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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3- 있는 그대로 믿기

 

중학교 국사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단군신화를 가르치면서 단군신화가 사실인 증거를 알아오라고 했다. 덧붙이면서는 언니나 오빠에게 물어보면 될 거라고.

당시 언니 오빠는 커녕 아는 언니 오빠도 없던 외톨이 시절. 나는 혼자서 해결하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그 때에는 지금처럼 데이터베이스 시스템도 구축되기 이전. 'ㄷ'의 종이카드를 넘기면서 단군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찾았다. 그리고 기적처럼 단군신화가 사실인 증거를 찾아냈다.!!!

내용인 즉, 당시 북한에서 단군의 묘로 추정되는 유물들을 찾아냈다는 논문과 글이었다.

비록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중학생이니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책을 복사하고 사진까지 첨부된 자료를 노트에 붙여서 학교에 가져갔다. 

숙제를 해 오지 않은 친구들을 위해 기꺼이 내 노트를 보여주고, 쉬는 시간1분전까지 내 노트는 반 전체를 휩쓸었다.

 

드디어 수업시간. 선생님은 숙제 검사를 하기 위해 1분단부터 노트검사를 하기 시작하다가.

한 다섯명 쯤 검사하시더니 표정이 일그러져서는 원본이 누구냐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많은 아이들의 눈초리 끝에 발각되어 원본인 나는 숙제를 친구들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혼이 났다. 원래의 의도는 풍백,운사,우사가 농경문화의 증거이고, 곰,호랑이는 토테미즘을 반영한다 등등의 내용을 찾아오길 바란 것이었다나 뭐라나.

제길. 그럼 단군신화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오라고 해줬어야지. 사실인 증거를 찾아오라니.

 

그 이후로 국사 시간의 숙제는 잘 해가지 않았다.

나에게 아직도 남아있는 국사 시간 방학과제는 금오신화를 읽어오라는 것이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줄거리를 요약한 걸 베낀 것 이외에 두 가지 생각 밖에는 없다.

 

"흥미로운 장면은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재미있다고 말 못하겠다."

 

-> 사실 지금은 고전소설 중에서 꽤 재미있는 작품인데, 책 읽고 난 감상평이 매우 솔직하다. 

 

그리고 창의적인 생각을 나름대로 해본다고 소설을 현대에 맞게각색해본다고 생각했다.

 

" 만약 금오신화가 현대인에 맞게 소설로 다시 각색 된다면 어떨까?

 사실 긴 시들을 읽고 있노라면 꼭 내가 옛 선비가 된 기분이다. (내가 정말 이런 기분을 느꼈을리 없다.)

 만약에 현대인에 맞게 소설로 바뀐다면 이 시 모두가 짧은 대화로 나타날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나오면 시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한다' 혹은 '좋아한다'란 말이면 끝날 것이다.

 또 선물을 주거나 술을 선사할 때,

 "내 그대가 맘에 들어 친구가 되고 싶으니..."라는 긴 말보다

'너 맘에 들었다. 나랑 친구하자!'라는 말이든지...

아무래도 현대인과 고대인의 차이인가 보다.

 

라고. '맘에 들었다 나랑 친구하자'라니... 얼마나 지루하게 읽었으면 간결하게 고치고 싶었다고 독후감에다 써놨던 것일까?ㅋㅋㅋ

 

내가 그 당시 선생님이었다면 나같은 학생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아, 그래서 그 때 선생님이 날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구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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