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이거 무당판 우드스탁 아니야?"

 

 

 

이거 무당판 우드스탁 아니야?"
황해도 만신 이해경의 진접 <산사맞이 굿> -1
텍스트만보기   김기(mylove991) 기자   
▲ 처절한 표정으로 신을 부르는 이해경 만신. 무당이 어떻게 죽은 이를 불러와 산 이의 염원을 듣게하는지 실감나는 장면이다.
ⓒ 김기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사흘 동안 서울 외곽 산 속에 마련된 굿당에서 황해도 만신 이해경(중요무형문화재 82-2호 서해안풍어제 및 대동굿 이수자)의 진접굿 <신사맞이 굿>이 열렸다. 진접이란 무당이 자기 자신과 자신이 모신 신을 위해 벌이는 굿으로 교회로 치자면 부흥회쯤 될 것이다. 이해경 만신은 신을 받고 불려온 지 15년 만에 진접을 올리게 된 것.

이해경 만신의 진접이 진행된 곳은 북악터널 근처의 약수암이란 굿당으로 몇 개의 굿당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서울 속의 작은 섬처럼 낯선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몇 개 굿 종목이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정부가 해외에 문화사절단으로 보내기도 하고 또 해외에서 그들을 초청하기도 하니, 탄압 일변도였던 과거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는 현상이다. 하지만 아직 무속을 일상처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북악터널 옆 도시 속 섬 같은 '약수암'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곧바로 봄이건만 숲으로 경계 그어진 산 중 굿당은 때로 한 겨울 추위보다 매서웠다. 그 가운데 짧은 낮 시간의 봄볕은 밤새 언 몸에 따스한 위안을 주었다.

▲ 산 속에서 벌어진 굿판은 겨울보다 혹독하게 추웠다. 담요 등으로 몸을 감싼 채 굿을 지켜보는 사람들.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 소설가 신중선,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등이 보인다.
ⓒ 김기
그 까닭에 얼굴 그을리는 것을 꺼리는 여성들이 볕과 그늘을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해가 서쪽에 걸리기만 해도 단박에 한기가 엄습했다. 굿판의 풍경이 워낙 그렇기도 하지만, 추위 때문에라도 사람들은 막걸리를 찾아 두리번거리곤 했다.

이해경 만신의 진접굿이 올려지는 약수암은 도시 속의 섬 같고, 봄 속의 겨울 같아서 이래저래 일상을 벗어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공식적인 굿은 21일 새벽부터 23일 밤까지였으나 그것을 준비하는 이해경 만신은 이미 며칠 전부터 수백 개의 지화(제단에 걸려지는 종이로 만든 꽃)을 직접 오리고, 염색하고 다시 접기를 수없이 반복했으며, 큰 제단이 없는 일반 굿당의 형편상 마당에 새로 집을 짓듯이 제단을 만든 서예가 김기상씨는 한국화가인 동료와 함께 며칠 밤을 지새워야 했다.

▲ 서예가 김기상씨와 행위예술가 아란씨가 함께 벌인 서예퍼포먼스. 흰천에 '여기 오신 분들 복 받으세요'라고 쓰고 있다
ⓒ 김기
이해경 만신이 이름 붙인 이번 '신사맞이 굿'은 '굿과 서예의 만남'이자, '굿과 한국문화의 만남'이었다. 서예가 김기상씨는 굿이 잠시 멈췄을 때 어슬렁거리고 나타나 멋진 서예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의 글씨는 굿당 주변 여기저기 내걸려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그런가 하면 평소 이해경 만신과 교분을 쌓아온 많은 문화계 사람들 중 일부는 굿거리 사이를 자신들의 춤과 연주로 메워주었다.

사흘 동안 갖가지 굿, 공연, 퍼포먼스 넘쳐

보통의 굿과 판이하게 다른 점이 바로 그것. 구경 온 사람들을 잠시도 쉴 틈 없이 보고 듣고 즐기게 해주었다. 그래서 사흘간의 굿과 갖가지 공연, 퍼포먼스를 지켜본 한 사람은 "이거 무당판 우드스탁 아니야?"라고 해서 좌중을 웃게 만들 정도였다.

가야금 병창 이영신, 가야금 산조 이지영, 철현금 유경화, 대금 연주가 한충은, 권용미, 판소리 오혜연, 해금 박자연 등이 연주를 했고, 서예가 김기상, 행위예술가 아란 등이 퍼포먼스를 보였다. 특히 범패를 연구하는 덕림 스님은 마지막 날 염불과 천수바라춤을 선보여 사흘 동안 공연 중 가장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 이해경 만신의 진접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해서 염불과 천수바라춤을 선물한 덕림 스님. 사흘간의 문화공연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 김기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저 구경 온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끈 문화계 인사들도 적지 않았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 재즈 가수 박성연, 국내 최고 범패 연주자 동희 스님, 몸짓예술가 유진규, 소설가 한말숙, 소설가 서영은, 포크가수 한돌 등이 굿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도 굿은 굿이다. 첫날 외날 작두타기, 마지막 날 두 날 작두타기 등이 열릴 때 모든 사람이 가슴 졸이면서 각자 소망을 간절히 빌었다. 도저히 세워지지 않을 것만 같은 사슬 세우기가 성공할 땐 오랜 숙원이라도 풀린 것처럼 지켜보던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로 만신의 영검을 치하했다. 이해경 만신은 소 한 마리를 삼지창 하나에 올려놓고 그것을 세웠다.

이것은 '군웅거리'에서 볼 수 있는 장면으로 이 삼지창에 소나 돼지 한 마리를 세우는데, 그것이 서게 되면 장군, 영웅의 혼이 무당의 정성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영험한 힘을 주겠다는 표식으로 이해한다. 이런 군웅거리, 작두 타기는 황해도 굿에서 가장 볼만한 과장으로 꼽힌다.

어찌 보면 굿하는 무당이야 전 과정이 모두 신을 영접하고 대접해서 잘 도와달라는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구경꾼 입장에서는 이렇듯 일상에서 볼 수 없는 장면 속에서 무속에 대한 맛을 제대로 느끼는지 모른다. 몇 사람은 슬그머니 다가서서는 언제 또 저런 거리를 하냐고 물었다. 강신무계(降神巫系)의 굿은 세상 어떤 드라마, 영화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감동을 준다.

비뚤어진 삼지창에 오르고…
참 신기하다, 혹시 트릭은 아닐까?


▲ 삼지창에 소 한 마리 분량을 모두 올려 놓은 이해경 만신. 삼지창을 유심히 보면 한쪽으로 기운 것을 볼 수 있다. 참 잘 우는 이해경 만신은 군웅들에게 소를 세워 달라고 빌며 울고, 그 기도가 받아들여져 마침내 소가 서자 다시 기뻐 울었다.
ⓒ 김기
날 선 작두 위에 선 만신의 모습은 아무리 낮춰 보아도 신묘한 일이다. 아무리 호기심이나 의심이 많은 이라 할지라도 혹시 무슨 트릭이 아닐까 시험해볼 엄두를 내기 힘들다. 아무리 무게 중심을 잡는 요령이 있다고 해도 비뚤어진 삼지창에 오르고, 그 소가 몽둥이로 두들겨도 쓰러지지 않는 데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하도 봐서 그만할 듯도 한데, 볼 때마다 참으로 신기하다. 마술사같이 연습하거나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누가 허구헌 날 소를 잡아 그것을 세우는 짓을 하겠는가. 이럴 때는 정말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님을 수긍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이 만신의 영험이건, 만신이 모시는 신 할아버지의 능력이건 그것에 직접적으로 의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중요치 않을 것이다. 단지 그런 현상 속에서 일상의 고민들을 잠시 잊고, 몰입해서 며칠을 쉬고 놀 수 있는 현실 속 바깥세상이 마련되는 것이 좋을 따름이다. 그래서 굿은 'Good'이다.

명색 무당이 대놓고 내세울 수도 없는 처지인 이해경 만신이 다양한 우리 전통문화들을 굿거리 사이에 배치한 것은 그런 취지다. 의아한 카메오 출연에 흔쾌히 응한 사람들이, 굿이 가진 대동성에 대해 흔쾌히 동의한 점도 흐뭇한 배경이다. 어렵긴 하지만 우리들 피 속에 전해오는 문화 인자가 자라고 있다.

▲ 신사맞이굿 첫날 축하 공연을 한 봉산탈춤패의 모습. 일상과 조금 멀어진 도시의 섬 안에서 사람들은 즐겁게 또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즐겼다. 그래서 굿은 'Good'이다.
ⓒ 김기

(다음 기사에서 계속)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중국살이 1년] 북경에서 놀기⑦ - 반가원 골동품시장

참으로 화려하다.

 

 

반가원 골동품시장, 충동구매주의보 발령합니다
[중국살이 1년] 북경에서 놀기⑦ - 반가원 골동품시장
텍스트만보기   윤영옥(wal0572) 기자   
중국 북경에 있는 반가원(潘家園) 골동품 시장(이하 '반가원')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지난 학기에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수업이 있어서 가지 못했을 뿐입니다. 반가원은 주말에만 장이 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학기 강의 시간표가 확정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아, 이번 학기에는 반가원에 갈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이어지는 요즘, 다행스럽게도 드물게 화창하고 드물게 바람 없던 22일(토요일)에 드디어 반가원을 향해 학교를 나섰습니다. 학교에서 반가원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간 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다시 버스를 타야 합니다. 번잡스럽기도 하지만, 오후가 되면 사람이 뜸해지고 일찍 파장한다하여 택시를 탔습니다.

▲ 반가원 골동품 시장의 입구와 내부 모습입니다.
ⓒ 윤영옥
도착했을 때 이미 가장 붐빈다는 9시를 훨씬 넘긴 시간임에도 반가원에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택시에서 내려 방향을 못 잡고 있다가, 사람 많은 쪽으로 무작정 가다가 만난 곳이 '반가원'이었으니까요.

반가원에서 느낀 첫 인상은 아주 의외였습니다. 골동품 시장이라기에, 저는 우리나라 인사동처럼 큰길 양옆에 가게나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인위적으로 조성된 느낌이 강한 곳이었습니다. 시장 입구 구조물이나 시장 내부의 지붕 등이 그러했지요. 그래서 나빴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예상보다 넓고 파는 물품들이 다양해서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 윤영옥
반가원에서 받은 또 하나의 느낌은, 북경의 다른 관광지에 비해 한국인이 적고 외국인(서양인이라고 해야 하나요?)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과 서양 사람들의 여행스타일이 드러난다고 해야 할까요?

여행사 패키지, 편리함 있지만 색다른 여행지 몰라
한국인 관광객 거의 자금성, 만리장성 등에 몰려


중국을 찾는 한국인 여행자들은 대체로 여행사 패키지를 통한 단체관광을 많이 선택하지요. 때문에 자금성이나 이화원, 만리장성 등 딱 정해져 있는, 남들 다 가는 곳만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대표적인 관광지에 가면 한국인들을 정말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여행사 패키지를 이용하면 이동이 편리하고 스스로 일정을 짜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은 있겠지만 반가원과 같이 덜 중요하지만(?) 흥미로운 곳은 찾아다니기 힘들지요.

ⓒ 윤영옥
그런 곳에서 서양인 단체 관광객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단체라도 해도 고작해야 예닐곱 명 정도 될까. 그리고 우리나라나 중국 단체 관광객처럼 똑같은 모자를 맞춰 쓰고, 가이드의 깃발 하나만을 졸졸 따라다니는 그런 광경은 연출하지 않습니다. 일단공원처럼 한국인들이 거의 가지 않는 곳에서도 이들은 눈에 많이 뜨입니다. 어디어디에서 사진을 '찍고' 왔다는 것보다는 관심 있는 것을 '즐기는' 데 여행의 목적을 두는 듯합니다.

둘 다 장단점이 있으니 어느 하나를 일방적으로 옳다고 할 순 없지만, 제가 만약 여행을 간다면 저는 후자의 방식을 택하겠습니다. 유명한 관광지가 꼭 그 유명세만큼 맘에 드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거든요. 반대로, 비교적 덜 유명하다고 해서 흥밋거리가 없는 게 아니라는 것도요.

ⓒ 윤영옥
반가원에서 파는 물건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골동품이라고 해서 아주 오래된, 무덤에서 출토된 것 같은 옛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낡은 축음기나 재봉틀, 영사기 등 비교적 근래의 골동품도 많습니다.

반가원은 크게 1구, 2구, 3구, 4구로 구역이 나뉘어 있습니다. 1구는 아주 오래된 골동품들을 파는 곳입니다. 낡은 청동 젓가락이 맘에 들어, 머리에 꽂으면 예쁠 것 같아 얼마냐고 했더니 150위안을 달라고 하더군요. 너무 비싸다고 깜짝 놀라니까 새것이 아니라 오래된 거라 그렇다고 합니다. 얼마에 팔면 사겠느냐고 묻는 걸로 보아 흥정도 가능해보였지만 충동구매는 자제하자는 생각에 그냥 지나쳤습니다.

ⓒ 윤영옥
2구는 각종 그릇과 도자기 등 주로 부엌살림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찻잔이나 차호 등 다구(茶具)도 많고요. 제가 만약 기숙사에서 직접 요리를 했더라면 분명 이곳에서 그릇을 몇 개 샀을 겁니다.

충동구매 않겠다는 결심, 결국 와르르 무너져

3구엔 고가구와 인형, 장식품들이 가득하고 4구엔 그림이나 옷 등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 지붕 아래 구역을 상점이 빙 두르고 있는데, 여기선 주로 보석이나 가구 등을 팝니다.

ⓒ 윤영옥
구경을 하다 보니, 충동구매를 하지 않겠다는 저의 굳은 결심이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한 번만 더 생각하고 나중에 사라'는 교수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원피스 한 벌과 치마 한 벌, 선물할 젓가락·식탁보·냅킨 세트를 샀지요. 학교에 돌아와서 교수님들께 옷을 샀다고 보여드렸더니, 어떻게 골동품 시장에서 옷 살 생각을 다 했냐, 취향도 참 독특하다, 그 옷 진짜로 입고 다닐 거냐며 어이없어 하셨습니다. 제 눈에는 예쁘기만 한데 말이죠.

ⓒ 윤영옥
이것 말고도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았지만 제 딴에는 굉장히 참고 참은 것이었습니다. 반가원 골동품 시장에 가실 때, 충동구매를 하지 않으려면 방법은 딱 한 가지입니다. 돈을 가지고 가지 않는 것!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수중에 돈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사게 될 테니까요. 그 정도로 예쁜 것이 많답니다. 저는 한국에 돌아갈 때, 사람들에게 줄 선물도 전부 이곳에서 살 계획입니다. 다음에 또 가자고 벌써부터 날짜를 잡았는걸요.

ⓒ 윤영옥
서단(西單)이나 홍교시장(紅橋市場), 대책란가(大柵欄街) 등 다양한 쇼핑의 명소들이 있지만 그 어느 곳보다도 저는 반가원 골동품 시장을 추천합니다.
중국에서는 다들 아시다시피 간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번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직지 찍어낸 금속활자, 비법은 '이토'&quot;

 

 

 

직지 찍어낸 금속활자, 비법은 '이토'"
청주 고인쇄박물관, 21일 학술발표회서 복원과정 공개
텍스트만보기   곽교신(iiidaum) 기자   
▲ 취재진과 관련 학자들이 밀랍주조법으로 만든 금속활자가 처음 공개되는 순간을 지켜 보고 있다.
ⓒ 곽교신
현존하는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 직지(直指)를 찍어낸 활자의 실체와 가까운 고려시대 금속활자를 청주고인쇄박물관과 청주대학교 학술연구소가 복원했다.

복원된 금속활자 실물은 21일 청주고인쇄박물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금속활자 주조법과 성분 분석에 관한 학술발표회에서 그간의 연구 경위 발표와 함께 공개됐다.

그동안 직지를 찍은 고려활자를 밀랍으로 주조했다는 것이 학계의 추측이었으나 그 구체적인 방법은 알 수 없었다. 밀랍은 벌꿀을 수확하고 남은 '벌집'을 말하는 것으로 밀랍 덩어리로는 작은 활자도 쉽고 정교하게 조각할 수 있다. 활자가 조각된 밀랍을 흙으로 둘러싸고 흙이 마른 후 약간의 열만 가하면 밀랍이 녹아나오는데 그 빈 공간에 쇳물을 부어 활자를 얻는다.

문제는 밀랍을 둘러싼 흙이 무엇이었는지 몰랐다는 것. 청주고인쇄박물관과 청주대학교 학술연구소는 이번 연구에서 그 흙이 '이토'(泥土·곱게 분쇄한 이암 가루)임을 확신했고 실험 결과 성공률 100%라는 결과를 얻었다.

밀랍주조 금속활자 연구는 박문열 교수(청주대 문헌정보학과)가 이론 부분을, 중요무형문화재 금속활자장 후계자(일명 전수조교) 임인호 장인이 활자 복원의 전 과정을 담당했다.

천연재료 이토 발견은 큰 성과

이번 발표는 학계의 가설이던 '밀랍주조법에 의한 금속활자 주조'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었으며 정밀한 활자를 매우 높은 성공률로 주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박 교수와 임 장인이 현장에서 주물토를 깨뜨려 금속활자를 공개한 장면은 이 날의 하이라이트였다.

▲ 임인호씨가 주물토를 깨는 긴장된 순간.
ⓒ 곽교신
▲ 깨뜨린 주물토의 잔 흙 털어내기
ⓒ 곽교신
▲ 완전히 흙을 털어낸 후 가지쇠에 달린 고려의 활자
ⓒ 곽교신
공개 직전에 박 교수는 "저 안(쇳물을 미리 부어 식힌 주물토 내부)에 들어있는 활자가 바로 인쇄에 쓸 수 있는 활자일지 아닐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의 실험에 의하면 100%에 가까운 성공률을 보였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주물토 세 개를 깨뜨려 나온 활자는 모두 활자 기능이 완벽한 것으로 참가 학자들이 확인했다. 쇳물을 부어 굳힌 주물토 세 개를 발표 현장에서 깨뜨려 직접 활자를 꺼내 보인 것은 완성된 활자만 들고나와 설명하던 과거 학술발표 관행에서 벗어나 객관적 신빙성을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에 시도한 밀랍주조법에 의한 금속활자 주조가 100% 성공률을 보인 직접적인 이유는 녹인 쇳물을 담아 활자를 찍어내는 주형틀의 주재료로 천연 재료인 이토를 썼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 주형틀을 어떤 재료로 썼는지는 학계의 큰 의문이었다. 박 교수와 임 장인은 주형틀 재료로 적합한 것이 '이토'라는 결론을 내기까지 전국에서 채집한 수십 가지 흙을 섞어 보며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94년에 오국진씨가 밀랍주조법으로 고려 금속활자를 만드는 과정을 재현해 고인쇄박물관에서 복원판 직지를 찍어낸 적이 있다. 이 공적으로 오국진씨는 1996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 기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현재 오국진씨는 중환으로 활자장 일을 장기간 중단한 상태다). 그러나 이때는 주형틀 재료로 석고를 사용한 것이 복원 과정의 부정확성으로 지적받았다.

고인쇄박물관은 2004년 6월부터 고려 금속활자 재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아울러 청주시의 연구비 지원으로 진행된 이번 연구 성과를 토대로 박물관은 국비를 받아 조선시대 주자소를 중심으로 주조된 활자 약 20여 종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직지의 과거와 현재

이번 밀랍주조법 금속활자 연구의 모체인 '직지'의 원명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로 현재 하권만이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귀중문헌으로 보관되어 있다.

구한말 주한 프랑스 공사였던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가 개인 수집품으로 소장하다 귀국하면서 프랑스로 가져갔다.

우리나라에도 국립중앙도서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영광 불갑사에 직지 상하권이 온전한 형태로 소장되어 있으나 이는 모두 목판본이다.

프랑스 정부는 직지의 일반 공개 불허는 물론 우리나라 학자들에게조차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극소수 인원에게만 열람을 허용하고 있다.

'금속활자 그 위대한 발명 (3부작)' '구텐베르크는 발명가인가' '활자로드는 없는가' 등 직지에 관한 심도있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해 온 청주 MBC 제작진이 6월 말에 방송될 또 하나의 다큐 프로그램 취재를 위해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가 있으나 한국시간 22일 오전 현재 촬영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책 이름만 알려지던 직지는 1972년 '세계 도서의 해' 기념 프랑스 파리 책 전시회에서 실물이 처음 공개되어 전 세계 학자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우리 교과서에 '직지심경'이라 쓰여있어 아직도 이렇게 부르는 사람이 있으나 직지심경은 잘못된 용어로 지금은 쓰지 않는다.

200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인류 기록 문화의 위대한 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공인받았다. 또 이를 계기로 한국이 독일보다 앞선 인쇄 선진국임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청주시는 2005년 9월에 유네스코 직지상(UNESCO JIKJI MEMORY OF THE WORLD PRIZE)을 제정하였다. 이 상은 유네스코가 주관하며 인류 기록문화유산 향상에 공헌한 개인이나 단체를 격년제로 시상하고 있다. / 곽교신
2006-04-22 18:00
ⓒ 2006 OhmyNews
내가 편집국장이라면...?
이제 네티즌들의 추천으로 오마이뉴스가 바뀝니다.
를 통해 기사를 추천하시면
추천점수에 따라 네티즌 편집판이 만들어집니다.

나에게 감동을 주는 기사, 함께 나누고픈 기사를
추천해보세요!
///////// [현재 0건]
기사가 맘에 드시나요? 좋은 기사 원고료는 기자 개인의 추가원고료 및 기자회원 지원비로 쓰입니다.
////// 1(1)
추천 반대
1. 밀랍주조법의 설명 보충.... 곽교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음성 품바축제에서 어우동 춤

 

 

 

사진]그 여인 홀딱 벗을까봐 조마조마 했습니다
음성 품바축제에서 어우동 춤을 보며 마음을 졸였습니다
텍스트만보기   임윤수(zzzohmy) 기자   
▲ 얇은 속치마까지 홀딱 벗을까봐 조마조마 했습니다.
ⓒ 임윤수
충북 음성에서는 20일부터 '2006 음성 전국 품바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축제의 일환으로 22일 오후 1시부터 개최된 팔도품바공연1부에 다녀왔습니다. 식전행사에 이어 전국에서 참가한 품바 팀들의 경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품바라는 특성상 떼거리로 참석한 팀이 있는가 하면 달랑 혼자 참석한 그런 팀도 있었습니다. 배경음악으로 애간장을 녹일 듯한 '한 오백년'이 흘러나옵니다.

▲ 어우동 복장을 한 참가자가 경쾌한 리듬으로 춤을 시작했습니다.
ⓒ 임윤수
▲ 얼굴을 가렸던 모자를 벗고, 장고를 내려놓았습니다.
ⓒ 임윤수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고
한오백년 사자는데 웬 성화요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고
백사장 세모래밭에 칠성단을 모으고
임 생겨 달라고 비나이다.


감정을 자극하는 구슬픈 사설과 애달픈 곡조가 끊어질 듯 이어질듯 반복됩니다.

조선시대의 유명한 기생 어우동 복장을 한 참가자가 꽃단장에 장고를 들러메고 무대로 등장합니다. 배경음악에 맞춰 날아갈듯 솟아오를 듯 가뿐가뿐 춤을 춥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얼굴을 가렸던 모자를 벗어던지고 장고를 내려놓습니다.

▲ 너울너울 춤을 추더니 윗저고리를 벗었습니다.
ⓒ 임윤수
이어서 윗저고리를 벗어던지더니 겉치마까지 벗어 던집니다. 춤추는 여인네의 속살이 얇은 속치마에 어른어른 비춥니다. 관중들은 숨소리까지 죽이며 잠잠해집니다. 여기저기서 꼴깍거리며 침 넘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 윗저고리를 벗더니 드디어 아래치마까지 벗었습니다.
ⓒ 임윤수
▲ 외로워 못살겠다는 듯, 흐느끼듯 춤을 춥니다.
ⓒ 임윤수
한 얇은 속치마까지 벗을까 말까에 호기심이 충동질을 해대니 가슴이 조마조마 해지며 만약 벗는다면 눈길을 어디로 둬야 하는가가 걱정도 됩니다. 여인네는 춤을 춥니다. 흐느끼듯 춤을 춥니다. 외로워서 못살겠다는 듯 몸부림치듯 춤을 춥니다. 감춰진 젖가슴이 볼록하게 솟아오르도록 몸을 젖히며 춤을 춥니다. 보일 듯 말 듯 드러나는 여체의 곡선이 아름답습니다.

▲ 얇은 속치마에 어른어른 여인네의 속살이 비추니 그 곡선이 아름답습니다.
ⓒ 임윤수
▲ 춘 사월 짧은 밤도 홀로 견디기 어려운 듯 통곡을 하듯 몸짓을 합니다.
ⓒ 임윤수
▲ 외로움과 애잔함에 무너질 것 같던 여인은 꽃부채를 집어 들고 너울너울 춤을 추었습니다.
ⓒ 임윤수
무슨 사연이 저리 많을까 가 궁금해집니다. 무너지듯 엎어졌던 여인네가 연기처럼 피어납니다. 하얀 속옷을 나풀나풀 흔들어 대며 차츰차츰 일어나더니 저만치 던져 놓았던 꽃부채를 주워들고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 사뿐사뿐 춤추는 발놀림에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꽃방석처럼 깔립니다. 산다는 게 이렇듯 애간장을 녹일 듯 가슴 아프다가도 춤을 출 만큼 기쁜 그런 계기가 오는 가 봅니다.
품바 축제는 내일(22일, 일요일)까지 계속되며 축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품바 최종결선은 22일 진행됩니다.

이어서 '품바' 관련기사 이어집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딴지펌] 아이스케키

 

 

 

[의식의 흐릿] 아이스케키의 추억

2006.4.20. 목요일
딴지 문화생활부

  들어가며

'의식의 흐름'이란 게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큰 영향을 받은 이 용어는, 간단히 말해 개인의 의식이건 상념이건 기억이건 계속적으로 쫙쫙 흐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에서 사용되는 중요한 서술기법으로 많이 알려졌다.

'의식의 흐릿'이란 것도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우습게 아는 이 용어는, 복잡하게 말해 창조적 구라와 아님말고식의 독설로 개인의 의식이건 상념이건 기억이건 계속적으로 흐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지에서만 사용되는 서술기법의 하나로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즉, 독자의 의식을 의도적으로 교란함으로써 사회적 통념을 벗어난 일탈적 사고를 훈련시키고, 급기야는 지적 유희와 포만감마저도 선사하기 위해 본지가 개발해낸 유니크한 서술기법이라 하겠다. 지난번 짬짜면을 소개했을 때부터 눈치빠른 독자라면 알 수 있듯이, 이 기법은 내용을 '믿거나말거나꼴리는대로임하소서'라는 무한 무책임을 생명으로 한다.

오늘 '의식의 흐릿'의 그물망에 걸려 든 주제는 바로 아이스케키.

그렇다고 요렇게 먹는 아이스케키냐고? 사람을 어떻게 보시나, 지금. 천만이다. 여기서 아이스케키라 함은,

소시적 고무줄 놀이에 열중하는 여아동 주변,
혹은 선생에게 일러바치는 걸 모범생으로 착각하던 여자 부반장 무리
그들을 염탐하다가
적절한 타이밍를 포착, 기습적으로 치마를 들추는..

남아동의 성장소설적 행위를 일컫는다.   
 

 왜 아이스케키라 부르는가?

윤복희 누님이 미국에서 귀국하며 국내 최초로 미니스커트를 선보였던 1967년. 이 해 이후 국내 모든 남성들이 느닷없이 바람부는 날을 학수고대하기 시작했다. 그 왜 이런 말도 있잖은가? 바람부는 날이면 '수질좋은'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육교 밑에서 진을 치는 느끼남들이 본격적으로 양산된 해도 이 때부터다.

그러다가 소극적으로 관망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아동층으로 중심으로 치마를 들춰보기 시작하는 탕아적인 놀이문화가 이 땅에 뿌리내린 것은 대략 1970년대 중반이다.

80년대 초반설도 있지만, 치마 길이 무릎 위 10cm이면 경범죄 처벌함으로써 남성들의 낭심을 유린하는 반인권적 처사가 횡횡했던 박정희 시대 그때 이미 아이스케키가 유행했다 게 논리적인 정설이다.   

70년대 아동들의 치마 들추는 행위는, 치마길이에 대한 안타까운 동심이 행동화된 반(反) 박정희 항쟁의 개인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만, 늘 그랬듯이 거대담론의 역사는 이 개인적이고도 게릴라적인 항쟁을 기억치 못한다. 유감이다.

그럼 이쯤에서 본능적으로 드는 의문점 하나. 치마를 들추면서 남아동들이 보란듯이 외치던 사자후 한마디가 왜 하필 '아이스케키'일까 하는...  

도대체 치마 들추는 행위와 아이스케키 간에 무슨 유의적 상관관계가 있길래, 모범발음 아이스케익~도 아니고, 케키냔 거다. 차라리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의미에서 "심봤다!"라고 외칠 수도 있었는데 대체 왜..

특정 대상이나 행위가 명명되는 현상의 기저에는 그 대상 혹은 행위를 향한 이데올로기가 녹아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이름은 예사스러운 게 하나도 없다. 착용치마끝단 순간상승을 도모하는 행위가 아이스케키라고 불리는 데에도 하여 분명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 의식이 흐릿해진다...
 

  노출에 의한 청량감 상승의 측면

치마를 들출 때 치마폭이 퍼덕거려 주변 대류현상이 왜곡되고 이로 인해 생겨나는 기압차, 즉 바람 때문에 아이스케키 시전자는 시원함을 느끼고, 이 느낌은 빙과류를 먹을 때 느끼는 청량감과 유사하다는 데서 출발하는 관점이다.

혹자는 치마가 급속하게 올려지면, 치마 속 기온분포가 달라지면서 역시 대류현상이 발생, 노출을 당하는 쪽이 더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라고도 주장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은, 속절없이 타의에 의해 무릎부터 시작해 허벅지를 거쳐 그 이상의 부위까지 백주대낮에 노출해야 하는 피(被)아이스케키자의 심정을 단 한번도 헤아리지 않은 낭설일 뿐이다

  대가성 향응 뇌물 지칭의 측면

평소에 흠모하던 여아동의 치마를 들추기를 또래의 친구에게 청부하면서 그 대가로 주로 아이스크림을 제공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  

따라서 청부를 받은 친구는 타겟의 치마를 들춰올리는 걸 임무 완료하는 순간, '이제서야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겠다!'는 순간적 환희를 경탄조로 토해냄으로써 그 기쁨을 주위에 과시했다고 한다. '아이스케키'라는 사자후 바로 다음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먹을 수 있다!"를 과감히 생략함을써 당시 아동들의 탁월한 언어 경제성을 엿볼 수 있다.  

  급속 안면 냉각의 측면

아이스케키를 당한 여아동이 수치감, 분노감으로 얼굴이 일그러졌을 때 그 얼굴형상을 빙과류의 차가움과 단단함에 빗댄 데서 연유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가설은 치마를 들추는 행위가 사실은 치마 속을 훔쳐보겠노라는 남아의 명시적 혹은 함의적 성적욕구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중요한 단서로 많이 이용된다. 어째서.

여아동의 수치심 가득한 얼굴에서 일종의 우월감 혹은 승리감을 만끽하려는 남아 특유의 짖굿음 혹은 그것을 넘어 지배욕의 소산으로까지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치마 속 신비주의 잉태의 측면

그 옛날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 때 스멀스멀 올라오는 드라이아이스의 CO2, 그 스모크성 연기는 모종의 신비감과 더불어 두근거리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신비감과 두근거림은 사모하는 여아의 치마 속은 어떨까 하는 신비감 내지는 기대감과 유사하다는 데서 아이스케키라는 이름이 부여되었다고 보는 특면이다.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전후의 나이대에 맞는 단선적 성적 판타지가 효과적으로 투영됐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관점이라 하겠다.

  발음에 의한 쾌감 유도 측면

음성학적으로 볼 때, 연구개 즉 목구멍에 가까운 입천장을 강하게 폐쇄한 상태에서 발음하는 게 /ㅋ/이다. 이 /ㅋ/은 모음과 만나 강력한 파열음이 되는데, 이를 연쇄적으로 발음해줌으로써 수반되는 일종의 호쾌하고도 뭔가 한탕했다는 느낌을 얻고자 이 명칭을 사용했다고 보는 측면.

즉 치마를 들추는 행위에서 오는 1차적 쾌감을 배가시키기 위한 유효적절한 효과음으로 "케익" 대신 "케키"라는 어휘를 선택하는 지혜를 발휘함으로써 부차적 쾌락을 추구했다는 아주 논리정연한 유추가 가능하다.
 

   아이스케키를 하는 이유에 대해

아이스케키는 사실 놀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숭악스럽고, 범죄라고 보기에는 너무 순진무구하다. 아이스케키 피해자가 어른이 되어 동창회에서 가해자를 만난 걸 계기로, 명백한 성범죄라며 법정공방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그 때를 회상하며 아름다운 시절이었노라며 노스탤지어의 눈물도 흘릴 수 없는, 참, 거시기한 성질을 지녔던 게 아이스케키다.

여기서 아이스케키와 관련해서 드는 두 번째 의문.

그럼 왜 남아동들은 좀 건전하게 놀지 않구선 허구한 날 호시탐탐 아이스케키를 하며 놀았나?

이 또한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해 볼 수 있겠다. 다시, 의식이 흐릿해 진다..
 

   치마착용에 기인한 자연발생론

아이스케키라는 남아동의 가학적 놀이문화가 이 땅에 퍼질 수 있었던 건, 여아동들이 나팔바지가 아니라 몸빼이가 아니라 그냥 치마를 입어줬기 때문이라는 아주 단순한 논리다.  

치마는 여성의 노출욕과 남성의 관음증이 상보적 긴장을 일으키게끔 만드는 의복 중 하나다. 그러나 이러한 긴장도 남성의 관음증이 우세할 때 양상이 달라진다. 남성들은 대개 '바람'이라는 불확실성에 의존하는 것보다 차라리 '손'이라는 확실성을 택하는 경향을 띄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아이스케키는 이러한 역학의 산물이며 아이들 수준에서 갖는 성적 유희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또래에 대한 우월감 과시론

아동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여아의 치마 속을 봤다는 것은 자신으로 하여금 또래의 친구들보다 좀 더 어른에 가까워졌다고 느끼게 해주는 속성을 지니는데, 이런 함의가 또래 집단 내 우월의식으로 작용하게 된다. 바로 이 점이 치마를 들추는 행위의 강력한 동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는 보지도 못했으면서 반친구들에게 봤다고 우기기 위해 과장술이나 기만술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일취월장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일취월장한 나머지, 빤스의 색깔, 무늬, 사이즈는 물론 질감이나 습도, 심지어는 고무줄의 탄력도까지 상세하게 묘사해내는 놀라운 쌩구라도 선보이게 된다.

   괘심죄에 의한 집단 응징론

평소 반에서 꼴보기 싫던 여아를 골탕먹일 목적으로 또래 친구들과 사전모의, 끈끈한 팀플레이에 의해 아이스케키가 감행되는 측면도 놓치면 안된다.

피해자의 학부형이 다음날 반드시 찾아와 되려 가공할 죄책감, 가령 무기정학 심지어 퇴학을 안겨주기도 한다. 아이스케키 중독자 중에는 이러한 강한 체벌에도 불구하고 다른 타켓을 물색하느라 허구한날 눈알을 희번덕거려 눈알분열증까지 발병하는, 개인적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연모를 은폐하기 위한 반사적 행위론

괘심죄에 의한 응징론의 대척점에 있는 이론으로서, 마음에 드는 여아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시도하지만 그 연모의 마음은 들키지 않기 위해 아이스케키를 한다는, 가련하기 짝이 없는 남심에 우리는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

사춘기를 지나며 정신적 성숙과 성적 욕구가 혼란스럽게 결합하면서, 치마 들추기 행위는 '여선생님 뒤에서 거울 내려 치마 속 반사시키기'로 진화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매를 부르는 행위를 통해서 남아동은 소년에서 청년으로 단련되고 제련된다.
 

  맺으면서

아이스케키는 유년기적 남성 로망이 가학적 찝쩍거림의 형태로 표출된 아방가르드적 커뮤니케이션이며, 또한 아이스케키는, 가해자에겐 성적 호기심의 돌파 수단으로 피해자에겐 돌이킬 수 없는 쪽팔림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다면적 행동양식이다.

게다가 아이스케키는, 남성 특유의 폭로적 경향성이 여성 특유의 내향적 감수성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발생, 간혹 뜻하지 않게 여아동이 울음을 터뜨림으로서 순식간에 남아동의 자책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스케키는, 같은 방식으로 보복이 들어오는 똥침놓기와 달리, 여성의 입장에서 같은 방식으로 응징을 가할 수 없다는 데에, 이 놀이의 태생적 불평등이 발생한다.

남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 세상에 가해자가 하나 더 추가되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는 어떤 주장을 이 놀이로 인해 6.9% 공감하면서도, 그래도 이 유희가 없어질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은 왜일까?

화장기 있는 얼굴 본 기억이 오래된 마누라의 치마를 들춰봤자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이스케키는 시간의 침식을 받는 추억 속의 유희임이 분명하다.

어른이 되어서는 결코 할 수 없고... 또 한다한들 두근거림도 사라져 버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개팔자가 상팔자 plus 냥이 추가



src="http://cyimg14.cyworld.nate.com/common/file_down.asp?redirect=%2Fq43501%2F2006%2F5%2F11%2F49%2FMOT%5F0067%281348%29%5F0176x0220%2Eswf"
width="0176" height="0220" >

그게 뭔데여?....

일루 와바, 오빠가 말이쥐... 아유, 옆으로 좀 와보라니까... 요걸 어떻게 해치워?

 

 

마이산에서 다시 만난 녀석들
개팔자가 상팔자 2
텍스트만보기   문일식(mis71) 기자   
얼마 전 전북 진안 마이산에 갔다가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곤히 자고 있는 개들의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던 나머지 올렸던 기사인데 여행동호회에서 정기여행으로 마이산에 다녀오면서 그 녀석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 마이산 금당사에서 다시 만난 녀석... 잠에 취하다..
ⓒ 문일식
이 녀석은 자는 위치가 정해져 있는 모양입니다. 저번에는 불안한 자세로 자더니 이번에는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편안한 자세로 자고 있습니다. 문득 담요를 덮어주고 싶어졌습니다.

▲ 갑작스런 돌출행동을 하는 녀석...
ⓒ 문일식
녀석이 갑자기 희한한 돌발행동을 취했습니다. 마치 운전을 하는 듯한 자세입니다. 막 잠에서 깨어난 뒤 기지개를 켜는 것도 같습니다.

▲ 위장술에 능한 녀석... 털색과 땅색이 구분이 안갈 정도...
ⓒ 문일식
위장술로 잠을 자던 녀석. 오늘은 경내 마당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털 색깔이 땅색과 비슷합니다. 이 녀석은 경계심은 별로 없는데 다가서면 꼬리를 살살치며 피하기만 합니다.

▲ 큰 하품을 하고 있는 녀석...
ⓒ 문일식
잠을 자다 지친 모양입니다. 따뜻한 양지로 나와 어슬렁거렸습니다. 아주 멋진 봄날에 멋드러지게 하품을 하고 있는 녀석. 정말 입이 찢어져라 하고 있습니다. 나른한 봄날을 만끽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 하품하는 녀석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녀석,,,
ⓒ 문일식
위장술에 능한 녀석이 하품을 하고 있는 동료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습니다. 역시 편안한 모습입니다. 마이산 벚꽃이 만개하지 않았지만 어쨋거나 봄은 여유만만 다가오고 있나 봅니다.
관련
기사
개팔자가 상팔자...
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

  문일식(mis71) 기자   
▲ 마이산 탑사에 사는 녀석... 참 이쁘게도 잔다...
ⓒ 문일식
마이산 탑사 근처에 사는 녀석이다. 정말 곤히 자고 있다. 맛있는 단잠을 자고 있는 표정이다. 완전히 개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다. 근처에 가도 전혀 움직임이 없다. 여느 개라면 최소한 귀라도 쫑긋 거릴만한데...

▲ 발을 휘저으며 자는 녀석...
ⓒ 문일식
녀석 꿈꾸고 있는 모양이다. 갑자기 다리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개장수한테 쫓겨다니는 꿈일런가.

▲ 정상에 갔다 내려오는 그 길에도 역시 자고 있다...
ⓒ 문일식
탑사를 지나 은수사를 지나 정상에 갔다가 다시 내려왔을 때, 이 녀석 자세가 바뀌었다. 여태껏 자는 모양이다. 완벽하게 봄을 느끼는 자세다. 앞발을 모으고, 머리를 받친 채. 녀석을 보니 나도 졸리다. ㅡㅡ+

▲ 금당사의 백구가 따뜻한 봄볕 속에 늘어져 있다.
ⓒ 문일식
진안 마이산 금당사의 백구. 인기척에 움직일 법한데... 툇마루 아래 드러누워 다소 긴장한 듯한 자세로 자고 있다. 그런데, 사찰에는 왜 유난히 백구가 많은 걸까? 알 수가 없네.

▲ 숨어서 자는, 치밀한, 금당사에 사는 녀석
ⓒ 문일식
이 녀석은 더 압권이다. 완벽한 위장술에 보호색까지 갖췄다. 길을 지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뻔한 녀석이다. 녀석의 까만 코만 아니었다면 아마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마이산으로 찾아온 봄날의 따뜻한 기운을 완벽하게 받아내고 있다.

녀석들이 부럽다... 나도 너희들처럼 아무 생각없이 한 잠 크게 자고 싶다...

 

 

정석 2006.05.13 05:16 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그녀, 설경구와 웨딩사진 찍다

 

 

 

그녀, 설경구와 웨딩사진 찍다
선천성 뇌성마비 '5월의 신부' 정윤수, 웃어라 활짝 웃어라
텍스트만보기   조영해(lacan66) 기자   
오래전이다. '한벗 장애인 이동봉사대'(지금은 한벗재단)에서는 장애인을 상대로 문화강좌를 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부탁으로 그곳에서 영화와 심리에 관한 특강을 했다.

장애인을 위한 영화강의를 해본 적이 없어 많이 망설였고,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솔직히 불안했다. 무엇인가(?) 조심해야 한다는 막연한 강박관념이 날 무척이나 힘들게 했다. 그러나 막상 만나서는 부담 없이 강의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 오히려 무엇인가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장애인들에게는 차별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날 특강을 마치고 지인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지인이 장애인을 한분 데리고 나오셨다. 그녀가 바로 정윤수씨였다. 그녀를 본 것은 그날이 두번째였다. 첫번째는 여의도 벚꽃 축제가 한창이던 때, 그 지인이 그녀를 데리고 벚꽃 구경을 한다며 시간이 되면 나오라고 해서 나갔다가 만난 게 첫 만남이었다.

당돌하고 용감했던 그녀, 정윤수

▲ 구두점에서
ⓒ 천년의 시작
첫 만남에서부터 그녀는 당돌하였고 용감(?)했다. 휠체어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여의도 벚꽃 구경을 하겠다고 집에서(목동) 여의도까지 나온다는 것. 보통 용기가 아니라고 본다. 단순한 장애가 아닌 선천성 뇌성마비라서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한데도 그녀에게 그것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그렇게 용감하냐고 묻는 내가 더 장애물(?)이라고 말하던 그녀였다.

첫 만남에선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통역이 필요했다. 나의 지인은 그녀의 어눌한 말을 너무도 잘 통역해 주었다. 내가 어눌하다고 표현해서 그렇지, 사실은 말을 하는 그녀 입장에서는 말하는 것 자체가 고통인 것 같았다.

한마디를 하려면 온 몸이 비틀어져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데도 열심히 소통을 하려는 그녀가 안쓰럽기도 해서 그냥 불편하면 하지 말라고 했다가, 오히려 그녀에게 무안을 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만큼 그녀는 자신의 장애가 비장애인과의 관계에서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하나 첫 만남에서 놀란 것은 그녀가 삼겹살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먹느냐고 물었더니 '다 먹을 수 있다'며 웃어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장애인에 대한 내 시각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음식을 먹을 때 항상 빨대를 사용했다. 국물 있는 음식에서부터 음료수까지 모두 빨대로 해결했다. 지금 그녀의 나이는 36살이다. 그녀도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알 것이다. 자신의 일그러진 몸, 음식을 먹을 때도 온 몸과 입이 비틀어져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을 것이다. 그런데도 해맑게 웃으면서 그 모습을 보여주는데 전혀 장애(?)느끼지 않았던 그녀.

<오아시스> 문소리에게 연기지도를 하다

▲ 설경구씨와 찍은 웨딩사진
ⓒ 천년의시작
▲ 설경구씨와 찍은 웨딩사진. 정윤수씨가 활짝 웃고 있다.
ⓒ 천년의시작
그녀를 두번째 만난 것은 특강을 마치고였다. 그녀는 내 특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 지인의 통역을 빌려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때 나는 그녀가 참 똑똑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그녀가 영화 <오아시스>의 문소리의 연기지도(?)를 했다는 말을 지인을 통해 듣고 놀랐다.

하지만 정윤수는 단순히 연기지도만 한 것이 아니었단다. 당시 이창동 감독과 설경구, 문소리에게 조건부 계약을 제시했단다. 그녀의 조건은 문소리가 뇌성마비역을 할수 있도록 자신이 도울테니 그 어떤 사례보다 "평생 찍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웨딩사진을 찍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그 어떤 것보다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감독과 설경구, 그리고 문소리는 그녀의 소원, 그 이상의 소원을 들어주었단다. 웨딩사진은 물론, 그 신랑역으로 그녀가 상상도 할수 없었던 최고의 배우 설경구를 선물로 주었다는 것이다. 그때 그녀는 내게 "일생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한없이 자랑했었다.

그녀가 웨딩드레스를 입는다, 이번엔 진짜다

그리고 그녀를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 그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정윤수,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과 함께 그녀가 올 5월에 그토록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결혼을 한다는 기쁜 소식도 알려줬다.

그 지인은 다름 아닌 정윤수의 <꽃보다 활짝 피어라>를 엮은 소설가 김명이씨(본명은 김명희)다. 김명이씨는 그녀의 통역이자 그녀 삶의 조언자였다. 그래서인지 정윤수, 그녀를 본인보다 더 잘 아는 것 같다. 그녀의 입이 되어주고 그녀의 손이 되어 선천성 뇌성마비 정윤수의 36살 인생을 가감 없이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 <꽃보다 활짝 피어라> 겉그림.
ⓒ 천년의시작
영화 <오아시스>의 주인공인 문소리역이 정윤수의 삶은 아니다. 그래서 정윤수는 주변에서 혹시 그 영화의 주인공이 당신이냐고 물을 때마다 자신은 그렇게 망가지지 않았다고 항변을 하곤 했단다. 그래서인지 그 책 서문에서 그녀는 "나는 오아시스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특강을 마치고 만난 두번째 만남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고 오랫동안 보지 못하다가 책이 출간되고 결혼한다는 소식에 축하를 겸해서 김명이씨와 함께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여전히 건강하고 용감했으며, 자신의 책이 나온다는 것에 너무도 기뻐했다.

그래서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책 광고(?)를 해서 책이 많이 팔리게 해달란다. 내게 무슨 능력이 있다고….

그녀가 5월에 결혼을 한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그녀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그녀에게 있는 것이라곤 해맑은 미소와 휠체어, 그리고 유일한 통신 수단인 핸드폰(도대체 핸드폰으로는 어떻게 통화를 하는지 그게 참 궁금하다), 그리고 다양한 빨대, 임대아파트뿐이다.

부디, 그녀의 <꽃보다 활짝 피어라>가 대박이 나서 5월의 신부인 그녀가 더 웃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관련
기사
시각장애인 안내 교육 받는 박물관 직원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그동안 모은 장난감만 30억원 5만여 점&quot;

 

 

 

그동안 모은 장난감만 30억원 5만여 점"
[인터뷰] '와일드옥스엔터프라이즈' 김혁 대표
텍스트만보기   홍성식(poet6) 기자   
▲ 김혁씨가 소장한 장난감 중 가장 고가로 추정되는 '험피 덤피 서커스 인형세트'.
ⓒ 와일드옥스엔터프라이즈
"수집한 장난감 중에 가장 비싼 거요? 180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진 '험티 덤티 서커스 인형세트'죠. 2003년에 미국 서커스박물관이 폐쇄된 후 서너 사람 손을 거친 후 내게 왔어요. 아마 3억원쯤 할 겁니다. 누가 그 가격을 제시하면 팔 거냐구요? 안 팔죠. 자식을 파는 아버지도 있습니까?"

자타가 공인하는 장난감콜렉터(수집가)이자, 애니메이션·테마파크 기획 전문 컨설팅 그룹 와일드옥스엔터프라이즈 대표이사인 김혁(42)씨는 보편의 시각에서 보자면 '참으로 기이한 사람'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한 각종 장난감 3만점을 포함, 와인오프너와 아이스크림 스쿠프(뜨는 도구), 각국의 술, 실물 크기의 밀랍인형, 춘화, 희귀한 근대사 물품 등 그가 수집한 것들이 모두 5만여 점에 이른다.

이걸 가격으로 환산하면 대략 30억원. 지방 중소도시에서 어지간한 아파트 10채 이상을 살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전세를 산다.

"돈을 꽤 벌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생기는 즉시 물건 수집하러 다니기 바쁜데요. 다리미 구하러 멕시코 가고, 오래된 미키마우스 인형 구하러 미국 가고….(웃음) 순수한 콜렉터로 외국을 돌아다닌 건 10년쯤 됐어요. 한 50개국 정도는 다녀온 것 같네요."

서글서글한 인상이지만, 특이한 물건을 보는 순간 매의 눈을 가진 사냥꾼으로 변하는 열혈 콜렉터 김씨. "수집가는 흘러간 시간을 복원시키는 사람이자, 시간의 파수꾼"이라고 말하는 김씨를 봄이 완연해진 지난주 서울 봉천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래는 그가 들려준 수집가로서의 삶이다.

장난감부터 춘화까지 수집품 5만여점... 인형 사러 미국행도

▲ "수집가는 사냥꾼"이라 말하는 김혁씨.
ⓒ 홍성식
- 애초에 각종 물건들을 모으게 된 계기가 있는가.
"꼬마 때부터 독특한 것이나 신기한 것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난 눈이 3개다. 남들과 달리 묘하고 재밌는 것을 보는 눈이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길을 가다가도 특이한 물건이 보이면 집으로 가져왔다. 그런 잡동사니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내가 제대할 때까지 보관해 준 아버지도 내가 수집가로 사는데 일조한 셈이다. 나중엔 그걸 후회하셨지만.(웃음)"

- 본격적으로 수집을 시작한 시기는 언제인가?
"중학교 때다. 세뱃돈 받아 장난감을 사 모으기 시작한 게 처음인 것 같다."

- 주요 수집품의 목록과 대략적인 개수를 말해달라.
"퍼즐과 테디베어 등을 포함한 장난감이 4만점, 와인오프너가 3000개, 아이스크림 스쿠프가 3000종, 각종 술 500병, 근대사물품(옛날물건) 1000점 등이다. 1989년에 처음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물건 수집 등의 이유로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와 남미 등 세계 50개국 정도를 오갔다."

- 그렇게 많은 것들을 대체 어디에 보관하는가?
"경기도 군포의 창고, 이 곳 사무실, 김포의 처가 등에 두고 있다. 불광동에선 일부 물품이 상설전시 중이고, 인천에서도 일부 전시되고 있다. 이걸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은데 공간 부족 등의 이유로 쉽지 않다."

- 자기만 볼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도 보여주는 게 더 좋을 듯한데.
"내가 물건을 모으는 가장 큰 이유가 사람들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다. 딱딱하고 학술적인 공간이 아닌, 보고 만지고 즐기는 공간으로서의 박물관을 만들자는 운동을 하고 싶다.

장난감은 물론이고, 아이스크림, 성물(性物), 옛날 물건 등을 테마로 하는 여러 박물관들이 생겨나야 한다. 다행스레 그런 인식들이 차츰 받아들여지고 있어 올 7월에는 경기도립박물관에서 장난감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그런 시도들이 더 많이 더 자주 생겨야 한다."

- 수집한 것중 가장 비싼 것과 가격에 관계없이 가장 아끼는 물건은 뭔가?
"가장 비싼 건 험티 덤티 서커스 인형세트와 노아의 방주 인형세트다. 아마 3억원쯤 할 거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건 내 유년의 추억과 결부된 것들이다. 다소 남루해 보이지만 '육백만불의 사나이 인형'과 '황금박쥐 인형'을 볼 때면 예닐곱살 시절의 내가 떠올라 한참을 추억을 잠기곤 한다."

▲ 김혁씨가 수집한 각종 인형들.
ⓒ 홍성식
수집가란 시간의 파수꾼... 이젠 아내도 '절반의 콜렉터'

- 수집 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생산회사가 망한 후 귀해진 공룡 장난감을 시골 문방구에서 개당 2만원에 여러 개 구입했는데, 그걸 일본에 가져가면 하나에 200만원을 호가했다. 전라북도 순창에선 양복입은 사람이 장난감 사러 다닌다고 간첩으로 오해받기도 했고. 일본에서 실물과 거의 흡사한 장난감 총을 들여오다가 세관 검색에 걸려 수색을 당한 것도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땐 아이들이 봄소풍을 우리 사무실로 왔다. 왜냐고? 그 녀석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 다 있으니까.(웃음)"

- 수집가란 어떤 사람인가?
"흘러간 시간을 복원하는 사람이 아닐까. 다른 말로 하자면 시간의 파수꾼 혹은, 세월의 지문을 찾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수집가들은 누구나 기억하지만, 아무도 가지지 못한 것에 끊임없이 집착한다."

- 아내는 당신의 수집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반대에서 체념, 체념에서 동행의 과정을 거쳤다. 처음엔 '제발 저 지저분한 것들 좀 어떻게 할 수 없냐'던 사람이 지금은 벼룩시장에서 희귀한 장난감이 보이면 그걸 사와 '어때? 이거 괜찮지'라고 물어온다. 아내의 그런 이해가 고맙다."

- 별난 수집가들도 많이 알고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만화책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은 골동품가게를 운영하는 김응수씨로 알고 있다. 라면 봉지를 모으는 사람도 있고, 우리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딱지만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이도 있다. 생리대를 모으는 사람도 독특한 수집가고, 대구의 한 콜렉터는 소주병에만 집착한다고 들었다."

▲ 독특한 김혁씨의 수집품들. 왼쪽은 한국 것과 무척 비슷한 멕시코산 다리미. 담배갑 크기의 5배가 넘는 대형 라이터도 보인다. 이걸로도 담뱃불을 붙일 수 있다고.
ⓒ 홍성식
오랫동안 수집가로 남으려면 돈에 휘둘리지 마라

- 희귀한 수집품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서 얻는 건가?
"수집가들의 정기적인 모임이 있다. 일본과 미국, 영국 등에서 열리는 각종 수집품 전시회도 유용한 정보교류의 장이다. 요사이는 인터넷과 이메일 등으로도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 외에 며느리도 모르는 콜렉터 각자의 정보 노하우가 있다. 그걸 알려달라고? 그럴 수야 없지. 사업비밀인데.(웃음)"

- 수집품을 팔 생각도 있는가?
"글쎄…, 자식을 파는 느낌이 들 것 같아 못할 것 같다. 오히려 경제적 여건이 허락된다면 더 사 모으고 싶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박물관이나 백화점에서 마인드를 가지고 전시를 제의한다면 그건 얼마든지 고려할 수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테마박물관 운동'은 향후 내 희망이자 비전이다."

- 초보 수집가들에게 선배로서 격려와 조언 한마디 덧붙인다면.
"돈 되고 비싼 것에만 집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수집가와 보유자는 분명 다르다. 금전적인 것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좋아하는 것을 모아야 오래 간다. 컬렉터는 장사꾼이 아니라 자신이 모은 물건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자 그 수집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국 좌파 코미디 연출가 단 첨리(DAN CHUMLEY)를 만나다

 

 

미국 좌파 코미디? 한국 상륙!
[인터뷰]좌파 코미디 연출가 단 첨리(DAN CHUMLEY)를 만나다
텍스트만보기   오도엽(odol67) 기자   
ⓒ 오도엽
'코믹노동뮤지컬을 한다고?'

노동현장에서 20년 가까이 문화활동을 해왔던 '노동문화예술단 일터(일터)'에서 코미디를 한다는 말을 듣고 좀 어이가 없었다.

고공에서 단식을 하고, 손목을 끊고, '차라리 죽여라'를 외치는 2006년 노동현실을 어떻게 보고 '위험한 변절'을 하려는 거야.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하에 있는 소극장을 찾았다. 한참 공연연습 중이다. 그때다.

위험한 변절

"How are you?"
어, 웬 영어. 입이 굳고 얼굴이 긴장된다. 누구지? 아, 작년 부산 APEC 반대 시위 때 만났던 단 첨리(Dan Chumley)가 아닌가.

"Ah, Dan. Long time, no see."
경찰들은 시위대에 물대포를 쏘고, 시위대는 거센 물줄기를 맞으며 컨테이너에 밧줄을 묶고, 끌어내릴 때, 취재하던 내 눈길을 끌었던 이국인이 아닌가.

단은 미국에서 오래된 극단 가운데 하나인 샌프란시스코 마임 투룹 극단(SFMT)에서 34년간 일을 했다. SFMT는 폭 넓은 코미디 양식을 가지고 날카로운 정치풍자를 하는 극단이다.

"우리 극단은 빠른 줄거리와 재치 있는 대화를 풍성하게 하려고 음악, 춤, 노래를 사용하죠. 1959년 이후로는 미국 민중들에게 정부가 국내외 정책을 바꾸고, 민중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하는 역할을 우리 극단에서 해왔어요."

단은 보통 극단들이 예술 감독에게 좌지우지되는 것에 반해, SFMT는 모든 것을 단원들이 함께 결정하는 공동체 성격을 지닌 좌파 극단이라고 한다.

미국 좌파 극단

인터뷰를 요청하자 단은 손을 젓는다. 공연을 하는 일터 단원들과 하라고 한다. 좌파극단 연출자답게 인터뷰도 단원들에게 돌린다. 리허설을 보려고 단 옆에 앉았다.

단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리허설을 하는 단원들보다 더 사실적으로 표정을 지으며 손짓과 몸짓을 한다. 입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두두두두, 삐루삐루삐루. 효과음을 넣는다. 연출자인지, 배우인지, 음향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갑자기 단이 무대로 나간다. 개다리 춤을 추듯 다리를 흔들고, 얼굴은 도리도리를 치고, 두 손의 검지를 눈썹 끝에 대고 빙글빙글 돌린다. 순간 코미디언 배삼룡이 떠오른다.

개다리 춤추는 연출가

ⓒ 오도엽
리허설이 끝나고, 저녁을 함께 먹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 밥을 먹는다. 밥을 먹다가도 질문을 하면, 숟가락을 놓고 열심히 답을 해준다. 대화를 할 때도 단의 표정은 수시로 바뀌고, 손짓을 멈추지 않는다. 단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삶과 말은 퍼포먼스다.

노동문화와 민중문화, 또한 투쟁현장을 그리는 공연에서 코미디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마당극에도 해학과 풍자가 주를 이루지만, 웃음보다는 눈물이 익숙한 한국의 노동현장에는 어울리지 않다고 따졌다.

"코미디는 미국에서 정치나 민중을 다루는 연극을 하는 사람에게 자연스런 선택이에요. 코미디는 연극이나 영화에서 가장 대중적인 형식이죠. 미국에는 다양한 문화가 있는데, 자기 나름의 코미디 양식이 있어요. 소수의 분노, 두려움 그리고 희망을 코미디로 나타내는 배우가 있어요."

SFMT는 코미디를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으로 늘 느끼고 있다고 한다. 웃음은 관객이 뜻하지 않은 반응을 보이게 해준다. 관객이 웃는 것은 배우가 보여준 풍자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풍자는 문제점이나 갈등, 정치적 이슈를 찍어서 밝혀주는 밝은 빛과 같아요. 그 빛은 민중에게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하고, 변혁에 나설 수 있게 합니다. 코미디는 가슴을 열고 머리에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죠. 혁명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생각의 혁명이 일어납니다."

코미디가 혁명을 한다

ⓒ 오도엽
코미디에는 영웅과 악당이 있고, 희생과 죽음이 있다. 그리고 우정과 사랑이 있다. 멜로드라마 또한 코미디양식에 강력한 요소다. 코미디는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의 시선을 모으고, 메시지를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접착제와 같다.

"코미디는 메시지를 설교 투로 전하지 않아요. 교조적으로 받으라고 하지도 않죠. 관객을 흥미로 이끌어주고,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하죠. 그래서 관객이 감동을 하는 순간, 더블 펀치를 날리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음악과 코미디로."

코미디를 바보상자 속에 사람의 눈을 빼앗아 웃게 하는 것으로 알았다. 단은 내게 이중 펀치가 아닌 삼중 사중 연타를 날렸다. 좌파 코미디 극단의 연출가가 말하는 코미디는 낫이고, 망치고, 죽창이다.

죽창이 된 코미디

단이 연출을 맡고 일터가 공연하는 코믹노동뮤지컬의 제목은 '팔칠전(傳)'이다. 팔칠이가 주인공인데, 주인공은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던 87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렇다고 20년 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고공에 올라가 농성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나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벽을 볼 수 있고, 투쟁현장에 찾아든 다양한 정파들이 나온다. 87년을 2006년 코믹노동뮤지컬에서 깨운다.

"나는 87년 한국에 대해 조금밖에 모른다. 하지만 전 세계 좌파 민중들은 87년 한국의 영웅적인 노동자들의 투쟁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노동자와 학생 활동가들이 기계를 멈추고, 공장을 접수하고, 독재자를 끌어내렸을 때, 전 세계 좌파 민중은 한국의 힘과 용기가 전 지구에 널리 퍼지기를 기원했어요."

이번 공연은 87년 노동자투쟁을 이끌게 했던 단결과 지금은 잊힌 그때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 87을 깨웠는가, 20년간 잠자다 깨어난 87에는 어떤 힘이 있는가 하고 묻는다.

그리고 단은 우리에게 묻는다. "IMF, WTO, APEC의 시대에 떨쳐 일어나 이끌고 갈 수 있을까?"

미국 좌파의 질문

ⓒ 오도엽
좌파의 눈으로, 한국의 좌파에 질문을 던진 거다. 단은 반세계화에 맞서는 민중의 투쟁을 한국노동자에게서 찾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좀 전에 그가 했던 말이 머리에 스친다.

"코미디는 가슴을 열고 머리에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죠. 혁명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생각의 혁명이 일어납니다."

아직 공연의 대본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리허설을 하며 쓰고 고치고 한다.

"매일 대본은 바뀌지요. 그리고 다시 익히고, 다시 바꾸고를 반복해요. 미국에서는 공연을 앞두고 공원에 나가요. 무료로 공연을 하죠. 대중들의 반응을 보며 다시 고치며 작품을 완성하죠. 무료지만 모자를 돌리죠. 한 천이백 명 정도 모이는데, 2달러도 주고, 5달러도 주죠. 공연보다 저녁에 돌아와 모자에 걷힌 돈을 세는 게 일이죠."

실제로 돈을 액수대로 고르고, 세는 표정을 하며 활짝 웃는다.

오늘도 대본에 대해 문제를 던진다.

"비정규가 고공 농성할 때 팔칠이가 올라가잖아. 올라가서 '동지'하고 부르잖아. 팔칠이가 50미터 철탑에 진짜로 올라갔으면 '동지'라고 할까? (두 팔로 자신을 감싸며 떤다) '아이, 추워'라고 하지 않았을까?"

아이, 추워

그 말에 배우들이 모두 배를 잡고 웃는다.

"막상 올라갔어. 비정규노동자랑 함께 철탑에서 내려올 때, 내려가려고 아래를 보니 너무 무서운 거야. 그래서 그런 거야. 팔칠이랑 비정규랑 서로 먼저 내려가라고 권하는 거야.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이런 식으로."

두 팔을 상대에게 펴며 내려가기를 권하는 모습을 보이며, 서로 먼저 가라고 두려운 얼굴로 권하는 단의 포즈에 또 한 번 웃었다.

손뼉을 쳤다. 이제야 코믹이 뭔지를 알 수 있다. 코믹보다 먼저 내 눈이 돌아왔다. 진실을 보는 눈.

요즘 일터 단원들은 공연연습보다 쉬는 시간이 두렵다고 한다. 단이 말을 걸어올까 봐. 영어 콤플렉스에 단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슬슬 피해다닌다고 한다.

영어 콤플렉스

▲ 몸빼 아줌마 윤슌심
ⓒ 오도엽
"안 피우던 담배를 피우니까 고민이 있느냐고 해요. 쉬는 시간만 되면 나만 남겨두고 다 나가 담배를 피우는 거야. 그래서 나도 따라가 담배를 피우지. 그럼 다들 먼 산을 바라봐."

말이 통하지 않아도 어울리고 싶어 하는, 공연만이 아니라 배우에게 깊숙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단의 마음을 영어 콤플렉스로 배우들은 문을 걸고 있는 거다. 이것도 코미디네.

지난 광주에서 화물연대 총파업을 앞두고 있었던 전야제 사회를 받던 윤순심씨도 일터의 단원이다. 부산에서는 '몸빼 아지매'로 불리며 펜클럽이 있을 정도다. 오직 윤순심씨만 단을 피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단 선생과 그냥 이야기해요. 말은 안 되니 몸으로 하지. 단 선생과는 퍼포먼스로 이야기하면 돼."

몸으로 말하라

단은 언어보다는 문화의 차이가 어렵다고 한다. 그는 다양한 민족이 섞인 극단과도 작업을 많이 해봤다고 한다. 요즘은 '아시아 마당'이라는 연대활동을 하느라 아시아에 자주 온다고 한다. 이 날도 대만에 가기 위한 비자 때문에 이곳저곳에 전화를 한다.

"같은 말을 써도 문화 차이에 오해가 생기지요. 통역을 통해 호흡을 맞추자니 약간의 불편함은 있어요. 하지만 나는 몸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배우들의 정서와 몸짓을 이해할 수 있어요."

이번 공연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것은 비정규노동자다. 한국의 비정규노동자를 그는 알고 있을까.

"한국의 비정규노동자는 미국의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과는 어떤 면에서 다르다. 미국에서 노동조합은 더 좋은 일자리를 지키면서 비정규에는 분리된 특정한 일을 준다. 하지만 한국은 다른 것 같다. 정규직 노동자와 바로 옆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그들에 비해 더 위험하고, 더 오래 일을 한다. 그런데 더 적은 월급을 받고."

미국인이 본 한국 비정규노동자

ⓒ 오도엽
하지만 미국과 작은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처한 상황은 같다고 한다. 전 세계적인 경쟁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비용을 낮추고 이윤을 높이는 데만 눈을 붉히게 한다. 자본가는 이윤을 올리는 데 사용 가능한 모든 조건을 이용한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경쟁을 물리치고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노동자에게 찾고 있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자본가는 이익이 주된 관심사이다. 사회적 가치나 욕망보다는 시장논리만을 따진다. 노동자의 급여와 노동착취는 자본의 주된 관리 대상이다."

국은 식고, 밥은 굳어가고 있다.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단과 식탁에서 나눈 이야기로 더는 인터뷰 요청은 필요가 없어졌다. 허겁지겁 숟가락을 든다. 단이 밥 먹는 것도 퍼포먼스다.

밥 먹는 것도 퍼포먼스

이미 단 첨리의 작품은 한국에 소개된 적이 있다. 98년 과천 마당극제에서 "DAMAGE CARE(망가진 의료)"를 연출했고, 작년 광주에서는 극단 SILENCE가 제작한 "MY RED DRESS(내 붉은 옷)"을 연출하여 공연을 했다.

그리고 '노동문화예술단 일터'의 '코믹노동뮤지컬 팔칠전' 연출을 맡아 5월 2일부터 14일까지 부산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또 그를 보고 싶다. 천 가지 표정으로 바뀌는 그의 얼굴만 봐도 삶이 재밌고, 행복해 질 것 같다.
민중언론 참세상에도 함께 실립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스튜디오에는 두명뿐인데 출연자는 수십 명?

 

 

 

스튜디오에는 두명뿐인데 출연자는 수십 명?
[탐방] MBC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제작현장
텍스트만보기   정옥재(jung213) 기자   
12일 저녁 MBC 라디오 스튜디오. 이날도 어김없이 전·현직 정치인들이 잇달아 모습을 드러냈다. 대쪽(이회창), 몽(정몽준), 노통(노무현)이 '대충토론'에 나와 '대에충' 말다툼을 하고 나가자 곧바로 DJ, YS, JP가 등장해 '3김 퀴즈'를 시작한다.

문제는 늘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 9단이라고 자처하는 이들 3김의 대답은 어떨까. 잠시 한 문제를 보자.

진행자의 질문,
"다리 부러진 제비를 고쳐 준 인물이 나온 소설 제목은?"


"즈~~응답."
YS가 제일 먼저 한 마디 외친다. (YS는 자신을 IS로 부른다. Y를 발음할 수 없어서)

▲ 진행자 최양락씨와 배칠수씨가 이 프로그램의 인기코너 '3김 퀴즈'를 진행하고 있다.
ⓒ 정옥재
"즈~~응답!! 느므 시워. 말 시키지마. 증답. 박씨전."
"틀리셨습니다."
"내도 내 어렸을 때 그 얘기 읽고 나서 어디 제비 다리 뿌라진 거 없나 마이 찾으러 댕깄었다고. 다리 뿌라진 제비는 몬 찾았어도 내가 직접 제비 다리를 뿌라뜨린 적은 있었다고."

JP가 어이없다는 듯 무뚝뚝하게 YS의 말을 자른다.

"사회자 양반. 정답."
"아 JP 정답 아시겠습니까."
"어허. 알다 뿐이겠시유. '웃으면 복이 와요'."

기다렸던 DJ. "에~~오늘 정답을 말씀드리자면.. 에~~조선시대 작자미상의 고대소설이지요이. 나는 어릴 때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교훈을 얻었씀다."
"'착하게 살자'인가 보군요."
"아니지. '애를 좀 조절해서 낳자!'여."

이어지는 DJ의 정답, "난 형수한테 밥주걱으로 읃어맞고 밥풀 띠어 먹는다는 것 자체가 맘에 안 들었어. 쫀심도 없니? 주걱을 뺐었어야지. 하이간 정답은 김치전. 아닝가 호박전? 해물파전이여?"

두 명 목소리 연기에 수십 명이 들락날락

다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라디오 스튜디오에 이들 거물급 정치인 모두가 참석한 것은 아니었다. 정몽준, JP 목소리는 최양락의 성대를 통해 DJ, YS 등 나머지 정치인은 배칠수의 목청조절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손석희 이승엽 차인표도 단골손님이다.

MBC 라디오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이 성대모사에 있다. 그들을 제작현장에서 직접 지켜봤다.

▲ MBC 표준FM '재미있는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는 최양락씨
ⓒ 정옥재
'재밌는' 라디오를 표방하며 2001년 4월 1일 첫 전파를 탄 이 프로의 목적은 오직 '재미'다. 말하자면 라디오를 통해 코미디를 하겠다는 것. 하기야 누가 재미없는 라디오 방송을 만들겠느냐마는 이 프로그램은 생방송 내내 정신없이 돌아간다. 고작 4~5명이 스튜디오를 들락날락 거릴 뿐인데 방송을 통해서는 수십 명이 출연해 자기 인사를 한다. 진행자 최양락과 고정패널인 성대모사의 달인 배칠수와 김미진의 활약 덕이다.

방송 초기 이들의 성대모사에 킥킥대던 청취자 사이에서 이젠 어느덧 "중독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 재미도 있지만 이들 성대모사가 시사를 기반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매력이다. <재미있는 라디오> 중 한 코너인 '이젠 좀 떠떠떠'는 신인 개그맨의 등용문 역할도 한다. 얼마 전까지 큰 인기를 끌었던 '현대생활백수'의 '파란 트레이닝복 백수' 고혜성이 바로 이 코너 1기 출신이다.

'3김 퀴즈'로 달궈진 스튜디오가 '뉴스데스크' 생방송으로 잠시 식혀지자 이번엔 개그우먼 김미진이 나선다.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인기코너 '뉴스디스크'다. 김미진은 영화배우 김하늘과 전도연을 모사한 김한올 기자와 전도은 기자로 출연했다. 김미진은 이외에도 백지연 앵커와 김조아(김주하 아나운서 모사)기자, 영화배우 이영애 등으로 변신해 청취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한꺼번에 출연하지는 않는다. 고정패널은 딱 3김뿐. 이들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성대모사 쿼터제'를 지킨다. 물론 방송을 듣다 보면 '별로 안 똑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안 웃길 때도 많다. 대표 코너인 3김 퀴즈가 밋밋할 때도 많다. 이에 대해 배칠수씨는 "지금 당장 웃기지 않아도 잘 때 생각하면 우습다"고 말한다. 최양락씨도 맞장구친다.

재밌는 라디오? 생방송 제작현장은 긴장의 연속

방송이 진행되는 스튜디오 안쪽에는 여유가 있지만 제작진들은 늘 긴장감 속에 방송을 내보낸다. 라디오 코미디의 생리일까. 웃음이 넘쳐흐르는 프로그램이지만 역시 '생방송'은 어쩔 수 없다. 진행자들이 청취자들에게 웃음을 전달하고 있는 동안에도 작가들은 스튜디오 안으로 계속해서 대본을 전송한다.

▲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를 맡고 있는 김용관 PD(가운데)와 문연선 작가(사진 맨 앞)
ⓒ 정옥재
생방송은 사고의 연속이다. 문제는 얼마나 발빠르게 대처하느냐. 이날도 노래 제목이 빠진 대본이 전송됐다가 작가의 재빠른 손놀림에 의해 수정된 대본이 스튜디오로 전달됐다. '3김 퀴즈' 정답을 듣기 위해 청취자를 연결하려고 했을 때는 갑자기 스튜디오 전화수신기가 작동하지 않아 제작진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재밌는 라디오를 만드는 과정은 재미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배꼽 잡게 웃기는 라디오 프로그램 '재미있는 라디오'. 그렇다면 청취율은 어느 정도일까. 의외로 제작진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점유율은 같은 시간대 다른 프로그램보다 높다.(청취율은 라디오의 청취 여부와는 무관하게 조사 대상 전원을 상대로 설문해, 듣고 있다고 밝힌 채널 및 프로그램의 청취비율을 말하는 것이고, 청취 점유율은 라디오를 듣는다고 밝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얻어낸 특정 채널 및 프로그램의 청취 비율을 뜻한다.)

TV 시청자가 많은 시간이라 청취율은 낮아도 타사와의 경쟁에서는 월등하게 높다는 것이다. 김용관 담당 PD는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가 주 퇴근 시간이면서 동시에 TV 시청시간이기 때문에 청취율을 올리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인기비결요? 재미없으면 취급 안 해요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현상 뒤에는 웃음과 재미를 추구하기 위한 제작진의 엄청난 고민과 노력이 숨어있다. '뉴스디스크' 코너를 맡고 있는 홍윤희 작가는 프로그램의 성공 전략을 묻자 "재미만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미없으면 아예 취급 안 한다고. 젊은 스타급 연예인들의 사랑타령이 없는데도 젊은 층에까지 인기가 있는 이유다.

▲ '재미있는 라디오'녹음대본이 모니터에 떠 있다.
ⓒ 정옥재
이날도 방송 후 세 명의 작가와 PD가 모여 회의를 했다. 무거운 시사이슈를 다루면서도 그 안에서 '재미'와 '웃음'을 길어 올리는 작업은 쉽지 않다.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 시기적으로 중요한 이슈지만 대본에서 빠졌다. 도저히 재미있게 다룰 수 없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준비시간까지 합쳐 하루에 4~5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음악 내보내랴, 대본 고치랴, 전화받으랴, 시간 맞추랴 게다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취재에 협조까지 해야 했던 이날, 방송이 끝나자 제작진들은 모두 맥이 빠졌다. 그러나 잠시라도 쉴 틈이 없다. 다음날, 이명박과 손석희, 백지연, 김주하 등 스타 정치인과 연예인들이 줄줄이 이곳 스튜디오에 나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현대생활백수'도 거쳐간 방송입니다"
[인터뷰] '재미있는 라디오' 진행자 개그맨 최양락

▲ '현대생활백수'로 유명해진 개그맨 고혜성은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이젠 좀 떠떠떠'코너 1기 출신이다.
ⓒmbc

<재미있는 라디오>를 진행하는 개그맨 최양락씨. 이미 TV를 통해 국민에게 수많은 웃음을 선사한 그다. 그는 '라디오 프로그램'보다는 '라디오 코미디'라 불러주길 원했다. 그가 강조하는 건 음악을 틀어주고 연예인들의 사생활과 생각을 들어보는 프로그램이 아니었고 스스로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과 같은 정통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 진행하는 라디오방송이 왁자지껄하다?
"프로그램을 내 스타일에 맞게 하고 싶었다. 라디오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라디오 코미디'를 하고 싶었다. 기존 라디오 프로그램의 형식에 얽매인다면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예를 들어 이 프로그램을 듣다가 단순 접촉사고를 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안타깝지만 큰 사고가 아니라 다행이고 대단히 죄송하지만 보람있게 느낀다. 이 라디오 코미디는 30~40대를 겨냥했지만 의외로 여성과 20대의 청취자가 많다."

- 신인 개그맨 등용 코너인 '이젠 좀 떠떠떠'에서 신인 개그맨이 된 경우도 많다고 하던데.
"고혜성이라고 '일구야~ 형이 하는 말 오해하지 말구 들어'하는 친구다. 이 코너 1기생이었다. 개그맨이 되고 싶은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 코너에 출연하면 주눅이 들곤 한다. 개그맨 지망생들이 주위의 친구들은 쉽게 웃겨도 여기에 와서는 긴장하는 것 같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내가 신인 때 서영춘, 구봉서 선배 같은 전설적인 분들 앞에 서는 것과 같을 것이다. 개그맨이 되려는 사람은 어디서든 주눅이 들어서는 안 된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 요즘 TV 코미디를 보면 어떤가.
"너무 시청률에 급급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10초 안에 안 웃기면 채널이 돌아간다고 하는데 폭소만이 전부가 아니다. 이승엽이 홈런만 치려고 해서는 홈런왕이 될 수 없지 않은가. 안타를 많이 치다가 홈런을 날리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라디오는 시간적 여유가 많다. 또 하고 싶은 개그를 할 수 있다. 라디오는 편안한 게 장점이다."

- 성대모사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은데.
"배칠수씨가 문화방송 연보흠 기자 성대모사를 했다. 계속 밀었었다. 연보흠 기자가 주말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가 됐다. 그런데 우리한테 고마워하는 눈치다. 엄기영 특임이사도 우리와 우연히 마주치면 웃는다. 정치인 성대 모사할 때도 심하게 정치인들을 헐뜯지는 않는다. 예전 같으면 '3김 퀴즈' 이런 것 못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여유를 갖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세월이 많이 바뀌었다." / 정옥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