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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3/11
    ‘강부자’ 내각의 엽기. 어째, 여기가 아닌가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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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3/04
    노동자가 ‘치안’의 대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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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8/02/26
    ‘호죽노동인권법률센터’ 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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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8/02/19
    불나비의 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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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8/02/04
    '자기무덤'판 민주노동당(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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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8/01/29
    무노조 삼성의 ‘단결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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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01/22
    영화 ‘식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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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8/01/15
    들어나봤나! 기업살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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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8/01/08
    '이판사판 공사판' 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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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8/01/01
    우리는 혹, '진보' 안의 '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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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자’ 내각의 엽기. 어째, 여기가 아닌가 벼!

‘강부자’ 내각의 엽기.  어째, 여기가 아닌가 벼!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녀석의 좌충우돌이 엽기에 가깝다.

 

아파트 쪽마루에 있는 화분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알아차릴 즈음. 이 냄새의 근원지가 어딘지 드디어 꼬투리를 찾았다.

 

다름아니라 화분에다 오줌을 갈겨대고 있는 그녀석. 도대체 ‘이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냐’고 벌겋게 상기된 엄마의 추궁에 ‘보면 몰라요. 잘 크라고 거름을 주는 거잖아’라고 태연하게 답하는 그녀석. 태도로 보아 아마도 꽤 오래전부터 그 짓을 했나보다. 무슨 아파트 쪽마루 화분이 무슨 유기농하는 변산공동체나 된다고!

 

 

입학한지 일주일 지나고서야 그 녀석의 짝꿍 이름을 물었다. ‘묻지마세요. 몰라요’라고 단칼에 잘라버리는 그녀석. ‘왜’냐는 물음에 ‘내가 먼저 말을 걸순 없잖아요’라고 답한다. 그래서 ‘너네 짝꿍끼리 아직까지 한마디도 안하니’라고 물었더니 ‘당연하죠’라는 그 엽기 짝꿍들.

 

오늘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었는데 이녀석 왈 ‘나, 갈께’하고 휙 돌아선다. 말버릇에 대해서 한마디 할 틈을 벼르고 있던 나는 이 녀석에게 ‘야! 좀, 이쁜말, 존댓말을 아빠한테 할순 없니’라고 추궁했다. 그러나 역시나! 잔뜩 귀찮다는 표정으로 ‘아빠, 나 잘 다녀올께’ 한마디 하고 쏜살같이 교실로 뛰어가는 그녀석.

 

이 어린 녀석의 엽기에 가까운 좌충우돌에 대해서 “아직 어리니까 상황과 경우에 대해 정확히 알수가 없으니, 이제 막 접하는 지식과 언어, 그리고 자존심이 돌출하는 과정인가 보다”하고 넘어간다.

 

 

아이녀석의 엽기 뿐만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 강금실 에쑤라인 내각’의 엽기도 지난주로 그치지 않고 이번주에도 쭈욱 계속됐다.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중의 하나인 사회양극화 문제의 원인이 ‘신앙심이 부족해서’라고 진단하는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취업도 하지 않은 자녀의 1억원 가량의 재산형성 과정을 묻자 ‘아내가 아파 아내대신 집안일을 자녀에게 시키고 그 대가로 준돈’이라고 태연하게 말씀하시는 우리의 자랑스런 또 다른 엽기장관 후보.

 

우리의 아이들이야 성장과정의 자연스런 과정이지만,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는 경지라는 이순(耳順)을 지난 분들의 엽기발화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오늘도, 토끼같은 자식들 보면서 어쩔수 없이 50% 수당붙는 야간근무를 기꺼이 나서는 노동자를 비롯한 국민들의 피로감은 이렇게 쌓여만 간다.

이명박 정부를 두고, 벌써 노동자와 국민들사이에 육감에 기반한 볼멘소리가 나온다. 승용차(참여정부)피하려다 ‘똥차’에 치이는거 아닌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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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치안’의 대상인가요!

노동자가 ‘치안’의 대상인가요!

 

 

노동자가 ‘자랑스럽다’ 3.2%. 노동자가 ‘불쌍하다’ 33.6%. 장차 노동자가 ‘되고 싶지 않다’ 40%.(2004년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설문조사 결과)

 

우리사회 고등학교 학생들은  ‘노동자’에 대해서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더 놀라운 것은 ‘장차 자신이 노동자가 될것’이라고 예상하는 학생은 학급당 1명에 불과하다.

 

학생들에게 물었다. ‘노동’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땀’. ‘힘듦’, ‘안전모’, ‘공사장’, ‘괴로운것’을 떠올렸다.

 ‘일’에 대해서 물었다. ‘자아 실현을 위한 길’ 이란다.

 

일과 노동이 같은 말인데도, ‘노동’은 부정적이고 ‘일’은 긍정적이다.

 

아이들의 사고를 탓할건 하나도 없다. 아이들의 사고는 기성세대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폭넓게 경험하고 그속에서 자기 자신의 가치체계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지난 가치’를 교육이란 이름으로 주입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노동에 대한 뿌리 깊은 사회적 편견의 결과과 아이들이란 거울에 이렇게 비친 것이다.

 

그런데, 이정도로도 모자란지 ‘헉’소리 날만한 일이 생겼다. ‘노동’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에다 ‘잠재적 범죄자, 사회안정 파괴세력’이란 이미지를 덧씌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마자 도지사, 갑자기 경찰청장등으로 구성된 ‘충북치안협의회’란다.  "국가 경쟁력과 지역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생활주변 각종 불법 무질서를 추방해 법과 원칙이 존중받는 사회를 구현하겠다"고 한다.

 

누구를 겨냥하는지 뻔하다.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어지럽히는 도둑놈 때려잡자는 얘기도 아니고, 조직폭력배 소탕하자는 애기도 아니다. 불법시위 추방하자는 얘기고, 노동자들의 시위가 은연중에 불법이라는 ‘뉘앙스’를 전제한 얘기다. 노동자들의 시위와 단체행동이 ‘경제’ 아니 ‘나라살림’ 좀먹는 행위라는 것을 전제한 얘기다.

 

천박하다 못해 아찔하다. 도대체 어찌할려고 그러는가! 노동자가 순한 양이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면 경제가 살아나는가! 지금도 노동자가 되겠다는 학생들이 한반에 한명뿐인데, 그마저도 없에야 속 시원하단 말인가!

 

노동자가 자랑스럽단 학생이 3.2%나 되어서 걱정된단 말인가!

 

네이버에 물어봤다. ‘치안’이라 하면 ‘국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보전함’고 답했다. 치안협의회를 만든 사람에게 묻는다.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과 요구가 국가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어지럽히는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의 제일 과제가 고작,  노동자들이 ‘찍’소리도 못하고 가만있으라는 경고를 날리는 것이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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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죽노동인권법률센터’ 문을 열다!

‘호죽노동인권법률센터’

 

언죽번죽, 노동운동을 제일 잘 아는 것처럼 했던 그 사람 ‘노무현’. 비정규직의 눈물 콧물 다 닦아줄 것처럼 기대했으나 오히려 가장 정반대의 ‘신자유주의’ 극약처방으로 노동자들의 피눈물 뽑던 그 사람 ‘노무현’. 그의 시대가 갔다. 저 멀리 남쪽으로 ‘튀어’갔다. 속 시원하다. 더 이상 뉴스에서 언죽번죽한 그의 언사를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대통령 ‘이명박’. 어차피 그의 가치관이야 다 알려진대로이니 새로이 불평할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국민들께서 뽑은 대통령 아닌가! 떠오르는 태양을 무슨 수로 끌어내릴수 있을 것이며, 다른 것 다 포기하고 ‘국민들 잘 살게 해달라고’ 그 하나만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신 것이 국민들의 뜻인데, 초장부터 ‘노동권’ 문제를 애기한들 누가 들어주기나 하랴!

 

 

나는 요즘 자주 웃는다. 재미있으니까 웃는다. ‘강금실’이란다. ‘강남지역의 금싸라기 땅을 실제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란다. ‘고소영’이란다. 다 아는 애기니까 굳이 풀어쓸 필요도 없겠다. '너무 땅을 사랑했단다'. 그래서 '1억불'내각이란다. '통일은 없다'의 저자가 통일부 장관이란다.

 

개그콘서트의 '달인'들보다도 더 달인다운 어록을 보는 재미, 거참 쏠쏠하다.

우리나라 정치와 대통령께서 이렇게 국민들을 즐겁게 해준 것이 얼마만인가! 전직 대통령께선 속시원하게 해주고, 현직 대통령께선 웃겨주시니 고마울 따름이다.

 

‘호죽노동인권법률센터’가 문을 열었다.

 

이 단체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별거 없다. 일하다가 월급 못받고 떼인 사람. 건설현장에서 산재사고 당했는데 ‘공상처리’ 한사람 혹은 치료조차 못받은 사람, 아르바이이트 하던 학생들이 시급 3천4백원도 못받은 학생. 이런 노동자들에게 무료로 법률적 해결방법을 알려주는 곳이다.

 

이일은 사실, 고 정진동 목사(청주도시산업선교회)께서 40년 전부터 해오던 일이다. ‘호죽’은 그의 호이다. 그가 떠났지만, 그가 하던 일은 이렇게 계속 된다.

 

신영복 선생께서 현판 글씨를 보내주셨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납니다’란 경구를 전해주셨다.

 

이 경구를 보는 순간, 어쩜 이렇게 ‘호죽노동인권법률센터’의 역할이 딱 맞아 떨어지랴 하고 감탄사가 나온다.

 

부자대통령, 부자 장관님들, 부자 내각, 친기업 시대에 소외된 노동자들의 권리가 대접받길 기대하랴!
이런 때일수록 이 단체가 더욱 더 빛을 발할 것은 분명하다.

 

오늘 삶이 고달퍼서 ‘개발독재 시대’의 아련한 추억이 남아 그때의 뗏목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 뗏목을 머리에 이고 가는 사람들. 그 뗏목이 우리 삶을 혹시나 구원해줄것이라고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이름정도는 알아두시라! ‘호죽노동인권법률센터’. 한번쯤 이 단체가 무겁게 머리를 짓누르는 뗏목의 무게를 덜어줄지도 모를 일이니.... 전화번호는 286-9596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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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나비의 꿈

불나비의 꿈

 


작년 여름, 청주대학교에서 청소일을 하시는 아주머니 노동자들이 힘겹게 ‘고용승계’를 외치며 싸울 때 일이다. 학교에서 보직을 맡고 있는 교수가 동원한 한무리의 학생들이 아주머니를 밀치고 떠밀고 하는 식으로 아주머니들의 집회를 방해했다.

 

그 상황에 기가 찬 아주머니들이 학생들에게 왜 그러냐고 따져물었다. 학생들은 ‘우린 몰라요. 교수님이 하란대로 할 뿐이에요. 그리고 노조 때문에 시끄러워서 우리들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잖아요’ 이런 식으로 짧게 애기하곤 그 행동을 계속했다.

 

노조에 대항하기 위해서 학생을 구사대로 동원한 학교측의 반교육적인 측면도 어처구니가 없고, 교수님이 시킨다고 어머니뻘 되는 아주머니에게 태연스럽게 그런 행동을 하는 그 학생들을 이해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상황이었다.

 

이해시켜려 했다. 그 중에 한 아이를 데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학생! 너희 1년치 등록금이 한 천만원쯤 하지. 여기있는 아주머니들이 1년 연봉이 얼만줄 알어. 너희들 1년치 등록금보다 작아. 이 아주머니들이 그 월급가지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그래. 어쩌면 너희 부모님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몰라. 그런데 이 아주머니들이 그 알량한 연봉 천만원짜리 일자리에서 쫓겨나게 생겼어. 너희가 어떻게 하는 게 올바른 걸까. 시끄럽다고 아주머니를 밀치고 하는게 올바른 걸까. 아니면 이 아주머니들에게 손길을 내미는게 올바른 걸까’

 

그 학생은 내게 눈길조차 돌려버리고 듣는둥 마는등 나를 외면했다. 작은 목소리로 내 뱉는 그 학생의 말

 

‘ 누가 그렇게 살래요’

 

대화를 포기했다.

 

'88만원 세대'라는 문구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게 어떤 현상과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수 있을만큼 유행어가 되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젊은 세대가 비정규직으로 취업했을 때 받는 평균임금이 88만원이라는 이말.

 

그 88만원 세대를 만들기 위해 우리시대의 어머니, 아버지는 이렇게 아둥바둥 사는 걸까!  그토록 어렵게 키위서 꿈에 그리던 대학에 보내놓고 난뒤에 그들의 자식이 노동자였던 어머니와 아버지에 보내는 시선이 멸시로 가득차 있다는 걸 그들은 알았을까!

 

30평 아파트 한채, 자식들 대학교육 까지 마치는 것이 노동자들의 마지막 목표이자 희망이다. 그 목표 하나로 주말의 휴일은 특근, 잔업으로 대신하고 40대 후반의 나이에 어머니들은 식당으로, 혹은 청소용역으로 불나비처럼 모여든다.

 

그렇게 아둥바둥 힘겹게 산 희망은 결국 ‘88만원 세대’라는 비극적 절망이 되어버린 현실!

 

이렇게 좌절하고 또 좌절하지만 대학등록금 일천만원도 안되는 그 돈을 벌기위해 우리시대의 어머니들은 오늘도 식당으로 청소용역으로 불나비가 되어간다.

 

아! 서러운 국민성공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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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무덤'판 민주노동당

'자기무덤'판 민주노동당

 

결국 파국으로 끝났다. ‘패거리주의’라는 자주파의 ‘호환 마마’는 국민들의 호된 질책조차도, 정당의 기본상식조차도 처절하게 무너뜨렸다.

 

민주노동당! 이 당이 어떤 당이였던가! 조봉암선생의 진보당이후 수십년간 명맥이 끊겼던 진보정당의 맥을 되살린 당이였다. 공돌이 공순이로서 군대규율보다 더 잔혹했던 암흑의 시대를 견디고 자라난 노동자들이 밀알이 되고, 종잣돈을 대서 만든 당이였다. 오십보 백보에 불과한 보수정당의 틈새에서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자에게 세금을’등 국민들에게 더 나은 사회가 가능할수도 있다는 희망을 만들어낸 당이다.

 

그런데, 이제 그 실날같던 희망은 무너졌다. 엊그제, 민주노동당의 당대회를 통해서 진보의 가치로 위장된 ‘낡은 정당, 종북주의 정당, 패거리정당’이였음을 스스로 고백하면서 말이다.

 

 톺아보자!

 

왜 낡은 정당인가! 어떤 고위 당직자는 공석에서 동성애자를 '자본주의 퇴페 부산물'로 규정한다. 어떤 중앙위원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하여 '불법체류자'라고 하며 강제추방대상으로 언급한다. '민족주의, 순혈주의'라는 낡은 보수적 가치에 갇혀 다양성과 공존, 인권이라는 진보적 가치를 무시한다.

 

왜 종북인가!

모든 핵을 반대한다는 진보정당의 강령과 가치조차 북핵 앞에선 맥을 못춘다. 오히려 '핵자위권'이라는 논리가 대신 자리잡는다. 회장님의 아들이 다시 회장님이 되는 재벌세습구조는 비판해도 수령님의 자식이 다시 장군님으로 등장하는 왕권 세습구조는 비판하지 않는다. 당의 간부와 당원들의 세세한 정보를 수집해서 북측 관계자에게 건네도,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일뿐이지 해당행위와는 무관하다. 단지, 그 자료를 건넨 사람의 신상자료를 공개하여 개인인권을 무시한 비대위지도부의 반인권만이 남을 뿐이다.

 

왜 패거리주의인가!

 

'53 : 47' 이것이 민주노동당의 세력분포이다. 그러나 모든 당내 모든 선거에서 이 수치는 무의미하다. '53;47'이든 '51;49'든 이기면 다 가져간다. 누가보아도 '대선참패'라는 문구조차도 이 '53'의 세력은 '실망스러운 결과'로 치환해버린다. 다수파의 권위에 침을 뱉지 말라는 거다. 민주노동당의 권력은 관계상 민주노총의 권력과 상호 연관된다. 이 권력을 잡기 위해 도저히 민주노조라고 할수 없는 그 세력과 당당히 노골적으로 연합해 민주노총 패권을 잡아쥔다. 지구당의 패권을 잡기 위해, 한 주소에 수십명씩 집단으로 위장전입도 마다않는다. 그 권력으로 대동단결을 외친다. 다수의 결정에 따르지 않는 소수는 분열주의자라고 비판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모아 놓고 사기치는 뒷골목 약장수도 알고보면 강압으로 사기를 치지는 않는다. 하물며 '진보로 위장된 낡은 보수'적 가치에 빠져있음을 알고 있는 확신자에게 '분열주의자'로 낙인찍으며 '대동단결'이라는 집단주의를 강요하는 모습 또한 패권주의의 전형이다.

 

이제, 낡은 것에 대한 새로운 것의 투쟁을 통해서, 진보정당과 민주노동당을 재구성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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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노조 삼성의 ‘단결금지법’

무노조 삼성의 ‘단결금지법’
 
"당시 구조본 내 임원들은 김성환 위원장을 두고 '구속시켜야 하는데'라며 고민했다"며 "나는 속으로 가능한 일일까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정말 구속을 시키더라" 이는, 김용철 변호사와 한 인터넷 신문(프레시안)사이의 대담 내용이다.

 

여기 나오는 김성환 위원장은 다름아닌 ‘삼성일반노동조합’의 위원장이다.

 

그는 2005년 2월 검찰이 삼성SDI가 불법적으로 행한 노동자 위치감시추적 사건에 대해 '기소중지' 결정을 내려진 뒤,  1주일만에 다시 구속됐다. 삼성이 그에 대하여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를 했고 법원은 검찰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를 법정구속했기 때문이다.

 

삼성하면 ‘무노조 경영’이고, 이 거대 골리앗의  ‘무노조경영’에 맞선 다윗의 투쟁이 그의 삶이었다.

 

그랬던 그가 올 1월 1일, 구속된지 3년만에 석방됐다. 엊그제, 일면식도 없던 그를 아주 우연한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덥수룩한 수염, 작은 체구, 오랜 수형생활로 인한 잦은 기침. 그의 인상은 그랬다.

 

그가 감옥에서 3년만에 출소하던 날, 소주 한잔을 마시고 기절하듯 쓰러졌다는 그에게 석잔쯤을 강권하고 그다음날, 떠나는 인사를 하는 그에게 서명을 부탁했다. 바로 그의 투쟁을 엮은 ‘골리앗 삼정 재벌에 맞선 다위의 투쟁’이란 책에다가....

 

그때  내가 무슨 심보로 그랬는지 모른다. 그는 간결하게 서명을 남겼다. ‘치사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1799년이면 아주 오래전일까!

 

그때, 영국에는 ‘단결금지법’이라는 법률이 만들어졌다.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노동자들이 단결하면, 즉 노동조합을 만들면 법으로 처벌한다는 거다.

 

얼마후엔 그 이웃인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이와 유사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당시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쟁의가 발생하자 왕정에 대한 청원을 통해서 이 법률을 만들었고, 이 법률에 근거하여 몽둥이로서 노동자들의 쟁의를 제압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이 법이 만들어지자 더 많은 노동자들의 저항과 피흘림이 있었고 생긴지 25년만인 1824년에 이 법은 폐지됐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 내기 위한 삼성의 무지막지한 공작, 그리고 그것을 교묘히 에둘러서 뒷받침 하는 대한민국의 사법당국. 이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박물관으로 가버린 ‘단결금지법’의 현대판에 다름아니다.

 

삼성권력은 대한민국 제일의 권력이다. 18세기 절대왕정의 권력에 비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권력으로도 유지되지 않는 것이 무수히 많다. 현대판, 아니 삼성판 ‘단결금지법’도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

 

움켜쥘수록 빠져버리는 모래알처럼, ‘무노조’를 움켜쥘수록 ‘부끄럽지 않게, 치사하지 않게’ 살아가는 더많은 김성환을 만들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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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식코’

영화 ‘식코’


‘저기, 아무개가 올해 안으로 결혼 한다메!’.  ‘ 그 아무개가 ○○이랑 결혼 한다며!’.  ‘ 아무개와 ○○이랑 날 잡았다며!’. 하루만에 전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지만, 이 풍문 때문에 우리 사무실 사람들이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아침에 ‘올해 안으로 결혼을 한다 더라’ 에서 시작한 이 풍문은 그새 ‘누구와 날까지 잡았더라’까지 발전했으니, 만약 당사자가 해명하지 않았다면 저녁쯤이면 아마 청첩장까지 받았으리라.

이것은 눈덩이 불어나듯 한칸 한칸 옮겨질때마다 점점커지는 말과 소문의 습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리라.

 

이런 류의 '무엇 무엇 하더라'통신은 정말로 그 위력이 대단할진대, 최근에 가수 나훈아씨의 잠적에 대한 여러 풍문만 보더라도 야쿠자, 유명 여성 연예인까지 등장하며 급기야는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상황까지 발전했다.

 

근거도 없고, 사실도 명확지는 않지만 이 '하더라' 통신은 그 만큼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 '하더라'통신이 무조건 재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끔직하거나 공포스러운 것도 있다.

 

'잘린 손가락 두 개를 봉합하는 수술을 받는데, 치료비가 7천만원이라 더라. 그래서 수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 ‘하더라’식의 애기를 듣는 당신의 반응은 어떨까!

 

당신은 담방에 ‘미친×’ 하고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애기는 영화속 애기다. 영화는 ‘픽션’이다. 그래서 당신은 안심할지도...

 

그러나, 문제는 이 영화가 실제상황을 다룬 ‘논픽션’이라는게 문제다.
 
영화 ‘화씨 911’로 유명한, 감독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실제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래도 당신은 안심하는가! 그저 먼 발치의 남의 나라 미국의 이야기로 치부하면 그만일수 있을까!

결코 아니다. 다음달이면 대통령으로 취임할 이명박 당선자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당선자는 공공연히 지금도 애기하고 있다.

 

 지금은 국민건강보험증 하나면 우리나라 국민은 누구나 전국 아무   병원에서도 보험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상황은 전적으로 바뀌게 된다. 어떤 병원에서는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고, 그곳은 미국식의 고가의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들만을 치료한다.
 

무섭다. 영화 식코(Sicko)는 정말로 무서운 애기고, ‘무엇무엇 하더라’가 아니라 우리가 처해질지도 모를 ‘미국식 선진화’의 함정이다.

 

그래서다.  영화를 보자! 그리고 소문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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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나봤나! 기업살인

들어나 봤나! ‘기업살인법’

 

자본주의의 모국 영국에서 기업살인법(Corporate Killing Law)이 오는 4월부터 시행된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입장에선 도무지 납득할수 없으니  분개하시라! 그리고 경악하시라!  왜냐! 이법의 내용이 그렇기 때문이다. 노동재해는 기업의 ‘과실’이 아니라 ‘고의’에 해당되는 만큼 중대 노동재해를 발생시킨 사업주는 ‘살인죄’에 버금가는 중형에 처해야 한다는 게 법안의 요지다. 이런 법의 내용물을 ‘비즈니스 프렌들리’ 시각에서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가!

 

걱정된다! 자본주의의 모국에서 하필이면 ‘기업살인’이란 용어를 쓰나! 기업을 잠재적 살인자로 몰아 기업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산시킬 것이 뻔한데 말이다.

 

정말로 남의 나라 애기다.  그래서 천만다행이다.

 

남의 이야기 말고 우리에게 익숙한 우리 이야기를 하자!

 

‘그 새끼들 깡패새끼래요. 괜시리 그 놈들 만나고 하면 돈 뜯기고 뒤통수만 맞아요’. 여기서 그 새끼는 ‘민주노총’이다. 이 말씀을 하신 분은 하이닉스 A-Project 건설현장의 담당자이시고 이 귀한 말씀을 들으신 분은 그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유족중 한분이다.

 

그리고 그 분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셨다. ‘사망에 대한 보상합의금조차 이런 저런 경비가 들어갔다고 하면서 1/3정도를 빼고 지급했어요. 민주노총 연락처조차 그 사람들이 다 뺏어서 찢어버리드라고요. 그놈들 깡패새끼라면서...’

 

속에서는 이런 일이 진행되는 동안에 바깥에선 난리다. 하이닉스 산재사망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는 애써 취재했던 내용이 데스크에서 짤렸다고 했다. 무슨 건설협회인가 하는 데에서는 이런 저런 인맥을 통해서 민주노총이 충북경제를 말아먹는다고 그래서 자제를 부탁한다는 소리를 연방 전한다.

 

그래서 안심이다. 남의 나라는 남의 나라고, 그래도 우리는 ‘비즈니스 프렌들리’이다.

 

나는 지금  두장의 사진을 쳐다보고 있다. 노동자들이 고공에서 파이프에 두 발을 딛고 ‘곡예’를 하는 우리나라의 신축공사장 사진과, 작업을 위해 계단과 통로를 완벽한 구조물로 설치한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의 한 아파트신축공사장의 현장사진.

 

그런데 도무지 납득이 안간다.

 

노동안전과 보건에 관한 법률만 480개에 이른다는 자본주의 모국인 영국, 그리고 ‘작업공기’는 생각지도 않고, ‘다칠수 있는 작업은 아예 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애기하는 스웨덴의 어느 청년노동자.

‘반기업정서’가 판쳐서 문제라고 하는 우리나라도 걱정인데, ‘기업살인’ 운운하는 저 나라가 망하지 않는게 이해가 안간다.

 

에둘러 애기했다.

 

‘죽지않고 안전하게 일할수 있는 권리’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 다.

그 권리 앞에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도 필요없고, 그 어떤 경제논리도 필요없다. 이 애기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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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 공사판' 이란다

‘이판사판 공사판’ 이란다!

 

 

이천냉동창고, 40명이 죽었다. 아직 살아남은 노동자들 속에는 내일을 기약할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지금 내 옆에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다친 한명의 노동자가 산재상담차 방문해 있다. 그에게 따듯한 커피를 건네자 그가 한 첫마디는 이랬다.  ‘미쳤지요. 우레탄 작업을 하면서 용접작업을...’

 

“안전(安全)은 또 질식당했다”(조선일보). “곳곳에 시너․LP통 … 그곳은 ‘화약고’였다”(중앙일보). “3박자 갖춘 … 예견된 ‘人災’”(쿠키뉴스). “공사장 안전불감증이 화마 불렀다”(YTN).

 

충격이 커서였던가!

 

언론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아니 사후약조문(死後藥弔問)이 대단하다. 그래선가! 이번주 한주 만큼은 우리 민주노총과 심지어 보수언론조차도 ‘한마음 한뜻’이리라!(딱 한주만큼만)

 

지난해, 하이닉스청주공장 신설현장에서만 3명의 노동자들이 죽어나갔다. 그 중에서 마지막으로 노동자가 죽어나갔던 12월, 노동부청주지청은 무엇을 면피하려고 그랬는지 작업현장을 세웠다. 이 결정이 오래가지 못할것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딱 일주만에 '역시나'였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세상을 가릴수 있겠는가! 공사재개의 근거로 제시된 각종 안전대책수립 및 보완은 새파란 거짓말(왜 꼭 거짓말은 ‘새빨간’이라고 해야 하나!)이라는게 드러났다. 사고나기 이전의 그 공간 그대로 작업은 진행되고 있었고, 그 장면이 담긴 수십장의 사진을 통해서...

 

두려운게 있다. 어제 그 전조가 있었다. 사무실로 찾아온 충북 무슨 건설협회 대표자라고 했던 그사람들!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따져 물었다. ‘어렵게 살아난 충북건설경기인데 이런식으로 민주노총이 발목을 잡으면 어떻게 하냐는 거냐’고, ‘그리고 당신들이 (생계를) 책임질수 있냐’고... 

 

하이닉스 청주공장은 ‘신앙’같은 존재다. 이 공장이 빨리 들어서야만 청년 실업자에게 일자리도 생길 것 같고, 서민들에게 돈이 돌 것 같고, 경제특별도가 된댄다. 그래선가! 도지사, 청주시장이 나서서 노동부의 공사중지명령을 반대하며 ‘신앙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발벗고 나선다. 그런 사이에 노동자들의 안전문제는 뒤로 게눈감추듯 쏙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두렵다. 이천냉동창고 화재사건처럼 노동부와 언론이 우리노동자들과 딱 일주일만 동거하는게 두렵다.

 

한 건설노동자가 자신들의 처지를 이렇게 토로했다.

 

 “떨어져서 죽고, 질식해서 죽고, 부딪혀서 죽고, 감전되어서 죽고... 그렇게 하루에 2명이 죽습니다. 흔히들 건설현장은 이판사판 공사판이라고 합니다. ‘이판’은 이승이라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사판’은 저승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건설노동자 이지경의 편지중에서)

 

국민소득 2만불 시대라고 하니 한벌 웅얼거려 본다. 이제, 건설노동자가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365일 관심을 가져주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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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혹, '진보' 안의 '수구'

우리는 혹, '진보' 안의 '수구'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문제를 냈다. '여러분, 여기 사과가 열 개 있어요. 그런데 지금 철이가 세 개를 먹었어요. 그럼 몇 개가 남았을까요?'

 

한 아이가 답했다.

 

'세개가 남았습니다!'. 틀립 답이라는 신호를 주고, 다시 아이들에게 '몇개가 남았을까요?'하고 재차 물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계속해서 '선생님 세 개라니까요'라고 소리를 친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오른 선생님, 그래도 교육자의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해서 '왜'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아이 왈 '우리 어머니가 먹는게 남는거랬거든요. 세 개를 먹었으니 세 개가 남은 게 맞잖아요'

 

이 아이는 아마도, 교실에 선글라스낀 아저씨나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의 사진이 걸려있던 시대의 학생이었다면 비오는 날 먼지나도록 맞았을 것이고, 요즘 같으면 상상력이 풍부하다거나 혹은 창의적이다는 운좋은 칭찬도 받을수 있었을 게다.

 

그러나, 어찌됐건 난처한건 아이보다는 선생님일게다. 아이의 답이 나온이상 수학적 논리로 아이의 대답을 오답으로 처리할건지 아니면 아이가 부모로부터 학습받은 '구전명제'속에서 정답처리를 해야할것인지 선택은 선생님이 해야 하니까!

 

지난 몇 달전쯤에 '참여정부평가포럼' 같은 노비어천('盧飛御天) 집단이 생뚱맞게 각종 수치를 국민들에게 들이댄적이 있다. 성장률이 얼마고, 주식시장의 주가지수가 어떻고... 그러면서, 참여정부가 경제를 못했다는 근거가 뭐냐고 따져 물었다.

 

이 질문을 받은 국민들은 수학적 논리, 경제적 논리는 완전 제쳐두고, 경포대,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하며 등을 돌렸다.  그러자 참평 선생님들은 이 우민(愚民)한 국민들에게 대포(대화포기)를 쏴대다가 그들만의 근거지로 숨어가 '盧飛御天歌'만 불렀다.

 

새해가 밝은 지금, 민주노동당을 한번 보자. 민주노동당은 지난 대선에서 참혹할 정도의 냉정한 국민들의 평가를 받은 터이다.

 

그런데도 내부에는 책임지는 세력이 없고 세상과는 동떨어진 자기최면의 평가가 난무한다. 모든 비판은 유령을 대상으로한 비판이고, 이렇게 된건 '짝퉁좌파, 위장좌파'인 노무현 정부의 실정 때문에 동반피해를 입었다는 거다. 이렇다면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게된다. 이 기대상실의 이유는 '지지율 3%'라고 하는 국민들의 창의적의 대답을 인정치 못하는 교조적, 신앙적 집단 그 이상,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노동운동 또한 마찬가지다.

 

대기업노동자 혹은 내가 속한 기업의 울타리라는 허위의식에 갇혀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이상, 내 월급봉투에 잔업수당이 빠짐없이 빼곡히 채워지는 것에 안주하는 이상 우리는 고립을 빠져 나올수 없다.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우리 노동운동에게 보내는 비판의 수위를 넘은 살기(殺氣)에 대해 정말 창의적으로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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