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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갈을 지배세력의 재갈로

[김영수의 세상뒤집기]

이명박 정부에게 가장 어울리는 속담 하나가 있다. 말문이 막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한다는 의미의 속담인 ‘재갈 먹인 말 같다’이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공무원과 교사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관련법의 개정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공무원과 교사들은 정당에 가입하는 것,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것, 그리고 함께 모 이는 것조차 금지되고, 지배 권력의 재생산을 위해 개인의 사상이나 정치활동의 자유를 속박하라고 강요받는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가 임명한 장관들은 공무원이 아닌가? 이러한 공무원은 정치활동의 자유를 누려도 된다는 말인가? 많은 사람들은 선출직 공무원과 일반직 공무원 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당연시 한다. 대통령과 같은 공무원은 어마어마한 특권을 누려도 된다. 일반직 공무원은 대통령과 장관만 보좌하면 그만이다. 교사와 장관은 같은 별정직 공무원 이다. 장관은 정치활동의 자유를 누려도 되고, 교사는 그저 지배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역할만 담당하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차별을 정당한 것으로 여긴다. 우리는 권리의 차별에 너무 익숙하고, 국가나 권력의 폭력에 무기력하다. 대통령과 장관들은 그저 너무나 특별한 영역에 살고 있는 특별한 사람들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을 가진 특별한 세력에게 빌붙어 사는 것이 편하고 달콤하다는 유혹에 쉽게 무너진다. 세월이 가르치고 나이가 가르치는 삶의 진리란다? 이는 소위 기성세대들의 변명에 불과하다. 삶의 진정한 진리는 권리의 평등에서 찾아야 한다. 법의 정신이나 인간의 권리를 사회적으로 구현하려 한다면, 대통령이나 장관의 정치 활동 자유도 금지되어야 한다.
국가권력의 성격이 어떠하든지, 공무원과 교사들 은 국가에 의해 고용된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국가 서비스 노동을 담당하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노동자이다. 공무원과 교사들이 담당하는 노동자로서의 사회적 역할은 어마어마하다. 공무원들은 결코 중립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법과 정책조차 집행해야만 하는 주체다. 아주 협소한 의미에서 볼 때, 공무원은 곧 국가이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교사들은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를 사회적으로 재생산하고 계승하는 주체들이다. 이들이 특정 정당에 가입하지 않아도, 이 들의 노동 자체가 곧 정치적이다. 외교, 경찰, 그리고 군부의 역할과 기능 자체가 정치적이듯이 말이다. 국가권력의 공공적 노동 자체가 이미 정치적인 것이다. 이들의 노동에 정치적 재갈을 물린다는 것 은 곧 일반직이든 별정직이든 노동을 중지하라는 의미와 같다. 따라서 공무원과 교사들은 정치활동의 금지를 본질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 그것을 수용하는 순간, 자신들은 정치적 성격을 담지하고 있는 노동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무원과 교사들은 자신의 노동에 내포되어 있는 정치적 성격을 노동과정에서 드러내야만 한다.‘노동 중지권’이 그것이다. 이 방식이 가장 적극적인 차원의 정치활동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자신의 정치사상에 맞지 않는 노동, 지배 권력에 의해 권리를 박탈 당하면서까지 강요되는 노동, 그리고 부당한 법과 정책을 집행해야만 하는 노동 등을 중지하는 권리다. 노동 중지권보다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정치 활동의 권리도 존재한다. 국민의 생활현장에 밀착된 공무원과 교사들이 지배 세력의 부당한 법과 정책을 개정하는 권리다. 공무원과 교사들이 국가권력의 내부에서 노동자 국가의 국민적 진지를 구축하고, 공공서비스의 내용을 사회적으로 전화하는 정치활동의 주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권리를 확보하는 정치활동이야말로 공공적 노동자로서의 개인과 공공적 공무원으로서의 국가를 통일시켜 나가는 과정이 된다.   

김영수
 

김영수의 세상뒤집기는 20호로 마감합니다. 그동안 필독해 준 독자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또한 상상력을 자극해주고 항상 원고마감을 지켜줬던 필자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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