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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23
    범법자의 굴레! 정근원지부장의 ‘멍에’(3)
    없는데요
  2. 2007/10/16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 앞에서
    없는데요
  3. 2007/10/09
    죄수의 딜레마
    없는데요
  4. 2007/09/18
    추석장은 재래시장을 가자!
    없는데요
  5. 2007/09/11
    '절도'를 둘러싼 두가지 잣대
    없는데요
  6. 2007/09/04
    너무나 악질적인!
    없는데요
  7. 2007/08/28
    약삭빠르게 산다는 거 !
    없는데요
  8. 2007/08/21
    민들레
    없는데요
  9. 2007/08/14
    하이닉스 사장님! ‘문턱없는 밥집’에서 점심한끼 드셔보세요!(1)
    없는데요
  10. 2007/08/14
    하이닉스 사장님! ‘문턱없는 밥집’에서 점심한끼 드셔보세요!(3)
    없는데요

범법자의 굴레! 정근원지부장의 ‘멍에’

범법자의 굴레! 정근원지부장의 ‘멍에’

 

여섯 살난 그의 아들이 타고놀던 ‘인라이스케이트’도 치워지고, 라면을 끓여 먹던 휴대용 ‘코펠’ 용기도 없다. 자그마치 116일. 발부된 체포영장을 피해 그가 이곳에 들어와 생활한 날의 기록이다. 그는 바로 얼마전까지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장이었고 기름쟁이 노동자인  정근원씨다. 

 

 그는 한미FTA 협상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금속노조의 지침대로 파업을 진행했고, 그 일로 파업이 시작되는 날 문자메시지를 통한 세 번의 출두요구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었다.

나도 그랬었지만, 우리나라 경찰은 한미FTA 문제와 관련해서는 꼭 문자메세지로 출두요구서를 보낸다.

 

아, 디지털 강국의 대단한 경찰!

 

116일 이라는 유배 생활을 뒤로 하고 그가 어제 경찰에 자진출두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다시 그가 기거하던 공간을 보았을 때,  물밀 듯 밀려오는 진한 설움이 요동친다.

 

우리는 늘 그래왔다. 우리가 뭘 해볼라 치면, 그리고 그 일이 끝나갈때가 되면 우리는 늘 전과자가 되어있었다. 수조원의 순이익을 올리는 그 거대기업에서 소박하게 임금인상 기대하며 노동조합을 했던 백여명의 하이닉스 매그나칩 비정규직노동자들이 그랬다. 하나님의 기업에서 벌어진 불법적인 외주용역화를 반대했던 80만원짜리 홈에버 아주머니 노동자들이 그랬다. 청주대 청소 아주머니들 문제로 학교 사무실에 한시간동안 방문했던 나의 아내에게는 ‘특수건조물 침입, 특수재물손괴, 업무방해, 폭력’등 테러리스트로 짐작될 죄명이 붙었다. 

 

현해 노동법 체계에서는 어쩔수 없다. 범법자가 되지 않고서는 할수 있는게 거의 없다. 도저히 우리 노동자가 지킬수 있는 법률이 아닌 것이다. 노동법에서는 노동자에게 파업권을 보장해주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나! 노동자가 파업해도 사용자들은 대체인력을 고용해서 아무런 일도 없는 듯 파업을 무용지물로 만든다.(이건 명백히 불법이다). 노동부에 아무리 외처봐도 복지부동이다. 그래서, 노동자가 직접 항의하다 옷깃만 스칠라쳐도 폭력행위로 노동자를 처벌한다. 수많은 일들중에서 한가지만 불법이어도 전체가 불법으로 매도된다.

 

말 많은 노대통령, 그는 토론을 좋아한다.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기 때문에 국정수행에 국민을 참여시킨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땠나! 이익보는 사람과 손해보는 국민이 명백한 한미FTA에 관해서 그 흔한 토론한번조차 없었다. 그나마 파업이래도 한번 한다고 해야 조금 들어주는 척 한다.

 

그러니 어쩌랴!

 

정근원 전 금속노조대전충북지부장. 그를 범법자로 만든건 노무현 대통령이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만큼 구속노동자를 양산했던 노무현 정권! 비정규직노동자가 헤어 나올수 없는 범법자의 굴레를 만들어놓고, 한미FTA에 관한 일체의 의사표현, 토론을 차단해서리 굴레에 빠지기만을 기다렸던 노무현 정부가 벌인 거미의 곤충사냥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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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따뜻한 사람들 앞에서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 앞에서

 

여지없이 올해도 노동생산성보다 임금상승률이 높다하는 어느 단체의 발표가 있었고 이것은 여지없이 8시 뉴스의 앞자리를 차지했다. 본능적으로 올 ‘평균임금 인상률’도 찾아보고 ‘물가상승률’도 찾아보고 일년에 두 번쯤 찾아볼 통계청의 홈페이지에도 접속해본다.

 

그러다가 ‘월척’을 잡은적도 있다(내딴에 월척이지만!). 아니 세상에 2005년도를 비교해보니 ‘근로자’(난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란 말을 무조건 쓴다) 1년 총소득보다 민간사유지 땅값상승액의 총액이 더 크다는 노무현정부의 비밀도 우연스럽게 알아내는 월척말이다.  통계청 덕분에!

 

내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정부를 고맙게 알기는커녕 노무현 정부의 ‘싸가지 없음’에 고개를 떨었지만 단순히 이 정부가 우리 노동자와 서민의 정부가 아니라는 슬로건이 아니라 피부로 알았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감사는 ‘감사’고 우리 노동계에 항상 덧씨워지는 ‘이기주의’는 정말 답답하고 힘들었다. 노동자에 더 많은 임금이 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분배정의' 혹은 '평등'의 척도라고 '절대신앙'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임금상승률보다 너 낮다 하는 노동생산생 수치는 적대적으로 우리를 공격하기 위한 수치조작으로 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나름대로 내 주관, 아니 좀더 과장하고 나를 좀더 포장한다면 '내철학'으로 산다 했거늘 이렇게 수치에 대해서 민감하고 나름대로 객관적일지도 모르는 수치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방어본능이 작용했다. 그렇게 수치에 얽매어 살았다.


그런데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 ‘마이너스 성장도 성장이다. 왜 성장률에 집착하냐!' 가정친화적 삶도 그렇고 자연친화적 삶도 그렇고, 그런 지향을 가지고 있으면 하루 4시간만 일해야 한댄다는 말을 들었다.

 

덜 먹고, 덜 벌고 하는 대신에 더 작게 소비하는 삶으로 살아가는 '삶의 철학'으로 대 전환하자는 말씀이다. 아무리 우리가 아웅다웅해도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재(지구)와 환경, 그리고 경쟁구도는 한계가 있고 그속에서 삶의 패러다임(성장 지상주의)을 바꾸지 않는 한 어떤 좋은 삶의 질의 개선도 없다는 거다.

 

머리가 정말로 '띵'했다. 그리고 이삼일 후, 어떤 지인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고민을 나누는 분인데 그분이 살아가고 싶은 삶을 적시한 것이 너무나 강렬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 없다는 불혹을 지난 나이의 그분은 ‘필요한 만큼만 벌고, 가장 적게 소비하는 삶’의 방식에 관한 고민이었다.

 

그러다 머리가 두 번 ‘띵’하는 일이다. 이런 애기를 사무실 동료에 애기하다 보니 알게된 일이다.

지역 시민단체에서 내가 아는 상근자와 가족을 이루어 사는 이 사람은 삶의 목표가 ‘가난하게 사는 것’이란다. 그래서 소득 중에서 내게 꼭 필요한 것만 빼곤 나머지 소득은 나눈단다.

 

아! 오늘은 한없이 초라해지는 날이자 세상이 어떤 사람에 의해 따뜻해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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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의 딜레마

죄수의 딜레마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해서 요즘 부쩍 자주 만나는 노동자들이 있다. 화물 운반용 트럭을 운전하는 노동자들인데 이들의 주된 관심사, 아니 불만은 월급봉투다. 이분들중 한분이 엄청난 비밀문서를 가지고 왔다. 회사의 규칙에 의하면 본인 이외엔 절대로 공개를 해서도 안되고, 말을 해서도 안되는 극비의 비밀문서다. 뭐냐하면 그 노동자의 천오백이십만원짜리 '연봉계약서'다.

 

무슨 프로야구 선수도 아닌데, 그냥 회사에서 짜주는 순서대로 운전하는게 전부인데 무슨 능력별 차이가 그리 크게 있다고 연봉제라니! 또 다른 노동자도 그 극비의 연봉계약서를 공개했는데 똑같이 천오백이십만원이다.

 

이 연봉계약서에는  가장 굵은 글씨로 밑줄까지 쫘악 쳐가며 강조한 것이 있는데, '본인이외에 타인에게 절대로 누설하지 않는다'라는 부분이다.

 

참나, 별개다 기밀이다.

 

그날, 천기누설을 한 노동자 열댓명과 술자리겸 해서 자리를 했는데, 이렇게 다들 모인 것이 처음이란다. 그 자리에서 아저씨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배신하지 말자'다. 무슨 독립운동 결사조직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 '배신하지 말자'고 왜이리 비장한지 모를일이다. 하긴, 어떤 노동자가 노동조합 간부를 하기로 결단을 내리던 날 돌아가신 부친의 묘를 찾아가 절을 하고 왔다는 비장한 애기가 있을 정도로 노동조합에 대한 긴장감과 불안함을 조성하는 우리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 노동자들에게 '죄수의 딜레마'를 안주거리로 내놓았다. '여기 두명의 죄수가 있다. 검사는 이 두명의 죄수에 대한 충분한 물증이 없다. 그래서, 두명다 자백을 하지 않고 부인하면 증거불충분 무혐의로 풀어줄 생각이다.  그리고 한명만 자백을 하면 그 죄수는 불구속으로 하고, 자백을 하지 않은 죄수는 5년의 형량을 구형할 생각이다. 둘다 자백을 하면, 3년을 구형할 생각이다. 그리고, 둘을 따로 격리시킨 상태에서 각각의 죄수에게 이런 속내를 내비쳤다. 여기서부터 죄수의 딜레마는 시작된다.'

 

술자리에 있는 노동자 아저씨들한테 물었다.

 

이 죄수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본인들에게 가장 유리할까요! 아저씨들이 대답한다. '당연히 주딩이 꽉 다물어야지'. 하니 다른 아저씨가 '어떻게 믿어! 안 불은 놈만 쪽박차지'. 모두다 웃는다.

 

아저씨들한테 묻는다.

 

 '다들 불안하시죠. 괜시리 나만 손해보는 거 아닌가하고 다른 동료들이 배신하면 어떻하나. 그런 생각들을 하시는 거죠.'

 

아저씨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기왕에 천기누설까지 했으니, 다른 동료들 의심의 눈초리로 보지 말고 내가 변치 않으면 다른 사람도 변치않는다는 노동자의 의리를 보여주자고 했다. 아저씨들이 또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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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장은 재래시장을 가자!

아주 불편한 진실, 아니 외면하고픈 사실이다. 78만원 받고 일하던 이랜드 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이 3달 넘게 더 안받아도 좋으니 이대로 일할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그 사실 말이다.

 

 

바퀴달린 바구니에 물건을 가득싣고 다다가면 그녀들은 다정하게 우리들을 맞아준다.
“고객님 어서오십시오”, “오만 이천 삼백원 나왔습니다.” 적립카드 있으십니까!“, ”비밀번호 눌러주시겠습니까!“, ”고객님 봉투 필요하십니까“, ”고객님 안녕히 가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녀들의 미소뒤에 감춰진 그녀들의 불편은 무엇일까!

 

나사로 고정된 것처럼, 하루 여덟시간을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 그 불편함. 화장실조차 갈수 없어 90%의 여성 캐셔노동자들이 방광염에 걸렸던 그 불편함.

 

5만원, 10만원 바퀴달린 바구니에 가득실린 물건을 바코드에 찍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78만원의 임금으로는 제 바구니에 아무것도 담지 못했던 그 불편한 진실을 말이다.

 

언제나 똑같은 그녀들의 고운 미소와 밝은 목소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도,레,미,파,솔!  솔음의 톤으로, 소리나지 않게 “리”하고 하면 그녀들의 밝고 고운 목소리와 미소가 재생된다.

 

퉁퉁부은 다리로, 방광염의 고통으로 막상 제 남편과 아이에겐 한번도 들려주지 못했던 그 밝고 고운 그 목소리! 지금같은 상태가 조금만 더 오래가면 그녀들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수가 없다.

 

그녀들을 절망하게 만들고, 우리와 이별하게 만든건 누구일까

 

성경에 노동조합이라는 문구를 넣지 않은 원죄를 가지신 하나님일까! 하나도 보호해주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비정규보호법‘이라고 이름붙여 법률을 만든 노무현 대통령과 이상수 노동부장관, 금배지 국회의원들일까!

 

외주화, 아웃소싱 영어로 멋드리지게 경영의 선진기법으로 표현되는 그 고상한 말속에 진실은 있다. 2년이 지나면, 정규직화 해야된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과의 임금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비정규법이지만 이 고상한 외주화, 아웃소싱 한마디면 모든게 해결된다.

 

하나님의 말씀중에 노동조합이란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대화를 거부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누구말이 진실인가!

 

 

 78만원 받던 임금이라도 좋으니 계속 일하게 해달라는 그녀들의 목소리와 90만원 하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기업이 존속할수 없을 정도의 위기에 빠진다는 기업가의 목소리중에서 어느것이 진실인가!

비정규보호법이라고 우겨대는 대통령의 말과 그 법 때문에 일자리에서 쫓겨나서 울부짖고 있는 이래든 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울음소리에서 어느것이 진실이란 말인가!

 

이제 이야기를 마치려한다. 그녀들의 울음소리대신에 예전의 밝고 고운 목소리를 다시듣고 싶다면...... 그러면 방법이 있다.   이번 추석 장볼 때 ....  바퀴달린 바구니대신 시장가방들고 재래시장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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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를 둘러싼 두가지 잣대

'절도'를 둘러싼 두가지 잣대

 

'유전무죄, 무전유죄'. 혹은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말처럼 '대한민국 법은 만명에게만 평등하다'는 이 말이 다시한번 현실에서 나래비로 등장했다. 수백원의 회사돈을 빼돌린 혐의의 정몽구 현대차그룹회장, 수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의 정대근 농협중앙회장, 조직폭력배를 동원하여 쇠파이프로 혹행하고 사람을 감금한 혐의의 김승연 한화그룹회장. 줄줄이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내 주변의 노동자들 입에선, 아니 보통의 시민들 입에선 '역시나' 하고 탄식과 욕설이 튀어나온다.

현대차 그룹 정몽구회장에 대한 '사회공헌 약속을 지키고 윤리경영을 주제로 일간지에 기고하고 강연하라'. 이 놀랍도록 창조적인 사회봉사명령에 대해서 사람들은 '신문모독'이라며 조롱했다.

 

어슴푸레 기억이 떠오르는데 아마도 한 칠, 팔년 되었나부다. 청주공단의 한 제과업체에서 있었던 어떤 여성노동자의 일이다. 사소한 불량이 난 제품인데 그게 그냥 소각처리되는게 너무나 아까워 보였단다. 그래서 시가로 하면 한 몇천원쯤 하는 이 불량과자 몇박스를 몰래 담장에 숨겨놓았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담장에 숨겨논 과자를 챙기는 순간 아뿔싸! 회사 관리자에 들켜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회사 제품에 대한 절도사유로 해고됐다. 그녀는 억울해 했지만, 회사제품이 크던 작던, 액수가 크건 작건간에 물건을 빼돌린건 사실이었다. 각종 판례도 회사제품에 대한 노동자의 절도에 대해선 무지무지하게 엄격해서 달리 방법도 없었다.

 

어슴푸르게 떠오르는 이 기억 때문에 정몽구회장에 대한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 더 비참해진다. 수백억원의 돈을 빼돌리고도 건재할수 있는 선택받은 국민과 몇천원짜리 물건을 빼돌려도 '앗'소리 한번 하지 못하는 버림받은 국민으로 나누어 적용되는 이땅의 위대한 사법정의!

 

선택받은 국민의 권리와 버림받은 국민의 권리조차도 그 자식세대에게 고스란히 세습되는 봉건시대 부럽지 않은 이땅의 사법정의!

 

아아! 그래도 우리에게 절망만 있으란 법은 아니다. 희망도 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말처럼 '만명에게만 평등한 법이 아니라 만인에게 평등한' 법에 대한 국민들의 갈망과 염원도 더 커져가고 있고, 사법부에 대한 비판과 감시의 칼날도 더 예리해지고 있다.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 같아도 지나보면 어느새 한발짝 나아가 있는 것이 역사고 그 역사를 이루는 힘은 민초들의 갈망과 희망이랬다. 그래서 여전히 희망의 주인공은 오늘도 땀흘려 일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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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악질적인!

너무나 악질적인!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구운 전어를 앞에 높고 소주한잔을  입안에 털어 넣더니 이내 눈시울을 붉히는 이 사내.

 

‘내일 사표 쓸 거에요’ 한마디 하고 다시 소주 한잔을 들이킨다.

 

주량이 소주한병이라는 이 사내 앞에 금새 소주병이 두병을 넘었다.

노동조합 시작한지 두달만에 기백만원을 쏟아 부었다는 그 사내. 그 사내가 속한 7명짜리 초 미니 노동조합은 그날 해산했다. 아니 해산 한 것이 아니라, 해산을 당했다.

 

어떤 요구조건도 관철하지 못하고, 거꾸로 회사에 선처를 호소하고, 그 선처를 바라기 위해 노동조합 탈퇴서를 써야 했고, 퇴직금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써야 했고 3년동안 받지 못한 연월차 수당도 포기한다는 각서를 써야 했다.

 

주량을 훨씬 넘게 소주를 마시고 꺼이 꺼이 목놓아 우는 이 젊은 사내에게 ‘왜 우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그 자식(사장)에게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진게 억울한 것이 아니요. 내 안에 남아있는 마지막 자존심이 무너진게 너무나 분통이 터져요’

 

그들은 왜 노동조합을 만들었을까! 그들은 3년동안 월급이 동결됐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8명의 노동자들이 회식을 하던차에 월급애기가 나왔다. 그래서 내일 출근하면 사장한테 월급애기를 꺼내기로 의견이 모아졌단다. 얼큰한 술자리 분위기에 고무돼 한 사람이 기왕이면 화물차를 세워 놓는게 낫지 않겠냐는 의견까지 접근됐다. 그러나 웬일! 다음날 출근해보니 거꾸로  '니네들 필요없으니 다 나가라'는 사장의 호통이 먼저 나왔다. 월급애기는 꺼내보지도 못했다. 누군가가 사장에게 고자질을 했던 것이다.

 

순박한 이 사내들은 그 일이 있고난 뒤 이틀째 되던 날,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다. 자신들이 당한 행위가 부당해고 아니냐고!

 

그렇게해서 노동조합을 만든 그들. 그들의 요구는 도급제인 월급형식을 ‘월급제’로 바꿔달라는 것.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것. 법적으로 지급하게되어 있는 연월차 수당을 지급해 달라는 것. 한마디로 법대로 해달라는 것이였다.

 

그러나, 사장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사장은  8명짜리 노동조합에 대처하기 위해 노무사를 영입했다. 노동조합의 집회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 회사 주변에 한달짜리 집회신고도 먼저 해버렸다.

 

그리고 사장은 노동자 한명을 절도 혐의로 고소했다. 회사의 물품을 몰래 빼돌려 팔아먹었다는 거다. 그리고 사장은 그 고소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노동조합을 해산할 것과 퇴직금과 연월차 수당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라는 요구를 내걸었다.

 

그들의 노동조합은 거기까지 였다.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아니 법적으로 보장된 기존의 권리까지 포기하면서 노동조합 문을 닫아야 했다.

 

그리고 그날, 그 사내와 나는 구운전어를 안주로 놓고 소주를 마셨다.

 

새충청일보시절에 성공한 CEO라고 지면 한면 통째로 사진까지 실려서 소개된 그 사장!

 

울다가 욕하다가 ‘세상 참 더럽다’고 한탄하느라 그 고소한 전어냄새를 맡을 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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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삭빠르게 산다는 거 !

약삭빠르게 산다는 거!

 

 

세상에는 약게 사는 사람이 가끔 있다. 아주 자그마한 것이라도 꼼꼼하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만 살펴보고, 그것만을 추구한다. 이익이 되는 쪽으로만 가다보니, 일관성도 없고 말바꾸기도 부지기수다. 이렇게 사는 것이 궁극적으로 더 많은 실속을 챙기는지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런데, 어른분들 말씀 들어보면 어느정도 통하지 않았나 싶다. 나도 몇번 어른들에게 ‘너도, 약게 살아라. 니건 챙기면서 다른 사람도 챙겨야지.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냐’ 하고 핀잔을 들은적이 있는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약게 산 사람들이 거꾸로 당했을 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아마도, 속으로  고소하다 싶어서 그런지 더 빠르게 입을 타고 전해지는가 싶다.

 

노동운동내에도 이런 사람들도 분명 있게 마련이고, 그중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사례가 하나 있다.

 

바로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신화적 존재였고, 민주노총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권용묵씨의 경우다.

 

그가 어느날 갑자기, DJ의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다.  그러나 그는 공천을 받지 못했다. 절치부심하던 그는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대세론의 중심이었던 이인제후보진영에 가담했다. 사람들은 그의 정체성에 비춰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대세론은 꺽이고 노무현 후보의 돌풍이 시작됐다. 경선은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갑자기 정몽준 지지를 선언하고 그의 선거캠프로 합류했다. 이건 너무나 의외였다.

 

 현대그룹 노동운동의 신화와 그 탄압의 중심에 선 회장님의 아들... 언제나 대립의 끝점에서 서로 마주보았던 두사람. 그러나 결과는 싱거웠다. 사상 초유의 후보단일화 여론조사 경선에서 정몽준씨가 물을 먹으면서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그는 그와 동시에 떠났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화려한 변신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인생험로를 안주거리로 씹으면서 그의 퇴장을 지켜봤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2006년인가! 갑자기 ‘신노동연합’(뉴라이트노동연합)을 들고 나타나더니, 현대엔진 위원장 시절 자신을 해고시켰던 이명박씨의 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변신은 아직 결과가 나오진 않았으니 그의 약은 선택이 성공할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노동운동을 한지가 꼭 올해로 10년째다. 돌이켜보면 매번 그때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지금이 더 힘들다. 어느것 하나 만만한 것도 없고, 생활고도 여전하다. 나이는 먹는데 이룩해놓은것도 별로 없어 초조해진다. 지은 죄가 많아서인지 전과는 늘어나고, 여차하면 징역살이를 해야할 처지다.

 

약게 산다는 건 뭘까!

 

오늘, 뉴스에 현대자동차 노조 위원장이자 민주노동당의 힘으로 울산 북구청장을 역임했던 이상범씨가 갑자기 손학규씨 품으로 들어갔다. 약삭빠르게 산다는거 그거, 본인은 좋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 한숨만 늘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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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민들레! 그리고 충청타임즈

 

 

사무실 건물 앞 뜨락에 민들레가 벽 모서리와 보도블럭 사이 약간의 틈새를 파고들어 바짝 엎드린 모양새로 싹을 틔웠다. ‘거참 질기기도 하지!’하고 감탄사도 나오지만 좋은 땅 놔두고 꼭 거기다가 싹을 틔워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맞다. 민들레는 꼭 그랬다. 교도소 수감시절. 미결수들이 운동하는 30평정도 되는 운동장의 황토흙과 교도소 건물 벽 사이엔 민들레가 나래비로 있었다.

 

그때, 다른 미결수들이 열심히 뛰 다니고 있을 때 가끔 쭈구리고 앉아서 민들레를 쳐다보곤 했었다.

‘사람 발길 채이는 걸 피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담벼락 밑으로 피신왔나 보구나’ 위안도 전해주고, ‘바보같이 좋은 땅 놔두고 고작 피난온게 고작 교도소 담벼락 밑이냐!’ 하는 질책도 전해주고 그랬다.

 

땅바닥에 잎사귀 까지 붙어 있는 키작은 민들레. 오래간만에 이 민들레를 보면서 또 그생각을 했다.

 

대한민국 여성용접공 1호, 집회때마다 노동자들이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민주노총부산본부 지도위원 김진숙씨. 그 김진숙씨가 노동자에게 민들레를 배우라고 했다.

 

‘낮은 곳에 있는 자에게, 나의 눈높이로 올라 와라 하면 이것은 연대가 아닙니다. 낮은 곳으로 몸을 낮추는 것이 연대입니다. 낮아져야 평평해지고 평평해져야 넓어진다고’

 

민들레를 보기위해선 몸을 낮춰야 한다. 나의 몸을 낮추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눈높이를 같이 하는 것, 그것이 진실된 노동운동이라고 김진숙씨는 가르친다.

 

가장 낮지만 가장 멀리 씨앗을 날리는 민들레의 지혜를 배우라고 말이다.

 

나는 한가지 공포에 가까운 기억이 있다. 96년 신탄진의 어느 공장 앞. 노조탄압중단과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간지 40일 정도되는 그 노동자. 서있기도 힘든 그 노동자가 선전물을 들고 공장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가스총을 난사하며 가볍게 제압하는 그 회사의 경비원. 그리고 흐물거리지도 못하는 그 노동자를 담장 밖으로 던져 놓았던 그 장면.

 

그 노동자는 단식하기 일년전에 정체 모를 남자들에게 야산으로 끌려가 흠씬 두들겨 맞은 뒤 마지막 의식으로 닭 피를 온몸에 뿌리며 그들로부터 ‘노조를 포기해라’는 말을 들었다고도 했다.

지지난주, 그 회사의 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싶다는 연락이 전해졌다. 그 회사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 공포같은 기억이 떠오르고... 나는, 차라리 그만두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민들레의 희망을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다시 가지는 희망.  키작은 민들레에게 눈높이를 맞추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간다는 것.
새충청일보가 충청타임즈로 제호를 변경했다. 민들레에게 희망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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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사장님! ‘문턱없는 밥집’에서 점심한끼 드셔보세요!

하이닉스 사장님! ‘문턱없는 밥집’에서 점심한끼 드셔보세요!

이게 얼마만인가! 달빛이외엔 의지할것이 아무것도 없는 밤길을 걷는 다는 것. 어두움으로 생긴 막연한 공포는 머리속을 말끔히 비워준다. 바람이 내몸을 감싸주니 몸도 가벼워졌다. 휴가기간동안 단 하루, 저 멀리 변산 공동체 마을로 내려가 보낸 하루가 그 어떤때의 휴가보다도 깊은 휴식이었다.

공동체 마을을 갈때마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글귀가 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가질수 없듯이 밥은 나누는 것입니다.’
이 글귀를 볼때마다, 내가 처한 가난조차 부끄러워 지지만 그 부끄럼보다도 더 강렬한 것은 ‘나눔의 미학’에서 나오는 감동이다.
이 글귀 하나만으로 공동체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러워 진다.

이 분들이 서울에 밥집을 냈다한다. 이름은 ‘문턱없는 밥집’. 이 ‘문턱없는 밥집’의 점심값은 단돈 천원이다. 그런데 재료값은 오천원 정도가 들어간댄다. 왜냐면 재료가 비료하나 농약하나 들어가지 않은, 오로지 농부의 땀방울만 들어간 유기농산물이기 때문이다.

밥집을 낸 취지는 ‘가난한 사람들도 몸에 좋은 유기농산물로 잘 짜여진 밥 한그릇을 나누자’는 것이다. 공동체 마을에 쓰여진 그 글귀를 실천하는 거다. 세달전에 윤구병 선생님이 이 밥집을 여시겠다고 했는데, 청주에 와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벌써 수백개의 블로그에 '문턱없는 밥집'이 담겨져있다.

사무실에 한숨이 늘어간다. 우리 사무실 사람들의 한숨소리가 아니라, 하이닉스와 매그나칩의 옛 하청 조합원들의 한숨소리다.
이들을 한숨짓게 하는 것은 나눔이라곤 눈꼽만치도 모르는 거대기업의 탐욕이다. 이 거대기업은 우리 하청노동자들에게 투쟁을 포기하는 대가로 일자리를 나누기로 약속했던 적이 있다. 복직은 아니지만 회사안의 각종소모품과 자판기 사업을 운영하게 하는 일자리를 통해서 밥을 나누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약속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았다한다.

그래서, 한숨을 흘린다.

하이닉스는 정말로 큰 기업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큰다한들 하늘을 혼자 가질수는 없다. 공동체 마을 사람들은 가난하다. 입는 옷도 누더기고 가구당 월 소득도 몇십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공동체 마을 사람들은 하늘을 품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한다. 그 연장선에서 착한 소비자 운동같은 것도 생겨났다. 세상은 나누고자 하는 열망이 점점 커져간다. 빈 곳간의 쌀 한톨조차 나누려는 사람들도 있고, 곡식 가득한 곳간의 자물쇠가 늘어가는 기업도 있다. 작은 사람들은 하늘을 품으려 하고, 큰 사람들은 하늘을 혼자 가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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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사장님! ‘문턱없는 밥집’에서 점심한끼 드셔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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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마만인가! 달빛이외엔 의지할것이 아무것도 없는 밤길을 걷는 다는 것. 어두움으로 생긴 막연한 공포는 머리속을 말끔히 비워준다. 바람이 내몸을 감싸주니 몸도 가벼워졌다. 휴가기간동안 단 하루, 저 멀리 변산 공동체 마을로 내려가 보낸 하루가 그 어떤때의 휴가보다도 깊은 휴식이었다.

공동체 마을을 갈때마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글귀가 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가질수 없듯이 밥은 나누는 것입니다.’
이 글귀를 볼때마다, 내가 처한 가난조차 부끄러워 지지만 그 부끄럼보다도 더 강렬한 것은 ‘나눔의 미학’에서 나오는 감동이다.
이 글귀 하나만으로 공동체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러워 진다.

이 분들이 서울에 밥집을 냈다한다. 이름은 ‘문턱없는 밥집’. 이 ‘문턱없는 밥집’의 점심값은 단돈 천원이다. 그런데 재료값은 오천원 정도가 들어간댄다. 왜냐면 재료가 비료하나 농약하나 들어가지 않은, 오로지 농부의 땀방울만 들어간 유기농산물이기 때문이다.

밥집을 낸 취지는 ‘가난한 사람들도 몸에 좋은 유기농산물로 잘 짜여진 밥 한그릇을 나누자’는 것이다. 공동체 마을에 쓰여진 그 글귀를 실천하는 거다. 세달전에 윤구병 선생님이 이 밥집을 여시겠다고 했는데, 청주에 와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벌써 수백개의 블로그에 '문턱없는 밥집'이 담겨져있다.

사무실에 한숨이 늘어간다. 우리 사무실 사람들의 한숨소리가 아니라, 하이닉스와 매그나칩의 옛 하청 조합원들의 한숨소리다.
이들을 한숨짓게 하는 것은 나눔이라곤 눈꼽만치도 모르는 거대기업의 탐욕이다. 이 거대기업은 우리 하청노동자들에게 투쟁을 포기하는 대가로 일자리를 나누기로 약속했던 적이 있다. 복직은 아니지만 회사안의 각종소모품과 자판기 사업을 운영하게 하는 일자리를 통해서 밥을 나누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약속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았다한다.

그래서, 한숨을 흘린다.

하이닉스는 정말로 큰 기업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큰다한들 하늘을 혼자 가질수는 없다. 공동체 마을 사람들은 가난하다. 입는 옷도 누더기고 가구당 월 소득도 몇십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공동체 마을 사람들은 하늘을 품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한다. 그 연장선에서 착한 소비자 운동같은 것도 생겨났다. 세상은 나누고자 하는 열망이 점점 커져간다. 빈 곳간의 쌀 한톨조차 나누려는 사람들도 있고, 곡식 가득한 곳간의 자물쇠가 늘어가는 기업도 있다. 작은 사람들은 하늘을 품으려 하고, 큰 사람들은 하늘을 혼자 가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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