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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대 청소아주머니와 민주화운동20년

청주대 청소아주머니와 민주화운동20년

 

50대 두 아주머니가 울고 있다. 이제 갓 돌을 지난 딸아이보다도 더 크게 입을 벌리고 울고 있다. 해고(이들에게 해고란 사실없다. 비정규직이란 신인류에겐 '계약만료'만 있다.) 통보를 받고나서 그저, 어떻게든 일하게 해달라는게 전부인데, 그래서 폼나게 국회의원과 기자회견 하기로 했던날 그녀들은 결코 폼나지 못했다.

 

 

청주대학교는 정문은 언덕길이다. 20년전 아니 십수년전만해도 그 언덕길위에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학생들 한손에는 돌멩이를 들고, 독재타도 깃발을 들고서 언덕아래 교문을 막아선 전경들을 향해 학생들이 언덕아래로 쏟아져 나왔겠지.

 

그런 청주대학교 풍경이 가물가물해지만큼 시간이 흘렀다. 청주대학교 청소 아주머니들이 교문을 지나 그 언덕길을 올라서는데, 학생들이 내려온다. 그리고 아주머니들을 막아선다.

'너네들 왜 나왔니.'하고 물어도 대답을 안한다. '왜 막니!' 그래도 대답을 안한다. '이럼 안된다. 우린 너희들 어머니일지도 몰라'하니 학생들이 움찔거린다. 그 옆에서 어떤 교수(나중에 교수로 알았다. 처음엔 용역경비 직원일준 알았지만...)가 뭐라하고, 다시 학생들은 스크럼을 짜고 아주머니들을 막았다. 결국 사고가 났다. 왜 나온지도, 자기가 하는 것들이 뭔지도 모르는 한 학생이 아주머니를 밀쳤고 50대 후반의 한 아주머니가 뒤로 넘어졌다.

 

87년 6월, 그 폭풍같은 그 유월이 지난 뒤 7월,8월,9월 노동자들은 축제였다. 새마을 운동식 군대같은 규율이  지배하던 공장들의 기계가 멈춰섰다. ‘임금100%인상, 악질관리자 퇴직’ 같은 수십년간 봉쇄됐던 그런 함성들만이 공장에서 나올수 있는 유일한 사람소리였다. 그렇게 87년의 민주화항쟁의 그 불꽃은 노동자들의 가슴을 태웠고, 노동자들의 살림살이에 난로처럼 다가왔다.   

 

청주대 청소아주머니들은 바보다. 20년 전에도 그 암흑과도 같았던 그 시기에도 임금인상 100%, 아니 200% 인상을 외쳤는데 임금인상 목소리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그저 오로지, “용역이라도 좋으니 일만하게 해주세요” 이다. 20년 전의 그때 학생들이 밀고나왔던 청주대학교 그 언덕길에서 거꾸로, 학생들에게 길이 막혀버리고, 그 자리에서 울기만 하는게 유일하게 할수 있는 것의 전부인 그녀들은 바보다.

 

 

진짜 바보는 우리다. 87년의 주역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됐는데도, 그때보다 더 서럽게 울고있는 아주머니들이 있는데, 그 금배지들과 87년을 기념하는게 전부인 우리들이 진짜 바보다.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민주주의가 진척되었다고 그들과 함께 기념만 하는 우리가 진짜 바보다. 비정규직의 ‘87년대투쟁’을 못 만드는 우리가 진짜 바보다. 청주대, 그 아버지의 비리를 끝내지 못하고, 그 아들로의 왕위세습을 막지도 못하고, 그녀들을 울게만드는 우리가 진짜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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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다카지마 노동자들의 투쟁

시공간을 초월한 다카지마 노동자들의 투쟁

 

 

작년 오뉴월,  철강도시 포항을 뜨겁게 달군 건 뜨거운 초여름 햇살이 아니라 나이 예순, 칠순의 토목노동자들이었다. 세계 제일의 제철소 포스코, 그리고 그 포스코의 설비를 새로 짓거나 개보수를 담당하는 하도급업체의 노동자. 젊은 혈기도 엄두를 내기 힘든 포스코 본사 점거투쟁을 진행했던 예순에서 칠순사이의 이들 늙은 노동자.

 

무엇이 그들을 투사로 만들었나! 이 질문에 그들은 간단히 답했다. 바로 다단계 하도급, 즉 중간착취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답했다. 이 중간착위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포스코의 도급단가 계산에서 노동자 일당이 '품셈(인건비'으로 11만 7천원이면 십장(하도급) 체제에서 반장 한사람이 밑에 도급으로 붙으면 11만원이 되고, 그 밑에 또 팀장이 붙으면 10만원이 되고, 결국 A급 일꾼은 9만 5천원, B급은 9만원, C급은 8만5천원이 된다.

 

같은해, 현대자동차의 한 사내하청업체의 중간착취 실태가 폭로되었다. 단지, 사무실 운영하고 노무관리 하는 것이 전부인 이 업체의 사장은 일용공들의 노동에 기생해 월간 약 2천여만의 순이익을 올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일용노동자와 현대자동차 중간에 기생하는 이 중간착취기업(용역,파견)만 없에고 그 둘이 직접 계약한다면 이 일용노동자들의 일당은 하루 3만4천원에서 4만4천원으로 올릴수 있다 한다.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100여년전의 일본으로 가보자! 일제하 우리 선조들의 강제징용지로 악명을 떨쳤던 100여년전의 다카지마(高島) 탄광. 콜레라가 발생했을 때 살아있는 노동자들과 환자들, 그리고 죽은 자들의 주검을 함께 섞어 해변에서 불태워 버렸던 다카지마 탄광, 바로 거기서 1872, 1878,1880, 1883년에 노동자들의 폭동이 연이어 터진다. 진압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사살당하고 고립당했다. 그러나, 이 폭동의 최후의 승자는 다카지마 탄광노동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싸운 대상은 무었이었으며, 이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이들은 바로, 현대의 중간착취 용역·파견격인 '나야가시라'(納屋頭)라는 인력청부업자들을 대상으로 싸웠고, '나야가시라'라는 제도의 철폐였다.

 

그 시기에 '나야가시라'는 일본만의 존재였을까! 아니다, 가장 먼저 자본주의화된 영국은 그 일찍이 이런 노동청부업자들이 존재했었다. 옆나라 중국에서는 '바오궁터우(包工頭)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 제도는 어떻게 없어졌는가! 바로 다카지마 탄광노동자들의 경우처럼, 벼랑끝 반란에 의해서, 그리고 노동자들의 기본권이란 이름으로 없어져 갔다.

 

다시 100년후인 현재로 귀환해보자. 그들 선배노동자들의 투쟁덕분에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는 '중간착취의 배제'라는 문구를 통하여 '다른 노동자의 임금을 중간에서 착취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노동자들의 기본권으로 명문화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장 야만적인 중간착취라는 유령는 '아웃소싱', '파견노동', '비정규보호법'등의 명목으로 더욱더 되살아 나있다. 이를 두고 무어라 해야될까!  '야만'의 귀환인까! '제다이의 귀환'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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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노예노동을 권장하는 사회

중간착취·노예노동을 권장하는 사회

 

 

모처럼 사무실에 나갔는데, 중년의 여성노동자 예닐곱명이 모여있다. 이들이 나누는 애기를 귀동냥해서 들어보니 유통업체의 비정규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직업이 감이 잡히는 순간 더 이상의 귀동냥할 필요가 없어져버렸다. 왜냐면 이들이 할 애기가 뻔하기 때문에....

 

이미 이들은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소속이 유통회사가 아니라 유령처럼 만들어진 다른회사의 직원들로 소속이 바뀌어 있었고, 자동적으로 갱신되던 근로계약도 어느새 몇 개월마다 재개약이 반복되는 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이 유통회사는 사람들을 자른단다. 

지금, 그녀들이 할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소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자신과 함께 태운 근로기준법도 소용없다. 그녀들이 잘리는 건, 근로기준법상의 해고가 아니라, 고상하게도 '계약만료' 이기 때문이다.

 

그녀들과 같은 이런 노동자들을 파견노동자라 부른다.

 

대한민국정부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한국노총은 이 불쌍한 파견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을 만들었다. 얼마나 보호할려고 하는 의지가 강했던지 법률 명칭도 '비정규노동자 보호법'이라 했다.

그런데, 이 보호법 때문에 파견노동자들의 밥줄이 줄줄이 짤려나간다. 이제 이도 모자라, 대한민국은 파견업종을 대폭 확대하는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비정규보호법에 의해, 수십만의  노동자들이 2년 미만의 기간제 파견 노동자로 전락하다 고상하게 재계약을 거부당해 잘려 나간다. 그 보호법의 시행령으로 인해 또 다른 수십만의 노동자들이 파견노동자로 전락하다 자신의 자리에 먼저 있던 선배들가 같은 운명이 된다.

 

여기서 파견노동의 본질을 보라! 고상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서로 물고 뜯기는 정글의 눈으로 파견노동의 본질을 보라! 바로 '중간착취'이자 '노예노동' 이다.

 

소개비라는 명목으로 용역회사는 앉아서 돈을 긁어 모은다.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고 타인의 노동에 기생해 소개비를 챙긴다. 그래서 중간착취인 것이다. 파견노동자는 자신의 근로조건에 대해서 어떤 결정권도 없다.  그저 시키는 대로 일해야만 하고, 주면 주는대로 받아야만 한다. 이 암묵의 규율을 어길라치면 그대로 끝장이다.

 

우리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어느 파견노동자가 글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저는 건설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 입니다.그런데 용역사무실 횡포가 심해서 도움을 청합니다. 그 내용을 열거를 해보며는 하나 하루를 일을 하며는 일당을 받는데, 하루에 10.000원씩 띠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동법에는 10%이상은 못띠는데,업자들이 담합해서 일괄적으로 띠고 있습니다. 하나 일당은 그러다 치고 교통비도 자기네가 먹고 있습니다. 차를 끌고 가며는 기름값으로 2000원을 주는데, 5명도 10.000원, 6명도 10.000원, 7명도 10.000원, 입니다. 이러한 법이 대한민국에 어디에 있습니까!"

 

비정규보호라는 명분을 대고, 중간착취와 노예노동을 권장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살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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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점이, 우리 사회에 유익한가!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어떤 관점이, 우리 사회에 유익한가!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얼마전, 딴 곳에 실린 저의 글에 대해서 댓글이 달렸다. 댓글의 요지는 저의 시각이 일방적으로 한 곳만 바라보는 편협함의 극치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비이성의 광기'란 나의 글을 뒤집어 '광기어린 비이성'라고 나를 놀려댔다.

 

요즘, 상생(相生)이란 말이 유행하는데 노동조합운동의 일선에 있는 사람으로서 내게 이말처럼 난해하게 느껴지는 그 이상의 단어는 없다. 과연 노동자와 자본가, 노-자관계에 상생이란 존재하는가! 상생이란 말의 반대편에는 '서로 물어 뜯다가 같이 죽는' 그런 개념이 있을텐데 난 아직 그런 개념을 현실로 목격한 적이 없다. 쉽게 말하면 노동자들의 자주적 단결체인 노동조합 때문에 자본, 즉 회사가 망한 것을 보지 못했다는 애기다. 여때까지 눈뜨고 내가 본 것은 월등한 힘을 가진 것은 항상 자본이었고, 그 힘의 관계에서 결과는 불보듯 항상 그런 식이었다. 칼자루를 쥔 사람과 벼랑끝에서 칼날을 맨손으로 막아선 사람에게 상생의 전제조건인 상호 양보란 것이 실은 얼마나 불평등한가!


연간 순이익만 수조원을 올리는 대기업 하이닉스가 노동조합 만들었다고 연봉2천만원 10년차 비정규노동자를 한순간에 잘라버렸다.  그렇게 쫓겨난 이 일회용 비정규노동자들이 상생을 위해 양보할 것이 존재하기나 한단 말인가! 그리고 이 싸움, 대기업과 비정규노동자 사이의 이 싸움 끝은 너무나 뻔하게 예견되어 있었고 그렇게 끝났다. 너무나 눈이 부시게 처절할 정도로...

 

하이닉스 비정규노동자들의 문제에 있어서 이들 사이엔 상생의 여지가 없었다. 오로지, 밥줄(한 가족의목숨줄이다) 끊긴 노동자들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지 하이닉스란 대기업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난 매우 편협하다. 노동문제만 나오면 난 노동자의 이해관계에서 잔머리를 굴려보고, 그 속에서 행동반경도 가지려 한다. 난 이것이 우리 사회의 보다 많은 사람들, 다수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까지 확신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성운동이 올바를수 있었고 많은 놀라운 결과들(제도와 인식의 변화)을 만들어 낼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보편적 기본권과 평등권을 옹호하는 운동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처럼, 노동자 운동 또한 그 기본적이 성격이 같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의 차별철페 운동, 그리 오랜 시간의 뒤안이 아니라 얼마전까지만 해도 장애인들의 기본권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했지만 이제는 국영방송의 광고조차도 '장애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라고 이야기 할 정도 까진 왔다. 우리사회는 이렇게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보편권, 기본권이 일시적 기복을 딛긴 확지만, 역사적으론 확장되는 형태로 발전해가고 있다. 왜냐면 그것이 옳았기 때문에...

 

나는 편협함이란 것, 대립적이고 때론 적대적이기 까지 한 양대집단속에서 어느 일방의 이익을 주장한다는 것이 결코 편협함이라 보지 않는다. 진짜문제는 그 편협함이 누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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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벌레만도 못하게 보는 시선

노동자를 벌레만도 못하게 보는 시선

학교급식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의 가슴시리게 사무친 애기를 들은적이 있다. 이 아주머니가 가장 하고 싶은 것중의 하나가 초등학교 딸아이와 함께 다정하게 손잡고 학교 정문을 지나가는 것이란다. 아니, 그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해보고 싶은 일중의 하나가 될까.

그러나, 그녀의 어린딸아이의 눈에 비친 어머니는 못나고, 공부도 못해서 결국 남들 하지 않는 힘들고 천한 일을 하는 부끄러운 대상이였다. 그리하여 그 어린 딸아이는 학교 정문을 들어가는 순간부터 자기 어머니와 남남으로, 누가 알아볼까 눈길한번 주지 않는다.

누가 이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기억이 떠오른다. '이놈의 시키, 니덜 공부안하고 맨날 그려혀라! 나중에 니네덜 뭐하는지. 남들 양복입고 에어컨 나오는 사무실에서 일할 때 니덜 청소나 하고, 아니면 공돌이 공순이 된다. 잘 생각해라'라고 힘주어 말하는 옛날 중학교 담임선생님 모습.

아 그랬었구나. 노동자란 말대신 공돌이 공순이로 불리웠던 우리들의 선배노동자. 언제나 공부안하고 못나고 그래서 실패한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로, 그래서 사람들 머릿속에 인이 박혀버린 노동자란 개념. 그렇게 우리는 배워왔구나!

양반, 상놈 구별되는 시대는 조선시대로 끝났다 하지만, 양반상놈 구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하긴 회장님의 아들로 태어나면 대대로 회장님이 되는데, 누군 그 회장 아드님 하룻밤술값보다 못한 일년 연봉받자고 일하는 인간군상들이 수두룩 한데 그 무슨 얼어죽을 평등사회.

말하는 모양새로는 그 밉기가 노무현 대통령에 뒤지지 않는 한나라당 이명박씨가 또 미운 말들을 쏟아냈다.

"(지난달 인도의 한 업체를 방문해 보니) 소위 대학 출신 종업원들이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며 평시에 오버타임을 해도 수당을 안 받는다고 하더라."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조도 만들지 않는다던데, 만들 수 없어서 못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 수 있는데도 스스로 프라이드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노동자 알기를 조선시대 상놈으로 취급하는 말인데, 풀어보자면 양반(대학출신 종업원)이 프라이드가 있어야 양반인데 어찌 요즘 우리나라에선, 어찌 양반의 프라이드도 내팽개쳐 버리고 스스로 상놈(노동자)이 돼서 노조를 만드냐 하는 말이다.

이명박씨가 노동자 알기를 이렇게 알고 있는데, 교수들의 노동기본권에 대해서 그의 생각은 뻔히 보인다. "대학교수들의 노조를 만들기 위한 법안이 국회 상임위의 소위원회를 통과했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대학교수란 사람들이 노조를 만들겠다니, 교육이 제대로 되겠냐." 이명박씨는 교수노조에 진짜로 충격을 받았나 보다.

아, 이쯤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 비싼 과외비를 대줄 능력도 없고, 오늘 하루도 잔업특근에 몸둥이를 학대하는 노동자들이여, 그래서 자식들에게 다시 노동자가 될 수 밖에 없는 DNA를 물려준 노동자들이여! 우린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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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니들이 노동을 알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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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이 되도록, 알수 없었던 진실들
 
2007년 05월 17일 (목) 11:27:50 김남균 spartakooks@hanmail.net
 

 

제목을 ‘니들이 노동자를 알어? 이렇게 예의없게, 싸가지라곤 밴댕이 소갈딱지 만큼으로 정했습니다. ‘니들이 게맛을 알어’ 라는 광고카피가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참 그 카피가 친근하게 다가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 광고카피처럼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자들의 기본권이 친근하게 다가갔음 해서 흉내를 내 봤습니다.
요즘같은 세상, 개발과 기업의 이익이 지고지선의 선이 되어버리 세상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건 너무나 고통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시기일수록 노동자들의 권리, 노동자들의 기본권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헌신짝처럼 버려지기 쉽상입니다.
아무쪼록, 저의 미천한 글이 노동자들의 권리, 노동자들의 실천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데 조그만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황금성을 짓는 사람들 : 노동자

나는 열한살이 될 때까지 가난이란 말을 몰랐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으로 사회가 구분되었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세상에 이층집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내 고향은 강원도의 아주 산골마을. 누구나 똑같이 고무신을 신었고, 누구나 감자, 옥수수가 들어간 밥을 먹었다. 뒷동산 나무가 푸른 빛깔에서 누르스르하게 변할때즘, 그래서 개울물이 차서 더 이상 물에 들어가 노는 것이 중단될쯤부터 다음해 개울가 물놀이가 재개되기 전까지 씻는것도 함께 중단됐다. 모두가 그랬다. 그래서 새학기가 시작되면 선생님들은 물 양동이 교실에 갖다 놓고 양말을 벗기고 때검사를 했다. 겨울내내 씻지를 않아 갈라질대로 갈라진 그 발을 시린 양동이물에 불러터질때지 담그면서도 창피하지도 않았다. 모두가 그랬으니까! 청주로 이사오기 바로 전해에 전기가 들어왔다. 그래도 변화는 없었다. 집에 텔레비전이 있는 집이 없었으니까!

청주로 이사 오던 날! 비가 왔다. 모두가 침통해 했다. 중학교 2학년에서 배운다는 것을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중단해야 했던 작은누나, 어머니는 울었다. 난 그 울음이 뭔지를 몰랐다. 나만 웃었다. 도시로 간다는거 그 하나만으로 난 즐거웠다. 도시로 오면서, 이층집, 삼층집이라고 하는 신기한 건축양식이 있다는 걸 보는 자체만으로도 즐거웠다.

한 삼사년 전이었을 거다. 청주의 한 대학교에서 청소일을 하시는 아주머니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우리가 그들이 일하는 곳을 찾아갔을 때, 우리는 경악했다. 일끝나서 옷갈아 입고 오겠다던 아주머니들은 죄다 화장실로 간다. 화장실로 가서 옷 갈아입고 나온 아주머니들에게 탈의실이 없냐고 했더니 한쪽을 가리킨다. 화장실 입구 구석에 속이 유리문으로 되어 훤히 디다보이는 채 한평도 안되는 곳, 창고로나 쓰여질 바로 그 공간. 자식뻘 되는 아이들이 옷갈아 입는 것을 훤히 볼수 있는 공간! 하지만 똥종이 치우고 머스마들 조준 잘못해 튀어버린 오줌을 닦아내는 하찮은 일을 하는 이 늙은 여성노동자들이 남들이 보는 곳에서 옷을 갈아입으매 어떤 수치심도 느끼지 못할것이라고 해서 만들어준 그 공간.

청주라는 도시로 이사오기전까지 난 나의 부모와 형제들이 부끄러운 존재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난 나의 부모와 형제들이 부끄럽고 가난하고 못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데에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농사만 짓다 청주로 나온 아버지는 일거리를 찾지 못해 헤매다 사십대 중반에 지금은 카지노로 유명한 고한으로 가서 탄광노동자가 되었다. 열다섯살 작은 누이는, 당시 같은 동네에 살던 대농이란 회사에서 반장직급을 가진 아줌마에게 뒷돈 삼만원을 주고 대농에 들어갔고, 월급 2만원을 받는 공순이가 되었다. 세째형은 조그만 공업사의 월급 삼만원짜리 공돌이가 되었고, 이제 막 스물을 넘긴 둘째형은 건설현장의 막노가다쟁이가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대농 정문앞에 리어카를 개조해 꾸민 포장마차에서 오뎅과 핫도그를 파는 포장마차 주인이 되었다.

열한살 그 어린 나이에, 나는 그새 눈치를 챌수 있었다. 공돌이 공순이가 얼마나 천한 존재인지를! 하루종일 연탄보일러를 놓는 일을 하는 셋째형은 정작 연탄보일러가 있는 집에 살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하루종일 실을뽑아 원단을 만드는 일을 하는 작은 누이의 월급으론 그 원단으로 만든 옷 한 벌 제대로 살수 없다는 것을. 그 어린 공돌이 공순이에게 쏟아지는 멸시와 조롱, 천대가 쏟아지는 걸 볼수 있었다.

매년 새학기가 시작되면 써서 내야 하는 가정환경조사서에 어므이, 아버지의 학력과 직업. 내 형제의 학력과 직업, 가족의 재산을 써내야 하는 의무, 이것은 너무나 큰 곤욕이었다. 아버지의 직업란에 탄광노동자라고 쓰고, 나의 누이와 형들의 직업과 학력란에 중퇴, 중졸, 공순이 공돌이라고 적는게 얼매나 창피한것인지..... 그래서 난 나의 아버지의 직업란에 곧 죽어도 ‘상업’이라는 고상한 직업을 찾아내 적어냈다.

그러다, 열다섯살때쯤인가! 아버지가 준 고사리, 삼엽충 화석을 자랑하다 그만, 그것이 계기가 되어 수업시간에 아버지가 탄광에 다닌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혀졌을 때, 갑자기 알몸으로 혼자 서있는 것처럼 부끄럽고 창피함에 교실을 뛰쳐나갔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는 선생님의 말씀은 거의 그랬다. 야 너 김남균이 니 공부 그리해서 공장가서 공돌이 될래, 아님 열심히 할래!

열두살, 전두환 대통령 각하가 청주에 온다해서 청주시내 모든 학생들은 두세시간쯤 태극기를 들고 도로에 나와 각하를 환영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가 대통령각하가 헬기를 타고 지나가셨다는 말 한마디와 더불어 교실로 들어온적이 있다. 교실로 들어오니, 갑자기 삼립빵 두 개, 초코우유 하나씩 배분되고.... 이 빵과 우유는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사랑과 애정이라고 친철히 설명하는 선생님.

그러나, 어떤 선생님도 노동자, 공돌이 공순이에 대해서 가르쳐 주진 않았다. 노가다쟁이가 아파트를 짓고 수십층 고층건물을 올린다는 것을! 실뽑는 어린 여공의 손에서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옷감이 나온다는 것을! 청소하는 노동자들이 없으면 세상이 똥오줌으로 범벅이 돼 살수가 없다는 것을! 공돌이 공순이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주역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는 아니 우리 나라 국민의 삼분의 이가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노동자로 살아가면 가난한데, 그 가난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를!

노동자들의 손끝에서 땀방울이 모여서 황금성을 짓는 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그 황금성의 어떠한 것도 노동자는 가질수 없다는 것을!

난 스무살이 될 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 어느 청년노동자의 죽음, 전태일의 죽음을 알때까지 그것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쉽게 알았으면 한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인데도, 참 무지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고, 언론에서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김남균회원님은 민주노총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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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면 되풀이되는 그녀들의 전쟁 (청주대학교 청소용역노동자들의 투쟁)

오월이면 되풀이되는 그녀들의 전쟁 (청주대학교 청소용역노동자들의 투쟁)

 

 

한 삼사년 전이었을까.  한강이남지역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청주의 한 대학교에서 해고예고를 받은 청소일을 하시는 아주머니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나와 몇사람이 그들이 일하는 곳을 찾아갔을 때, 우리는 경악했다. 일끝나서 옷갈아 입고 오겠다던 아주머니들은 죄다 화장실로 간다. 화장실로 가서 옷 갈아입고 나온 아주머니들에게 탈의실이 없냐고 했더니 한쪽을 가리킨다. 화장실 입구 구석에 속이 유리문으로 되어 훤히 디다보이는 채 한평도 안되는 곳, 창고로나 쓰여질 바로 그 공간. 자식뻘 되는 아이들이 옷갈아 입는 것을 훤히 볼수 있는 공간! 하지만 똥종이 치우고 머스마들 조준 잘못해 튀어버린 오줌을 닦아내는 하찮은 일을 하는 이 늙은 여성노동자들이 남들이 보는 곳에서 옷을 갈아입으매 감히 무슨 수치심이냐 해서 열린 공간으로 제공해준 개방형  그 공간. 

 

그녀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녀들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노동조합 애긴 별로 하지 못했다. 한번 터진 애기는, 지금까지 살아온 그 시린 인생의 설움을 털어내듯 그녀들은 숨 내쉬듯 이야기 눈물꽃이 줄줄이 피었기  때문에......

 

 

우리는 당시, 월 오십몇만원 하는 그 최저임금마저도 용역회사가 떼어먹은 사실을 알았다. 그녀들이 얼기설기 글을 쓰고 간신히 형식을 갗춰,  혹시라도 나랏팀 한테 도움을 받을까  노동부를 찾아간 날!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온 나라님 말씀은 '아지매요. 회사 망하면 어찔할려고 그려요'

 

며칠후,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과 그녀들이 자식뻘 되는 전경들과 멱살을 잡고 밀쳐지고 나뒹굴고, 노동부 앞마당에 주저않았다가 드러누웠다가 그러기를 몇시간한 후에  그 굳게 닫힌 노동부 문이 열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자리 들어간 나랏님 처음 보았다는 그녀들. 그녀들은 나랏님에게 용역회사 사장이 떼어먹은 체불임금 애기는 하지 않았다.  '니 눈에, 우리가 사람으로 보이나! 똥치우고 똥종이 치우니 사람으로 안보이더나!  니도 똥싸는 사람이고, 나도 똥 싸는 사람인데, 다 똑같은 사람인데...'  그녀들은 이렇게 울부짖었다.

 

그날, 저녁을 먹을 때, 나랏님을 상대로 그렇게 행동할 힘과 배포가 어디서 났는지, 오늘 미치지 않고선 그리하지 못했을거라고 그녀들은 말했다. 그리고 몇 달후 그녀들은 체불임금을 받았다. 1년 계약을 연장하기로도 했다. 민주노조 만들어, 처음으로 사람 흉내 내봤다고 너무 좋아했던 그녀들!

 

 

이제 시간이 몇 년 흘렀고, 그녀들의 임금도 오십몇만원에서 칠십몇만원으로 올랐다. 그녀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러나 그녀들은 지금도 전쟁중이다. 칠십몇만원 월급 1년연봉 다 합해도, 그 학교 1년치 수업료도 안되는 그 돈 계속 받자고 전쟁을 한다.  1년마다 '최저입찰제'다 머시기다 해서 돌아오는 용역업체 재계약, 거기서 끈질기게 줄이라도 잡고 있어야 밥줄 끊어지질 않는다고 1년을 가슴 조리는 그녀들!

 

 

그녀들은 참 바보스럽다. 어찌보면 그녀들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청주에서 아파트 하나만 잘 찍어도 1년이면 '억'을 벌수 있다하는 세상인데... 노동부 재취업 교육 짱장하게 돌아가고, 초강대국 미국시장이 우리 먹이감으로 눈앞에 열리는 시대인데... 조금만 있으면 3만불 시대가 열리는데... 시대가 어느땐데 겨우 칠십몇만원에 인생을 걸고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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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교협충북지회에 바란다

민교협충북지회, 창립20주년 기념 :  "민교협에 바란다"

김남균 (민주노총충북지역본부 비정규사업부장)

 

 

창립20주년, 이 스물이란 숫자가 얼마나 대단하지에 대해서 미력하나마 알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노동운동에 발을 내 딛었을 때, 속으로 '함 10년은 어티게든 나가보자. 10년을 넘긴다면 내 선택이 옳았다고 할수 있지 않을까'하고 채근해본적이 있습니다.

그 시간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어티게든 도망갈 궁리만 찾았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 간신히 그 10년이란 시간을 겨우 채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회 민주화의 깃발 하나로 민교협충북지회는 자그만치 20년을 내달려 왔다 하니 그 시간의 깊이 만큼 민교협의 역사와 정신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사실 저희들은 민교협의 제자입니다. 그러나  민교협의 제자로서 제대로 살고 있는 가 할때, 많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사실 학교를 다닐때도 민교협 선생님에게 F학점을 받았으니 이미 그때부터 전 불량제자 였던 것 같습니다.

 

김승환 선생님으로부터 '민교협에 바란다'는 소리를 해달라는 소리를 듣고선 좀체 감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함에도 이 자리에서 감히 하찮은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민교협의 불량제자였긴 하지만, 어쨌든 제자이건 분명하니까 그 애정으로 들어봐 주십시오.


< 배터진 민주주의, 배고픈 민주주의 >

 

'민주화이후의 민주주의' 라는 화두를 들어본적이 있습니다. 87년 체제는 분명, 이땅의 민주주의의 성숙을 가져왔고 많은 부분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계가 명확한 한쪽만의 민주주의에 불과했습니다. 분명 형식과 절차적 민주주의는 질적, 양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 한계는 너무나 명확히 나타납니다. 바로 경제의 민주주의, 분배와 평등의 문제는 사실상 배척당했습니다. 이 경제의 영역에선 87년 이전이나 이후, 그리고 오늘날 차이가 없습니다.

 

정권의 수장이 군복입고 선글라스 쓰던 사람에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구속되고 사형선고 받았던 사람들로 바뀌었습니다. 각하로 통칭되던 무소불위의 권력과 권위주의, 엄숙주의는 사라졌습니다.  정권의 권위주의, 엄숙주의는 사라졌지만 아쉽게도 자본의 그늘아래로 편입되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을 누가 통치, 지배하는가란 질문을 던져봅니다.
군복과 각하의 자리를 이젠 자본이 대신해 권력 정점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현 노무현 대통령의 시스템과 룰이라고 애기합니다. 그 훌륭한 시스템은 바로 자본의 시스템에 불과합니다.

이제 자본이 통치하는 민주주의는 한쪽에선 배터지는 민주주의이고 한쪽에선 배고파지는 민주주의입니다. 빈부의 격차는 더욱더 심해집니다. 기업의 이윤은 나날이 늘어가는데, 국민들의 삶은 결코 나아지지 않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교협과 선생님들께 바라는 첫 번째 희망사항이 있습니다. 87년 민주화의 미완성 과제인 경제의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것에 대한 제2의 민주화 대투쟁을 선도해주십시오.
완성된 절차민주주의에 안주해, 87년 체제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하고 연장시키는 대투쟁을 선도해 주십시오.

 

<사회정의로서의 노동(운동)의 가치를 재조명해야...>

 

노무현 대통령이 '부동산 원가공개'를 반대하며 했던 말이 "열배 남는 장사도 있더라!"라는 말입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기업이 이윤추구를 위해 활동한다는 것은 유치원다니는 우리 아들놈아도 알고 있습니다. 좋은 말로 이윤추구지, 속되게 표현하면 기업이 돈에 환장에 인격도 눈물도 없이 운영한다 해도 이를 비난하지 않는 분위깁니다. 자본주의하에서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라는 있다는 것은 너무나 상식입니다.

그러나, 한편에선 요즘 노동자들의 고임금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귀족노조란 애기도 나옵니다. 대기업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면 비난이 쏟아집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보자면 비난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면 이윤추구가 기업의 존재 목적이듯이 노동조합의 노동자들의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실현하는 것 자체가 존재의 이유입니다. 존재에 충실한 것은 비난이 대상이 될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쪽은 그 이유로 비난의 대상입니다.

 

노동기본권, 노동법체계는 사회법의 핵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기본권의 헌법적 권리로 자리매김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권리가 기본권이고 본질적으로 침해될수 없는 상식선의 권리라는 것은 부정되고 있습니다.

경제의 민주주의 분배의 평등문제의 가장 기초는 노동과 자본입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과 자본이 이익을 분배함에 있어 노동자들의 임금몫, 그 비율이 어느정도로 가는 가가 그 사회의 분배지수의 첫 번째입니다.

이념으로서의 노동자들의 실천운동이었던 사회주의는 몰락했지만, 노동자들의 실천운동-노동과 자본의 대립과 투쟁이 몰락한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전한 것은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고 이 속에 노동자, 노동자들의 실천의 사회적 의미가 제대로 찾아질수 있다고 봅니다.

 

군복입은 대통령 시절로 돌아가 불쌍한 노동자들을 은혜적, 동정적 시각에서 보자하면 노동의 그 사회적 의미가 찾아 질수 없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측면으로 한걸음 한걸음 진보시켜 내는 노동의 힘에 대해서 다시한번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일곱 살난 아이에게 여기계신 선생님들부터 배운 것을 가르칩니다. "네,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면 '노동자'라고 대답해라. 노동자가 누구냐구 물으면 '역사의 주인이시다'라고 대답해라"하고 말입니다.

현재, 노동은 매우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자본과의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패배한 노동은 결과적으로 노동기본권이라는 헌법적 권리마저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민교헙에 바라는 지점이 바로 이대목입니다. 노동의 가치, 노동의 꿈, 노동의 권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연대해주십시오. 그럴려면, 노동자들과 친구 먹어야 합니다. 직업란에 교수라고만 쓰지 마시고 노동자라 당당히 쓰시고 그옆에 가로치고 '대학교수'라 써주십시오.

 

 

<연대를 가르치는 스승, 연대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 주십시오>

 

 

낮은 곳에 있는 자에게, 나의 눈높이로 올라 와라 하면 이것은 연대가 아닙니다. 낮은 곳으로 몸을 낮추는 것이 연대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낮아져야 평평해지고 평평해져야 넓어진다는 말도 기억이 납니다.

민주화의 등불이 되었던 것처럼, 이제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위한 연대의 등불을 밝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인문학의 위기라 합니다. 오늘 대학에서 폐과된 강좌의 60%가 인문학이라는 애길 들었을 때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인문학적 소양이 없으면, 사회적 연대가 될리 만무합니다. 우리의 젊은 이들에게 사회적 연대, 인문학적 소양을 불어 넣어 주십시오. 재밌는 인문학, 가슴 따뜻한 인문학으로 위기를 극복해주십시오. 


 
<사회쟁점의 한가운데에 있는 민교협을 부탁드립니다>

 

선생님들을 보면서, 많은 가르침과 감화를 받지만 가끔 드는 생각이 너무 '점잖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이러면 재미가 없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우리 선생님들이 많이 튀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톡톡튀는 김승환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사회문제, 지역현안문제, 정치영역 등에 대한 적극적인 튀는 행동이 많았음 합니다.    


마치면서

 

주제넘는 말이 많았습니다. 노동운동에 있는 사람으로 더 많이 반성하고 자책해야 하는데, 어줍잔케시리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불량제자이긴 했으나 선생님들의 제자였다는 사실하나만으로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민교협 20년, 그 세월의 깊이를 저 자신도 살면서 따라갈수 있었음 좋겠습니다. 존경의 마음을 전하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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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이데올로기의 슬픈 자화상

 하이닉스, 이데올로기의 슬픈 자화상

 

 

요즘 큰아이를 보면서, 내 스스로 무력감에 빠진다. 이제 일곱 살인 첫째 아이는 자신이 즐겨 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캐릭터 장난감만 보면, 무작정 사달라 한다. 나는 아이의 요구대로 무작정 다 사줄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장난감보단 구매행위 자체에 빠져버린  아이의 소비만능적 태도를 훈계할 설득능력도 없다. 에그! 이도 저도 못하면서 '가보타크' 캐릭터 로봇은 종류도 왜이리 많은지, 소심하게 원망하는 무기력한 내 자신.

그러나, 정작 불행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아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다름아닌 부모인 나라는 것도 안다. 들과 산, 개울 크게 자연이라는 놀이터도 제공해주지 못하고 애정의 놀이터인 부모의 품조차 제대로 주지 못해, 결국 텔레비전이 아이의 가장 친근한 놀이터가 되고...... 아무리 '변신' 구호를 소리질러 봤자, 변신하지 못하고 손에서 로켓미사일이 나갈수 없는 아이.이제, 그 로봇을 구매하는 것만이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가 되어버린 아이. 끊임없이 소비할 것을 유혹하고, 소비를 통해 인격과 품위가 실현된다고 현혹하는 자본주의 상품이데올로기에 이 일곱 살난 아이가 벌써 그 중심에 있게 했으니....

 

 

하이닉스, 매그나칩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이 한 단락 종결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하는 노동자들이 있기에 여기서 일단락 됐다고는 결코 할수 없다. 그러니, 일단 전체를 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평가 정도로 한번 짚어보자!

 

다른 사람들은 이 사태를 통해 무엇을 보았는지 처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너무나 지독한, 너무나 지긋지긋한 비상식과 비이성의 광기를 보았다.

 

보자!

 

하이닉스라고 하는 이 거대기업은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을 봉쇄하기 위한 용역경비업무에만 150억이라는 돈을 쏟아 부었단다. 연본2천만원의 하청 노동자 100명을 7년 5개월간 고용하고도 남을 금액이다. 이 사실을 어떤 경제학의 기본 상식으로 설명할수 있을까! 최소비용의 최대효율이라는 기본과는 애시당초 떨어져 있다. 뭘로 설명할수 있을까! 노동조합 혹은 비정규노동자들이라는 새로운 노예들의 저항자체를 근본적으로 혐오한 '비이성의 광기' 이외에는 결코 설명할수 없다. 

 

보자!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활동에 대해서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것이 문제라 한다면 우리사회는 미친사람 취급할거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또하나의 당연한 상식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조직을 결성할 권리, 그리고 자신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행동 즉 노동기본권 또한 헌법적 권리라는 것이다. (내 생각이 아니다, 대한민국 공화국 헌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여기,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단지 이 헌법적 권리를 행사했다는 하나의 이유만으로, 괴상한 직장폐업이라는 구실에 의해서 쫓겨났다.

 

 톺아보자! 이윤을 추구했다는 이유로 한 기업이 기업활동을 정지당했다면, 우리 사회는 어찌했을까!

 

 

모스크바의 지하철에서 젊은이들이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본 한국인이 그 이유에 질문을 했다 한다. 그 젊은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다. '이 지하철은 바로 이분들(노인) 세대가 만든 것이니까요!'

우리와 틀려도 너무 틀린다.

 

하이닉스 하청노동자를 둘러싼 불평등한 '비이성의 광기'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어릴적부터, 자본주의 상품논리에 갇혀버린 나의 아이를 보면서 실마리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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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경비원 죽음 부른, 하루 70원의 유혹

아파트 경비원 죽음 부른, 하루 70원의 유혹

 

지난, 주말 육아휴직중인 나에게 모처럼 나들이를 나갈 시간이 생겼고, 지체없이 개나리 봇짐을 꾸려서 변산면 운산리에 있는 공동체 마을로 향했다.
각설이 옷차림 모양새 그대로의 옷차림을 한 농사꾼이 밭에서 쑥을 뜯고 있다. 이 농사꾼은 10여년 전에, 우리지역 한 국립대학의 정교수 자리를 버리고 농촌공동체 마을을 일구기 위해 떠났던 윤구병교수.

흙집 짓는 일을 돕다 새참으로 막걸리 한주전자 두고 공동체 식구들과 빙 둘러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문턱없는 밥집' 건립계획을 열심히 설명하는 윤구병 선생님. '문턱없는 밥집'이란 가난한 사람들에게 점심한끼지만 단돈, 천원에 유기농으로 잘 가꾸어진 우리농산물 재료만으로 만든 점심을 제공한다는 사업이라 하신다. 그리고 노동운동도 가난한 이웃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나눔의 연대정신을 갖지 못하면 안되다며 윤구병 선생은 계속 나눔을 강조하신다.

공동체 마을의 구성원은 식사를 같이 해야한다. 그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공동체 식당에 어떤 이가 비뚤비뚤하게 써 놓은 글이 있다. " 하늘을 한두사람이 가질수 없듯이, 밥도 그렇습니다. 하늘처럼 나눠갖는 것이 바로 밥입니다."

변산 공동체 마을을 뒤로 하고, 청주로 올라오던 날, 어느 아파트 경비원의 자살소식이 전해졌다.

스무명의 아파트 경비원중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6명을 해고한데 대해서 앙심을 품고 시너를 뿌리고 자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하는 뉴스 앵커.

그리고 모자이크 처리된 화면으로, '1인당 인건비가 약 20만원 정도 오르게 되니, 입주민 입장에선 관리비 절감차원에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짤막하게 대답하는 어떤 입주민의 인터뷰.

그리고 다시, 최저임금제 적용으로 오히려 아파트 경비원들의 고용이 불안정하게 될거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다고 걱정하는 뉴스앵커.

이 팽팽한 대립의 본질에 들어가기 위한 수학계산을 해본다. 15층 혹은 21층 하는 아파트 한동의 가구수는 보통, 최소 90가구에서 최대 168가구. 이 상향된 인건비 20만원 가구당으로 환산하면 월 천이백원에서 이천이백원. 하루로 환산하면 가구당 40원에서 70원. 겨우 이돈이 이 팽뱅한 대립의 본질이다.

작년말이였던가! 민주노총이 비정규관련 법안의 부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영상물에 나온 나이든 경비원의 인터뷰가 잔잔하게 들려온다.

"나는 경비원입니다.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하루 16시간을 일합니다. 오늘 기다리던 월급을 받았습니다. 한 달 539시간을 일하고 68만원을 받았습니다. 다음달에도 그럴 겁니다."

최저임금이란, 우리 사회 구성원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강제적 '나눔장치' 다. 짐승처럼 살지 않도록, 굶지않고 영양실조는 걸리지 않도록 살수있도록 하기 위한 물질적 강제장치다.
그런데, 하루 40원에서 70원과 최저임금의 결합을 두고 우리 주변에서 대립하고 갈등한다.

청주에 와서 공동체마을 식구들에게 속으로 물어본다. '도대체 나눔이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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