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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12/25
    누구에게 돌을 던지랴!(1)
    없는데요
  2. 2007/12/18
    절망하지 말자!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없는데요
  3. 2007/12/11
    이명박, 이용득씨 통해 ‘어용 득’(御用 得) 했다.
    없는데요
  4. 2007/12/04
    멍청하지 않다면, 스스로 입증해!
    없는데요
  5. 2007/11/27
    신부님! 신부님!
    없는데요
  6. 2007/11/20
    삼성부패를 말하기 전에, ‘김성환’을 말하자!
    없는데요
  7. 2007/11/13
    ‘타임머신’은 가능하다!
    없는데요
  8. 2007/11/06
    멍청아! 문제는 가난한자의 민주주의야!
    없는데요
  9. 2007/10/30
    겉다르고 속다른 ‘기업의 사회적 책임’(1)
    없는데요
  10. 2007/10/29
    청송에 다녀와서
    없는데요

누구에게 돌을 던지랴!

따르릉! 따르릉! '

 

네, 민주노총입니다'하고 다소 힘빠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데, 전화건 아저씨가 다시한번 힘을 빼게한다. 전화건 아저씨 ‘소득공제영수증 때문에 전화했는데요. 홈페이지 소득공제가 안보이네요’하고 묻는다. ‘저, 선생님 우리 민주노총은 소득공제와 관련이 없는데요. 혹시 민주노동당에 전화할려고 하신게 아닌가요. 혹시 민주노동당에 세액공제 기부를 하셨나요’하고 조심스레 답하는 나.

 

내 추측따라 ‘어. 민주노동당하고 민주노총 같은거 아니였어요’하고 말하는 그 아저씨.

 

대선결과는 참담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득표한 3%. 세 번째 출마한 권영길 후보의 기호가 3번이라 3%밖에 받지 못했나! 차라리 무소속 이회창후보의 기호인 12번을 얻었더라면! 별별 가설이 다나오는 내가 참 한심하다.

 

지난주 택시에서의 일이다. 이명박 당선자의 대운하추진 관련 뉴스가 라디오 뉴스에서 연방 나오는데, 기사아저씨가 한소리 하신다. '저거! 꼭 해야될까요. 선거도 끝났는데 그만 하지. 저거해서 먼 돈이 될것이며, 뭔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어. 태안 앞바다를 봐! 에휴...'

 

맞장구를 치며, 당선자에 대한 호박씨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기사아저씨에게 슬그머니 말을 던졌다. '근대요. 걱정이에요. 민주노동당이 못한것도 맞지만 너무나 표가 안나왔어요. 살아남을 정도는 줘야지. 3%는 죽으라는 거 아닌가요. 이제, 삼성에 대한 견제 같은 것은 누가 하나요. 그래도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없으면 안되는게 많은데...‘

 

그 살갑던 택시 기사 아저씨가 딱 잘라 말한다. ‘거! 누가 (민주노동당에게) 표 주겠어. 다 알어. 봐바. 우리같은 택시기사가 얼마나 불쌍혀. 비정규직들 얼마나 불쌍한겨. 저 사람들 우리한테 (도움)안되는 겨. 있는 노동자들만 지들끼리 등따실라고 그런겨’라고 뚝 잘라서 말씀하는 택시 아저씨!

 

나는 ‘아저씨, 그건 아니에요. 그리고 민주노총 꼭 정규직 대기업노동자들만 위하는 데 아니거든요. 그래도 민주노총 만큼 비정규노동자들 위해서 싸우는데가 어디 있겠어요’라고 항변하고 싶은 맘도 있었지만, 결코 그 말을 하지 못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구분조차 하지 않는 대다수가 국민인 현실. 노동시장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 나락으로 빠져버리고, 20대를 일컫어 ‘88만원세대’라고 부르는 현실. 조직된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민주노총이 이들을 대표해 제대로 투쟁하지 못하는 현실. 극히 일부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이 알량한 월급봉투 때문에 비정규노동자들에 대해서 구사대로 등장하는 현실.

 

결국 이런 것들에 대해서 국민들이 심판한 거다. 우리에 대한 비판이 설령 ‘조,중,동’식의 언어와 표현을 빌려왔다 하더라도 어쨌든 비판의 빌미는 우리한테 있는 것 아닌가!

 

국민들의 평가는 냉정한 거다. 노동운동이 비정규노동자들의 마음을 얻을수 있도록 다시 태어나라는 거다. 누가 누구에게 감히 돌을 던지랴! 그가 ‘사이비진보’든 아니든 간에 노무현은 노무현이다. 쏟아지는 돌무더기 속에서 우리를 돌아볼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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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지 말자!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절망하지 말자!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내가 물었다. 비정규 노동자를 포함한 그대여!  오늘 절망하는가!

그럴지도 모르지.  괜한 기대를 품었다가 매번 허탈과 절망의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현실속에선 ‘희망’이란 단어는 오히려 상처고 아픔이잖아. 차라리 절망이 나은 게야.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자넨 희망을 품고 있는가!

 

천오백만 노동자들의 임금총액보다도 땅값 상승에 의한 땅바기 불로소득이 더 크다네. ‘88만원 세대’의 아우성은 들어봤는 가! 그 88만원 세대중 어떤 청년이 비정규직 늘리겠다는 유력대선후보 유세에 나와서 ‘제발 살려주이소’ 하는 그 우스꽝스런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삼성의 떡값앞에 온통 떡판 위에서 춤추는 경제관료와 검찰을 보지 않았나! 비정규노동들의 파업 때문에 잔업 못해서 월급 줄었다고 비정규노동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거대 자동차회사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보지 않았는가! 윤똑똑이와 부라퀴는 넘쳐나는데, 패배로 지친 동료의 손을 잡아주는 공동체의 연대가 존재하는가!

 

 DJ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진 신자유주의 공고한 벽 앞에서,  더 강력한 신자유주의자인 이명박과 또 다른 신자유주의자인 정동영. 탈출구가 있는가! 죽어라 열심히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50%와 가만 있어도 땀 한방울 흘리지 않아도 더 부자가되는 10% 앞에서 넌 희망을 품고 있는가!

 

지난주, 고 정진동 목사님이 계신 곳에서 삼성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와 함께 하고 있는 신부님을 만났다. ‘신부님! 두렵지 않으세요’하고 다른 분이 물었다.

 

‘처음엔 너무 두려웠어. 삼성에 얽혀있는 그 실체적 사실을 접하는 순간 그 사실자체가 두려웠어. 그 다음엔 거기서 희생된 노동자들, 그물망처럼 탄탄하게 얽혀있는 감시망에 대해 두려웠어. 그리고, 마지막으론 우리 사회 전반에 형성된 삼성권력과 맞서 싸운다는 것이 두려웠어.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아주 편해’라고 말씀하시는 신부님!

 

다시 신부님이 말씀하신다. ‘1:8:1이란 규칙이 있대. 이게 뭐냐면 돈을 주면 받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있고 8명은 받는 다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 1은 왜 나에겐 돈을 주지 않냐고 와서 따지는 사람이 있대’. 

‘우리가 질수도 있어. 이번에 안될수도 있지만,  하지만 우리는 이 싸움에서 딱 한번 이기는 싸움을 하는 거야. 그럼 된거야’

 

다시 원래 애기로 돌아오자. 난 답한다.

 

‘지금보다 나은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해’라고.

 

모두가 절망하면 모르지만 한사람이라도 다른 세상을 상상하면 가능하다고 말이다. 그래서 상상해보자! 비정규직 없는 세상, 집걱정, 병원비 걱정, 교육비, 노후 걱정없는 공동체를 상상해보자! 그렇다면 미련을 갖지 말자. 간단하게 우리가 생각하는 또 다른 세상을 상상하며 나무 한그루를 심자! 투표장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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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이용득씨 통해 ‘어용 득’(御用 得) 했다.

이명박, 이용득씨 통해 ‘어용 득’(御用 得) 했다.

 

한국노총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것을 공식선언했다. 노동자를 위하는 것은 눈꼽만치도 없고, 오로지 ‘反노동’뿐인 사람을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단체에서 지지한댄다.  귀통바기를 한 대 후려 맞은 것처럼 어안이 벙벙하다.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정치적 권리를 확장하기 위해 애면글면 활동해온 수많은 선배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전태일 열사’의 사진을 배경으로 서있는 이용득과 이명박의 사진을 접할땐 내 가슴속까지 뭉개졌다.

 

어찌 되었건 이명박씨는,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을 통해서 ‘어용득’(御用 得) 하게됐다.

 

‘어용’(御用)이 무슨 뜻이던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권력자나 권력 기관에 영합하여 줏대 없이 행동하는 것을 낮잡아 이를 때 ‘어용’이라는 표현을 쓴다. 

 

 또 다르게 임금님이 쓰던 물건을 지칭할때도 쓰인다.

 

후자의 뜻으로 보자면, 임금님이 될 이명박씨가 쓸 물건은 ‘어용’인 것이고, 이용득씨는 그렇게 쓰여지기로 했으니 ‘어용’이 된 것이다. 그러니, 이명박씨가 이용득씨의 지지를 받게 된 것은 결국 ‘어용(御用) 득(得)’한거다.

 

이명박씨는 ‘어용득’했으니 참 좋겠다.

 

잠깐, ‘어용’의 가계도를 톺아보자. 이 어용의 가계도는 이승만 정권때 ‘대한독립촉성노동조합총연맹’(일명 대한노총, 초대의장 이승만)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이 대한노총뿐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조합에 대한 해산명령을 내리고 ‘중정’에서 훈련시킨 9명을 통해 ‘한국노총’ 재건을 지시한다. 한국노총은 박정희의 쿠데타를 지지했고, 1987년 전두환이가 4.13 호헌 조치를 했을 때 한국 노총은 기꺼이 지지 성명을 냈다. 역시 어용답다. 정말, ‘어용’스럽게 태어나서 ‘어용’답게 활동해왔다.

 

그래서, 뿌리가 중요하다. ‘어용’의 뿌리가 튼튼해야 ‘어용’의 본분에 충실할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 노동자들은 경험속에서 배운 것이 있다. 결코, ‘어용’은 노동자의 편이 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였다. 어용노총에 버림받고서 나중에 본인이 할수 있는 마지막 선택을 한 전태일 열사 이후에, 이땅의 노동자들은 ‘어용노조 박살내고, 민주노조 건설하자!’라고 외쳤고, 87년 노동자 대투쟁 때는 이 구호가 전국을 뒤흔들었다.

 

무릇, 우리 노동자가 심판해야될 것은 집권세력만이 아니다. 입으로는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하고 뒤에서는 비정규직만 양산한 그 거짓말 대통령 뿐만이 아니다. 비정규노동자를 벼랑으로 내몰 정치집단과 그 집단의 ‘어용’이 된자들에 대해서까지 심판해야 한다.

 

지금, 한평생 노동자를 위해 헌신해왔던 故 정진동 목사님의 따스함이 배어있는 빗줄기가 대지를 적신다. 그가 살아왔던 것처럼, 노동자의 권리는 ‘어용’들의 거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실천에서 나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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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하지 않다면, 스스로 입증해!

멍청하지 않다면, 스스로 입증하라!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회자한다. 이말은 ‘20대가 한 달에 88만 원밖에 못 받는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는다’는 뜻으로 우리사회의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통한다.

 

‘희망’이란 단어는 주머니에 넣어둔지는 오래전이고, 백대일의 경쟁속에서 살아남을 자신감도 없으면서 도서관에서 공무원 고시생이 되어버린 그들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건 나에겐 엄청난 곤욕이다.

 

그들을 보노라면 ‘안스럽다’거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고 ‘미련 곰퉁이’ 같아 보이고 그래서 꼭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충동이 막 치밀어 오른다.

 

뻔히 안되는 줄 알면서도, 고시생 이외엔 다른 선택을 안하는 그들! 세상이 왜이러냐고 한번 큰소리라도 칠법도 한데,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 보수적으로 변해 세상에 쓴소리 한번 안하는 그들!

 

꼭 한 대 쥐어박고 싶다.

 

부러웠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의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나 부러웠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2년전, 그들이 사회에 최초로 고용되었을 때 보장되던 사회안전망이 정부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을 때 두말않고 거리로 뛰쳐나왔었다. 대핵생뿐만이 아니라 고등학생까지, 학생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선생님까지, 그리고 그들의

 

할머니까지 ‘내 손자의 고용안정’을 위해서 기꺼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처음에는 이미 고용된 노동자들이 뜨뜨미지근한 자세로 방관했지만 나중에는 학생들의 전사회적 연대투쟁의 기세에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즉 학생들이 보수적으로 변해간 노동자들을 견인한 것이다.

 

2년전 그렇게 싸웠던 프랑스의 그 학생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대학과 일부 고등학교, 그리고 거리는 학생들에 의해 세워진 바리케이트로 봉쇄되었다고 한다. 학생들의 이번 투쟁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미국식 경쟁체제로 교육시스템을 바꾸는 것에 대한 투쟁이다.

 

우리의 거세된 ‘88만원 세대’여! 보라! 권리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런 과정속에서 지켜지는 것이다. ‘100대 1’의 경쟁구조는 비상식이자 비정상이다.

 

 단 백명중 한명만 공무원이 되는 이 비정상의 구조에 대해서 돌을 던지는 것이 맞지, 도서관에서 그 한사람이 되기위해 청춘을 허비하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 판단해야 된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손가락을 잘랐다’는 비난을 받았다는 한 고등학교 실습생의 산재사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사회가 젊은 세대들에게 얼마나 야만적인지를 확실히 알았었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지 2년이 지났지만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더 공공해지기만 할뿐이다.

‘88만원 세대’여! 사회를  원망하지 마라! 

 

스스로 궐기하지 않으면, 싸우지 않으면 바뀌는 것이 없다.

 

‘88만원 세대’여! 충고를 전한다.

 

 “너희가 도서관에서 잠든 사이, 사회와 기성세대, 기득권층은 너희들의 권리를 알음알음 갉아먹고 있다네. 좀 한번 알아주게!  이제 좀 화날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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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신부님!

신부님! 신부님!

 

 

'삼성 비자금'의 실체를 증언하고 있는 김용철 변호사. 그의 기자회견장에는 항상 신부님들이 계셨다. 그리고 낯익은 얼굴, 바로 김인국 신부님이시다. 굳이 김용철씨 뿐만 아니라 우리 노동자들에겐 신부님은 피난처, 안식처가 되어주시곤 했다.

 

고마우신 신부님!

 

그가 함께 하시는 일이기에, '삼성 비자금' 및 '부패커넥션', '삼성 장학생'은 단순히 어떤 사람의 주장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확신이 든다. 강직하고 정의로운 신부님의 모습을 기억하기에 말이다.

 

신부님의 언론인터뷰 내용을 접했다. 그 중에서 유난히 가슴끌리는 대목이 있다. 그 대목을 옮겨 쓴다.

 

 "대부분이 김용철 변호사들이 했던 이야기들로, 가슴이 아픈 건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다. 이 대명천지에 무노조 비노조 경영이라는게 말이 되는가! 그걸 무마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동자들을 탄압했을까, 또 이런 불법 편법을 무마시키기 위해 국가기관을 얼마나 오염시켰을까 를 상상해야 된다".(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 입니다>인터뷰 중에서 옮겨옴)

 

신부님 말마따나 삼성의 노동자들은 정말로 많이 아팠다. 책꽂이 꽂혀 있는 "무노조 삼성, 왕국은 없다"라는 삼성의 노조탄압 사례를 모은 174쪽 백서로도 표현 안되는 큰 아픔이 있다. 이 아픔은 '납치, 감금, 미행, 테러, 회유, 매수' 이 모든 것들이 여지없이 동원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은 상처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 영혼을 파괴한다. 10여년전, '대한민국 최고'를 자랑하는 한국타이어의 노조탄압을 옆에서 보았던 나는 '분노'가 아니라 '공포'를 느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공포는 내 가슴을 파고들어가 한국타이어 혹은 그 계열사에서 노조를 만든다 하면 내 피부는 닭살처럼 소름이 돋는다.

 

 

청원군에 있는 작은 회사, 일하는 사람이 50명 정도되는 그 회사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그게 한달전인데, 그 노동조합의 위원장이 풀이 잔뜩 죽어서 나타났다.

 

 "회사에 갑자기 깍두기가 나타났어요. 문신도 장난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 다음날 사장이 직원 전체를 모아놓고 새로 채용한 직원이라고 소개를 했어요. 근데 이 놈아가 장난이 아니에요. 지 어므이 아부지뻘 되는 우리들한테 등뒤에서 온갖 욕설을 해요. 갑자기 점심도 그 놈아 한테서 식권을 받아야만 먹을수 있어요. 그리고는 이제, 조합원이 10명밖에 안 남았어요" 

 

김인국 신부님은 어떤 기자에게 떡값 받은 검사들을 '1만2천원에 영혼은 판 사람들'이라는 비유를 한 적이 있다. 

 

 신부님에게 갑자기 하소연 하고 싶어진다. 아니 고자질이다.

 

'신부님! 신부님! 그 사람들만 영혼을 팔았겠어요. 힘센 젊은이들이 일당 10만원 20만원에 눈이 멀어 아무생각 없이 어머니, 아버지뻘 되는 사람들을 위협하고 협박하는 이 난잡한 현실은요. 그리고 그런 현실에 대해서 청맹과니처럼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는 우리 사회는요. 실제는 우리 사회가 집단적으로 영혼을 판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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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부패를 말하기 전에, ‘김성환’을 말하자!

삼성부패를 말하기 전에, ‘김성환’을 말하자!

 

‘삼성’이 떳다. 아주 확실하게 뜨고 있다. 그런데 사실, 뜨는게 아니다. 찬란한 하강을 위해 더 높이 뛰고 있을 뿐이다.  현상황은 ‘대한민국 최고’에서 ‘대한민국최고 부패’가 될지도 모르는 극적반전의 비등점이다.

 

그들은 항상 우리같은 일반인들의 상상력이 얼마나 빈곤한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아픈 사람이 이용하는 휠체어를 ‘법원 출두용’ 회장님의 마차로 사용하는 기발함이나 ‘사과박스에 사과는 결코 없다’는 새로움을 보여준다.

 

겨우 몇십억원의 종자돈으로 1년사이에 수조원의 기업의 지배권을 세금한푼 안내고 세습시키는 대목은 ‘상상력’으로 해결할 범위조차도 뛰어넘었다. 이런건 ‘기적’이라 불러주어야 한다.

사실 삼성의 부패를 애기하기 전에 우리사회가 알아야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할 사람이 하나 있다.

 

김성환! 그는 현재 삼성의 부당해고, 노조탄압에 맞서다 ‘삼성그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3년5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영등포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그리고 그는 엊그제 19일부터 ‘삼성 무노조 경영’ 등을 규탄하며 9번째 옥중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그를 소개하는 책의 표지는이렇게 씌여 있다. “골리앗 삼성 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 삼성 재벌이 구속시킨 노동자 김성환, 그를 국제엠네스티에서는 죄가 없다며 국제 양심수로 선정했다”

 

알아야 한다. 부패로 커왔건 과장된 신화였던 간에, 그것은 김성환과 같은 삼성노동자들의 희생과 피눈물의 결과로서 ‘대한민국 최고! 초일류 삼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상징이 바로 김성환이다. ‘58년생, 3년 5개월의 실형, 9번의 옥중단식, 엠네스티가 선정한 국제 양심수’등 그에게 따라 다니는 수많은 수식어보다 또 다른 김성환인 삼성 노동자들의 삶을 봐야 한다.

한 두해쯤 되었을 터인데 아는 지인이 삼성그룹 계열사의 명함을 가지고 나를 찾와왔다.

그가 말했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잖아요. 이제 개인과 가족을 위해서 살때가 되지 않았나요. ”
도대체 뭔 애기인가 했다. 이해도 안가는 말이라 짧게 답했다. “저, 지금 그럴때도 아니고요. 여기서 일하는게 행복해요”.

 

그는 짧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떳다. “그럼, 다음에 보지요. 그리고 언제까지 그렇게 사는 것도 가족들한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그가 간뒤에 사무실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노라고 애기했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지나갔다.

지금와서도 그때 일은 잘 모를 일이다. 왜 갑자기 그런 애기가 오고 갔는지, 단순히 보험영업 같이 하자는 애기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는 알수는 없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다.

 

‘무노조 삼성’에 가려진 노동자들의 현실, 삼성에 맞선 것 그 자체로 3년 5개월간 옥살이를 사는 김성환과 같은 노동자들에 대해서 이제는 알아야 한다.

삼성에서 사표를 냈더니, 만류하는 그의 부인을 보고서 “당신, 나의 생명보다 수천만원의 연봉을 탐하는 거야!‘라고 고강도 노동의 피곤한 현실을 토로했던  어느 중년 삼성맨의 고통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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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은 가능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91년 11월  어느날, 나를 비롯한 일군의 무리들은 잔뜩 긴장한채로 이리저리 서울 낯선 거리를 걷고 있었다. 사방은 전경들로 가득차 있었다.  빨간 손수건을 손목에 두른 사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침묵과 함께 걷고 또 걸었다. 남의 집 옥상에서 빗물에 ‘찌지직’ 거리는 전기줄 사이를 뛰어넘기도 했다. 그리고 한시간 정도의 침묵의 행군 끝에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의 우렁찬 함성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것이 내가 난생 처음으로 접해본  16년전의 '전국노동자대회'였다. 비록 군사독재정권 말기였고 '물태우'정권이라 해도 그래도 ‘군사독재정권’인 법! 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불법이고 금기였던 때, 노동자들은 그렇게 한자리에 모였다.

 

 

91년 그해는 유난했다. 내 동갑내기인 강경대가 경찰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4월 29일 '노태우는 물러가라'는 육성을 남긴 전남대생 박승희씨 분신, 집회에서 질식사했던 김귀정. 군사독재정권에 항의했던 많은 사람들의 분신이 이어졌던 91년 5월은 정말로 유난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의 죽음조차도 밀가루와 계란으로 범벅이 된 정원식(당시 교육부장관이었던가!)의 등장앞에서 패륜과 '죽음'의 더러운 굿판으로 몰린것까지도 유난했다.

 

이 모든 것들이 거름이 되고 햇살이 되어, 우리의 민주주의는 커졌다.

 

그렇게 확장되고 커져가는 민주주의와 함께 16년이 흘렀다. 그런데 내 앞에 ‘민주주의’는 존재하는가!

 

시계는 거꾸로 흘러갔는지, 우리 노동자와 농민에게 ‘서울’을 향한 여정은 여전히 멀고, 험난한 곳이었다. 여전히 경찰의 눈을 피해야 했고, 그래서 뻥 뚫린 4차선, 6차선 고속도로를 뒤로하고, 국도만 따라서 3시간 넘게 돌아서 가야했다. 농민들은 동네에서 막히고, ‘씨×놈들! 권총가져와! 다 쏴 죽여버려!’라는 경찰의 외마디 고함을 들어야 했다.

 

91년도 유난했지만, 올해도 유난하다. '한미FTA반대‘를 외치며 분신한 허세욱씨, 가난한 노점상들 대한 강제철거에 항의하며 분신한 이근재씨, 전기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과 나쁜 사업주의 노동조합 탄압에 항의하며 분신한 정해진씨.

 

노동자나 농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죄가 되고 불온시 되는 것도, 나랏님을 향해서 자신들의 몸뚱아리를 태우는 민초들의 아우성도 어찌 군사독재정권의 그때와 왜이리도 유사한가!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는 안돼도, 회장님의 아들은 회장님으로 승계되고 가난한자의 아들은 가난한자의 아들로 확실히 승계된다. 군사독재정권은 물러나고, 그 군사독재정권에 맞섯던 사람이 정권을 잡아도 하는 짓거리는 똑같이 승계되는 사회.

 

어릴적에 ‘타임머신’의 실제를 두고서 이러쿵, 저러쿵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명토박을수 있겠다.

 

“ ‘타임머신’은 가능하다! 왜냐고! 한번 봐바! 우리가 지금 노태우정권 밑에서 살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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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아! 문제는 가난한자의 민주주의야!

멍청아! 문제는 가난한자의 민주주의야!
 
우리 사무실 홈페이지 상담실에 올라온 글은 잠깐 인용한다.

 

“ 내가 다니는 회사는 아줌마 12명 정도의 작은회사다. 관리자라는 남자 직원도 3명 있다. 사장은 여자. 이곳에선 점심시간에 10분씩 일찍일을 시작하라한다. 아침에도 10분 일찍 일을시작한다. 종종 반품되는 물량이있으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남아서 처리하고 가란다. 잔업수당은 없다. 어떤날은 아침에 30분 일찍 출근하라고 한다. 이 또한 잔업이 아니다. 물론 이 모든게 아줌마들의 뜻은 아니다. 그 관리자중 두명은 사장의 오빠와 남동생이다. 그중 남동생은 아줌마들에게 대놓고 욕도 한다. ‘씨발 뭐하는거야!’,  아니면 ‘이 × 같은... 니들이 일을 그렇게 잘해!’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튀어나온다.”

 

 

뭐 이런 단편적인 사례를 가지고 노동자들 전체가 이런식의 처우를 받는것처럼 호들갑을 떠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과연 그럴까!

 

수년전 인근 지역에서 직장 관리자앞에 부동자세로 일렬로 세워진채 정갱이를 작업화에 까이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했고 일주일에 두 번쯤은 이런 상담전화를 받는게 현실이다. 기업이라 하기에도 뭐라 한 10인 안팎의 영세사업장, 전근대적인 노무관리가 횡행하는 이런 사업장에서 종사하는 노동자가 팔백만명에 육박한다.  

 

지난 6월달에, 청주권역 주요대학과 기관의 청소용역노동자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을 때, 결과는 ‘역시나!’였다.

 

7개 사업장중 두군데가 최저임금 위반, 다섯곳의 임금은 통틀어 법정 최저임금인 72만 7천삼백이십원, 인심써서 72만 7천 4백원이였다. 이들에게 임금인상은 둘째 치고, 일년마다 반복되는 재계약에서 짤리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청주에만 100여개 이상의 청소용역업체가 존재하는데 이렇게 사는 청소용역노동자만 청주에서만 2천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이렇게 최저임금에 맞추어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참여정부 1년차에 80만명에서 내년이면 210만명이 넘을 것으로 본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떤가! 천사백만 노동자들의 월급봉투 총합을 땅투기 불로소득이 아주 간단히 역전했다. 금융소득은 나날이 늘어가고 8천만원으로 1천억의 소득을 올렸다는 주식대박신화가 나오기도 한다. 연소득 10억이상 번다는 고소득자 수가 나날이 증가한다는 통계도 나온다.

 

그런데 왜, 우리사회의 빈곤율은 심화되고 양극화는 심화되는가! 그래서 해법이 ‘경제’ 란다. 그래서 이번 대선의 화두는 단연코 ‘경제’다. 부패도 도덕성도 차후문제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제가 이럴 정도로 어려울까! 이에 대해선 노무현 대통령은 이유있게 항변한다. ‘주식시장을 보라! 성장률의 구체적 수치를 보고 애기하라’고 말이다.

 

난 노무현 대통령을 절망적으로 싫어하지만, 이 말만큼은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애기한다. ‘멍청아! 문제는 경제(살리기)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민주주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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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다르고 속다른 ‘기업의 사회적 책임’

겉다르고 속다른  ‘기업의 사회적 책임’

 

‘ 아휴! 어르신 노동조합을 꼭 해야만 하나요’.  ‘네!’.

 

‘어르신은 정년도 훨씬 지나서, 괜시리 노동조합 만들었다고 해서 회사가 나쁜맘 먹고 나가라고 하면 뾰족한 대책도 없어요. 불이익이 훨씬 더 클수도 있어요. 그래도 꼭 노동조합을 만드실건가요’. ‘네!’

 

사무실을 찾아온 환갑을 훌쩍 넘긴 아저씨와 나눈 대화다. 이런 경우에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노동조합을 만들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도대체 종잡을수가 없다. 일하는 사람이라곤 50대의 여성노동자 4명, 그리고 환갑을 훌쩍 넘긴 이 아저씨가 전부다.

 

이 기업의 소유자는 대단한 사람이다.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특히 참여정부에서 아주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유력 정치인이고 일주일에 한번쯤은 9시 뉴스를 통해 접할수 있는 사람이다.

 

이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어하는 이유는 참 씁슬하다. 30대 초반의 젊은 관리자(과장)가 시도 때도 없이 ‘×팔’ 등 막 욕을 해댄다는 것이다. 그 뿐이랴, 수십킬로그램되는 중량물을 아주머니 여성노동자들에게 운반하게 하고, 힘에 부쳐 쩔쩔매는 아주머니들을 옆에서 조롱한댄다. 아들뻘 되는 그 관리자에게 그러지 말아달라고 해 보았지만 그게 싫으면 나가버리라는 식이랜다.

 

중소기업인상, 통상부장관부상, 철탑산업훈장, 코스닥 상장등 외양은 화려한 이 회사에서 벌어지는 이런 웃지못할 일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기업의 소유자인 유력정치인은 가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번 주말엔 하이닉스와 매그나칩 하청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모여서 만든 음료자판기 유통업체인 ‘밝은 세상’이 문을 연다.

 

‘밝은 세상’의 모태는 하청노동자들의 복직을 거부하며 ‘사회적, 도의적 책무’를 들고나온 (주)하이닉스와 충청북도다. 사회적, 도의적 책무로 얼버무려진 그때 당시의 합의에 하청비정규노동자들은 그래도 한 20명 정도는 생계를 해결할거라고 기대했다. 이 20여명의 노동자들은 하이닉스로부터 받은 그 알토란 같은 위로금을 모아서 설립자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낼 모레에 문을 연다.

 

 

그러나, 첫 출발을 하는 이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하이닉스와 충청북도의 그 ‘사회적, 도의적 책무’가 철저히 외면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현재 상태는 4명 정도의 생계를 유지하기도 벅찬 상황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무는 광고카피나 선전용 문구로만 있는게 아니다. 그리고 무슨 거창한게 아니다. 가장 일차적으로 그 안에 고용되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그리고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내년 총선이면 다시 국민께 표를 달라고 할 그 유력정치인도 지금도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을 이야기하고 있는 하이닉스에게 간절히 바란다. 거창하게 포장된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말하기 이전에 작은 것부터 해결해 주시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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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에 다녀와서

주왕산의 계곡은
낮게 낮게, 구비 구비 돌아쳐
작은 물 하나 허투루이 흘리는 법이 없다.

 

그렇게 모은 물, 내어 놓는데
뽐나지 않고 너무나 소박한데
그 소리, 사방을 휘어 감는다.

 

작은 물소리 하나 새어 가지 않고
두세배 울림으로 만들어 가는 그곳에서
말하지 못하고, 화내지 못한 모든 응어리를
가장 큰 울림으로 쏟아낸다.

 

작은 소리조차도 가장 큰 울림으로
만들어 내는
주왕산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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