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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마음을 좋아하는 글로리아


 

“2년 전에는 후원의 밤을 했습니다. 작년부터 회원의 밤을 합니다. 후원의 밤을 기대하다가 후원이 끊기면 우리 살 길이 막막하지만, 회원의 밤은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라 우리가 살길을 찾아 우리 회원들이 모여 함께 힘을 모으는 것입니다”
10월 13일 오산이주노동자센터 회원의 밤에서 장창원 목사가 한 인사말이다. TV에도 거리에도 기부를 선동해대는 계절에, 거기다 정부는 기부가 빈부격차를 해소할 대안이라 사기치는 시대에 일침을 놓는 속시원한 이야기다. 글로리아씨도 이런 마음으로 오산이주노동자센터에 자원 봉사를 하고 있다. 뭐 대충 넘어가도 되지만 계속 ‘봉사’란 말이 나와 넌지시 이런 이야기를 던졌다.
“내 생각에는요, 돈있고 힘있는 사람들이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는 척 보여주는 것이 ‘봉사’인 거 같아요. 우리는 진짜로 서로 돕자고 하는 일이니까 ‘봉사’ 보다는 ‘활동’이란 말이 좋은 거 같은데...”
“아니에요, 난 봉사하는 거에요. 활동을 하면 페이를 받아야 되는데, 난 어려워서 못해요”
“아, 그런 뜻이군요. 하하하”
대화가 이런 식으로 깔끔하지 않았다. 저 대화는 요점정리라 보면 되겠고, 실제로는 서너배 더 길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요점 정리를 포기해야 할 정도였다. 뒤에 인용하는 대화는 대부분 요점정리로 읽으면 되겠다. 어쨌든 30여분의 대화 뒤에 잠시 쉬자고 말했다.
“내가 글로리아씨 이야기를 알아듣기 힘들어서 미안해요”
“왜 힘들어요?”
“머리가 나빠서겠죠”
“하하 한국 남자들 머리 나쁜 거 맞아요”
“푸하하하, 맞아요, 한국 남자들 머리 나빠요”
이 대목은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러니까 짧고 쉬운 대화는 꽤 잘 통했다.

한국의 느낌
글로리아씨는 필리핀에서 교회를 통해 남편과 만났다. 결혼 과정이 무척 어려웠던 모양이다. 남편의 직장에서 가능한 휴가 기간과 글로리아씨의 사정이 잘 안 맞았는데, 거기다 관료적인 사람들을 여러 차례 거쳐서 남편과 일정을 조율한 듯 싶다. 자세히 알 순 없지만 우역곡절 끝에 1996년도에 필리핀에서 결혼을 하고 한국에 왔다.
한국의 가을이 참 좋았다. 느낌이 너무 복잡했지만, 그래도 뭐가 좋은지 좋았고, 조용하고 멋졌다고 회상한다. 처음에 힘들었던 것은 음식이었다. 한국 음식에는 비린내가 심해서 시어머니가 맛난 음식을 잔뜩 해 놓아도 잘 안 먹었다. 지금은 한국 음식을 너무 좋아한다. 필리핀 음식은 너무 달단다. 아직 음식을 잘 못해서 남편에게 부끄럽다는데, 닭도리탕, 닭조림, 김치찌개, 된장찌개, 콩나물국, 갈비찜, 나물볶음 등을 할 줄 알고, 나물무침, 야식, 떡이 너무너무 어렵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과일샐러드다.
“어떤 과일샐러드에요? 드레싱은?”
“생선이나 오징어 넣어서 이것 저것 야채 넣고 통깨 뿌려 초고추장으로 버무린거요”
“하하 나도 그거 아주 좋아해요. 근데 그건 회무침인데”
한국 음식 특히 회무침을 좋아하는 글로리아씨는 필리핀 음식 중에는 5월에 나는 과일들이 너무 그립다. 필리핀에서는 과일을 사먹기 보다는 나무에 올라가서 따서 바로 먹는다고 한다. 싱싱함이란 표현은 없었지만, 말이 잘 안통해서 그랬는지, 글로리아씨 표정과 말투에서 그 과일들의 싱싱함에 입맛을 다시는 듯 했다. 과일 따다가 종종 다치는 사람도 있단다. 한국에선 돈이 들고 필리핀에선 용기가 필요한 것인가?
“아, 한국에서 과일 따먹다가 경찰에 잡혀가는 경우 있으니까 조심하셔야 돼요”
“아, 그건 알아요, 전에 남편이 아들에게 남의 과일 따먹으면 안된다고 가르쳐 줬어요”
그 외에 한국에 특별히 인상 깊은 것은 결혼식의 예쁜 신부란다. 글로리아씨는 비싸고 화려한 치장에 친구들 다 모인 결혼식이 너무 보기 좋다며 한마디 덧붙인다.
“한국엔 공주들이 많아요. 왕자들이 많아요. 하하”
글로리아씨는 13년간 여전히 한국에 적응 중이다.

슬픔과 위기
2005년에 아주 슬픈 일을 겪었다. 첫 아들이 강에 빠져 죽었다. 많은 이주여성들이 겪는 문제라는데, 엄마와 아기 사이에 이야기가 잘 안 통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 때문에 이 슬픈 일에 크게 자책했던 모양이다. 남편과도 많이 힘들었다. 두 사람이 싸우고 남편이 나가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글로리아씨가 더 말이 많고 목소리가 커서 그럴 일은 없다.
그리고 둘째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말 공부가 가장 크다. 첫 아들을 떠나 보내기 전보다 훨씬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역사 공부는 정말 싫다. 왜 그러냐니까, 필리핀의 역사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웠던 슬픈 이야기라서 싫단다. 한국도 그건 마찬가지라서 역사 공부가 싫다. 대화 중에 역사 뿐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어렵고 생각하기 싫다는 이유로 다른 화제로 돌리곤 했다.
오산이주노동자센터에 나오며 다른 이주민들과 만나며 글씨와 말이 따라따로라서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한다. 이럴 때 나라마다 친절한 사람이 있어야 서로 대화가 가능해진다며, 그 친절한 사람의 마음을 ‘넓은 마음’이라 표현했다. ‘넓은 마음’은 글로리아씨가 어떤 어려움을 푸는 가장 중요한 열쇠 같았다.
남편과 필리핀 부모님과 관계가 걱정인데, 말이 안 통하니 서로 연락도 안하고 사랑을 전하지 않아 글로리아씨 가슴이 몹시 아프다. 한국 사람들이 이해하는 마음으로 조금만 더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 마음도 ‘넓은 마음’이라 그랬다. 남편이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필리핀 부모님께 사랑을 전하길 바란다.

12월 13일 오산이주노동자센터 회원의 밤. 지역아동센터 다솜공부방 아이들의 춤공연에 사진을 찍으러 무대 앞으로 모인 엄마들. 오른쪽 끝이 글로리아



시선에 대한 의식
글로리아씨가 가족과 오산이주노동자센터 말고는 대화 주제를 넓히지 않아 자세히 이야기를 듣진 못했다. 어렵게 어렵게 물어, 길가는 모르는 사람들이 글로리아씨를 보는 시선이 어떤지에 대해, 명료한 답이 나왔다. “싫어요” 일종의 유도질문이었던 걸 인정하지만, 그 대답은 강하게 남는다.
다문화 가정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는 많다고 하면서 그 예로 술문화 하나만 들었다. 어쨌든 글로리아씨는 이런 문제를 빨리빨리 해결하도록 많은 교육 프로그램들이 갖춰지길 바라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사소한 교육 프로그램이라도 모두 유료인데, 한국엔 무료 프로그램이 많다는 말도 했는데, 이 대목에서 무료 프로그램에 적극성을 띠는 자세는 살짝 웃게 만드는 꽤 익숙한 모습이다. 글로리아씨가 가끔 구분하기도 하지만, 분명히 자기도 한국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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