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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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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3/25
    타투인협회창립포럼 웹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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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간 시간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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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9/02/16
    순간을 간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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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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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9/02/12
    세상의 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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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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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해도 괜찮아

돕이 얼마전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 야구는 좋아하지만 국가주의를 싫어하는 나는 WBC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뭐 복잡한 이야기들이 얽혀 있지만 그냥 귀찮아서 결론만 말하면 나는 WBC를 별로 안좋아한다고 했다. 경기를 본 것도 우리 석민얼힌이가 선발로 나왔던 베네수엘라 경기 그것도 윤석민 들어가고 나서는 안봤지.. 암튼 WBC따위는 제껴두고 드디어 프로야구 개막 사실 프로야구 개막을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야구에 정신팔려서 야구기사 찾아보다 하루가 다 갈까봐 걱정하기도 했다(벌써 그러고 있다ㅠㅠ) 암튼 해설자들은 예의 "올시즌은 너무도 치열해서 쉽사리 예측할 수 없다"는 뻔한 이야기들만 늘어놓고 있고 나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개막경기를 볼수없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냥 야구 개막하니까 좋다. 내가 응원하는 기아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할거 같은데 그래도 상관없다. 기아 꼴찌해도 좋다 그냥. 그냥. 야구 개막하니까 좋다 야구장 가야지. 구경하러 가야지. 김밥싸서 들고 가야지. 맥주사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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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자각과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는 의식 사이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과 조용히 살다가 아무에게도 폐끼치지 않고 싶다는 바램 사이에서 결국 인생은 혼자살아가는 것이라는 믿는 이용석과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고 소리없이 흐느끼고 싶은 이용석 사이에서 떠나버린 당신과 떠나갈 당신 사이에서 내가 노력을 쏟아부은 사람들과 나에게 노력을 쏟아부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에게 눈물을 보여준 사람들과 나에게 한숨을 보여준 사람들 사이에서 가지않은 겨울과 오지않은 봄 사이에서 이장혁을 듣고 이소라를 듣고 기형도를 읽고 김연수를 읽고 내가 쌓아온 모든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수 있을만큼 부실하고 모른척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보잘것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픈 각성의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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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인협회창립포럼 웹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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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절

내 인생의 한 시절이 저물어가고 있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벌써 꽤 오래전, 엇비슷하면서 사뭇 다른 그때처럼... 그것은 단절을 의미하는 거였다. 내가 뻣어온 가지들을 잘라내는일. 잘린 가지 사이에선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새순이 돋기도 하고 잘린면이 썩어 소멸되기도 했다. 새롭게 돋아낸 싹들도 그 전과 결코 같은 모습일 수는 없었다. 잘려나간 가지들마다 아픔은 한가득이었지만, 그때의 경험으로 내가 배울 수 있었던 건 아픔은 결코 피할 수 없고 다만 예쁘게 잘려나가야만 그부분이 썩지 않고 새롭게 싹이 돋을수 있다는 것. 하지만 여전히 배우지 못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예쁜 절단면을 만들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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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예전엔 그랬다. 오해라는거 사람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것이니까 그냥 어지간한건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자고, 그러다보면 풀릴 오해들은 풀린다고 오해를 풀려고변명하는 순간 오히려 오해들은 증폭된다고 우리가 상대방의 모든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설혹 모든것을 다 알아도 나머지 하나에서 오해를 발생하고 안다고 하는 것도 결국 각자의 주관이 깊숙히 개입해있기 때문에 오해가 발생하지않을 완벽한 조건은 없다. 또 오해라는 것은 아니땐 굴뚝에서 연기나는법이 없는것처럼 충분히 그런 오해가 발생할만한 정황의 누적속에서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나에 대해 어떤 오해를 하는 경우 많은 부분 그런 오해가 가능하게 만든 나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서로간의 신뢰가 이런 오해들에 대해서 방어벽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신뢰라는 것이 강력할 때는 핵무기가 공격해도 무너지지 않을정도지만 그렇게 강력한 신뢰도 아무리 오랫동안 두텁게 쌓아온 신뢰도 다 한순간에 산산조각나기도 하는데, 강력했던 신뢰일수록 그것이 무너지고 나면 더 큰 반작용이 생기는 것 같다. 이럴경우 오해는 암세포처럼 무섭게 퍼져가기 시작한다. 오해라는 것 피할 수 없는 거라 생각하고 그냥 시간이 해결해줄거라 생각했었는데, 좀 안일했다. 뭐 오해야 풀면 그만이지만, 풀릴 오해는 어떻게든 풀리겠지만 내가 주고 있던 신뢰가 결국 이정도였구나 하는 생각이 씁쓸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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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9

참을수 없이 부끄러워, 나의 행동과는 정반대인 글들이, 올바른 글들이 너무 부끄러웠다. 입으로만 떠들어대고 삶은 개판인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착한척이든 뭐든 간에 내가 쓴 글들 또한 나이고 개판으로 살고 있다해도 그 삶 또한 나이고 도대체 서로 연결이 안되는 두 가지의 모습이 다 나에게 속한것이고 사람들이 나의 좋은 면만을 봐주기를 바랐던 마음이었고 암튼 이제 부끄러움이 채 가신것은 아니지만 이게 나인걸 어쩌겠냐 싶어서 다만 이제는 좀 더 솔직하게 글쓰고 괜히 올바른척 착한척하지 말고 남들 듣기좋은 뻔한말 하지 말고 아는것없이 괜히 아는척 무례하게 쓰지 말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모든것을 가질수 없음을,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을 다시 한 번 각인하고 또 잃어버리고 나서 소중함을 깨닫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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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시간에 대한 예의

과거를 추억하지도 미래를 기대하지도 않겠다고 그냥 지금 이순간만에 충실하자고 다짐했던 건 아마도 2003년 쯤부터였을 것이다. 무겁던 다짐들이 무너지고, 영원까지는 아니더라도 굳은 신뢰들이 서로 배반하는 과정을 겪으며 이제 살아갈 세상은 그리 아름다운 곳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여전히도 루시드폴의 노래가 좋은 걸 보면 과거는 나에게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는 지나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지나간 시간에 대한 예의를 가져야겠지... 지나가버린건 어쩌면 시간뿐이고 나는 거기서 한발짝도 자라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니까. 친구가 이장혁 들어보라고 해서 한참 이장혁을 들었다. 그리고 견딜 수 없는 감정이 버거워 엠피쓰리에서 지워버렸다. 그런데 스멀스멀 한 곡씩 한 곡씩 찾아듣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피할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때로는 피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애써 도망치려고 해도 결국에는 도망치지 못할 것들이 있다. 그렇더라도 어쩔수 없었다고, 그것이 모든 것에 변명이 되는 것은 아닐것이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예의. 그건 아마도 어쩔 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지켜야하고 고려해야하고 배려해야하는 것들을 뜻하는 말일것이다. 상황은 언제나 지나고 난 이후에 자각을 불러일으키며 그런 일련의 과정을 다른 말로는 후회라고 할것이다. 아무 부질없는 이름 후회. 이런 면에서 인간은, 아니 나란 존재는 성찰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존재일지도. 내 감정에 취해 돌진하다가 문득 나의 속도를 깨달았을때는 항상 소중한 것들을 지나쳐버린 이후였다. 그렇게 소중한 것들과 하나씩 하나씩 이별하면서 살아왔다.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들으며, '내가 떠나보낸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것도 아닌데.' 하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돌이켜보면 모두 내가 떠나보낸것이었다. 살아가는 일은 결국 나를 죄인으로 만들고, 모든 관계는 상처를 주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것을 핑계로 나는 상처를 덜 주는 방법들에 노력하지 않았었던 것이다. 늦게라도 내가 짊어져야 할 몫, 그리고 나에게 소중했던 시간들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겠다.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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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간직할 수 있을까?

이지형과 루시드폴과 언니네이발관이 함께 한 콘서트에 갔다왔다. 살짝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 이지형이 토이의 노래를 부른 그 이지형이라는걸 콘서트 시작 조금전에야 알았다ㅠㅠ 언니네이발관 5집을 1번부터 10번까지 순서대로 연달아서 들은건 행운이었다. 내 엠피3은 좀 이상해서 노래를 넣으면 가수이름으로는 대충 정렬되는데 그 안에서 곡의 순서가 마구 섞이는데, 역시 언니네이발관 5집은 순서대로 들어야 한 편의 이야기로 살아나는 듯. 그리고 예상외의 이석원의 개그 센스. 루시드폴은 실물은 처음 봤는데, 생각보다 키가 크더라. 마이크가 낮아져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노래를 불렀다. 사람이었네를 부를땐 뭐랄까 내가 지금 이 노래를 듣고 있는것이 세상의 둘도 없는 축복같았다. 특히 마지막부분의 충만한 사운드는 마치 한 편의 대하소설의 결말과도 같은 느낌. 출소하고바로 루시드폴 3집을 사서 이 노래를 맨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이 다시 물밀듯 밀려왔다. 콘서트를 보는 내내 생각했었는데, 과연 인간이 순간을 간직할 수 있을까? 노래를 들을 때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은 음반이 라이브보다 더 완벽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어쨋든 CD플레이어가 만들어내는 소리일뿐. 라이브가 전하는 감동을 간직하지는 못한다. 그건 라이브 앨범에서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가수의 거친 숨소리와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그저 소리가 아니라 공간을 가득채운 일종의 물질성을 가진 개체로 느껴질 때의 느낌은 그 순간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가수가 똑같은 노래를 부른다고 해도 그 때마다 그 노래들은 각 각 다른 노래이며 이 세상에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존재하지 않는 오직 하나뿐인 노래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하지만 지나버리고 나면, 그건 각자의 기억에 조작되어버린 이른바 추억일 뿐. 그렇다고 추억하는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순간은 그 시간과 그 공간에 존재할 때만이 유일한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꼭 가수의 노래가 아니더라도 모든 순간은 순간으로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쁘고 즐거운 순간이든 견디기 힘든 고통스런 순간이든. 사람들은 사진으로, 혹은 동영상으로, 혹은 언어적이 표현으로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지만, 그렇게해서 태어난 각각의 기억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이 될 수는 있지만, 그래도 그것들의 원본이었던 그 순간만은 될 수 없다. 그것을 깨닫는다고 해서 과거를 기억하거나 추억하려는 작업들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불가능을 인식하는 것과 그럼에도 끊임없이 불가능을 행하는 것은 별개다. 불가능하다고 해서 포기해버린다면 인간됨을 증명할 수 있는 중대한 행위를 멈춰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오만하지 말것이며, 지금 이 순간은 다시는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기억하며, 지금 이순간에 최선을 다 하면 되는거다. 순간을 간직할 수도 망각할 수도 없는 우리 인간의 몫은 딱 그 정도일 것이다. 지나간 과거를 미화할 필요도 없고, 다가올 미래를 낙관할 필요도 없이,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세상과 함께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자. 그것이 '이 순간'을 의미있게 살아가는 유일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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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엄마는 미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느라 정신 없다. 어쩌다 눈시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시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안우신다. 정말 엄마말대로 미국에서 하도 많이 울어서 눈물이 말라버렸나보다. 엄마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자꾸 이모 생각이 나 사실은 안듣고 싶지만 그래도 내가 엄마한테 해 줄 수 있는게 엄마 이야기 잘 듣는 일밖에 없으니... 우리엄마도 그렇지만 이모 또한 그다지 이기적이지 못한 사람이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살기보다는 가족이나 형제자매들에게 희생하는... 이모는 2001년에 미국으로 이민갔다. 그리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하루도 안쉬고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몸에 탈이 나지... 일주일에 하루씩이라도 쉬었으면... 근데 그렇게 모은 돈은 당신을 위해서는 쓰지도 못했다고 한다. 재작년 이모가 처음 암에 걸렸을 때, 가게도 장사가 잘 안되고 병원비도 많이 들고 하니까 이모는 몰래 한두푼씩 모아서 만들어놓은 1만달러를 내놓았다고 한다. 이모부가 나중에 한국 갈일 있으면 가서 여유있게 쓰고 오라고 하려고 모오놓은 돈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모부는 그 돈을 받고 며칠후에 이모에게 뜸을 들이며 무슨말인가를 할듯말듯했고 답답해진 이모가 보채자 이모부 또한 이모몰래 1만5천달러를 모아놓았다고 털어놨다. 그 돈으로 이모 몸 좀 괜찮아지면 한국가서 푹쉬고 병 다 떨쳐버리고 오라고 했단다. 아... 이 무슨 '크리스마스캐럴'도 아니고... 머리카락 팔아서 시계끈 사고 시계 팔아서 머리핀 사는 것도 아니고... 암튼 사촌동생이 이모랑 이모부한테 "우린 열심히 일하는데 왜 돈이 안모이지?" 했을때 두 분다 뜨끔 했다고 했다. 그럴만도 하겠다. 우리엄마 이야기 듣는데 눈물이 찔끔거려서 참느라 혼났다. 나는 참 이기적인게, 이런 이야기 들으면서도 나를 생각한다. 이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울엄마한테 내 얘기 하면서 아프고 죽을 때 되니까 아둥바둥 돈 모은거 다 허무하다고, 용석이 지 하고 싶은일하고 좋은일하는데 걱정마라고 하셨단다. 그 얘기 들으면서도 맞는 말이라고 아둥바둥 돈벌고 살 필요없다고 나에게 유리한 말만 늘어놓고 있다. 이모의 마음을 공감하려기 보다는 엄마가 잔소리 안해서 내 일신 조금 편한거를 생각하는 심보라니.. 잘살겠다 이용석. 원래 이기적인 사람들이 잘 산다. 그래 계속 이기적으로 살자. 아... 맘이 짠했는데, 왜 결론이 이따구로 나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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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몇 날이 지났는지 모른다. 고층빌딩조차 도시에서 흔적을 감췄다. 아니, 그대로 남아있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맑은 하늘을 기억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처음과는 다르게 더 이상 사람들은 짜증을 부리지 않는다. 다만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아마도 지구의 종말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된다면 이렇게 시작할 거 같다. 지구의 종말을 상상할 때면 나는 운석의 충돌이나 거대한 자연재해처럼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미래보다는, 어두침침하고 읍습한 안개가 세상을 뒤덮은 채로 지속되는 미래가 상상된다. 즉 종말은 단절보다는, 빠져나올 수 없는 심연같은거 혹은 끝나지 않는 악몽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며칠동안 서울 하늘은 뿌연 기운으로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다. 한강대교를 건너는데 바로 옆 여의도의 63빌딩이 희미하거나 때때로 보이지 않을 정도다. 언제부턴가 이런 날씨가 익숙해져만 간다. 두려운 것은 앞으로 서울의 하늘은 이렇게 고정되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만화같은 상상력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 된다해도 그다지 놀라울것 같지 않다. 어쩌면 정말로 마지막으로 맑은 하늘을 본 것이 2009년 1월의 일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느끼는 인간 세상의 종말. 사람들은 답답함 마음에 짜증 늘어가다가 짜증조차 내지 않을 것이다. 아니 모두가 짜증을 내고 살아가니가 익숙해질 따름이다. 그런 세상에서는 짜증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지도 모른다. 이 하늘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헛된 망상이기를. 요새 기분이 견디기 힘들었던건 어쩌면 이 하늘을 바라보며 숨쉬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그래서 기분좀 바꿔 보려고 이장혁2집도 안듣고 있었는데, 서울 하늘을 볼 때 마다 이장혁 2집의 '그날'이 떠오른다. 물론 이 노래의 가사는 내가 생각하는 방식의 세상의 끝과는 살짝 다르지만, 아무튼 이 노래의 느낌이 지금 서울하늘과 너무 잘어울려 불안하다. 그날 지독히도 쓰디쓴 이 세상의 끝물 이미 쓰여진 대로 그렇게 알고 있어 지난 밤 꿈처럼 사라져갈 인간들의 시간 남아있을 동안만이라도 한 번 더 날 안아줘 한 번 더 날 안아줘 안녕이란 인사도 나눌 사이도 없이 도둑같이 오고 말 그날 알고 있어 정해진 것처럼 불타버릴 인간들의 흔적 할 수 있을 동안 만이라도 한 번 더 입맞춰 줘 한 번 더 입맞춰 줘 알고 있어 정해진 것처럼 불타버릴 인간들의 흔적 할 수 있을 동안 만이라도 한 번 더 날 안아줘 한 번 더 입맞춰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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