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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내 발언 왜곡한 인터넷신문 고소"

중간에 취하 절대 용납 몬한다. 본떼를 존내 보여주는거다.

 

 

신해철 "내 발언 왜곡한 인터넷신문 고소"
"'후회할 줄 알고도 정치참여'라는 말을 '노무현 선거운동 후회'로 비틀어"
텍스트만보기   손병관(patrick21) 기자   
▲ 가수 신해철
ⓒ2004 오마이뉴스 남소연
가수 신해철씨가 1일 자신의 발언을 왜곡했다는 이유로 인터넷신문 <데일리안>을 고소하기로 했다. <데일리안>은 신씨의 항의를 받은 후 해당 기사를 삭제했지만, 신씨는 이와 상관없이 소송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신씨는 이날 오후 자신의 미니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데일리안>의 '신해철, 부경대 강연 중 노무현 지지 후회 발언' 운운에 대해, 변호사와 협의 하에 고소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데일리안>은 이날 오전 <부산일보>를 인용한 기사에서 "신씨가 지난 5월말 ‘대중문화’을 주제로 한 부산의 한 대학특강에 강연자로 참석, 자신의 지난 대선 노무현 후보 지지 선거운동에 대해 한마디로 '지금은 후회한다'며 심정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데일리안>은 이 기사에 "가수 신해철, '노무현 지지 후회한다'"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신씨가 미니 홈페이지에 밝힌 발언 내용은 <데일리안> 기사의 뉘앙스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신씨는 부산에서 "정치적인 선거운동에 직접 참여한 점은 후회하지만, 후회할 줄 미리 알고 한 일이라고 말한 적은 있지만, 노무현 선거운동을 후회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신씨는 자신의 발언이 "은유적으로 '나 소신이었소' 라는 뜻인 것은 중딩 이상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바, <부산일보>에 의해 살짝 애매하게 비틀리고 잘려진 문장이 <데일리안>에 의해서 악의적이며 비상식적으로 왜곡되어 황당한 문장이 등장했다"며 이번 사건을 '친보수성향 <데일리안>의 고의적인 곡해'로 규정했다.

신씨는 "불과 며칠 전 고스트스테이션(신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 필자 주)에서 소위 인터넷신문들의 말 자르기, 뒤바꾸기, 지어내기 등, 온갖 협잡 행태에 대해 비난한 바 있는데, 일주일도 안되어 막상 내가 시범 케이스가 되니 할 말이 없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데일리안>에 이어 <한국아이닷컴>과 <조선닷컴>이 신씨의 발언을 보도했는데, 이중 <한국아이닷컴>은 "신씨 강의의 기본 기조는 가수로서 정치에 참여한 것을 후회한다는 것이었다. 신씨는 '나는 대선 당시 친노가 아니라 반이회창이었다'고 말했다"는 <부산일보> 취재기자의 말을 전했다. <조선닷컴>은 <부산일보> 인용에 그치지 않고 "신씨의 '후회' 발언이 알려진 뒤 각종 인터넷 사이트는 찬반 댓글이 나붙었다"며 네티즌들의 댓글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데일리안>은 신씨의 강력한 항의를 받은 후 웹사이트에서 기사를 삭제해버렸다.

신해철씨는 1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부산일보> 기사가 나올 때만 해도 해프닝으로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데일리안>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자기들 멋대로 기사를 썼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데일리안>에 대한 소송은 그대로 진행하겠다"며 "그냥 놔두면 보수신문들이 '봐라, 노무현 지지자들도 후회하고 있다'는 식으로 이번 일을 두고두고 우려먹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5-06-01 17:22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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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하루만 단전돼도 청계천 물 썩을 것”

서울 시민들 추카합니다.

대형 어항 갖게 되어서ㅠ.ㅠ

 

 

전문가들 “하루만 단전돼도 청계천 물 썩을 것”
환경단체들 “자연하천 아니라 인공어항” 비판
2005-06-01 13:09 김세옥 (okokida@dailyseop.com)기자
“한강물과 지하철 역사에 나오는 지하수를 끌어다 청계천의 물을 댄다고요? 물을 끌어오는 전기가 하루만 끊겨도 청계천은 썩은 도랑이 될 겁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1일 오전 준공식을 넉 달 남겨두고 막바지 공사에 한창인 청계천에 실제로 물을 흘려보내는 ‘유지용수 통수(通水) 시험’을 시민들의 환호 속에 진행했다.

그러나 환경·시민단체들은 “지금처럼 공사가 계속될 경우 청계천은 도심 하천생태계로서의 역할을 전혀 못할 뿐 아니라 이명박 시장의 전시행정과 정치적 목적에 이용된 대표적 사례로 남게 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한다.

시민단체 “지금이라도 청계천 상류 지천 복원·활용해야”

환경단체들은 청계천 복원 계획이 발표되기 전부터 “청계천 복원은 자연하천을 되살리는 일인 만큼 인왕산 백운동천(2.2km)과 북악산 중학천(2.4km) 등과 같은 상류 지천부터 복원해 이들을 청계천과 연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날 오전 청계천을 흐른 물은 한강변 자양취수장에서 퍼 올려 뚝도 청정지에서 여과한 것으로, 향후 완공될 청계천에는 한강물과 지하철 역사에서 나오는 지하수가 지날 예정이라고 한다.

양장일 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은 “현재의 청계천 공사는 생태와 역사를 복원하는 개념이 아닌 하나의 새로운 인공조경 하천을 만들기 위해 진행되는 것”이라며 “서울시가 청계천을 복원하고자 한다면 상류 지천의 맑은 물길부터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인왕산 백운동천과 북악산 중학천은 아스팔트로 덮여 도로로 쓰이고 있으며, 물은 그대로 하수도로 흘러 나가는 실정이다.

양 처장은 “북악산, 인왕산 자락에 있는 4~6개 하천에는 1~2급수에서만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종이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다”며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장기적 관점으로 청계천과 상류의 지천을 연결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상류 지천의 물량이 모자랄 경우 빗물 등을 이용해 유지용수를 확보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양 처장은 “만약 지금의 방식대로 공사가 마무리될 경우 지하철 역사의 지하수와 한강물을 끌어오는데 필요한 전기가 하루라도 차단된다면 청계천은 바로 썩은 도랑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생물다양성 담보 못하는 인공하천

오는 10월 완전 복원을 앞두고 있는 청계천은 곡선이 거의 없는 직선형태다. 환경단체들은 실시 설계안이 나올 당시부터 물이 직선으로 흐를 경우 하천의 유속과 깊이가 거의 동일해지기 때문에 생물 다양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문제를 제기해 왔다. 생물의 다양성은 유속과 하천 폭의 변화, 하안 구조 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청계천 복원 실시설계 심의에 참석했던 ‘청계천 복원 시민위원회’ 위원들이 하천 옆 둔치의 너비를 달리하면 자연스레 물길이 곡선으로 날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지만, 시는 시민접근 편리성을 얘기하며 직선을 고집했다.

또 서울시는 치수적 안전성을 이유로 저수부 및 저수호안, 둔치에 초본류 중심의 식재를 계획하고 있지만 환경단체들은 “이 경우 다양한 식생을 포함하지 못해 생태계의 풍부한 상호작용을 기대하기 힘들 뿐 아니라 다양한 생물의 서식도 유도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풀과 꽃, 나무 등이 한데 어우러져야 곤충, 조류 등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환경단체 활동가는 "이명박 시장이 벌이고 있는 이 사업은 우리가 청계천이라고 부르던 자연 하천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인공 어항 하나를 새로 만드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전기펌프로 물을 끌어와 주변을 예쁘게 꾸며 비리로 얼룩진 청계천을 미화하려는 이 시장의 행보를 똑똑이 봐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 김세옥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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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상식조차 없는 '세계신문협회'

적절한 지적! 국가 뿐만 아니라 자본에 의한 언론 자유 침해

코리아에만 존재하는 재벌에 의한 언론 자유 침해는 말할 것도 없고...

 

 

 

신문의 상식조차 없는 '세계신문협회'
[손석춘 칼럼] 기본인 사실관계부터 명확히 인식하라
  손석춘(ssch) 기자
어지간하면 침묵하고 싶었다. 나름대로 한국의 신문사 발행인들로서는 세계신문협회(WAN) 총회라는 국제적 행사를 치르고 있어서다.

하지만 참으려 해도 그럴 수가 없다. 보라.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의 지면을. <조선일보>는 1면 머릿기사의 표제로 "한국 신문법은 독자의 선택권 제한"을 내세웠다. 대문짝만하게 편집했다. 분명히 묻는다. 과연 그러한가. 어물어물 넘기지 말기 바란다. <조선일보>는 진정 그렇게 생각하는가?

대체 <조선일보> 편집국 안에는 그것이 '사실 호도'라는 사실을 지적할 기자가 단 한 명도 없단 말인가. 어떻게 신문법이 독자의 선택권을 제한한단 말인가. 신문법은 독과점 우려가 있을 만큼 일정 비율 이상의 점유율을 가진 신문들이 독자를 경품이나 무가지로 매수할 때 한하여 규제한다.

아울러 신문에 '발전기금'을 지원하는 것은 바로 세계신문협회가 말끝마다 들먹이는 '신문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민주적 정책이다. 발전기금이 참으로 '언론통제용'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 스스로 자부하는 이른바 '비판신문'들은 받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원금도 받지 않고 경품이나 무가지 없이 독자를 늘리는 것은 언제든 자유 아닌가.

1면에 대문짝만하게 내세운 '사실 호도'

세계신문협회 신임회장이라는 게빈 오렐리의 발언도 가관이다. 일방적인 정보만 듣고 한국의 신문법 원문을 보았을지 의문이 들만큼, 그의 연설은 기본적인 사실(Fact)이 틀렸다. "언론의 자유를 제한해 주요 신문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려는 계획이 있다"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대체 한국의 언론자유 수준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런 망발을 하는가. 자본에 의한 언론자유의 침해는 미국과 유럽 곳곳의 언론학자들이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는 쟁점이다. 물론, 신문 발행인들로서는 단지 이윤획득의 자유만을 추구할지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그런 망발을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언론 수준을 우습게 보고 그런 연설을 하는 것이라면 큰 착각이다.

기실 더 큰 문제는 세계신문협회에 참석한 인사들의 무지에 있지 않다. 그들에게 그렇게 정보를 제공한 이 땅의 신문발행인들에게 있다. 세계신문협회 회의를 주최한 한국신문협회를 보라. 현 회장은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회장이다. 그는 2002년 9월 국무총리서리에 지명을 받았지만 국회청문회를 통해서 불거진 땅투기 의혹과 위장전입으로 물러난 인물이다. 전국 곳곳에서 벌인 부동산 투기가 드러난 여론의 지탄을 받은 인사다. 바로 직전 회장 홍석현 <중앙일보> '사주'는 어떤가. 그 또한 엄청난 탈법 재산증식으로 주미대사 직책에서 자진 퇴진하라는 압력을 시민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인사다.

하지만 그는 주미대사직을 지키면서 자신이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세계신문협회 총회를 서울에서 열어 사실과 다르게 한국의 신문상황을 호도하고 있다. 그가 사주로 있는 <중앙일보>의 사설도 "민주국가에선 이해할 수 없는 신문법"이라는 제목을 내세웠다.

서울에 온 세계 신문 발행인들에게 권하는 당부

그렇다. 한국의 신문협회는 "이해할 수 없는" 법일 수 있다. 세계신문협회에 참석한 발행인들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솔직히 미지수다. 다만 한국신문협회의 본질을 세계의 신문사주들은 똑바로 보기 바란다. 아울러 한국의 신문법은 언론현장의 기자들과 언론의 궁극적 주권자인 시민들이 힘을 모아 민주적 여론형성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 마련한 법임을 성찰하기 바란다. 오히려 신문법은 국회에서 빚어진 정쟁으로 '누더기'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무지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세계 신문협회 총회에 참석한 각 국의 발행인들이 새겨야 할 경구다. 한마디만 덧붙인다. 서울에 어렵게 온 참에, 부디 한국언론운동에서 겸허하게 배우고 가라.
   민언련 "조중동 행태는 사대주의적 핑퐁왜곡"
   [取중眞담] WAN, 'IT강국'서 열리는 행사 맞나?
2005/05/31 오후 2:28
ⓒ 2005 OhmyNews
손석춘 기자는 오마이뉴스 고정칼럼니스트입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지냈으며, <한겨레> 비상임 논설위원입니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로 EBS의 아침8시 <월드FM손석춘입니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문읽기의 혁명> <아직 오지 않은 혁명>을 비롯한 언론비평서들과 함께 장편소설 <아름다운 집>을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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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본받자! 두환옹의 인본주의 정신!

음... 간만에 딴지일보 히트!

 

 

[미담] 본받자! 두환옹의 인본주의 정신!

2005.05.27. 금요일
딴지 미담사례발굴단
 

현대산업개발 정세영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범인들의 가슴을 적시게 하는 한아름 조화가 있었다. 이 조화를 보낸 주인공은 최근 드라마 제 5공화국으로 다시금 회자되는 두환옹.

그런데 문제는 당연히 감읍해 마땅해야 할 현대 관계자들이 배은망덕하게도 그 조화를 어디 배치해야 할 지 몰라 우왕좌왕했단 것. 알토란 같은 전재산 29만을 쪼개 헌사한 조화라는 건 이 땅의 국민들이면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본 기자 이 패륜적 상황에 비분강개해 마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의 도의가 우짜다가 이토록 땅으로 곤두박질쳤단 말인가.

사실 두환옹도 심각하게 고민 하셨을 거다. 극빈층인 두환옹이 지불해야할 시중 조화가격 만만치 않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부랴부랴 조화가 풍납동 장례식장에 도착한 점은 두환옹의 하루동안 인간적 고뇌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예상했던 거보다 0자는 하나 더 들어간 세뱃돈 액수로 새배한 사람에게 무한감동을 줬던 두환옹도 꽃 몇 쪼가리때문에 그토록 고민했던 거다. 그런데도 조화가 난처하다니! 천륜을 저버리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어려운 결심을 해서 조화를 선뜻 내놓기는 했다만 이제 남은 여생을 도대체 뭐 해드시며 사시려고 저러나하는 생각이 미치자 본 기자 가슴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본 기자 너무 심란하고 답답한 마음에 두환옹이 보냈다는 그 조화의 시중 가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다급하게나마 서울의 여러 꽃집을 수소문해 자료착수에 들어갔다. 그 결과는 이랬다.

                                <화환 견적가>

화환 종류

장구형 근조화환 1단 바구니형

최저가

80,000
(가정의 달맞이 20% 대폭 세일시 64,000)

최고가

150,000
(역시 20% 대폭 세일시 120,000)

리본값

5,000 (2M 기준, 보통 화환값에 포함)

판넬값

6,000원 (추가옵션사항)

최저가 적용시

64,000

최고가 적용시

161,000

서울의 몇몇 꽃집을 뒤져 이 1단짜리 조화의 가격을 조사해본 결과, 최소 6만 4천원에서 최대 16만 천원 정도의 견적가가 도출되었다. 그럼 남은 두환옹의 전재산은, 최소가 적용시 29만원 빼기 6만 4천원 하면 22만 6천원이 되고, 최고가 적용시에는 29만원 빼기 16만 천원 하면.. 허거걱, 12만 9천원밖에 안 나온다. 충격적이다! 난다모 2종 세트도 14만원대인데..

이제 두환옹 지인 두 사람만 더 장례를 치른다면 쪽박 차시게 생겼다. 이제 두환옹 조화를 헌사할 때마다 온 국민들 가슴 졸이게 생겼다. 아,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런데도 두환옹은 이 모든 걸 감수하시면서 조화를 기꺼이 헌사하셨더란 말인가.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극소수의 언론에서만 이 사건을 지나가는 뉴스로 다뤘지만 이런 미담사례는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게 마땅한 일, 어째서 이런 필요성을 정녕 본지만 느낀단 말인가. 특히 공영방송 KBS의 사장 직위 해제를 강력히 촉구한다.

고인에 대한 예의를 초개같이 지키는 저 인본주의정신! 쪼들리는 살림살이에도 재산 절반 가까이를 뚝 떼어 조화로 쾌척하는 저 배포! 머리 나쁜 국민들이 또 까먹을까봐 12대 대통령이라는 걸 굳이 써넣는 저 배려! 앙증맞게 이단 띠를 두르는 귀염성까지!

이런 두환옹을 그냥 보고 있자니 숙연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질라구 한다. 안되겠다. 두환옹 자택근처 도로화단에 조화용 국화를 심어 현금을 세이브하도록 도와드려야 한다. 아, 그걸로도 안되겠다. 12월달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부터라도 당장 온 국민들이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라도 내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 전국민은 한 마음으로 성금대열에 참여하라 ! 어흑.

두환옹의 신규 퍼포먼스에 코 끝이 찡해진
  술탄(sultan@ddanzi.com

185so_031.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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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나는 더이상 한국 택시운전사와 얘기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택시 운전사들 정말 대책없다. 서민이란 뭘까?

 

 

축소확대  
홍세화 “나는 더이상 한국 택시운전사와 얘기하지 않는다”
[교육 토론회] “한국 교육은 승자만이 살아남고 나머지는 복종만”
2005-05-30 21:52 김유정 (actionyj@dailyseop.com)기자
지난 1995년 발표한 5·31 교육개혁안 시행 10주년을 맞아 현 교육 현안 진단과 대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우리나라 교육이 본래의 의미를 떠나 계층상승의 미끼로 이용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교조를 비롯한 5개 교육단체의 공동주최로 3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교육개혁안 10년, 한국교육의 오늘과 내일’이라는 제목의 토론회에서는 시종일관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문제점 지적과 함께 올바른 교육방안에 대한 참석자들의 주장들이 이어졌다.

전국공무원노조의 이태기 교육기관본부장은 인사말에서 “교육을 상품이라고 하는 생각이 (김진표) 교육부 장관에 의해 입증됐다”며 김 장관이 주장하는 대학개혁의 시장성 문제를 지적했다.

▲ 홍세화 씨. (자료사진) ⓒ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그는 이어 “우리나라는 각 학교에 상생이 아닌 경쟁을 강요하며 여기에서 살아남지 못한 학교는 도태시켜 시장경제에 순응하는 학교만 육성하고 있다”며 교육당국의 정책을 비판했다.

“한국 교육,승자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복종만”

첫 발제자로 나선 홍세화 학벌없는 공동사회 공동대표는 “일제시대부터 구조화돼 있던 국가주의 교육에 대한 반성적 성찰없이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접목시킨 기형적인 대안이 (김영삼 정부시절의) 5·31 교육개혁안 이다”라고 혹평했다.

홍 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 교육이) 계층상승의 미끼를 던지고 있다”며 “본래 국가주의와 시장주의는 대립적인 개념이지만 학교가 사리추구 집단으로 변질되면서 국가주의 교육에 투철한 학교만이 밥그릇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학교가 민주적인 시민의식을 가진 사회구성원을 길러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홍 대표는 사진의 경험했던 프랑스와 한국 학교를 비교하면서 우리 학교는 아직도 민주화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우리나라 학교는 교육 주체가 학생과 학부모에 있는 게 아니라 교장한테 있고 교육과정을 통해 경쟁과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면서 경쟁에서 이긴 소수자의 질서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시스템이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한국 택시기사들의 가치관은 군국주의 산물”

한때 프랑스에서 택시운전기사로 일한 경험이 있는 홍 대표는 한국에 돌아온 이후 택시기사들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그 이유에 대해 “그들이 갖고 있는 정치 가치관과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항상 갈등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들(택시기사)의 가치관은 독서나 열린 토론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군국주의 시대부터 지속적으로 국가권력이 장악하고 있는 학교에 사회구성원이 자발적으로 복종하면서 나온 결과다”라고 나름대로 진단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과연 한국 교육은 사회구성원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있어 인간성을 담보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한 뒤 “교육개혁안은 국가주의 교육과 신자유주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는 교육관련 입장이 비슷한 단체들이 모여 주최한 만큼, 토론에 있어서 반대되거나 서로 반박하는 등의 논쟁이 벌어지지 않았으나 현재 논란을 빚고 있는 김진표 교육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추진하고 있는 대학개혁에 대한 반대 입장을 참석자들 모두 분명히 했다.

동시에 공동체적인 교육과 민주주의 시민 양성에 벗어나는 현 우리나라의 경쟁위주의 교육현장에 대한 비판이 주종을 이뤄, 추후 지속적인 대안모색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 김유정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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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때문에 1년 늦어진 대통령의 동문회

아아 탄핵

서울법대 나와서 사시 백날하다가 실패한 두 인간(최병렬,조순형)이 상고 출신 사시합격생 날려버린 사건! 단지 대학 안나왔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대통령 인정 못하겠다 노래부르다가...

 

 

탄핵 때문에 1년 늦어진 대통령의 동문회
사법연수원 동기들과 취임 후 첫 모임... 검찰 쪽 동기는 못 불러
2005-05-29 20:43 이기호 (actsky@dailyseop.com)기자
‘은행 대리 시험을 피하다 만난 친구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988년 13대 초선의원으로 당선된 직후 자신이 왜 변호사가 됐는가를 밝힌 적이 있다. 원래 은행원이었던 노 대통령에게 ‘새 직업을 찾아야 겠다’고 맘먹게 만든 것은 바로 피 말리는 ‘대리시험’의 공포였다.

“저렇게 뼈빠지게 공부하느니 그 정성으로 차라리 고시를 보는게 낫겠다”고 생각한 노 대통령은 1975년 사법시험에 붙어 은행을 떠나고 법조인이 됐다.

이렇게 해서 만난 고시동기들을 28일 대통령 취임하고 3년만에 처음으로 만났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사법연수원(사시 17회) 동기생 40여명을 부부동반으로 청와대로 초청해 경내 관람 후 녹지원에서 만찬을 가졌다.

노 대통령은 “다시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라며 “정부 출범 초기에 초청하고 싶었는데 신용불량자, 북핵문제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아서 초청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2003년에 동기들을 초청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 것.

그렇다면 2004년에는 이들을 초대했을까. 정답은 ‘아니오’다. 노 대통령은 “작년에는 탄핵 때문에 못했다”며 이유를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는 이렇게 초청했지만 검찰 쪽은 모시지 못했다”며 “늦게 초대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다”고 소감을 밝힌 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멀리 보고 일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법과 원칙대로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모임에서는 고시를 준비하던 시절의 이야기와 청문회 이야기 등 환담을 나누며 오랜 만에 회포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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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 이상경 헌법재판관 사퇴 촉구 목소리 이어져

대한민국 극우 수구

썪고 구린건 둘째치고 너무 비굴해

 

 

'탈세' 이상경 헌법재판관 사퇴 촉구 목소리 이어져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30일 성명 통해 "변명 늘어놓지 말라"
  김병기(minifat) 기자
지난 10년간 임대소득을 탈세한 이상경 헌법재판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민사회의 압력이 계속되고 있다.

전국 447개 시민사회단체의 상설연대기구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30일 성명을 통해 "이상경 재판관이 (탈세 사실을) ‘몰랐다’는 석연찮은 변명을 늘여놓거나 부인과 세무사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헌법재판관을 즉각 사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촉구했다.

연대회의는 특히 "조세법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진 헌법재판관이 부동산 소득세를 탈루했다면 이는 이상경 재판관 개인의 자격문제일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면서 "세금이라고 하는 국민의 당연한 법적 의무조차 지키지 않은 헌법재판관이 내리는 결정에 대해 앞으로 국민들이 심정적으로 복종을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연대회의는 또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대통령 탄핵과 행정수도 이전, 호주제, 양심적 병역거부, 국가보안법 등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사회적 기준을 새롭게 설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라면서 "이같이 헌법재판소의 권한과 영향력이 커진 만큼 헌법재판관들은 그 권한에 맞는 도덕성은 물론이거니와 법질서 준수의 측면에서 모든 국민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대회의는 "최근 여러 공직자들이 ‘주변 사람의 부동산 관련 의혹’ 등 도덕성에 상처를 줄 수 있는 비리 의혹만으로도 공직에서 물러났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누구보다 법을 철저하게 준수할 책임이 있는 헌법재판관이 부동산 소득을 줄여서 신고해 탈세를 했다는 것은 용인되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상경 헌법재판관은 지난 10년 동안 임대소득을 줄여서 신고하는 방식으로 3억원에 달하는 소득을 신고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4천~5천여 만원의 소득세를 탈루한 사실이 최근 드러난 바 있다.

이와관련 이 재판관은 지난 25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공직자로서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정말 죄송하다"면서도 "집안 살림을 집사람이 하다보니 (주택 관리에) 내가 관여하지 않았다, 그 사람(세입자)을 만난 적도 없고, 같이 이야기해본 적도 없다, 최근에야 (탈세 문제를) 알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오마이뉴스>는 부산고등법원장으로 재직했던 2003년 말 이 재판관의 집에 세들어살던 세입자가 소송 과정에서 '탈세 사실'을 알리는 내용의 문서를 이 재판관 앞으로 직접 보낸 사실을 확인했다.

이 임차인은 당시 이 재판관에게 보낸 통지서에서 "귀하의 부인께서 저희 부부에게 매월 1백만원씩 임대료를 지급한 것으로 하여 비용신고를 하라고 하여 저희들은 귀하가 시키는대로 매월 1백만원씩 월 임대료를 낸 것으로 신고를 하였다"며 "저희들은 결국 월임대료를 1백만원이 아닌 3백80만원 낸 것으로 계상하여 신고를 하였다면 매월 2백80만원 상당의 비용만큼 세금혜택을 받았을 것인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후회가 된다"고 적시했다.

그는 또 "저희 딸과 사위는 세무서에 알려서라도 세금혜택을 받자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되면 귀하께서 세금을 포탈한 것이 되므로 이를 만류하고 있다"면서 탈세 사실을 이 재판관에게 알렸다.

계속되는 시민사회의 사퇴촉구 목소리

참여연대는 지난 26일 발표한 논평을 통해 "이상경 재판관은 도덕성 면에서뿐만 아니라 법질서 준수에서 가장 모범이 되어야 할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며 "이 재판관은 당연히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언련도 지난 26일 발표한 논평을 통해 "이 재판관의 탈세에 대한 일부 신문들의 보도태도는 다른 비리 사건 관련 보도와 비교해볼 때 상식 밖으로 소극적"이라고 비판한 뒤 "다른 사람도 아닌 헌법재판관이 소득을 줄여서 신고해 탈세를 했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또 흥사단도 27일 '성역은 없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이상경 헌법재판관의 탈세가 부인이나 세무사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라 하더라도 헌법을 수호하는 헌법 재판관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 재판관은 구차한 변명보다는 국민에게 사죄하고 즉각 사퇴하고 법의 정당한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5/05/30 오후 12:53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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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꼴 김근태-손학규, 2007년 환갑의 ‘용꿈’ 꿈틀

닮은 꼴 김근태-손학규, 2007년 환갑의 ‘용꿈’ 꿈틀
느긋한 따라잡기 속 유시민-박근혜와의 공조 행보도 눈길
2005-05-29 10:33 김성곤 (skzero@dailyseop.com)기자
여야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언론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여러모로 비교되는 정치인이다.

우선 각자가 소속된 당적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으로 다르지만 나이와 출생지에서부터 학력, 주요 경력 등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 오죽하면 병장으로 만기제대한 군 경력까지 일치할까.

이뿐만이 아니다. 정치 스타일도 닮았다. 각자의 정치적 라이벌로 평가받는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이명박 서울시장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 등의 면에서 다소 열세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지만 서두르지 않고 정중동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스타일 때문에 언론매체의 여론조사에서 김근태 장관이나 손학규 지사 모두 아직까지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보는 이에 따라서는 ‘과연 대권에 뜻이 있는지’라고 의문을 가질 정도지만 최근 이들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보건복지부 장관과 경기도 지사로서 각자의 업무를 착실히 수행해 나가면서 내실을 다지는 알찬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김 장관과 손 지사 주변에서는 “대선은 결국 100m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며 서두르지 않는 모습으로 후반 역전승을 장담하는 모양새다.

“65학번 동기동창, 김근태와 손학규는 서울대 운동권 삼총사”

두 사람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 손학규 경기도 지사는 둘 다 1947년생 동갑으로 김근태 장관은 경기도 부천 태생이고 손학규 지사의 출생지는 이웃한 경기도 시흥이다.
▲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손학규 경기도 지사.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또한 두 사람 모두 서울대 65학번 동기로 학생운동에서 시작,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재야인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경기고를 졸업한 것도 같아 국내 최대 인맥이라는 ‘KS(경기고·서울대) 라인’의 광범위한 지지를 갖출 토대도 마련했다.

특히 두 사람은 손학규 지사가 밝힌 대로 서울대 재학 당시, 인권변호사로 유명했던 고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서울대가 자랑하는 당시 운동권 삼총사였다.

여야를 대표하는 유력 대선주자인 두 사람은 1965년 서울대학교에 입학, 학과공부보다는 시대에 저항하는 기나긴 민주화투쟁을 시작한 뒤 70년에는 재야운동에 헌신한다.

이러한 두 사람의 경력은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꿈꾸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박정희 대통령의 딸, 영애(令愛)로 불렸던 귀한 신분이라는 점과 이명박 서울시장이 개발독재 시절, 현대건설 사장으로 승승장구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뚜렷한 차이를 지닌다.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시장이 3공화국과 유신시절 남부러울 것이 없는 지위를 누렸다면 김근태 장관과 손학규 지사의 생활은 한마디로 수난의 연속으로 정통 민주화세력이라는 강점을 각자 지니고 있다.

김근태 장관은 67년 대선 부정선거 규탄시위로 경찰에 끌려가 그의 표현대로라면 무지막지한 매를 맞고 제적돼 강제 징집된다. 69년에는 3선 개헌과 영구집권 반대 투쟁, 71년에는 대선파동에 개입돼 기나긴 민주화투쟁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이후 서울대생 국가내란음모 사건과 학생시위 배후조정 혐의로 71년 수배돼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릴 때까지 수배생활을 지속한다.

손학규 지사도 대학시절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 규탄 시위 참여와 학원자유화 투쟁으로 두 번의 무기정학을 당했다. 또한 강원도 함백탄광에서 스스로를 ‘막장인생’이라 자조하는 광부들과 쪽방에서 칼잠을 자면서 생활하는 등 밑바닥 생활을 경험했고 73년 졸업 이후에는 소설가 황석영의 자취방에서 기거하며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청계천에서 빈민운동을 벌이다가 현상금 200만원에 2계급 특진이 붙은 수배자로 생활, 어머니의 장례식 때 체포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80년대 민주화투쟁과 유학의 다른 삶 살다 90년대 초 나란히 정계입문”

70년대 고난과 수난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두 사람의 삶은 80년대 들어서며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김 장관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죽음과도 같은 고문을 이겨내면서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손학규 지사는 영국 유학생활을 통해 국내를 대표하는 소장 정치학자로 성장한다.

우선 김근태 장관은 익히 알려진 대로 83년 민청련을 결성, 민주화운동에 나서다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고문을 경험한다. 이로 인해 김 장관은 87년 부인 인재근 여사와 함께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하고 88년 독일 함부르크 자유재단으로부터 세계적 양심수로 선정되는 등 한국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른다.

반면 손학규 지사는 80년 민주화의 봄을 맞아 홀연 영국 유학의 길에 오른다. 당시 손 지사는 “이제 내가 할 일은 다했으니 그 동안 빈 머리를 채우고 싶다”고 밝혔었다.

영국유학생이면 쉽게 할 수 있다던 유럽구경 한번 못한 가난한 유학생활로 학업에만 매진하다 88년 귀국, 90년부터 서강대 정외과 교수로 활동한다.

민주화투쟁과 유학이라는 다소 상반된 삶을 살아가던 두 사람은 90년대 들어서며 각각 김대중과 김영삼을 선택, 여의도라는 현실정치에 발을 담근다.

김근태 장관은 92년 대선에서 김대중 지지를 선언한 후 95년 야권통합 과정에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 부총재직을 맡으며 정계에 공식적으로 입문한다. 96년 총선 이후 15, 16,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거쳐 지난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손학규 지사의 정치입문은 93년 광명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다소 급작스럽게 이뤄진다. 이후 96년 15대, 2000년 16대 국회의원에도 당선되고 2002년부터 경기도지사로 활동하고 있다.

정치 입문 이후 두 사람의 의정활동은 가장 신사적인 현역 국회의원에게 수여되는 백봉신사상 수상경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근태 장관은 99년에 이어 2000년과 2002년, 2004년 네 차례나 수상할 만큼 모범적인 의정활동을 보였고 손학규 지사 역시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여의도를 떠나기 전 2000년과 2001년 두해 연속 수상했다.

“아직은 여론조사에서 뒤지는 두 사람, 본선이 다가올수록 달라진다”

김근태 장관과 손학규 지사는 유력한 대권후보군 중 하나로 오피니언 리더 등 여론주도층의 높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막상 국민들에게는 대권주자로서의 강력한 이미지 메이킹에 실패하고 있다.

실제 일반 국민을 상대로 진행된 상당수 매체의 여론조사에서는 아직까지 김근태 장관은 정동영 통일부장관에게, 손학규 지사는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의 경험을 돌이켜보지 않더라도 대선이 2년 반 이상 남은 시점에서의 여론조사 의미는 제한적이다.

지난 대선의 전체적 구도는 이회창 대세론이 압도적이었지만 이회창 후보는 대선 재수에서 실패했고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주당은 역시 이인제 대세론이 압도적이었지만 막상 후보선출 과정에서는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노무현 후보가 선출된 사실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는 특히 최근 여론조사에서 뚜렷한 정치적 자산과 세력을 갖추지 못한 고건 전 총리와 정계복귀 가능성이 높지 않은 이회창 전 총재가 일반 국민의 여론조사에서 대권후보로 꾸준히 거론된다는 것에 비춰봐도 김 장관과 손 지사의 현재 열세는 유의미한 평가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확실한 여야의 차기대권 후보로 한발 물러서 있는 것이 정치적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어 현재의 지지도는 두 사람의 능력 여하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극복이 가능하다.

먼저 김근태 장관은 보건복지부 수장으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다면 이는 대선국면에서 상당한 플러스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 업무라는 것이 이해관계가 매우 첨예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미래 한국사회가 직면한 통일, 경제, 복지라는 세 가지 난제 중 하나다.

이 문제와 관련, 국내 상당수의 학자들은 미래 한국사회가 직면할 가장 큰 이슈로 고령화사회의 이행에 따른 대비책과 빈부 양극화에 따른 사회안전망 확충 등 복지분야를 꼽고 있다.

김근태 장관의 당 복귀 시점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며 이러한 문제에 천착한다면 ‘복지 지도자’라는 확고한 이미지 구축이 가능하다. 더구나 보건복지부 소관업무가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하기 때문에 국가 지도자로서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능력을 키우는데 이만한 자리도 없다.

특히 혼선을 빚고 있는 국민연금의 문제는 김근태 장관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소지도 다분하지만 만약 이 문제를 매끄럽게 처리할 경우 정치적 입지가 수직상승하는 전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손학규 지사 역시 김영삼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는 사실이다.

손학규 경기도 지사는 대권후보로서 광역자치 단체장을 경험했다는 것이 대권레이스에서 강점으로 작용한다.

이는 선진국 대부분의 국가지도자들이 수도의 시장이나 주지사 등의 경력을 거친 뒤 대권에 나선다는 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이미 파리시장을 거쳤고 미국 전현직 대통령인 클린턴과 부시는 각각 아칸소 주지사와 텍사스 주지사를 역임했다.

특히 손 지사는 의욕적인 행보가 정치적 구설을 초래하기보다는 해외 외자유치와 한류우드 조성 사업 등 경제회복을 위해 전방위로 뛰고 있는 것도 점수를 얻고 있다.

손 지사는 5월 한달동안 국내 첨단기업의 수도권 신증설 문제로 이해찬 총리와 첨예하게 대립하며 대권을 향한 의욕적인 행보를 내딛기 시작했다.

경기도만의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손학규 지사가 던진 승부수는 일단 대권후보로의 가능성을 제고시켰다. 한나라당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온 이해찬 총리와의 전투에서 사실상 정치적 판정승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또한 이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청계천개발사업 수사 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그동안 대중적 이미지가 너무 약하지 않느냐는 약점을 크게 불식시켰다.

유시민과 박근혜 카드, 대선으로 가는 징검다리 될 수 있을까?

김근태 장관과 손학규 지사는 여러 장점에도 대권후보로서의 대중적 이미지는 아직 약하다. 당내 기반 역시 라이벌로 평가받는 다른 후보군들보다 취약한 편이지만 올들어 주목할만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단 김근태 장관의 경우 여권에서 대권후보 조기 가시화는 곧 노무현 대통령의 레임덕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 움직임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양상이다. 또한 후원세력인 ‘김근태 친구들’과 ‘GT클럽 희망’ 등 외곽지원 세력의 통합이 거론되면서 하나로 묶이는 양상이다.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바로 네티즌과의 유대 강화 및 유시민 후보와의 연대설이다.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아닌 네티즌들에게 패했다고 할 만큼 지난 대선에서 인터넷의 위력은 매우 컸다. 차기 대선에서도 이런 영향력이 증대될 것은 자명한 이치. 김근태 장관은 이의 중요성을 일찍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매주 홈페이지에 올리는 그의 일요편지는 네티즌과의 의사소통에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업무에는 소홀한 채 얼굴 알리기에 급급한 것이라며 ‘삐딱’한 시선으로 보지만 진솔한 글들은 네티즌들의 마음을 뒤흔들며 급속도로 회자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자신을 고문한 이근안씨와의 만남을 적은 글에는 네티즌들의 격려가 주렁주렁 댓글로 달려있다.

또 하나 의미심장한 대목은 바로 4·2 전당대회 과정에서의 유시민 의원과의 연대다. 정동영 장관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유시민 의원과의 연대는 김근태 장관의 차기 행보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특히 ‘조커 유시민’이라는 카드에 대한 네티즌과 젊은층의 압도적 지지를 고려해 볼 때 김근태 전 장관의 약점을 자연스럽게 커버해준다는 기대를 낳고 있다.

특히 여당 후보로 누가 나서도 한나라당에 이길 수 있다는 분석이 여권 내에 나돌면서 김근태 장관으로서는 본선보다 당내 경선이 일차적이다. 기간당원의 영향력 확대와 이들에 대한 유시민 의원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김근태 장관은 일단 의미있는 선택을 했다는 평가다.

손학규 지사 역시 김근태 장관과 마찬가지로 현 도지사라는 신분으로 이런저런 제약이 뒤따르지만 나름대로 실속 있는 대권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그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해외자본 유치 등은 ‘정책보다는 정쟁’에 익숙한 국내 언론환경에서 부각되지 못할 뿐이지 해외라면 대서특필이 가능한 치적.

또한 손학규 지사의 경우 한나라당이 행정도시법 통과의 파동 때문에 분당 직전까지 갔던 3월초 수도이전 반대를 피력한 이명박 시장과는 선을 그으며 박근혜 대표와의 연대를 구축했다.

손 지사와 박 대표와의 이러한 연대는 단순히 이명박 시장 견제용이라기보다는 내년 지방선거를 전후로 개헌논의가 본격화될 경우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만일 개헌논의 과정에서 정치권과 국민들이 대통령 4년 중임과 정부통령 도입을 선택할 경우 대권후보간 합종연횡은 필수적이다.

박근혜 대표는 최근 재보선 압승을 바탕으로 대세론을 키워가고 있지만 높은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당내에는 내사람이라고 부를만한 뚜렷한 세력군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본격적인 대선국면에서 자신을 겨냥해 쏟아질 과거사 공격을 감안하면 손학규 지사와의 연대는 결코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취약한 당내 기반으로 고생하는 손학규 지사와 당 안팎의 반박세력에 시달리는 박근혜 대표. 두 사람의 연대가 성사된다면 이는 열린우리당의 김근태·유시민 제휴 만큼이나 매력적인 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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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 진보 종교계 와해공작으로 한기총 탄생

아아 이분... 오지랖도 넓게 어디 개입하지 않은 사회악 부문이 없으시다.

파워 오브 닭 사이드 그 자체

 

 

전두환 정권, 진보 종교계 와해공작으로 한기총 탄생
2005-05-28 12:11 뉴스앤조이 이승균 기자 
5공화국 초기 전두환 정권이 진보적 종교세력 약화를 위한 종교대책반을 편성해 운영하고, 보수 온건세력을 조직적으로 지원했음을 입증하는 문건이 최근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전두환 정권이 학원 내 운동권 학생 등에 대한 이념정화 차원에서 1983년 8월부터 11월 사이에 작성한 ‘대학생이념순화대책추진계획’ 문건 중 종교 관련 대책 부문에 세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문건에 따르면, 전 정권은 기존 종교문제실무대책반 활용 및 관계부처합동대처, 종교문제대책사업 병행 등을 종교부문대책반의 기본 업무추진 방향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 따라서 전 정권은 이 문건이 작성되기 이전부터 종교문제 실무대책반을 운영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종교대책반은 이런 업무 추진 방향 아래 △종교 문제에 대한 대학교수, 언론인 연수회 발표 및 토론 참여 △교회 청년부, 대학생들과의 대화, 토론 활동 △종교 문제 토론회, 심포지움 개최 지원, 참가 △종교 관계 연구기관 육성 지원, 이념적 기반 확충 △건전종교단체 명의 급진신학 이론적 허구성에 대한 비판서적 발간 △매스컴과 협조, 적당한 계기에 해방신학 등에 기인한 현실참여 위험성 홍보 △종교지도자와의 협력 증진, 건전화 유도 △ 대항세력으로서 보수, 온건교회 및 교역자의 조직화 지원 등에 나선 것으로 밝혀졌다.

5공 종교대책반의 실체를 처음 보도한 <시민의신문>(http://www.ngotimes.net)은 종교대책반이 이런 실천 계획 아래서 당시 독재 반대와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던 양심적 진보 종교세력 와해를 위해 주로 활동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5공 초기 작성된 종교대책반 운영 지침 ⓒ 시민의신문 제공. 
한편 5공 종교대책반의 실체가 드러남에 따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대별되는 보수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등 5공과 6공 정권 때 탄생한 보수단체들이 종교대책반 활동의 결과물이라는 의혹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특히 1980년 전두환 정권을 지지하는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던 한경직·정진경 목사 등 당시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이 한기총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사실도 이런 의혹을 확산시키는 주요한 요인이다.

또 국정원과거사진실위원회 위원장 오충일 목사는 지난 4월 인터넷언론인 포럼에서 국정원 전신인 안기부 종교담당 요원이 한기총 창립에 구체적으로 개입했다고 밝힌바 있어, 이런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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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제가 목사였던 사실이 슬픕니다&quot;

인생 어렵게 사는 분 또 한분 발견! 인생 고달프시겠습니다. 분리수거도 안되는 치워야 될 쓰래기들은 많고...

 

 

"제가 목사였던 사실이 슬픕니다"
[인터뷰] 노점상 변신 '강의석 사건' 류상태 목사... 교회비판서 내
  조성일(sicho) 기자
보리출판사

▲ 전 대광교 교목으로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의 저자 류상태 목사.
ⓒ2005 오마이뉴스 이종호

우리는 지금부터 한 노점상과 만난다. 서울 양재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노점 자리치곤 너무도 한적한 한 초등학교 부근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그는 "먹다 지쳐 잠이 들면 축복을" 준다고 외치는 '출산드라'의 건강한 개그마저 '신성모독'이라고 딴지를 거는, 천국을 지독히 사모하는 속 좁은 보수 기독교인들을 향해 "당신들만의 천국은 없다"고 외친 이다.

전직 목사이자 고등학교 종교교사였던, 마흔 아홉의 중년인 그의 이름은 류상태. 많은 독자들이 기억하고 있을, '종교의 자유와 예배 참석 선택권'을 주장하며 단식까지 해가며 학교에 맞섰던 '강의석 사건'의 교내 후원자이자 대광고 교목실장이었던 바로 그 류상태이다.

그런 그가 한국 교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책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삼인 펴냄)를 냈다.

'개독먹사'(안티기독교인이 주로 쓰는 용어로 '개독'은 '개신 기독교' 또는 '개 같은 기독교'의 준말이고, '먹사'는 '목사'를 비꼬는 표현)에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액세서리 노점상'으로 전업한(?) 류상태씨를, 초여름처럼 후텁지근한 날이었던 5월24일 그의 좌판 옆에 내내 서서 2시간반가량 인터뷰했다.

뱃속 편한 액세서리 노점상

"그동안 세상과 교회의 비위를 입으로만 적당히 맞추며 살아온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이젠 좀 홀가분합니다. 떳떳하지 못한 처신에서 벗어나 제 신념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사는 지금, 예기치 않게 말 못할 고통을 겪는 가족들에게는 너무너무 미안하지만 제 삶을 찾은 것 같아 제 개인은 오히려 행복합니다."

'뱃속 편하다'는 시쳇말로 인터뷰를 시작하는 류상태씨는 일흔이 넘은 노모와 아내, 두 아이를 부양해야 하는 40대 가장으로서 가져야 할 현실적 역할을 감안할 때는 '천당에서 지옥'으로 추락했겠지만,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왔던 자신을 배반(?)하고 신념에 따른 나로 커밍아웃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온 셈이라고 말했다.

ⓒ2005 오마이뉴스 이종호
"대광고는 지난해 45일 동안 단식한 의석이한테 예배선택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해놓고도 아직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약속을 이행해야 합니다."

대광고 측에 약속이행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분기탱천해 있었지만 얼마 되지 않은 퇴직금을 모두 걸고 모험할 용기조차 없어 본전을 까먹지 않을 것 같은 액세서리 노점상을 생계수단으로 선택할 만큼 그는 소심한 사람이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1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그는 그날의 '개시'를 했다.

"액세서리는 유행이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시장조사를 하느라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여자들의 귀와 목을 유심히 살피게 되는데, 어쩌다 저와 눈이 마주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제가 어떻게 보이겠어요. 주책을 넘어 주책바가지죠."

한국교회는 머리와 몸이 분리된 중환자

"한국교회는 머리와 몸이 분리된 중환자입니다. 그것도 중추신경이 마비되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대로 두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심각합니다."

한국교회에 대한 류상태씨의 비판은 신랄하지만 설득적이다. 20여 년이나 몸담고 있었던 절절한 경험에 기초한 성찰적 자기반성 위에서 던지는 비판이기 때문이리라.

'다름'과 '틀림'을 구별하지 못하고 나와 다른 모습을 한 상대를 모두 '틀린 것'으로 생각하는 배타성,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했지만 십자가는 주님이 지셨으니까 그 공로로 이 땅에서 편안하게 예수 믿다가 천국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 하느님의 뜻을 따라 책임을 느끼고 이끌어가야 할 역사에의 무관심, 직제 구분에 불과한 목사와 장로, 집사를 신분 차별로 받아들이는 권위주의, 문자주의에 갇힌 성서 해석으로 하느님 뜻 왜곡, 종말론적 환상주의 경향 등등이 그가 진단한 한국교회가 앓고 있는 중병의 증상들이다.

"제 자신이 목사였던 사실이 슬픕니다. 저의 이런 지적을, 비기독교인들은 다 알아듣는데, 유독 기독교인들은 못 알아들어요. 제대로 믿자고 하는 저를 격려는 못할망정 오히려 비난하고 저주합니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그는 한국교회가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다. 그 중병을 치료하는 길은 '교회·예식·교리·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제도적 종교 시스템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하고, 예수님처럼 세상 한가운데로 진출하여 생동적인 변화를 창출하는 '무브먼트의 대전환'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애초 조직이나 교리, 경전, 의식 이런 것들을 깨뜨리라고 하셨는데, 한국교회는 오히려 그걸 더 강화했어요. 이것은 명백하게 예수를 배반한 것이죠."

성서는 '객관적 진술'이 아니라 '고백의 언어'

ⓒ2005 오마이뉴스 이종호
류상태씨는 성서는 '객관적 진술'이 아니라 '고백의 언어'라고 말한다. 그런데 보수주의 개신교인들은 그 고백의 언어를 객관적 진술로 읽음으로써 그 지독한 배타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가령, 자기 아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의 사랑 고백을 객관적 진술로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이 성서를 문자에 갇혀 해석한 객관적 진리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인들을 세뇌시켜 자주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게 류상태씨의 주장.

그래서 그는 교리를 내세워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협박하는 한국 교회의 지독한 도그마를 깨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성서를 바로 이해하려면 역사는 역사로, 신화는 신화로, 전설은 전설로 이해해야 합니다. 신화와 전설을 역사처럼 이해하려는 것은 진실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성서는 인간의 역사와 문학, 문화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그것들은 종교적 메시지를 담은 그릇이지요. 그릇은 그릇일 뿐입니다. 그릇을 씹지 말고 그릇에 담긴 음식의 맛, 즉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류상태씨는 요즘 사회문제로까지 떠오른 대형교회의 세습이나 대형성전건축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비판했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만들어지는 대형교회들의 물량주의 이면에는 교인들이 많으면 헌금도 많아지고, 힘도 생기고 하여 일하기 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개신교의 철학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소극적인 모델로 새길교회를 예로 들었다. 새길교회는 3가지가 없는 교회로 유명하다. 목사가 없고, 교회 건물이 없고, 교단이 없다.

그는 요즘 기독교의식개혁운동, 복음의 원형 찾기를 하느라 분주하다. 애초 그는 두 가지 활동방법을 생각했었다. 인터넷을 활용하여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편견에서 벗어나는 운동을 해야겠다는 것이 그 하나였는데, 현재 인터넷에 '불거토피아'(cafe.daum.net/bgtopia 불로소득을 거부하며 아닌 것을 거부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는 의미)라는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고, 또 하나는 강의석 사건을 통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학교 내의 종교문제를 학교 내에서 풀어보자는 취지에서 '학교 종교 자유를 위한 시민연합'(학자연)을 만들어 실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이번에 책을 내면서 한 가지 방법을 추가했다. 애시당초 책을 쓸 생각이 없었는데, 주변의 권유로 책을 쓰면서 책도 매우 유용한 운동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책은 계속 쓸 생각이다.

ⓒ2005 오마이뉴스 이종호

'진실로 너희 종교는 하나이니라'

목사 안수를 받을 때 교단의 신념체계에 따라 사역하기로 약속했던 류상태씨는 근본주의로 종교에 입문하였으나 대학 시절 전공이 철학이었던 탓에 <꾸란>이나 <우파니샤드> 같은 이웃종교의 경전을 접하면서 다원주의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진학한 장로교신학대학원에서 이같은 그의 자유로운 입장을 수용할 리 만무. "진실로 너희의 종교는 하나이니라"는 <꾸란>의 구절이 머리에 맴돌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과 다르게 신학대학에서 통과될 수 있는 논문을 쓰고 졸업한다.

강의석 사건이 터졌을 때도 적당히 학교 입장을 대변하고 그럭저럭 넘겼으면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를 보전하며 목사와 교사로 살고 있었을 그.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강의석군 사건의 유탄에 맞아 희생됐다고 말한다. 외형상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와의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얻은 결론은 강의석 사건은 강의석 사건대로 하나의 독립된 사건으로 기능하면서 그에게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도록 뇌관 역할을 했다.

뇌관은 폭탄이 터지도록 불을 붙여주기만 할 뿐 폭발력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의미. 1990년대 초부터 신념이 변한 그의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교회 개혁에 대한 열망이 이미 임계점 가까이 도달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강의석 사건이 터졌던 것이다.

인터뷰를 한 지도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그의 좌판에 붙어서있기가 부담스러웠다. 오늘 장사의 절반을 공치게 한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아서였다. 그런 그에게 인터뷰를 끝내기 위한 마지막 발언을 부탁했다.

"먹고살기 위해 하고 싶은 말 못했던 것보다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은 이 현실적 형용모순에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아웃사이더로 새로운 삶을 사는 인간 류상태씨의 얼굴에는 천진한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류상태는 누구인가
'개독먹사' 버리고 노점상 된 교회의식개혁운동가

ⓒ오마이뉴스 이종호
서울에서 태어나 종교가 없던 류상태는 중앙대 철학과 시절 미팅에서 만난, 너무도 잘 대해주던 여학생에게 이끌려 기독교에 입문했다가 대학을 졸업하면서 아예 진로를 바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다닌다.

1983년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염광여상에서 잠시 시간강사로 있다 영락교회 전임전도사로 본격적인 목회를 시작한다.

1985년 목사 안수를 받은 류상태는 영락교회 박아무개 목사의 구두사건이 있던 그날 숭의여중 종교교사로 부임한다.

이후 그는 대광중고 교목실장을 지내면서 한국기독교연합회 교목협의회 회장을 지내는 등 탄탄한 목회자의 길을 걷는다.

그런 그의 삶이 바뀐 것은 2004년 10월 일어난 ‘대광고 강의석 사건’이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강의석군이 학교에서의 종교자유와 예배선택권을 주장하며 단식을 하는 등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것. 이때 그는 강의석군 후원자를 자처하게 되는데, 그 일로 목사직과 교사직을 스스로 반납하고 학교와 교회 밖으로 나와 지금은 생계수단으로 액세서리 노점상을 하고 있다.

그는 현재 다음 카페 ‘불거토피아’의 카페지기로, 또 ‘학교종교자유를 위한 시민연합’ 실행위원으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 조성일 기자
2005/05/27 오전 12:34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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