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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정이 지났으니 이미 어제군) 사회운동포럼이 사회운동총회와 폐막행사로 모두 마무리되었다. 많은 사람들(워크샵들에 연인원 2500명이 했다고 한다)이 함께 했고 의미있는 쟁점들을 논의했다. 마지막날 모습과 결산은 이 다음 글에 올리는 것으로 하고, 일단 3일차 이야기를 해보자. 박래군 집행위원장이 참세상에 인터뷰한 것처럼, “안 갔으면 후회할” 행사였다고 평가.
[특별강연] 피터 워터만 ; 노동운동, 정의의 무기로 부활하라
워터만은 “사회운동 노조주의”라는 개념을 제기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대안세계화 운동의 일부로서 노동자운동의 미래를 생각해보자는 제안이다. 노동자운동이 보편적인 해방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급진적 사회운동, 국제적 정의운동과 동행해야한다는 점, 이 속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 등을 강연에서 언급했다.
워터만이 하나의 경향으로 강조한 것은 최근 우리 운동에서도 관심이 높아지는 “지역”과 관련된 부분이다.
워터만은 노동운동과 지역운동(community)과의 연대를 말한다.(community, 통역한 동지는 '지역운동'이라고 번역했지만 한편으로는 '지역공동체'라고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중심부-주변부 모두에서 이러한 경향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가 다른 것에 종속되는 방식이 아니라 상호이익, 상호보완의 관계로서.
특히 남아공, 남미, 미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운동을 예로 든다. 작년 미국의 메이데이 시위를 보라, 이것은 가장 빈곤하고 소외된 이주노동자의 운동이었는데, 노조가 주도한 것은 아니었다.(오히려 이주노동자 공동체들) 조직화되지 않은, 조직화 될 수 없는 노동자들이 공세적으로 진출하고 노동자운동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역시 우리나라에서도 제기되는 쟁점 ; 비공식노동자 등이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되는 것이 맞는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혹은 노조로 조직된 것만 노동자운동인가?) 워터만은 “노조 형태가 아니더라도 어떤 자치적인 조직방식도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취약한 층의 노동자들이 기존의 노조 조직 안에서도 억압될 수 있으며, 자신의 전략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인도의 노점상을 예로 드는데 이들은 노조 조직 안에 있기도 밖에 동시에 있기도 하다. 미국노총은 이주노동자 네트워크를 조직하기도 했다.(이주 일용직 노동자들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한 합의)
이러한 고민은 불안정노동자, 이주노동자, 비공식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있어서 기존의 노조형태가 아니라도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민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볼 만한 쟁점이다. 이랜드 비정규직노동자를 조직한 지역운동(민주노동당의 지역조직)과 이랜드 월드컵 분회가 분별되지 않은 어떤 조직형태-조직화전략도 고민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이것은 이날 저녁 지역운동 워크샵에서 논의된 주제이기도 하다.)
워터만은 조직화된 노동자를 넘어선 보편적 운동, 조직화 전략이 노동자운동에 필요하다고 강조하는데, 노조를 넘어서는 조직화 방식에 대한 언급은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노조를 넘어선 확장되고 유연한 (조직화)전략이 필요하다는 점.
그밖에도 세계사회포럼에서 노동자운동의 위치, 인종주의 반대운동으로서 노조의 역할 등등 쟁점이 더 있었다. 아마도 발제문이 사회운동포럼 홈페이지에는 올라갈 것같으니 참고들 하시라.
** 벌써 올라왔네 ; 피터 워터만 초청 강연자료 링크
“사회변혁적 노동운동”
노동자운동과 관련해서는 사회운동포럼의 중심워크샵이었던 자리. 나는 사회진보연대 토론자 역할을 맡았다. 주발제는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김진억 국장.
전반적으로 노조가 경제주의적 투쟁, 기업 사업장에 갇힌 투쟁을 넘어서 사회변혁적, 사회운동적 성격을 복원하는 것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그런 점에서 노동운동의 보편적 해방운동으로서 성격을 회복해야한다는 점, 그리고. 이를 위한 이념적 대안, 대안세계의 이념을 형성하기 위해서 페미니즘, 국제주의의 결합하고 또한 실천적으로, 사회공공성 운동, 사회운동의 의제로의 확장 등도 필요하다는 등의 논의가 진행되었다.
사회변혁적 노동운동이라는 개념은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라는 개념이 한노사연 류의 소개로 인해 논란이 되고 있는 측면, 정치적 지향을 보다 강조해야한다는 측면을 고려해서 선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워크샵에서는 새로운 노동자운동을 위한 조직적 대안들도 언급되었는데 토론에서 깊이 논의되지는 못했다. 이후 논의 필요한 부분일텐데, 노동자 사회운동체 혹은, 노동운동-사회운동의 안정적 지역적 네트워크(연대구조) 같은 것들.
한편, 내가 주로 제기한 쟁점들은 토론문을 참조할 수 있다. 다운받기;링크
“사회운동 노조주의”는 여러 “의제”들을 노조에 도입하는 것인가?
한편, 토론 과정에서 사회운동노조주의가 마치 노조에 여러 가지 운동의 ‘의제’를 도입하자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해될 경우 사회운동적 노조운동을 제안하면 현장활동가들은 "다양한 운동을 하기에는 노조도 힘들다, 지금하는 투쟁으로도 가랑이 찢어진다"는 식의 반응이 나오게 된다.
심지어 사회운동 노조주의를 제기하는 것이 민주노총 1기 집행부의 “사회개혁적 노동운동”과 같은 것 아니냐는 식의 발언도 나온 상황. 토론자였던 노동전선의 김태연 씨의 토론 중 발언인데, 대단히 불쾌한 일이다. (예를 들어 새흐름이나 사회진보연대가 “사회운동노조주의”를 주장한다고 “비판”하면서도) 정작 사회운동 노조주의에 대해서는 전혀 읽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혹은 알면서도 왜곡한다고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운동 노조주의라는 것을 통해서 제기하고자하는 것은 노동자운동이, 특히 노조가 이익집단이 아니라 사회운동이어야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운동은 대안세계화운동, 워터만의 표현으로는 지구적 정의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운동이 자기 사업장의 경제적 이익을 수호하는 활동을 넘어서, 보편적인 해방운동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 반드시 노조의 이념도 혁신되어야하는데, 특히 남성노동자만을 노동자운동의 주체로 규정하고, 민족국가 안에서 타협을 추구했던 역사를 넘어서 페미니즘과 국제주의라는 보편적 요소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페미니즘과 국제주의를 제기하는 것은 노동자운동을 보편적 해방운동으로 만들기위해서, 역사적인 보편적 해방운동이었던, 그러나 현재는 실패-소진된 역사적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을 개조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좀 더 쟁점적으로 말하자면, 노조가 백화점식으로 사회단체들의 운동에 모두 결합하자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정세에 따라서 결합할 필요가 있는 공장밖 운동의제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운동에 대한 강조는 <사회공공성 투쟁을 제기하면서 많은 비노조 운동의제를 “도입”하자는 주장>과 경향적으로 혼동된다는 점을 이번 토론에서도 확인하게 된다.
노조들의 경제주의, 기업별 이기주의에 비판적인 활동가들은 그 돌파구를 공장밖 운동의제인 다양한 사회운동 혹은 소비자-시민으로 조합원들이 마주치는 문제들을 상대하는 ‘사회공공성’ 의제(교육, 의료, 교통 등)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다른 대안이 딱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대안이념, 변혁전망 자체가 취약해진 현실을 반영한다.) 이러한 활동가들의 문제의식은 현재 노조운동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는 정당하지만 한걸음 더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오히려 공장 안-밖에서 동시에 보편적인 해방을 위한 실천을 하는 것이 문제다. 그것은 어떤 시기에는 이랜드비정규직 지원을 위한 현장조직화 운동일 수도 있고, 평택미군기지 반대투쟁일 수도 있고 한미FTA반대 투쟁일 수도 있다.(이랜드비정규직 연대투쟁은 노조에게 사회운동이 아닌가?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이 노조 안에서도 사회"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지침"에 따라 간부들 집회참석하는 것을 넘어서 조합원들을 상대로 이랜드비정규직 지원, 연대를 위한 말그대로 "운동"을 벌여야한다.)
사회운동으로 노조를 개조하자는 주장을 노조 외부에서 ‘의제들의 도입’으로 생각하게 되면, 사회운동-노조운동의 관계에 있어서도 다소 도식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운동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 대중조직이 보편적 운동이라는 쟁점이 아니라 △사회운동단체라는 조직들과 노조라는 조직들의 조직간 관계의 문제로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제 '사회운동 노조주의'는 대중운동 스스로 운동의 확장이라기보다는 “연대단위”를 불러오는 것으로 이해된다. (첫날 대토론회에서 제기되었던 문제가 반복되는 셈이다.) 하지만 오히려 대안세계를 만들기 위한 사회운동들을 (외부적 결합이라기 보다는) 노조운동 안에 도입하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운동 노조주의를 제기하는 맥락은 노동자운동이 보편적 성격을 회복하고, 경제주의/현장주의를 넘어서 대안세계를 건설하기위한 운동에 나서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편으로는 “사회운동 노조주의”라는 개념이 가진 어떤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하게된다.
용어의 성격 때문인지 다양한 운동의제들을 병렬적으로 도입하자는 식으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특히 우리운동 지형에서는 '사회운동'이 '비노조 사회운동 단체들의 운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히다보니 더욱 그런 측면이 있다. 따라서 주장하는 바를 잘 드러내는 다른 용어를 쓸 수도 있고, 이번 워크샵에서 사용한 "사회변혁적 노동운동"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념적 대안?
울산에서 온 어떤 활동가는 “볼세비즘도 아니고 사민주의도 아니라면 어떤 길인가”라고 묻는다. 한편에서는 구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운동이 가져왔던 역사적 한계, 한편에서는 시공간적으로 우리에게 적용불가능한 사민주의가 아닌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을 반성하면서 어떻게 새로운 보편성을 가지는 대안적 사회를 구성하는 운동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문제제기가 핵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사회공공성과 같은 쟁점을 넘어설뿐더러 “노동해방”, “사회변혁”이라는 것이 그냥 외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해야하는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 질문은 앞으로 계속 될 필요가 있다.
한편, 토론과정에서 플로어에서는 자본주의 위기와 체제붕괴를 예상하는 것은 (1) 몇 년 전부터 항상 하던 이야기 이거나 (2) 파국론이다라는 식의 문제제기도 있었다.
2010년대 전자본주의적 금융위기에 대한 예상은 신자유주의 경제비판을 통해서 도출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은 경제적 분석을 정세분석에 어떻게 반영하는가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냥 ‘위기가 올 것이다’라고 쉽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전제로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 분석에 따른 정세예측이 ‘파국론’은 아닌데, 이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우리가 맞을 객관적 위기라는 제한조건 속에서 운동주체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 이와 관련해서는 사회운동포럼 노동운동 사전워크샵 중 2차, "세계자본주의와 한국자본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참고할 수 있다.
사회운동과 정치운동, 지역운동의 쟁점들
* 이 부분은 오전과 저녁에 있었던 지역운동워크샵의 내용이다. 쟁점과 내용이 좀 되는 만큼 별도의 글에서 따로 언급하는 것으로 하자.
연영석.
김성만을 제목으로 한 글 머리에 왜 연영석이 등장하는가? 나는 연영석을 잘 모른다. 그러나 예전에 사회진보연대 기관지에 실렸던 인터뷰 하나를 보고 팬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제 노래고 불안정한 삶을 사는 노동자의 노래입니다) 노동현장의 문화운동, 노래운동이 노조에서도 단지 '선동'이 아니라 하나의 지적인 공간, 창작으로 발전 되어야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분절되고 좌절하는, 젊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을 표현하는 방식의 노래를 제기하는 것에서 놀라웠다. (그것도 대공장집회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포장된) '단결투쟁'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그 젊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구체성을 어떻게 제기할 것인가.
(아래 연영석 동지 이미지 출처는 네이버블로그 eticform)
비정규직 노동자들.
내가 최근에 만나는 비정규직 동지들은 어떤가. 오늘 조합원 모임을 진행한 도시철도공사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중년의 여성노동자들이다. 엊그제 모임을 진행한 노동부비정규직노동자들은 30대 초중반, 낼모레 함께 투쟁선포기자회견이 예정된 노사발전재단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스마트한' 20대 후반의 청년노동자들. 430집회에서 만난 고려대 미화 조합원들은 중년이라기보다는 노년의 여성노동자, 오늘 노동조합을 결성하겠다고 상담차 찾아오신 환경미화원은 중년의 남성.
이들을 모두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묶는 만큼, 이들 각자가 가진 삶의 구체성을 존중하면서, 우리는 각자를 주체화하고 연대를 조직할 수 있을까.
자본의 추상화, 노동의 구체성
사실 이 개념(자본의 추상화, 노동의 구체성)은 정치경제학 비판의 것이다. 자본의 운동이 추상노동이 생산하는 가치와 잉여가치로 표현되는 반면, 노동자가 노동력을 지출하는 과정은 유일하게 현실적인 노동, 즉 구체노동으로서 나타난다.
이 속에서 우리는 현실에서 그것이 나타나는 방식을 떠 올릴 수 있다. 자본은 언제나 추상적인 어떤 힘, 기껏해야 자본의 대리인에 불과한 사장과 같은 '것'(자본가의 본질은 인간이 아니라 추상적 사물이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언제나 구체적인 삶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개인들의 집단이다. 물론, 그들이 '반역'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문화'의 일부이자 효과, 결과로서 이데올로기.
김성만, 삶의 노래
김성만은 거칠다. 그가 만든 노래도, (죄송하지만) 그의 노래 실력도 역시 그렇다. 연영석과 마찬가지로 김성만도 투쟁사업장에 공연보다는 '연대'하러 다닌다. 그래서 가난하다. 삐까번적한 큰 무대에는 부르지 않는다. 맥빠진 민주노총 집회에 섭외가 안될 때 불러도,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는 곳에서 소리를 지른다.
나는 오늘 도시철도공사비정규직 조합원들의 교육을 하는 김성만 동지를 보고, 또 한명의 동지에게 반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어쩌면 하층문화, 그 속에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삶의 진실을 길어올리는 모습을, 불과 몇십분 동안에 노래교육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연영석이 젊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삶의 분절성을 노래한다면, 김성만은 나이든 노동자들이 팍팍한 삶과 그 속에서 희망을 노래한다.
그가 직접 쓰고 오늘 노래한 "까대기"라는 곡. 악보 밑에는 "까대기란 여성의 유통노동자들이 박스에 들어 있는 물건을 풀어 진열대에 차곡차곡 쌓아 정리하는 것을 뜻함"이라고 씌여있다. 유통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면서 만든 곡이라고 한다. "경괘한 뽕짝"이다.
세상에 포장을 뜯어 널 부러져 흩어진 것들 / 높은 곳에 차곡차곡 낮은 곳에 가지런하게
날 때부터 비정규직 울 때부터 차별을 받는 / 정해져서 바꿀 수 없는 그런 노동이 아냐
우리가 차곡차곡 우리가 하는 거야 / 노동이 아름답게 다시 쌓아야 해
우리가 하는 거야 우리가 힘을 모아 / 세상을 다시 한 번 까대기 하는 거야
다시금 사랑으로 다시금 희망으로 / 우리가 힘을 모아 함께 가는 거야
땅위에 하늘아래 차별이 없는 거야 / 사람이 사람답게 아 살맛나는 세상 (가사전체)
오늘 함께 한 도시철도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신나게 불렀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구체적인 노동 속에서 대안세계를 노래한다.
지금 투쟁하고 있는 울산과학대와 광주시청의 여성비정규직노동자들과 연대하면서 만든 곡, "청소아줌마"라는 곡도 있다.
..쓰레기를 치우다 내가 쓰레기가 되었다.. 억장이 무너지고 너무 울어서 눈물이 말라버렸다... 청소만하다가 내가 청소되었다...내가 살아서 알몸뚱이로 분노에 벌벌 떨었다...(가사 일부)
울산과학대, 광주시청의 투쟁을 접한 사람들이라면 노래의 가사가 어떤 울림을 갖는지 알 것이다. 김성만은 그 울림을 노래로 공유하자고 한다. 아프지만, 조합원들이 같은 장소에서 함께 노래하고 하나되는 것처럼 먼 곳의 투쟁하는 비정규직노동자들과 공유할 수 있게, 노래로. 그 이야기를 이제 처음듣는 수천리밖에 있는 노동자들이 서로 공감할 수 있게. 노래로.
김성만은 겸손하게도 자신이 만든 '비정규직철폐연대가'가 '비정규직의 아픔을 그때까지는 잘 몰라서' 책이나 문서를 읽고 썼다고 했다. 그래서 다소 추상적이기도 한 '비정규직철폐연대가'는, '청소아줌마', '까대기' 때문에 더 빛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집회에서는 잘 포장된 '비정규직철폐연대가'만 연신 방송된다. 맥빠진 민주노총 메이데이 집회서 조차. 그것이 맥빠진 이유는 '청소아줌마'와 '까대기'의 삶의 구체성을 폄하하고 결코 노동절에 부르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노래 : 대중의 반역을 위해서.
대중은 착취의 모순과 이데올로기의 반역이 결합될 때 혁명에 나선다. 착취의 모순이 자동적으로 이데올로기적 반역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신자유주의 최근10년의 경험을 통해서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데올로기의 반역을?
김성만과 연영석은 대중의 구체적 삶을 노래로 서로 교통하자고 제안한다. 서로 주목하는 세대는 다르지만 말이다. 서로 다른 비정규직 대중들이, 서로의 구체적인 삶의 고통을 노래를 통해서 교통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경험이 가지는 보편성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 새로운 주체화의 시작이 아닐까. 하나의 대공장에 모여있는 노동자들과는 달리 분절되고 흩어진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는 삶의 구체성을 함께 할 수 있는 문화적 매개가 필요하다.
연영석이 인터뷰 말미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저는 다른 민중가요 가수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음반은 대공장 남성노동자들을 위한 음반이다. 네가 주로 가는 현장에서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말이죠."
삶의 구체성, 운동의 구체성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최근에 그 동안 활동하던 노조에서 활동을 곧 그만두고, 쉬고,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동지들과 많은 이야기를 더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마도 그렇게 결론을 낼 것같다.
지난 시간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아주 잠깐씩 이런 계기를 통해서 돌아보게 된다. 나는 현재의 활동에서 얼마나 노동자들의 삶의 구체성에 접근하는 운동을 했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공간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삶의 구체성에 어떻게 다가가고 인식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지금처럼, sur le quai, 길이 끝난 곳에 서있을 때, 혹은 어디에 서있는지조차 혼란스러운 거리 한복판*에서 길을 잃을 때, 그것을 다시 생각한다.
[보너스 이미지]
==== * 아래는 언급한 그 "혼란스러운 거리 한복판"
*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거의 마지막 부분의 장면. 시간이 정지한 거리 한 복판. 치아키가 남겨지고 마코토는 인파 속에 사라진다.
* 윗 장면이 나오기 직전. 예정된 사고를 결국 막지 못하고 "기진맥진 상처입은" 치아키. 다 소진한 줄 알았던 마지막 타입리프 단 하나,가 남아있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서경공공서비스지부 지부장 동지에게 이런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대우건설비정규투쟁위원회 일괄고용
민형사상면책합의
노조인정 25일15시 타결"
이 사진을 찍었던 것이 23일, 집중투쟁 기간 선포식 집회였으니까 최종적으로 합의, 타결된 25일이 86일째군요.
요즘같은 상황에서, 특히 오늘 코오롱동지들의 주점이 있었던 날 '장기투쟁'이었다고 말하기에 미안하기도 하지만, 고령의 노동자들에게 86일의 투쟁이란 ㅤㅉㅏㄻ은 기간이 아닙니다.
서경공공서비스지부 활동가동지들은, 항상 이 투쟁이 승리한다면 그것은 "연대의 힘" 덕분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습니다. 말 그대로, 이 투쟁에는 주변의 투쟁사업장 동지들, 지역노동자들, 학생동지들이 항상 헌신적으로 연대해주었습니다. 투쟁이 길어지면서도 항상 투쟁대오는 줄어들지 않았고, 강도높은 투쟁을 진행할 수록 더 많은 동지들이 모여주었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에는 무려 14명의 동지들이 투쟁과정에서 연행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결국 25일 최종적으로 투쟁의 성과를 얻어냈습니다. 물론 합의서는 합의서고, 현장에 들어가서 투쟁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미 계약을 체결한 용역사들은 인원을 줄이고 비용을 줄이는 것을 전제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따라서 복직한다고 해도 현장의 노동강도는 높아진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투쟁과정에서 형성된 조직력은 현장 투쟁에서도 다시 확인되어야합니다.
24일에는 서울역광장에서 330일째 파업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KTX동지들과 연대투쟁 문화제를 가졌습니다. 서울역을 앞뒤로 투쟁공간을 함께 하고 있는 두 사업장의 동지들은 그 동안 집회에는 서로 연대해왔지만 서로 같이 이런 행사는 못했었습니다. 어제 문화제는 날씨는 추웠지만 참 '따뜻한' 공간이었습니다. 진작부터 했어야했는데 말입니다.
△ 24일 서울역 문화제. "우리 어깨걸고 현장으로 돌아가자" 왼쪽은 꽃다지. 오른쪽은 고대 문선패 '단풍'. 맨앞에 있는 동지가 요즘 학생운동권 '스타'라는 군요. 예전에 주로 총학생회장이 그랬는데,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지 문선패 패장이 '스타'가 되는군요.
대우센터빌딩 동지들이 이 투쟁이 '연대의 힘'으로 승리했다고 말하는 것은, 그 동지들이 그 연대를 자신의 실천 속에서 녹여낼 것이라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연대가 연대를 부르는" 연대투쟁의 연쇄를 만들어가야겠습니다.
"늙고 힘없는 계약직 인생이지만
우리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투쟁으로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는 우리 조합원동지들에게 감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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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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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심! 이걸 다 정리하고...여행 잘 다녀오시고, (앗 제가 떠나기 전에 만날 수 있으려나?) 꼭 프로그램과 일정 넘겨주시와요~부가 정보
조지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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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갔었는데....솔직히 조금 그랬습니다. 어떤 분야에 깊은 지식이 있는것도 열렬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 제가. 그냥 단지 한 색션에 잠시 들어갔다가 느낀건.논의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들어온다기보다.
그냥 '소통/연대/변혁'...을 원한다고 하는데...누구와? 네..운동단체들과. 인듯 합니다.
늘 사회자? 토론자? 발제자?가 말하고. 마지막 부분에 청중 질문? 듣고?? 답변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겠지만. 암튼 단체들의 사례 이야기도 중요하고, 서로간의 의견차이를 조율하는 것도 중요한데, 그 만큼 잘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없어보여 아쉬웠단.
강의?(차라리 몇 명의 강사가 한꺼번에 하는 강의라는 느낌이...아마 제가 참관?한 색션만 그럴지도...^^;;) 중에 문뜩 그런 생각도 들었네요.
차라리. 원탁으로 하지말지. ^^;;
죄송. 내용에 대한 딴지는 아닙니다.
그냥 그 진행에 조금 아쉽기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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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조지콩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 첫날 1,2부 대토론회에 참석했었는데, 2부는 듣다가 중간에 나왔어요. 조금 지루하기도 했고, 그냥 주구장창 들어만주어야 하는 상황이 저같이 주책없이 끼기 좋아하는 사람으로선 '소통'이 이런건가? 싶을 정도로 아쉽기도 했고...암튼, 뭐 저도 내용에 대한 딴지는 아니구요...^^ 고생하셨습니다..부가 정보
겨울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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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콩,스머프/기술적인 문제와 마인드의 문제, 두 가지가 다 있지 않았을까싶네요.사실 보다 작은 워크샵들은 토론이 그나마 되기도 했고, 사회자가 진행을 잘 한 곳은 발제자보다는 청중들과 함께 토론되기도 한 곳이 있었던 것같습니다. (그렇다고 사회자에게 맡길 수만 있는 것도 아닐텐데요;;)
대톤회의 주제 같은 것도 좀 더 여유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있네요. 주제-쟁점을 명확히하면서 청중의 발언을 유도할 수도 있겠죠.
또 한편으로는, 청중과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조건으로 만들려면 사회자의 문제뿐 아니라 준비한 모든 주체의 생각이 많이 바뀌어야겠죠. 준비도 더 필요할 수 있지만, 가치 있는 일들일 겁니다. 그런 부분들도 평가될 필요가 있다는 새삼드네요. 앞에 있는 사람들 발제만 듣는게 아니라 사회운동의 "다른 토론방식"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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