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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3/09
    화전민(火田民)
    PP
  2. 2010/02/18
    영웅들의 지하도시
    PP
  3. 2010/02/01
    일. 밥
    PP
  4. 2010/01/25
    뒷모습
    PP
  5. 2010/01/25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산티아고 아이들
    PP
  6. 2009/12/09
    나죽으면 꽃낭구 많이 심어 줘야해
    PP
  7. 2009/11/20
    바람 뒤에...
    PP
  8. 2009/11/04
    눈부처
    PP
  9. 2009/10/15
    난중일기
    PP
  10. 2009/09/29
    소웨토(Soweto) 그리고 우리는…
    PP

화전민(火田民)

 

우리 아버지도 화전민이셨지.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조그만 산을 선산으로 받았어. 먹고 살려니 땅이 있나, 어린 나이에 산에 불을 질러 밭을 일구시고 일가를 이루어 자식들을 먹이셨어. 지금 그 밭을 찾으려면 다시 불을 질러야 할 터이지만 아버지는 많이 늙으셨고 지금은 동네에서 손바닥 만한 텃밭을 가꾸고 계시지 문득, 벌초 길에 굽은 등으로 돌아앉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본다. 소작 질을 견디지 못한 일제 강점기부터 보릿고개를 기억하는 농사꾼으로 ......, 화전민, 화전민, 화전민, 화전민, 화전민.......   

박지원

   

화전민(火田民)은 산에 불을 놓아 들풀과 잡목을 태운 뒤 그 곳에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다. 화전은 일정한 땅을 정해 불을 놓고 불에 탄 풀과 나무의 재를 비료로 이용한다. 몇 년 동안 한곳에서 계속 농사를 지으면 지력이 다해 농작물의 수확이 감소하므로 다른 곳으로 이동해 화전을 일군다. 현재 인도,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등지에 약 2억 명 정도의 화전민이 살고 있는데, 열대우림을 파괴한다 하여 오래전 우리나라처럼 화전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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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들의 지하도시

 

 
주민들이 곡괭이와 삽으로 판 땅굴로 길이가 3km에 이르는 터널로, 구찌터널과는 달리 여기서는 600명이 실제로 생활하였고, 집회소와 우물 학교 병원도 있습니다. 미군의 무수한 폭격에도 견뎌내었던 터널내에서 17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이를 낳았고 가르치고 총을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영웅들의 지하도시라 할 만합니다. 사이공에 있는 구찌터널보다 규모는 작지만 제국주의 야만에 저항한 베트남 사람들의 정신을 확인하는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미제국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개미굴 같은 좁은 터널을 빠져나오게 되면 남중국해의 드넓은 바다를 만나게 되는데요.... NO MORE WAR!!!가 절로 나오더군요 .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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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밥


점심시간 무렵이되면 문래동 철재상가에 바쁜 걸음이 있습니다. 쫓아 갈수 없는 잰걸음으로 일밥을 나르는 아주머니들이죠 이 골목 저 골목 바쁘시거든요 아저씨들은 장갑을 벗고 으자자자~~! 기지개를 폅니다. 기계소리도 잠시 잦아들고요 “다 먹자고 하는 일” 이라하지요 밥입니다 ! 어느덧 점심 시간이군요 나는 오늘은 무얼먹나? 복길네를 갈까... 장성식당을 갈까.. 하나식당을 갈까 ? 식사들 맛나게 하시고 기운찬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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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왔습니다. 세월은 그렇게 무심히 흘러가고 우리들의 노동은 문래동 철재상가의 뒷모습처럼 허전합니다.  지금까지 문래동을 지켜온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며 우리 형제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들의 고단한 노동을 달래줄 따듯한 밥상이 그리워지는 저녁입니다. 많이 춥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이 사진은 문래동철재상가에 벽화 작업을 준비하며 마련된 사진의 일부입니다.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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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산티아고 아이들


고통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눠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나는 시를 위해 살아왔고, 시는 내 투쟁의 밑거름 이었다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본문 중에서) - 파블로 네루다
칠레 산티아고 공원에서 만난 아이들입니다. 노래 봉사를 하고 다니는 듯 했어요 노래를 얼마나 예쁘게 잘 하던지 하늘에서 내려온 아이들 같았지요 그저 조용히 공원를 돌며 사람들앞에서서 밝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사탕도 나눠주고......,  그리고 다음날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만나러 갔습니다.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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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죽으면 꽃낭구 많이 심어 줘야해


나죽으면  꽃낭구 많이 심어 줘야해

꽃을 어려서 부터 그렇게 좋아했어.

나죽으면  꽃낭구 많이 심어 줘야해
뿌리 뻣는거 말구
금방 금방 커서 꽃피는 걸루
과꽃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 달맞이 제비 백일홍 도라지
모 많잖아…….

할머니가 작년 이맘때 돌아가셨으니까 꼭 일 년 되었군요
한창 겨울로 접어드는 요즘 벌써 봄이 기다려집니다.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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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뒤에...

[포토에세이]

 


바람 뒤에...

저 바람 뒤에 숨어사는 사람이 궁금했다.

바람에 지워지고 닳고 닳아진 生같았지만
그 모두가 빛이었다.

빛 속에 숨겨진 깊고 깊은 이야기들
숨 막히게 절제된
그 전설 같은 이야기는
그 저 검은 눈동자 속에 찰랑거렸다.

넘치지도 흐르지도 못하는 풍경이라 여겼다.
보여 지는 것이 전부인 풍경이라면..
병풍에 갇힌 풍경이 전부라면 차라리 죽음일 것이다.

죽은 듯 침묵하는 바람 끝, 생명의 숨결
그 숨결이 바로 사람이었다.

....지금 이 앞에 선 사람의 숨결이
찰나에 멈춰진 모든 사람의 숨결을 깨운다...
이것이 산 자의 믿음이다...

사진전을 준비하던 2006년 라오스 아카족 아이의 찍은 사진을 보고 글을 보내왔다.
이 자리를 빌려 시인 김미영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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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처


그대의 눈동자에 아직 / 내가 새겨지지 않았다면 /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서 / 그대의 눈부처 되리 / 떠나가도 헤어져도 /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는 / 사랑한다 말해놓고 돌아서면 / 지워지는 그림자가 아니라 / 무시로 스쳐가는 구름이 아니라 / 호수의 바닥이 된 하늘처럼 / 깊이 뿌리내리고 / 눈 깜박일 때마다/눈동자 가득 살아나는 얼굴 / 나, 그대의 눈부처 되리
- “눈부처” 문 수 현 詩 전문
 

다른 사람의 눈을 바라다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기보다 내 마음을 먼저 발견하게 돼 놀란적있었지…. 다른 사람의 눈을 마주하고 자신을 발견하는, 그래서 눈부처라 하는가…. 가끔 이 아이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눈을 쳐다보기 전에 침부터 닦아주고 싶지만….^^ 늘 들킨 듯 한 이 마음은 무얼까 ?  서로에게 눈부처 되는 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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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작년 6월, 이순신 장군께서는 이게 무슨 난리냐 하셨을 게야……. 왜적에 맞서 청와대를 지켜 내려는 듯 어떤 날은 촛불투쟁을 일사불란하게 진두지휘하는 듯 했지, 하지만 명박산성 뒤에 갇혀계시는 장군님을 뵈니 참 면목도 없고.... “저 분이 왜 저러시나” 하기도 했어 ……. 그해 미친소 수입반대 촛불거리에서 1000여명이 시민 병사들이 잡혀갔다고 하더군. 나도 집시법위반과 일반교통방해라는 죄명으로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이 날아들었고 공소사실거부와 함께 피고인 소환장이 날아들었지, 온몸에 태극기를 감고 뛰어들어 구호를 외치던 열혈 고등학생 덕에 얼떨결에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었지만 그 덕에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어…….  지금은 이순신 장군이 아이라 세종대왕을 모셔 놓았다더군. 정작 세종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참 모진 놈 만나 내 이 모양 되는구나”  많이 섭섭하지 않으셨을까? 후손들에겐 두 분 다 훌륭하고 존경받아 마땅한 분들이지만 앞으로 대왕세종을 어떻게 뵈어야할지 ......, 지혜를 주시압!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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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웨토(Soweto) 그리고 우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하면 넬슨만델라를 기억하고 차별과 업압을 이겨난 굴곡진 현대사를 기억한다. 여기는 소웨토(Soweto),  33년 전이었으니 이 아이들은 태어나기도 전 이었겠지만……. 악명 높은 인종분리정책(Apartheid)에 맞서 싸운 소웨토봉기를 상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없다. 지금은 예외 없이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 폭압에 맞서 76년 6월 소웨토 봉기만큼이나 뜨거운 100만 총파업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남아공코사투(COSATU)비정규직철폐 총파업 , 공기업사유화저지 등 , 코사투공공부문 총파업투쟁이 그러했다. 남아공과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는 도입 시기나 도입과정이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동자들은 인종분리정책의 또 다른 이름처럼 다가온 신자유주의 물결 앞에 어떤 노래와 몸짓으로 이 야만의 시대를 헤쳐 나갈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거침없는 리듬을 타며 온몸으로 노래를 불러주었던 이 아이들의 자유와 해방을 향한 뜨거운 몸짓을 기억한다.

❇SOWETO: 인종분리정책에 의한 흑인 거주지로 게토화된 도시이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남서쪽으로 16㎞ 떨어져 있다. 지명은 남서부마을들(South Western Townships)의 머리글자다. 소웨토는 사실, 당시 골드러시로 인해 요하네스버그로 유입된 백인들에게 주택부지를 제공하기 위한 백인 정권의 인종분리정책의 일환이었다.
❇COSATU: 남아프리카공화국노동조합회의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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