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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1/12
    태권체조.(6)
    망이_
  2. 2008/01/12
    기회를 줘.(3)
    망이_
  3. 2008/01/11
    생일.(3)
    망이_
  4. 2008/01/10
    다시 돌아가기-
    망이_
  5. 2008/01/10
    생일,미역국.(6)
    망이_
  6. 2008/01/10
    지리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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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01/09
    썼다.(8)
    망이_
  8. 2008/01/09
    어려워어려워 -ㅂ-(3)
    망이_
  9. 2008/01/06
    타로점.(9)
    망이_
  10. 2008/01/03
    교환학생-(7)
    망이_

태권체조.

 

 

 꿈에 그리던 대상이었던 태.권.체.조.를 드디어 오늘 배웠다!

 

아아아-

 

절도있는 동작, 그리고 융통성있는 매끄러운 안무들.

 

꿈의 안무랄까.

 

 

 

 

그동안 춤을 춰오면서 나는 너무 파워풀하다(-_-)는 지적을 받아왔다.  웨이브와 살랑거림을 아무리 섞어도 내 자체가 힘이 엄청나기 때문에 그 느낌이 잘 안 살아난달까.

 

힙합을 하면서는 선배들에게 '야- 너 힘좋다'라며 엄청난 칭찬을 받기도 했지만, 나는 힙합의 비트는 좋지만 '너네가 힙합을 알아?'류의 껄렁껄렁한 뒷골목 남자애 느낌(그리고 실제로 많은 가사들이 굉장 여성비하적이고 구리다)이 너무 싫어서 힙합은 약간 나에게 딱 적합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그래도 그나마 춤을 출 수 있는 통로 중에서 힙합이 제일 나았기에 선택했던 것.

 

 

그러던 중,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을 통해 태권도를 배우면서 '태권체조'의 영역을 알게 되었고 나는 왠지 나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로망을 키워왔더랬다.

 

오늘 '텔미'와 '거짓말' 태권체조안무를 배웠는데,

태권도의 절도있는 동작과 또 음악에 잘 녹아드는 안무들을 적절히 배합해서 굉장 센스있는 안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힘이 팍팍 들어가는 것이 아주 스트레스도 날리기에도 좋다고나 할까.

 

 

아아아-

 

 

'사'자 돌림 직업을 원하는 아빠에게 나는 '태권체조도사'가 될거예요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

태권체조도사도 '사'자로 끝나잖아요 그쵸그쵸?

 

 

후후훕,

 

나중에 태권체조를 잘하게 되면,

 

나의 문선로망♡을 태권체조로 승화시키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을 살포시 해보았다.

각종 여성주의 행사에서도 공연을 하고 (!)

여성노동자분들이 자그마한행사 할 때 뭔가 흥을 돋구는 것이 필요하면 이런 퍼포먼스같은 거 좋지않을까?라는 자그마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부끄럽지만.

 

 

헤에-

 

꿈을 꾸면 이루어지는 것이다.

 

퍼포머로서의 나의 로망과, 나의 능력을 누군가를 지지하는 곳에 쓰고 싶은 로망이 결합되어서 진정 즐거운 퍼포먼스를 하게 된다면 참 좋겠다-

 

 

 

아아아, 신났다 신났어

 

내가 좋아하는 춤도 추고, 운동도 하고 얼마나 좋누. 으쓱으쓱. (여기서의 운동이란 스포츠의 의미였는데 쓰고 보니 무브먼트처럼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  오오오오'-')

 

 

 



덧. 춤을 더 잘 추고 싶다느 생각보다는, 태권도를 정식으로 배우면 더 간지나게 태권체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발차기나 손날막기 같은 것이 정석으로 품세를 배운 분을 따라잡을 수 없겠더라.

흠.

태권도도 병행해서 정식으로 시작해볼까나.

조금씩 손에 익어가는 쌍절곤과 봉술도 결합하면 진짜 멋있을텐데! 우왁

 

 

덧 둘. 그렇지만 스윙댄스도 포기할 수 없는데..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와 비용. 에잇.

 

덧 셋.

그런데 이런건 자고로 단체안무를 해야 간지좔좔인것.

흠.

같이 할 사람들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살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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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를 줘.

 

 그러니깐, 약간 지금 마음이 복잡한 이유는.

 

생일이랍시고 눈도 맞고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케익도 먹고 밥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아쥬아쥬 행복했는데. 

그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타박(?)들 때문이라지.

 

 

 

 

  



 

 

-우리집은 생일같은 건 너무나도 당연한 거라서 딱히 선물을 사준다거나 거하게 축하를 한다거나 그런게 없어왔다. (낭만이 없달까.)  생일선물로 받아본 건 어렸을 때 받았던 팬티셋트 정도?

'ㅅ'

'낳아서 키워주고 필요한 거 어느정도 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뭘 또 생일이라고 선물도 받아먹고 이러냐' 뭐 이런 인식이 팽배해 있다. 엄마,아빠도. 그리고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오빠랑 나도.

생일을 기억하지 못했던 엄마에게 서운하지도 않고, 뭐 딱히 바라는 것도 없는 나는 그냥 준비해뒀던 선물을 생일날 아침에 엄마에게 건네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는 정도.

엄마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널 낳느라 고생했으니깐 선물을 받아먹는 게 당연하지'라고 말했다.

깔깔깔  듣고보니 정말 맞는 말. 울엄마최고-_-b

 

 

밖에 나가서 엄마랑 점심을 사먹을까 하다가, 눈이 오는 바람에 만두 여섯개 사다가 보리차랑 같이 먹고 말았는데,

친한 ㅇㅃ들이 난리가 났다.

'초 후'를 안하냐는 거다. -_- 케익사놓고 촛불켜고 그러는 거? 아이코 간지러버라

나는 그냥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태어난 것에 감사하는 것에 익숙해져있는데;ㅅ;

 

그래도 ㅇㅃ들의 성원에 힘입어 옷껴입고 홍대로 나가자,  웃으면서 맞아주고, 과자점에 데리고 가서 이것저것 여러가지 맛의 케익을 참 많이도 산다. (초 후~를 위해서는 한 개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나 -_-; )

그리고 맛난 밥도 먹고, 칵테일 바에도 갔다. 노래방도 갔다.

 

그러는 새에 홍대에서 만나는 몇몇 아는 사람들과 심지어 밥집 주인언니에게까지 울 ㅇㅃ는 '오늘 송이송 생일이예요~'를 말하며 싱글벙글.

'어머 , 생일축하해요!'라고 말하며 주섬주섬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급선물을 마련해서 건네는 언니까지 있었다.   아이고 마음이 따끈따끈해라 'ㅅ'

 

 

나는 사실 생일선물에 익숙하지 않고,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방학이어서 딱히 생일을 챙기지도 않았고

친구들이 '생일 선물 뭐줄까'라고 말하면 '무슨 선물이야 됏어됏어'하고 손사레치고 말았는데, 참 신기했다. 이런 생일은 말이얌; 

 

 

그런데 문제는 그 후.

 

너무나도 신기하게도 어제는 (눈이와서 그랬는지), 오랜만에 그냥 생각난다고 '뭐하냐 잘지내냐'라는 문자랑 전화가 많이 왔다.

그래서 그럴 때는 '사실 나 오늘 생일이예여'라고 말했는데,

다들 왜 미리 말을 안했냐며 뭐라고 한다.

 

그래도 너무 신기하게 딱 오늘 연락주는 바람에 내 생일인 거 알지 않았느냐고, 축하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해도 '그래도 미리 말했어야지!!'란다  음음.;;

 

집에 가는 길에 걸려온 전화-

어떻게 생일인 걸 말 안할 수가 잇냐고. 나름 너의 측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서운하다.

라고 말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서운하다- 라니.

 

아, 나는 그저 '나 생일이예요 꺄아꺄아'이러기가 왠지 민망하고 익숙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간 건데 그 친구는 '너의 생일을 축하할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듣고보니 수긍.

 

 

'ㅅ'

 

 

그렇구나. 생각도 못했었네. 기회를 주는 거.  좋은 감정을 같이 나누자고 손내미는 것일수도 있구나.

흠.

 

 

  

 

'태어나길 정말 잘했어'란 말을 입 밖으로도 , 속으로도 엄청많이 되내인 하루였다지.

 

 

 

 

 

2008.1.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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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아침부터 펑펑 눈이 내린다. 지금도.

 

따뜻한 문자들이 나를 감싸고.

 

태어나는 날0시 26분 눈이 펑펑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내이름은 송이.

 

 

오늘도 그날같이 눈이내린다.

 

 

 

 

 

 

 

 

 

 

덧:) 아빠들의 훈훈한 사랑이 느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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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기-

오늘은 여연자연 모임이 있었다. (무엇의 줄임말인지는 모른다. 여성주의를 고민하는 자치단위연대뭐 그런거겠지?)

각 단과대 대표들과 이야기를 하고,

또 회의가 끝나고도 수다는 끊이질 않았다.

 

역시..

 

이렇게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말이 끊이지않는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생각.

내가 겪었던 그 불편함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치유가 되었던 경험.

여성주의가 나에게는 별게아니었다지.

처음엔 대학에 첨 들어와서 '반'이라는 공동체에서 내가 겪었던 충격, 그리고 신촌 한복판으로 뛰쳐나와서 흘렸던 눈물, 농구를 하고 싶어하는 내가 이상하게 취급되었던 경험.

이런 것들을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사람들. 응, 나한테 여성주의는 그런거였다. 나한테 손을 내밀고 토닥토닥해주고, 끝도 없는 내 속상함의 토로를 고개를 끄덕여주며 함께해주었던 사람들.

 

 

그 치유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생각을 하니 좋기도 하지만,

 

그 끔찍했던 공간으로 돌아갈 생각에,그리고 마초들과 싸워야한다는 생각에 토나오기도. 우엑.

 

그래도 불끈. 힘내야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계획을 이야기하는 것은

혼자서 속으로만 키워왔던 자그마한 이상을 조금은 현실감있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괜찮은 것 같다:)

 

오늘도 약간 그런 날이었다

 

 

싱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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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미역국.

 

 어젯밤 엄마와 나 모두 늦게 잠들었던 터라 느즈막히 일어났다.

 

오늘 오전까지 보내줘야할글이 있어서 부랴부랴 컴터를 켜고 끄적이고 있는데, 엄마가 국을 끓이는 소리가 났다.

 

밖에 나가서 보니 냄비엔 미역국이 들어있었다.

 

 

-엄마, 내 생일은 내일인데 왜 오늘 미역국 끓였어?

 

.

.

.

 

- 너 , 내일 생일이냐? -_-;             어머어머어머

 

 

그러고서 엄마는 너무 웃긴다는 듯이 으헤헤헤헤 웃었다.

 

-어머어머어머 니가 말 안했으면 깜박하고 넘어갈뻔했다 야. 그르게 내가 왜 오늘 미역국이 끓이고 싶었을까? 진짜 웃긴다 그치?그치?

 

 

 ㅡ _ ㅡ

 

 

 

이런게 가족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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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다른몸되기 프로젝트가 끝난 지 벌써 몇 달이 흘렀고,

 

 함께 지리산을 다녀온지 뒤로도 벌써 두 번의 환절기를 겪었다.

 

 '산'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나는 지난 여름의 지리산과 함께 했던 그녀들이 생각난다.

 

솔직히 다 지나고난 일이니까  '아,정말 좋았어'라고 말하면서, 세석평전의 그 엄청 시원했던 바람과, 30분여를 오롯이 혼자서 누워있을 수 있었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 봉우리와, 마지막날 새벽에 보았던 천왕봉의 아찔했던 일출을 생각하지만-

 

 

가도가도 끝나지 않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그리고 역시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 엄청난 바위오르막은 '다시는 지리산 안온다'를 몇십번이고 되내이게 만들었었는데...

정상에서의 일출 또한,  이미 출발한지라 어쩔 수 없이 그 행렬에 밀려갔던 것 뿐, 뒤에서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사람들만 아니었음 정말 중간에 포기하고 중간즈음에서 혼자서 해돋이을 맞이하고 싶었더랬다.

 

 

그런데 이렇게 지나고나니 따스한 방바닥에서 뒹구는 내 몸이 안쓰러워서, 산에 올라가서 그 탁 트인 절경을 맛보게 해주고픈데... 춥다.  춥다. 춥다.

 

 

 

남한산성이라도 올라갔다올까하다가, 저번에 괜히 올랐다가 무릎다치고 감기에 걸렸던 기억이 나서 몸사리는중.

 

옴한테 말해서 그 때 옴이 올랐던 북한산 산책코스라도 갔다오자고 해볼까나.

 

 

 

 

* 내가 이렇게 갑자기 지리산기억에 빠져든 이유는,

옴이 어젯밤에 부탁한 보고서 때문인데  아직도 한 개도 못쓰고 버벅대고 있다.

아, 옛 기억에 빠져들기만 할 뿐 그 기억을 잘 풀어낼 능력은 한 개도 없다. 하긴 이 시간에도 옴은 컴터를 부여잡고 데드라인에 쫒기며 독박을 쓰고 있겠지;

빨리 써서 보내줘야겠다. 끝-

 

언제 한번 지리산 다시 가자. 꼭.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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썼다.

교환학생 신청서가 5시까지 마감이라는 걸 깨닫고,

 

4시 30분에 컴퓨터를 켜고 미친듯이 클릭을 해서 학교이름을 집어넣었다.

 

떨려떨려떨려떨려-

 

 

ㅜ.ㅜ

 

 

한달동안 매일 인터넷을 뒤지면서 학교를 찾아보고 고민했으면서 정작 마지막까지 고민되어서 신청을 못했던 거다.

 

 

.

.

.

 

 

 

아악.

 

과외에 갔다가 헐레벌떡 돌아와서 겨우 지원할 수 있었다.

나에겐 수정을 할 기회조차 없었다.  

 

 

 

결국 네덜랜드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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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워어려워 -ㅂ-

그러니깐 항상느끼는 건데,

관계는 늘 어렵다.

 

맨날 이것 가지고 징징대는 나는,

그에 걸맞게 항상 용기가 없다.

 

어렵다고 생각할수록, 현명해져야하는데

나는 오히려 피하고 외면하고 급기야 "될대로 되라"라는 식이 되버리는것.

 

 

 

그리고

정말이지

'될대로 되어버린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한번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내가 원하는 대로 합의하기 위해 적극적이었던 적이 있나.

 

 

단 한 번, 처음으로 용기내보았는데.

이미 늦은 건가.

 

 

그렇게 차갑게 나를 대하면 나는 정말이지 더 얼어붙어버리는데말이얌.

앞으로 다시는 용기내거나 먼저 손을 내미는 짓을 하지 못할텐데 말이얌.

 

정말이야.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고, 그래서 늘 그렇듯 아무렇지 않은 듯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행동했던 것.

그래서 용기내지 못했고, 또 알아채지 못했던 것.

함께 하지 못했던 것들.

 

알알이 후회중인데, 진짜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명확한데.

내 자신을 콩콩콩 쥐어박으며 후회중인데.

 

이렇게 늦게 알아채면 안되겠니.

 

내가 이제와서야 내민 손, 그렇게까지 차갑게 냉철하게 반응하니깐 정말 가슴이 오그라들어버릴 것만 같더라야.

 

 

관계에 있어서 용기를 내지 않고 애써 외면하면서 그냥 묻어버렸을 땐 이렇게까지 달달달 떨어본적없단 말이다.

 

 

어쩌지.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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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점.

 

 타로점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건 정말이지 절대로 네버네버 예언이 아니라는 것.

 

적어도 나에게는 내 마음을 한번 더 콕 찝어주는 그런 것이랄까.

 

 알고 있었던 내 마음, 불안했던 내 마음, 너무도 작은 것까지 계산하면서 움츠러드는 내 마음을

 

타로는 정확하게 이야기해준다.



 

 

내가 더 용기내야한다는 말.

내가 더 공들여야한다는 말.

 

그건 내가 알아채지못했던, 애써 외면했던, 용기없었던 지난 과거를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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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

나는 대학에 가면 교환학생을 꼭 갈것이다.  라고 고3때부터 막연하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

 

 

내인생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풍요로움이라고 생각했던 듯.

 

 

누구처럼 외국에 나가서 1년동안 한가로이 어학연수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방학동안 오히려 돈벌이가 쏠쏠하기 때문에 방학중의 여행은 항상 계획만 세웠다가 살포시 접기만 하는 것이기에-

교환학생제도를 따내는 것.

그것만이 내 지난 대학생활 전부의 목표였던 것 같다. 피를 토하면서 수업에 늦지 않게 가는 것도, 다들 독하다고 했던 전출을 했던 것도 모두.

어짜피 다녀야 될 대학교. 어짜피 내야할 등록금을 낼 바에야,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내가 모든 관계에 힘을 써야하지 않아도 되는 곳. 가족들에게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곳. 아무도 나의 옷차림에 대해 신경쓰지 않을 곳.

오롯이 나 자신에게 신경써줄 수 있는 1년간의 생활을 따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너무도 신이 났다.

그리고 그것이 전혀 '낭비'이거나 '사치'의 개념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도.

 

 

 

 

 

 

말할 수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말하고,

돈을 모아서 적금을 들면서도,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가서 그곳에서 수업을 듣는 나를 생각했다.

해도 해도 또 남아있는 과외를 하면서도 늘 미지의 외국캠퍼스 잔디밭에서 말도안되는 영어를 씨부리며 누워있을 나를 상상했다.

 

그리고 꼼꼼하게,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이 시기엔 토플을 따야지, 이 때까진 학점을 잘 받아야 해. 이 때 출발하면 여행과 학기 시작을 함께 할 수 있을거야' 등등을 계획해왔다.

 

그리고 바야흐로.

 

내가 계획했던 2년이 지나,  한번의 휴학으로 얻은 토플점수와 세 학기의 성적과 추천서로 이제 면접만이 남아있다.

 

후보로 쓸 수 있는 한정된 갯수의 학교를 고르기 위해, 이곳저곳 싸이트들을 뒤지고 또 뒤지고 고르고 또 골라보지만,

그렇게 높지만은 않은 내 점수 때문에 약간은 좌절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중.

 

막상,

그렇게도 꿈꿔왔던 것이 이렇게 가까이다가오고 보니깐.

왠지 낯설고 약간은 두려운 맘에 도망치고 싶기도 하다.

 

'어짜피 떨어질꺼야'란 생각과, '정말 미국에 있는 학교로 배정이 나면 어떻게 하지'란 생각이 마구마구 뒤엉키고,

하루에도 열번 이상씩 서부에 있는 학교가 좋을까, 동부쪽으로 넣을까. 아니면 괜히 다 떨어지지 말고 경쟁률이 낮은 중부쪽으로 넣을까.

아니면 미친 척하고 네덜란드로 넣어서, 유럽에서의 일년을 만끽하다 올까.

 

돈을벌고,점수를 따는 일보다.

이게 훨씬 더 힘이 든다.

 

 

어디에서 살게 되고 어떤 정도의 물가를 감당해야하는지, 기숙사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한국인이 많은지,

그리고 내 선택이 너무 높은 것이어서 떨어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함께 감내해야하는 이 선택의 기간은 나를 너무 지치게 만들려고 한다.

 

대학 원서 쓸때가 이런 심정이려나.  수시로 퐁 대학에 들어와 버린 나는 이런 것이 처음이라 그저 자신없을 뿐.

 

 

 한정된 기회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

 

 

아이고, 머리아프군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배부른 타령이긴 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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