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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7
    지워야 할 단어, 지울 수 없는 기억
    PP

지워야 할 단어, 지울 수 없는 기억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77일간 파업투쟁은 많은 것을 남겼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정당한 싸움을 왜곡/비방하는 공격은 멈추질 않고 있다. 또 민주노총 위원장마저 이들의 싸움을 자본과 닮은 논리로 평가절하하는 모습은 씁쓸함을 넘어 너무나 고통스럽다. 짧은 지면에 쌍용차노동자들의 투쟁이 남긴 것을 다 담아내기는 어렵지만, 장면, 장면을 통해 이 투쟁이 남긴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노동자투쟁에 연대하지 못했다. 반성해야 한다. 나가면 정말 열심히 연대하러 다니자”(분반토론) “동지들에게 우리의 강고한 의지와 결의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금속노조 확대간부 파업) “며칠만에 완전 바뀌었다!” (금속노동자) 사진제공 미디어충청

 

 

사상초유의 2,646명 정리해고, 86일 굴뚝농성, 77일 점거농성, 투쟁기간 6명의 죽음. 이래도 해고가 살인이 아닌가? 사진제공 미디어충청

   

쌍용차 노동자투쟁은 ‘죽은자’ 대 ‘산자’의 투쟁도 아니고, ‘노노간의 갈등’도 아니다. 이 투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넘어 투쟁하는 노동자와 자본 간의 싸움이었다. 사진제공 미디어충청

 

 

 

음식물 중단 21일, 물·가스 중단 18일, 단전 5일, 의료진 차단, 용역·구사대·전투경찰의 합동작전, 최루액, 3단전자봉, 테이저건, 고무총탄, 헬기까지... 구속자 65명. 정권과 자본의 폭력은 정말 ‘순수’했다. 그러나 폭력보다 더 두려운 것은 우리의 절규와 함성소리에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였다. 사진제공 미디어충청

 

우리의 아픔. ‘외부세력’ 이데올로기보다 연대의 미약함이 공장 안의 노동자들을 고립되게 만들었다.

 

쌍용차파업 가족대책위. 노동자의 가족들도 투쟁의 한 주체로 누구보다 앞장섰다.

 

파업이 끝나고 한상균 지부장이 담화문을 읽을 때 비가 내렸다. “그렇게 기다리던 비가 이제 오네요” 

“쌍용차 노동자파업은 정당했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진제공 미디어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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