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박근혜, 메르켈 & 좌파

박근혜 어록 : 

- “정부는 시장경제 작동 과정에서 문제가 될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공동체에서 소외된 경제적약자를 확실히 보듬어야 한다. 경제 발전의 최종 목표는 소외계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의 행복 공유에 맞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2009/5월 미국 스탠퍼드대 강연)

- “경제성장과 더불어 환경, 복지가 중요하다.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진정한 선진국가의 모습일 것”(2009/9월 미니홈피)

-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 경제성장을 위해 그토록 노력했지만, 경제성장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10/26)

- 유럽연합(EU)이 무한성장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역사발전을 주도할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이와 다르지 않다.” (10/31)

 

내가 모은 어록은 아니고 아래에 옮겨오는 경향의 한 시평에서 미리 발췌한 대목이다. 시평은 이러한 박근혜의 진화하는 모습들에 일단은 긍적적 박수를 보내고는 그러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몇가지 'MB표 주문'을 하는 목적에 있다. 여기서 옮기는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만약에 진화되고 있는 박근혜 어록의 내용들에 진정성이 있다면, 앞으로 진보진영이 차지할 땅은 점점 더 축소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물론 완벽좌파에게는 별로 무관한 일이겠지만, 진보라고 자처하는 민주당 류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 여기서 막 가동을 시작한 '정세균 표 신민주당'이 좀 더 중도로의 행보를 취할 경우 박근혜호와의 충돌 혹은 상쇄작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일견 이러한 양상으로의 정치지형 변화가 진짜좌파들에게 더 넓은 빈땅을 남겨줄 지도 모른다는 산술적 기대도 가능해 보이지만, 과연 실제로는 중도 쟁탈전에 함몰된 정치환경에 의하여 좌파가 완전히 정치적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도 동시에 고려해둘 필요가 있을 듯하다.

 

바야흐로 박근혜는 이렇게 약간은 변해간다. 이러한 흐름이 근본적인 신념과 가치관의 변화에 의한 것인지, MB정권과의 차별화 전략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국내외적 세력관계의 흐름을 고려컨데, 앞으로 박근혜가 선택할 수 있고 (차기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해야하고) 그럴 가능성이 짙은 방향은 위의 어록에 나온 지표들로부터 많이 멀지는 않을 듯한 느낌이 든다. 반공이데올로그들로 대변되는 그 집단 속에서 누가 박근혜의 사상적(생각적 정도가 더 맞겠다) 핵심 참모역을 맡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합리적이고 건강한 선택이 아닌가 싶다. 원래가 mb식 보수가 수월성과 경쟁을 중시하며 부자를 정당화하는 약육강식의 천연(날것 그대로의) 자본주의를 지반으로 한다면(그래서 좌우를 막론하고 찌들어지게 가난하던 자들이 -그들은 그것을 자랑으로 삼지만- 권력을 잡으면 자기보상심리에 의해서 더 위험해진다는 사실), 박근혜식 보수(박정희도 포함)는 자본주의적 성장과 반민주주의적 독재적 경향을 갖기는하지만 MB파들과는 달리 상식적 공평(평등이념까지는 아니겠고)과 정의로운 분배 정도는 어느정도 고려하는 '대놓고 친부자파'는 아닌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미국식 자본주의의 징후적 몰락이 어렵잖게 목도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제 우파 자본주의자들 속에서도 사회안전망을 통한 환경-복지개념이 등장하고(사르코지, 메르켈 등), 절대적 착취를 통한 부의 창출-독점은 자본주의 자체를 위해서도 덜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확장-공유된다면, 이제 좌파가 싸워야할 적은 더 두꺼운 방탄복으로 무장한 상태가 된다.

 

[세상 속으로]박근혜와 메르켈 / 경향 김민아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지난달 31일 부산을 찾았다. 많은 이야기를 했다. “세종시는 국회가 국민과 충청도민에게 한 약속이지 개인 약속이 아니다. 저의 개인적인 정치 신념으로 폄하해선 안 된다”고 했고, 자신을 만나 설득하겠다는 정운찬 총리를 향해선 “약속을 쉽게 뒤집겠다는 건 총리께서 정말 뭘 모르시는 것”이라고 직공했다. 대다수 언론이 이 발언에 주목했지만, 내 시선은 다른 데에 가 닿았다. 친 박근혜계 외곽단체인 ‘포럼 부산비전’ 창립 3주년 기념행사에서 한 축사다. “유럽연합(EU)이 무한성장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역사발전을 주도할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이와 다르지 않다.” 어디선가 들은 듯 친숙하다. 제러미 리프킨의 책 <유러피언 드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서거 후 공개된 유고에서, 이 책을 읽었다고 밝혔다. 리프킨에 따르면 유러피언 드림은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 안의 관계를, 부의 축적보다 삶의 질을, 무제한적 발전보다 환경 보존을 염두에 둔 지속가능한 개발을, 배타적 사유재산권보다 보편적 인권과 자연의 생명권을” 강조한다. 박근혜 전 대표도 <유러피언 드림>을 탐독했거나, 최소한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에 공감한 듯싶다.

낯선 ‘박근혜의 복지국가론’
올해 들어 박 전 대표의 발언록에 ‘복지’나 ‘행복’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30주기 추도식에선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 경제성장을 위해 그토록 노력했지만, 경제성장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앞서 9월에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환경, 복지가 중요하다.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진정한 선진국가의 모습일 것”이라는 글을 미니홈피에 올렸다. 박 전 대표의 복지국가론이 본격화한 것은 지난 5월 미국 스탠퍼드대 강연 때부터다. “정부는 시장경제 작동 과정에서 문제가 될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공동체에서 소외된 경제적 약자를 확실히 보듬어야 한다. 경제 발전의 최종 목표는 소외계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의 행복 공유에 맞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강연은 “저에겐 꿈이 있다.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 인류가 행복한 지구촌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꿈이 있다”는 말로 마무리됐다. 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을 인용한 것이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영국병을 고쳐냈듯이대한민국의 중병을 고쳐놓겠다”며 ‘한국판 철의여인’을 자임했던 박 전 대표의 ‘변신’은 조금 낯설다. 완고한 보수주의자 같은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고, 개발 위주 성장전략을 택한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일 가능성도 있다. 복지정책과 금융 규제, 온실가스 감축 등 좌파 의제를 적극 수용함으로써 중원을 장악한 유럽 우파의 벤치마킹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박근혜의 복지국가론’이 2012년 대선을 향한 ‘그랜드 플랜’의 시작이라면, 출발점은 잘 잡았다고 평가할 만하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진화한 우파’들의 성공 사례가 있으니 말이다. 박 전 대표가 ‘한국의 대처’ 대신 ‘한국의 메르켈’을 꿈꾼다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2012년까지 총 22조2000억원이 소요되는 4대강 사업에 단호히 ‘아니요’라고 말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천문학적인 돈이 무상 급식·무상 보육 확대, 대학등록금 인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지원 등 복지 예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설득해야 한다. 당장 5조3333억원(국회 예산정책처 추산)에 이르는 내년도 사업비부터 대폭 삭감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4대강 거부, MB를 설득하라

4대강 사업뿐만 아니다. 소득 양극화를 야기하는 부자 감세,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외국어고, 의료서비스 소외계층을 낳을 영리병원 도입 문제 등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정권의 ‘제2 주주’로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 그림이 없는 복지국가론은 소녀적인 행복론에 불과하다. ‘한국의 대처’에서 ‘한국의 메르켈’로의 변신은 행동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김민아 특집기획부장, 경향 입력 : 2009-11-03 18:04:32ㅣ수정 : 2009-11-03 18:04:3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