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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노한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고등학생시절부터였다. TV과외 대신 틈틈이 봤던 다큐멘터리에 재미를 느끼다 좀 더 지나서야 더 많은 형태의 다큐멘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큐멘터리 제목인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처럼 많은 것들이 TV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즈음 나에게 다큐멘터리는 세상을 이해하는 텍스트이면서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파장이었다.
광화문 네거리의 미디액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인권영화제와 미디액트가 사전 제작을 지원해 준 옴니버스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되면서부터다. 당시 편집 장비가 없던 나는 같이 작업한 감독들과 편집실에서 며칠씩 기거하며 작업을 했는데 덕분에 처음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의 두려움을 넘을 수 있었다. 아직도 그 편집실 구조가 기억에 난다. 이후부터 미디액트는 독립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내게 좀 긴밀한 공간이 되었다. 작업 때 마다 찾았던 녹음실, 차근차근 쌓여 가는 스텝들의 경험을 나눌 때의 즐거움은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주노 동자에 대한 다큐멘터리 이후의 일은 내게 참 중요한 분기점을 만들어줬다. 처음 장편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나서 마음이 허했다. 다큐멘터리 제작은 끝났지만 뭔가 계속 이주노동자와 같이 할 것이 필요했다. 그때 시작한 것이 미디어 교육이다. 조금씩 더워지는 날씨와 함께 조금씩 지쳐가는 이주노동자 명동성당 농성단과 미디어교육을 진행하게 되는데 그때도 미디액트가 함께 했다. 농성단에 맞는 교안을 만들고 장비를 실어 나르고 했던 기억. 그 이 후로 미디어교육을 해오지만 그 때 교육과정에서 만들었던 영상은 잊히지 않는다.
미디어교육이 끝날 때 즈음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인터뷰프로젝트도 미디액트에서 진행됐다. 많은 스텝들과 감독들이 참여한 프로젝트는 이주노동자 들의 안전과 활동을 위해 한밤중에 진행됐다. 그해 여름밤은 미디액트에서 촬영한 기억으로 가득하다.    많은 사람들이 촬영이 끝나고 첫차가 다닐 때까지 기다리며 보냈던 미디액트 로비, 회의를 했던 틈새 공간들, 그리고 한 여름 밤의 소나기 냄새. 기억들이 쏟아지는 쌀알처럼 자잘하게 들어찬다.
그리고 우연히 다큐멘터리 강의를 맡으면서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공부도 하고 수강생 사는 이야기도 들으면서 다큐멘터리에 대한 수다를 실컷 떨면서 좋은 인연들을 만들기도 했다.
이리 주저리주저리 미디액트와의 인연을 나열하는 것은 제작을 하고 연대활동을 하고 다큐멘터리 공부를 지속하게 해준 미디액트의 역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 역할 덕분에 나는 꿈을 꾸물꾸물 피우며 내 시간을 촘촘하게 채울 수 있었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이 내게만 소중하겠나? 그 공간을 지나쳤을 많은 이들이 그만큼 소중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올 많은 이들의 시간도 분명 소중했을 것이다. 그런데 형식적인 공모제로 미디액트와 인디스페스의 운영권을 빼앗아 전리품인 양 권력의 무리들에게 나눠지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황당하다 못해 분노가 인다. 그 많은 경험들을, 그리고 앞으로 있을 많은 경험들을 이제는 할 수 없다는 것이 화가 난다. 어떤 사업인지도 모르고 어떤 철학을 가지고 해야 하는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리를 틀고 있는 이상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의 꿈이, 생활이, 시간이 짓밟힐 것이다. 그 고통을 당해내야 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갑갑해 온다.

주현숙 (독립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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