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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5] 화물연대 박종태 열사의 유언장

떨림5_2009.05.06.

화물연대 박종태 열사의 유언장

 

<박종태 열사>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들이 투쟁의 제단에 제물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동지들을 희생시킬 수 없었습니다.

동지들을 잃을 수 없었습니다.

 

저의 육신이 비록 여러분과 함께 있진 않지만,

저의 죽음이 얼마만큼의 영향을 줄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악착같이 싸워서 사람 대접 받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큰 나라를 반토막내서 배 부르고 등 따신 놈들,

미국과 극우보수 꼴통들이 이번 참에 아예 지네들 세상으로 바꿔 버리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는 실종된 지 오래됐고,

반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죽음을 강요하거나 고분고분 노예로 살라고 합니다.

 

그 속에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안락만을 위해서 투쟁할 것이 아니라

통 큰 목적을 가지고 한발 한발 전진하기 위해

손을 잡고 힘을 모으는 적극적이고 꾸준한 노력과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의 생존권, 민중의 피폐한 삶은

사상과 정견을 떠나서 무조건 지켜져야 하고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기득권을 버리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우리 민중은 이론가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의 죽음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최소한 화물연대 조직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

힘없는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지 43일이 되도록

아무 힘도 써 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기 위해 선택한 것입니다.

 

눈을 감으면 깜깜할 겁니다.

어떻게 승리하는지 저는 보지 못할 겁니다.

그것이 아쉽고 억울합니다.

꼭 이렇게 해야,

이런 식의 선택을 해야 되는지,

그래야 한 발짝이라도 전진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속상하고 분합니다.

 

이름을 거론하자니 너무나 많은 동지들이 떠오릅니다.

저를 이만큼 건강한 간부로 활동가로 있게 해 준 소중한 분들.

저를 믿고 따라 준 형님, 동생, 친구들.

이 의미 있는 투쟁, 힘겨운 투쟁에 끝까지 남아 준 동지들 모두가 저에겐 희망이었습니다.

 

광주라는 곳도 사랑합니다.

날고 싶어도 날 수 없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가

행복하고 서로 기대며 부대끼며 살아가길 빕니다.

복잡합니다.

동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면서 그 속에 저도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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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4] ‘92년 장마, 종로에서’

떨림4_2009.04.08

92년 장마, 종로에서’

 

폐부 끝으로부터 올라오는 기침에

온몸이 순간 멈추는 듯 떨리듯

정태춘⋅박은옥의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그렇게 다가왔다.

 

92년 여름이라면,

90년~91년, 전노협의 두 차례 총파업과

91년 4~6월, 박창수⋅강경대 열사 투쟁으로도

결국 노태우 정권을 끝장내지 못하고,

91년 12월 대선에서 김영삼은 보수대야합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그래서 깃발군중은 잠시 거리에서 사라지고,

이른바 운동권은 줄줄이 청산하고, 해체하고, 잠복한,

그런 해였다.

그렇게 세상은 아무일 없다는 듯 흘러갔다.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며칠 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한 감기몸살을 앓은 후, 우연히 이** 선생 집에서

이 노래를 들은 후, 가사와 멜로디가

계속 귓전을 맴돌면서

떠나려하지 않는다.

“깃을 치며 날아오른 비둘기처럼”

한 음절 한 음절이

정수리 끝에서 날개를 퍼덕인다.

그러다 다시 뇌리 속에 둥지를 튼다.

 

제목을 ‘2009년 장마, 청계광장에서’,

혹은 ‘2009년 장마, 용산에서’라고 바꿔도

17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가사 내용도

그 가사가 담고 있는 현실도

다를 것 없을 거란 생각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날 때는

스스로도 조금 안쓰럽긴 하지만

그냥 그대로 있는 게 낫다.

그냥 노래에 젖고, 흐르는 눈물에 또 젖고

그렇게 그냥 그대로 있는게 낫다.

 

그래서

장마가 그치면

“파란 하늘이 열리고”

그 때, “큰박수 소리에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르자. 하늘 높이”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 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92년 장마, 종로에서

 

작사.작곡.노래: 정태춘, 박은옥

1993년, 삶의 문화, 한국음반

 

노래듣기:  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t1Eb2T8-ChM$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 차도에 매달린 신호등 위에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의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마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워, 워......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음.....

 

비가 개이면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 타워쯤에선 뭐든 다 보일게야

저 구로 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 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또 세종로 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 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훠이, 훠이..훠. 훠이, 훠이...훠

빨간 신호등에 멈춰 섰는 사람들 이마 위로

무심한 눈빛 활짝 열리는 여기 서울 하늘 위로

한무리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훠이, 훠이..훠. 훠이, 훠이...훠 -----

훨, 훨, 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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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3] 비고츠키- “학습과 발달은 생의 첫날부터 상호 관련되어진다.”

떨림3_2009.03.23.

“학습과 발달은 생의 첫날부터 상호 관련되어진다.”

 

“학습과 발달은 생의 첫날부터 상호 관련되어진다. ---

근접발달영역ZPD(zone of proximal development)이란 독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결정되는 실제적 발달 수준과 성인의 안내나 보다 능력있는 또래들과 협동하여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결정되는 잠재적 발달 수준 간의 거리이다.

근접발달영역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학습에서의 모방 역할에 대한 재평가로 귀착되어야만 한다.

모방을 사용하여서 아동들은 협력활동 속에서나 성인의 지도하에서 더 잘 할 수 있게 된다.

이 사실은 그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학습과 발달 간의 관계에 대한 모든 학설의 근본적인 변경을 요구할 만큼 기본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 Lev Semyonovitch Vygotsky, <<사회속의 정신>>, [진보교육](33호,2009.03.)51~52쪽에서 재인용 -

 

 

 

레프 비고츠키(Lev Semenovich Vygotsky, 1896~1934)

구소련의 심리학자. '심리학계의 모차르트'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을 교육심리학과 발달이론에 적용하여, 맑시즘 교육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다.

‘인간과 사회의 역동적 상호작용’, ‘기호(언어), 실천의 매개적 역할’, ‘고등심리기능에 대한 역사, 사회의 근본적 규정’, ‘인간정신의 점진적 확장과 질적 비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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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2008 청소년인권선언

이 선언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2008년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이하여 인권단체들이 진행한 ‘2008 인권선언 운동’에 참여하면서 만들고 발표한 선언입니다.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들, 전국의 여러 청소년들에게 청소년인권으로 필요한 것을 물어보고 답을 받아낸 것들, 그리고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지금까지 운동을 하면서 가져온 고민들을 가능한 한 많이 녹여내려고 노력했습니다.

 

 

2008 청소년인권선언

 

 

1. 청소년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 인간으로서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어. 청소년이라고 해서 누리지 말아야 할 인권 따윈 없다구!

♪ ‘미성년자’라는 말은 청소년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말이야. ‘미성년자’라는 말을 사전에서 지워버리자!

♪ 나이가 적다거나 학생이라는 등의 이유로 차별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말라우~

♪ 처음 만나서 나이 좀 많다고 곧장 반말하거나 막 대하는 건 정말 뷁이야.

♪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두가 학교에 다니는 건 아냐. 탈학교 청소년이라고 해서 문제아라고 낙인찍는 당신이 바로 문제라오. 또한 청소년들은 학교에 다니는지 여부를 비롯해서 다른 여러 가지 이유들로 차별받지 않아야 해.

 

2. 청소년은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고 행동할 권리가 있어.

♪ 인권 보장을 요구하며 의견을 표현하거나 시위나 집회나 점거를 하거나 수업거부나 시험거부나 등교거부나 가출 등등의 파업 행동을 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권리야.

♪ 처벌이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저항할 수 있어야 하고, 인권침해 현장에서 당장 멈추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 ‘예의’나 ‘학생의 본분’, ‘자식의 본분’ 같은 말로 우리의 정당한 인권을 위한 행동을 공격하거나 하면 못 써.

 

3. 청소년에게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어. 우리를 위한다는 핑계로 니들 맘대로 하지 말고 우리의 의견을 좀 존중하란 말야!

♪ 나의 삶의 주인은 나야. 주변 사람들이 우리에게 조언을 하거나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직업이나 가치관을 비롯해서 우리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살지 결정할 권리는 우리에게 있고, 우리는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어.

♪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거짓된 핑계로 금지하는 모든 것을 금지하라! 찜질방, 게임방, 노래방 등에 10시 이후에 출입을 금지하거나, 청소년통행금지 거리를 지정하거나, 셧 다운제를 도입하려는 것은 청소년 보호가 아니라 청소년의 행동에 대한 통제라구!

♪ 만일 이 사회에 위험하거나 유해한 것들이 있다면 청소년에게만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해.

 

4. 청소년들은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결정할 때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해.

♪ 교사, 교장, 교육감, 지방자치단체, 국회의원, 대통령 등 청소년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인간들을 선택할 수도 탄핵할 수도 있어야 해.

♪ 청소년들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의견을 반영하고 직접적으로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해. 시늉만 하지 말고 우리의 의견을 실제로 충분히 반영하시오!

♪ 교칙이나 집안에서의 규칙 등을 정할 때 청소년 당사자들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어야 해. 그렇지 않은 것들은 다 없애!

♪ 청소년에게는 성탄절 씰이나 수능 떡값 등의 성금을 강제로 내지 않을 권리가 있어.

 

5. 청소년은 생활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사회로부터 보장받을 권리가 있어. 돈을 쓸 때도 다른 사람을 대리인으로 하지 않고 스스로 쓸 수 있어.

♪ 돈이 없어서 밥을 못 사먹거나, 교통비가 없어서 가고 싶은 곳을 못 가게 되거나, 난방비가 없어서 추위에 떠는 일 등이 생기지 않도록 충분한 사회적 보장이 있어야 해.

♪ 먹고 살기에 필요한 적절한 돈을 벌 기회가 박탈당하지 않아야 해. 어리다는 이유로 돈을 벌지 못하게 하거나, 자신이 번 돈을 남에게(부모 등등) 맡기지 않을 수 있어야 해. 그리고 이런 것들을 사회에서 보장을 해주어야 하는 거라구!

 

6. 청소년은 노동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일하는 목적이 생계를 위한 것이건 다른 용도를 위한 것이건 상관없이 청소년들의 노동은 존중받아야 해.

♪ 청소년 노동자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은 부당해!

♪ 노동을 하는 청소년에게는 안전하고 좋은 노동환경에서 적절한 임금과 복지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고, 착취를 당하지 않아야 해.

♪ 청소년에게는 노동 조건을 바꾸기 위해 행동할 권리가 있고, 이런 행동 때문에 불이익을 당해선 안 돼.

♪ 청소년을 강제로 동원해서 노동시킬 수 없어. 예를 들면, 봉사시간을 채워오게 하거나 다른 강압적인 방법으로 봉사활동이나 참여하고 싶지 않은 행사에 강제로 참석시켜서는 안 돼.

 

7. 청소년들은 적절한 살 곳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해.

♪ 청소년들이 사는 곳은, 살만한 넓이와 시설의 좋은 환경이어야 하고, 생태적이면서 건강에 나쁘지 않아야 하고, 가능한 한 청소년들이 살고 싶어 할 만 한 곳이어야 해.

♪ 쫓겨나서 살 곳이 없을까봐 다른 사람들(부모 등등)의 일방적인 명령을 들어야 하거나 인권침해 등을 당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아야 해.

♪ 가출은 청소년들의 주거권을 보장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 만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적극적 표현 방식일 수 있어. 청소년들이 원하는 독립적 주거를 사회적으로 보장해야 해. 쉼터나 그룹홈처럼 지금 있는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적인 주거들도 더 안정적이고 좋은 환경이 되어야 하고,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해.

 

8. 청소년의 사랑과 성적 행위, 성적 자기결정권을 막거나 짓밟지 마!

♪ 청소년에게는 나이와 성적 지향(동성애, 이성애 기타 등등), 성정체성에 상관없이 짝사랑하고 연애하고 성적인 생각과 행동들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 청소년은 성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알 권리가 있어. 성은 청소년이 알아서는 안 될 비밀스런 분야가 아니야.

♪ 청소년은 성매매나 성폭력, 성적 착취를 당하면 안 돼. 또 성매매 같은 걸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지도 않아야 하지. 그러기 위해 청소년의 주거권이나 경제적 권리 등 다른 인권들도 충분히 보장되어야 해.

♪ 이성애만이, 또는 여/남 성별이분법이 당연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건 무개념이야. 다양한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모두 차별 없이 존중하란 말야!

♪ 단, 성차별, 폭력을 저지르는 마초스런 행동 등은 인권의 이름으로 용서할 수 없어!

 

9. 청소년에게는 자기 머리카락이나 복장 등을 마음대로 하고 꾸밀 권리가 있어.

♪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두 교복을 입고 이름표를 달게 하지 마! 사복을 입을 자유도 있다구!

♪ ‘학생다움’ 또는 ‘청소년다움’은 누가 정하냐? 염색, 파마, 삭발, 레게, 고데기, 생머리 등등 청소년은 자기의 머리카락을 마음대로 꾸밀 수 있어.

 

10. 청소년이 동네북이냐? 청소년은 위협적인 폭력이 없는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어.

♪ 때리지 좀 마! 교사나 부모(보호자)나 다른 어른이나 또래나, 누구든 우리에게 매질, 발길질, 주먹질, 기합, 모욕 등의 폭력을 행하지 말아야 해.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어떤 이유라도 그게 폭력이나 괴롭힘을 당할 이유는 될 수 없어. ‘사랑의 매’는 거짓말이야.

♪ 청소년은 학도호국단 등으로 동원되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에서 살 권리가 있어.

♪ 청소년들에게는 당연히 살 권리가 있어. 입시경쟁이나 안전사고나 폭력이나 빈곤함 등을 비롯해서 청소년을 죽음으로 내모는 모든 직⋅간접적인 폭력들은 사라져야 해.

 

11. 청소년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어야 해.

♪ 집에서 통금시간을 정해놓거나, 학교에서 밖에 나갈 때 외출증을 끊어야 한다거나 해서 우리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아선 안 돼.

♪ 청소년의 신체적 조건이나 경제적 조건이나 국적 등 때문에 교통수단 이용을 비롯한 이동에 제약이 있어선 안 되고, 필요한 지원이나 제도, 시설 등을 사회가 책임져야 해.

 

12. 청소년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알고 싶은 것들을 알고 살 수 있어. 안 그럼 답답해서 어떻게 사냐?

♪ 인터넷이나 거리에서나 학교에서나 어디에서나 자신의 의견을 알리기 위해 언론, 전단지, 영상 등등을 만들고 배포할 권리가 있어. 이런 것들을 검열하거나, 허가받지 않았단 이유로 훼손하거나 탄압해선 안 돼.

♪ 청소년은 자신들의 의견을 알리기 위해 집회나 시위를 할 권리가 있어. 학교에서나 거리에서나 청소년들은 허가를 받지 않고도 집회를 할 수 있고, 집회를 했단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아야 해.

♪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원하는 정보를 못 접하거나 미디어를 쓰지 못하게 해선 안 돼. 청소년들에게는 정보를 얻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이 충분히 지원되어야 해.

 

13. 청소년은 자신만의 공간과 영역을 가질 수 있고 자신에게 관련된 정보를 스스로 통제하거나 관리할 수 있어.

♪ 부모나 교사나 경찰이 마음대로 소지품을 검사하거나 일기장이나 다이어리 등 우리만의 기록을 보는 건 인권침해야!

♪ 바꿀 수도 없는 주민등록번호로 우리에게 번호를 매겨서 관리하고, 지문을 다 찍어야 하는 주민등록증을 강요해선 안 돼. 급식비를 안 낸 사람을 걸러내려는 등의 이유로 함부로 지문을 찍게 해서도 안 돼.

♪ 야 이 스토커야, 너 내가 그렇게 좋냐? 감시카메라로 청소년들을 감시하고, 휴대폰으로 위치추적을 하는 등의 스토커 짓은 우리의 안전을 핑계로 우릴 통제하는 거야!

♪ NEIS를 비롯한 성적 등등 개인 정보에 대한 공개는 인권침해야. 성적표도 맘대로 집에 보내거나 하지 말란 말야.

 

14. 청소년들은 자신이 원하는 사상을 생각하고 주장할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있어.

♪ 종교계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이라고 해서 강제로 종교의례에 동원하거나 헌금을 내라고 하지 말고, 종교를 가지고 차별하지도 마! 그리고 부모나 가족이 믿는 종교를 청소년들이 똑같이 믿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냐?

♪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을 강요하지 마.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는 사라져야 해.

♪ 국가보안법이라거나 정부, 교사, 부모 등의 권력으로 특정 사상을 강요하거나 특정 사상을 처벌하는 건 박물관으로 보내자.

 

15. 청소년에게는 인간답고 민주적인 교육에 대한 권리가 있고, 강제로 교육을 받지 않을 권리도 있어. 교육에서는 인권이 지켜져야 해.

♪ 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돈이 없거나 신체적 조건이나 등등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사회에서 좀 알아서 했으면 해. 그리고 교육은 되도록 공짜인 게 기본 아니겠니?

♪ 공부 왜 해? 청소년은 시험 치는 기계가 아니야! 시험점수로 매겨진 등급으로 우리를 판단하고 차별하지 말라구. 입시경쟁을 폐지하란 말이다!

♪ 야간‘자율’학습이라면서 강제로 실시하는 건 뭥미? 청소년은 자신이 원하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을 스스로 만들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해. 교과서건 뭐건 다 내용을 정해서 그대로 따르라고 하지 말란 말야.

♪ 교육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고 소통이야. 민주적인 방식으로 교육을 해야 해. 청소년에게는 교사를 비판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훈계는 너만 하냐! 너나 잘하든지!

♪ 단순한 주입식 교육이 아닌 개인의 특성과 창의력을 살릴 수 있고 다양성 있는 교육과 넓게 생각하고 꿈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해.

♪ 선후배 관계나 나이, 직위 등의 사이에서 차별이나 폭력, 외국인이나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이나 아웃팅, 폭력, 기타 인권침해 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인권을 알고 존중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인권교육은 꼭 있어야 해.

♪ 청소년은 역사적 진실을 알고 탐색하고, 사회의 현실, 과학적 지식, 사는 데 필요한 여러 기술들 등을 비롯해서 중요한 학문들과 자기가 알고 싶은 것들을 원하는 만큼 많이 배울 권리가 있어. 외국어 교육은 영어 같은 한 언어만 신봉하고 빡센 스트레스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 필요하고 또 하고 싶은 외국어를 즐겁게 배울 수 있어야 해.

♪ 교육 환경은 충분히 좋아야 하고, 교육 재정이나 예산도 충분해야 해. 예를 들어, 수십명씩 오밀조밀 부대껴야 하는 교실이라거나, 찌는 여름이나 꽁꽁 어는 겨울에 에어컨, 히터 등을 교무실에만 빵빵하게 틀고 학생들은 손도 못 대게 하는 건 대체 뭐니?

 

16 청소년은 쉬고 싶을 때 충분히 쉴 수 있어야 해.

♪ 방학, 휴가, 공휴일이나 쉬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야 되는 건 물론이고, 생리나 아플 때 쉬고 싶을 때 충분히 쉴 수 있어야 해. 학교 등에는 청소년들이 쉴 수 있는 휴식시설이 마련되어야 해.

♪ 청소년은 잘 쌀 권리가 있어. 수업시간이라는 등의 이유로 화장실이 급한데 못 가게 하거나 하면 안 돼. 병 걸리면 책임질 거야? 화장실의 청결 상태나 시설, 숫자도 충분히 좋아야 해.

♪ 잠 좀 자자! 우리는 충분히 컨디션이 회복될 만큼 잘 수 있어야 해.

♪ 빡센 경쟁교육이나 생존의 위협 등도 청소년들이 충분히 쉴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없어져야 해.

 

17. 청소년에게는 놀 권리가 있어. 또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들을 통해 즐길 권리도 있지.

♪ 청소년은 자신의 취미를 즐길 수 있어야 해. 그러기 위해서 돈이 되는 것뿐 아니라 여러 다양한 문화들이 보장되어야 하고, 청소년들이 다양한 문화를 직접 만들어내는 것도 보장되어야 해.

♪ 보호라는 핑계로 19금 딱지를 붙이거나 공부하라면서 청소년들의 문화를 통제하거나 하는 건 부당해. 사전심의로 나이 제한을 두는 건 검열이고 통제야!

♪ 사회는 바람직하고도 다양한 놀거리들을 제공하고 장려해야 해야 할 책임이 있어.

 

18. 청소년은 먹고 싶은 것을 잘 먹을 수 있어야 해.

♪ 청소년에게는 생태적이고 건강에 좋은 먹거리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어. 청소년은 취향이나 사상이나 종교 등의 이유로 음식을 거부하거나 선택할 수 있어.

♪ 담배나 술 등의 기호식품을 단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먹지 못하게 해서는 안 돼. 이것들이 정말로 유해하다면 이것들을 아예 없애거나 유해성을 알리고 줄이거나 끊는 것을 도와야지, 청소년이란 이유로 강제로 금지하는 건 청소년을 만만하게 본 인권침해야.

♪ 청소년은 원산지, 생산 방법, 유통 경로, 유해성 등 자신이 먹는 것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해.

 

19. 청소년은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어. 충분한 휴식과 여유, 그리고 적절하고 차별 없이 받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 등은 중요해.

♪ 청소년은 충분히 건강할 수 있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어야 해. 청소년의 건강권은 청소년의 의사를 존중하는 속에서 그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해.

♪ 의료 서비스의 과정에서 청소년이라거나 경제적인 조건 등등 때문에 제대로 설명 받지 못하거나 치료받지 못해서는 안 돼.

♪ 학교에서 체력검사나 신체검사를 할 때도 그렇고, 에이즈 감염 등 의료상의 정보를 함부로 알리거나 청소년의 동의 없이 가족들에게 알려선 안 돼.

 

20. 청소년은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해.

♪ 청소년들은 충분히 실수하고 경험을 쌓아갈 권리가 있어. 청소년들에게는 꿈을 꾸고 추구할 권리가 있어.

♪ 청소년들의 좀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이 사회가 가능한 한 제공해야 해.

♪ 청소년의 행복은 미래의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의 것이어야 해. 청소년은 지금을 사는 인간이고, 미래로 삶이나 행복을 유예한 인간이 아냐.

 

P.S. 여기에서 선언한 권리들은,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할 권리로 오해해선 안 돼. 모든 인권은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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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

 

<노동자의힘>154호(종간호)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노동자의힘 10년은 결코 헛되지 않은 시간이었을 겁니다.

10여 년간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었던 동지들 모두가 다시 사회주의당에서 10년, 아니 그 이상의 희노애락을 함께 하자고 결의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함께 하지 못했거나, 혹은 함께 하다가 노동자의힘을 떠난 동지들이 사회주의당에서 함께 어깨를 걸 수 있다면.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노동자의힘 10년은 사회주의운동과 노동운동의 역사는 물론, 모두의 가슴 속에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노동현장, 사회의 현실, 그리고 일상에서 자본의 논리, 지배계급의 논리에 분노할 줄 알고, 분노할 뿐만 아니라, 그런 문제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 설득할 줄 알며, 나아가 상식과 일상의 논리로 반자본의 지적⋅정서적 공감과 투쟁을 조직할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생태주의적 가치를 수용하면서 생활의 ‘불편’함을 즐겁게 감수할 수 있고, 여성주의적 가치를 수용하면서 일상의 ‘피곤’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으며, 직접민주주의를 위해 ‘효율성’을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다면.

가장 인간적인 것을 가장 정치적이게 하고, 가장 일상적인 것을 가장 혁명적이게 하며, 가장 현장적인 것을 가장 전국적이게 할 수 있는, 거꾸로 가장 정치적인 것을 인간적이게 하고, 가장 혁명적인 것을 가장 일상적이게 하고, 가장 전국적인 것을 가장 현장적이게 할 수 있는 ‘혁명적인 센서리모터(Sensory Motor, 감각체계)’을 가질 수 있다면.

 

21c 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것, 아니 살아남는다는 것은 참으로 불편하고 힘들고 피곤한 일이었습니다.

많은 활동가들이 내팽겨쳐 버린 사회주의라는 꿈 하나를 미련하게 붙들고, 힘겹게 부둥켜안고 온 10년이었습니다.

‘노동자의힘’이라는 조직이 있었기에 함께 고통을 나누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인간적인 미숙함과 정치적 견해의 차이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그 상처까지도 함께 보듬으면서 온 10년 세월이었습니다.

때로는 정치적 불명확함 때문에, 때로는 능력의 부족으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안팎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스스로 좌절하기도 했지만,

‘노동자의힘’이라는 전국적 정치조직이 있었기에, 노동자⋅민중들의 투쟁에 아낌없이 함께 할 수 있었고, 또 현실에 대한 정치적 긴장과 실천을 팽팽하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지난 10여 년의 경험과 성과에 바탕하여 이런 바람을 가져봅니다.

21c 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자’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서로를 ‘해방’시키는 과정이자 만남이었으면 합니다.

건설할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서로 머리와 가슴과 손발을 맞대서, 함께 ‘해방’을 상상하고 기획하고, 조직적으로 실천하고, 그래서 더욱 풍부하고, 더욱 설레이고, 더욱 즐거운 삶과 운동의 터전이었으면 합니다.

그 풍부함과 설레임과 즐거움이 노동자민중들에게는 ‘정치적 희망’으로, 지배계급에게는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로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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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힘 해산결의문

노동자의힘 해산 결의문

 

 

 

오늘, 우리는 노동자의힘의 발전적 해산을 결의했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의지로 발전적 해산을 결의했다.

 

해산을 결의했지만,

발전적 해산을 우리 스스로 결의했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노동자의힘’이라는 깃발을 결코 내릴 수 없다.

아니 결코 내리지 않을 것이다. 결의했지만. 스스로 결의했지만.

누가 우리를 해산시킬 수 있는가?

지난 10여 년간 우리의 삶이었고, 우리의 운동이었고, 우리의 거처였는데.

어떤 탄압도, 어떤 거친 논란도 우리를 가르거나 해체하지 못했는데.

10여 년간, 내부의 정치적 입장의 차이, 부문과 지역의 차이, 그리고 세대와 정서의 차이를 노동자계급정당,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이라는 방향 아래 모아왔는데.

노동자민중 속에서 함께 희노애락을 같이하며 투쟁해 왔는데.

그래서 노동자민중들의 투쟁과 분리되지 않아 왔는데.

우리의 미숙함, 우리가 범했던 오류, 우리들의 갈등, 그 모든 것조차도 우리 자신의 것으로 함께 부둥켜안아 넘어서려고 했는데 ---.

누가, 누가 감히 우리의 깃발을 내리게 할 수 있는가?

 

그 누구도 아니다. 오직

우리만이, 우리의 의지만이 우리를 해산시킬 수 있고, 오늘 우리는 결의했다.

우리가 해산하려는 것은 ‘노동자의힘’이 아니다.

우리가 해산하려는 것은 사회주의 진영이 불가피하게 각각의 정파로서 존립할 수밖에 없었던 써클주의 시대의 조직이다.

우리가 내리려는 깃발은 ‘노동자의힘’이 아니다.

우리가 내리려는 깃발은 사회주의 정치역량의 미성숙으로 불가피하게 반의회주의, 반신자유주의를 내걸 수밖에 없었던 ‘반정립 정치’의 깃발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버림으로서,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한 시대를 매듭짓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던짐으로서,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히려 한다.

우리 모두가 사회주의 정당 건설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주의 정당의 상과 전망에 대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조금은 더 함께 머물며 간극을 좁히고 싶지만,

조금 더 함께 준비하고, 가다듬고 싶지만,

그래서 아쉽고 또 아쉽고,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고 또 후회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돌이켜서는 안 될 발걸음을 내디디려 한다.

 

해산을 결의한 지금, 우리는

우리 앞에 다가올 현실이 장밋빛 미래가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다.

어쩌면 지난 10년보다 더 크고 깊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해산은 ‘현실’이지만, 다가 올 미래는 ‘가능성’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해산을 결의했다.

‘반신자유주의’, ‘반의회주의’에 머물었던 좌파 정치운동의 한 시기를 매듭지어, 반자본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새로운 도정에 나서기 위해.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써클주의 시대를 매듭짓고, 이미 출범한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의 한 주체로 힘 있게 서기 위해.

결의했다.

노동자의힘의 발전적 해산을.

 

우리는 우리가 겪었던 지난 10여 년의 경험과 성과가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새로운 출발에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리가 범했던 숱한 한계와 오류마저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소중한 자양분이 되길 바란다.

우리의 바람이 단지 우리만의 바람으로 끝나지 않기 바란다.

우리의 바람이 우리만의 바람으로 끝내지 않게 하는 것이 다시 우리 자신의 몫이 될 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바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지난 10여 년 전 노동자의힘이 출범할 때 가졌던 그 설레임으로, 그 열정으로,

다시 10년의 역사를 열어갈 것이다.

 

오늘 노동자의힘의 해소 결의는, 그래서

‘해소’ 결의만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위한 결의이다.

노동자의힘만이 아니라, 이 땅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주의 당 건설에 함께 매진해 나가자는 절박한 제안이다.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서로 머리와 가슴과 손발을 맞대서, ‘해방’을 상상하고 기획하고, 조직적으로 실천하고, 그래서 더욱 풍부하고, 더욱 설레고, 더욱 즐거운 삶과 운동의 터전을 함께 만들어 나가자는, 그래서 21c 변혁의 주체로 서나가자는 결의이자 제안이다.

 

그 무엇도 아니다.

더 이상도 아니다.

오직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과 노동해방⋅인간해방을 모두 함께 해 나가야 한다는 큰 뜻만이, 그 의지만이, 그 열정만이 우리를 해산시킬 수 있고,

그래서 오늘 우리는 결의한다.

21c 변혁을 위한 사회주의운동의 주체로 서나갈 것임을.

 

 

2009.02.08.

노동자의힘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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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2] &quot;그리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quot;

떨림2_2009.02.15.

“그리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

 

“누군가는 강가에 앉아 있는 것을 위해 태어난다.

누군가는 번개에 맞고,

누군가는 음악에 조예가 깊고,

누군가는 예술가이고,

누군가는 수영을 하고,

누군가는 단추를 잘 알고,

누군가는 셰익스피어를 알고,

누군가는 어머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

-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마지막 나레이션 가운데서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감독: 데이빗 핀처

 

영화의 마지막 장면.

물은 흘러 모든 것을 휩쓸어 가고

시계는 거슬러 간다.

그런데 여기서 엉뚱한 상상? 혹은 깨달음?이 난데없이 끼어든다.

‘대중파업’에 대한.

 

그간 ‘대중파업’을 노동자가 하나의 계급으로 조직되는 것만 보았는데 ---.

돌이켜 보니, 대중파업 속에서,

누군가는 조직가가 되고,

누군가는 선동가가 되고,

누군가는 요리사가 되고,

누군가는 노래를 하고,

누군가는 춤을 추고,

누군가는 바리케이트를 지키고,

누군가는 회사를 잘 알고,

누군가는 노동자들의 심리와 상태를 잘 알고,

누군가는 싸우는 방법을 잘 알고,

누군가는 ---.

그래서 ‘대중파업’은 노동자를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시킬 뿐만 아니라,

임금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로 그 사람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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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1] “희망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입니다”

떨림1_2009.02.02

“희망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입니다”

 

“어려울 때에 희망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낭만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가 잔인함의 역사만이 아니라 열정과 희생, 용기와 관용의 역사라는 사실을 믿는 태도입니다.

만약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훌륭하게 처신해 온 경우가 아주 많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행동할 힘을 얻을 것입니다.

희망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입니다.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최악의 상황과 싸우면서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놀라운 승리인 것입니다.”

- <<하워드진의 만화 미국사>>에서 -

 

<하워드 진>

 

출생: 1922년 8월 24일 (미국)

현재 미 보스턴 대학 명예교수

저서: <살아있는 미국역사>, <미국민중사>, <권력을 이긴 사람들>,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오만한 제국>, <전쟁에 반대한다>, <불복종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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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떤 유토피아 - 하나의 가능한 대안

어떤 유토피아 - 하나의 가능한 대안

 

앙드레 고르

 

그 날 아침잠에서 깨어나자 프랑스인들은 어떤 새로운 변화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자문해 보았다. 선거가 끝난 후 권력이 이양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이미 기업의 점거사태가 수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폐쇄된 공장을 2년 전부터 점거하여 모든 종류의 실용품의 ‘자주생산’을 조직하기 시작했던 실업자들 속에는 다수의 해고된 노동자와 퇴직자 및 학생들이 가담하고 있었다.

 

커다란 빈집은 코뮨과 생산협동조합과 ‘자주학교’로 바뀌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새로 얻은 지식을 도입하여 교사의 협력이 있든 없든 토끼장과 잉어와 송어 양식장을 만들고, 금속과 목재를 가공할 기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권력이 이양된 다음날 아침, 직장에 가던 사람들은 처음에 깜짝 놀랐다. 밤중에 모든 대도시와 간선도로의 차도에 페인트로 흰 선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간선도로에는 버스 전용차선이 만들어지게 되고, 2급 이하의 도로에는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탈 사람을 위한 차선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시가지의 입구에는 수백 대의 이륜차가 공중용으로 놓여 있었고, 헌병 및 경찰용의 대형버스가 버스를 보충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승차권은 팔지도 검표하지도 않았다.

 

정오가 되자 정부는 무료운임의 즉각 실시와 도시에서의 자가용차의 주행을 12개월 동안에 서서히 금지시킬 것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주요 도시의 중심가에는 7백 개 노선의 전철이 부설되든지 부활될 것이며, 12개월 후에는 2만 6천 대의 버스가 제조될 것이다.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부가가치세는 폐지되었고 즉석에서 이들의 값은 20퍼센트 떨어졌다.

 

밤에는 공화국의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이상의 조치를 포함한 종합계획을 설명하였다. 대통령에 의하면 1972년 이래 프랑스의 GNP는 주민 1인당 미국의 수준에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여기서 차이는 잘 알려진 것처럼 낮게 평가되고 있는 프랑화의 변동에 따른 5내지 12% 정도이다. “바로 그대롭니다. 프랑스의 남녀 시민 여러분, 우리는 미국을 거의 따라 잡았습니다”라고 대통령은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을 특별히 자랑스럽게 여길 이유도 없습니다.”

 

대통령은 미국인의 생활수준이 프랑스인에게는 도달 불가능한 꿈과 같이 생각되던 시대의 일을 회상했다. “프랑스인 노동자가 미국인과 같은 임금을 받는 날이 온다면 반자본주의적인 이의신청도, 혁명운동도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진보적인 사람들이 주장했던 것은 불과 10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정말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고 대통령은 주의를 환기시켰다. 상당수의 프랑스인 노동자와 사무노동자가 오늘날 미국과 같은 수준의 급료를 받고 있지만 그럼으로써 그들의 급진화가 방해받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닙니까? 왜냐하면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우리는 점점 더 어정쩡한 충족 상태를 위해 보다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민족이 감소하고 있는데도 경비가 늘어나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확대되었다고 해서 보다 큰 공정함과 보다 많은 휴식과 생활의 즐거움이 얻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길을 잘못 들었으며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이리하여 정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구조로써 다른 성장, 다른 경제’를 위한 계획을 입안했다.

이 계획의 철학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될 것이라고 대통령은 지적했다.

 

(1) 앞으로 우리는 보다 적게 일한다.

 

지금까지의 경제활동의 목적은 생산과 판매를 늘리기 위하여 자본을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생산과 판매를 증가시키는 목적은 이익을 늘리는 데 있으며, 그 이익은 재투자되어 다시금 자본의 증가를 가능케 한다. 이러한 과정이 무한히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어느 한도를 지나면 이 과정은 증가하는 잉여가치를 파괴하지 않고는 계속될 수 없게 된다. 대통령은 말했다. “우리는 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의 노고와 자원을 낭비함으로써만 비로소 외형뿐인 완전고용을 실현시킬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장래에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보다 적게, 보다 잘 일해야 할 것이다. 국무총리가 이러한 방향에 따라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할 것이다. 대통령은 즉시 원칙적으로 성인은 일손이 있든 없든 간에 필요한 것을 모두 얻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즉 사용 가능한 노동력의 극히 일부만으로도 주민 모두의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킬 정도로 생산기구의 기술적 효율이 높아지는 날에는 전일제(full-time) 일을 맡는 사람에게만 전일제분의 수입을 얻을 권리를 주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이제 자유노동과 자유시간의 권리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2) 앞으로 우리는 보다 알차게 소비한다.

 

지금까지의 제품은 그것을 제조하는 회사가 최대한의 이윤을 얻을 수 있도록 고안되어 왔다. 대통령에 의하면 “앞으로, 제품은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들에게도 또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최대한의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고안되어야 할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하여 각 부문의 지배적 기업은 사회적으로 소유될 것이다. 기업의 임무는 각 영역에서 한정된 수의, 품질이 같은 표준 모델을 모든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충분한 양만큼 제공하는 데 있다.

이러한 모델을 고안하는 데는 네 가지의 기본적인 기준, 즉 내구성, 수리의 간편성, 제조 과정의 즐거움, 공해를 일으키지 않을 것을 따라야 한다. 제품의 내구성은 사용시간으로 표시되고 값 옆에 명기하는 것이 의무화될 것이다. 대통령은 주석을 달았다. “이 제품에 대해서는 매우 큰 수요가 외국으로부터 있을 것을 예상해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제품은 세계에서도 가장 독창적이기 때문입니다.”

 

(3) 앞으로 우리는 모든 사람의 일상생활에 문화를 포함시킨다.

 

지금까지 학교의 발전은 전반적인 무능력의 발전과 나란히 진행되어 왔다. 대통령에 의하면, 우리는 이렇게 해서 육아법과 조리법과 노래 부르는 법을 잊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요리와 노래는 임금노동자가 통조림에 담아 제공하고 있다. 대통령은 주의를 환기시켰다. “우리는 국가의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만이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울 자격이 있다고 부모가 믿는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현재 소비하고 있는 재화와 서비스가 질이 나쁘다고 비난하면서도 획득한 자유시간을 전자공학적으로 날려버리는 일을 직업적 연예인에게 맡기고 있다. 대통령에 따르면 모든 개인과 집단이 자신들의 생활, 생활환경, 상호교류를 조직화할 수 있는 권력을 되찾는 것이 긴급한 과제이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그리고 공동체적인 자율을 재정복하고 확대하는 것이 국가장치에 의한 독재를 파괴하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대통령은 국무총리에게 발언을 넘기고 변혁을 위한 계획을 설명토록 했다. 총리는 우선 사회화될 29개의 기업 혹은 회사의 명단을 낭독했다. 그것의 반 수 이상은 소비재 부문에 속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보다 적게 일하고’ ‘보다 알차게 소비한다’는 두 가지 원칙을 즉시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원칙들을 구체화하는 작업은 근로자 자신에게 맡겨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총리는 말했다.

“초안을 짜는 일은 분업으로, 모든 결정은 전원 공동으로 행한다”는 리프에서 완성된 방법을 따르며, 총회와 전문화된 작업 그룹 별로 회합을 갖는 것은 근로자의 권리이다. 총리의 어림으로는 근로자가 외부의 조언자와 이용자 위원회의 협력을 얻어 한정된 종류의 모델/품질규격/생산목표를 결정하는 데는 1개월쯤 걸릴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관리 방법은 이미 프랑스 국립경제통계연구소(INSEE)의 반(半)비공개 그룹에 의해 안출되어 있었다. 총리에 의하면 다음 달 중에 생산은 오후에만 하고 오전 동안은 집단적 준비로 할당할 것이라고 한다. 근로자가 스스로 정해야 할 목표는 일주일의 노동시간을 24시간으로 줄이면서, 생활필수품에 대한 모든 수요를 그들의 생산으로 충족시키는 것이다. 근로자의 실제 수는 당연히 증가할 것이다. 일하고 싶은 남녀의 수에는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총리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각자가 같은 기업에서 어느 때는 일주일에 24시간 이상, 어느 때는 24시간 이하 일하도록 근로자가 조직하는 것은 물론 자유이다. 또한 어느 기간은 겸임으로 동시에 두세 가지의 일을 하거나, 여름이 끝날 때는 농업을 하고 봄에는 건설에 종사하는 등 요컨대 동시에 몇 가지 직업에 몸을 담아 실천하는 것도 자유이다. 일주일 24시간 노동에 월 2천 프랑을 받는 것을 평균 임금으로 하는 것이 양해된다면 이상의 목적을 위해 일손 교환용의 기금을 설치하는 것도 근로자의 권리일 것이다.

 

두 사람이 그들에게 제공되는 집단적 편의와 서비스를 고려할 때 월 2천 프랑을 가지면 상당히 훌륭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총리가 말했다. 하지만 누구도 검소한 생활을 하도록 강요되지는 않는다. “사치는 금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사치는 노동에 의해서 획득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점에 관해서 총리는 다음과 같은 실례를 들었다. 별장 한 채는 약 3천 시간의 노동에 해당한다. 별장을 한 채 사고 싶은 사람은 일주일당 24시간 이외에 손작업이든 건설업이든 3천 시간을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가운데 적어도 1천 시간의 노동은 별장을 손에 넣기 전에 제공되어야 한다. 자가용 승용차(약 6백 시간의 노동에 상당)와 같이 불필요한 것으로 분류된 다른 물건도 같은 원리에 따라 입수할 수 있다. “돈이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물건의 가격을 노동시간으로 평가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주의를 환기시킨 후 총리는 덧붙여 이 노동(즉 가격)은 급격하게 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약간 손재주가 있는 아마추어가 천 5백 시간을 들이면 스스로 지을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견고한 영구’ 주택의 모든 부품을 불과 5백 시간의 노동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어떤 기초 공동체도 스스로가 소비하는 물건의 최소한 절반은 생산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생산단위를 분산화하고 소형화함으로써 서서히 상품생산과 상품교환을 폐지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총리는 언명했다. 왜냐하면 모든 낭비와 좌절의 원천은 “누구도 자신이 생산하는 물건을 소비하지 않으며, 또한 누구도 자신이 소비하는 물건을 생산하지 않는”데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새로운 방향에로의 제 1보를 내딛기 위하여 정부는 자전거산업으로부터 생산을 즉시 30%늘인다는 확약을 얻었다. 게다가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절반은 ‘조립세트’의 형태로 판매되어, 이용자가 스스로 조립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상세한 제작법이 이미 인쇄되어 있으며, 필요한 도구류 일체를 구비한 조립대가 지체 없이 관공서/학교/경찰서/병영/공원/공공 주차장 등에 갖추어질 것이다.

 

총리는 장차 기초공동체가 다음과 같은 종류의 것을 솔선해서 발전시킬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거리마다 마을마다 아니 커다란 공동주택마다 자유로운 창조와 생산을 위한 작업장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여가시간 동안에 비디오와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포함한 점점 완벽해지는 용구류 일습을 가지고 바라는 대로 물건을 만들어 낼 것이다.

즉 24시간 노동제인 데다가 자원이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돕고(아이들 돌보기, 노인 보살핌, 지식의 전달) 바람직한 집단설비를 공동으로 만들기 위하여 스스로 조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 해주는 것인가?’라고 묻지 말아주십시오.”라고 총리가 부르짖었다. “정부의 사명은 인민의 손에 권한을 양도하고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총리는 이어서 새로운 사회의 요체는 교육제도의 개정에 있다고 했다. 학교교육을 받는 동안에 모든 어린이들은 흙/금속/목재/천/돌을 사용하여 세공하는 데 익숙해지고 이러한 활동과 관련하여 역사와 과학, 수학과 문학을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총리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무교육이 끝난 후 5년 동안 각자는 전일제 노동의 소득을 얻는 주 20시간의 사회적 노동과 자신이 택한 연구 내지 실습작업을 병행하게 된다. 사회적 노동은 다음의 네 가지 분야 즉 농업, 제철업/광업, 건설업/공공 토목사업/공중위생, 환자의 간호/노인과 어린이의 돌봄 가운데 한 혹은 몇 가지를 행해야 하는 것이다.

총리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어떠한 학생(노동자)도 3개월 이상 계속하여 청소부나 병원 노동자, 인부와 같이 극히 소모적인 일을 하도록 강제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누구나 45세가 될 때까지 연평균 12일씩 이 일들을 떠맡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더 이상 부호도 천민도 없게 될 것입니다”라고 총리가 외쳤다. 밤낮으로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고 여러 과목에 걸친 자주교육/자주연수를 행하는 기구가 벽촌에 사는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는 680개소에 2년 안에 설치될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에 반대되는 작업 속에 갇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노동(교육)의 마지막 해에 학생(노동자)은 작은 자립적인 그룹으로 나누어져, 미리 지역공동체와 논의해 둔 독창적인 제안을 처음부터 끝까지 실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총리는 이렇게 많은 자발성이 발휘되어 프랑스 중앙부의 과소지대(過蔬地帶)가 새로운 생명을 얻으며, 그곳에 생태계를 존중하는 농업이 재도입되는 데 대한 희망을 표명했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가 자동차 연료와 공업용 중유를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것을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비프스테이크를 위해 미국의 대두(大豆)에 의존하고, 곡물과 야채를 위해 석유화학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국토의 방위는 무엇보다도 먼저 국토의 점령을 요청 합니다”라고 총리는 말했다. “민족의 주권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양하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매년 10만 명의 사람들로 하여금 점점 더 돌보지 않게 되는 지방에 살면서, 그곳에서 유기농법, 목축과 더불어 ‘부드러운 기술(soft technology)’을 재도입하고 완성하도록 격려하는 데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바람직한 모든 과학적/물질적 원조가 5년간에 걸쳐 이 새로운 농촌 공동체에 제공될 것이다. 이들 공동체는 세계적인 굶주림과의 투쟁에 원자력 발전소와 살충제 공장의 수출 이상으로 공헌할 것이다. 총리는 이야기를 끝마치면서, 상상력을 북돋우고 사상의 교류를 자극하기 위해서 앞으로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TV의 방영을 금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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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구간종주3] '한계령'에서 ‘마등령’거쳐 '백담사'까지

백두대간 구간종주기3(2008.11.02.)

'한계령'에서 ‘마등령’거쳐 '백담사'까지

 

 

<“이래서 ‘설악’이구나!!!”, 사진_반듸불>

 

"무박은 미친 짓이다!"

 

“무박은 미친 짓이다!”

11월 1일 22:00, 범계역에서 일행 분들과 봉고차에 올라,

3번째 구간 종주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에 잔뜩 긴장해 있을 때,

어느 분이 한 말이다.

지금까지 설악산 무박 등반을 여섯 차례 했는데,

밤에 산을 타서 한 번도 설악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면서 한 얘기다.

“그래, 미친 짓이지. 근데 왜 또 무박 등반을 할까?”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11월 2일 01:30쯤,

인제 근처에 있는 이름 모를 휴게소에서 간단하고 신속하게 야식을 먹고,

차에 올라 짐을 챙기자마자 02:30에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한다.

재빨리 배낭을 짊어지고 차에서 내렸는데,

선두는 벌써 저만큼 올라가고 있다.

숨돌릴 겨를도 없다.

 

 

<이런 휴게소가 있었는지조차 몰랐는데 ---, 사진_수담>

 

거센 바람만이 설악이 거기 있음을 알려주고

 

한계령 휴게소에서 중청(1676m)까지는 대략 7.7km다.

능선따라 오르는데, 바람은 불었지만 생각보다 맵지는 않다.

후미에서 7~8명이 어둠을 가르며 설악을 오른다.

한 30여분쯤 올랐을까, ‘이른 아침’ 왈,

“벌써 후회되지?”

 

<“그래, 첫걸음 떼자마자 후회된다”, 사진_수담>

 

전날 기상 예보에서는 대청봉에 눈이 왔고,

새벽기온이 -2도(체감온도는 -6도)될 거라고 해서 아이젠까지 챙겼는데 ---.

 

몇 시간을 끙끙 오르는데,

설악은 칠흙같은 어둠에 뒤덮혀 있고, 안개마저 산을 감싸고 있다.

어둠과 안개 때문에 숲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오를수록 바람은 더욱 거세진다.

모두를 삼킬 듯 부는 바람소리만이 숲이 거기에 있음을 알려준다.

단잠을 깨우는 불청객들에 대한 설악의 분노인가?

새벽이 오면서 깨어나는 설악의 야성인가?

검은 먹구름까지 가세해서 설악은 울부짖는다.

능선을 지날 때면 몸마저 가누기 힘들어진다.

 

새벽 6시쯤 끝청(1604m)에 도착. 3시간 30분만이다.

안개와 먹구름 사이로 멀리 귀떼기청봉(1577m)이 보인다.

 

<끝청에서 ‘청계산기슭’, 힘들어도 사진 찍을 때는 입을 다물어야겠다. 사진_이철호>

<끝청에서 ‘이른 아침’, 저 여유있는 모습. 사진_박성인>

 

‘중청3거리’에서

 

끝청을 지나 소청, 중청을 향하자,

여명과 함께 갑자기 하늘은 맑게 갠다.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멀리 대청봉에서 해가 얼굴을 내민다.

수줍어하지도 않고, 강렬하게.

 

<대청봉에서 구름을 밀어젖히며 떠오르는 해, 사진_생큐>

 

06:50, 중청3거리에 도착.

바로 아래 중청대피소가 있다.

 

 

<중청대피소, 사진_강나루>

 

여기서 대청봉까지 갔다오려면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후미라고 해야 ‘청계산 기슭’과 ‘이른 아침’, 두 부부, 그리고 후미대장.

아침식사는 희운각대피소에서 하자고 이미 지침이 내려져 있었고,

대청봉 다녀오자는 소리는 입밖에도 내지 못한다.

아니 그럴 자신도 없다.

망설일 틈도 없이 방향을 왼쪽으로 튼다.

 

“이래서 ‘설악’이구나!”

 

 

<설악의 진면목,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다. 사진_이철호>

 

중청3거리에서 마등령 방향으로 틀어 고개 하나를 넘는 순간,

시야가 갑자기 달라진다.

“아! 이래서 ‘설악’이구나!!!”

사방으로 기암절벽과 능선이 겹겹이 쌓여 있다.

 

사실 ‘설악’은 처음이었다.

한라산, 지리산 --- 그리고 2007년 1월에 금강산까지 갔었지만

‘설악’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그래서 첫 대면이다.

‘설악’은 실망시키지 않았다.

용아장성능선, 공룡능선, 그리고 멀리 울산바위까지.

 

 

<설악의 능선, 사진_이철호>

 

<설악의 능선, 사진_반듸불>

 

<설악의 능선들, 사진_반듸불>

 

놀란 눈을 거두고,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추스르고,

희운각 대피소(1,050m)를 향한다. 1.3km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간다.

무릎은 고통스럽지만, 설악을 바라보는 눈은 즐겁다.

 

<희운각대피소, 사진_박성인>

 

대청봉까지 다녀온 일행과 함께

희운각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를 하자마자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08:05이다.

공룡능선을 거쳐 마등령까지는 5.1km다.

 

공룡의 등에 올라타서 기어서 가기

 

 

<공룡능선, 사진_강나루>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공룡의 등을 타서, 오르내리길 몇 차례 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다.

오를 때는 기었고, 내려갈 때는 주춤했다.

‘이른 아침’도 이 구간은 처음이라고 했다.

공룡능선은, 그 아름다움을 멀리서 보는 것은 허락했지만,

자신의 등을 밟는 것은 쉽게 용납하지 않았다.

후미는 ‘이른 아침’과 ‘청계산기슭’, 둘만 남았다.

날아가도 시원치 않을 판에, 후미대장은 지진아 둘을 챙기느라

걸음은 물론, 마음도 시커멓게 탔을 거다.

 

<공룡능선, 어느 봉우리에서 ‘청계산기슭’, 사진_이철호>

 

<공룡능선, 어느 봉우리에서 ‘이른 아침’, 사진_박성인>

 

나중에 알았지만,

이 코스가 가장 힘든 코스라고 한다.

그래서 후미대장은 헉헉대며 간신히 발걸음을 옮기는 ‘청계산기슭’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룡능선을 등반했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다 놀랄거라”고.

그러나 그건 나중의 일.

먼저 놀란 것은 양 무릎.

가끔씩 능선의 봉우리에서 설악 한 번 쳐다보며 ‘탄성’을 지를 뿐,

어떻게든 공룡의 등 아래로 내려가기만을 간절하게 바란다.

 

공룡능선과 나란히, ‘용아장성龍牙長城’이 보인다.

설악에서 가장 위험하고 운치있고 빼어난 암봉을 가진 능선이라고 한다.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23개의 암봉들이 연이어 성처럼 길게 둘러쳐있다는 뜻이다.

공룡능선과 용아장성 사이는 ‘가야동계곡’이다.

 

 

<공룡능선보다 더 험하다는 ‘용아장성’, 사진_생큐>

 

간신히, 그야말로 간신히

 

마등령(1,327m) 밑에 도착한 시간,

아니 잠깐 스치고 지나간 시간이 12:10이었다.

오른쪽으로는 세존봉(1,025m)을 거쳐 비선대, 신흥사이고,

왼쪽은 오세암과 영시암을 거쳐 백담사이다.

오세암까지는 1.4km, 영시암까지는 3km, 백담사까지는 7.4km다.

헉, 벌써 12시가 넘었는데

지금 이 상태로 얼마나 걸릴건가.

눈 앞이 캄캄하다.

계속 내리막길이어서 무릎이 견뎌내지 못할 것 같은데 ---

 

<마등령 밑 표지판, 사진_반듸불>

 

오세암까지는

가파른 계곡이다.

후미대장이 앞에서 가다가 기다리다가 하면서 이끈다.

‘이른 아침’은 먼저 갔다. 혼자다.

13시 조금 넘어 오세암에 도착.

 

<오세암, 사진_반듸불>

 

백담사의 부속암자인 오세암五世巖은 643년(선덕여왕 12) 자장율사가 지었고, 다섯살된 아이가 폭설 속에서 부처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는 전설이 있어서 '오세암'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전설을 바탕으로 《샘터》의 편집자이자 동화작가인 故정채봉선생이 1983년에 동화 <오세암>을 썼고, 동화를 원작으로 에니메이션도 만들어졌다.

에니메이션을 언제가 본 적이 있다.

그 오세암을 직접 갔다.

아니 거쳤다.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

 

다시 14:10에 영시암에 도착.

후미대장에게, “지금 속도라면 2시간도 더 걸릴 것 같은데

기다리는 동료를 생각하면 어떤 조치라도 ----“

후미대장 왈, “최대한 빨리 가야 한다. 많이 기다릴테니 ---”

다행히 영시암에서 백담사까지 4.1Km는 평지였다.

14:15에 영시암을 출발하여 백담사까지 4.4km를

정신없이 걸어서 15:10에 도착했으니 ---.

오세암과 영시암에서 백담사에 이르는 길을, 계곡을, 단풍을,

그 아름다운 경치들을 채 음미하지도 못하고 뒤로 하다니 ---.

얼핏 스치고 지나쳤던 경치를 사진으로나마 다시 음미할 수밖에.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 사진_반듸불>

 

 

<백담사 가는 길 옆 계곡, 사진_생큐>

 

 

<다람쥐들이 많다. 사진_반듸불>

 

백담사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봐서 영시암이나 오세암에 가는 것 같다.

노부부도 보이고, 아이까지 동반한 일가족도 보인다.

이 길은 설악산에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 올라가면서 봐야 제맛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겁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백담사의 단풍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길과 함께 흐르는 계곡이 정겹다. 사진_ 반듸불>

 

 

<후미대장이 ‘아름답다’며 쳐다보라고 한 단풍, 사진_산초>

 

 

<단풍, 단풍, 단풍들---, 사진_산초>

 

15:10, 백담사에 도착.

백담사는 둘러볼 겨를도 없다.

벌써 용대로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행렬이 다리끝까지 이어져 있다.

 

 

<사진으로만 보는 백담사 입구, 사진_아침>

 

기다리던 우리산악회 일행에 새치기로 껴서

15:30에 버스를 탄다.

사실 다행이라는 생각 때문에 줄을 선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버스 타고, 계속을 돌고 돌아 6~7km를 내려오니,

마침내 용대리 입구.

16:00가 다됐지만, 어쨌든 도착했다.

 

 

<마침내 도착!!!, 사진_산초>

 

“계속 이런 산행 해야하나” -> “다음 산행은 어떻게 되지?”

 

16:30 버스 출발.

설악에 작별인사도 못하고 정신없이 잠을 자는데,

양쪽 무릎 통증 때문에 별 생각이 다 든다.

출발할 때, 수암대장이 왼쪽 무릎테이핑을 해줘서 그나마 나았는데,

오른쪽 무릎은 말이 아니다.

“계속 이런 산행을 해야 하나 ---.”

중간 휴게소에서 후미대장 왈,

“지금 관두면 안 된다. 최소한 10번 정도는 해야지---”

 

홍대장에게서 진통제 두 알을 받아 먹었더니

무릎통증이 조금 가라앉는다.

그러자 생각이 조금씩 바뀐다.

“다음 산행은 어떻게 되지?”

구룡령에서 쇠나드리까지는 다행히 ‘흙산’이라고 한다.

20km정도인데 무척 지루하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흙산’이어서.

 

그리고 ‘마당쇠’에게 전화를 돌린다.

 

“22:00쯤에 범계역에 도착하는데 한 잔 하셈.”

 

 

<계곡에서 바라본 설악, 사진-이철호>

 

그리고, 마지막 하나 기억하고 싶은 것.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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