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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의 대표성?
국내 보수 언론들은 지난 6월 7일 유럽의회를 다퉈 보도하며 ‘우파의 승리’를 축하했다. 그러나 선거에서 우파가 승리했다는 제도언론의 호들갑은 기만이다. 외형상 집권 중도좌파/사민주의 세력의 패배가 곧 우파의 승리로 등치하는 데 속임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유권자의 60%가 선거에 불참했다. 이는 유럽의회 선거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유럽의회 선거는 대선이나 총선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의회 선거보다 낮은 투표율을 보여 왔다. 이번 선거도 예외는 아니었다.
40%의 대표성으로 제도정치 전체를 규정하는 것 자체가 기만이자, 현재 부르주아 정치에 대한 대중의 환멸 또는 최소한 무관심이 이번 선거의 핵심이다. 관심이 높다는 대선이나 총선의 경우도 대부분 50~60% 정도의 투표참가율인데 이러한 낮은 투표율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제도언론의 상투적 관행임을 고려한다면 최근 언론보도의 이면을 비판적으로 읽어낼 필요가 있다.
집권 중도좌파의 참패와 극우파의 득세
극도로 낮은 투표율을 전제로 하더라도, 이번 유럽 의회선거의 결과는 우파의 승리라기보다는 집권 중도좌파의 패배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제3의 길이 사기라는 것이 이미 대중적으로 확인된 상황에서 중도좌파의 신자유주의적 전향은 명백한 사실이며, 특히 경제위기 대책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영국,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중도좌파 집권당이 사상 최저의 득표율을 보였다고 해서, 우파적 의제가 승리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적 불만은 집권 중도좌파에 대한 심판을 통해 우파의 반사이익으로 귀결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려스런 점은 일부 국가에서 극우파 파시즘 세력이 유럽의회에 진출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네덜란드에서 반이슬람, 반유럽 극우정당이 16.4%(4석)를 득표했고, 영국에서 영국민족당(BNP)가 6.7%(2석), 그리스에서 7.2%를 얻었다. 이는 경제위기 국면에서 극우파의 반이민 인종주의 선동이 일정하게 득표로 연결되었음을 보여주며, 이번 선거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위험한 결과이다. 현재로서 이들이 곧바로 파시즘 세력의 대규모 준동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는 않지만 경제위기와 사회적 불안이 극우파시즘으로 왜곡될 개연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급진좌파의 현주소
중도좌파 왼쪽의 좌파세력은 이번 선거에서 특별한 가시적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녹색당이 전체 의석수를 60석으로 늘였지만, 최근 10-20년간 녹색당의 사민주의화로 인해 이들이 새로운 좌파형성에 새로운 주체로 결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한편 독일의 좌파당(Die Linke)은 기존 수준의 득표율에 머물렀고 중도좌파와의 선거연합으로 몰락했던 이탈리아의 재건공산당 역시 3.23% 득표에 머물러, 유럽의회 진출에 실패했다.
반자본주의 좌파 중에서는 포르투갈의 좌파블록이 의석을 유지했고, 트로츠키주의 계열의 아일랜드 사회당이 처음으로 의석(조 히긴스)을 내기도 했다. 반면 관심을 쏠렸던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 공산당(PCF)과 좌파당(PG)의 선거전선인 좌파전선(FG)이 6.3%의 득표로 4석을 확보한 반면, 독자적 반자본주의를 고수한 반자본주의신당(NPA)은 4.98%(840,713표)를 얻었지만 의석은 확보하지 못했다. 반자본주의신당(NPA)의 경우 비록 유럽의회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내외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신생 단일정당으로서 일정한 선거정치의 기반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의 경우 노동당의 몰락은 물론, 노동당 왼쪽의 좌파(NO2EU연합) 역시 1% 수준의 빈약한 성과에 머무른 반면, 극우파 영국민족당(BNP)의 사상 첫 유럽의회 진출이 좌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최근 좌파연합 Respect의 좌초 이후 분열된 영국 좌파의 무기력에 대한 안팎의 비판이 높다.
혼돈의 유럽정치 - 대표성과 정당성의 구조적 위기
유럽의회선거의 의미는 제한적이다. 2005년(프랑스와 네덜란드)과 2007년 (아일랜드) 유럽헌법은 국민투표에서 모두 패배했다. 따라서 유럽의회의 권한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이에 비해 행정부나 유럽중앙은행의 권한은 막강한 EU의 전반적 기조는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중적 저항은 거셀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유럽통합이 형식상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초국가적 권력기구와 국민국가 간의 긴장과 모순은 존재하며,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의 광범한 토대에도 불구하고 대의정치 수준에서는 배제되는 모순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번 선거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아직 경제공황의 초입국면에서 현 체제의 왜곡된 세력관계의 제도화와 통합유럽의 불투명한 미래가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원영수
동지들이 바로 미래다
누구도 오늘의 투쟁을 예상하지 않았다. 모두가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쌍용자동차 투쟁은 지금 노동자투쟁의 역사를 날마다 새롭게 쓰고 있다. 지난 노동자투쟁에서 쌓아온 경험의 정점을 이미 지나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새로운 고지를 향해 힘차게 진군하고 있다. 투쟁 양상, 투쟁 요구, 투쟁 의지 모두에서 그러하다. 쌍용자동차 투쟁은 당사자들에게는 현재의 문제지만 나머지 노동자들에게는 따라가야 할 미래가 되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정리해고는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동지들의 투쟁이 하루하루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고 말해왔다. 또 자본과 정권에 저항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비웃기도 했다. 그러나 쌍용차 노동자들의 강고한 투쟁의지, 완강한 점거파업은 자본을 당황케 했다. 쌍용차를 파탄으로 몬 주범이 바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왔던 지배세력과 자본 때문이라는 것을 폭로해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지배세력과 자본의 책임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공세적 대응이 최상의 방책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지금부터는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 회사는 한발 물러서 정리해고 유예와 무급휴직을 들고 나와 내부를 동요시키려 들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면서 책임을 외면하고 있지만 노동자투쟁이 완강해지면 질수록 공권력(국가 폭력)투입으로 적극적인 협박을 해댈 것이다. 이것들로도 먹히지 않으면 최종적으로는 청산 카드로 위협할 것이다. 그에 따라 이것들을 조정하고 타협시키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다양한 모습을 띠고 나타나게 될 게 뻔하다.
바로 여기가 문제다. 저들의 의도를 둘러싼 갑론을박에 빠지면 투쟁은 진전되기 어렵다. 회생 방안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형태의 ‘양보 안’이 등장하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경계해야 한다. 이미 한 차례 ‘기자 회견’ 소동을 겪은 바 있다. 공권력 투입 시기에 대한 지나친 예측은 또 다른 피로를 불러 올 수 있다. 어차피 맞닥트릴 상수로 상정하되, 공권력 투입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태도를 저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공권력 투입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폭력경찰을 앞세운 국가폭력은 더 많은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가뜩이나 민주주의 후퇴, 이명박정권의 폭력적인 집회진압과 노동자탄압이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우려할 것은 별로 없다. 오히려 정권은 더 심각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우리가 결정한다’는 원칙을 세우자
이제부터 ‘노동자 스스로가 결정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오직 채권자의 결정에만 의지하면 주도권을 뺏길 수밖에 없다. 정치권을 비롯해 다양하게 중재와 교섭창구의 역할을 자임하는 세력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줘도 안된다.
이와 같은 혼란과 교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나는 모든 결정권을 투쟁 대오가 움켜쥐어야 한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권력을 위임해서는 안 된다. 교섭을 포함한 일체의 것들은 오직 투쟁 대오의 뜻과 의지를 반영하는 역할에 충실하게 해야 한다. 또 하나는 ‘무급휴직’, ‘공권력’, ‘청산’이라는 저들이 쳐 놓은 경계를 무너뜨려야 한다. ‘국가 책임’, ‘공적자금 투입’, ‘국유화’ 요구는 그 자체가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방안은 아닐지라도 현실적으로도 충분히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있으며 경계를 넘어서기 위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안을 제출하는 것은 저들의 책임이며 노동자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당한 최소한의 요구를 져버리고 책임을 떠넘기려 하거나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면 그 때는 떨쳐 일어나 권력자, 주권자로서 스스로 대안을 새롭게 세워 나가야 한다.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쌍용자동차 투쟁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지금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그에 따라 쌍용자동차의 존속 여부 및 그 형태가 결정될 것은 물론, 더 나아가 한국사회 전체 노동자의 운명과 노자 관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 북핵실험, 한미정상회담으로 정국이 떠들썩하지만 실제 자본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 파업이 정세 한복판에 놓여 있다. 이 투쟁의 승리가 쌍용차 노동자들은 물론 전체 노동자 투쟁의 전망을 밝혀낼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쌍용차노동자들의 요구, 원칙을 움켜쥐고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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