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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9/18
    Dido - Life For 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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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6/09/16
    연애,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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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6/08/06
    여행 후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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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6/22
    연극 코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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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05/17
    연애시대와 소울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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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3/19
    낯선 사랑에 관한 이야기-브로크백 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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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6/01/28
    06년 춘천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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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10/03
    보고싶다 <유령신부>,팀버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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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7/25
    카드캡터 체리 극장판엔딩-It'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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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3/13
    보고싶어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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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질 무렵,    영화관에 냅다 달려갔다.

왕의 남자가 천만을 돌파할 무렵 그 대열에 왠지 합류하고 싶었던  이후로 오랜만에 찾은 극장가.

흥행 신기록이라는 '괴물'에만은 끼지 말자고 다짐한 나.

친구에게 요즘 볼만한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예고편만 봐도 안습!! 인 이 영화는 세상에... 개봉 이틀이나 남아 있었다.

(영화는 원래 보고 싶을 때 봐야지, 기다렸다보면 개박살이다._._ )

 

그래서 요즘 재미있다는 입담이 돈다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낙찰.

결과는? 영화보고나서 영운이(김승우) 개 10 새X가 절로 나왔다.

감독의 의도야 어땠든 상관없이. 나 그리고 안습이 절정에 이른 내 친구는 멋대로 영화를 해석했다.

 

"씨X, 세상 남자 다 똑같애~"

 

연애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추천! (니들은 안그럴것 같냐? 진짜 연애하기 싫어진다,)

연애를 하고 싶던 사람에게도 요추(요거 추천의 줄임말이다)

이유는? 연애하고 싶은 생각 싹 가신다 효과 즉빵이다.

 

그리고,

감독은 여자들이 궁금해 하는 남자들의 심리라고 밝혔는데,

아니, 이건 남자들이 봐야하는 거다.




영화 줄거리는 대충 그렇고 그런 연애이야기. 룸살롱 아가씨와 갈비집 아들의 로맨스다.

물론 김승우가 옛날에 김정은과 함께 출연한 '불어라 봄바람'류의 로맨틱 코메디는 아니다.

 

이들의 사랑은 가볍게 시작해서 무겁게 끝난다. 아니 끝난 것도 아니다.

이들의 사랑이 순탄치 않게 그려진 이유는?

 요동네 영화들이 뻔하듯이 술집여자라는 이유로 결혼에 골인할 수 없다.

이 남자는 홀어머니 밑에서 갈비집에 붙어사는,  경제력이 있는 위치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남자에게는 요조숙녀에 돈도 많고 나이 어린 약혼녀가 있다.

 

이들의 연애는 연아(장진영)의 농담섞인 진담으로 시작된다.

"나 아저씨 꼬시러 왔어~"(갠적으론 이 장면에서 장진영이 제일 예뻤다.)

분명 보통 사람들이 연애를 시작할 때

이것저것 재보고 떠보는 과정을 생략한 아주 가볍고 다른 연애의 시작이다.

그런데 실은 당차고 쿨한 것 같은 연아의 모습에서,

그런 것 같은 것일 뿐 온전히 그렇지 못한 사랑을 발견한다.

 

"첩년도 좋고, 세컨드도 좋으니까, 그년이랑 결혼해도, 나 버리면 안돼"

 

 

 

이 영화에서 김승우는 한 세 번 정도 눈물을 보인다. 하아~ 남자에 대해 반감이 강해져서 그런가.

난 김승우의 눈물을 보면서 악어의 눈물 같다고 생각했다. 먹이를 잡기 전 거짓 눈물을 흘린다는

그 악어 말이다. 영운이 극 중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늘 상대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해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건 연아가 사랑을 하면서 흘렸던 눈물과는 다른 눈물이었다.

 

그런 영운의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연아는 한 마디한다.

"넌 나한테 뭐니?"

 

그건 너에게 있어 내가 어떤 의미냐고 묻는 질문과는 다른 성격이었다.

이미 뭐라고 규정할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존재의 상태. 자조적이면서도 슬펐다.

 

 

 

 

여자와 남자는 연애를 하면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한다.

난 사실 남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른다.

친구의 말을 빌어서 표현하자면, 남자도 생각이 많은 동물이란다.

다만 생각하는 범주가 여자와 다를 뿐이라고.

 

영화를 보면서 여자와 남자의 연애관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그건 약혼녀와 결혼을 하고 첫날 밤 영운이 연아에게 몰래 건 전화.

연아가 하는 말.

"니가 그 년이랑 섹스하는 건 화가 안나는데, 침대에 누워서 다정하게 얘기하는 걸 상상하면 불이나.

그러니까 얘기는 하지말고 섹스만 하라고"

 

그 전화가 걸려오기 전 연아의 상상 장면이 나온다.

흰 드레스를 입고 멋진 차를 타고 영운과 어디론가 달려가는 상상.

잡으면 부러질 듯한 목을 해 가지고선 하늘거리는 흰 스카프를 바람에 날리며,

연아는 가볍지 않은 결혼을 상상하며 바람을, 자유를 느껴보는 거다.

 물론 상상은 현실에서 영운의 전화로 깨졌지만.  생각해보면 쿨한 듯 그려지는 연아는 실은 로맨티스트인 것 같다.

 

 

 

뭐, 솔직히 이 영화로 건질게 많지는 않다.

특히 김승우가 자신의 결혼 생활을 파탄 지경에 이르게 한 장진영을 개 패듯이 마구 패는데, 그리고 나서 자신의 부인에게 전화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18 자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자 적어두는 이유는,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경우로 환치 시켜보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자신의 연애 일면을 찾아낸다.

정말 제대로 된 남자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 이 영화에서,

과장된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기도 한 남자들의 모습에서 비슷한 경험들을 집어낸다.

같이 본 친구와 난 연애를 하고 있지 않고, 또 부정적인 시각을 지닌 까닭에 비슷한 결론을 집었다.

 

세상 남자 다 똑같구나.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어떤 남자애가 김승우가 나쁜 놈이라는 말을 하길래,

뒤 돌아서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라고 말하려다 말았는데.ㅋ

왠지 남자들의 항변도 듣고 싶어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한 번 보라고 권해보는 중이다.

아, 그리고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도.

그와 그녀는, 그녀와 그는 어떤 시각으로 연애를 하고 있냐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묻고 싶게 만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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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

복잡한 인생이렷다.ㅋ

 

휴가같이 가자고 한 친구한테 안간다고 계속 버티다가 문득 바다가 보고 싶은 생각에 계획을

급수정해서, 다녀왔다.ㅋ 정작 바다는 한 시간, 그것도 밤에 본게 다지만.

다녀온 소감은? 좋았다.

 

1박 2일의 부안여행. 그러나 다녀와서 생각해보니 1박 3일의 여행이었다.

뭐, 결국 일주일 정도가 날아간 셈이지만, 덕분에 보름은 열심히 달릴 수 있어졌으니,

좋은게지. 미뤄둔 숙제 하나를 끝낸 느낌이다.

모든 조건은 여행을 어렵게했으나, 역시 마음이 시키는대로 하는게 인생 쵝오! 아니겠어?

아쉬운 건 있지만, 늘 그러하듯 아쉬운 여행일 수록 여행의 묘미가 더해지는게 인생의 묘미.

 

 

 

 

여행후기1 -자연이 내려준 최고의 선물

 

 주된 여행의 코스는 술.

 맥주, 소주, 막걸리를 때에 따라 가리지 않고 섭취했으니,  자연경관과 장소는 그저 안주에

 지나지 않을 뿐. 나야 술을 못 마시는 까닭에 맥주 세잔과 막걸리 반잔에 그쳤지만,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야 술을 마시는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먹을 때까지 마셔댔다.

 

 그래서 애초 꼭 보고 말겠다고 마음에 품어두었던 내소사와 적벽강 등의 장소는 

알코올과 함께 증발해버리고, 채석강 등대 가는 길목에서 술 마시기,  밤에 본 격포 해수욕장의

파도소리 확인하기와 직소폭포 암벽에서 술 마시기가 다였다.ㅋ

 

 폭포까지 오르는 길이 힘들어서 짜증도 많이 났었지만,

맥주 한잔의 즐거움과 내려오는 길에 흠뻑 맞은 비가 꽤 즐거웠다.

바다나 계곡 물 모두 채워주지 못한 2% 부족했던 수분이 비로 인해 즐거워졌으니,

자연이 내려준 최고의 선물은 술도, 바다도, 계곡도 아닌 비가 제일이렷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여행후기2 -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무렵

 

'타는 저녁놀'이라는 익숙한 이 말이 얼마나 멋진 말인지 처음 깨달았다.

도시에서 일몰을 보면서 붉게 물들은 구름을 볼 때마다, 바다를 꿈꾸곤 했는데,

바다에서 보는 일몰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구름이 붉게 물든 것과 달리, 물이 서서히 홍조를 띠는 건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항구로 들어오는 배가 서서히 물살을 가를 때 붉게 물든 물결이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광경,

부안 출신의 시인 '신석정'이 시로 1930년대의 자연을 말할 때,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무렵' 보이는 '저녁해의 엷은 광선'들은 다시 내 눈앞에서 재현되었다.

 

직소폭포에서 내려올 때 본 '자욱한 물안개' 역시

카메라를 들고 내가 본 것들을 찍어왔으면 좋을 뻔 했다. 다음번엔 꼭 챙겨가야지.

 

 

아, 글 쓰다보니 보름달이 뜰 무렵에 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럼 파도소리만 무성한 밤바다도 조금은 익숙하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환하게 비치는 달과, 달이 비치는 물결도.


출처:네이버블로그

 

 

 

 

여행후기3 -개인적 생각들.

 

자연경관이나 술 말고, 여행에서 좋았던 건 여행을 제안했던 그와 그녀의 문제의식.

짐작은 했지만, 가슴속에 품어둔 생각보다 말로 표현되는 생각이 더욱 좋았다.

술에 취해 자기들 말만 하고는 다른 사람 말은 듣지도 않긴 했지만 ㅋ

(어쩜 커플이 그렇게도 닮았는지~ㅋㅋ) 그건 그대로도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얼마전에 본 연극 대사가 많이 생각났다. 역사성과 일상성이라는 과제는

'우리'의 정체성 규명과 함께 '창조'의 흐름을 요구한다.

난 꽤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의도하지 않게 지금의 내 포지션에 대해 누군가가 했던 말이 자꾸 생각이 나서.

 

(아...이상한 내 성격이란, 원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강압적인 말투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길래 난 생각이 다르다고 일축해버렸다.

물론 정말 다르게 판단하는 지점이 있었는데, 휴가와서 싸우고 싶지는 않아서^^;;)

 

 

어쨌든 이번 여행을 통해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는 생각이

좋았다고 표현할 수 있게 만든다.

참 훌륭하다고 칭찬해준다는 걸 깜빡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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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코뮌

 

 오랜만에 연극을 봤다. 코뮌. 포스터만큼이나 제목도 빨간 이 연극은 80년대 운동을 배경으로 한다. 80년의 그 엄혹했던 시절도, 87년 노동자 대투쟁도, 89년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몰락도, 96년 학생운동 탄압도, 노동악법 날치기도. 직접 경험하고 고민하지 못한 2000년의 대학시절을 보낸 나에게 연극은 과거의 경험을 이양시키는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이양이고 나에겐 운동의 역사와 함께 내가 이어나가야할 운동의 일상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에 대해 숙제를 남겼다.

 나에게 작가는 계속 물어보는 것 같았다. 너의 꿈, 너의 코뮌은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그려나갈 것이냐고.

 나는 아직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여린 불꽃을 품은 너를 처음 봤어"

   연극은 기영의 기억을 통해 83년 인선과 기영의 만남을 시작으로 한다. 기영은 위장취업한 대학생이고, 인선은 14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해 온 말 그대로 '공순이'이다. 이 둘이 처음 만났던 날은 어느 봄날, 비가 내려 정전이 된 작업장에서였다. 암울하고 앞이 보이지 않았던 그 시절만큼 천둥과 번개가 쳐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어둠 속에서 기영은 디디디를 외치며 인선에게 다가간다. 전두환 대머리 돌대가리.

  그리고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켠다. 처음에 불은 인선이 아니라 기영에게 있었다. 작은 불꽃으로 밝혀진 테이블 위에는 인선과 기영의 꿈이 드러난다. 기영이 드러낸 건 '공산당선언'이었고, 인선이 드러낸 건 21세기에 나타날 디자인이었다. 작가가 교묘하게 나눠놓은 꿈.  그들은 꿈에 대해 대화한다. 꿈은 실현될 때 아름다운 것일까, 비록 고통스럽긴 하지만 꿈을 품고 있는 것이 더 아름다울까. 기영은 전자를, 인선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건 그와 그녀의 삶의 대응방식과 연결된다.

   이미 공산당 선언을 줄줄 외고 있는 인선은 기영에게 묻는다.

 "읽으니까 어때?"

 "읽고 있으면 심장이 뛰는 것 같아요"

 "뛰긴, 어디에서 뛰는데?"

  기영이 대답한다. "심장이 붉은 광장에서 뛰는 것 같다"라고.

 

 

"움추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는거야"

   그렇게 만남을 시작으로 둘은 사랑에 빠지고, 연인이 된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순탄치 않다. 개인과 개인의 삶은 사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므로.

  연극엔 남녀 주인공만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등장하지 않는 중요한 인물 하나가 더 있다. 기영에게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나눠 준 사람. 바로 영진이라는 인물이다. 영진이 잡혀들어가 녹화사업으로 군대에 끌려가고, 인선도 감옥에서 숱한 고문을 받을 때, 기영은 인선에게 면회를 와선 "미안하다"라는 말을 되뇌인다. 그건 살아남은 자의 온전하지 못한 삶의 무게감때문이었을까? 그리고 기영도 군대에 입대하고, 군 생활을 마치기까지 인선과 기영의 관계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서로 주고 받으며 생활하는 관계로 지속된다.

   엄혹한 시대의 폭력은 인선에게 커다란 불꽃을 일게 하고, 그녀는 투사가 되었다. 그건 그녀가 처한 환경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녀의 삶의 선언은 책속에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 존재했다. 연극이 시작할 때 산울림의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녀는 이제 불나비와 바위처럼을 부르며 크게 노래한다. 그런 그녀와 달리 기영은 술과 동맹을 맺고 일상성과 역사성을 파괴한다. 그건 89년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영진의 분신 때문이다. 

  89년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꿈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굳게 믿던 신념이 현실 앞에서 한 순간에 허물어지던 순간을 작가는 기영, 영진, 인선의 삶의 방식을 통해 말해주고 있었다.

영진은 분신을 했고, 기영은 이제 끝이라며 술을 마시고,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며 죄의식에 허덕이고 있었고, 인선은 이제 시작이라며 생활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시간이 흐른 뒤 유학을 준비하는 기영에게 인선은 말한다.

넌 도망가는게 아냐. 어깨펴고 움츠리지 말고, 앞을 향해 가는 거야.

가는 길에 눈에 보이는대로, 들리는 대로... 외면하지는 말고. 네 길을 가는거라고.

각자의 길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그리고 더 시간이 흐른 뒤, 세상은 여전히 급변하고, 꿈을 빼앗으려는 자들로 가득하지만, 기영은 소시민이 되어 있다. 그는 말한다. 아침이면 전철에 일벌레처럼 꾸역꾸역 들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합류하는 소시민이 되어버렸다고. 그런 그가 인선과의 짧은 재회와 편지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주체로 일어서려고 한다.

  그는 말한다.프로메테우스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고.

  그리고 묻는다. 내 길에서 앞으로 나가다보면 언젠가 너와 마주할 그 날이 올까.

 

 

"내 심장은 어디에서 뛰고 있는걸까?"

  기영의 기억을 통해 진행되는 연극을 보면서, 나는 기영에게 주목했다. 기영의 기억속에서 인선은 투사였고, 그건 그녀가 위치한 노동의 현장이라는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내가 주목한 건 기영과 인선의 관계와 그 관계 속 기영의 선택과 행동이었다.

  

 기영과 인선의 관계는 단지 연인으로만 해석될 수 없는 오묘한 관계였다. 동지라는 이 짧으면서도 어려운 단어는 그와 그녀에게도 적용된다. 기영과 인선은 서로에게 불을 나누어주고 또 받는 관계이다. 소시민이 되어버린 기영에게 인선은 불씨를 다시 되살릴 수 있는 까닭이 되어주었고, 세월과 현실의 무기력함에 천착해가는 인선에게 기영의 다시섬은 또 다른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주었다. 민가의 노래가사처럼 그들은 함께 할 때 꿈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다른 면으로는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선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것이 단적으로는 아련한 추억으로 존재할 수 있기도 한 반면 내 의지에 따라 내 길에 마주서고자 지향하는 인물이다. 적어도 80년의 사회주의에 대한 꿈과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면에서 기영과 인선은 하나일지도 모른다.

 

 "조직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거야"

"아니야, 조직의 주체는 나고 무슨 일인지 나도 알아야만 해"

주체는 나라는 기영의 말은 내가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하려했던 때 했던 말이었다. 이건 80년의 투쟁적인 운동의 경험도, 90년의 운동권의 몰락도 경험하지 못한 2000년의 나에게 있었던 일이다. 어쩌면 더더욱 현실의 무기력함을 몸으로 체득할 것을 강요받는 지금의 시기에 세상과 다른 시각으로 보고자 하는 내 열망은 무모함이나 철없음이 아닐까라는 고민이 많던 시기였다.

  엄혹한 현실의 폭력은 사회에서도 학교 내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현실. 그 때 내 심장도 붉은 광장에서 뛰기를 희망했다.

 

그랬던 기영이, 그랬던 내가 소시민이라고 말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다시 일어서서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기영은 힘없이 넘어지는 사람이기를 선택했다. 고통과 죄의식을 자양분으로 삼고, 넘어지면 일어서기 위해 글을 쓰고 길을 가기로. 일어나기 위해 넘어지는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젠 내 길을 물어보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 대답하지 못했다.

내 심장은 아직도 붉은 광장에서 뛰기를 희망하고 있는 걸까?

그저 인선의 대사를 기억하기로 했다.  "어깨를 펴고 앞을 보면서 전진하라고."

 

 

 

"심장은 차가워져도, 뜨거웠던 그 순간을 놓치지 마"

 연극을 많이 본 경험이 없으므로 연극에 대한 추억도 별로 없다. 뭐,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을테니 쌓아가면 그만 아닌가. 내가 본 몇 편 되지 않는 연극에 대한 추억 가운데,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좋았어"라고 말할 수 없었던 연극이 하나 있었다. 그건 대학교 1학년 때 동기들과 함께 본 전태일 열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연극을 선택했던 선배에게 왜 이걸 봐야하냐고 못마땅해했던 나는 연극이 끝나고 내 동기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울었을까?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전태일열사가 고뇌하고 갈등하던 그 모습의 아련함이 내 기억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오늘 같이 연극을 본 동기에게 그 때의 연극이 기억나냐고 물었다. 그리고 왜 그렇게 감동받았던거지?라고 덧붙여서. 친구가 말했다.

  "그 때 우리 가슴이 뜨거워서 그랬다"고.

  "그랬지"라고 난 대답했다. 그리고 속으로 물었다. "지금은?"

 

 지금은 내 심장의 온도가 어느 정도일까? 너무 식어 얼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간혹 한다. 예전에 활동을 잠시 접고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주변의 시선과 나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짓누르던 시절.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줬던 기억이 난다.

심장은 식을 수 있다고. 하지만 심장이 뜨거웠던 때를 잊지 말라고.

그럼 차가워진 심장은 언제든 다시 뜨거워질 수 있다고 말이다.

그 때 당시에는 참 멋부린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이 말이 진실이길 바란다.

 

 

 

 내 이전의 활동가 선배들은 이 연극을 보면 과연 어떤 기분을 느낄까? 내 후배들은 또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연극을 보며 궁금해졌고, 내가 그 경험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음이 연극을 50%밖에 느끼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나머지 50%는 이전의 선배들이 느끼지 못한 2000년을 20대로 보낸 나의 경험이자 일상성으로 자리한다. 그건 그들이 꿈꾸는 꼬뮌과는 다르거나 어쩌면 마찬가지인 나의 꼬뮌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내가 또 다른 인선과 마주하게 될 그 길은 무엇일까? 같이 연극을 본 친구들. 현장을 고민하는 또 다른 인선이 될 친구와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친구. 그들과 함께 나눌 프로메테우스의 꺼지지 않는 불씨를 난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지. 난 아직 대답하지 못했다.

다만 대답하기 위해 꿈을 꾸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해보기로 했다. 그것이 비록 고통스럽지만.

연극을 보고 난 후 술을 마시지 못했지만,

간만에 본 친구들의 이야기도 하고, 과거를 들추어내기도 하고,

미래를 걱정하기도 하는 좋은 이들과 함께한 좋은 연극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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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와 소울메이트

 요즘 관심을 가지고 보는 드라마가 몇 개 있습니다. 연애시대, 소울메이트.

이 둘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또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구성의 참신함때문입니다.

기존의 삼각 또는 사각 구도에서 약간은 벗어났다고 생각했거든요.

 

  앞선 드라마는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교체되는 형식을 통해 캐스팅된 배우 만큼이나 잔잔하게 그려지고 있고, 뒤에 있는 드라마는 인물이 변함은 없는데, 두 개의 에피소드가 오버랩되는 형식입니다.

  둘 다 연애에 대한 단상을 중심으로 그려나간다는 점이나, 넓게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다는 점에서 공통적입니다. 그런데 제가 발견한 약간의 미묘한 차이는 소울메이트가 20대 초,중반을 주요 시청층으로 말 그대로의 true love, 즉, 소울메이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것이라면, 연애시대는 그보다는 좀 높은 연령층으로 사랑을 잃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연애시대는 사랑에 대해 조심스러우면서도 차분하게 조금은 우울하게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그녀들의 꿈, 현모양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녀들의 꿈과 모습입니다. 어제 방송된 연애시대의 마지막부분은 전남편인 동진(감우성)이 그의 첫사랑 유경과 재혼하는 결혼식장. 그곳에 참석한 은호(손예진)의 독백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녀의 독백은 그녀가 어릴 적 자신의 꿈을 적은 일기 속에서 상상했던 멋진 왕자님과의 만남으로 은호가 동진과 만났던 첫만남을 회상하는 장면과 맞물립니다. 작가의 의도야 이제는 깨져버린 돌이킬 수 없는 듯한 꿈을 강조하고 싶었나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녀의 어릴 적 꿈이 현모양처였다는 말이 많이 거슬렸습니다. 현모양처라... 

 이런 현모양처의 꿈은 연애시대의 어릴 적 은호만이 가진 것이 아니라, 소울메이트에서는 유진(사강)도 꿈꾸는 삶이기도 합니다.

  현모양처, 생각해보니, 옛날 제 친구 중에도 현모양처가 꿈이라는 친구가 있긴 했습니다. 장래희망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현모양처라는 단어를 들었던 저는 나중에 나이가 들면서 이런 희망사항이 참 별로라고 생각했었죠. 자신의 장래 희망이 직업으로 표현되는 것이나 어머니,아내로만 점철되는 현모양처나 참 재미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여전히 유효한데, 사람이 못되서 그런가... 드라마를 보면서 그런 꿈들이 철저히 깨져가기를 바라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드라마를 제대로 챙겨보지를 못해서 내용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긴 하는데,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보다 사랑을 잃어가는 과정이 더 맘에 드는건 왜 인가 모르겠습니다.

곧 끝나가는 연애시대에 주목하면서, 지금은 드라마에 나오는 여성들의 삶을 다시 생각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동진과 결혼하는 유경을 제외하면 연애시대의 대부분의 여성의 모습은 이혼을 경험했고, 출산과 양육을 고민하기도 하고, 사산을 경험한 아픔을 가진 여성입니다. 어쩌면 이 캐릭터들은 은호의 동생인 지호(갠적으론 이 캐릭터가 젤 맘에 듭니다)나  현모양처의 대표적인 이상적이고 완벽한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유경보다 더 현실적인 여성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이혼한 부부의 삶이 사실적으로 그려졌는가의 문제들은 다르다고 생각하구요.)

 

 드라마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전 이 드라마가 해피엔딩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예전에 뭇 드라마가 선택했던 사랑대신 일을 선택하는 여성의 모습이나, 상상이었다느니 식의 결말을 기대하진 않구요. 그저 사랑이 끝나고 또 다시 새로운 사랑을 기다리는, 그 과정이 사산의 아픔이나 실연의 아픔에서 치유되는 과정임을 담담하게 그려나갔으면 합니다.

사랑의 결실이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며 

그리하여, 제목처럼 연/애/시/데 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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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랑에 관한 이야기-브로크백 마운틴

   바람이 세차게 불던 일요일 오후, 간만에 영화를 봤다. <브로크백 마운틴>. <왕의 남자>가 오백만을 돌파한다는 예측이 난무할 무렵, 오백만의 대열에 합류하고자, 이미 영화를 본 선배를 졸라 본 <왕의 남자>이후 올해 들어 본 두 번째 영화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1963년 로키 산맥 어딘가에 자리 잡은 브로크백 산을 배경으로 두 젊은 카우보이, 에니스와 잭의 만남을 시작으로 한다. 그리고 20여 년간 계속된 그들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다.

  

  에니스는 잭에 비해 과거의 유령같은 기억과 가족의 부양 의무라는 현실의 사슬에 얽매여 사는 인물이다. 그에겐 가난으로 인해 가족 공동체가 파괴된 경험이 있고, 과거의 기억 속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성기가 뽑혀 죽은 시체를 본 경험이 유령처럼 깊게 자리잡아 하나의 두려움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삶에서의 선택의 순간에 부딪힐 때 늘 현실에 안주하는 선택을 내리고 고통스러워한다. 에니스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 갈구하는 사랑을 깨닫고,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은 영화에서 보여진 그의 성격만큼이나 잔잔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에니스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을 맹세하기까지의 과정은 잔잔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이나 깊은 감동을 선물해준다. 동성애와 관련된 영화라는 사전 정보 이외에 아는게 없던 나는 약간의 충격과 적지 않은 감동을 받으며 극장에서 나왔다. 한편의 로맨스를 보고 난 후의 느낌. 사랑과 삶에의 안타까움은 늘 심장을 울린다.

 

 

 


♪ 엔딩곡 ♪

 

One more chain I break, to get me closer to you

나는 당신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사슬을 하나 더 끊지만


One more chain does the maker make, to keep me from bustin' through
신은 내가 끊어버리지 못하게 사슬을 하나 더 엮지

One more notch I scratch, to keep me thinkin' of you

나는 너를 잊지 않도록 사랑의 상처를 하나 더 긋지만


One more notch does the maker make, upon my face so blue
신은 내 얼굴에 그늘이 지도록 상처를 하나 더 긋지

Get along little doggies get along little doggies
보잘 것 없는 것들이여 살아가자


One more smile I fake, 'n try my best to be glad

나는 한 번 더 가장 기쁜 것처럼 거짓 미소를 지어보지만


One more smile does the maker make, because he knows I'm sad

신은 내가 슬프다는 것을 알기에 나를 미소짓게 만드네

Oh Lord, how I know

오 신이여 제가 어떻게 아나요


Oh Lord how I see that only can the maker make a happy man of me
오 신이여 오직 당신만이 제 행복을 쥐고 있다는 것을 제가 어떻게 아나요

Get along little doggies get along little doggies, get along
보잘 것 없는 것들이여 살아가자 살아가자

 



 때론 충동적이지만, 결코 일시적이지는 않은 사랑

  동성애에 대한 내 경험의 시작은 고딩 시절 하이틴 소설을 대체해 자리잡은 순정만화 가운데 동성애를 소재로 했다는 이유로 19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만화였다. 한껏 예쁜 남자들이 등장해서는 사랑하는 미화된 이야기에 익숙한 나에게, 근육이 울퉁불퉁한 카우보이들의 갑작스런 섹스 장면은 다소 거칠고 충동적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약간의 충격은 기존의 내 인식 속에 존재했던 미화된 동성애에 관한 관념이 깨진데서 발생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생각의 틀을 깨는 묘미를 선사한 이 영화는 주인공의 설정에서도 나타났다. 양치는 카우보이. 으레 카우보이하면 황무지를 배경으로 총을 쏘아대거나 소를 타면서 손수건을 돌리는 모습을 연상하곤 했다. 왜 이빨 어딘가엔 금니 하나가 번쩍거리고 있을 듯한 그런 이미지 말이다. 그런데 푸른 초원과 만년설을 아우르는 브로크백 산을 배경으로 하는 양을 치는 카우보이는 익숙하지 않은 수준을 넘어 신선했다.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낯선 사랑. 영화는 관객에게 사랑은 그것이 이성간이든 동성간이든 상관없이 섬광처럼 빠르고도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때론 충동적이지만 결코 일시적인 것은 아닌 그런 사랑을 말이다.

 

돌아가고 싶은 기억 속의 공간 -브로크백
  브로크백 산은 부유하지 않은 두 젊은이에게 노동의 공간으로 양떼 방목은 생계 수단이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의 삶은 에니스와 잭이 방목을 끝내고 돌아간 시내에서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 브로크백에서의 삶은 스스로에게 거짓없는 자연스러운 삶이었으며, 서로에게 진실한 공간이었다. 답답하고 불투명한 이미지로 그려지는 현실과는 달리, 브로크백은 녹색과 푸른색 그리고 흰색이 적절하게 조화된 맑은 이미지로 비춰진다. The force of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이 영화가 주인공인 에니스가 성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이 결국 삶에의 선택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삶에서 순간의 선택에 늘 두려워하고 현실에 주저앉던 에니스가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맹세한다"고 이야기 하는 장면에서 꽤 감동받았다. 이 영화가 진부한 사랑이야기가 아닐 수 있었던 까닭은 사랑의 대상이 동성간 사랑이라는 점보다 삶에 대한 선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마지막까지 내 뇌리속에 박힌 장면은 포옹하는 두 사람의 표정이 너무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어서 영화를 보는 나까지 행복하게 만들던 장면들.
그리고 마지막 장면과 엔딩곡이 몇 컷의 이미지와 음상으로 내 기억 속에 꽤 오랫동안 박혀있을 것 같다.

 

 

 

 

 #1. 잭의 시선으로 영화 살펴보기
 에니스를 처음 만난건 브로크백 산에서 양떼 방목을 하기로 한 때부터이다. 브로크백 산은 만년설로 뒤덮여 초원과 눈이 기이하게 어우러진 공간이다. 에니스와는 이 공간에서 서로 공통점이 별로 없음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터놓는 친한 친구가 됐다.
 에니스가 털어놓는 과거의 기억은 현재 그의 삶에도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가난은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고, 그에게 가족의 구성은 하나의 의무처럼 작용한다. 그에겐 현재 약혼자가 있고, 예정대로라면 양떼방목이 끝나고 12월엔 결혼을 할 것이다. 그의 어릴 적 경험 속에는 아버지가 보여준 동성애자의 성기를 뽑아 죽인 시신이 유령처럼 기억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데, 그에겐 하나의 두려움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섬광처럼 갑작스럽게 그와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양떼 방목을 하는 동안 에니스와 행복했지만, 방목 생활이 끝나는 때 즈음 에니스는 지난 일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다. 에니스와 다투고 산을 내려와서 우리는 인사를 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난 로데오 경기에서 만난 부잣집 딸인 로린과 결혼했지만, 장인은 날 싫어해 이혼만 하면 위자료를 원하는데로 준다고 한다. 에니스와의 추억이 기억나 그의 주소를 알아내 엽서를 보냈다. 그를 4년만에 만나게 되는 것이다.

 

 

# 2. 알마의 시선에서
 5년 전이었다. 남편인 에니스는 잭이라는 친구에게서 엽서를 받고는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다. 친구를 반갑게 맞이하겠다고 집 앞으로 나간 남편을 창문으로 본 나는 순간 정신을 잃을 뻔 했다. 남편이 친구와 키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 남편은 낚시를 핑계로 잭을 만나고 있다. 그 장면은 그저 내가 오해했기를 바라면서, 낚시 도구에 힘내라는 쪽지를 달아놓았다. 나는 남편이 가정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낚시에 돌아온 남편에게 물었다. 잡아온 고기는 어디에 있냐고. 그는 그냥 먹었다고 대답했지만, 내가 달아놓은 쪽지와 낚싯대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 에니스가 나에게 사실을 털어놓기를 바라며 5년을 참아왔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3. 에니스의 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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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년 춘천행.

#1. 춘천가는 기차,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그냥 바람이나 쐴까 하고는 무작정 경춘선을 탔다.  예전에는 2500원으로 통일호 열차를 타고 맘 편하게 하루 다녀왔는데,  간만에 탄 경춘선은 무궁화로 대체되서는 5000원이나 하는 시츄에이션~. 사람도 변하고, 기차도 변하고, 기차역도 변하고, 강산도 변해버린 듯한 상황.

그래도 변하지 않은 건 오랜 친구와 여행을 떠나기 전 느꼈던 설레임.

 그 정도로 해두기로 했다.

 

▶ 몇 년전에 공사중이던 김유정 문학관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철도청 홈페이지에 신남역을 찾았는데, 그런 역이 없다고 해서 화들짝 놀랐다. 알고보니 역 이름도 '김유정'으로 변해있었다. 이제는 어엿한 문화관광촌으로 자리잡은듯한 실레마을. 폐결핵으로 죽으면서 닭한마리가 먹고 싶다던 김유정은 훗날 자신의 이름으로 기차역이 생긴다는 사실을 상상이나 했을까?

 

 

신남역이 김유정으로 역명이 바뀌기 이전에는 조그마한 간이역으로 기차도 하루에 세, 네번만 정차했다. 마을 사람들도 김유정 생가를 물으면 희한한 사람으로 보던 눈빛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마을 분위기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옛것은 새것으로 빠르게 대체되는 시대.

사는 것이 느린 나는 새것보다는 옛 것이 마냥 그리워지는 시간 속에서만 살고 있는 것 같다.

 

 

 

 

#2. 강안개, 물은 물이다.

 

희뿌연 날씨에 좀 더 좋은 날씨였으면 좋았겠다는 말을 뱉은 순간.

시 하나가 생각났다. 도종환의 시인데, 개인적으로 난 도종환을 좋아하지 않는다.

"새벽 강안개 세상을 씻으며 하늘에 오르듯
내 마음도 당신을 향해 늘 오르고 있다" (-이제 당신과의 사랑은 中 - 도종환)는 표현이.

 

강은, 물은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자신을 가볍게 혹은 무겁게 변화시키며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는 사실.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고 흘러 더러운 것들과 함께 간다는 표현도.

 

▶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정해진 철장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절대!!!

손만 뻗어 그저 내가 볼 수 있는 가장 낮은 위치에서 강을 보고 싶었다.

 

 

 



 

 


 

 ▶뱃길은 정해진 것도 없고,  흔적을 남기다가도 이내 사라지고 만다.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파도에 물은 거품이 일다가도 금새 잔잔해지며 바람만 맞아줄 뿐.
그게 물이다.

 

 

 역시 한 1년만에 배를 타봤다. (요즘 모든게 1년만이다.) 바다에서 타는 배와는 다르게

바람은 짜지도 않고, 수분은 충분해서 폐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 춘천 닭갈비. 명동 골목에서 이리저리 아주머니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손님이 가장 많은 가게를 들어갔다. 알고보니 여행사 단체손님이었으나, 뭐, 그냥 맛있었다고 기억하기로 했다.

배가 터질 때까지 국수, 닭갈비, 음료수4잔에 봉평 동동주까지 먹었으니까. 지금보니 남긴 저 떡들이 먹고싶어졌다. ㅠ.ㅠ

 

춘천 여행이 닭갈비가 먹고 싶다던 친구 때문이기는 했으나, 문득 의문이 든 건 사실.

왜 춘천은 닭갈비가 유명할까? 이 질문에 나는 "아마 아현동에 가구단지가 유명한 이유와

흡사할꺼다"라고 답은 했으나,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내 친구 네이버를 찾았다.

 

"춘천 닭갈비의 유래는 약 1,400년전 신라시대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이있고 50년대 지금의 강원은행 본점자리에서 김씨라는 사람이 닭불고기집을 시작했다는 이야기와 70년대초 요선동에서 시작했다는 말이 있다.
   좀더 확실한 것은 70년대 초부터 명동 닭갈비골목을 중심으로 4개업소가 본격적으로 닭갈비요리를 발전시킨 점이다."닭갈비" 란 말은 원래 흥천에서 먼저 사용되었고 그 흥천의 닭갈비는 냄비에 육수를 넣고 닭요리를 한것인데 , 흥천과 태백에서 지금도 이 음식이 남아 있다.
  춘천에서 숯불위에 석쇠를 얹어 닭고기를 요리했던 숯불닭갈비가 있었는데 71년부터 닭갈비판이 등장하면서 춘천 닭갈비가 태어난 것이다. 
 춘천에서 닭갈비가 발달한 배경중의하나는 춘천지역이 양축업이 성했고 도계장이 많았던 이유다.
 닭갈비는 지금도 그 맛과 양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지만 대단히 싸서 (70년대초 닭갈비 1대값은 100원 이었다.)그 별명이 '대학생갈비 '서민갈비'였다.

 

네이버는 모르는게 없는 내 친구. 물론 항상 정답만 알고 있는게 아니라서 그렇지 ㅋㅋ

 

#4. 친구, 길


 

 

▶청평사가는 길목에서 찍은 한 장. 배 못탈까봐 열심히 뛰는 도중이다.

가는 길 내내 유독 느린 걸음으로 계속 뒤쳐진 달팽이와 여우비.

 

 

20년이 넘게 우리는 우리가 남들보다 빠르지 않은 건 알고 있었지만 패배자와 비슷한 이미지로 뒤쳐지는 걸음을 지닌지 몰랐나보다.

가면서도 포기와 도전사이를 줄다리기하면서 결국 완주를 했던 까닭.

뭐, 입장료 때문만은 아니고^^;; 함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혼자였다면 끝까지 갈 것인가 도중에 포기할 것인가를 가지고 그렇게 몇번을 고민할 필요는 없었겠지. 내 컨디션을 봐가면서, 마지막 배시간을 철저하게 계산하면서 갔을테니까.

둘이였기에 끝이 보이지도 않고 38.5도의 언 경사길을

도중하차를 결심했다가도 이내 곧 한번 가보잔 말에 서로를 설득하며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가 길을 인생 길에 비유했던 건지. 기막히게 느꼈던 하루.

끝도 보이지 않는 길에서 때로는 지치고 포기하고 싶다가도 누군가가 있기에 갈 수 있다고.

사람이 있기에 갈등도 하도 보듬어 주며 때론 곧게 때론 돌아가며 사는 거라는 말.

덕분에 마음은 뿌듯한데, 발목이 저리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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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다 <유령신부>,팀버튼


 

 

드디어 한국에도 개봉을 하다.

보고싶다. 예전에 고등학생 때인가 팀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을 보고 나서 웬종일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열광했던 기억이 난다.

 

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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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캡터 체리 극장판엔딩-It's

1. 즐겨부르던 그 때 그 노래 오래된 테이프에서 빛바랜 표지 귀에 익은 노래 속에 새벽은 밝아오네 또 다시 시작된 오늘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 맑게 갠 하루 어느 시간이면 문득 그리움에 젖는다 작은 자전거에 몸을 싣고서 부는 저 바람 맞으며 달리던 기억 라라라라 노래해 저 하늘 바라보며 라라라라 It's My Life 앞으로 가는거야 나 홀로 힘차게 달려가네 끝 없이 펼쳐지는 이 길을 2. 수 많은 갈림길에서 나는 망설였지만 지나치고 때론 뒤쳐지기도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어 수 많은 실패들 일어서는 아픔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내 마음 속에 라라라라 노래해 저 하늘 바라보며 라라라라 It's My Life 앞으로 가는 거야 나만이 간직한 소중한 추억 언제나 함께하리 영원히 어릴적 놀던 마을 꿈길에서 보네 괴롭고 슬플때면 떠오르는 그리운 노래처럼 지금 할 수 있는 건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가보는 거야 라라라라 노래해 저 하늘 바라보며 라라라라 It's My Life 앞으로 가는 거야 라라라라 노래해 저 하늘 바라보며 라라라라 It's My Life 앞으로 가는 거야 나 홀로 힘차게 달려가네 끝 없이 펼쳐지는 이 길을
♪ 카드캡터 체리 극장판엔딩-I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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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어진 영화

 

사과껍질이 안 끊어지면, 차보다 내가 먼저 모퉁이에 다다르면,

일곱을 셀 때까지 검표원이 안 오면 ... 그는 살아있다!

 

오드리 도투라는 배우를 기억하는 건 <아멜리에>에서 누군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던 깜찍한 여배우의 모습.

  별 생각없이 보면 왠 할일없는 여자가 하루종일 시덥지않은 일에 골머리를 앓는 건지 모를 그런 영화이기도 하고, 하지만 내용을 이리저리 보면 녹색의 영화포스터가 가져다주는 원색적인 이미지와 함께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이면을 색감있게 그려낸 경쾌한 영화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아멜리에>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고는 지하철 역에서 사진을 모으던 남자와 오드리 도투와의 만남, 그리고 프랑스어에서 살아나는 그녀만의 독특한 억양의 목소리.

 

 그런 그녀가 장 피에르 주네와 <아멜리에>에 이어 또 다시 영화 한편을 만들었다. <인게이지 먼트>라는 다분히 멜로의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 나에게 장 피에르 주네에 대한 기억은 <아멜리에>말고도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라는 영화가 더 먼저인 편이다. 처음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팀 버튼이 만든 영화인 줄 알았는데(당시 난 팀 버튼이 만든 "크리스마스 악몽"이란 스톱 모션 에니메이션에 빠져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아마도 영화 전반에 흐르는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언제가 더 먼저 만든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때, 감독의 성향이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세계에서 점차 현실로 '발전'해나가는게 아닐까란 생각을 해 본다. ('발전'이라고 표현한 건 다분히 내 영화관에 비추었을 때의 표현이다. 실제로 이 감독이 어떤 작품성향을 띠고 있는지는 찾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본 세 편의 영화 중에서 줄곧 흐르고 있는 감독의 성향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건 인간애. 즉 휴머니즘인 것도 같다.

 

  <인게이지먼트>의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겠다. 다만, 전반적으로 시대적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이고, 오드리 도투는 전쟁 때문에 헤어진 연인을 찾아 일대 여정을 벌인다는 것이 스토리이다. 과연 감독이 그녀의 여정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 감독의 성향 상 전쟁에서 벌어지는 사실주의적인 표현이나 묘사가 드러나기 보다는 그 안에서의 인간의 삶, 사람들의 모습과 다양한 인간 군상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표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을 뿐이다.

 

 가장 기대할 만한 것은 오드리 도투를 통해 보여질 그녀의 생각과 그것이 그려지는 방법들.

영화 예고편을 우연히 보다가 "사과껍질이 안 끊어지면, 차보다 내가 먼저 모퉁이에 다다르면" 등으로 표현되는 영화 카피를 보고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무엇인가에 불확실한 감정, 더욱이 그것이 불행과 겹쳐질것만 같은 막연한 불안감에 맞닥드렸을 때, 정말 말도 안되고, 별 연관성도 없는 것들을 애써 껴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는 그 결과로 다가오는 불안감을 억누르려는 심리가 종종 보이곤 한다. 마치 시험 전날 공부를 하면서 이 시험문제 10개를 풀고 나서 다 맞으면 내일 시험을 100점을 맞을 것 같은 주문을 거는 것처럼...

 

 그저 연인들을 위한 영화라는 소개 카피보다도, 왠지 삶의 일상을 예리하게 잘 포착해놓은 것만 같은 그런 느낌에 보고싶단 생각이 들었다.

 

 

 

p.s) 그런데 글을 쓰다가 팀버튼의 영화가 생각나서...

예전에 크리스마스 악몽을 보면서 나야 물론 재미있게 봤지만,

그 인형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처럼 영화를 만들기 위해

땀 꽤나 쏟았을 제작자들이 생각났다.

이번에 미국에서는 '시체 신부'라고 9월에 개봉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던데...

보고싶은 생각 한 편, 우리나라는 언제 쯤 볼 수 있을까란 생각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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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얼-귀로

 

화려한 불빛으로 그 뒷모습만 보이며
안녕이란 말도 없이 사라진 그대
쉽게 흘려진 눈물 눈가에 가득히 고여
거리는 온통 투명한 유리알 속


그대 따뜻한 손이라도 잡아볼 수만 있었다면
아직은 그대의 온기 남아 있겠지만
비바람이 부는 길가에 홀로 애태우는 이자리
두뺨에 비바람만 차게 부는데
사랑한단 말은 못해도 안녕이란 말은 해야지 오
아무말도 없이 떠나간 그대가 정말 미워요

사랑한단 말은 못해도 안녕이란 말은 해야지 오
아무말도 없이 떠나간 그대가 정말 미워요



♪ 나얼-귀로 ♪

(네이버에 가면 들을 수 있음->http://blog.naver.com/marxmarx21/100010525867)

 

짧은 거리이긴 하지만 오다가며 무료해서 음악을 듣곤 한다.

나름대로 최신으로 달리고 있다는 생각도 들긴 했는데,

내 음악취향을 보던 동생놈은 날 거의 원시인 취급을 한다.

 

동생이 듣던 노래를 가만히 듣다가 좋은 것 같아서

이 노래가 뭐냐고 참좋다고 했더니

자기가 한 달전에 나에게 좋다고 말했던 곡이란다.

물론 난 기억이 안났다.

 

간만에 노래를 잘하는 가수를 만난 것도 같다.

이 가수가 '언젠가는'도 리메이크 했는데, 제법 감도 좋게 불렀다.

R &B의 최절정에 다다른 것 같단 생각도 든다.

가사는 별로다.

난 이런류의 가사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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