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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상하이 자동차가 쌍용차를 인수할 때만 하더라도 1,700여명이던 비정규직을 300명, 500여 명씩 순차적으로 자르더니 작년 10월27일 쌍용차 사 쪽은 정규직 전환배치를 이유로 비정규직에 대한 일방적인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집단구조조정 저지를 목적으로 몇몇 비정규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작년 10월 22일 비정규직지회(아래 비지회)를 만들었다. 비지회는 출근선전전과 천막농성으로 항의하고, 고용안정 쟁취를 위해 원 하청 공동투쟁을 진행했고, 옥쇄파업까지 함께 했다.
77일 간의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뒤 있던 8월5일 노사협상에서 회사는 “사내하청비정규직 19명에 대한 10월내 고용”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차일피일 미뤄지다 형식적인 업체 면접으로만 그쳤고,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면접을 진행한 업체는 에스케이, 삼미, 영우, 승진, 우진 등 5개 업체이고, 면접대상은 총 18명(1명은 스스로 면접 거부)이었다. 면접에서 업체들이 보인 태도는 “우리 업체는 일이 너무 위험하고 힘들다. 작업하다 심각한 부상이나 죽는 경우도 있다.”, “들어오면 수습사원으로 처음부터 해야 한다. 그나마도 지금은 자리가 없으니 기다려라”, “10월 말까지 연락 주겠다. 솔직히 TO는 없다. 된다는 보장도 없다. 연락 없으면 떨어진 줄 알아라”, “원청에서 면접하라고 해서 형식적으로 하는데, 여기에 꼭 들어와 하는 것이냐?”, “일자리 없다. 우리 업체는 4년간 계약했는데, 지금 일하는 사람들이 자연 퇴사해야 TO 생긴다. 그리고 임금도 전에 받던 것 보다 적을 것이다 기다려라” 등이었다. 업체의 면접은 원청의 생색내기, 형식적인 과정이었을 뿐이었다. 애초 회사는 옥쇄파업을 함께 진행했던 비지회 조합원들에 대해 고용승계의 의사가 전혀 없음이 확인되었다.
비지회는 면접 뒤 쌍차지부를 통해(지부를 통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원청과 비지회의 직접교섭창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문으로 “다시 한 번 고용보장 약속이 10월내에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 업체에 TO대책을 마련하고, 면접 및 채용 그리고 업무배치 과정에서 부당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조치”를 촉구했다. 현장과 분리되지 않는 비지회 활동을 위해서는 조합원들의 고용승계가 현재로써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한 1인 시위와 피켓팅, 기자회견, 집회 등의 투쟁의 준비를 하고 있다.
비지회는 새로운 투쟁의 과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구체적인 방안은 조합원들의 논의를 통해 만들어가겠지만, 현장진입이 가로막힌 상황에서는 비지회 조합원들의 단결을 유지하고 가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결코 쉽지 않은 또 다른 싸움이 되겠지만, 비지회 조합원들은 민주노조 사수와 고용보장을 위해 다시금 투쟁의 깃발을 올렸다. 많은 동지들의 연대와 지지가 절실하다.
- 파견법 철폐투쟁의 불꽃을 다시 점화하는 기륭비정규 투쟁의 치열한 시간들을 생각하며
지난 10월 20일을 전후하여 우리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두 가지 사건과 마주하게 되었다.
하나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골리앗투쟁의 현장에서 임태희 노동부장관과 비정규직의 투쟁을 해태하고 기각함으로써 민주노총에서 제명당한 현대중공업 노조간부와 몇몇 조합원이 집행부 선거를 목전에 두고 이른바 노사화합 선언이란걸 연출한 서글픈 촌극을 관람하게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또 하나는 그리고 우리의 심장을 두드리며 노동자의 양심을 흔들어 깨운 다른 하나의 사건은 바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빼앗긴 철거민들과 살인적인 국가폭력에 맞서 77일간의 정리해고 저지투쟁의 끈을 놓지 않았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비정규직 전면철폐의 요구를 걸고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던 98일간의 장기단식을 멈추지 않았던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로의 어깨를 걸고 “돈이 지배하는 세상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건강한 노동이 살아 숨 쉬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작지만 큰 또 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철의 노동자로 불리며 수천 명의 전사를 길러냈던 한 시대의 상징! 골리앗이 조합주의와 즉자적 이해에 기반한 경제주의, 그리고 운동을 녹슬게 하는 관료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저렇게 무너져 가는 동안 가리봉 5거리의 구석진 작은 공장에선 야생초처럼 스스로 단련된 노동자들이 여성 비정규직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성큼 성큼 공장의 울타리를 넘어 지역으로 지역을 넘어 광장으로 투쟁의 불씨를 퍼뜨리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기륭전자 비정규노동자들이다. 그녀들은 불법파견에 맞선 투쟁을 거쳐 직접고용 정규직화 쟁취투쟁을 넘어 비정규직 철폐투쟁 일반의 요구를 자신들의 당면투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지극히 길고 험난한 과정을 통과하고 있었다.
대중의 관심을 재보선이나 물적 이해가 직접 걸린 세종시를 비롯한 토건의제, 행정구역 통합 논의 등으로 유도하면서 총자본은 두 개의 칼날을 숨긴 채 슬그머니 근기법상 정리해고 요건완화와 [근로자파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바꿔 파견업종을 무한 확대하려는 의도를 본격화 하고 있다. 그들이 숨긴 비수는 다름아닌 공무원노조와 전교조를 비롯한 민주노조운동의 씨를 말리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복수노조를 형식상 허용하면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여 노동조합운동을 입맛에 맞게 길들여 철저히 체제 안에 가두어 두려는 치밀한 계산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노사관계 로드맵 안에 파견업종 무한확대라는 자본에 바치는 또 하나의 선물이 숨겨져 있다. 이럴 때 다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최전선에 나서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륭투쟁에 박수만 보내고 있을 순 없다. 우리 자신이 스스로 기륭노동자가 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그들과 함께 자본주의 체제모순의 한 가운데 서서 계급분할을 강화하는 파견업종 확대를 비롯한 비정규 불안정노동의 일반화에 맞서 노동유연화의 이데올로기를 현실에서 지워버리기 위한 투쟁의 밑불이 될 수 있을때 비로소 동지의 숨결이 변혁의 맥박으로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우리 다시 신발 끈을 단단히 묶자. 그리고 차가운 거리를 우리들의 체온으로 녹이며
비정규직 전면철폐의 꿈을 더불어 함께 눈앞의 현실로 만들어 가자. 그 길에 그들, 그녀들이 함께 설 것이다.
경찰의 날 하루 전인 10월 20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용역깡패의 하수인 폭력경찰 추방의 날 선포” 기자회견 및 집회에서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이 “정리해고, 비정규직으로 노동자 살해”라고 적힌 종이를 태우고 있다.
완성차 최초로 생산직 100% 비정규직 공장,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이주노동자로 현장이 채워지는 동희오토! 그런 현실을 소개하는 것도 정말 지긋지긋하다. 2005년 9월 민주노조를 건설한 이후, 횟수로 4년!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투쟁의 연속이었고, 어쩌면 전망이 없는 투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부터 진짜 싸움을 준비 중이다.
작년 9월, 어용노조 내에서 민주화 투쟁을 전개하던 4명의 동지들! ‘무언가라도 해보자’라고 시작한 촛불문화제가 이제 1년이다. 촛불문화제를 매주 진행을 하면서 대왕기업에서 민주노조를 건설했고, 폐업투쟁을 전개했다. 작년 12월 31일, 최선을 다했지만 힘이 미치지 못하여 21명의 해고자를 남긴 대왕기업 폐업투쟁을 떠올리면 지금도 치기 떨린다.
2009년 1월, 치열하게 금속노조의 깃발을 사수하던 동지들과 동희오토 해복투, 그리고 대왕기업 해고자들이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로 단일한 대오를 형성했다. 폐업투쟁의 패배감을 추수리고 노동조합으로서의 조직체계를 갖추어나가는 내부 정비의 시간이 있었다. 이후 다시금 현장을 조직하고, 우리 투쟁의 의미를 알려내는 투쟁을 동시에 전개했다.
현장을 조직하기 위해서 매주 서너 차례 유인물을 배포하고, 007작전같은 현장 조직화 사업을 전개했다. 우리 투쟁의 의미를 알려내기 위해서 대대적인 지역 선전전과 모터쇼 선지시위, ‘질주’ 투쟁이 있었다. 지역에 들어서는 공장마다 100% 비정규직 공장이라는 현실에서, 서산 시청 앞에 천막을 치고 지자체의 책임을 요구해왔다.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의 싸움이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투쟁을 하면 할수록 해고자만 늘어가는 현실이 너무나 절망스럽다. 하지만 ‘절망의 공장을 희망의 공장으로’ 바꿔내기 위한 우리의 투쟁은 멈출 수는 없다. 우리들의 분노와 이 투쟁의 의미가 그러하며, 함께하고 있는 동지들이 있어 더욱 그러하다.
이제 동희오토를 바꿔내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들의 삶을 위해서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업체 바지사장, 그리고 유령회사와 다름없는 동희오토! 모닝 대박으로 상초유의 흑자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의 실질적 사용주, 현대차 정몽구회장! 이제는 현대기아차 그룹과의 전면적인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리허설이다. 투쟁을 하면서 단련된 우리들, 이제는 제대로 된 진짜투쟁을 하려고 한다. 그 길이 조금은 두려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을 위해서, 지금도 현장에서 참담하게 착취당하고 있는 우리 동지들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투쟁이다. 그리고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결의로 충만해 있다. 자, 이제 시작이다!
지난 8월 10일 ‘경기공립유치원임시강사’들은 살인적 더위가 한창인 오후 2시 경기도교육청에서 삼보일배를 시작했다. 삼보일배 요구안은 8월 3일 경기도교육청 강제연행에 대한 사과 및 상시근로를 전제로 한 차별철폐 근로계약서 체결, 특별채용을 위한 정규직화 특별위원회 구성이었다. 살인적 더위에 많은 분들이 실신하고 탈진하는 등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졌다. 다음은 삼보일배에 참여했던 한 분의 인터뷰이다.
“금방이라도 숨통이 끊어질 것 같다. 임시강사라서 해야 할 일도 참 많다. 그러나 세상에 태어나 3보1배를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의 결의를 다지기 위한 3보1배의 기회가 있었기에 끈끈한 동지애를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고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김상곤 앞에 당당하게 나설 것이다. 가슴이 조여 오는 듯 한 통증만큼이나 뜨거운 가슴속의 열기가 복받쳐 오르지만 비정규직 철폐! 20년의 상시근로 인정을 위한 우리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투쟁!” 유치원임시강사노동자
‘경기공립유치원임시강사’는 공립유치원에서 적게는 10년 많게는 20년을 비정규직으로 근무해온 분들이다. 올 상반기 정규교원들과의 차별로 인한 육아휴직과 병가문제가 해임으로 연결되는 문제가 발생했고 분노는 다시 투쟁의 깃발을 올리게 했다.
차별철폐 요구로부터 시작해서 실질적 사용자인 경기도교육청과 정규직화 근로계약서 체결 및 특별채용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면서 김상곤 교육감과의 공식적 면담과 교섭을 요구하며 투쟁해왔다. 이 과정에서 경기도교육청에 요구를 갖고 있는 경기도 내 교육주체(장애인야학,경기평등학부모회,경기교사현장모임)들과 함께 경기교육주체연석회의를 구성해 함께 투쟁하고 있다.
7월 28일 김상곤 교육감과의 첫 번째 공식적 면담이 어렵게 성사되었으나 유치원임시강사 요구안에 대한 수용은 전무했다. 그래서 8월 3일 경기도교육청에 모여 재차 면담 요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돌아온 결과는 수원 중부서로 전원연행이었다. 덕분에(?) 유치원임시강사 선생님들은 진보교육감이라는 김상곤 교육감의 행태에 분노하면서 중부서 안에서 갖은 인권탄압 상황 속에서 24시간동안 유치장에 함께 하면서 끈끈한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연행 사태이후 시민사회단체들과 인권탄압에 대한 대응도 하고 있다. 연행사태와 삼보일배 이후 임시강사 문제에 대한 지역과 여론의 관심은 오히려 더 커진 것 같다. 임시강사들이 주장하는 교섭에는 모자라지만 교육청 표현의 실무협의도 시작됐다.
물론 앞으로의 과정도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하고 있다. 그러나 ‘침묵하는 자에게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임시강사는 요구하고 투쟁하는 당당하고 자랑스런 유치원선생님이고 교육노동자들이다. 앞으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임시강사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또 지켜봐주길 바란다.
프리다 | 경기교육주체연석회의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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