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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쌍용차 비정규노동자들이 다시 투쟁의 깃발을 올렸다

상하이 자동차가 쌍용차를 인수할 때만 하더라도 1,700여명이던 비정규직을 300명, 500여 명씩 순차적으로 자르더니 작년 10월27일 쌍용차 사 쪽은 정규직 전환배치를 이유로 비정규직에 대한 일방적인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집단구조조정 저지를 목적으로 몇몇 비정규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작년 10월 22일 비정규직지회(아래 비지회)를 만들었다. 비지회는 출근선전전과 천막농성으로 항의하고, 고용안정 쟁취를 위해 원 하청 공동투쟁을 진행했고, 옥쇄파업까지 함께 했다.

77일 간의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뒤 있던 8월5일 노사협상에서 회사는 “사내하청비정규직 19명에 대한 10월내 고용”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차일피일 미뤄지다 형식적인 업체 면접으로만 그쳤고,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면접을 진행한 업체는 에스케이, 삼미, 영우, 승진, 우진 등 5개 업체이고, 면접대상은 총 18명(1명은 스스로 면접 거부)이었다. 면접에서 업체들이 보인 태도는 “우리 업체는 일이 너무 위험하고 힘들다. 작업하다 심각한 부상이나 죽는 경우도 있다.”, “들어오면 수습사원으로 처음부터 해야 한다. 그나마도 지금은 자리가 없으니 기다려라”, “10월 말까지 연락 주겠다. 솔직히 TO는 없다. 된다는 보장도 없다. 연락 없으면 떨어진 줄 알아라”, “원청에서 면접하라고 해서 형식적으로 하는데, 여기에 꼭 들어와 하는 것이냐?”, “일자리 없다. 우리 업체는 4년간 계약했는데, 지금 일하는 사람들이 자연 퇴사해야 TO 생긴다. 그리고 임금도 전에 받던 것 보다 적을 것이다 기다려라” 등이었다. 업체의 면접은 원청의 생색내기, 형식적인 과정이었을 뿐이었다. 애초 회사는 옥쇄파업을 함께 진행했던 비지회 조합원들에 대해 고용승계의 의사가 전혀 없음이 확인되었다.

비지회는 면접 뒤 쌍차지부를 통해(지부를 통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원청과 비지회의 직접교섭창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문으로 “다시 한 번 고용보장 약속이 10월내에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 업체에 TO대책을 마련하고, 면접 및 채용 그리고 업무배치 과정에서 부당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조치”를 촉구했다. 현장과 분리되지 않는 비지회 활동을 위해서는 조합원들의 고용승계가 현재로써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한 1인 시위와 피켓팅, 기자회견, 집회 등의 투쟁의 준비를 하고 있다.
비지회는 새로운 투쟁의 과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구체적인 방안은 조합원들의 논의를 통해 만들어가겠지만, 현장진입이 가로막힌 상황에서는 비지회 조합원들의 단결을 유지하고 가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결코 쉽지 않은 또 다른 싸움이 되겠지만, 비지회 조합원들은 민주노조 사수와 고용보장을 위해 다시금 투쟁의 깃발을 올렸다. 많은 동지들의 연대와 지지가 절실하다.
 

한윤수(쌍용자동차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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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쌍용차공투본 아직 역할이 남아

경기지역 차원에서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엄호하기 위한 활동이 다양하게 전개됐다. 그중 4월 15일 출범한 ‘경제위기 고통전가 반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저지! 경기지역투쟁본부(아래 쌍용차공투본)’는 쌍용자동차의 구조조정안이 발표된 직후인 4월 9일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엄호 하고자 지역의 각 세력들을 모아 대책기구건설을 위한 초동모임을 발 빠르게 진행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쌍용차공투본은 그 내에서 평가가 진행 중이고, 사법부의 수사역시 진행 중이라 세세하게 다루기는 어렵다. 대략적으로 쌍용차공투본은 첫째 쌍용차 실무지원활동으로 투쟁력을 보강하고자 했고, 비중 있는 역할을 수행했다. 둘째 보다 직접적인 목표로 공황시기 지역 공동투쟁전선 구축으로 강력한 지역투쟁을 만들고자 했다. 쌍용차공투본은 지역 연대투쟁 전선의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연대세력들이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역총파업이나 직접적인 대중투쟁을 조직하지는 못했다. 투쟁의 확대 강화가 미진했던 부분은 다양하게 짚어봐야 하나, 대중조직 단위보다는 정치조직이나 단체들이 중심으로 구성된 한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쌍용차 976인 동조단식, 공장 앞 촛불집회, 휴가시기 쌍차투쟁단 등 연대의 확산을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쌍용차 투쟁의 승패는 자본과 정권에게는 사활을 건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공장점거파업이 예상보다 치열하게 전개되자, 사측은 투쟁주체의 분열을 위한 구사대의 활약(?)과 쌍용차 공투본에 결합한 활동가들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으로 연대의 고리를 끊고자 했다. 구사대의 공장 진입 성공 이후 쌍용차공투본에 결합한 활동가들을 건조물 침입, 퇴거불응, 업무방해 등을 이유로 기소하고, 50억에 이르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체포 및 구속수사를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탄압은 쌍용차공투본의 활동을 일정기간 위축시키기도 했고, 후속사업을 펼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도 투쟁한 주체들인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지속되고 있다. 간부들의 대량구속, 민주노총 탈퇴 투표, 사측의 합의사항 불이행, 조합원들에 대한 줄소환이 이어지면서 지부활동과 정리해고특별위원회의 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파업을 지속하던 기간에도 연대는 절실한 문제였지만, 직접적으로 탄압받는 지금이야말로 다방면의 연대와 지원이 필요하다. 쌍용차공투본은 몇 차례 평가토론을 거치면서 이후 과제와 후속사업을 논의하고, 이를 위한 조직적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로 했다.
공황시기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에 달하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지금 같은 시기에 자발적인 연대와 지역투쟁전선을 구축하려는 쌍용차공투본과 같은 시도는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하다. 공황기 노동자들의 투쟁이 지속되는 한 지역 연대전선의 강화는 계속 모색되어야 한다.

보라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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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적 지역연대투쟁, 지금 복원하자!

품앗이가 아닌 나의 투쟁, 우리의 투쟁을 위한 연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흔히 ‘77일간의 영웅적 투쟁’으로 표현된다. ‘영웅적인 투쟁’이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정말 잘 싸웠다. 그들의 투쟁은 협상의 결과와 상관없이 노동자 민중운동진영에 많은 교훈과 가르침을 남겨주었다. 특히 연대투쟁에 대한 중요성과 무너진 지역연대전선을 시급히 복원해야 한다는 중차대한 과제를 안겨주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수많은 투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투쟁에서 지역대책위, 지원대책위, 공투본 등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정당 등이 함께 하는 연대체를 꾸리고 공동의 대응을 모색하며 함께 싸워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대책위, 공투본 등의 연대체는 투쟁을 단순지원하고, 지지를 표명하는 선언적 의미로서의 연대체가 되거나 정책자문단위 혹은 정치적으로 문제를 풀기위한 창구의 역할을 하기 일쑤가 되었다.

우리가 쌍용자동차투쟁에 함께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강력한 지역연대전선을 구축하고 위력적인 지역투쟁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쌍용자동차투쟁이 갖는 사회적, 정치적 의미는 엄청나게 커다란 것이었고, 이명박정권의 탄압과 폭력적 공세가 얼마나 거셀지 예측되는 상황에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만의 투쟁으로 방치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을 대부분의 운동진영이 내렸다.

따라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지원하고 정당함을 호소하는 정도의 대책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똑같은 마음으로 일주체가 되어 함께 투쟁할 공동투쟁본부가 필요했다. 여기서 쌍용자동차 공동투쟁본부가 어떻게 활동했는지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끊임없이 투쟁의 주체로 서기위해 노력했고 지지, 지원이 아닌 하나의 주체로 투쟁을 만들어가고자 힘썼음을 밝히고 싶다.

그러나 투쟁의 막바지, 학살에 가까운 폭력침탈 속에서도 위력적인 지역투쟁전선은 만들어내지 못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거리에서의 강력한 투쟁으로 경찰과 구사대, 그리고 용역깡패가 함부로 도발할 수 없도록 해줄 것을 수없이 주문하고 갈구했었지만 우리의 연대는 고작 헬기로 최루액을 들이붓는 상황과 경찰이 도장공장 옥상위에서 살인폭력을 저지르는 것을 밖에서 바라보고 발만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상황이었다.

올 봄 쌍용자동차의 대량해고와 구조조정 이야기가 가시화될 때, 2646명의 정리해고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그리고 77일간의 처절한 투쟁을 벌여나갈 때, 운동진영에서는 쌍용자동차 투쟁을 전대미문의 투쟁이라 말했고, 이명박정권의 무덤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으며, 노동자계급의 투쟁전선을 형성하여 이후에 전국적으로 벌어질 구조조정을 막아내야 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결국 지역연대전선, 전국적 연대투쟁은 위력적이지 못했고 오히려 초라하기까지 했었다.

우리의 투쟁은 계급간의 투쟁이다.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자본가들과 노동자, 민중들 사이의 투쟁이다. 그러하기에 정치적 연대가 아니라 계급적 연대, 남의 투쟁에 품앗이 하는 연대가 아니라 나의 투쟁, 우리의 투쟁을 하기 위한 연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전선이 확장되어 가는 초석은 바로 강력한 지역연대전선이며 이를 통해 계급적 투쟁전선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쌍용자동차 투쟁에는 그 어느 투쟁보다 많은 연대가 있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절실했던 거리에서의 연대는 턱없이 부족했다. 쌍용자동차 투쟁을 거울삼아 우리는 지금부터 계급적 지역연대전선의 복원에 대하여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썩어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 심화될 노동탄압과 민중생존권 말살에 대하여 우리는 계급적 연대투쟁으로 맞서야 승리할 수 있다. 쌍용자동차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연대’를 바라고 있다. 지금 당장 계급적 지역연대전선을 복원하자.
 

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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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켜온 자, 진정 누구입니까?

어째서 당신이 민주주의입니까?

 
독재자 박정희가 대선 경쟁자를 죽이려 했고, 연이은 군사구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이 납치를 벌인 것도 사실이다. 몇 년간 옥살이를 한 것도, 사형선고를 받은 것도, 남북정상회담을 이뤄낸 것도,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애도가 사실을 미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를 ‘권력장악에 성공한 한 정치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왜곡하는 것까지 허용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80년대 시퍼런 군사독재 시절에 목숨을 바쳐 민주화 투쟁을 벌여냈던 숫자조차 셀 수 없는 수많은 열사들이, 자본가들의 납치, 집단린치에도 굴하지 않고 ‘평등세상’을 외치며 투쟁해왔던 노동자들이 바로 한국 사회 민주주의를 지켜왔던 주인공들이다. 
 
노동자민중 투쟁의 열매를 독식한 정치인
 

80년 광주민중항쟁, 87년 6월 항쟁, 노동자대투쟁, 96-97노동자총파업은 한국사회의 정치-경제민주주의가 누구 때문에 만들어졌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민중들의 피와 땀이 서린 이 투쟁의 성과는 언제나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독차지했고 노동자민중의 삶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또한 그가 정권을 잡았을 때는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던 노동자민중의 삶을 자본가들에게 저당 잡혀놓고 그 대가로 정치권력을 유지해왔다. 역대 정권들 못지않은 노동자탄압,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비민주악법의 존속, 850만 비정규직을 탄생케 한 정리해고-파견법 제정을 통해 경제위기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법제도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김대중이다. 노동자민중 투쟁으로 만들어진 민주주의 열매를 독식한 정치인. 그가 바로 김대중이다. 

 

민주주의, 노동자민중의 투쟁의 역사 

 

‘해고는 살인이다’ 그 외침 속에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자본가들의 살육전쟁을 폭로한 자들이 있었다. 이명박정권이 말하는 ‘선진적인 노사문화’란 바로 노동자들에게 ‘죽을래, 항복할래’ 둘 중의 하나라는 것도 가르쳐줬다. 국가폭력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보게 해준 것도, 그리하여 국가폭력과 자본가들의 살육전쟁에 맞서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하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준 것도 바로 쌍용차 노동자들이다. 

이 투쟁 속에서 6명이 생을 마감했다. 지금도 심리적 공황과 당시 공포에 떨고 있는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있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도 65명에 달한다. 매일 반복되는 경찰의 협박수사에 못 이겨 자살을 시도하는 일도 벌어졌다. 모진 탄압에도 죽음을 각오하고 ‘동료를 죽이는 것이 아닌 노동자가 함께 사는 길’을 원했던 그들이 투쟁이, 열매만을 독식해왔던 민주인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민주주의 투쟁이다. 진정 ‘당신이 민주주의입니다’라는 말은 바로 노동자민중에게, 특히 2009년 77일간의 투쟁을 벌여냈던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지금도 살인진압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용산 철거민들에게 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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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투쟁, 다시 연대를 조직해야 한다

“쌍용자동차는 더 이상 흔들릴 자격이 없다”
사측의 광고 카피 문구다. 맞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측과 이명박 정권은 최소한 최종 ‘협상안’만이라도 일단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회사와 이명박 정권은 지금 가장 앞장서, 가장 치졸하고 악랄하게 쌍용차 노조와 노동자를 마구 뒤흔들고 있다.
점거(옥쇄)투쟁의 피로와 살인진압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에게 그 어떤 위로나 조금의 쉴 틈은 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마지막 숨통마저 끊어 놓으려는 압박과 탄압을 거세게 가하고 있다. 최종 ‘협상안’은 그나마 이미 휴지 조각이 되어가고 있다.
 
쌍용차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점거(옥쇄)파업을 하고 있는 중에는 몸은 힘들어도 투쟁에 대한 기대가 있었으며 노동자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투쟁이 한창일 때는 전국이 흔들렸으며, 사측과 이명박 정권을 압박할 수 있었다. 그렇다. 쌍용차 투쟁 때문에 참으로 오랜만에 전국의 노동자대중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투쟁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동안 노동자투쟁에 실망했던 다수의 민중들에게도 노동자투쟁의 가능성과 기개를 보여주었다. 이것만으로도 쌍용차 투쟁이 남긴 성과는 차고 넘친다.
바로 사측과 이명박 정권이 가장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도 이것이다. 비록 살인진압으로 간신히 투쟁을 돌려세우긴 했지만 자본가계급과 정권, 보수수구언론을 비롯한 지배계급이 겪었을 공포는 겉으로 드러난 것 이상이다. 그 증거가 바로 지금 자행되고 있는 압박과 탄압이다. 저들이 자신감이 있다면, 노동자투쟁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쌍용차 투쟁이 미칠 여파가 크지 않을 걸로 판단한다면, 쌍용차 투쟁이 단지 일회적인 것에서 그칠 거라고 진단한다면 무엇 때문에 그토록 발악을 하겠는가?
민주노조운동 진영, 모든 ‘진보적’ 정치사회단체는 다시 연대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마침 민주노총은 운동진영을 향해 ‘이명박 정권 퇴진 투쟁본부’ 결성을 제안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실천은 바로 쌍용자동차 투쟁에 대한 연대투쟁을 조직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쌍용차 투쟁이 남긴 성과를 무화시키거나 도로 빼앗아가려는 자본과 정권의 의도를 그대로 놔둔 채 ‘대타협’ 정신을 아무리 외쳐도, ‘퇴진 본부’를 결성하겠다고 나서도 실질적인 연대투쟁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실효를 거둘 수 없다. 쌍용차 투쟁/노조/노동자를 방어하지 않고는, 쌍용차 투쟁을 살려내지 않고 어디서, 어떻게 이명박 정권 퇴진 투쟁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겠는가? 연대투쟁전선을 조직해야 할 긴급한 이유는 이미 수 없이 널려 있으며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금은 작은 연대라도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힘 있는 연대투쟁을 조직하기에는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투쟁에 나섰던 주체들에게도 정비할 시간과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아예 손 놓고 기다려서는 안 된다. 작은 연대라도 다시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이후 벌어질 매각 등의 문제를 비롯해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때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지금은 연대투쟁이 먼저 준비되고 시작되어야 하는 국면이다
 

고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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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야 할 단어, 지울 수 없는 기억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77일간 파업투쟁은 많은 것을 남겼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정당한 싸움을 왜곡/비방하는 공격은 멈추질 않고 있다. 또 민주노총 위원장마저 이들의 싸움을 자본과 닮은 논리로 평가절하하는 모습은 씁쓸함을 넘어 너무나 고통스럽다. 짧은 지면에 쌍용차노동자들의 투쟁이 남긴 것을 다 담아내기는 어렵지만, 장면, 장면을 통해 이 투쟁이 남긴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노동자투쟁에 연대하지 못했다. 반성해야 한다. 나가면 정말 열심히 연대하러 다니자”(분반토론) “동지들에게 우리의 강고한 의지와 결의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금속노조 확대간부 파업) “며칠만에 완전 바뀌었다!” (금속노동자) 사진제공 미디어충청

 

 

사상초유의 2,646명 정리해고, 86일 굴뚝농성, 77일 점거농성, 투쟁기간 6명의 죽음. 이래도 해고가 살인이 아닌가? 사진제공 미디어충청

   

쌍용차 노동자투쟁은 ‘죽은자’ 대 ‘산자’의 투쟁도 아니고, ‘노노간의 갈등’도 아니다. 이 투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넘어 투쟁하는 노동자와 자본 간의 싸움이었다. 사진제공 미디어충청

 

 

 

음식물 중단 21일, 물·가스 중단 18일, 단전 5일, 의료진 차단, 용역·구사대·전투경찰의 합동작전, 최루액, 3단전자봉, 테이저건, 고무총탄, 헬기까지... 구속자 65명. 정권과 자본의 폭력은 정말 ‘순수’했다. 그러나 폭력보다 더 두려운 것은 우리의 절규와 함성소리에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였다. 사진제공 미디어충청

 

우리의 아픔. ‘외부세력’ 이데올로기보다 연대의 미약함이 공장 안의 노동자들을 고립되게 만들었다.

 

쌍용차파업 가족대책위. 노동자의 가족들도 투쟁의 한 주체로 누구보다 앞장섰다.

 

파업이 끝나고 한상균 지부장이 담화문을 읽을 때 비가 내렸다. “그렇게 기다리던 비가 이제 오네요” 

“쌍용차 노동자파업은 정당했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진제공 미디어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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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투쟁, 쓰라린 패배, 남겨진 과제

위대한 투쟁

 

77일간의 공장점거파업, 84일간의 굴뚝농성. 그냥 싸운 것도 아니다. 물, 식량, 의료진, 전기 차단이라는 반인권적 상황에서, 구사대-용역-경찰 살인적 진압과 청산 협박 속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은 싸웠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말잔치뿐인 보잘 것 없는 연대에도 불구하고,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깃발을 결코 내리지 않았다. 도장 2공장으로 토끼몰이 식으로 밀려난 후, ‘죽음이냐-항복이냐’란 무시무시한 협박 앞에서야 그들은 ‘죽지 않기 위해’ 사측 안을 수용했다.

 

그들은 “원하청 공동투쟁이 이뤄진 것 그것만으로도 승리했다”(서맹섭 비정규부지회장)는 말대로, 파업을 통해 정규-비정규간의 강고한 벽을 허물면서 같은 동지(노동자)임을 확인했다. 지도부의 조합원에 대한 확고한 신뢰, 헌신성, 투쟁의지를 통해, 조합원이 주체가 된 투쟁과정을 통해, 예상을 뛰어넘는 투쟁을 조직했다. 쌍용차투쟁이 위대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쓰라린 패배 
 
그러나 쌍용차 투쟁은 사측의 정리해고안을 수용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왜 인가? 우선 상상을 초월한 국가폭력을 통한 ‘죽음이냐-항복이냐’란 강요했기 때문이다. 쌍용차 투쟁의 패배 원인을 놓고 노동운동 안에서조차 ‘옥쇄파업이라는 전술상의 오류’, ‘강성노조’, ‘정리해고 반대라는 반대에 갇힌 투쟁’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이는 정권이 저지른 국가폭력에 면죄부를 줄 뿐이다. 
 

오히려 점거파업전술로 쌍용차투쟁은 거점을 형성해 투쟁할 수 있었으며, 강력한 투쟁으로 ‘해고는 살인’임을, 그리고 국가의 계급적 본질과 폭력성을 만천하에 알려냈다. 쌍용차투쟁을 평택(지역) 문제에서 전국적 문제로 떠오르게 하고, 각계의 연대를 확산시킬 수 있었다. 정리해고 대상을 부분적으로 줄일 수 있었던 것도 강력한 투쟁 때문이었다. ‘반대에 갇힌 투쟁’ 때문에 사업장에 갇힌 투쟁이 되어버렸고 패배했다는 평가도 어불성설이다. 

 

쌍용차투쟁은 경제공황 아래 ‘구조조정(정리해고) 관철-노조 죽이기’를 통해 자본의 위기를 탈출하고 자본의 천국을 만들려는 정권의 의도에 맞서 정리해고 분쇄를 분명히 함으로써, 오히려 단위사업장 투쟁을 넘어 총노동의 투쟁이 되었다. 그리고 ‘기업과 경제는 자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의 생존과 삶을 위해 운영되어야 함’을 제기하였다. 

 

또 누군가는 말한다. ‘국가폭력에 맞설 힘이 없기 때문에, 정리해고 분쇄투쟁은 승리할 수 없다.’ 그런가? 만약 쌍용차투쟁이 금속노조, 나아가 민주노총의 투쟁으로 확산되었다면, 진보정당들이 반MB연합전선 형성과 선거에 집중하는 노력만큼 쌍용차투쟁의 엄호와 확산, 발전에 힘을 기울였다면, 이명박정권이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주체 내적으로 볼 때 패배의 원인은 ‘노동자 죽이기-구조조정과 노조 죽이기’를 밀어붙이는 자본과 정권의 공격에 맞서 ‘총노동의 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한 노조운동과 진보정치운동에 있다. 

   

남겨진 과제

  

쌍용차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투쟁 이후에도 정권과 자본의 탄압과 노조 죽이기 공세는 예상을 뛰어넘어 거세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한 즉각적, 총체적 대응이 쌍용차노조를 넘어 전체 운동진영 차원에서 시급히 조직되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발본적 성찰과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쌍용차투쟁을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리전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협소한 인식, 이를 알고도 연대투쟁을 적극 조직하지 않거나, 강성노조가 문제며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는 관료주의적·반노동자적 조류의 확산, 투쟁을 조직하지 않는 지도부와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며, 노조의 공식방침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고 내 사업장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선진활동가들의 현 상태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선거와 원내진출에 활동의 주초점을 두고 자본주의 틀 내에서 진보와 개량을 추구하며 중재와 협상에 치중하는 진보정당이 아니라, 분명한 반자본(주의)의 입장에 서서 대중투쟁을 엄호하고 이 투쟁을 확산,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변혁적 투쟁정당(사회주의 정당)이 건설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노동운동 내에 반노동자주의·투쟁회피주의·관료주의·조합주의를 극복하는 길과 변혁적 투쟁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바로 선진활동가들이 계급운동과 당운동(변혁운동)의 중심주체로 서나가는 것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80년 광주민중항쟁이 ‘영웅적 투쟁, 패배’로 끝났으나, 당시 운동진영에 값진 교훈이 남기면서 80년대 변혁운동의 새로운 시작을 열었듯이, 쌍용차투쟁도 계급적 노동운동의 재조직화와 변혁적 투쟁정당(사회주의 정당)건설이라는 과제를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다.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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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일 투쟁이 넘어야 하는 과제

긴 터널을 지나 끝에 다다르면 한 순간 눈부심으로 세상이 안 보인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77일간의 투쟁으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현실을 보여줬다. 연대가 무엇인지? 노동자의 투쟁은 어떻게 발전하는지? 우리의 현실은 어떤지? 새롭게 봐라보고 있다. 

 

77일 투쟁이 남긴 과제도 많다. 운동의 과제는 이후로 넘기고 현장의 문제를 중심으로 보자. 

 

첫째는 노동조합의 정상화다. 노동조합 투쟁 단일사건으로 66명 구속은 최대다. 지부 임원과 실장, 상집, 대의원들이 공장에서 감옥으로 옮겨졌다. 유치장에서 임원실장회의를 하는 초유의 탄압이 일어나고 있다. 정리해고자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며 조직을 추스르는 동안 또 한 명의 조합원이 연이은 소환조사와 정신적 압박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정신과 치료를 위해 받은 2주일치 21봉지 약을 한꺼번에 삼켰다. 이틀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다 간신히 살아났다. 

 

둘째는 투쟁대오의 재정비다. 쌍용자동차지부에 들어가지 못하면서 민주노총 평택지구협 사무실을 임시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농성대오 조합원들은 여전히 투쟁의 후유증을 안고 있다. 경찰과 검찰은 하루에도 20~30명의 조합원들을 소환하여 조사하고 있다. 아침에 불러서 조사했다가 귀가시키고 다시 저녁에 불러들이는 일도 나타나고 있다. 신종탄압이다. 농성조합원들중 상당수는 공황장애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악몽, 대인기피현상이 발생했다. 지금도 정신과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는 조합원이 존재한다. 

 

회사는 철저히 투쟁대오를 고립시키고 있다. 소위 살아남은 ‘비해고자’들에 대해서도 90여명이 대기발령상태이다. 일부는 8월말로 만료되지만 70여명은 3개월간 철저히 교육시킨후 현장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셋째는 현장과의 소통이다. 농성대오가 나오고 현장이 돌아가고 있다. 2,646명이 공장에서 쫓겨났다. 100명이 대기발령으로 나와 있다. 사내하청은 파업전과 비교하면 1/3로 줄었다. 그런데 공장은 돌아간다. 평택공장 가동되는 두 개 생산라인 중 주력라인인 3라인은 파업 전 17잡(잡(job)은 쌍용자동차에서 사용하는 1시간당 생산대수를 말한다. 17잡은 1시간에 17대를 생산한다는 뜻이다.)에서 22잡으로 생산속도가 높아졌다. 인원은 그대로이다. 아니 정확히 얼마인지 알 수가 없다. 현장의 조합원들은 “이제 노동조합이 들어왔으면 한다”는 얘기를 한다. 휴식시간 외에 담배를 피워도 경고다. 관리인이 “빨간 조끼가 나간 뒤 생산성이 두 배로 높아졌다”고 말하듯이 현장은 철저히 바뀌고 있다. 

 

산이 깊으면 골이 깊듯이 쌍용자동차의 투쟁은 치열했던 만큼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 이 과제는 쌍용자동차 동지들만의 과제가 아니라 우리 노동운동이 함께 넘어야 할 과제이다. 쌍차 이유일 관리인은 “쌍용자동차만이 아니라 이후 구조조정사업장 문제 때문에라도 구조조정은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본의 연대는 저렇게 강력한데 우리의 연대는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가? 

김인식 | 금속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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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칼럼]상상을 뛰어넘는 국가폭력, 무기력한 민주노조운동

20일 자살을 시도했던 쌍용차 노동자의 유서가 공개됐다. 유서에는 한 노동자에게 공권력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폭력의 실상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많은 이들이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동시에 너무도 잔인한 국가의 폭력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던 노동자운동의 현실에 참담함을 느꼈을 것이다. 

노동자에게 작업장은 생명과 같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절규가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저들은 해고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죽여 놓고 다시 부관참시라도 하듯 2번, 3번 죽음으로 몬다.
지난 77일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위대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권과 자본의 잔인한 폭력의 역사이기도 하다. 하늘에서 내리는 최루액, 공기총, 급기야 제2의 용산참사를 각오한 특공대 투입은 그야말로 이명박 정권 하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실체를 그대로 드러냈다. 하지만 1시간 간격으로 틀어대는 선무방송과 경찰의 강제진압을 훈련하면서 내는 소음, 음식물과 의료품 반입을 막는 것도 모자라 자행된 단전단수는 물리적 진압보다 더 잔인한 폭력이었다. 
그래놓고도 ‘불법폭력’을 운운하며 ‘법과 원칙’을 들이대는 시점에서는 ‘유권무죄, 무권유죄’의 한국사회에, 야만이라는 말 이외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이 자본주의에 다시 한번 절망하게 된다. 
하지만 이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노동운동의 현실이다. 정권과 자본의 살인적 공격 앞에서  쌍용차 동지들의 싸움은 영웅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달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쌍용차 동지들은 민주노총의 요구인 총고용보장을 외치며 사력을 다한 투쟁을 하면서 “안시성”의 승리를 확신했을 것이다. 고립된 성 앞으로 15만 아니 80만의 지원군이 달려와 연대의 함성으로 쌍용차 공장에 승리의 깃발을 펄럭일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쌍용차노동자들은 총고용보장 투쟁지침에 의해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대리전을 치루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께 싸워야 할 노동자들은 평택에 없었다. 휴가를 반납하고 모여든 정치사회단체들의 힘은 부족하기 짝이 없었고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깃발과 소수 간부들뿐이었다. 모두들 쌍용차가 무너지면 자동차산업 전반으로, 전체 노동자들로 자본의 융단폭격이 가해질 것이라고 떠들어대면서도 그에 걸맞은 투쟁은 선언만 존재할 뿐 조직되지는 않았다. 소위 중재단은 고립된 성에 갇혀 용산참사와 같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자본과 정권의 태도에 절망한 노동자들에게 항복문서를 가져다 줬다. 눈물을 머금고 협상에 도장을 찍은 노동자들의 심정을 어찌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민주노조운동은 그렇게 죽음을 각오하고 투쟁한 노동자들에게 전망을 제시하기는 커녕 더 절망스럽게 만들고 있다. 보수언론의 강성노조, 외부세력 구도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운운하고 있고, 강성노조로는 안된다며 자본가들의 만들어놓은 법과 제도를 넘어서는 노조운동은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고 있다. 그것도 민주노조운동을 대표한다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대목에서는 그저 20년 민주노조운동의 투쟁의 역사 앞에 한없이 부끄럽기만 할 뿐이다. 
자살을 시도했던 노동자는 경찰의 허위자백을 강요하는 수사에 분노하기보다 그 말을 믿고 허위진술을 했던 자신을 탓하며 생을 마감하려 했다. 그 노동자 역시 파업에 함께 했던 사람이다. ‘함께 살자’고 절규했던 그 노동자에게 허위진술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가. 77일간 총자본과 그토록 치열하게 투쟁했던 쌍용차 노동자들과 총노동의 전국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함으로 인해 잔인하고도 잔인한 저들의 폭력 앞에 방패하나 없이 세워두고 있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은가. 그 어느 때보다 민주노조운동의 전투성, 연대성 복원이 절실해진다. 민주노조운동이, 전체변혁운동이 지독할 만큼 아파야할 것 같다. 

양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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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노동자에게 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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