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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2/17
    지난주 여의도에서 이런 일들이..(2)
    겨울철쭉
  2. 2006/12/15
    대우빌딩 투쟁에 연대합시다! (19일,화)
    겨울철쭉
  3. 2006/12/15
    얼마전에 한꺼번에 지운 파일들
    겨울철쭉
  4. 2006/12/15
    애니어그램 등 테스트 결과,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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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12/14
    김정환, 순금의 기억,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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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12/13
    사회적 기업-일자리 논쟁에 더해서.(4)
    겨울철쭉
  7. 2006/12/12
    그래서 '결국' 비정규직을 왜 만들어야하죠?(3)
    겨울철쭉
  8. 2006/12/11
    오호, Google의 Picasa라는 사진서비스
    겨울철쭉
  9. 2006/12/10
    12월8일의 또 다른 투쟁.
    겨울철쭉
  10. 2006/12/10
    근데 왜 굳이 청소'용역'입니까?(1)
    겨울철쭉

지난주 여의도에서 이런 일들이..

지난 주 단식농성이다, 집회다, 총파업이다 하면서 여의도에서 사는 동안, 정작 여의도에선 이런 황당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군요. 단편적으로 얘기만 듣다가 주말이 되어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정말, 여의도에서 투쟁이라고 하던 일들이 모두 바보같고 속은 것같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습니다.

 

먼저, 매일노동뉴스 기사.

누가 전선을 교란했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로드맵 타협안이 나오기까지

 

내용은 보시면 알겠지만, 노사관계로드맵을 사실상 민주노동당이 합의해주었다는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지난주 금요일 저녁에 '국회로 진격'하는 투쟁을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쑈를 한 거네요. 저들이 보기에 얼마나 우스워보였을까 생각하면 정말!

 

이 '진격'투쟁 과정에서 모두 연행되자는 택이었다는 것도 나중에야 들었는데, 현장에는 제대로 통보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럴 거면 저도 그냥 연행되었을 겁니다. 하긴, 허영구 부위원장 연행되는 자리 옆에서 조준호 위원장도 연행을 피하는 상황이었다니, 어떤 조합원들이 '모두 연행되자'라고 한다고 자리를 지켰을까 싶기는 합니다만.

 

관련해서는 필수공익사업장들에 대해서 합의를 종용하는 과정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정에 대해서는 참세상 아래 기사 참고.

 "민주노총·민주노동당, '개악'에 단호하지 않았다"  
  '로드맵' 환노위 통과 둘러싸고 민주노총·민주노동당 비판 제기돼

 

특히 이 기사에 맨 아래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달린 댓글을 보시면, 관련된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더 소개하고 있습니다. 결국, 앞에서 집회 때는 '투쟁!'이고 뒤에서는 온갖 거래를, 그것도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도 없이 자의적으로 협상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고도 '총파업'하자고 선동할 수 있나 싶습니다. 현장에서는 무노동무임금에 징계, 해고, 구속 위험까지 무릅쓰고 조직해야하는 총파업인데 이런 뒷거래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 다 알게된 마당에 누가 총파업을 조직하려고 하겠습니까. 통탄할 노릇입니다.

 

이런 와중에 민주노동당에서는 이런 일도 진행되었다는군요. 집회 중간중간 회의하러 많이 드나들던 시간에 말이죠. 레디앙 기사입니다. 
‘일심회’ 공소장 내용 '충격'
“경악 - 참담” 반응 … “사상 투철하지만 출세주의자” 표현까지

 

"일심회"가 북에 넘긴 자료 중에 당내 인사들에 대한 성향분석 자료가 있었다고 하는데, 내용이 가관이라는 것이죠. 서울시당은 어떻게 장악하고, 북핵관련 성명은 어떻게 저지하며, 심지어 '전진'에 프락션을 하려는 계획까지 있다는데 황당할 따름입니다. 저는 민주노동당 당원도 아닙니다만 주체주의자들 하는 행동에 또 한번 실망할 수밖에 없군요. 이래서 뭐 공안조작일 뿐이라고 주장한 입장은 도대체 뭐가 됩니까.

 

밑에 대우센터빌딩 투쟁과 관련된 얘기를 하면서 노조운동이 현실에 대해서 답답하고 한심한 일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었지만 이건 정말 너무들 하는군요. 게다가 지난 주 농성장에선 더 들은 이야기들은 또 이런 거였습니다.

 

1월 재계약 시점을 앞두고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가입하려고 하자 해당 사업장의 정규직 지부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받네 못받네 하고 시간을 끄는 산별노조가 있었는가하면, 비정규직에 대한 잠정합의안이 비정규직 주체들에게서 부결되자 '책임질 수 없으니 재투표로 가결시키라'고 하는 노조도 있었습니다. 어제는 저 노조, 오늘은 이 노조, 이런 식의 얘기들을 듣다가도 '투쟁은 투쟁'이라고 조직하고 구호외치고 하던 게 다 바보같았다는 생각까지 드네요.

 

위에서부터 밑에까지 노동운동이 다 왜들 이런가 싶습니다. 참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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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빌딩 투쟁에 연대합시다! (19일,화)

* 19일(화) 11시, 대우센터빌딩 앞 연대집회에 함께 해주세요! *
  
투쟁에 함께 해주시고 주변에도 적극적으로 알려주세요! 
 
대우센터빌딩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로비농성장에서 밀려난 이후에도 계속된 진입투쟁과 천막농성장 설치 투쟁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오늘(15일)에도 연대대오들과 함께 투쟁이 있었습니다.
 
이번 투쟁의 의미는 참세상 기사라든가 이 블로그에도 많이 썼기 때문에 굳이 부연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고용불안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 dw project라고 명명된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점, ▲ 지역연대 투쟁을 통해서 투쟁동력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 등이 중요한 의미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수십년 일한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깡패들에게 밀려난 우리 조합원들의 억울한 상황과 분노입니다.
 
지난 12일 천막설치 투쟁, 남대문서 항의방문
 
지난 12일(화) 진행된 연대집회에서는 천막농성장 설치를 시도했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용역깡패들이 천막을 부수고 집회 참가자를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건물에 진입하는 것도 아니고 인도에 천막을 치려한 것일 뿐인데도 용역깡패들이 들이닥친 겁니다. 이 과정에서 연대온 동지 한명은 코뼈가 내려앉고 조합원들은 손목에 금이 가고 갈비뼈가 두개나 부러지는 등 부상을 당했습니다. 가벼운 부상도 많고, 저도 용역들과 싸우다가 좀 얻어맞기도 했습니다. 핸드폰 액정도 금가고. (맞으니 열 좀 받더군요.─_━+;)
 
그러나 경찰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런 상황을 수수방관하는 것은 물론이고, 범인으로 지목한 깡패놈조차 건물안으로 '안전하게' 들여보내 주는 등, 해도 너무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래도 경찰복 입었으면 최소한 중립적인 '척'이라도 해야하는 것아닙니까.
 
그래서 지난 화요일 투쟁에서는 남대문서 항의방문 투쟁을 진행하고, 서너시간 동안 남대문서 앞에서 서장의 사과를 요구하고 앉았습니다. 경찰놈들 역시 자기집 지키는 데는 철저하군요. ("믿음주고 사랑받는"이라는 구호가 보이네요, 그렇죠, 자본에게 믿음주고 사랑에 더해서 돈도 쳐먹겠죠.)
 
 
뒤에서 지휘자인 총경이라는 XX놈은 우리 쪽이 불법행위 어쩌구하는 망발을 해서 욕을 많이 먹었죠.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그 놈은 대우건설로부터 쳐먹어도 엄청 쳐먹은 것같더군요. 요즘 참세상 블로그에 누군가 글을 올리는 '부패경찰'은 이런 놈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겁니다.
 
 
급기야 경찰은 항의방문온 참가자들을 포위하고 대치했습니다. 연행위협도 하고 말이죠, 하지만 연행하면 더 문제가 될 것을 알았는지 연행은 자제하더군요. 우리는 차라리 연행해서 너희들의 본질을 더 명확히 보여줘보라고 요구했었습니다. (여기서 전경이 사방을 둘러싼 가운데서 피에로님도 얼굴도 첨 봤네요.)
 
깡패들이 처음 침탈한 후부터 진입투쟁, 천막설치 투쟁 과정에서 부상자(그것도 뼈가 부러지고, 폐에 소화기 분말이 들어가는 등 큰 부상)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골적인 폭력이 백주대낮에 서울시내 한복판, 서울역 바로 건너편에 있는 대우센터빌딩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15일 연대투쟁 집회, 진입투쟁
 
오늘(15일,화)도 11시 연대집회를 진행하고 현장진입투쟁을 시도했습니다.
국회일정 따라가는 투쟁이, 보수정당들의 정략놀음에 국회 본회의가 연기되면서 맥없이 여의도에서 진행되는 오늘도, 바로 현장의 비정규직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이런 투쟁이 깨지고 맞아가면서, 분노에 눈물을 터뜨리면서 현실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  "청춘바쳐 일한 늙은 노동자 해고가 왠말이냐, 불량기업 악질자본 대우건설 각오하라!", 이제 각오 정도가 아니고 아주 박살을 내야합니다.
 
정문 쪽은 아주머니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후문쪽은 남성동지들을 중심으로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어머니 할머니뻘의 여성조합원들을 전투경찰들과 용역들이 한패가 되어서 밀어내고 있습니다.
 
 
전경이 지켜주는 가운데 용역들은 '안전한' 건물 안에서 우리 조합원들을 비웃고 있습니다. 공권력이 자신들을 지켜주는 데 무슨 걱정이 있냐는 듯말입니다.

 
실제로 후문쪽에서는 처음에 용역들이 막다가 용역 지휘자로 보이는 놈이 이러더군요, "야! 경찰들어오고 애들 빠져!" 이러자 곧바로 전경투입. 경찰놈들이 용역깡패의 지휘를 받는 황당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정도 되면 공권력이라는 것들이 자본의 노골적인 용역깡패임을 현실에서 '당당하게' 증명해주고 있는 겁니다.
   
다음주 19일(화) 투쟁에 연대의 힘을 모아주세요!
 
대우센터빌딩 투쟁은 매일 11시 건물 앞에서 계속됩니다. 다음 주에는 특히 우선 19일(화) 11시에 집중됩니다. 서울지역의 많은 분들이 연대해주셔야합니다. 용역과 전경의 압도적인 물리력을 물리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조합원들은 이미 결의가 되어 있는 만큼 연대의 힘이 투쟁을 지속할 수 있는 관건입니다.  특히 다음주는 대우건설 주총이 예정되어 있는 등 중요한 국면입니다. 총력연대, 집중투쟁이 필요합니다. 대우센터 집회에 동지들 손을 잡고 연대해주십시오!
 

 
이 투쟁은 눈물이 많은 싸움입니다. 지난 집회에서 류금신 동지는 노래를 하다가 중간에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난 집회에서도, 오늘 집회에서도 아주머니 조합원들은 서럽게 우십니다. 그 모습만 보면 저도 구호를 외치고, 싸우다가도 울컥 눈물이 나오고 맙니다. 오늘은 조합원 한분이 울다가 울다가 그만 기진해서 혼절해 쓰러지고 마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지휘자놈이 실실 쪼개면서 나타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참을 수가 없더군요. 집회 마무리하면서 '비정규직 철폐연대가'를 부르는데, "나서라 하청 노동자, 탄압착취를 뚧고서"이 대목에서 또 눈물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코 끝이 찡하네요.
 
정말 억울하고, 분합니다. 옆에서 연대할 뿐인 저도 그런데 당사자인 조합원들은 어떻겠습니까, 30년을 일하고 청춘을 묻은 건물에서 쫒겨나는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눈물이 안나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겠죠. 하지만, 조합원들, 꿋꿋하게 결의하고 싸우고 있습니다. 반드시 투쟁하고 승리할 것으로 믿습니다.
 

  
도시의 서비스산업 불안정노동자의 힘 ; "연합적 힘" 
 
이번 투쟁의 중요한 힘이 연대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것은 도시의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는 불안정노동자들이 가질 수 있는 역량으로서 '연합적 힘'으로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동의 힘>에서 실버가 인용한 라이트의 개념을 빌어 '연합적 힘'과 '구조적 힘'을 구분한다면 말이죠.)
 
이들은 현장 안에서 구조적 힘을 거의 갖고 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방식의 투쟁을 전개하는 데나, 다른 투쟁방식의 힘을 얻는 것은 지역의 노동자(그것도 비슷한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자--전비연이 헌신적으로 연대하고 있고 같은 노조에 속한 고려대 청소용역조합원들이 계속 결합합니다.--, 해고노동자--전해투와 코오롱,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 동지들-- 등)가 연대해주는 힘입니다. (구조적 힘을 가진 노동자들은 좀처럼 연대가 되지 않더군요.) 또한 노동자운동 뿐 아니라 학생운동, 사회운동이 활발하게 연대하는데 이것은 이 투쟁의 주요한 힘이 연합적 힘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만큼, 이 투쟁은 우리 노동자운동의 연합적 힘을 확인하는 계기이자 사회운동의 연합적 힘을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연대집회 참석만이 아니라 이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부각하기 위한 노력이 사회운동으로부터 함께 진행되어야하고, 이 과정에서 이 투쟁이 단지 한개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는 광범위한 불안정노동자들의 상황을 드러내기 위한 투쟁이 되어야합니다. 훨씬 정치적인 의미로 확장되어야 투쟁자체도 승리할 수 있고 투쟁의 의미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노조 운동이 넘어야할 한계로 평가되어온 개별 사업장 단위만의 전투적 투쟁을 넘어서는 신자유주의 반대-불안정노동 반대투쟁으로 확장되어 갈 것입니다.
 

 
한편, 대우건설측의 노조파괴 시나리오인 dw project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이는 조합원 탈퇴공작 이후, 실제 투쟁에서 이탈하여 조합을 탈퇴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를 주도한 자들은 공공연맹(이제 공공노조로 전환) 전국시설관리노조에 가입하여 지회를 구성한 상황입니다. 최근에는 조합원들에게 알리는 글이라는 걸 냈습니다. 한쪽에서는 같은 조합에 가입되어 있었던지 불과 한달도 안되었고, 이제 다시 공공노조에서 만나게된 조합원들이 용역깡패들에게 맞아가면서 투쟁하고 있는데, 내용이 거참. (누군가 공공노조 홈페이지에 올렸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친절하고 상냥한 미소', '서비스 정신', '고객 마케팅 서비스'가 무슨 말입니까? 그러면서 "이제 깨끗이 잊고 다시 태어납시다"라니, 무엇을 잊으라는 것인가요. 오늘 진입투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탈퇴를 주도한 양반들이 동료들과 희희닥거리면서 밥을 먹으러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이럴 수 있나 싶었습니다. 정말, 노조운동이란게 뭐 이러냐는 생각을 매일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예, 하지만 모든 것을 체념만 해서는 안되겠죠,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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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한꺼번에 지운 파일들

피에로님의 [10년쯤후에?] 에 관련된 글.

이런 사적인 글에 트랙백 건다는 것이 좀 그렇지만.(죄송;;) 피에로 님의 글에 붙여진 뮤직 비디오는 '만약에 우리'라는 곡이군요. '연애시대', 감우성, 손예진이 주연했던 TV 드라마 테마.

정작 TV에서 할 때는 많이 보지 못해서 여기저기 뒤져서 동영상 파일들을 모두 모아두었었죠. 하지만 (왜 그랬을까) 결국은 보지 못했고, 얼마전에는 폴더 통째로 삭제해렸습니다. 바보같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드라마OST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이란 곡이 당시에 더 알려졌던 것같습니다. 저도 그 노래가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엔 그 노래도 듣기 쉽지 않더군요.(아마 이 포스트를 볼 일은 없겠지만 당시에 그 노래를 좋아했던 어떤 사람에게는 요즘 참 미안한 일이 많습니다만..)

드라마는, '슬프지만 진실',(이건 델리스파이스 3집의 제목이군요.) 이렇게 말하는 것같습니다. 그렇죠, 슬프지만 진실. 세상엔 그런 것들이 있고... (거기에 비하면 드라마의 결론조차 불공평한데다가, '슬프지만 진실'엔 미달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여전히 슬프지만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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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어그램 등 테스트 결과, 흠흠

아침님의 [내가 이래서 설문은 못믿어...] 에 관련된 글.

역시, 이런 건 보면 안해보곤 못참지.
http://my-happy.com/enneagram.htm 에 들어가서 테스트.

결과는,
완벽주의자     90% 
성취욕이 강한 사람     80%
관찰을 좋아하는 사람     85%
호기심이 많은 사람     75%
등등등

'완벽주의자'가 가장 높군요. 그담이 관찰을 좋아하는 사람과 성취욕 등등.
그런데 다 어느 정도 예상되는 수치같군.

한편,
'우울과 몽상'님 블로그, '성격자가진단' 에 소개된 테스트.
테스트해보기


AAABA
몸이 머리를 따라주지 못하는 타입 (으악! 역시 스포츠엔 젬병)

▷ 성격

사회의 모범생이라 할 만큼 종합적인 정신력이 높아 누구도 흠잡을 일 없는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타입입니다. 그런 생활 태도 속에서는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해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 회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생활 태도만 고수하다 보면 한숨을 돌릴 곳이 없어집니다. 낮에는 회사, 밤에는 가정, 휴일에는 사회참여 활동,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에 아무리 정력적인 타입이라 해도 어느새 지치고 피로가 쌓이기 마련입니다. 모두 조금씩 신경을 덜 쓰거나 비교적 중요도가 떨어지는 부분은 아예 과감히 버리도록 합시다.

그밖에 사항(상대방이 이런 타입이라면, 등) 더 보기

 

이것도 짜증나는 성격입니다, 그려.

하지만 이런 테스트 결과들은 너무 단순해서, 사람들의 복잡다단한 내면들을 이런 몇가지의 유형으로만 판별하려하다보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을 것같다는 생각은 드는군요.(이렇게 스테레오타입을 제시하는 것이 부당한 편견을 고착할 수 있다는 얘기.) 위의 유형들과 많은 부분은 유사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 (어쩌면 더 많은 부분이) 전혀 다를 수 있으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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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순금의 기억, 별

<김정환 시집 1980~1999>를 읽다가, 말하지 못한 구절들을 위해 싣다.


순금의 기억

온몸이 몇천만 도로 타면 시체의
기억을 태워버릴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아닌, 純金의
기억, 아 기억만을 후대도 아닌,
손닿지 않고 보이기만 하는
보이지 않고 느껴지기만 하는
느껴지지 않고 간직되기만 하는
간직되지 않고, 있는
그런 순금의 보통명사를 남겨줄 수 있을까?

-- 시집 <순금의 기억>, 1996.「 제10부 세기말의 절벽 」중
정념을 잿빛 개념으로 탈색하는 것보다는, 나의 모든 것이 내가 아닌 '純金의 기억'이 된다면 찬란할 것같다. 순금의 보통명사로.




난 요새 별을 보면
뭔가 배경이 있는 것 같아
뭔가 어긋나고 있거든
그게 맞는 것같아
그리고 진실은 항상
참담한 것 이상으로 위안이 되지
어긋난다는 것 그리고 이유가 있다는 것
그게 의미인 것같아 죽음 앞에서는
빛의 속살이 어둠의 속살이
따스한 기쁨 아닌가

-- 시집 <희망의 나이>, 1992 「제2부 사랑노래」중
시가 쓰여진 1992년, 그때 '장기80년대'는 패배로 마무리되었지만 나는 대학1학년, '희망의 나이'였다. 지금, 진실은 참담한 것(이기도 하며, 또 그) 이상으로 위안. 때로는 참담한 것들만을 진실로 대면하게 될 때, 그것은 별로 위안이 되지는 못한다.



김정환 시집 - 1980-1999
김정환 (지은이) | 이론과실천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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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일자리 논쟁에 더해서.

체게바라님의 [비정규직 만들자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에 관련된 글.

중요한 쟁점이고 토론 과정이 의미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사실 제가 빈곤, 사회복지나 이쪽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때때로 관심가지는 수준이라서 인식이 그리 구체적이지는 못합니다. 요즘 對국회투쟁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정신없네요, 잠깐 짬내서 씁니다.

체게바라님 글에 트랙백을 건 글이지만, 밑에 댓글 주신 손님분과도 토론입니다.

보육, 간병 등 주체들의 문제제기의 성격

일단, 손님께.
제가 보기에 간병(의료), 보육 등에서 영역을 분명히하라는 요구는 노조의 조직이기주의 같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현재 진행되는 자활사업 전반이 저임금-불안정노동자를 양산한다는 문제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철폐하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조건을 인정한다는 점, 또 한편으로는 △자활사업이 노동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개조되어야한다고 보지만 직접적인 해당분야의 운동주체가 아니기 때문에(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말을 아낄 수밖에 없는 조건 등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드는군요. 제가 발언의 당사자들이 아니어서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이제까지 논의를 진행하던 맥락에서 보면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예상이 됩니다.

그러다보니 보육, 간병 등의 일자리를 저임금-불안정노동으로 고착시킬 우려가 다분한 현재의 정책에 대해서 관련주체들의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는 것이겠죠. 저는 관련주체들이 자기 문제를 중심으로 제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보육, 간병에 관심가질 주체, 투쟁 당사자도 없을 뿐더러 다른 직종에 대해서는 말하기 쉽지 않은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제가 너무 후하게 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암튼 현실의 논쟁에서는 그렇게 드러날 수도 있겠지만 '영역구분' 자체가 그 조직들이 주장하는 핵심은 아닐 듯하여서 말입니다.)

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의 분리가 가지는 문제

다만 말씀하신 내용 중에서 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의 일종의 '역할분담'에 대한 비판은 많이 동감합니다. 특히 노조 차원에서는 해당 분야의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중심으로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넘어서야한다고 봅니다.(그러나 이들 주체들은 적어도 '조합원으로 가입한', 혹은 '이미 채용된' 노동자들을 위해서만 주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아주 편협한 의미에서 실리주의는 넘어서고 있다고 봅니다. 역시 후한 평가인가요? ^^;) 따라서 노조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생산영역의 전화에 대해서, 구체적인 고민을 진행할 필요도 물론 있는데, 이것은 현존하는 형태의 노동조합으로는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보다 사회운동적인 노동자운동이 필요하다고 할 때, 그런 방식으로 조직이 전화될 필요가 있을 것같습니다.

그러나 보육교사회가 보육노조로 전화하면서 가졌던 문제의식을 저는 단순히 기각할 수만은 없다고 보는데, (제 나름대로 거칠게 요약하면) '당사자들의 현실에 노동조건 개선을 병행하지 않고서는 보육 자체를 전화시키는 보육운동도 불가능하다'는, 기존의 보육교사회운동에 대한 평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육을 쟁점으로 하는 일반적인 의미에 '사회운동'을 진행하기에는 보육교사회라는 형태가 어쩌면 더 유효할 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노동조합 형태로 전화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것을 단순히 퇴행이라고 말할 수 없는 조건이 또한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각각의 운동형태/양식이 가지는 한계를 어떻게 넘어서냐하는 것이겠죠.
** 여기서 사회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구별이라는 것은 (노동자운동도 사회운동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매우 부적절하고 맘에 안드는 용법이지만, 편의상 그냥 사용하겠습니다.
 


사회운동의 실천적 무능력에 대한 지적도 공감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기 때문에 '역할분담'이 아니라, 운동의 방식에서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사회운동-노동자운동 주체들이 '융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렇다고 각자의 운동이 가진 고유성이 소거될 수는 없겠지만요.)  다만 재생산노동의 사회-국가 책임에 관해서는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 쟁점이 있겠죠. 저는 국가 책임과 동시에 노동자-민중통제를 제기해야한다고 보는데, 이 '국가책임'이라는 것은 저도 여전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공공성이라는 쟁점

이것은 '사회공공성' 담론에 대한 쟁점과도 연결될 것입니다. '사회공공성'이라는 주장이 국가책임만 주장해서는 코포라티즘의 다른 판본이 되기 쉽상일 것이라는 점에서 노동자-민중통제를 적극적으로 요구해야한다고 봅니다. (이것도 한계적일 수는 있을 것이라 고민입니다.--이 고민이 이 논쟁에 가장 심층의 쟁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 다만, 현실에서는 예를 들어 △ 지자체의 사회복지운영위에 대한 개입, △ 각 사회복지기관('시설'들만이 아니라)에 대한 지역 노동자-빈민의 실질적 통제 등등이 제기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역시 제 전문분야가 아니라 ^^;;)

여기서 체게바라님의 문제제기와도 연결되는데요,
코포라티즘적인 방식이 아니라면, 빈곤화가 심각하게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정세 하에서 '사회복지'라는 이름으로 표현되는 기초생존권 보장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라는 것이 저도 고민입니다.

베네수엘라의 사례 ; 민중연합기관(?)

다만, 시사적인 사례로 베네수엘라 사례를 볼 수 있을 것같습니다.

관련된 링크들 (앞의 세개는 NeoScrum님의 블로그, 뒤의 한개는 참세상 기사)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레닌인가?
▷ 바리오 아덴뜨로에 가다
▷ 라 베가 맛보기 - 3
▷ [손호철의 남미이야기](3) - 민중참여모델     
 대안수퍼마켓, 대안학교, 대안방송국... 대중 참여가 혁명 동력
 “혁명을 만드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민중이다”


글 들은 보시면 되겠는데, 핵심적으로는 활동가들이 지역공동체에 들어가서 의료, 교육, 언론(방송), 생산과 유통까지 사업을 하는데, 이런 활동들이 빈곤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존을 가능하도록 하는 작업일 뿐 아니라, 강한 의미에서 "의식화" 작업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이러한 사업을 하는 지역적인 민중기관을 창설하는 것이죠. 그 결과로 이러한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공동체가 강화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급진화하고 주체화된다는 이야기죠.

차베스 이후에는 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혁명은 이들 공동체의 민중들이 스스로 수행한다는 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업단위와 공동체가 민중이 주체가 되어 운영되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죠. (정부가 자금을 지원한다고 해서 운영을 독점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이런 점에서 저는 이런 모델을 손호철 교수가 '민중참여모델'이라고 보는 것에는 비판적입니다. 민중이 주체가 되는 방식이라고 보는 것이 운동의 지향을 더 적합하게 설명할 수 있지요, 참여는 이미 남이 갈아놓은 판에 적극적으로 들어가준다는 의미니까말이죠. 게다가 '참여정부'와 '참여연대'까지 연상되는군요.)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으로 지역의 反빈곤운동

베네수엘라의 방식이 남한에서 그대로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방향에 있어서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에서 빈곤층의 생존권을 확보하는 사회운동의 방식이란 것이 단지 '생계'를 보완하는 방식이 아니라, 진정한 '자활'이기 위해서는 단어의 의미( "스스로 살아감")이 강한 의미에서 적용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원하는 저임금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이 고통의 원인을 인식하고 투쟁하는 과정으로 나가야하지 않는가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생존권을 쟁취"해야할 것 아닙니까. 그 빈곤의 원인이 신자유주의일진데 그것을 제거하는 운동없이 빈곤이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당장은 재원이 마련되기 때문에 이걸 받아서 사업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이 유리하게 판단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건 너무 실용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그런 돈을 공짜로 푸는 이유는 없고, 사업적 목적하에 이루어지는 데, 그것은 이미 누차 지적된 대로 노동연계복지의 고유한 문제점 외에도 이러한 분야에 사적 자본이 진출할 수 있는 시장공간을 창출하고, 인구증가율둔화 속에서 장기적으로 여성노동력을 노동시장에 진출시키는 등의 구체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개별 행위자 입장에서는 선의로 사회적 기업을 구성하고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수준에서는 정부가 목적하는 사업계획을 대리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선한 결과까지 담보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물론 자활현장 현실의 어려움을 말씀하신다면 제가 할 말은 별로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자활기관을 만들고 운영해온 운동들이 의미없다는 것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현실의 프로그램이 이렇게 구성되어야한다는 구체적인 수준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역에서 빈곤층을 조직하는 운동이 이렇게 되어야하지 않겠냐는 추상적인 의견일 뿐이니까 말이죠. 그러나 그 '방향'이 어쩌면 결정적일 수도 있지 않냐고 보는 입장인 거죠.

(다만 이런 방향--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의 조직화) 관점--을 전제한다면 어쩌면 학교 청소용역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또다른 의미에서 '실용적으로' 의미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청소 노동자들이 신자유주의에 의해 고통받는 비정규직노동자로 자신을 인식하도록 조직하고--실제로 그런 노동자가 되는 것이니까--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주체로 조직하려는 노력을 병행한다면 말이죠. 그러나 이 경우에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조직이 장기적으로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요구를 정부를 상대로 전개해야한다는 어려움이 발생할 것입니다. 또 사회적 기업이라는 조직형태가 이러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지역차원의 사회운동 기관이 될 수 있을지 확신하기도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그것이 '기업'보다는 '조합'적인 형태라고 하더라도 조합원의 배타적 이해를 위한 것이라면 기업과 별로 다를 바 없을 것같습니다. 다만 사회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연합적 성격을 강하게 가지는 조직이라면 다른 가능성이 아직 열려 있겠죠.)

차이와 토론

그렇다고 제가 '정책적으로', '좋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정책담당자'도 아닐 뿐더러 지역단위의 비정규직 조직사업 담당자거든요.) 다만 제가 만나는 사람들이 다른 분들과 다를 수는 있겠죠. 주로 제가 언급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청소용역노동자들, 시설관리노동자들, 민간위탁 환경미화원들, 지자체 상용직, 일용직, 이런 분들이 제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보니, 문제를 접근하는데 있어서도 강조점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만나는 사람, 관심의 차이로 인한 인식 '차이' 이상으로 토론할 거리가 여전히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는 건데요, 핵심적으로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라는 정세가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있다는 시대인식, 이에 반대하는 노동자운동-사회운동이 대안일 것이라는 점, 이런 원칙들에 입각해서 토론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점들을 공유한다면 각각의 상황에서 공통의 인식도 상호교통 속에서 만들어 갈 수 있겠죠.


** 삼성 이야기는 자본측이 이 판에 그런 식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맥락에서 말한 것이니까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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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국' 비정규직을 왜 만들어야하죠?

체게바라님의 [학교 청소사업에 대한 또다른 견해] 에 관련된 글.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고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차원에서 학교 청소용역 관련 내용이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맥락을 지적해주셨습니다. 그런 맥락은 잘 몰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더 문제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군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예를 들어 교육부가 예산을 지원한다면, 학교 단위로 지원해서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안되는 건가요? 아니면 더 좋은 방법은 (지침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각 개별 학교장을 엉터리로 법적 사용자라고 우길 것이 아니라) 교육청이나 교육부가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직접 고용이 되어야겠죠. 교무보조, 과학보조, 조리원 등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실상 교육부/교육청 지침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학교장이 '법적인' 사용자로 되어 있는 바람에 제대로된 노동3권을 보장받고 있지도 못합니다. (교육부나 교육청은 절대로 자신들이 사용자가 아니라고 우기고 있고, 노동위원회도 그렇게 인정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노조 만들면 뭐합니까, 실질적인 사용자들은 나몰라라하고 권한없고 힘없는 학교장 앞에 놓고 교섭하고 하소연해봤자 거든요.(교섭하러가면 학교장이 오히려 노조에 하소연합니다. 자기는 지침대로만 움직이고 권한이 없는데 왜 자기를 괴롭히냐는 거죠, 거참, 사용자의 하소연 듣는 황당한 상황 상상해보세요.) 그런데 여기서 간접고용까지 가기 시작하면 그나마 실권없는 학교장마저 자기는 교섭상대가 아니라고 빼겠죠. 우리나라 노동법이 그들 사용자 모두를 노동자들의 교섭요구와 투쟁으로부터 보호해주거든요.

사회적 기업이라고 노동자의 요구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간접고용 구조 속에서 저임금을 강요하는 사용자로 노동자들은 사회적 기업을 직접 대면하게 될 겁니다. 이것을 자활참여자의 노동권을 박탈한 방식으로 막으려고 하거나 혹은 '선량한 의도'를 앞세워 억누르려고 하면 더 큰 모순이 폭발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회복지기관에서 벌어지는 투쟁들이 이런 식이죠.)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용역)

이런 말도 사실 좀 그렇지만, 비록 비정규직이라도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의 차이는 큽니다. 최근 투쟁이 터진 대우센터빌딩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상황을 보면, 용역제도라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건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올라온 이 블로그의 글 몇개를 참고하세요.)

2006.11.25 | 서울시-산하기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릴레이 단식농성 & 대우센터 투쟁

게다가 공공부문에서도 그 차이는 제도적으로 벌어지는 데, 최근 정부의 "공공부문비정규직종합대책"(06.8.9)에 따르면 직접고용의 경우 청소, 경비 등의 '단순업무'에 대해서 중기협이 발표하는 '보통인부노임단가'를 기준임금으로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접고용 용역의 경우에는 낙찰률을 87.7%까지 하락시키는 것을 인정하고 있죠. 이것은 임금차이로 직결됩니다.결국 같은 업무라도 공공부문에서 직접고용-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임금차이는 제도적으로 12.3%가 발생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문제는 더 있습니다. 임금은 12.3%가 삭감되지만 용역 사업자가 차지할 이윤+일반관리비가 15% 가량 필요하기 때문에 소모품 사용과 인원을 줄이는 방식이 병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결국 부실한 노동조건과 과도한 노동강도로 나타나게 됩니다.) 당연히 공공부문에서도 사용자들은 간접고용을 선호하죠, 사용자 책임도 면하죠, 돈도 조금 줘도 되죠, 언제든지 업체하고 민법상 계약해지만 하면 자를 수 있죠.


한편, 정부의 "공공부문비정규직종합대책"은 그 외에도, 상시업무이지만 기간제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sic!) 사유로 "⑤ 고령자고용촉진법 제2조 제1호의 규정에 의한 고령자를 사용하는 경우, ⑥ 정부의 복지,실업대책 등에 의한 일자리 제공으로 인력을 사용하는 경우"등을 명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회적 일자리, 사회적 기업 일자리는 무한정의 비정규직 사용이 가능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적 일자리 방식의 '용역' 고용이 청소하시는 노동자 당사자에게는 어떤 결과를 낳겠습니까?

 

왜 좋은 일하자고 일자리 만든다면서 좋은 일자리 안 만들고 비정규직, 그것도 용역만 만드냐는 겁니다. 그것도 학부모(그러나 빈곤한)일 것이 뻔한 중고령 여성 노동자를 최저임금 수준의 비정규직으로 만들면서 말입니다. 좋은 일자리 만들면 더 좋은 일 하는 것같고 기분도 좋을 텐데 말이죠. 흠흠.

사회적 일자리, 사회적 기업

그리고 사회적 일자리, 사회적 기업이라 해도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핵심적으로는 공공서비스, 사회복지의 확충을 이들 서비스의 사유화를 통해서 민간기업을 육성한다는 구상이 문제가 되는 것이겠죠. 공공서비스라면 국가가 직접 책임지고 하면 될 것이고, 만약 그것이 관료적으로 통제되는 것이 문제라면 그것의 '운영구조', '지배구조'를 지역의 노동자 민중, 수급자 빈곤층이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개방하면 될 문제입니다. 사회적 기업이니 이런 식으로 사적 자본이 '투자'할 공간으로 만들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사회운동이 개입하는 방식의 사회복지 서비스 확충이 가능한 방식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건 김대중-노무현 신자유주의 정권들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연계복지workfare와 깊이 관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 분야에 사적 자본의 투자공간을 확충하고, 여성인력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시도들과도 모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런 맥락은 제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더 잘 아실 것같으니 생략하죠. 다만 '사회적' 기업이라는 식으로 아무리 '사회'라는 말을 수백번 가져다 붙인다고 해도 사적 자본의 투자공간을 여는 맥락일 뿐이라는 겁니다. 삼성 같은 기업이 간병, 보육 등 이런 분야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오래전부터 '사회공헌'을 빙자해서 해오고 있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씨를 뿌렸으니 이제 수확하려고 하겠죠. 삼성방식으로 말이죠.

관련해서는 아래 글이 참고가 됩니다.
[월간 사회운동 2006년-9월호]

빈곤과 불안정 노동의 악순환 구조를 철폐하자

- 사회적 기업, 사회적 일자리 정책의 위험성


좋은 일자리 만들기

일자리 만들기 좋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일자리 만들어봤자, 이들 업종과 이 업종에 주로 종사하는 주로 저임금에, 주로 여성에, 주로 중고령인 노동자들의 처지는 항상 그 수준에 머물게 됩니다. 오히려 같은 일이라도 정규직으로, 제대로된 대우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공공부문에서부터 확인이 되어야 좋은 일자리가 민간부문에서도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학자들이 외국 사례를 들어 말하는 것처럼 공공부문이 '모범적 사용자good employer'가 되어야한다는 말입니다.

쓰다보니 좀 장황하게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보호된 노동시장'이 필요하다면 국가가 '괜찮은 공공부문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통해서 가능하게 해야한다는 것이고, 사회운동적인 방식이 되려면 이러한 공공서비스 운영에 지역의 노동자-민중-빈곤층이 사회운동과 함께 개입할 수 있는 방식을 요구해야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단순하게 처음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청소 노동자들을 굳이 '용역'으로 할 이유가 전혀없습니다. 같은 돈 들여서 왜 '용역'으로 씁니까? 그런 용역 받아서 '사회적 기업'의 기반을 만들어봤자, 맨날 그런 일자리만 만들고 다닐 것같습니다.


** 글이 다소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쓰다보니 그냥 글이 나가는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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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Google의 Picasa라는 사진서비스

구글의 Gmail부터 시작해서 데스크탑 검색, 가제트 등 각종 서비스 애용자인데요, 드디어 사진서비스인 Picasa에 도전! 훌륭한 서비스군요. 일단 구글 계정이 있으면 바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 Picasa 사이트 가기

인터페이스나 이런 건 사실 좀 불편하고, 역시 웹 유저빌리티(Usability) 구성하는 건 남한이 앞선다는 생각은 다시 하게 되는군요.(흠, 한때 IT업체 근무했던 경력으로 평가하기로. ㅋ)

Picasa가 가장 좋은 점은 그림을 쉽게 올릴 수 있고, 250메가 용량을 기본(무료)로 제공한다는 점이지요. 덕분에 블로그에 사진 올릴 때 어디에 올릴 지 고민하던 저같은 블로거들에게는 좋은 대안이 됩니다.(저같은 경우는 진보넷 멤버 게시판에 하나씩 올렸었더거든요, 사진이 많으면 만만찮은 노가다가 됩니다.) 사진을 올린 담에 웹에 공개할 수 있기 때문이죠.

아래는 Picasa에 올린 그림으로 붙여본 이미지. (뮤지컬 Miss Saigon 앨범 스캔이지요.)
 
 
흠 잘 올라온 것같군요.

Picasa 프로그램이 사진보정 기능같은 것도 제시하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모로 편리할 듯.

글을 쓰고 나니 구글 서비스 광고처럼 되어버렸군요. -.-;;(전 구글에  인적관계는 없습니다.) 암튼, 블로거들이 사용하는데 편리할 것같으니 참고들 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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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8일의 또 다른 투쟁.

노동법 개악안이 국회를 통과한 12월8일(금). 그날 오전에는 언론에는 나오지 않은 또 하나의 투쟁이 서울 한복판에서 있었습니다. 지난 주 용역깡패의 침탈로 로비 농성장에서 밀려난 서울경인공공서비스노조 대우센터빌딩 청소, 보안 등의 간접고용 용역노동자들의 투쟁이었습니다.

11시 집회를 진행한 후 다시 한번 진입을 시도하는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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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 관련기사 :
대우건설, 용역 150명 동원해 하청노동자에 폭력행사
대투위, “우리의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날 투쟁에도 침탈 첫날처럼 여전히 용역들이 진입을 가로막고 있었고, 그 용역들을 전투경찰이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장투사업장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되었지만, 용역깡패들을 전투경찰이 '보호'하는 장면은 국가권력의 본질을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깡패투입 과정에서는 출동에 30분 걸린 경찰은 우리가 집회를 시작하면 5분 내로 달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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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투쟁에서 몇명의 조합원들이 코뼈가 내려앉고 허리를 다치는 등 부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전투경찰은 용역깡패들을 '보호'하고 있죠.

전경과 용역들이 연대하는 마당에 반 이상은 여성들인 우리 조합원들과 얼마 안 되는 연대대오의 물리력으로는 진입할 수 없었습니다. 이날도 용역과 전경의 폭력과, 아들뻘, 아니 손자뻘 되는 어린 용역깡패들의 욕지거리를 들어가면서 우리 조합원들은 투쟁했습니다.


급기야 몇몇 아주머니 조합원들은 서럽게 눈물을 흘리십니다. 몸싸움을 하다가 잠시,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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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 사측은 이 건물이 지어질 때부터 일해온 노동자들을 하루 아침에 해고했습니다. '우리자산관리'라는 자산관리 업체를 중간에 끼고 용역사와 다시 계약하는 이중의 간접고용을 통해서 고용을 불안하게 만들더니 결국 해고에 손배, 가처분, 용역깡패, 공권력까지,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순'은 이미 '우리자산관리' 사장실 점거과정에서 발견된 dw project라는 문건을 통해서 이미 확인되었던 내용들입니다. 저들의 시나리오를 다 알고도 당하는 심정, 극악무도한 노동탄압 시나리오가 나와도 그냥 밀어부쳐도 상관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입니다.
참세상 관련기사 : 대우건설, 하청 노동자 노조 파괴 공작 드러나

(한편, '우리자산관리'라는 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우건설은 올해 초에 이 회사를 설립한 이후에 대우센터빌딩과 같은 부동산 뿐 아니라 채권 등 금융자산까지 '우리자산관리'에 맡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대우건설이라는 법인기업이 스스로 금융화하기 위해 전문성을 제고하는 것이지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주요한 특질로서 산업자본의 금융화의 현장인 셈인데, '우리자산관리'가 설립된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이러한 금융화가 어떻게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지 보여줍니다. 인건비를 후려치고 금융적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더 상징적인 것은 대우건설이라는 회사가 IMF금융위기 이후 공적자금 투입으로 회생한 후 금호에 최근 인수되었다는 점인데,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재벌들에게 금융/비금융적 이윤을 보장하는 과정이라는 것이죠.)

이날 투쟁과정에서도 사람들은 안경이 날아가고 채이고 밟히고, 많이 맞기도 했습니다. 자기가 일하던 직장, 그것도 평생을 일해온 직장에서 이런 식으로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이날 투쟁을 마치고, 정리하는 데 지하철무가지 전면광고가 눈에 들어옵니다. 비정규법안을 통과시키고 이제 노사관계로드맵까지 통과를 앞둔 이 날, 노동부가 낸 이 광고에는 "비정규직을 위한 능력개발, 아낌없이 지원해 드려요!"라고 합니다. 화가 나다가 어처구니 없어 기가 차 버렸습니다. 이런 개만도 못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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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제 농성장에서 밀려나서 2라운드를 맞았지만 끈질기게 투쟁하고 승리할 겁니다. 현장 진입을 위한 투쟁 뿐 아니라, 수십년 일한 늙은 노동자를 용역깡패를 동원해서 거리로 내모는 자본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정의)운동'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과정 자체가 '우리자산관리'를 통한 금융화과 관련되어 있다면 이에 대한 투쟁도 전개할 필요가 있겠죠. 서울 한 복판(서울역 바로 건너편이 바로 이 건물입니다) 에서 벌어지는 이 투쟁, 연대의 힘으로 반드시 승리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오전 집회가 끝난 후 여의도로 이동했습니다. 여의도에서 그날 저녁까지의 상황은 많은 기사들이 있으니 생략. 다만, 전날 이런저런 회의 참가자들에게 다음날 일정 중에 11시에서 한시간 정도만(원래는 선전전이 예정되어 있던 시간대였습니다.) 대우센터 앞으로 가자는 제안을 했었더랬습니다. 다음날 11시, 저는 대우센터로 갔지만 대부분은 결국 국회앞에서 멀뚱히 앉아만 있었죠. 짜증납니다. 국회 상황이 대충 예상되는데, 국회 앞 대오가 일부라도 함께 연대해 주었다면 또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회 앞 투쟁대오는 저녁 7시가 되어서 국회로 달려갔죠.(그런데 왜 밥먹고 달려가냐는 말입니다.참.) 하지만 깨지더라도 이렇게 깨져서는 안되는데..하는 고민이 정리집회를 하는 동안 머리 속에 가득했습니다. 아, 저 휘황찬란한 국회를 거리의 불꽃에 휩싸이게 해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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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더 우울한 이유들.
 
대우센터빌딩 농성장이 용역깡패에게 털리기 전날, 연대단위 회의를 갔다가 조합원 한 분을 만났습니다. 일전에 연맹에 가입을 신청했던 한 청소용역 노동조합의 사무국장이셨던 분입니다. 그 청소용역 노동조합은 수차례 빠른 처리를 요청했지만 연맹 가입이 늦어지면서, 지원도 이루어지지 않고 조합원들은 (민주노총 조합원도 아니라는 사실에) 동요하다가 결국은 위원장이 사측과 협조하는 방향으로 돌아섭니다(지금 그 노조는 한국노총에 가입하고 말았습니다.) 이 분은 그 과정에서 해임되셨죠. 연맹 가입이 몇주를 끌게 된 과정에는 어떤 산별노조 지부로 가입하느냐 독자적인 노조로 가맹을 받느냐라는 논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조합원분은 이후에 또 다른 어느 사업장에 청소용역 노동자로 취업하셨다가 노조활동을 이전에 했던 것이 알려져서 불과 두달만에 해고되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서울경인공공서비스노조에 조합원으로 가입해있습니다.

당시, 그 노조의 가입과 관련된 문의를 받고 안건 상정을 요청했던 저로서는, 중간에 담당을 넘기기는 했지만 처음 상담연락을 받았던 저로서는 죄송하고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예상되는 상황(결국 현실이된 상황)에 대한 수차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연맹가입 문제가 처리가 되지않고 그 후에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나를 떠나서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조합원은 묻습니다. "이 과정에 대해서 공식적인 평가는 있었나요?"

아니요, 당연히 없었죠. 그런 과정이 공식적인 평가와 반성이 이루어지는 조직이라면 처음부터 그렇게 처리했을까요? 차마 제 입으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공식적인 평가와 반성은 없었으나 이 과정이 다른 이유로 해서 그 산별노조의 '공문'에는 언급된 적이 있습니다. 여차저차해서 저를 징계하라는 내용의 공문이 그 산별노조로부터 연맹에 접수된 적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참에 아예 공개적인 평가를 하자고 했었지만 결국 우야무야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더 우울한 것은, 지금 대우센터빌딩의 투쟁과도 연관된 사실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측의 노동탄압문건인 dw project에 언급된 내용 중에 보면, 일부 조합원의 이탈, 투쟁력 약화, 분열 조장 등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실제로 대우센터 조합원 중 일부가 '투쟁방침'에 이견을 제기하면서 탈퇴하고 자신들은 고용을 보장받습니다. 그들은 위에서 말한 그 산별노조에 조합원으로 가입했죠. 신속하게. 그리고 투쟁하는 조합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면서 회유해왔습니다.

자, 이런 일들이 투쟁이 이루어지는 현장 근처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입니다.
서울경인공공서비스노조는 얼마전에 출범한 전국공공서비스노조(공공산별노조)에 집단가입을 신청했습니다. 이제까지 그 산별노조의 반대로 공공연맹 가입은 이루어지지 못한 서울경인공공서비스노조가 산별노조에는 가입할 수 있을지 두고볼 일입니다. 이번 일부 조합원이 탈퇴 과정에서도 주요한 공격의 근거가 '서울경인공공서비스노조는 민주노총 소속 조직이 아니다'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건 중요한 쟁점입니다. 대체 산별노조가 조합원을 가려받냐는 문제제기를 누가 하실지도 모르겠는데, 그러니 두고 볼일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이런 것을 두고 보아야하는 상황에다가, '그 산별노조'가 무엇인지 밝히면서 쓸 수 없는 조건, 아마 이런 글을 쓴 것을 보면 다시 징계요청이 들어올 것이 뻔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상황을 생각하니 또 우울해집니다. 참, 일들이 복잡하기도 하지요. 운동이란게 뭐 이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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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굳이 청소'용역'입니까?

학교 청소, 누가 할 것인가?
[김정명신의 학부모의힘] 청소 경험이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참세상 기사에 대한 트랙백.

학교청소가 힘들고 아이들이 제대로 하지도 못하니 '청소용역'을 주어야한다는 주장글이다.

그런데 하필 청소'용역'인가? 청소는 직접고용된 정규직 노동자가 하면 안되나? 왜 비정규직이 대명사이고 가장 취약한 고용형태, 간접고용인 '용역'일까?

우리나라 노동시장 구조에서 이 분야에 일자리를 만든다면 대부분 나이드신 중고령 여성분들이 하게 되실 것이 뻔하다. 근데 이게 왜 '용역'이라야 되냐는 것이다.

이미 학교 현장에서는 정규직 교사와 행정실장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업무가 비정규직이다. 사무업무는 교무'보조', 수업준비 관련 업무는 전산'보조', 실헙'보조' 등, 반드시 필요한 업무들이 모조리 '보조'라고 규정되고 주로 여성들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있다. 어린이들 밥하는 중요한 급식 일도 모조리 비정규직 여성이 한다. 그밖에 남성이 좀 있는 경비같은 업무도 모두 비정규직인 건 물론이다. 도대체 이 따위로 운영되는 학교들에 청소업무를 그나마 이제까지 학교비정규직의 주요형태였던 직접고용도 아니고 '용역'이라니!

학교 청소에 학부모를 동원하는 건 적절치 않다. 아이들에게도 벅찬일일 수 있다.(교육적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소중한 일이라면 그에 걸맞는 일자리라야한다.

청소같은 비숙련 일자리(알고보면 비숙련도 아니지만) 일들은 당연히 비정규직에 용역을 써야하는 것처럼 인식이 만연되어 있다. 참세상 기사에서까지 청소'용역'을 도입하자는 글을 보니 갑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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