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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0
    [제주] 제주의 작은 MB 김태환 도지사, 심판대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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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9/10
    주민소환제와 노동자정치
    PP
  3. 2009/09/10
    숨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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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주의 작은 MB 김태환 도지사, 심판대에 오르다

[편집자주] 8월 26일 제주도지사 주민소환은 주민투표 미달로 실패했다. 하지만 그 투쟁을 조직해온 과정이 중요하기에 실패의 과정을 되돌아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김태환 제주도지사가 제주도민의 반대여론에도 영리병원의 허용을 재추진함에 따라 제주도민과 도지사와의 싸움이 본격화 되고 있다. 제주도민은 도지사를 주민의사에 반하는 해군기지 유치 문제로 26일 도민들의 힘으로 심판대에 세운다.     

 

주민소환에도 김태환 도지사는 지난해 7월 제주도민의 반대로 무산된 영리병원마저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이름만 바꿔 다시 추진하고 있다. 제주도의회는 얼마전 김태환 도지사가 제출한 영리병원 허용과 내국인 카지노 허용 등을 핵심과제로 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제4단계 제도개선 동의안’을 도민들의 비난 속에서 가결시켰다. 이 과정에서 도지사의 오만과 독선은 극에 달했다. 도지사는 도의회 동의안 가결 후 기자회견에서 “이번 동의안 의결은 특별자치도의 획기적인 발전을 염원하는 도의회의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생각한다”며 도민의 반대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공영방송의 토론도 회피하고 있다. 영리병원과 관련된 어떠한 질문도 무응답으로 응한다는 전략이다. 제주의 작은 MB다운 발상이다.   

 

제주의 영리병원(투자개방형병원) 허용은 세 가지 핵심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영리병원의 목적이 자본의 이윤 추구라는 점이다. 즉, 주식과 채권 발행 등을 통해서 막대한 자본이 병원에 유입대고 이 막대한 자본은 자기자본의 증식을 통해서만 유지되기 때문에 이윤 추구에만 몰두하게 된다. 여기서 인간의 건강권은 무시된다. 둘째, 영리병원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를 의무화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자본은 이윤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이윤이 더 많이 발생하는 곳으로 가기 때문이다. 셋째, 제주의 영리병원 허용은 이명박 정권의 의료민영화의 출발점이며 영리병원의 전국적 확산을 의미한다. 

 

제주도민의 도지사와의 싸움은 이제부터다. 도지사의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되지만 이 싸움이 단지 도지사와의 싸움으로만 끝나지 않아야 한다. 제주의 영리병원의 허용 계획은 청와대의 큰 MB가 계획한 의료민영화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김민 |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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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소환제와 노동자정치

소환제란?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 법은 “지방자치에 관한 주민의 직접참여를 확대하고 지방행정의 민주성과 책임성을 제고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이는 지난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노동자 민중의 투쟁의 귀중한 성과임에는 틀림없다. 

 

소환제도는 이미 오래 전부터 노동자계급의 요구였다. 최초의 노동자정부를 구성한 1871년 파리꼬뮌이 그것이다. 당시 기록을 보면 “코뮌은 파리의 각 지역에서 보통선거를 통해서 선출된 지방자치 위원들로 구성되었으며, 그들은 책임성이 있었고 언제나 국민소환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주민소환제가 지난 2006년 법안이 공포되고 2007년 5월 25일부터 발효되었고, 이번 제주도 도시자 소환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이것만 보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매우 진전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주민소환제는 그 대상을 지방자치단체로 하고 있어서 국회의원은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절차자체가 매우 엄격한 제한 조건을 두고 있어서 그 실효성이 의문시 되어왔다. 이런 점에서 노동자계급이 소환의 대상을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에서 더욱 확대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과 기득권세력에게 유리한 기존의 법률조항들을 바꾸려는 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한걸음 더 앞으로 나가야 한다.

 

소환제를 넘어서 노동자민중 자신이 통치의 주체로!

 

자치라 함은 스스로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 촛불 정국에서 가장 많이 외쳐진 구호중 하나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였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권력은 형식적으로 국민으로부터 나올 뿐, 선출되자마자 그들은 국민들의 절대다수인 노동자 민중들 위에서 군림하고 우리들을 억압하고 있다. 진보적인 인사가 선출되면 좀 달라질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선거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제한적이다.

 

소환제도 마찬가지이다. 소환이라는 것은 이미 선출된 자를 다시 끌어내리는 것이다. 그만큼 그 과정에는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기껏해야 전횡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갖는다. 심하게 말하면 사후약방문인 셈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선거는 결국 몇 년에 한 번씩 자신을 지배할 자들을 선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악순환을 끊어낼 방법은 없는 것인가? 노동자 민중을 지배하는 관료기구의 관료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우리의 대표를 선출하고 우리 스스로 통치하는 세상은 가능할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파리코뮌을 비롯한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보여준바 있다. 첫째, 자치기구의 대표는 보통선거로 선출하며, 언제나 소환대상이 된다. 둘째, 억압적 국가기구 즉 상비군과 경찰 등은 해체하고, 만일 민병대나 자경단이 요구된다고 해도 선출과 소환의 원칙은 동일하게 적용한다. 셋째, 선출된 모든 대표나 공직자는 특권을 폐지하고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에 상응하는 보수를 지급한다. 넷째, 모든 자치기구는(그것이 중앙이던 지방이던)활동하는 행정기관인 동시에 입법기관으로 기능해야 한다. 

 

저들은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국가라 한다. 이는 자본가독재를 은폐하는 허울 좋은 기만극임에 틀림없다. 그렇다! 우리는 거짓된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우리 스스로 실현해야 한다. 소환제를 확대하자! 동시에 소환제를 넘어 우리 스스로가 통치의 주체임을 선언하고 실천하자! 

구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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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소리


깊고 험한 곳에서 잡아왔다고 하셨습니다. 막바람이 거센 방파제 끝이라고도 하셨지요. 소라며 문어며 미역이며 많이 건져 올렸지만 돌멍개는 딱 세 개 건졌다고 귀한 거니깐 삼천 원에 한번 맛보라 하셨습니다. 갖은 돈은 많지 않았지만 험한 물질에 건져 올린 돌멍개 세개, 단돈 삼천원이 아깝지 않습니다. “맛이조수다게~” 고소한 단맛이 입안 가득했습니다. 오천원을 드렸더니 소라 몇 개 더 까주시고 소주도 한잔 따라주십니다. 좀녀들이 물질하는 바닷가를 나가보세요. 험한 파도를 헤쳐 나가는 바다 속 노동을 만나보세요. “쉬익~쉭” 그녀들의 숨비소리 들어 보세요    - 제주에서...

‘숨비소리’는 좀녀(해녀)들이 물질할 때 깊은 바다 속에서 해산물을 캐다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물 밖으로 나오면서 내뿜는 휘파람 소리입니다.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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