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from 단순한 삶!!! 2007/02/12 13:46

역사와 산 2월산행은 태백산.

 

겨울 태백산을 갔다가(2001년 1월) 강 추위에 질렸던 기억이 있었던지라

우선 날씨가 어떨까 했는데, 요즘 원체 따뜻하니까 그럴 걱정은 접기로 했다.

 

금욜 밤새워 술집을 전전한 탓에 잠이 모자라서 차 안에서 열심히 잠자려고 했는데,

생각 밖으로 잠들지 못했다. 이게 어찌된 일이랴, 차에 타면, 그리고 눈만 감으면 잠은

그냥 오는 것으로 생각했고, 그렇게 살아 왔는데, 잠이 들지 않다니...

일상과 다르게 보낸 하룻밤으로 인해 몸이 적응하지 못한 것일까?

차 안이 너무 덥다고 핑계를 대보기도 했지만, 어쨌든 잠들지는 못했다.



차에서 내리니까 약간 추운듯한데, 조금 걸으니까 금새 몸이 따뜻해지고 땀이난다.

역시 출발할때 한 30분간은 숨소리도 거칠고, 가슴이 답답하다.

장군봉에 오르니 동쪽하늘이 붉게 물들어왔고, 천제단에 도착하니까 해가 오르기 시작했다.

춥지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산 꼭대기는 추웠고, 오래 서 있기는 어려웠다.

해가 떠 오르자 주위의 산들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눈덮인 산맥과 봉우리들은 여전히

세상의 변화에 관심없다는 듯이 그대로 서 있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소원을 빌었다. 뭘 빌까 생각했는데, 막상 빌려고 하면 빌 것도 없어서

지난 1월 지리산에서 한번 빌었던 걸 그대로 빌었다.

그 비는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지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 아닌 다른 사람들 위해

해를 향해 기도할수 있다는 게 어디랴...

같이 갔던 친구는 자기를 위해서도 뭔가를 빌었느냐고 해서 빌게 없었다고 했더니, 마음의 평화를

위해 빌어달래나... 그래서 정암사에 가서 부처님께, 그리고 진신사리를 묻었다는 7층 수마노탑을 향해서도

그 바람을 빌었다. 

 

해 오르자 주위는 온통 눈빛으로 변했는데, 온 나무를 뒤덮고 있는 상고대는 그동안 어느 산에서

보아왔던 거보다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이렇게 멋진 모습을 보다니...

그런데, 멋진 일출과 멋진 상고대를 보면서도 표현하지는 못할지라도 생각으로나마, 또는 머릿속에서라도 어떤 모습이 상상되어야 할 거 같은데, 그저 '좋다' '멋지다' 이렇게 밖에 생각이 안난다니...

어쩌면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아름답고, 멋져서 그런게 아닐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상상력이나 감상력이 부족하거나 다 떨어져서 그럴 거라는게 맞을 거다.

 

석탄박물관을 거쳐 점심식사를 한 식당의 순두부와 명태국은 수준이하였다는...

(박준성 선생이 너무 맛있는 집이라고 했는데, 그새 주인이 바뀌었다는데 음식맛은 역시 누구나

낼수 있는게 아니다.)

 

함백산을 넘어 가는데,  만항재에 펼쳐진 상고대는 태백산 정상의 그것과도 비교를 할수 없을만큼

멋지고 아름다웠다. 산오리는 상고대가 눈이 내리면서 나무에 달라 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안개와 구름 등이 얼어 붙은 것을 처음 알았다.

상고대【명사】 나무나 풀에 내려 눈같이 된 서리. 무송(霧淞). 수빙(樹氷). 

이것도 산오리의 상상력으로는 표현 불가....그저 멋지다. 아마 다시 보기 어려울 만큼.

 

정암사에 들러 수마노탑을 구경하고, 사북 안경다리 밑에서 잠시 박선생의 설명을 들었다.

사북에는 2001년에 갔을때 보이지 않던 수많은 호텔과 모텔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났고,

80년 사북항쟁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강원랜드와 각종 관광시설들의 위력이

금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사진기를 못찾아서 그냥 가는 바람에 사진을 못찍었다.

물론 그 멋진 상고대를 찍어도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은 만큼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사진을 찍지 못한게 좀 아쉬웠다.<2007년 2월 10-11일>

 

추위에 떨던 2001년 산행기록은 역사와산 홈피에서 겨우 찾았다.

 

추위에도 살아 남는 건 인간?(2000.1.16)

태백산 산행기

추위에도 살아 남는 건 인간?

추운 날씨가 계속 되는 바람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일주일 내내 고민이었다. 지난번에 얇고 따뜻한 윗도리를 사러 갔다가 조끼와 점퍼로 된 옷을 사서 해결은 되었다 했지만, 점점 추워지는데 바지는 입을 게 없었다. 토요일 오후에 또 옷 할인 판매하는 곳에 가서는 스키바지라는 걸 하나 샀다. 스키바지가 대수랴? 속에 스펀지나 넣고 누빈 게 고작이지.
버스를 타고 가면서 한마디씩 인사를 하고 나니 벌써 잠잘 시간이 지났지만, 쉽게 잠들 것 같지 않아서 술에 기대기로 했다. 고량주를 서너 잔 마시고서는 자리에 앉았더니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효과가 즉시 나타났다.
달리던 게 멈추었다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니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유일사 입구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라면 끓여 먹을 시간이 된다고 버너와 코펠을 찾기에 배낭에서 꺼내어 불을 붙였지만, 추운 날씨 덕분(?)에 보통의  개스 버너로는 금방 불이 사그라들고 만다. 그래도 두 세개의 버너로 라면을 계속 끓여 번갈아 가면서 뜨거운 국물을 마시는 게 좋아 보인다. 먹은 술이 약간 얼굴에 남아 있다는 느낌이 있는데 차 밖으로만 나오면 추위 때문에 술기운도 몸 밖으로 나올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새벽 5시 완전무장을 한 사람들이 출발했다. 눈길을 밟는 소리는 아이젠의 뾰족한 쇠가 날카롭게 무언가를 찢는 금속성 소리 뿐이었다. 눈을 밟는 소리, 뽀드득, 사각사각 이런 따위의 동화에 나오는 소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들리지 않았다. 군인들이 행군하는 소리 그 자체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고 있는지 오르는 길 내내 뒷사람의 발뒤꿈치를 보면서 걷는 수밖에 없었다. 달빛이 너무 밝아서 나무들이 달 그림자를 길게 눈 길 위에 늘어 놓고 있었다. 낮에 본 해 그림자와 얼마나 긴지 짧은지 서서 견주어 보고 싶다는 건 생각 뿐이었고, 그냥 걷고 또 걸어서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능선에 올라섰고, 뒤를 돌아보거나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아직도 어둠이었고, 바람과 추위만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북쪽에서 계속 불어오는 바람은 오른쪽 귀를 마비시켰고, 모자를 하나 더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더 쓸 모자가 없었다. 귀마개가 배낭 속에 있다고 생각했고, 꺼내서 모자 속에 썻다. 그래도 한참 동안은 오른 손을 귀에다 대고 걸었다.
돌탑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했다. 여기가 정상인가? (여기가 장군봉이었던 듯) 우리 등산팀은 다시 더 가라고 한다. 이 장군봉에서 천제단까지 가는 길은 정말로 추운 바람속이었다. 바람도 얼마나 센지 몸이 날라갈 것 같았고, 발걸음을 제대로 옮기기가 어려웠다. 문제는 또 머리였다. 머리 윗부분이 완전히 마비된 것처럼, 그리고 칼로 잘라 내는 것처럼 찬바람이 파고 들었다. 점퍼를 끌어 올려 머리까지 뒤집어 써 보려 하지만 위에 까지 올라오지도 않고 겨우 귀 부근까지만 닿는다. 얼마나 갔는지 또 다른 봉우리, 그리고 또 다른 돌탑(이게 아마도 천제단이었나 보다)
사람들 얼굴을 보면 모두 눈사람이 되었다. 눈썹까지 하얗게 변한 사람들이 있고, 얼굴을 조금이라도 드러낸 사람들은 보기에도 퍼렇고 검게 보였다. 날은 밝아오고 있었고, 동쪽 하늘에는 붉은 물이 들고 있었다. 곧 해가 뜬다고 기다렸고, 기다리는 시간도 추위와의 싸움이었다. 조금이라도 바람을 피해보려고 제단 밑으로 모인 사람들은 완전히 동물의 왕국에서 나오는 남극의 펭귄들 모습이었다. 그 자리에서 제자리 뜀을 하면서 추위를 조금이나마 이겨 보려 하지만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해가 솟아 오르고 있었다. 한 점 붉은 게 보이나 싶었는데 순식간에 절반이 그리고 또 순식간에 둥그런 불덩이가 하나 솟아 있었다. 저렇게 짧은 순간을 보려고 이 추위를 견디며 서 있는지 참 허망하기 그지 없었다. 태백산 정상에 보든지 관악산 정상에서 보든지 아님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다보든지,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쓸다가 올려보든지, 어디서 보든 떠오르는 해는 똑 같은 걸 굳이 이런 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오르는 것은 왜일까? 혹시 남보다 먼저 높은 곳에서 해를 보면서 만족을 느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런 생각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다른 사람을 눌러야 한다고 떠드는 신자유주의의 선전문구에 나도 모르게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지나친 느낌일까?
내려오는 길은 햇살을 받으면서 이어졌고, 이제는 제법 포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엉덩이썰매를 탈 수 있는 길이 나왔고, 준비해 간 매트를 깔고 앉아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두어번은 앞에 가는 사람과 부닥쳐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멈출수도 없었으니.....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셀 수도 없는 봉우리, 능선, 끝도 없는 산....눈....그리고  또 산과 눈. 그리고 옷을 벗은 나무들.....
당골에는 눈 눈축제가 벌어져 얼음조각들이 많이 있었지만 초입의 몇 개만 둘러보고 바로 내려왔다. 이렇게 산행은 끝났다. 새벽 5시에 출발해서 10시도 안되서 끝났다. 그 추위에도 수천명이 태백산에 왔다고 하니, 인간은 참으로 위대(?)한 동물이다. 산과 눈과 추위와 바람은 그대로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 속에서 인간들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도 아마 인간의 쓸 데 없는 우월의식이 아닐까?
태백시의 '너와집'에 몰려 가서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고 낙동강의 발원지라는 황지연못을 들러서 카지노에 들렀다. 그리고는 사북으로 80년 사북투쟁이 일어났던 동원탄좌 현장을 들렀다. 80년 그 시절에 신문으로 접했던 그 사건. 벌써 기억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게 안타까운 일이었다. 노동자 투쟁의 전환점이기도 했던 일을...
산에 가기전에 일주일은 들뜸으로, 그리고 산에 갔다 온 일주일은 가슴에 남은 산의 기억으로 즐거운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이번 산행에서 가슴에 남길 것은 과연 무엇일까? 눈? 일출? 추위와 바람? 카지노? 그리고 노동자?  
돌아온 서울과 일산도 추위는 여전했다. 그나마 집은 따뜻함이 있었다.
                          <2001.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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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2 13:46 2007/02/1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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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태백산 사진...

    Tracked from 2007/02/16 16:00  delete

    산오리님의 [태백산] 에 관련된 글. 역사와 산 홈피에 태백산 사진을 안건모 선생이 가득 올려 놨다. 그중에서 몇개 퍼왔다. 만항재의 상고대다...

  1. 바다소녀 2007/02/12 13:5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기록을 남겨 놓으니 좋긴 하네요. 전 이런 기록으로 과거를 남겨 놓지도 않고, 설령 남겼다가도 날잡아 다 지워버리고, 과거 다시 들여다 보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마음은 언제나 과거에 머물러 있고 입으로는 또 과거와 끊임없이 비교만 하니 이를 어쩜 좋아요? 2월, 결국 산에도 가고 중국도 가고 다 하시네요?

  2. azrael 2007/02/12 14:4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사진이 없으니 아쉽삼~

  3. 감비 2007/02/12 17:1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석탄박물관에서 나와서 당골쪽으로 조금만 가면 아주 허름한 움막집 같은 식당이 있는데 올갱이국(다슬기해장국)이 아주 그만이던데요. 미리 소개해드릴껄..

  4. 산오리 2007/02/12 18:0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바다소녀...과거와 비교만 해서 아직도 스무살?ㅎㅎ
    azrael... 돌멩이 이자식이 카메라를 어디다 둔지 몰라서..나중에 다른 분들이 찍은 사진이라도 퍼다 올려줄게요.
    감비...글게요, 담에 한번 가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