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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01
    ricardo arjona
    ninita
  2. 2007/10/28
    어떤, 작별인사 (5)
    ninita
  3. 2007/10/26
    2007/10/26(3)
    ninita
  4. 2007/10/22
    san pedro de atacama / la casa del sol naciente(5)
    ninita
  5. 2007/10/22
    potosi 한 장과 uyuni 여러 장
    ninita
  6. 2007/10/16
    imagine(1)
    ninita
  7. 2007/10/16
    sucre / abrazo(2)
    ninita
  8. 2007/10/15
    따라부꼬
    ninita
  9. 2007/10/15
    바예그란데 / ruta del che 4
    ninita
  10. 2007/10/15
    바예그란데 / ruta del che 3
    ninita

ricardo arjona

수퍼마켓에 줄 서 있는데, ricardo arjona의 노래가 들려왔다. 신보를 발표했다더니, 그 `quien`이라는 노래인가... 과도한 낭만이 흐르는 남미 대륙엔 낭만적인 노래 또한 넘쳐난다. mp3가 고장나기 전, 나라를 불문하고 manà, alejandro sans, tranzas, reik, alejandro fernandez, la oreja de van gogh,shakira 등의 노래를 자주 들었다. 들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라디오만 켜면 그들의 노래가 나왔다. ^^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들은 건 ricardo arjona의 노래들. 버스 안에서도, 택시 안에서도, 터미널에서도, 수퍼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인터넷 까페에서도 수없이 들려오던 그의 노래. 심지어는 누군가의 벨소리에서도 심심찮게. 그래서 그의 노래에는 사소하게 얽힌 기억들이 많다. olvidarte. peguche에서 otavalo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비오는 처마 밑. mp3, 이어폰, 빗소리, 옆자리. 그리고 강도로 오인했던 paraná의 젊은 택시 운전사. el problema. cayambe의 노래방. puno, el duque inn의 주인인 ricardo 아저씨의 딸과 socca에 사는 어린 victor. 더불어 밤새도록 내 잠을 방해했던 프랑스 커플. 하하. ㅡ.ㅡ a ti. calama행 버스에서 만났던, 사촌지간이라는 발랄한 한국여행자 셋. 그리고 이렇게 말하던 한 친구. 너도 리까르도 아르호나 좋아해? 응. 동맥 끊기에 좋은 음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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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별인사

그를 소년이라 부르자. 그는 내게 소년이었으니.

 

소년은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와 허리를 숙이며 한 팔로 내 등을 감싸안았다. 소년의 왼쪽 뺨이 내 오른쪽 뺨에 와 닿았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동안, 무척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널 알게 되어 기뻐... 그리고... 음... 늘 조심하고... 음... 여행 잘 하길 바래..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인사를 나누는 내내 우리는 뺨을 맞대고 있었다.

 

응.. 그럴께.. 고마워...

 

사막의 보름밤, 그 차가운 기운이 사라진 나의 뺨 위로 소년의 입술이 가볍게 다녀갔다.

 

슬프지도, 아프지도, 아쉽지도 않은 작별인사.
한없이 따뜻하기만 했던 작별.

 

+ 다음날 아침, 마지막으로 요살린과 인사를 나누었다. 요살린은 ´네가 돌아올 때를 위해서´라며 숙소 위치가 그려진 지도를 주었다. `언젠가`도 아니고, 그저 당연하다는 듯 `네가 돌아올 때`를 말하는 요살린의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그녀 덕에, 나는 `당연하게` 그곳에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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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6

내일이면 이 곳을 떠난다.

 

지금까지 몇 번인가 숙소를 떠나며 눈물을 글썽였던 기억이 있다.
오래 머물렀건 짧게 머물렀건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 곳의 누군가와 1시간을 얘기했건,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건 , 그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엊저녁에 기예르모에게, ´나 금요일에 떠나, 내일이 마지막 날이야. 이렇게 슬픈 일이!´했더니, 그가 내게 하는 말, ´슬픈데 왜 떠나? 가지 마!´

 

유난히 기억하고 싶은, 이 곳 사람들에 대한 기록.

 

기예르모. 당신은 말이 별로 없죠. 하지만 늘 은근한 미소가 담긴 그 표정이 좋았어요. 늘 내게 먼저 인사해 오던 다정한 표정이 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하지만 스시라고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냐고요... ㅎㅎ 어제도 스시라고 부르다니, 용서할 수 없어! 

 

룰리. 하하. 널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새벽까지 무슨 얘길 그렇게 했더라. 기억 나? 넌 맥주 몇 잔에도 쉽사리 취했지. 첫날 그 자리에서 눈 맞추며 잔을 들었던 그 순간을 기억해.

 

프란시스꼬. 당신도 무척 조용한 사람. 하지만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내게 칠레 남부의 아름다움에 대해 알려주고, 갈 만한 곳도 한 페이지 가득 추천해줬죠. 내게 tú가 아니라 usted라고 칭하는 이유를 물으니, 나에 대한 존중의 의미라고. 그래도 난 tú가 좋다고 했는데 여전히 당신은 나를 usted라고... 칠레 사람들의 첫인상이 차가운 것은, 소심해서 그렇다는 비밀!을 알려준 것도 당신. :-) puerto varas에 꼭 갈께요. 그리고 당신을 기억할께요.

 

루벤. 아.... 루벤 아저씨... 우리가 동네 산책을 나섰던 게 두 번. 내가 아저씨의 말을 이해하지 못 할 때마다, 아저씨는 길 가운데에 멈춰서서 어떻게 쉽게 설명할까 곰곰히 생각하곤 했죠. 그 때의 표정이 너무 좋았어요. 고마웠구요. 뽄체 데 두라스노(백포도주+삐스꼬+복숭아)를 마시고 쓴 입맛 다시는 내 표정을 재밌어 했던 따뜻한 아저씨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나의 건강을 염려해 준 것, 인생에 대해 여러가지 조언해 준 것, 모두 고마워요. 아저씨도 늘 건강하기를....

 

훌리오. 너는 모르겠지만, 내가 여기 도착한 첫 날 이 동네를 탐색하고 있을 때, 내게 처음 인사를 건네 온 칠레인이 바로 너였어. 무척 예쁜 얼굴이라 감탄했었는데, 네가 같은 숙소에 묵고 있을 줄이야. ㅎㅎ 부엌문의 마법을 알려줄 때, 너의 그 부드러운 목소리를 기억해. 어제 네가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엠빠나다 먹을 때, 창가에서 장난치는 너는 정말이지 ´베니와 준´에서의 조니 뎁 같았어.. 항상 그렇게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사람이기를. 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야.

 

빅또르. 22일에 생일을 맞아 이제 겨우 스무살이 된 어린 친구. 개구쟁이 같은 네가 처음부터 무척 좋았어. 너도 날 무척 좋아해주었지. 내내 명랑하던 네가 어젯밤에 유난히 우울해 보여서 말을 걸었던 건데, 그래... 넌 여기가 지루했던 거야.. 땡볕에 일하는 것도 신물 나고, 모두가 연상인 것도, 친구들과 애인이 모두 산띠아고에 있는 것도.. 난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넬 수 없었고, 그게 참 답답했어. 참 많은 얘길 했구나.. 가족에 대해.. 사랑에 대해... 하하. 네 여자친구를 정말 사랑하니? 확실해? 내 짖꿎은 질문에 넌 머뭇거렸지. 거 참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야 하고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아닐 지도 모른다, 내 마음으로 들은 네 답은 바로 이건데, 맞나? ㅎㅎ 아무튼 너와의 가벼운 포옹, 서로의 등을 토닥거려 줄 때, 그게 참 위안이 되었어.. 너도 그랬을까? 아, 마지막 말 또한 고마워... 넌 괜찮을거야. 나 또한 이 말을 너에게 해 주고 싶었어. 넌 괜찮을거라고..

 

 

그 때 그 친구들... 어린 프란시스꼬와 빅또르 그리고 엘리아스, 프란시스꼬



거의 늘 외로웠던 것만 같은데, 실은 아니었다.
내 여행에 참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주었구나.
난 행복한 사람, 그리고 모두에게 고마워.

 

리차르. 루이스와 데이시. 수사나. 레오나르도. 이졔르모 아저씨. 마리아와 뚜빡. 실비아. 아이다. 다리오. 까를로스와 빠뜨리시오. 리까르도. 에콰도르의 빠블로와 페루의 빠블로. 레네. 앙헬. 리스. 글래디스와 갈로. 아르헨띠나의 훌리오와 볼리비아의 훌리오. 페루의 호세와 볼리비아의 호세. 로살리아. 다니엘. 요아나. 울리와 마틴. 까를과 빠올라. 아우렐리아. 호르헤. 요살린과 움베르또. 루이스. 에릭. 그리고, 마르꼬.... 당신을 잘 잊어가고 있어. 잊을 건 잊고, 그리고 기억하려 해....

 

모두들 행복하길 바래요.
길에서 나를 도와주었던, 이름을 알 수 없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도. 엊그제 깔라마의 어느 식당 1층, 화장실을 무료로 이용하게 해 준 할아버지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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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 pedro de atacama / la casa del sol naciente

여러 가지 면에서 참 멋졌다고 밖에 할 수 없는 ㅎㅎ(이 쯤에서 즐거운 동행, 허리롱 아저씨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ㅎㅎ) 우유니 소금사막 2박 3일 투어를 마치고 칠레 산 뻬드로 아따까마로 넘어왔다.


내가 한 건 그저 차에 앉아 있다가 중간중간 내렸다가 타는 거, 밥 먹는 거, 잠 자는 거 뿐이었는데도, 다리는 온통 멍에다 뭐에 두들겨 맞은 듯 온몸이 아프다. ㅎㅎ 게다가 이틀 연속 새벽 5시 전후에 일어나 움직여서 하루 푹 잤지만 피로는 여전하다.

 

국경을 넘어 산 뻬드로 데 아따까마에 도착했을 땐 점심 무렵. 세상에서 제일 건조하다는 이 곳의 태양빛은 모든 것을 말려버릴 듯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내 배낭 무게는 이제 겨우 10킬로에 불과하지만(서양여행자들 배낭이나 끌낭, 트렁크 사이에 노란 커버 뒤집어씌운 내 가방이 끼어 있으면 정말 귀엽다. 휴가 온 서양할머니들 트렁크의 크기는, 대략 내가 구겨져 들어갈 수 있을 정도.), 땡볕에 피로에 가방 무게에, 일행 없이 숙소를 찾는 건 정말 괴로운 일. 별 수 없이, 자전거 타고 동네를 돌면서 나 같은 여행자를 찾는 숙소 삐끼 아저씨를 따라 터덜터덜 따라간 곳이, 지금 묵고 있는 la casa del sol naciente. 우리말로 하면 해 뜨는 집, 정도 될 것 같다.

 

동네 중심광장에서도 좀 떨어져 있고(그래봤자 코딱지 만한 동네지만), 약간 허름한 분위기였지만, 캠핑장을 겸하는 이 곳이 왠지 편안한 게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리셉션에서 등록하는데, 주인 아주머니인 요살린이 너 기타 칠 줄 아니? 하고 물어본다. 모른다고 하니, 그럼 노래는 하니? 그런다. ㅎㅎ 노래 하긴 하지만 그리 훌륭하진 않다고 대답하며, 그건 왜 물어볼까 싶었는데....

 

저녁이 되자 기타 소리, 리코더 소리, 스페인어 노래, 영어 노래, 듣기 좋은 노랫소리들이 계속 들려왔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노래하는 사람들 뒷쪽 구석에 앉아 있었더니, 나를 숙소로 데려온 루이스가 벽난로 쪽 가운데로 끌어당긴다. 사람들은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 줄도 모르고 그저 동양인 외모를 하고 있으니, ´스시´라고 부르며 너희 나라 노래를 해 달란다. 내 평생 ´스시´라고 불리긴 또 처음.. ㅎㅎ 루이스는 딱 중국이 떠오르는 선율을 튕기면서 (왜, 그거 있잖아 띵띠리띵띵 딩딩딩, 라라라 솔솔 미레미 라라라라 솔솔 미레미 하는...), 계속 분위기를 잡는다.

 

내가 정확히 가사를 기억하는 가요는 인순이의 ´이별연습´ 뿐.
다 부르고 나니, 사람들은 갖고 있던 와인잔, 맥주잔을 들면서 환호한다.
신이 난 나는, 에콰도르에서 배웠던 스페인어 노래도 부르기 시작했다. ㅎㅎ 그랬더니 이번에는 캠핑장에서 웃음소리가 나면서 웅성거리네. 내 발음이 어색해서 그런가 했더니, 파마머리에 아주 귀여운 남미 남자애가 하나 나와서 하는 말, 나 콜롬비아 사람인데 그거 콜롬비아 노래야, 다시 한 번 부르지 않을래? 그래서 얼결에 다리오와 niña bonita를 같이 부르기도 했다. 게다가 주인인 움베르또 아저씨는 기타도 노래도 수준급.  저녁에 시작된 자리는 1시가 되어서야 파했고, 내가 자러 들어간 후에도 몇몇은 남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어제의 그 자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 좋았다. 여행자도 있었고, 숙소 주인 부부(숙소에 같이 산다)도 있었고, 근처에서 일하는 숙소 주인의 친구들도 있었다. 칠레인, 미국인, 볼리비아인, 프랑스인, 콜롬비아인, 어쩌면 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음악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들과 어울리는 일은 없었을 거다. 이래서 음악이 좋고 노래가 좋아.. 여행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밤 기록 갱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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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osi 한 장과 uyuni 여러 장

 

탄광 투어로 유명한 뽀또시,

나는 다만 쎄로 리꼬를 향해 골목골목 걸어오르기만 했다.

그러다가 만난, 숨이 막힐 듯한 풍경.










 

우유니 사막 투어 2박 3일은, 소금사막과 몇몇 호수, 간헐천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각 지점까지 가기 위해서는 몇 시간씩 황량한 사막을 달려야만 한다. 내내 세상 반대편,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이런 아름다움이 숨어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지구라는 행성만 해도, 참 많은 것들을 품고 있더라..

 

처음으로 카메라를 탓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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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ine

팝송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게 중 1, 2 무렵인 것 같다.

 

(여행을 혼자 하다보니, 공상에 잠길 시간은 차고도 넘치는데..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해 봤자 답이 안 나오니 :-)
주로 생각하는 게 과거다.
어느 새 나의 과거도 무척 길어져 있더라....)

 

세 살 터울인 오빠 덕에 좀더 어렸을 때부터 비틀즈를 들은 기억은 있지만, 가사를 외운 것은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다.
최초의 팝송이라면, yesterday, feelings, top of the world,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imagine 같은 '추억의 팝송, 혹은 주옥 같은 oldies´인데, 그 때 난 imagine을 참 싫어했었다.
단순히 가사를 외운 것이지 해석할 능력이 있었던 건 아니라서 무슨 뜻인지는 모르고, 다만 가느다란 존 레논의 목소리가 싫었던 것 같다. 그 땐 멜로디도 별로였다.

 

그러다 최근 며칠 사이에 imagine을 두 번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한 번은 ruta del che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스페인어 버전,
한 번은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하기 전 영어 버전.

 

ruta del che에서 돌아오면서 참 많은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 틈으로 하필 imagine이 들려오면서 기분이 무척 묘했더랬다. 그리고 며칠 뒤 영어 버전을 듣는데, 마지막 가사가 그렇게 깊이 다가오더라...

 

You may say that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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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cre / abrazo

오후 해가 기울 무렵 숙소로 들어가다가,
BCP 현금인출기 계단 앞에 젊은 경비가 구겨지듯 앉아 있는 걸 봤다.

 

그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하염없이 그걸 들여다 보고 있었던가 만지고 있었던가.
스무살 쯤 되었을까?
참 여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문득 꼭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 저이를 안아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고 3 때, 그런 생각을 처음 했었다.
곧 무너져버릴 것 같던 한 녀석 앞에서.

그 때는 누가 날 안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역시 절실했다. 

 

안아주는 것, 안기는 것,
그 친밀한 행위는 말없는 위안이어서 좋다.

 

아무런 경계심 없이 사람을 안아줄 줄 아는 사람이고 싶은데,
나는 안기는 데도 서툴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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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부꼬

 

따라부꼬의 시장은 한겹 먼지가 제 빛깔을 가리고 있었다.



 

이 날도 축제가 있었다. 광장을 돌며 춤을 춘 아이들은 일제히 줄을 서서 무언가를 기다렸는데, 알고 보니 빵과 우유였다.





 

웬만한 전통춤에는 흥미를 잃어버린 내 눈에,

뽀또시에서 온 듯한 아이들의 춤이 가슴 아프게 박혔다.

남자아이들은 광산에서의 노동을,

여자아이들은 가사 노동을,

간단한 동작으로 보여주었는데 두 가지 모두 참, 난 마음이 아프더라. 

어린 날 추었던 저 춤으로부터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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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예그란데 / ruta del che 4

 

세뇨르 데 말따 병원의 세탁실,

군이 체 게바라의 시신을 공개함으로써 그의 죽음을 세상에 알린 곳.

 

 

바로 이 사진이 촬영된 곳이다.


 

40년 전의 병원은 모두 새로운 건물로 대체됐지만,


 

과거의 그 세탁실만은 보존되고 있다.





 

ruta del che는 체 게바라의 마지막 날들을 바예그란데에서 관광상품화 한 것이다.

다니는 내내 특별한 감정이 들지 않았는데, 유독 이 세탁실에서만큼은 기분이 묘해졌었다.

40년을 켜켜이 새겨지고 또 새겨진 저 낙서들은 희망의 증거일 수 있을까.

떠나간 혁명가의 자리가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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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예그란데 / ruta del che 3

 

체의 유해는 꾸바 산따 바바라에 있지만,

그의 유해가 발굴된 곳에는 fosa del che가 있다.

최근에 새롭게 단장된 모양인데, 가이드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체를 비롯, 그와 함께 발견된 게릴라들의 묘.


 

이 곳은 나머지 게릴라들이 함께 매장되어 있는

fosa del guerrilleros, 게릴라 전사들의 묘


 

들어가는 길은 참 좁고 예뻤다. 양옆으로 로타리 클럽의 땅에 사유지에,

체를 추종하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땅주인들이 싫어해서 이 길을 만들게 됐단다.


 

이 벽화는 매년 아르헨띠나 자원활동가들에 의해 바뀐단다.

왼쪽의 여성은, 전투에서 사망한 유일한 여성 게릴라였던 따니아를 형상화 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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