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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5/25
    꼭 승리하십시오.
    ninita
  2. 2005/05/23
    2월에,
    ninita
  3. 2005/05/21
    and..
    ninita
  4. 2005/05/20
    자연스러운 것,(2)
    ninita
  5. 2005/05/19
    2005년 5월 18일
    ninita
  6. 2005/05/19
    세상에,
    ninita
  7. 2005/05/16
    ??
    ninita
  8. 2005/05/15
    ..(2)
    ninita
  9. 2005/05/15
    문.
    ninita
  10. 2005/05/05
    .....
    ninita

꼭 승리하십시오.


출처:울산노동뉴스

 

근래 들어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는,

바로 이것.

 

울산 SK 공장 내 베셀탑에서 고공농성하다가 18일만에 강제진압 당해 땅으로 끌려내려온 노동자. 틀림없이 제대로 먹지 못 하고 씻지 못 하고 자지 못 했을... 비 피할 곳 하나 없이 목숨 걸고 투쟁한 노동자의 얼굴이다.

 

노동자들이 이렇게까지 투쟁하는 것에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

그냥 절박한 것도 아니요,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을만큼 절박한 이유.

자본가는 절대 흉내도 낼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그들은 가지고 있다.

 

지금,

응축된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방패로 내리찍으면 더 큰 분노만 낳을 뿐.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자본에 빌붙어 생명을 유지하는 국가정권과 공권력이 존재하는 한,

세상은 전쟁터일 수밖에 없다.

목숨 내건 자들의 피울음이 끊이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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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한 석 달쯤 뒤에 전화해 줘",

라고

말했다.

 

"확인해 봐. 그 때쯤. 잘 살고 있는지.",

그런

주문이었다.

 

석 달이 지났고,

내 절박함은 잊혀졌다.

그 때 삼킨 눈물은 내 기억에도 희미해졌다.

 

너무 자연스러운 반복이며 좌절인,

우리의 망각.

이 세상에 없다 해도 믿을 수 있을 거야. 서로를 아랑곳하지 않는 삶.

 

분노와 슬픔으로 살아가고 있어서 미안하다.

나의 선택, 선택적 고립, 고립된 삶, 삶이 부르는 죽음, 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

절망할만큼 치열하지 못한 삶이 절망스럽겠지,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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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무심하고.

조용하게.

 

세월 속으로.

 

슬픈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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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것,

아주 자연스러운 것,

하지만 예측할 수 없어서 미리 자리잡고 있을 수 없는.

 

그런 것들을 찍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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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18일

여전히 피흘리고 있다.

 

개 같은 세상에, 너무 정직하게, 꽃이 피네, 꽃이 지네...



오전 11시.

오산 수청동 철거민 관련 진상규명 기자회견이 있었는데, 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카메라가 몇 대나 있었을까.

경찰이 진압 시기를 박아두고 있던 4월 말엔 방송 3사 eng 카메라도 다 출동했더랬다.

단전단수 이후 한 달이 흘렀다. 도대체 어떻게 살고들 있을런지.

 

오후 3시.

하이텍알씨디 재해자 현장 조사가 있었다. 

그 분들 만나 뵌 것이 겨우 세 번인데, 매번 누군가의 눈물을 보았다.

3,40대 어머니들, 아이들 키우며 4년을 싸워왔다. 10년을 일하고도 2개월 된 직원에 의해 해고당했다. 해고자는 밥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랜다. 아직 현장에 남아 일하는 분들은 한 라인으로 몰렸다. 양옆 비조합원 라인에, CCTV에, 살아있는 CCTV인 관리자들에 의해 감시 당한다. 우울증을 동반한 만성 적응 장애, 홧병이 안 날 수가 있겠는가.

 

오후 5시.

울산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울산 플랜트 노동자들이 강제연행됐다.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었고, 10분 만에 '작전 완료' 되었단다.

썅. 그들이 범법자냐?

보름 넘게 비바람에 몸 피할 곳 없이 굶어온 사람들을, '진압''작전'...

장난하냐?

 

금천구에서는 노점상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벌어졌다.

구청 직원인지 경찰인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노점상들을 몰아냈다. 신원 확인을 요구해도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한다.

 

무슨 놈의 하루가 이렇게 가냐.

 

"5월 18일 현재, 울산플랜트 노조 총파업 62일, 청주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천막농성 121일, 현대기아차 비정규직노동자 옥쇄파업 121일. 이들은 고공에서, 단식으로, 제 살에 불을 붙여, 지상에서의 뭇매를 맞아가며 투쟁하고 있다."

 

경찰청고용직의 투쟁도, 기아차사무계약직의 투쟁도 100일을 훨씬 넘어섰다.

한국통신산업개발노조의 천막농성은 곧 있으면 100일이 된다.

이주노조 만들어 진 지 보름이 채 못 되어 안와르 위원장이 연행되었고,

한 이주노동자는 단속 과정에서 뒷발꿈치가 두동강이 났단다.

 

2005년. 5월.

넌 행복할 수 있겠니?

 


창간기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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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난 당신이 싫어요...

당신이 있어서...

나는 그에게 있어,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그만 놓고 말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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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찍고 싶다,

 

이런 말을 무작정, 그냥, 찍,

내뱉을 수 있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찍, 은 너무 했군.

 

영화를 찍고 싶다, 는 말은 찍 -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 말의 끄트머리엔,

느낌이 있다.

주로 내 느낌은 쓸쓸한 편이다.

 

도대체 뭐야? 영화를 찍고 싶다는 건?

 

격정과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처넣어 진다는 것!

나는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그것!

 

너무도 자연스럽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과정을 견뎌내는 사람들이 신기해.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새벽에 괜히 싸이질 하면 건강에 해롭다.

오늘도,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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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re's no progress without struggle.

 

존 싱글턴의 영화에서였다고 기억한다.

정확히 98년.

 

아. 지쳤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도,

괜한 의무감, 책임감, 다 벗어던져 버려?

 

놀랐었잖아.

그냥 없어져도 그다지 서운하지 않을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

그렇구나, 했었지.

세상은 그렇구나.

 

지금 내가 없어도, 엉크러질 것은 아무 것도 없고.

근데 책임감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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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2004. 2 - 2005. 2



샤갈. first kiss. 로트렉. 바라나시. 티벳. 실비아 플라스. 진 셰버그. 뭉크. 깐느. 카주라호.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몇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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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산수청동은 전쟁 중, 이라는 속보 끄트머리에..

 

"참세상 동지들 오산수청동 취재와 주세요... 저희들은 너무 억울하고 분합니다. 화성경찰은 미친개 입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잡혀간 것도 억울한데 개처럼 취급받고 폭력을 저지를 화성 경찰을 반드시 응징합시다.

5월 4일 11시 오산수청동 현장에서 경찰의 폭력만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5월 4일 1시 화성경찰서 폭력만행 규탄 집회
꼭 참여해주세요. 그리고 취재해 주세요...."

 



몰라서 못 갔고.

알았더라도 못 갔을 거다.

 

...

 

1년쯤 전, 그러니까 참세상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두어 달쯤 흘렀을 때..

내 가장 큰 고민은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맺기를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한 현장에 밀착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다큐 감독이라면 모르겠으나,

여러 현장을 다녀야 하고 그리 긴 관계를 맺지 못 하는 작업패턴 속에서,

친밀한 관계는 어느 순간 죄스러움만 낳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꼭 오세요'라는 절박한 눈빛에도

나는 애매한 대답으로 일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약해빠진 나란 인간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고통 속에 버려진 이들을 만나가며

오랫동안 버텨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참세상에 들어올 때, 지원동기를 묻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었다.

주류 카메라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목소리를 낼래야 낼 수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는 일을 하고 싶다고..

그렇게 말할 때는, 고백컨대 미처 몰랐다.

이 정도로 강한 신념과 체력과 집중력을 요하는 일인 줄을..

 

반복적인 속보 작업을 하다 보면, 속보에서 마저 하지 못한 이야기를 좀더 긴 호흡의 작업으로 좀더 깊이있게 담아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다가도,

정말 끊임없이 여기저기 터지는 문제들과 혹독하게 유린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면할 때면, 다른 작업에 대한 욕구는 그야말로 욕심이 아닌가 싶어질 지경이다.

 

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삐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나는.... 피곤하면 쉬어야 하고, 때로는 책을 읽어야 하고, 또 영화를 봐야 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내 욕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얼마간 타협은 할지언정...

 

이런 생각이 잘못 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생각조차도 죄책감이 드는 건,

내가 정말이지 야만적인 사회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가 한 번에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이상,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집중할 것에 집중하자고 생각하면서도,

적지 않은 시간을 죄책감에 시달린다.

 

수청동에도 다시 찾아가 봐야할텐데.

크게 다치셨다는 소사 철대위원장님도 뵈야 할텐데.

'경찰들이 방송차 끌어내면 저 뛰어내릴 거예요, 그 때 잘 찍으세요'라고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건네던 인천 지역 철거민의 비장함을 너무도 또렷이 기억하는데.

 

죄책감. 무기력함. 욕망. 피로. 내가 선택한 의무. 또다른 욕망.

 

모든 것이 뒤엉켜 나를 괴롭힌다.

 

p.s 다시 잘 울기 시작했다. 그래, 울자. 실컷 울고, 내 "소중한 삶의 밑천들"인 "눈물의 힘" 을 빌어 "겨자씨만큼이라도 그릇된 세상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무언가 지불"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일종의 대리체험이며 면죄의식"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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