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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12/25
    대체복무반대의 논리에 대하여
    무화과
  2. 2008/12/19
    재수없는 편지 (8)
    무화과
  3. 2008/12/18
    그 가사가 내 마음을 빼앗아갔어
    무화과
  4. 2008/12/17
    산소가 필요해(1)
    무화과
  5. 2008/12/10
    [프레시안]일본의 군대는 왜 '정신주의'를 강조했는가?
    무화과
  6. 2008/12/08
    군것질(1)
    무화과
  7. 2008/12/06
    꼬였다.(3)
    무화과
  8. 2008/12/02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읽으면서
    무화과
  9. 2008/12/02
    콧물이 주룩주룩
    무화과
  10. 2008/12/01
    [펌] sport2.0 불량한 야구개그 '장원삼'
    무화과

안경잡이

안경을 벗어두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안경을 찾아야 비로소 눈을 뜰 수 있는데 안경이 없으니 보이는 것이 없어서 보기 위해 안경을 찾는다지만 안경없이 안경을 찾을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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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3

예전엔 세상이 쉬워만 보였었는데 아니 쉬웠다고 말하기엔 오해가 있을수도 있지만 암튼 세상이 내맘대로 변하지는 않더라도 나또한 세상맘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너무나 확실하게 구분이 되었었는데 물론 지금에 와서는 그 옳고 그른 기준들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암튼 갈수록 세상을 모르겠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모르겠고 이건 뭐 조금 커다란 이야기로 내 삶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바로 지금 이 곳 이 자리에서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인지 나의 쓸모는 무엇인지,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인지, 혹은 내가 그렇게 누군가를 절실하게 필요로하는건지. 어느 순간부턴가 완벽한 것은 없다고, 영원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런걸 감안하더라도 너무도 불안하고 너무도 모호하기만 한. 그래도 이렇게 들떠서 맞이하는 기분좋은 서른 살은 없을거라고 생각할만한 상황도 있지만, 내가 없어도 세상은 굴러가고. 세상없어도 나는 숨쉬며 살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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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개의 거짓말

질주해 보지도 못했던 청춘에 제동이 걸렸다 제한속도 30km 어설프게 브레이크를 밟았다간 눈길에 미끄러져 우당탕탕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아스팔트마저 단단히 얼어있는 이 추운 계절엔 그동안 배워온 것은 거짓말 밖에 없었다 한 번의 겨울을 지나보낼 때 마다 한 개의 거짓말을 나이테에 두껍게 새겨놓았다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다른 사람에게 늘어놓는 법과 경멸을 숨기고 친절을 가장하는 법을 배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맛있는 과일을 가로채는 법을 배웠다 가장 최근에 배운 거짓말은 나를 속이는 일이었다 네가 나를 떠나버려도 나는 이제 더 이상 슬프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숨가쁘게 뱉어온 말들이 담배연기처럼 허공에 사라지고 시덥잖은 농담이나마 간직하고 싶어서, 아니 연기와 함께 나도 사라질까봐 두려워 쉬지않고 입김을 뿜어냈다 하지만 입밖으로 나온 체온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나는 입김마저도 빼앗긴채 텅 비어갔다 바람은 뼈가 시리도록 차갑게 불어왔지만 내가 배운 거짓말들엔 미치지 못한다 올 해부터 겪게 된 외로움을 아직 다 배워내지 못했다 나를 속이는 거짓말만 배웠을 뿐이다 너무 많은 거짓말을 가지고 있다 아직 방황은 시작조차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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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6

끈 만약 나와 너의 사이가 끈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누군가 그 끈을 잡아당겨 서로 사이에 놓인 끈이 짧아지면 서로의 거리가 그만큼 가까워지는 것이라면. 그런데 어느날 문득 나 혼자 끈을 잡아당기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는 소심한 자각에 에이 그래도 설마 하고 꽉 잡고 있던 손을 슬며서 풀어놓는다면 그러면 끈은 힘없이 스르르 풀려나가고 멀어지더라도 서로 연결되어 있던 우리의 사이도 그대로 끝이 나게 될까? 어쩌면 내가 지금 느끼는 것을 또 다른 너가 나한테 느끼고 있는지도. 너 혼자서 끈을 애타게 잡아당기는 데도 나는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않고 너의 노력만으로 우리의 사이는 유지가 되고 이런 일이 없으리라고 나 장담할 수 없으니, 이대로 네가 또 다른 너와의 사이에서 나처럼 슬며시 끈을 놔버리면 그것으로 너와 나의 사이는 끝이 나게 될까? 과대포장 가끔씩 사람들이 사이에서 내가 과대포장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워낙 다른사람들의 단점에 너그럽고 장점에 관대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때론 나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시선의 대상이 되면 부담스럽기도 한다. 문제는 과대포장을 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내 쪽에서 이미 과대포장되어 있는 것보다 더 크고 화려한 포장지를 입히려고 한다는 것이다. 노력은 하지 않고 사람들이 나를 보다 화려하게 바라보기만을 기대하는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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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이 뭐 이래

교회를 다니는 것도 성당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크리스마스시즌에 연애해본적도 없어서 크리스마스가 언제는 뭐 나한테 특별한 날이었냐 싶지만 그래서 크리스마스라고 딱히 무슨 기대 따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유독 올 해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가 뭐 이래?"라는 짜증섞인 불만이 사방군데서 튀어나온다. 집에서 좀 쉬면서 청소도 하고 반찬도 하고 소식지 원고도 쓰려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에 갑자기 국방부로부터 대체복무 전면 백지화라는 선물이ㅠㅠ 근데 어디 가서 짜증도 못내는게 요새 사는 게 안 힘든 사람이 있나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짤리고, 청소년들은 공부하는 노예가 되기를 노골적으로 요구받고 있고, 저기 여의도에서는 아주 별 그지같은 법안들 통과시킨다고 한나라당이 지세상 만나 떠들고 있고 암튼 어지간한 사연으로는 어디가서 명함도 못내밀고 뭐 이따위 크리스마스가 있나 싶어서 믿지도 않는 하나님께 기도나 한 번 해봐야겠다. 크리스마스 저녁엔 온 하늘에서 아름다운 노래가 지상으로 사뿐히 내려오기를 사람들은 어디서 나오는 노래인지 몰라서 어리둥절 사방을 둘러보다가 자기 귀를 의심하고 몇 몇 예민한 사람들은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순식간에 눈치를 채고 몇 몇 순수한 사람들은 그저 노래에 감정을 실어버리고... 거리는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는 어둑해지는 도심사이로 사라지고, 정신없던 네온사인들도 파스텔톤으로 바뀌고, 마치 세상이 하나의 커다란 음악감상실이나 조그만 클럽이 된 것처럼 모두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노래에 집중하는 모습이면 좋겠다. 방방 뜨는 신나는 노래보다는, 한숨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슬픈 노래보다는, 슬픈 듯 하지만 슬프지만은 않고 아름다운 듯 하지만 오히려 아프고 잔잔하고 또 먹먹하게 가슴이 시려오는 노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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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반대의 논리에 대하여

뭐 워낙 대꾸할 가치가 없는 이야기들이 많으니 다 패스 특히 병역거부를 여호와의 증인에 국한시켜서 바라보는 일부 보수기독교도들의 반대의견은 진지하게 외면해줘야 한다. 그냥 국방부의 대체복무제도 백지화 계획(?)에 대해서 지지와 찬성을 보이고 있는 의견들이나 기사들을 보면 '신성한 병역의 의무에 예외가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스포츠 선수들 올림픽에서 금메달따면 면제해주는 건 뭔대? 국방부가 병역을 가지고 징병대상자를 상대로 장난치고 있을뿐이다. 전혀 신성하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사례가 스포츠스타에 대한 병역면제다 '개인의 양심과 인권도 중요하지만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도대체 어느법 어느조항에 '병역'이 국민의 의무로 되어 있다는 건지. 혹 국방의 의무라 할지라도, 소로우를 흉내내어 보자면 "내가 지켜야할 유일한 의무는 국방의 의무가 아니라 평화에 대한 의무일 뿐이다" "나는 병역법을 존중할 필요보다는 다른 사람을 존중할 필요성을 더 크게 느낀다. 그리고 만약 내가 군인이 된다면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항상 총구멍을 상대방으로 향한 상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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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없는 편지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는 사람의 마음에 어떤 연필자국같은 흔적을 남긴다. 물론 글씨를 너무 심각하게 못쓴다면 감동을 절감되겠지만 말이다. 앗 때마침 브로콜리너마저 1집의 '편지'가 나오네ㅋㅋ 굳이 손으로 정성스레 쓴 편지가 아니라도 컴퓨터로 출력한 편지라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선 언제나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누구나 몇 번을 꺼내 다시 읽고 또 읽은 그런 편지들이 한 두 통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왕창 재수 없는 편지 받았다!!! 아... 크리스마스 카드도 아니고 짜증나... 표지를 보는 순간 불안감은 이미 우리집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자나 하는 내용을 확인하고 짜증ㅠㅠ 벌금이 250만원이란다. 촛불집회 5월 31일 물대포를 쏘던 그날. 밥먹고 집에가다 잡혀가서 어디서 쪽팔려 이야기도 못하는데 25만원이라니 세상에. 뭐 준법정신 코딱지만큼도 없고 그래서 저들이 나보고 유죄라고 해도 사실 억울하지는 않은데 벌금 액수를 보고 이건 뭔가. 예전에 내가 받았던 벌금들과 비교해봐도 이건 정말 짜증이다. 국회 국방위원장실 점거한다고 설치다 잡혀나왔을때도 200만원(이 땐 내가 주동자처럼 되어버렸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더 조금 나왔다)나왔고 평택에서 포크레인위에 올라가서 의도적으로 해정대집행을 방해했을 때도 100만원 벌금이었는데, 겨우 이정도꺼 가지고 250만원이라니 어처구니 없다. 그날 200명 약간 넘게 연행되었는데 그사람들한테 200만원씩 걷으면 4억이 되는구나. 국가경제가 어렵다고 이런식으로 재정을 확충하려는 건가? 근데 재미있는건 편지를 보낸 곳이 중앙지법 공안부다. 그리고 나의 죄명은 일반교통 방해다. 천하의 공안팀이 일반교통사범들이나 다루고 있다니... 바보들. 아 검사새끼 욕나온다. 나 착하게 살고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못되게 살고싶지도 않은데. 착한척하며 아무도 안미워하기보다는 미운사람 미워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미운사람 하나라도 안만드는게 좋은데... 계속 욕만 나오네ㅠㅠ "메리크리스마스" 이런 말이라도 하나 붙여주는 센스가 있었다면 그래도 덜 재수없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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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사가 내 마음을 빼앗아갔어

역시 블로그에 글을 쓸 때는 항상 무언가 다른 일을 해야하는데 그 일이 잘 안되고 하기 싫고 그럴때가 많다. 이미 마감을 넘긴 기사를 쓰다가 너무 쓰기 싫어서 또 이러고 있다ㅠㅠ 노래가 없는 세상을 생각해본적이 있는지... 나는 조지오웰의 1984와 같은 사회가 만약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언론이나 역사의 통제보다는 왠지 노래나 혹은 예술의 통제를 통해서 이루어질것만 같은, 논리에 기반하기보다는 전적으로 나의 느낌에 기반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노래는 사실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혹은 때로는 신념이나 사상을 발화하는 가장 원초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의 내용과는 상관없이(물론 내용도 좋지만) 김남주 시인의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이라는 제목의 시를 좋아했다. 참고로 이 시는 안치환이 '희망이 있다'라는 제목의 노래로 만들기도 했다. 감옥안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노래를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생각해보니 다른 어려운점도 많이 있었다ㅋ) 그나마 잠시 독방에 머무를 때는 노래책 하나 방에 가져다 놓구 혼자서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지만, 아무래도 내가 부른 노래는 항상 내가 아는 노래와는 너무나 차이가 있어서ㅠㅠ 하루에 아침 점심으로 1시간씩 틀어주는 라디오에서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혹은 듣고싶었던 노래가 나오면 그날은 정말 보고싶었던 친구가 면회를 온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어쨋든 나오면 노래나 실컷 들어야지 했는데 대부분의 결심이라는 것이 그렇듯 막상 욕구가 충족될 수 있는 상황에서는 그다지 절실하지 않게되는 것처럼 정작 나와서 노래를 많이 듣지는 않았던 거 같다. 그런데 뭐 언제나처럼 큰 특별한 계기 없이 요새는 노래를 듣는 일이 많아졌다. 컴퓨터나 엠피쓰리로 듣기도 하고 직접 공연을 가서 듣는 경우도 많아졌다. 아... 분명 노래를 듣는 것보다 책을 보는 것이 나의 지식을 풍성하게 해주겠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나올 수 없는 노래들을 만나게 되면 어쩔 도리가 없다. 특히 요새는 몇몇 곡의 가사중 특정 부분에 푹 빠져들어가있다. 원래 내가 노래 들을 때 가사를 중요하게 듣는지라...(언제쯤 외국곡에 빠져들 수 있을까ㅠㅠ) 먼저 시와의 '화양연화'. 노래는 뭐 그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감정으로 하지만 아주 서서히 다가온다. 끝나버린 사랑이 슬프지도 그렇다고 덤덤하지도 않은 그런 감정이라고 해야하나. 뭔가 먹먹하지만 말로 설명해낼수 없는 느낌. 그리고 루시드 폴의 '바람, 어디어세 부는지'에서 "혼자라는 게 때론 지울 수 없는 낙인같아.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라는 가사. 정말 혼자 있어본 사람은 알거다. 아니 사실은 누구나 결국엔 혼자다. 나는 이 가사를 들으면 왠지 루시드폴의 '사람들은 즐겁다'에서 "나를 둘러싼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즐겁다"와 연결이 된다. 뭐랄까, 언제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신세지고 살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고독감이 인간이면 누구나 원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죄(기독교적인 원죄라기 보다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누군가의 희생과 관계맺을 수밖에 없는)를 바라보는 눈빛이 느껴진다. 언니네이발관의 '산들산들'에서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누군가의 별이 되기엔 아직은 부족하지 그래도 난 가야하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이 부분도 참 좋다. 마구마구 공감이 간다. 그래 난 부족하지. 그래도 절망하지 않을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이런말이 절로 나온다. 사실 언니네이발관 5집은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인데 헤어져서 힘들어하다가 해탈하는 내용인데, 나야 뭐 그런 해탈은 해본적이 없지만ㅠㅠ 암튼 좋다 며칠전에 길을 걸으며 이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고 있는데 앞에오던 초등학생이 걸음을 멈추고 뭔가 이상하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래 나 노래 못한다 ㅠㅠ 그런데 이석원의 그 독특한 보이스를 흉내내서 불렀다. 그래 미안하다ㅠㅠ 브로콜리 너마저의 '말'도 감정이입 이빠이다. "하지 않았다면 좋을 말들. 유난히도 파랬던 하늘이라니"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스틸컷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참 말이 많아서 하지 말았어야하는 말도 많이 하게 되고, 아뿔사 이미 뱉어낸 순간부터 후회하기도 하고. 그런 상황이면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또 하필 그런 날의 하늘은 왜 저다지도 파랗고 맑은지. 아마 올초에 했던 다짐이 말 수를 줄이자였던거 같은데. 담배피는 사람들이 매번 새해에 금연다짐하는거랑 똑같은거다 나에게는. 결국 블로그질 하느라 시간 다잡아 먹고ㅠㅠ 이제 서둘러 글 쓰지 않으면 뒤에 있는 약속들 줄줄이 늦게 생겼다. 후회해서 뭐하랴. 고쳐지지 않는 못된 습관들에는 후회조차도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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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가 필요해

때로는 상징과 비유를 쓰지 않고 직접적으로 한 표현들이 사람들의 해석을 거치면서 의미심장한 문구로 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면,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의 가사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무리 애를쓰고 막아보려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 두 마디이다. 반복되는 두 마디의 강렬한 포스가 듣는 사람의 감정을 자극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사랑노래로 생각한다. 아무리 애를쓰고 막아보려해도 들리는 너의 목소리라니, 얼마나 끈적한 고백인가. 소설가 한강은 한 에세이에서 이 노래를 들으면 정태춘박은옥의 '그대 고운 목소리에~'로 시작하는 노래가 생각난다고 한다. 그런데 델리스파이스의 말을 들어보면 이 노래의 가사가 쓰여진 배경은 이렇다. 방음시설이 잘 안되어 있는 집에 살고 있을 때, 옆집 사람의 말소리가 너무 시끄럽게 들려서,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해도 역부족이었던 경험에서 쓴 가사라는 것이다. 델리스파이스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암튼 사랑노래로 사람들이 받아들여도 충분히 아름다운 노래임은 틀림없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또한 데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처럼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님의 침묵에서의 님이 무슨 부처라느니 민족이라느니 말들을 하지만 난 아무리 봐도 그건 사랑시다. 사랑하는 님이 멀리 떠나가버려서 너무 슬픈거다. 뭐 근데 이건 확인할 수 없으니... 넬 노래 중에 제목이 기억이 안나지만, "유난히 내 곁에만 산소가 모자란듯..."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갑자기 바로 이 구절도 상징과 은유가 아닌 직접적인 표현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숨쉬기 힘들정도로 외롭고 힘든 감정상태가 아니라 정말로 산소가 모자라서 숨쉬기가 힘든거다. 고산지대도 아닌데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나는 오늘 아침에 경험했다. 요새들어서 자주 이런 경험을 하는데 술을 마신 다음날은 숨쉬기가 힘들다. 산소가 뇌에 잘 공급이 안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느린 걸음에도 숨이 차오르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사람들을 둘러보면 다들 멀쩡하다. 유난히 내 곁에만 산소가 모자란 듯 나 혼자서만 숨쉬기가 힘들다ㅠㅠ 넬도 술마시고 난 다음날 이 가사를 썼을까? 암튼 때로는 의도적으로 상징과 비유를 배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상징을 띄게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람들이 의미를 덧칠하기도 한다. 산소가 뇌에 잘 공급되면 더 정리된 글을 썼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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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일본의 군대는 왜 '정신주의'를 강조했는가?

일본의 군대는 왜 '정신주의'를 강조했는가? [권혁태의 '일본읽기']<26> 군대는 천황제 국가의 교육기관 한 사회를 '군사주의'라는 개념으로 묶어 해석한다면, '군사주의'라는 말 속에는 군대라는 조직이 사회의 중추세력으로 자리 잡을 때 발생되는 '경직성'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군대 내에 존재하는 엄격한 군기와 규율은 군대 내부에서는 '폭력'의 형태로, '용감무쌍함'은 외부의 적에 대해 '잔인함'이라는 형태로 각각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는 군대 내부뿐만 아니라 군대를 둘러싸고 있는 군대 외부에 광범위하게 그리고 뿌리 깊게 존재하는 위계질서, 조직의 비민주성 등의 현상으로 대표되는 '사회의 군사주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한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군사주의적 경향은 정치적 개념 이상의 보다 폭 넓은 규정성, 예를 들면 역사적 문화적 기반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사주의를 폭력성, 봉건성, 정치지향성(과잉 이데올르기)이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바라 볼 경우에(세 가지 요소는 서로 간에 영향을 미치면서 증폭상승의 과정을 반복하지만), 특히 우리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봉건성'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군대적 위계질서가 군대 내부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기초원리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고, 또한 이와 같은 '봉건성'이 폭력성과 정치지향성의 기초를 이룬다는 점이다. 폭력성과 정치지향성은 군사조직이 갖는 일반적 성격이지만, '봉건성'은 폭력성과 정치지향성을 한층 더 노골화시키며, 일반적으로 '불완전한 근대' 속에 있는 사회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 일본 해상자위대 ⓒ연합뉴스 그렇다면 군대의 봉건성은 어디에서 유래되는 것일까? 하나는 저비용 다병주의이다. 물론 고비용 정예주의의 반대편에 있는 말이다. 이는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작은 비용으로 많은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군대와 사회 간의 생활수준의 격차는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사회보다 열악한 군대 내의 생활수준에 사회에서 갓 입대한 청년들을 적응시키고 그 적응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문제를 은폐/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애국', '충성', '단결' 등의 이데올로기적 장치와 함께, 폭력 장치가 다수 동원된다. 그리고 이 시스템의 유지를 위해서 문화의 '전통'이 다수 동원된다. 한국 군대에서 쉽게 동원, 소비되는 유교적 언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유교 등의 문화적 전통과 군대의 엄격한 위계질서, 혹은 봉건성과의 인과관계가 반드시 명확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유교적 전통 문화와 군대내의 엄격한 위계질서 간에 현상적인 공통점이 발견된다고 해도, 공통점만을 근거로 양자의 인과 관계를 주장할 수는 없다. 해방 후 한국의 군대 조직이 그 내부 규율이나 조직 시스템에서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향은 대개의 경우 인적 계승의 문제로만 해석되어 왔다. 따라서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 청산되지 못했다는 일종의 역사적 '순결성'의 확보라는 차원에서 구 일본 제국주의와의 연속성이 갖는 파행성이 강조되어 왔다. 해방 한국의 군대 조직의 중심세력이 과거의 친일파나 혹은 일본 육사나 군대를 경험한 세대들에 의해 주도된 나머지, 해방 정국 이후의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이에 따라 군대를 비롯한 사회조직에도 광범위하게 일본 제국주의의 '흔적'이 강고하게 남게 되었다는 논리이다. 물론 제국군대와 한국군대를 군대 규율의 연속이라는 차원에서 '인적 계승'을 통해 밝혀내는 작업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이는 지나치게 군대 규율을 기능의 차원에만 가두어서 해석하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 군대의 가장 큰 특징인 정신주의는 어디에서 유래된 것일까? 가와노 히도시(河野仁)는 2차 세계대전 시의 미군과 일본군의 행동패턴을 비교분석해 미군을 '생환의 군대'로 일본군을 '옥쇄의 군대'로 묘사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일본 연구자 존 다워(Jonh W. Dower)는 2차 세계대전 중의 미국인에게 일본군은 '이상한 규율과 전투 기술을 가진 일본인 초인(슈퍼맨)'으로 각인되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초인적인 정신주의적 경향이 군대내의 엄격한 규율과 폭력에 의해 지탱되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이와 같은 정신주의적 경향이 어떤 이유로 형성되었는가이다. 첫째는 문화주의적 접근방식이다. 미국의 일본 연구의 효시라 볼 수 있는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은 전쟁 중에 나타나는 일본 군인의 과도한 정신주의적 헌신성, '무항복주의'를 일본 사회 고유의 '치욕'(하지, 恥)의 문화에서 찾고 있다. 이 '치욕'의 문화가 잔인함, 맹목성, 충성심으로 연결되었고 '옥쇄', '산화', '가미가제', '집단자결', '할복'과 같은 극단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었다는 것이다. 혹은 에도시대의 무사도와 같은 정신주의적 토양의 전통이 전전의 일본 군대의 정신적 원류를 형성했다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는 에도 시대 인구의 약 7% 정도를 차지했던 사무라이 계급의 도덕률을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무라이 계급과 일본군과의 정신세계상의 현상적인 공통성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두 번째 접근 방식은 '위로부터의 강제', 특히 군대 내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던 이른바 '정신교육'의 철저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특히 정신교육을 통해 개인을 가족, 고향 공동체, 천황에 끊임없이 매몰시켜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군인칙유'(軍人勅諭, 1882년 천황이 군인에게 '하사')에서는 군인의 덕목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천황에 대한 '충성'에 두고, '천황 통수권' 하에서 일본군을 '국민의 군대'가 아닌 '천황의 군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상관의 명령은 곧 천황의 명령이니, 이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군인의 죽음은 곧 천황에 대한 충절의 가치이며, 충의는 산(山)보다 무겁고 사는 홍모(鴻毛)보다 가볍다" 등등. 또한 군인들의 내무생활 지침을 담은 '군대내무서'(軍隊內務書, 1908년 제정, 1943년 대폭 개정하여 군대내무령으로)에서는 군대를 '一大家族'으로 간주하고 가족의 공간으로 내무반을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증언은 군대 내무반의 성격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 "저녁 점호를 끝내고 내무반에 돌아간다. (중략) 초년병은 정열하고, 우선 군인칙유의 암기복창이 시작된다. 순번이 돌아온다. 누군가 우물쭈물하면 '안경을 벗어! 이를 악물어!'라는 말과 함께 전원에게 핀타(뺨때리기)가 날라온다. 칙유암기복창이 끝나면 다음은 총을 비롯해 총검, 군화 등의 수입, 검사가 시작된다. 연대해서 기합을 받는 경우가 많다. (중략) 내가 때리는 것이 아니다. 대원수(천황)가 때리는 것이다. 잘 알아두라고." 또 전장에서 군인이 지켜야 할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담은 전진훈(戰陣訓, 1941년)에서는 "항상 향당가문(鄕黨家門)의 체면을 생각하라"라는 내용을 담아 향토부대주의 채용의 기반으로 삼았으며, "살아서 포로의 굴욕을 받지 말아야 하며 죽음으로 오명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구절을 통해 '옥쇄(玉碎)'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위로부터의 강제'를 강조한다고 해도, 일본 제국주의가 왜 이런 정신주의적 규율을 강조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대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정신주의적 규율은 결국 저비용주의라는 요인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일본 육군의 전략 전술의 기본원칙을 담은 『통수강령(統帥綱領)』(1928)에서는 "물질적 진보는 심대하지만, 승패의 주된 원인은 여전히 정신적 요소에 있으며", 이 정신적 요소로 "부족한 군대와 자재"를 넘어설 것을 담고 있다. 또 『작전요무령(作戰要務令)』(1938)에서도 "훈련이 주도면밀하고 필승 신념이 확고하며 군기가 엄정하고 공격정신이 충만한 군대는 물질적 위력을 능가"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군이 독일식 화력주의를 버리고 이 같은 정신주의적 규율에 입각한 '백병주의'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은 러일전쟁 무렵이다. 낮은 수준의 공업 수준과 한정된 경제력으로 인해 군사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던 일본 군대는 선택의 여지없이 정신주의에 입각한 백병주의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이후 정신주의에 입각한 백병주의가 일본 육군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낮은 수준의 경제력 때문에 포병주의에 입각한 물량 화력주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대량의 인원동원에 입각한 육군 중심의 정신주의를 초래했으며, 그 결과 징병제도를 강화해 인적 자원의 대량 동원 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리고 대량으로 동원된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위한 시설로서 '집단 거주형 내무반'이 고안된다. 그리고 집단 거주형 내무반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정신주의적 규율과 폭력장치가 동원된다. 지금 한국 군대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내무반 구조가 구 일본 육군의 그것과 거의 흡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와는 달리 보다 본질적인 문제인 '불완전한 근대'와의 관련 속에서 일본 군대의 특징을 설명하는 견해도 있다. 선교사의 아들로 일본에서 태어난, 캐나다의 역사가이면서 외교관이었던 허버트 노만(E.H. Norman)은 일본 군국주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노예의 신분에 있는 자는 타인에게 자신의 족쇄를 채우는 가장 잔인한 대리인이 될 수 있다. 징병제 설정의 동기가 농민반란 진압의 수단이었고 반혁명을 위한 군대창설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군대는 본질적으로 대외침략으로 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일본 군인의 잔인한 대외침략의 원인이 일본 군대가 '해방되지 않은 농민'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서양의 징병제가 근대 시민 혁명에 의해 탄생한 '시민'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근대적 시민 혁명이 아니며, 따라서 일본의 군대는 '시민'이 아니라 '해방되지 않은 농민'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감시', '강제', '비자발성', '신분제에 가까운 위계질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생적으로 시민사회를 형성하지 못하고 위로부터의 '근대화'가 강하고 매우 빠르게 이루어지는 사회에서는 근대적 사회조직에 적합한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또한 매우 폭력적이고 급진적이다. 예를 들면, 근대적 인간형은 글을 읽고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정해진 시간까지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까지 일하고 퇴근하는 것이 신체화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시간규율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육은 농업노동이 아니라 분업화된 공정 속에서 한 가지 일을 반복하는 공장노동에 적합하여야 한다. 일단은 중세적 신분질서는 무시되어야 한다. 일본의 예를 들으면, 사무라이 계급이 구 백정 계급인 에타/히닌과 같은 공장에서 같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족이나 신분이 아닌 새로운 사회집단(회사 등) 속에서 자신을 자리매김하여야 한다. 그리고 가족이나 지역, 신분에 따라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국가라는 틀 속에 '국민'으로 통합하여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근대적 노동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매우 더디고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따라서 개별자본의 수준에서는 높은 비용과 시간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국가가 교육기구(내용, 기관 등)의 기반 확충 등을 통해 이를 달성하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이 또한 많은 비용이 소요될 뿐 아니라, 추진과정에서 적지 않은 마찰과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이에 소요되는 조정비용 또한 적지 않다. 이 역할을 대행한 것이 일본의 군대였다. 일본 등의 후발산업국의 근대화 초기과정에서 군대가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은 단순히 치안 유지와 내란 방지라는 군사적 성격 이상의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천황을 중심으로 근대적 '국민' 만들기 과정에서 단일의 교육기관으로서 군대가 다수 동원되었다. 군대는 천황제 국가의 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 군대가 사회를 천황 중심으로 통합하는 역할을 대행한 것이다. 또한 근대적 노동 규율을 단기간에 매우 효율적으로 그리고 강제로 신체화시키는 역할을 일본의 군대가 대행했다. 그리고 천황 중심의 사회동원 시스템의 연결고리로 군대가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일본의 군대는 해체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군대가 지녔던 정신주의적 전통은 자위대에 그리고 일본의 기업 사회에 아주 강하게 계승되었다. '군대 아닌 군대'인 자위대에서 최근 연간 100명의 자살자가 발생하는 것 또한 이런 정신주의적 토양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권혁태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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