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노동자투쟁

하반기 전국적 노동자투쟁의 기운을 만들어낼 현장활동가들의 선도적 실천이 필요하다

가진 자들의 경기회복, 강화되는 자본의 공세
9월 소비심리지수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백화점 명품이 다시 팔려나가고 곳곳에서 경기회복을 기대하는 목소리들이 드높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은 최고의 영업이익을 내고 정부는 2010년 플러스 성장을 자신한다. 그러면서도 경고는 잊지 않는다. ‘아직 경제가 회복됐다고 보기는 이르다’고. 그렇다. 경제는 회복되지 않았다. 노동자서민들은 여전히 힘들다. 아니 더 힘들어지고 있다.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09년 5인 이하 사업장의 비정규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80만 5,600원이다. 동시에 전체 임금노동자 임금은 2007년과 비교할 때 명목임금 대비 5-7%가 삭감됐다. 물가상승을 반영한다면 10% 이상 되는 수치다. 3개월에서 10개월짜리 희망근로, 인턴제로 대규모 실업을 낮췄는지는 몰라도 55만 명에 달한 공공 일자리는 그저 죽지 않을 정도로, 미래에 대한 설계는커녕 정부시책에 생존이 왔다 갔다 할 뿐이다. 가진 자들의 이익은 부동산 투기로,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면서 착취하고 수탈한 것이겠지만 그조차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래서인가. 자본에 공세는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이미 공공부문을 시작으로 2010년 임금인상은 없다. 오히려 신규자 초임삭감이 제도화되고 이를 전제로 임금체계를 완전히 뒤엎을 태세다. GM대우는 제2의 쌍용차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하고 산업은행과 GM의 고래싸움 와중에도 구조조정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 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길거리로 쫓겨난다. 공공부문은 1년 동안 2만 2천명이 감축됐다. 간접고용을 확대하는 각종 시행령이 쥐도 새도 모르게 발표되고 기획재정부는 2010년 구조조정 지침을 제출하고 금융, 공공부문을 시작으로 전체 노동자들의 고혈 짜기에 앞장선다. 현금을 쌓아두고도 불안한 자본가들은 자본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기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정권은 기업 살리기에 총동원돼 있다.

예고되고 있는 노동탄압
얼마 전 이명박정권은 공무원노조에 대해 해고자들이 노조간부로 있다는 이유로, 시국선언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전 지역 노조사무실 폐쇄조치를 단행했다. 더불어 통합공무원노조 출범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정권은 ‘법을 고쳐서라도’ 공무원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 탄압을 하겠다고 선포하고 나섰고 이미 국회에 제출할 법안을 마련 중에 있다.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함께 공공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무력화하려는 계획은 이미 실행단계에 돌입했다. 단협해지를 비롯해 노조활동을 제약하는 단협 개악 공세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정권과 공기업 경영진들은 교섭해태, 대화 불가의 자세로 노사관계를 의도적으로 파행으로 몰고 있는 상황이다. 하반기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전임자 문제와 배타적 교섭구조를 전제로 한 복수노조 문제 역시 미조직노동자들의 단결의 자유는 봉쇄하고 노조운동은 무력화하겠다는 발상 속에서 노동법 개악을 준비하고 있다.

패배감, 두려움을 걷어치우고
냉각효과라고 했던가.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나더라도 불법이건 말건 일단 연행하고 구속하는 이명박정권의 폭압적 통치는 민주주의를 지켜내고자 하는 양심적인 촛불 시민들, 노동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그러나 폭압적 통치의 말로는 비참할 뿐이다. 경찰을 동원하지 않으면, 국정원과 보수대를 동원해 감시하지 않으면, 사법부를 동원해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법치도 어겨가며 정권을 보호하지 않으면 정권을 지탱하기 어렵다는 저들의 두려움이 폭압적 통치의 본질이다. 여전히 한국사회를 뒤흔들 수 있는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노동자들이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아는 이명박정권은 노동운동을 향한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공세 뒤에 숨어 있는 정권과 자본의 두려움을 뚫어낼 수 있는 그 힘은 여전히 노동자들의 투쟁에 있다. 다시 현장과 지역에서부터 투쟁기운을 모아내자. 잠재된 노동자들의 분노를 공세적 투쟁으로 바꿔낼 노동자 단결과 연대를 조직하자. 그 견인차 역할을 할 현장활동가들의 의식적 분투가 필요하다. 패배감, 두려움을 거둬내고 자본과 정권이 가지고 있는 대중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낼 수 있는 투쟁을 시작하자. 바로 지금부터!!   

선지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위대한 투쟁, 쓰라린 패배, 남겨진 과제

위대한 투쟁

 

77일간의 공장점거파업, 84일간의 굴뚝농성. 그냥 싸운 것도 아니다. 물, 식량, 의료진, 전기 차단이라는 반인권적 상황에서, 구사대-용역-경찰 살인적 진압과 청산 협박 속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은 싸웠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말잔치뿐인 보잘 것 없는 연대에도 불구하고,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깃발을 결코 내리지 않았다. 도장 2공장으로 토끼몰이 식으로 밀려난 후, ‘죽음이냐-항복이냐’란 무시무시한 협박 앞에서야 그들은 ‘죽지 않기 위해’ 사측 안을 수용했다.

 

그들은 “원하청 공동투쟁이 이뤄진 것 그것만으로도 승리했다”(서맹섭 비정규부지회장)는 말대로, 파업을 통해 정규-비정규간의 강고한 벽을 허물면서 같은 동지(노동자)임을 확인했다. 지도부의 조합원에 대한 확고한 신뢰, 헌신성, 투쟁의지를 통해, 조합원이 주체가 된 투쟁과정을 통해, 예상을 뛰어넘는 투쟁을 조직했다. 쌍용차투쟁이 위대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쓰라린 패배 
 
그러나 쌍용차 투쟁은 사측의 정리해고안을 수용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왜 인가? 우선 상상을 초월한 국가폭력을 통한 ‘죽음이냐-항복이냐’란 강요했기 때문이다. 쌍용차 투쟁의 패배 원인을 놓고 노동운동 안에서조차 ‘옥쇄파업이라는 전술상의 오류’, ‘강성노조’, ‘정리해고 반대라는 반대에 갇힌 투쟁’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이는 정권이 저지른 국가폭력에 면죄부를 줄 뿐이다. 
 

오히려 점거파업전술로 쌍용차투쟁은 거점을 형성해 투쟁할 수 있었으며, 강력한 투쟁으로 ‘해고는 살인’임을, 그리고 국가의 계급적 본질과 폭력성을 만천하에 알려냈다. 쌍용차투쟁을 평택(지역) 문제에서 전국적 문제로 떠오르게 하고, 각계의 연대를 확산시킬 수 있었다. 정리해고 대상을 부분적으로 줄일 수 있었던 것도 강력한 투쟁 때문이었다. ‘반대에 갇힌 투쟁’ 때문에 사업장에 갇힌 투쟁이 되어버렸고 패배했다는 평가도 어불성설이다. 

 

쌍용차투쟁은 경제공황 아래 ‘구조조정(정리해고) 관철-노조 죽이기’를 통해 자본의 위기를 탈출하고 자본의 천국을 만들려는 정권의 의도에 맞서 정리해고 분쇄를 분명히 함으로써, 오히려 단위사업장 투쟁을 넘어 총노동의 투쟁이 되었다. 그리고 ‘기업과 경제는 자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의 생존과 삶을 위해 운영되어야 함’을 제기하였다. 

 

또 누군가는 말한다. ‘국가폭력에 맞설 힘이 없기 때문에, 정리해고 분쇄투쟁은 승리할 수 없다.’ 그런가? 만약 쌍용차투쟁이 금속노조, 나아가 민주노총의 투쟁으로 확산되었다면, 진보정당들이 반MB연합전선 형성과 선거에 집중하는 노력만큼 쌍용차투쟁의 엄호와 확산, 발전에 힘을 기울였다면, 이명박정권이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주체 내적으로 볼 때 패배의 원인은 ‘노동자 죽이기-구조조정과 노조 죽이기’를 밀어붙이는 자본과 정권의 공격에 맞서 ‘총노동의 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한 노조운동과 진보정치운동에 있다. 

   

남겨진 과제

  

쌍용차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투쟁 이후에도 정권과 자본의 탄압과 노조 죽이기 공세는 예상을 뛰어넘어 거세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한 즉각적, 총체적 대응이 쌍용차노조를 넘어 전체 운동진영 차원에서 시급히 조직되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발본적 성찰과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쌍용차투쟁을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리전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협소한 인식, 이를 알고도 연대투쟁을 적극 조직하지 않거나, 강성노조가 문제며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는 관료주의적·반노동자적 조류의 확산, 투쟁을 조직하지 않는 지도부와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며, 노조의 공식방침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고 내 사업장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선진활동가들의 현 상태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선거와 원내진출에 활동의 주초점을 두고 자본주의 틀 내에서 진보와 개량을 추구하며 중재와 협상에 치중하는 진보정당이 아니라, 분명한 반자본(주의)의 입장에 서서 대중투쟁을 엄호하고 이 투쟁을 확산,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변혁적 투쟁정당(사회주의 정당)이 건설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노동운동 내에 반노동자주의·투쟁회피주의·관료주의·조합주의를 극복하는 길과 변혁적 투쟁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바로 선진활동가들이 계급운동과 당운동(변혁운동)의 중심주체로 서나가는 것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80년 광주민중항쟁이 ‘영웅적 투쟁, 패배’로 끝났으나, 당시 운동진영에 값진 교훈이 남기면서 80년대 변혁운동의 새로운 시작을 열었듯이, 쌍용차투쟁도 계급적 노동운동의 재조직화와 변혁적 투쟁정당(사회주의 정당)건설이라는 과제를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다. 

장혜경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