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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잊지 말아야 할 노동자 투쟁, 노동자 기록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77일 투쟁백서 『해고는 살인이다』. 지난 달 한 노동자가 이 책을 보면서 눈물 흘리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그 노동자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평택에 가보지 못했던 동지였다. 부끄러움 때문이 었을까?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 이었을까? 그 동지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가방 속 깊은 곳에 가지고 다니며 화보를 들쳐본다.
노동자들에게 공장은 산업화의 원동력도, 선진국에 대한 열망도 아니다. 노동자에게 공장은 한 밥상을 놓고 삶을 이어가는 공동체의 젖줄이자,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 들을 보듬고 교육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현장, 땀흘리며 족구 한판 벌이고 막걸리잔 나눠 마시는 우정의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서 별안간 1,000여 명의 노동자가 내몰렸다. 쌍용자동차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구조조정 한파가 닥친 금호타이어, 한진중공업 등 전국의 금속사업장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옥쇄파업 77일 동안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입사 후 지금껏 현장에서 동고동락했던 형, 동생들이 정리해고자와 비해고자로 갈렸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 불안감이 돌 때 여행을 함께 가 “어떻게 되더라도 열심히 살자”던 형님은 사측에 동원돼 구사대가 되었다.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제일 먼저 달려오던 아우는 정리해고자가 되어 도장공장 옥쇄파업 현장에 짐을 싸들고 들어갔다. 아래 윗집 김치도 같이 담그던 가족들도 갈렸다. 가족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전국을 눈물 바람으로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측이 나오라고 종용해 관제데모에 동원된 가족들도 있었다. 아이들 교실에서도 “니네 아버지 짤렸지”, “니네 아버지 같은 사람들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 진대 ”는 친구들의 말에 깊은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77일 동안 공장 안팎에서 노동자들은 그리고 가족들은 정리해고를 막아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도장 공장을 점거한 옥쇄파업 노동자들, 70미터 상공 굴뚝 농성자들, 정당과 종교단체를 돌며 눈물로 호소했던 가족대책위, 원하청 연대를 하며 옥쇄파업에 동참한 비정규직노동자들. 이 책은 이러한 노동자들의 투쟁과 눈물, 삶과 희망, 그리고 마침내 다다른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잘 담아내고 있다. 모든 것을 걸고 싸웠던 노동자들의 기록이 여기에 있다.
이 책은 노조 소식지, 각종 정책자료, 사업보고서, 언론 기사 모음, 사진, 동영상, 회의자료, 회의록, 각종 교안, 공문, 홈페이지 게시판 의견, 파업 프로그램 등을 수집한 것을 기초로 집필했다. 2개월에 걸친 분류 작업을 통해 17권의 ‘쌍용자동차지부 투쟁자료집’을 엮고 그걸 초석으로 삼아 다시 1권의 백서로 엮은 것이다. 자료로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조합원 17명의 구술과 4명의 연대단위 면접, 조합원 13명의 서면질의와 면담, 한상균 지부장의 서면질의도 진행했다고 한다.
역사는 가진 자의 역사고 힘 있는 자들의 역사다. 자본이 쓴 역사가 한국사고, 세계사다. 노동자들의 기록은 지워지고 사라졌다. 그 기록을, 역사를 스스로 쓰지 않으면 우리 노동자들이 목숨 걸고 투쟁했던 기억은 말살된다.『해고는 살인이다』가 소중한 이유는 그래서다. 한상균 지부장은 옥중에서 이렇게 썼다. “산 자도, 죽은 자도, 구속자도, 징 계자도, 희망퇴직자도 어떤 위치에 있건 여전히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날이 금세 올 것입니다.” 그걸 깨닫게 만드는 기록, 여기『해고는 살인이다』가 있다.

김대영 (울산 금속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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