7월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고, 이에 불안을 느낀 투자자들이 라임에 대규모 환매를 요청했다. 하지만 라임은 이를 거부하고 그해 10월 환매를 중단했다. 그 규모만 1조6천억여 원에 달한다.
이처럼 환매 중단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금융감독원이 조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금감원의 조사를 무마하기 위한 정·관계 로비가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 중심에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있다. 김봉현 전 회장은 라임의 ‘전주(錢主, 사업에 밑천을 대어 주는 사람)’로 실질적인 작전세력의 핵심으로 꼽힌다.
라임은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600억원을 투자했는데 김봉현 전 회장이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과 결탁해 라임자산운용의 투자금을 스타모빌리티를 이용해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봉현 전 회장은 라임자산운용의 투자금 중 516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이종필 전 부사장은 라임자산운용이 투자한 이후 스타모빌리티의 지분을 보유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5개월간의 도피 행각을 벌이다 올해 4월 경찰에 붙잡혀 구속된 상태로 재판에 남겨졌다.
여기서 김봉현 전 회장이 인맥을 이용해 라임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사건의 여파는 정치권으로 번지게 됐다.
실제 검찰의 수사 결과 김봉현 전 회장이 금융감독원 팀장 출신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인 김모 씨에게 금품을 주고 라임과 관련된 금감원의 내부 문서를 전달받은 정황이 확인됐다.
김봉현 전 회장과 같은 고향 친구로 알려진 김 씨는 뇌물 5000만원을 받고 금감원의 라임 조사 계획서를 빼돌린 혐의로 최근 1심 재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라임의 전주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과 정치권을 연결해 준것으로 의혹을 받는 이강세 스타모빌리티 대표가 영장실질 심사를 받기 위해 지난 6월 19일 서울 남부지법으로 들어오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2020.06.19ⓒ김철수 기자
‘정치권 연결 다리’ 이강세 통한 로비 정황
김봉현 전 회장을 정치권에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 사람으로는 이강세 스타모빌리티 대표이 지목된다. 김봉현 전 회장이 이강세 대표를 자기 회사로 영입한 것은 그가 기자 출신으로 광주 MBC 사장까지 지낸 만큼 정치권과의 관계를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기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이 대표의 소개로 옛 열린우리당 부대변인 출신 정치인 김모 씨와 만났고, 김씨를 통해 ‘원조 친노’로 꼽히는 이상호 더불어민주당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과도 접촉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중 이상호 위원장은 김봉현 전 회장에게 8000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과 국회 정무위 소속 김모 의원 역시 이 대표를 통해 김봉현 전 회장과 연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모두 김봉현 전 회장 측으로부터 로비 혹은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기동민 의원의 경우 검찰 소환 조사도 받았다. 다만 이들은 제기된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여기에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연루설까지 나오면서 파장은 더 확산됐다. 그 전까지는 하나의 사기 사건에 일부 정치권 인사들이 연루된 정도로만 알려졌는데 자칫하면 청와대 전체로 불똥이 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강기정 전 수석의 연루설은 김봉현 전 회장이 지난 8일 이강세 대표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직접 주장한 것이다. 참고로 이강세 대표는 올해 1월 김봉현 전 회장과 공모해 회사자금 192억원을 횡령하고 지난해 7월에는 금감원의 라임 조사 무마를 위한 청탁을 명목으로 김봉현 전 회장에게서 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김봉현 전 회장은 공판에서 “5만원짜리 현금으로 5000만원이 담긴 쇼핑백을 이강세 대표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강세 대표는 (당시 강기정 정무수석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고 했다”며 “금품이 잘 전달됐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기정 전 정무수석은 돈을 받은 적이 없다며 로비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당시 이강세 대표를 청와대 안에서 만난 적은 있지만 돈을 받은 적은 없고 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또 이강세 대표 역시 이를 부인하고 있는 상태로, 강기정 전 수석은 아직 검찰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 자료사진ⓒ뉴시스
김봉현의 또 다른 폭로, 분위기 반전되나
하지만 야당은 ‘권력형 비리’라며 의혹을 부풀리고 있는 상황이다. 비슷한 시기에 터진 또 다른 금융사기 사건인 옵티머스 사태와 맞물리면서 정국의 최대 이슈로 커지는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도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김봉현 전 회장의 또 다른 ‘폭로’가 여권이 궁지로 몰렸던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있다. 김봉현 전 회장이 지난 16일 옥중서신을 통해 검사장 출신 야당 정치인을 통해 로비를 하고 현직 검사를 대상으로 접대를 했다고 주장하면서다. 그는 그런데도 검찰이 여당 유력 인사에 대한 수사만 진행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했다.
이로 인해 불똥은 여권을 넘어 야권으로까지 튀고 있다. 공수가 순식간에 뒤바뀌어 이제는 여당이 로비를 받은 야당 정치인과 검사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해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야당 정치인의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법무부는 자체 조사 결과 검찰의 수사가 미비한 것을 확인했다며 별도 수사팀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18일 밝혔다. 특히 법무부는 “검찰총장이 라임 사건 수사검사의 선정에 직접 관여하고 철저한 수사를 수차 밝혔음에도, 구체적인 야권 정치인과 검사 비위 사실을 보고받고도 철저히 수사하도록 지휘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검은 곧바로 입장문을 내고 “검찰총장은 ‘라임 사건’ 수사 전반에 대하여 수차례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고 반박했다. 법무부와 대검 간 갈등으로 라임 사태가 번질 가능성이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김봉현 전 회장의 ‘입’이 정국에 그야말로 ‘화약고’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다만, 대형 사기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김봉현 전 회장의 말을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을지는 아직 물음표로 남아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는 검찰 수사 등을 통해 가려야 하는 부분이다.
일각에선 김봉현 전 회장이 자신의 혐의에 ‘물타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봉현 전 회장이 라임 사태의 몸통으로 몰려 중형 선고가 불가피해지자 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고자 새로운 의혹 제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것이다.
김봉현 전 회장은 옥중편지에서 자신이 라임 ‘전주’이거나 ‘몸통’이 절대 아니라며 “실제 라임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고 실제 몸통들은 현재 해외 도피 중이거나 국내 도주 중”이라고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다.
이와 관련, 강기정 전 수석은 지난 15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김봉현 전 회장을 “사기꾼”으로 규정하면서 “제가 알아보니까 과거에 무슨 사건에 연루돼서 이름도 바꾸고 얼굴도 바꾸고 이랬다더라. 참 복잡한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김봉현 전 회장이 평소 남에게 자신을 포함한 정치권 인사들을 아는 척하고 자신에게 돈을 줬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서 “제가 볼 때는 마치 질이 아주 나쁜 사기꾼 느낌이 든다. 야당에 내부 고발자, 소스 제공자처럼 돼 있는데, 이런 걸 노리면서 자기의 사기꾼 느낌을 희석하려는 게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야당도 김봉현 전 회장의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인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은 18일 성명서를 내고 ‘야당 정치인 로비’를 주장한 김봉현 전 회장의 옥중서신에 대해 “잘 짜여진 시나리오 냄새가 진동을 한다”며 역으로 여권과 검찰의 커넥션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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