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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7
    위대한 투쟁, 쓰라린 패배, 남겨진 과제
    PP

위대한 투쟁, 쓰라린 패배, 남겨진 과제

위대한 투쟁

 

77일간의 공장점거파업, 84일간의 굴뚝농성. 그냥 싸운 것도 아니다. 물, 식량, 의료진, 전기 차단이라는 반인권적 상황에서, 구사대-용역-경찰 살인적 진압과 청산 협박 속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은 싸웠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말잔치뿐인 보잘 것 없는 연대에도 불구하고,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깃발을 결코 내리지 않았다. 도장 2공장으로 토끼몰이 식으로 밀려난 후, ‘죽음이냐-항복이냐’란 무시무시한 협박 앞에서야 그들은 ‘죽지 않기 위해’ 사측 안을 수용했다.

 

그들은 “원하청 공동투쟁이 이뤄진 것 그것만으로도 승리했다”(서맹섭 비정규부지회장)는 말대로, 파업을 통해 정규-비정규간의 강고한 벽을 허물면서 같은 동지(노동자)임을 확인했다. 지도부의 조합원에 대한 확고한 신뢰, 헌신성, 투쟁의지를 통해, 조합원이 주체가 된 투쟁과정을 통해, 예상을 뛰어넘는 투쟁을 조직했다. 쌍용차투쟁이 위대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쓰라린 패배 
 
그러나 쌍용차 투쟁은 사측의 정리해고안을 수용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왜 인가? 우선 상상을 초월한 국가폭력을 통한 ‘죽음이냐-항복이냐’란 강요했기 때문이다. 쌍용차 투쟁의 패배 원인을 놓고 노동운동 안에서조차 ‘옥쇄파업이라는 전술상의 오류’, ‘강성노조’, ‘정리해고 반대라는 반대에 갇힌 투쟁’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이는 정권이 저지른 국가폭력에 면죄부를 줄 뿐이다. 
 

오히려 점거파업전술로 쌍용차투쟁은 거점을 형성해 투쟁할 수 있었으며, 강력한 투쟁으로 ‘해고는 살인’임을, 그리고 국가의 계급적 본질과 폭력성을 만천하에 알려냈다. 쌍용차투쟁을 평택(지역) 문제에서 전국적 문제로 떠오르게 하고, 각계의 연대를 확산시킬 수 있었다. 정리해고 대상을 부분적으로 줄일 수 있었던 것도 강력한 투쟁 때문이었다. ‘반대에 갇힌 투쟁’ 때문에 사업장에 갇힌 투쟁이 되어버렸고 패배했다는 평가도 어불성설이다. 

 

쌍용차투쟁은 경제공황 아래 ‘구조조정(정리해고) 관철-노조 죽이기’를 통해 자본의 위기를 탈출하고 자본의 천국을 만들려는 정권의 의도에 맞서 정리해고 분쇄를 분명히 함으로써, 오히려 단위사업장 투쟁을 넘어 총노동의 투쟁이 되었다. 그리고 ‘기업과 경제는 자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의 생존과 삶을 위해 운영되어야 함’을 제기하였다. 

 

또 누군가는 말한다. ‘국가폭력에 맞설 힘이 없기 때문에, 정리해고 분쇄투쟁은 승리할 수 없다.’ 그런가? 만약 쌍용차투쟁이 금속노조, 나아가 민주노총의 투쟁으로 확산되었다면, 진보정당들이 반MB연합전선 형성과 선거에 집중하는 노력만큼 쌍용차투쟁의 엄호와 확산, 발전에 힘을 기울였다면, 이명박정권이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주체 내적으로 볼 때 패배의 원인은 ‘노동자 죽이기-구조조정과 노조 죽이기’를 밀어붙이는 자본과 정권의 공격에 맞서 ‘총노동의 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한 노조운동과 진보정치운동에 있다. 

   

남겨진 과제

  

쌍용차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투쟁 이후에도 정권과 자본의 탄압과 노조 죽이기 공세는 예상을 뛰어넘어 거세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한 즉각적, 총체적 대응이 쌍용차노조를 넘어 전체 운동진영 차원에서 시급히 조직되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발본적 성찰과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쌍용차투쟁을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리전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협소한 인식, 이를 알고도 연대투쟁을 적극 조직하지 않거나, 강성노조가 문제며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는 관료주의적·반노동자적 조류의 확산, 투쟁을 조직하지 않는 지도부와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며, 노조의 공식방침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고 내 사업장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선진활동가들의 현 상태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선거와 원내진출에 활동의 주초점을 두고 자본주의 틀 내에서 진보와 개량을 추구하며 중재와 협상에 치중하는 진보정당이 아니라, 분명한 반자본(주의)의 입장에 서서 대중투쟁을 엄호하고 이 투쟁을 확산,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변혁적 투쟁정당(사회주의 정당)이 건설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노동운동 내에 반노동자주의·투쟁회피주의·관료주의·조합주의를 극복하는 길과 변혁적 투쟁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바로 선진활동가들이 계급운동과 당운동(변혁운동)의 중심주체로 서나가는 것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80년 광주민중항쟁이 ‘영웅적 투쟁, 패배’로 끝났으나, 당시 운동진영에 값진 교훈이 남기면서 80년대 변혁운동의 새로운 시작을 열었듯이, 쌍용차투쟁도 계급적 노동운동의 재조직화와 변혁적 투쟁정당(사회주의 정당)건설이라는 과제를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다.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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