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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12
    우산에서 비가 내린다
    무화과
  2. 2009/08/11
    한 번도 노동자였던 적이 없었던
    무화과
  3. 2009/08/05
    병역거부(2)
    무화과
  4. 2009/08/03
    2009/08/03
    무화과
  5. 2009/07/31
    내게 농사는(1)
    무화과
  6. 2009/07/26
    주말
    무화과
  7. 2009/07/17
    앞날(1)
    무화과
  8. 2009/07/04
    도서관(1)
    무화과
  9. 2009/07/04
    이발
    무화과
  10. 2009/06/28
    뫼비우스 띠
    무화과

쉽게 들켜버리는 사람

한참을 일하다가 눈이 너무 피곤해서 잠깐 먼 곳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옥상에 올라갔다.

간난에 기대어 서서 먼 곳의 풍경을 바라본다. 어제까지만해도 큰 비때문에 한강이 흙탕물이었는데 언제그랬냐는 듯이 강건너편의 산자락을 강물위에 그릴만큼 맑아져있다. 하루만에 그 많던 흙탕물이 다 흘러내려간건가? 신기하다. 오른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리면 먼 곳에 파주의 아파트 단지들이 보인다. 하여간 아파트는 흉물스럽다. 예전에 한 친구가 북한산 올가서 보니 서울을 빼곡히 채운 아파트 단지들이 마치 담배갑을 엎어놓은 거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한참을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러고 서있다가 문득 내 기대어 있는 난간에 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있는게 보인다. 잠자리를 잡으려고 조용히 다가선다. 손을 가만히 내밀어본다. 잠자리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휙 날아오르더니 바로 옆자리에 다시 내려앉는다. 먼저번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내가 바로 옆에와있는 것을 녀석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숨을 죽이고 손을 내민다.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미세한 미동도 주지 않으려고 아주 서서히 손을 뻗어간다. 하지만 잠자리는 또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다. 몇 번을 박복하고 나서야 잠자리는 아예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린다.

 

어렸을 때는 맨 손으로도 제법 잘 잡았었는데.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이 오히려 그 때가 지금보다 더 요란하고 시끌벅적했었는데. 이제는 남을 속일 줄도 알고, 이것저것 계산할 줄도 알고, 나를 숨길줄도 아는데, 이상하게 잠자리한테는 쉽게 들켜버린다. 있는 그래도 시끌벅적 요란했던 어린시절보다도 더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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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에서 비가 내린다

요새는 비가 오면 크게 온다.

그래도 비오는 날이 좋다. 다음날 맑게 개인 하늘을 기다리는게 좋고

빗소리가 하루종일 귀를 간지르는 것도 좋구

불어난 흙탕물의 한강을 보는 것도 좋다. 지하철을 타고 한강다리를 지나가며

비오는 한강의 풍경을 바라보는것은 더욱 좋다.

 

근데 안좋은 것도 있다.

걸음걸이가 이상해서인지 내 모든 신발은 발바닥이 다 갈라져 있어서 비가 오는 날이면

양말이 금방 축축하게 젖어 버린다.

운동화 하나는 발바닥이 갈라지지는 않았지만 뒷축이 완전히 닳아서

젖은 땅을 걸어다닐때는 신발을 신으나 안신으나 똑같다.

유일하게 멀쩡한 신발이 최근에 산 컨버스화인데 바닥은 멀쩡하지만

위에서 떨어지는 비를 방수하기엔 천쪼가리는 역부족이다

비오는날엔 신을 수 있는 신발이 하나도 없다ㅠㅠ

 

아침에 시와가 부르는 어크로스더유니버스를 들으며 버스를 기다리며

컨버스화의 윗면이 젖어 서서히 양말이 축축해지는 것을 불안한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머리에 한방울 물이 떨어지는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우산을 쓰고 있는데, 무릎도 아니고 하다못해 어깨도 아니고 머리 꼭대기에 빗방울이 떨어지다니...

고개를 살짝들어 보니 우산천이 닳아서 군데군데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버스를 기다리는 10분동안 우산에서 내리는 비 덕에 방금 머리감은 사람처럼 돼 버렸다.

비가내리는 우산, 물이 새는 신발. 그래도 비오니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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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노동자였던 적이 없었던

노동해방을 이야기하고

총파업을 이야기하고

노동자가 중심이 된 혁명을 이야기하고

가자 노동해방 등의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주장할 때

그 투쟁에 지지하면서도 경제투쟁을 넘어서 정치투쟁을 벌여야한다고 이야기하고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복지를 요구할 때

혁명을 포기한 개량주의인것처럼 못마땅해하고

파업을 앞둔 상황에서 극적으로 타결이 되면

마치 싸우지도 않고 패배한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나는 단 한순간도 노동자가 아니었다.

 

엄청난 말들을 아주 쉽게 내지르곤 했다.

나는 노동자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내 말을 책임못질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노동자가 되어 살거라고 생각해본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니 당연하게도 맑스를 읽어도 노동법은 한 구절도 보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혁명의 주력군이라는 생각만 있었을 뿐

노동자가 가져야하는 권리가 무엇인지 관심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노동자가 되었다.

노사협의회를 8월말에 한다고 그 전까지 논의해야할 것들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라고 한다.

나는 솔직히 노동자로서 내 권리가 뭔 지 모른다.

노동법은 태어나서 처음 찾아보고 있다.

한 번도 노동자였던 적이 없었으니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들이니까.

 

그 시절 치기어림과 어리석음과 그래도 나름의 진지함이 뒤범벅된 채

너무 쉽게 내뱉어버렸던 말들이 

갑자기 부끄러워 견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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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

'전쟁없는세상'이 내 몸과 마음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신기하게 큰 미련없이, 서러움 없이 그렇게 빠져나가고 있다.

전쟁없는세상 소식지에 나의 이름이 없는것이 낯설지 않다.

평화캠프 준비를 같이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다.

하루에도 몇번씩 들락거렸던 홈페이지는 이제 며칠에 한 번 들어가볼 뿐이다.

 

물론 내 병역거부에서 전쟁없는세상이 차지한 비중은 생각보다 더 컸다. 

생각보다 큰 그 편차에 깜짝 놀란다.

이제 더이상 나를 병역거부운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병역거부자라고 소개하는 경우는 예전에도 드물었다.

병역거부운동과 멀어지면서 병역거부자체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래서 나는 이제 물어볼 수 있게 되었다.

전쟁없는세상이 지워지고, 병역거부운동이 비워지고,

마지막으로 내게 남아있는 것에 대해서.

오로지 나 자신을 들여다 봤을 때, 병역거부는 과연 무엇이었는지.

과연 무엇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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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3

한 번 망가진 마음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 때의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못 볼 것을 보기라도한 듯한 그 눈빛과

눈빛마저 휘돌리며 돌아서는 발걸음을.

 

기아가 7년만에 1위로 올라갔다고 해서 잠깐 풀리는 듯 했지만 별 소용이 없다.

 

내 마음이 그래서인지 한강을 쭉따라 하늘이 오늘따라 더욱 우중충하다

자유로를 내달리는 버스가 아스팔트 위를 구르는 것이 아니라

자욱한 공기를 해치며 미끄러져 가는 듯 하다

 

월요일 아침부터 기분이 이게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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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농사는

내게 농사는                                                     박형진

 

 

양파를 캔다

한나절에 네고랑

캐고 나니 열두 시다

허리는 끊어지게 아프지만

점심 먹고 쉬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한 고랑만 더 해 보기로

마음먹고 나아가는데

남은 반 고랑이 네 고랑보다 더 힘이 든다

 

이렇게는 하지 말자고

몸 아플때는 다짐했지만

농사일이란 항상

붙잡으면 암지나 반듯해져야만

손을 놓을 수 있는 포승,

숨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치달아 매는 올가미,

머릿속이 점점 하얘져서

밭둑에 와를르 무너져 내려야만

자유를, 얻는다

 

뼈에 박힌 가난한 버릇에서 비롯한

 

그러나 늘 마음은

중심에 던져 자그자글 녹아 버리거나

아주 멀리

오래떠나고 싶은......

 

 

변산에서 저녁먹고 쉬는시간에 읽을거리들을 뒤적이다가 발견한 시.

박형진 시인은 내가 변산에 머무는 동안에도 몇번 왔다 갔지만

부끄러워서 나대는 거 같아서 아는척은 안하고 먼 발치서 보기만 했다.

평생 농사일 하는 사람들도 밭일 할때는 힘들구나 하고 위안삼았던 시

 

망가진 기분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노래듣기는 쬐금 눈치보이고 시나 찾아보고있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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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비록 일주일이었지만 전화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던 것이 습관이 되어서일까,

하루 종일 전화기를 방치해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녁늦게 확인해보니

한통의 전화도 문자도 오지 않았다. 아... 평통사에서 단체문자가 한통 오긴 했다.

 

핸드폰 밧데리 충전하는 주기가 굉장히 길어졌다.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는 날은 왠지 씁쓸할 법도 하건만

이제는 퍽 익숙해져서 그런지 아무 느낌도 들지 않는다.

 

딱히 즐거운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심심한 주말도 아니다.

야구경기가 있었다면 좀 더 즐거웠으려나?

 

씁쓸하지는 않아도 좀 이상한 기분이 든다.

핸드폰 전화번호부를 주욱 훑어 내려봐도

선뜻 전화 걸 사람을 찾지 못하겠다.

아마도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잘못 산 물건을 환불하러 엄마와 동생이 나가서

혼자 조용히 집에 있는 주말의 밤

이런 상황이 제법 익숙해졌지만

무엇을 해야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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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날

성격이 꼼꼼하지 못한지라 계획을 세우고 살아본적이 거의 없다.

뭐 되는대로 막 산것은 아니었지만, 좋게 말하면 항상 그때 그때에 충실했던거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미래를 준비하지 않은 것이겠다.

그래도 지루할 틈 없이 세월이 흘러갔으니 아무래도 운이 좋았다고 해야겠다.

 

재미있는게 인생에 어떤 법칙이 작동한다는 느낌이 든다.

숫자로만 이루어진 공식에 따른 법칙이 아주 묘하게,

그래서 내 인생이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기분이 들지 않으면서도

지나고보면 꼭 이렇게 될것이 정해져있었던것 마냥 느끼게 된다.

앞날에 대한 명확한 목표와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내 인생이 나름의 규칙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는건가?

재미있기는 한데 살짝 씁쓸한 웃음이 배어나온다.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던 대학시절엔,

내가 병역거부운동을 하게 될지 상상도 못했다.

병역거부라는 것을 모르기도 했었거니와,

조직적으로 병역거부운동에 동참하고 나서도

병역거부운동 단체에서 활동하게 될거라고 눈꼽만큼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학생운동 5년 후 갑작스럽게 병역거부운동을 하게 되었다.

 

전쟁없는세상을 처음 시작할 때는 학생운동할 때처럼 '죽을 때까지 이것만 한다'

이런 생각은 없었다. 그런 말들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내 인생이 튀어온것처럼

앞으로도 내가 또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한 10년, 전쟁없는세상에서 그 정도 하면 그만두고 다른일을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꼭 10년을 기약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정도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숫자가 10이었나보다.

 

그런데 또 5년이 지난 지금,  

5년 전에 예상외로 전쟁없는세상을 시작했던것처럼

새로운 방향으로 인생이 튀어가고 있다.

무슨 경제개발5개년계획마냥 내 인생을 5년단위로 끊어서 계획을 세운것도 아닌데,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밤에 하늘에 대고 스스로에게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담 앞으로 5년 후

또 어떤 계기가 있어서 인생이 다른방향으로 튀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5년후를 준비하기보다는

역시나 지금 잘 살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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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세상에 책 한 권 빌리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대학교에 냈던 등록금이 얼만데, 졸업생이라고 책을 안빌려 준단다.

서울에서 내가 이런 저런 소비를 하며 내는 간접세가 얼만데,

서울 시민이 아니라서 책 안빌려 준단다.

하는 수 없이 지하철로 두 정거장 부천쪽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또 한참을 깊숙히 올라가야하는 부천 중앙 도서관에 가게되었다.

 

조선시대에 숭유억불 정책마냥 대한민국정부가 도서관 억제정책으로 탄압이라도 하는건지

왜 도서관이 사람들이 가기 힘든 곳에 꼭꼭 숨어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전거를 타고 가보니 해는 안보이고 바람은 선선한데도 등자락이 땀에 흠뻑 졌었다.

뭐 산속에 있으니 공기하나는 좋더라만, 대중교통을 가기 불편한 곳이라서 자전거를 탔더니

자전거길도 만만치 않더라.

 

땀흘리며 힘을 쓴 나머지 도서관에서는 조금 잤다. 물론 핑계다. 나 원래 의자에만 앉으면 잔다. 혹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서서도 잘잔다. 딱해보여 자리 비켜주는 사람들도 종종 있을 정도다.

 

생각해보니 부천 중앙도서관 예전에도 한 번 와본적이 있다. 아마도 7,8년 전쯤이리라. 오죽 다니기 불편했으면 그 이후에 와볼 생각을 안했을까 싶다. 암튼 가보니 도서관의 위치 빼고는 다 괜찮은것 같다. 몰랐었는데 회원가입해서 책도 빌릴 수 있었다. 내가 찾던 책중 하나는 없었지만 그 정도쯤이야. 앞으로 자주 애용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내일도 가볼까 생각은 하고 있지만, 어제 오늘 자전거를 탔더니 왼쪽 발이 또 아파온다.

지난 설 연휴전에 집회 참가후에 피로때문인지 통증이 오더니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라지지않고 그렇다고 악화되지도 않고 미세하게 남아서 은근히 신경쓰이게 한다. 아마 내일 도서관 안가면 이것이 핑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노래듣기. 자전거 타기. 책읽기(이건 최근들어 가능해진것). 야구보기(경기 생중계와 그 이후에 기사검색). 역시 도서관 가야겠다. 안그러면 하루 종일 야구만 보다가 후회하며 잠들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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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

갑자기 머리를 잘랐다.

물론 머리가 제법 길어서, 게다가 부쩍 더워진 날씨를 고려해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머리를 자른것이 한 4개월 전 쯤 됐으려나. 그리 길지 않은 세월이지만

마치 그 동안의 시간들이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새겨져 있기라도 한 듯이

그래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순간 그 절단면으로 모든게 새어나가기라도 할것처럼 느끼며

지금 이 순간들을 지나기 전까지는 머리를 자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머리를 싹뚝 잘라버렸다.

"이 정도의 길이면 될까요? "는 물음에 "더 잘라주세요"하고 대답해버렸다.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는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그 시간들이 남겨진 부분들을 다 잘라버리려고 한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내 뱉은 한마디 대답에 은빛 가위날이

싹뚝 싹뚝 성큼 성큼, 머리카락들은 비명을 지르며 길이가 짧아져갔다.

지금 남아있는 머리카락들은 최근의 것들이라서 그 시간들이 하나도 기억되지 않는다는 듯이.

 

그런데... 그런데...  안경을 쓰고 머리를 바라보니 맘에 안든다ㅠㅠ  괴상망측하다ㅠㅠ

 

불쑥 머리가 자라나면 좋겠다.  그 길이만큼 새로운 기억들이 입력될 시간이 문득 지나버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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