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공중부양을 할 순 없자나?

가장 소외된 자들의 혁명성

 

박종필 감독은 장애인과 홈리스 운동에 오랫동안 결합하며 이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왔다. 박종필 감독에게 빈곤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 했는데, 너무 바빠서 시간 잡기가 힘들었다. 지방출장 다녀오는 사람을 새벽에 만나고 보니 자연스럽게 취중 인터뷰가 됐다.

장애인과 홈리스 인권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학생 때 그림을 그렸는데, 내 그림이 화랑에 걸리면 택시 운전하는 아버지가 내 그림을 향유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 때부터 빈곤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영상 시작하면서 빈곤 문제에 대해 소소한 작업을 하다가 IMF 구제금융 시대 때 노숙인 작업을 했다. 노동에 대한 영화도 하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장애인 노동권에 대해 관심이 갔다. 장애인 단체 행사나 토론회 같은 데 쫓아다니다가, 마로니에 공원에서 에바다 투쟁 1,000일 문화제를 접하고 에바다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난 제도 언론과 주류 미디어의 문제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편 거기에 길들여진 상태였던 것이다. 당시 대안 미디어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에바다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이 없다면 현실을 제대로 볼 방법이 없었다. 아무래도 해결이 안 됐으니 투쟁 문화제를 하는 것이고, 그래서 평택으로 내려갔다. 갔더니 뚜껑이 딱 열렸다. 스스로 반성도 좀 하고.
말 안 듣는다고 두들겨 패서 죽이고, 변사체로 발견됐는데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처리되고, 노동 착취는 다반사로 일어나고, 장애인에게 쓸 돈을 착복 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거지. 그런 과정을 담아서 문화제에 상영했지만, 완성도가 있거나 깊이가 있는 작업은 아니었다. 자족적인 영상물로 끝낼 수 없어 깊이 결합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 운동을 하는 분들과 관계를 유지했고, 이동권 투쟁이 터지면 또 결합하고, 중간 중간에 홈리스 운동과 결합했다.

작년에 홈리스 행동 주점에 갔다가 뒤풀이까지 따라갔는데, 난 그 때가 홈리스들과 첫 만남이었다. 재밌는 자리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안 나는 냄새를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게 어렵더라. 일단 홈리스들과 함께 활동하려면 그런 걸 재껴야 할텐데?

맞다. 그것만 재끼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다. 처음에 그들과 어울리면서 고민이 심했다. 당시에 만났던 분들 중에서 노숙을 청산한 분이 없었고, 거의 거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분들 술을 엄청 마셔댔다. 사실 당시에 일을 찾으면 없진 않았지만 임금이 너무 적었다. 노가다 나가면 거리 노숙은 안해도 쪽방이나 여인숙에서 잘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을 깨기가 참 힘들었다. 내가 몰랐다. 그런데 그 분들이 왜 그렇게 사냐면, 대부분 저학력이고 불안정한 가족관계에 처하다 보니, 주위에 도움받을 길이 거의 없다. 자본주의에서 평가되는 값싼 노동력 말고는 없다. 아무리 뼈빠지게 일해봐야 쪽방이란 걸 충분히 경험한 분들이라 노동에 대한 희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분들 참 착하다. 착하지 않았으면 도둑질을 하거나 강도질을 했겠지. 어쨌든 자본주의에 희망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걸 몸으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희망없는 현실을 잊고 싶어서 술과 담배에 찌들어 내일이 없이 사는 거지.
그런 점에서 장애인 운동도 비슷하다. 70년대 일본의 푸른 잔디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장애인의 신체성 자체가 이미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있다.” 장애인의 노동력은 자본가의 입장에서 별로 착취할 게 없잖아? 홈리스나 장애인이나 같은 거지.
그런데 난 이 희망없음에서 희망이 보인다. 상대적이지만 그들은 더 인간적이야. 물질세계에 관련된 욕망과 목적이 약하고 그러다보니 사람에 대한 애정이 더 큰 거 같애.

그러면 우리가 구체적인 그림은 못 그리더라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사회의 소유관계와 분배문제 같은 걸 상상하잖아? 그런 사회라면, 예를 들어 삼성맨하고 홈리스하고 누가 더 잘 적응할까? 홈리스들이?

어. 당연히. 속된 표현일 수 있는데, 가진 게 없을수록 자유로운 거야.

흔히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말을 하잖아? 듣다 보니 그런 느낌이 드는데, 한편으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바보의 전형이기도 한거 같아 아이러니하네. 근데, 그 분들의 준법의식(?)은 어때?

기득권 세력이 만들어 낸 법에 기득권은 자유롭잖아? 사회구조나 법과 관련해서 저학력이고 착한 사람들이라 법에 자유롭다기 보다는 그냥 법을 거부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노숙을 하는 거지.
근데 이 정도 하면 반 쯤 했나?

아 몰라요. 술 마시다 엉뚱한 이야기로 빠진 것 같기도 해.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가 묻고 싶은 건, 여기 저기 다니다 보면 운동권의 인권 감수성도 영 형편없을 때가 많아. 공식적인 발언이나 연설 듣다가 손발이 오그라들 때가 자주 있거든. 그 쪽 전문가로서 운동권은 어때?

어디? 사노준?

이웃까지 모두 다.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과 장애인, 홈리스 운동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까?

인권 감수성의 필요성을 모르나? 알면서 못할 수 있겠지. 사회주의자, 좌파 그러면 이성의 화신이란 느낌이 들어. 사람을 움직이는 건 가슴인 거 같은데. 이성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가슴만으로도 사람이 움직이진 않지만, 이성으로 안다면 가슴이 동해야 사람이 변하는 거 아닐까? 그리고 사람은 충돌이 있어야 변하잖아? 난 작업하며 느끼는 게, “충돌없이 변화없다”야. 아, 이런 고민은 힘들어! 내 일상과 다른 것들을 학습했지만, 현실에서는 다른 상황을 만나게 돼. 그걸 연결하는 것도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지. 이론적으로 자본주의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것 보다 삶 속에서 고통받고 희망을 잃으며 세상을 바꾸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해지는 거 같애. 학생 때 학습하며 노동자가 혁명의 주력부대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표현이 지금은 부담스럽고 고민돼. 그래도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찾는 나는 지금 무지 행복해.
이 신문 “문제는 자본주의다” 자본주의가 끔찍하지만, 그걸 느끼는 건 우리가 자본주의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이겠지. 사회주의 운동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자본주의에 거부당했거나, 자본주의를 거부한 장애인과 홈리스들을 혁명의 주체로 함께 투쟁하는 거겠지. 어떻게 함께 할까? 하여간 공중부양을 할 순 없잖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