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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6] 강렬함 - El Tango De Roxanne(록산의 탱고)

[탱고6] 강렬함 - El Tango De Roxanne(록산의 탱고)

 

아마 앞의 리베르탱고 연주를 하나씩 들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6번째에 두 여성 바이올리스트가 리베르탱고에 앞서 연주한 곡이 바로

‘El Tango De Roxanne(록산의 탱고)’였습니다.

첫 도입부가 너무나 강렬하게 느껴져서 어떤 곡인가 찾아 봤습니다.

 

이런~

피겨여왕인 김연아가 2006년 Junior World Championship과 시니어 무대 데뷔 때(2006년) 이 곡을 자신의 배경음악으로 삼아 우아하고 열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어서 스포츠에서도 탱고열풍을 불러일으켰네요.

김연아 스스로도 자신의 대표작으로 ‘El Tango De Roxanne(록산의 탱고)’를 꼽는다고 하는데 ---.

이어 일본의 남성 피켜스케이터인 다카하시 하이스케도 2007년에 이 곡으로 연기를 했고 ---

그만큼 강렬하고 인상적인 탱고입니다.

 

* 2007년 김연아의 공연

http://www.youtube.com/watch?v=oCJyeyW8g2c

 

* 2007년 다카하시 하이스케 공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9DDUbI9njlg$

 

한 걸음 더 나아가 봤더니,

‘El Tango De Roxanne(록산의 탱고)’는 2001년에 개봉됐던 뮤지컬 영화인 ‘물랭 루즈Moulin Rouge’의 OST로 더 유명한 곡이었네요.

사실 아직 ‘물랭 루즈Moulin Rouge’란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

이 곡을 듣고 나자 보고 싶어집니다.

 

* El Tango De Roxanne - Moulin Rouge

http://www.youtube.com/watch?v=UFrxzLvwcL0

 

이 곡을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피아졸라가 작곡한 곡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는데,

그건 틀린 것 같고(?),

원래 영국의 팝뮤지션인 Sting(그룹 The Police의 멤버)이 1978년 4월에 ‘Roxanne’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곡을 ‘물랭 루즈Moulin Rouge’ 영화에서 음악감독을 담당한 Craig Armstrong이 탱고 곡으로 편곡하여 ‘El Tango De Roxanne(록산의 탱고)’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했다고 합니다.

 

‘물랭 루즈Moulin Rouge’ 영화를 보지 않아서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Roxanne은 프랑스의 매춘부라고 합니다.

앞의 장면은 돈에 몸을 파는 처지일 수밖에 없는 불행한 샤틴(니콜 키드먼)을 공작이 범하려는 장면입니다.

그 때 괴로워하는 샤틴의 모습과 교차하며 물랑루즈의 사람들이 탱고를 춥니다.

 

노래는 Ewan McGregor, Jose Feliciano, Jacek Koman이 함께 불렀는데,

돈을 위해 몸을 팔려는 록산(여기서 록산은 바로 샤틴을 의미하는 이름)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는 내용이랍니다.

중간에 들어가는 이완 맥그리거의 대사는, 사랑 없이 공작과 결혼할 수밖에 없는 샤틴에게 하는 말이고.

 

이왕 걸음을 내디딘 김에 원곡까지 가보면,

‘Roxanne’은 The Police의 리드싱어인 Sting이 남프랑스에 있는 어느 매춘부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작곡했다고 합니다.

 

* The Police 그룹의 ‘Roxanne’

http://www.youtube.com/watch?v=ol4QB2Ye-D0

 

 

* 1985년 ‘Free the World’ 공연에서 Sting이 부른 ‘Roxanne’

 

http://www.youtube.com/watch?v=qVlu9BkszOk

 

 

* 2001년 9월 11일, 이탤리에서 Sting의 라이브 공연

 

http://www.youtube.com/watch?v=4NQ_l6spilI&feature=player_embedded

 

여기에다가 섬세한 목소리의 소유자인 팝가수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이

리메이크한 버전이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XSapnmyDmr4$

(동영상 파일이 없다고 나오면, 검색에 ‘Roxanne’를 치고,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헉, 딴 길로 새버렸네요.

어쨌든 탱고와 관련해서는 물랭루즈에서 편곡한 ‘El Tango De Roxanne(록산의 탱고)’가 이후 여러 가지 형태로 공연되고 있네요.

근데 물랭루즈에서의 노래와 연기가 너무 강렬해서 나머지는 좀 심심하다는 느낌이 ---

그래도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소개해 보면 ---

 

* ‘Blue Moon Dance Company'의 댄서인 Sara Beaman이 추는 솔로 민속 퓨전춤, Le Tango de Roxanne

http://www.youtube.com/watch?v=ct3QV6fgR6Y

 

* Shannon Mather가 안무하고, Marshea Kidd와 Athena Sterig가 춘 ‘Dance Precisions Roxanne’

http://www.youtube.com/watch?v=huQP96cTsQA

 

* ‘South Forsyth High School Dance Company’에서 2007년 봄에 공연한 Tango Roxanne

http://www.youtube.com/watch?v=JL5N5nBELos

 

* 2006년에 공연된 연극 ‘Fly High, O Woman’에서 4인 여성 무용수의 ‘Tango de Roxanne’ 춤.

여기서 무용수들이 자켓을 입고 춤을 춘 것은 노벨상 수상자인 칠레 시인 Gabriela Mistral이 즐겨 입었던 자켓이고, 그 시인을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lkaRECBKWug

 

* 크로스오버 앙상블 새바(Seba)의 문화콘서트 난장에서 ‘El Tango De Roxanne’ 연주 공연.

새바(Seba)는 클래식, 재즈 등의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대중들이 음악과 친근하게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온 크로스오버 앙상블입니다. 지난 4년간 200여개의 새로운 레퍼토리를 무대에 올렸다고 하네요.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wEum1OlIyeI$

 

www.mbcnanjang.com

 

* 크로스오버 재즈 밴드인 'SEBA'와 함께 탱고를 추는 공연(2008.07.26.)

http://www.youtube.com/watch?v=YgYlTfu9fFk

 

*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El Tango de Roxanne’(아나스타샤)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qNciyVhUqe8$

(동영상 파일이 없다고 나오면, 검색에 ‘Roxanne’를 치고,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물랭루즈에 나오는 ‘El Tango de Roxanne’의 가사

 

- Roxanne -

 

(Jacek Koman)

We'll drive you

We'll drive you

Mad

Roxanne

You don't have to put

On that red light

Work the streets for money

You don't care if

It's wrong if it is right

Roxanne

You don't have to wear

That dress tonight

Roxanne

You don't have to sell your

Body to the night

-> 록산, 돈을 벌기 위해 거리에 나가 일하며 붉은 조명 속에 있지 않아도 돼. 당신은 뭐가 옳고 그른지 신경 쓰지도 않겠지만. 록산, 오늘은 그 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돼. 록산, 돈을 위해 당신 몸을 팔지 않아도 돼.

 

(Ewan McGregor)

His eyes upon your face

His hand upon your hand

His lips caress your skin

It's more than I can stand

-> 그의 눈이 당신의 얼굴을, 그의 손이 당신의 손을, 그의 입술이 당신의 피부를 더듬어. 더욱 참을 수 없는 건...

 

(Jacek Koman)

Roxanne

 

(Ewan McGregor)

Why does my heart cry

-> 어째서 나의 마음이 우는 걸까!

 

(Jacek Koman)

Roxanne

 

(Ewan McGregor)

Feelings I can't fight

You're free to leave me

But just don't deceive me

And please

Believe me when I say

I love you

-> 참을 수 없는 감정. 자유롭게 날 떠나더라도 날 속이진 말아줘. 그리고 제발, 사랑한다는 나의 말 믿어줘.

 

(Spanish dialogue)

 

Yo que te quiero tanto, que voy a hacer?

->나는 당신을 너무 사랑해, 어떻게 해야 할까?

 

Me dejaste, me dejaste por un monton de monedas

-> 내게 말해. 나에게 돈다발에 대해 말을 해

 

El alma se me fue, se me fue el corazon

-> 영혼이 내게서 떠나면, 사랑[심장]도 내게서 떠나지

 

Ya no tengo ganas de vivir porque no te puedo convencer

-> 나는 너에 대한 확신없이는 살아갈 희망이 없어

 

Que no te vendas corazon, Roxanne

-> 네 사랑을 팔지는 말아줘, Roxanne

 

(Jacek Koman)

Roxanne

 

(Ewan McGregor)

Why does my heart cry?

 

(Jacek Koman)

You don't have to

Put on that red light

 

(Ewan McGregor)

Feelings I can't fight

 

(Jacek Koman)

You don't have to wear

That dress tonight

Roxanne

 

(Chorus)

Why does my heart cry?

 

(Jacek Koman)

You don't have to put

On that red light

 

(Chorus)

Feelings I can't fight

 

(Jacek Koman)

You don't have to wear

That dress tonight

Roxanne

Roxanne

Rox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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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공정한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처음에는 코메디처럼 다가왔다.

‘공정한 사회!’

아니 ‘친기업 프랜들리’를 내건 MB 정권 아래서 ‘공정한 사회’라니?

거짓말과 말바꾸기를 밥먹듯이 하고,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병역 기피에서 한가닥 하는 인물들이 모인 이 정권에서 ‘공정한 사회’를 감히 입에 담다니?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웃고” 지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집권 후반기 국정 기조’라고 한다.

“기득권자에게 매우 불편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 될 지라도 “공정사회 기준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한민국 선진화의 윤리적 실천적 인프라”라고 포장을 한다.

게다가 거기에 “성장의 온기를 골고루 퍼지게” 하기 위해서라며 ‘친서민’을 덧붙인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 몇 명 낙마시킨 것으로 ‘공정한 사회’가 올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거꾸로 MB 정권이 “공정한 사회를 말할 자격조차 있느냐”고 조롱하고 폭로한다.

근본적 정책전환이 아닌 6.2.지방선거 패배에 따른 정국을 반전시키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 하기도 한다.

오히려 ‘공정한 사회’를 위한 법질서 확립이란 명분으로 하반기 국회에서 MB악법 통과를 강행하려는 것 아니냐, 레임덕을 방지하기 위해 공직자에서 재계와 정치권,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사정 드라이브를 확장하려는 것 아니냐며 경계를 하기도 한다.

 

멈춰서는 안된다.

MB를 조롱하고 폭로하며 평가절하하고 경계하는데 멈춰서는 안된다.

‘반MB’에 갇혀서는 안된다.

오히려 주목해야 한다.

왜 친자본 정권인 MB정권이 겉치레라도 ‘친서민’, ‘공정한 사회’라는 국정기조를 내세우지 않으면 안되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민심 이반’이다.

그런데 이 ‘민심 이반’은 MB만에 대한 이반이 아니다.

반MB=야당 지지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삶을 무한 경쟁에 내몰았던 자본의 시장논리에 대한 민심 이반이다.

개발과 성장과 경쟁력이 우리 삶을 좀 더 낳게 해줄 것이라던 자본의 경쟁논리에 대한 전면적인 민심이반이다.

때로는 강제적으로 때로는 능동적으로 받아들였던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에 대한 대중적 반성이 이제 시작됐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중은 우선 ‘고통을 함께 나눌 소통’을 바라고 있다.

‘공정성’과 ‘사회 정의’를 요구하고 있다.

무한 시장경쟁이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 즉 근본적인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

MB 정권은 바로 이 점에서 정권의 위기만이 아닌 자본주의체제의 위기를 직감하고 있다. 

그래서 바로 국정운영의 주도권과 정권의 재창출만이 아닌 자본주의체제의 위기관리 차원에서 겉치레라도 ‘친서민’, ‘공정사회’를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바로 같은 맥락에서 야당은 이러한 자본에 대한 민심이반을 반MB이라는 틀 안에 가두려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 시작이다.

‘겉치레’에 현혹되지 않고 ‘반MB의 틀’을 벗어나 더 나아가야 한다.

‘공정한 기회’에 갇히지 않고 우리는 좀 더 발본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공정한 사회’를 갈망하는 대중들에게 묻고 함께 답을 찾으며 실천해 나가야 한다.

경제위기에 따른 비용을 전적으로 노동자와 민중들에게 전가하는 현실에서 과연 노동자와 민중이 정리해고와 실업, 노동강도 강화와 과로사, 산업재해와 스트레스 등을 벗어난 삶을 살 수 있는가?

벼랑끝 생존경쟁을 벗어날 수 있는가?

대기업, 은행, 그리고 대형유통업체가 소수에게 독점되는 사회에서 과연 공정한 분배가 가능한가?

주요한 권력기관과 기업의 경영진이 선출되지 않는 사회에서 과연 공정한 참여가 가능한가?

부가 교육을 통해 대물림되는 현실에서 과연 공정한 기회라는 것이 가능한가?

새로운 대안 사회를 꿈꾸는 사회주의자들이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는 상황에서 과연 공정한 체제 경쟁은 가능한가?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무한 시장경쟁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연 ‘공정한 사회’는 가능한가?

 

그래서 우리는 ‘반MB’가 아닌 ‘반자본의 전망’을 아래로부터 대중과 함께 현실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 가능성과 실력을 현실에서 검증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바로 ‘새로운 대안적 삶의 가능성’ 그 자체로 서나가야 한다.

그 누가 아닌 바로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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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과정간담회3] '장독 뚜껑'인가, '판도라의 상자'인가

‘상급과정 간담회(3차)’, '장독 뚜껑'인가, '판도라의 상자'인가

 

 

언제나 출발점은 ‘애들에 대한 걱정과 우려’인가 봅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논의를 하던지, 결국 다시 되돌아오는 지점은 ‘애들에 대한 애정’입니다.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겠죠.

 

1,2차 간담회를 통해 애들의 상태에 대한 얘기는 어느 정도 마무리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3차 간담회(7.09.금.20:00)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다시 원점에서 얘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애들은 ‘하나’가 아니고, 다 ‘다르기’ 때문이겠죠.

 

‘무기력한 상황?’, ‘불안?’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많은 학부모들이 지금 애들에 대해 걱정하고 고민하는 초점을 한 두마디로 정리하면, ‘무기력’과 ‘불안감’입니다.

물론 각 집안마다 사정과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

 

“우리 애는 전입생이다. 그간 발도르프 교육 받아온 아이들은 주체적인 사고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 애는 안그런 것 같다. ‘여기는 시험을 안보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안하겠어’라고 한다. 못한다는 것인지, 안한다는 것인지 --- 전학 오면서 ‘대학’ 보다는 주체적으로 살 기 바랬는데, 주체적이지 못해 걱정이다. 이도 저도 못하고 있다. 심각한 고민이다.”

 

“애들 사이의 개별적 차이(질적인 차이들)를 학교에서 개별적인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느냐? 일반학교는 10명만 건지고 30명은 포기하는데, 대안학교는 한 명 한 명 다 챙기는데 --- 가능하냐? 학교 커리큘럼을 충실히 따라가면, 1년 재수하면 대학 갈 수 있느냐? 가능하다는 판단이 있고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이 있다.”

 

“학교에 보내면 주체적으로 잘 할 거라고 전제했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황이다. 개별 차이는 있겠지만, 뭔가 하기 위한 동기 부여가 뭘까? 시험도 하나의 동기 부여 계기인데---. 과제를 부과하는 것과 시험보는 것은 다르다. 개별 차이가 심할 거라고 생각한다. 개별 차이를 존중하면서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는가? 경쟁 자체가 목표는 아니지만, 뭔가 즐겁게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무기력한 상황,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해 줄 것인가? 학교 분위기가 경쟁을 터부시하지만, 동시에 분명하게 동기 부여를 해 주는 것도 없는 것 아니냐?”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가라앉아 있는 상황이다. 온실 속에 있는 것 같다. ‘대학’도 아니고, ‘질풍노도’도 아닌 ---.”

 

“애들이 모드 전환을 안하려고 하고, 뭘 목표로 세워 나갈 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다. 일반학교의 경우에는 시험이나 입시 등의 목표라도 있는데 ---. 학교도 모드 전환 안한 거 아니냐?”

 

이런 불안감은 집안 내에서 엄마, 아빠간에 이견 때문에 더 커지기도 합니다.

 

“엄마, 아빠간에 애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다. 엄마는 애가 학교에서 수업에 집중하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여행도 하고 --- 자유롭게 커 나가길 바라는 입장이다. 근데 아빠는 공부를 시켜야 되지 않나고 얘기한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 어디서부터 이런 이견을 풀어내야 할 지 --- 가정내에서도 ‘불안정한’ 느낌이다. 엄마는 입시와 상관없이 상급과정 가자고 하지만, 아빠는 EBS 수학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확신’도 있지만 ‘두려움’도 있다. ㅠㅠ.”

 

‘자극’, 혹은 ‘동기 부여’

 

애들 스스로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부딪혀 보려 하는 ‘역동성’”을 갖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대다수 엄마, 아빠들은 지금 애들이 ‘뭔가 무기력한 것 아니냐’는, 뭔가 ‘자극’이나 ‘동기 부여’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와 처방들이 있겠지만, 간담회에서는 대략 다음과 같은 얘기들이 나왔습니다.

 

“아마 누군가가 사고치면 다른 친구들은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다.”

 

“애들 사이에 모델케이스가 없다. 비교 대상이 없다. 옛날에는 중학교 가면서 교복 입으면, 초등학교와 차이를 느꼈다. 형식 자체가 사고를 바꾸게 한다. 지금은 뭔가 ‘닫혀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과제는 텍스트안에서 하는 것과 텍스트안에서 해결할 수 없어서 다른 부분으로 확산시켜 내는 것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확산시켜 내는 과제가 중요하다. ‘확산적 과제’가 많아져야 한다.”

 

대다수 엄마, 아빠들의 끝모를(?) 걱정과 우려에 대해, 지난 9년간 언제나 그래왔듯이, 보이지 않게 과천자유학교의 한 가닥을 담당해 오신 선 모 아빠께서는 다음과 같은 얘기로 그런 우려들을 조금이나마 불식시켜 주셨습니다.

 

“학교 졸업 전까지 어떻게 지낼 거냐? 졸업 이후 벌어질 상황에 대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졸업 이후에 본인이나 부모가 원하는 상태가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원하는 대학 못갈 수도 있다. 어떤 진로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가? 학교 다니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뭔가? 애들이 의욕적이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그게 긍정적 모습이긴 하지만, 개인의 성향이나 개인별 시기 차이도 있을 수 있다. 애들이 무기력해져 있을 때 도와 줄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은 당연하지만, 안 될 가능성도 많다. 닥달하다가 망칠 수도 있다. 애들이 자율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는 것이 나중에 힘이 될 것이다.”

 

“애들이 자유롭게 살고, 하고 싶은대로 하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뭔가 마련해줘야 할 것만 해줘도 되는가? 12년 과정,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에 대해 다른 생각도 해 볼 필요가 있다. ‘너 그렇게 무기력하게 있지 말아라’라고 해도 애들은 잔소리로 들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부모가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 지? 학교 프로그램 마련하게 하는 것? 학부모가 어떤 계기를 만드는 것? 기다리는 것? 충분히 고민해 봐야 한다.”

 

과천‘자유’학교에 걸맞게, 애들이 스스로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라나게 해야지, 너무 닦달하거나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셨다.

그래도 저를 비롯한 대다수 소심한 ‘중생(衆生)’인 엄마, 아빠들은 어떤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해 볼 수 있는 거라면, 최대한 노력은 해야된다고 다들 느꼈을 겁니다.

 

고차방정식?

 

그런데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3차 간담회에서 나온 얘기들을 모아서 정리하려고 하다 보니 뭐랄까 ‘1차 방정식’이 아니라 ‘고차 방정식’ 수준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지 않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우리 상급 과정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 자체가 ‘고차 방정식’ 수준의 문제인데, 과연 우리가 그런 ‘고차방정식’을 풀어나갈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가 조금 걱정이 됐습니다.

학교 제도적인 측면, 학교 운영의 측면, 상급교육 프로그램의 측면, 입시 문제와 검정고시 문제 --- 등, 어느 하나 만만치 않은 문제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결국 우리가 부등켜 안고, 우리의 역량만큼 문제를 풀 수밖에 없는데 ---.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차 방정식’을 푸는 방안은 ‘수학’도 필요하지만 ‘예술’도 필요하다 --- 결국 문제를 풀어가는 주체는 우리들이고, ‘우리들간의 관계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풀어갈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 헉, 저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표현을 썼네요.

예민한 문제일지라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풀어나갈 수 있는 경지, 생각과 판단이 다르더라도 그 차이를 받아들이고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해 나갈 수 있는 역량, 뭐 이런 게 ‘예술의 경지’가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서로간 신뢰’의 문제라고 봅니다.

이걸 소중하게 가꾸어나가면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우리에게 주어진 ‘상급과정’과 ‘진로’라는 ‘고차방정식’을 풀어나가기 위해 3차 간담회에서 제안된 내용을 다시 재정리해 보겠습니다.

물론 여기서 제안된 내용들은 애들에게 상급과정에 걸맞는 자극과 동기부여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에서부터 학교의 제도적, 운영적 측면 모두를 포괄하는 것입니다.

 

1) ‘1~8년담임과정’ 연속으로서의 ‘상급과정?’

 

우리는 ‘발도르프 학교로서 12년제를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와 동시에 ‘상급과정을 어떻게 현실화시켜 나갈 것인가’라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2년제를 중심으로 사고하면서 상급과정에 접근하는 경로’와 ‘상급과정을 중심으로 사고하면서 12년제에 접근하는 경로’가 현실에서 부딪힐 수 있습니다.

 

“1~8학년 과정에서의 교육 목표와 상급과정의 교육 목표가 다르다. 상급과정은 애들이 ‘사회와 만날 준비’를 하고, ‘지식 교육’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1~8담임제 + 상급 카테고리인데, 지금은 담임과정 연속으로서 상급과정이 아니냐?”

 

“구조 변화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현재 체제는 담임과정의 연속 분위기이다. 행사 등을 볼 때 담임과정의 관점에서 상급학년을 바라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경험 많은 나라의 경험을 도입할 수 있는데, 유럽의 경험은 12년간을 편안하게 --- 미국의 경우는 12학년 때 대학 입시 준비 --- 차이가 난다. 한국의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12학년까지 학교에 믿고 맡기자고 하기에는 불안감이 든다.”

 

“가장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담임과정과 상급과정이 달라야 한다.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지 확인해야 한다. 지금 그렇지 못하다는데도 동의해야 한다.”

 

“달라야 한다. 학교 운영의 측면, 교육방식의 측면에서. 결국 아이들이 달라져야 한다. 이것은 전제이고, 그렇다면 만들어줘야 하느냐? 스스로 만들어나가게 해야 하느냐?”

 

“아이들이 무기력하다는 진단에는 동의가 안되지만, 상급과정과 담임과정이 달라져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운영, 구조적 측면 / 커리큘럼 / 상급과정에 대한 이해 --- 고민돼야 한다.”

 

“아이들 무기력, 동기 부여가 안되고 계속 꺽기고 있다고 진단하고, 그것이 학교 구조상, 운영상 문제라면 큰 문제이다. 과연 그런가?”

 

“학교운영의 문제와 애들의 문제를 구별해야 한다.”

 

2) ‘상급과정’, 변화에의 요구들?

 

여러 수위의 진단과 제안들이 있었습니다.

참석한 모두가 동의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이런 저런 고민과 단상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나 하나가 만만한 문제들은 아닙니다.

한꺼번에 풀릴 문제도 아닙니다.

잘 모르지만, 자칫 발도르프 교육 목표와 프로그램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진단과 제안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간담회’인만큼,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또 그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급과정에서는 학년 체제가 느슨해져야 한다. 전체 교육 과정이 폭 넓어져야 한다.”

“교사들의 상급과정에 대한 의식, 구조적 운영적 측면, 두 측면 다 있다. 상급과정 준비에서 커리큘럼 준비 수준에 한정된 것 같다. 상급과정에서 대학 가느냐 안가느냐는 부차적이다. 20살 이후 어떤 삶을 살 것인지, 태도, 방법, 경험을 배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에포크도 듣고 싶은 것 선택해야 한다.”

 

“상급 교사의 정체성도 구조적으로 분명하게 전환해야 한다.”

“저학년 시각으로 고학년을 규정하는 것은 안맞다. 담임과정과 상급과정이 달라야 한다. 9학년 담임이 12학년까지 가는 것은 담임과정의 연속이다. 상급과정은 멘토선생님 하면 된다.”

“상급과정 교사회는 교육 관련해서 독자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가져야 한다. 자칫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님도 무기력해질 수 있다.”

“운영, 구조상의 문제는 이미 분리되어 있는데 --- 담임과정이 상급과정 아이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충분한가?”

“담임선생이 상급과정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문제의식은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다. 즉 담임과정으로는 상급과정을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이다.”

“이사회 회의록을 보니, 교사회에서 상급교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급 분과만 있을 뿐이다. 상급만 전담하는 교사도 일부분이라고 나와 있다.”

 

“전체학부모회 운영에서 한 달 두 번의 회의 중에서 한 번은 상급학부모회로 했으면 한다.”

“상급과정 반별 반모임은 없어져야 한다. 상급과정 전체 모임으로 해야 한다.”

 

“‘사회와 호흡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교사에게 제안했을 때, 교사가 학생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예로 들면서 ‘기다려야 한다. 너무나 받아먹어만 와서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 지켜보면 아이들이 때가 되면 성장하는가?”

“답답한 느낌이다.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많이 제공해야 하는데 --- 아이들이 하고싶어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

 

3) 입시문제, ‘장독 뚜껑’인가? ‘판도라의 상자’인가?

 

입시문제에 대해 한 아빠가 ‘장독 뚜껑’을 열고 얘기해 보자고 했습니다.

참고로 이 아빠는 ‘계급장 떼고’ 얘기하는 것과 ‘장독 뚜껑을 열고’ 얘기하는 걸 참으로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대학 입시, 부모 각 자가 알아서 해야 할 일 아닌가? 학교와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일일이 학교 허가를 받아야 하는가? 학교가 제대로 채워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안에서 다양하게 접근 가능하다. 어느 애가 대학을 가려고 하고,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대학 가야 하는데 --- 공부가 부족하다면 --- 공부하고 싶어할 때 어떻게 지도해줘야 하는가?”

 

“애들이 꿈도 희망도 없는 경우,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애가 의상에 관심을 가지고 그림 공부를 요청해서 관련 학부모와 의논해 봤는데, 기초를 잘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학교에 미술 방과후 프로그램을 요구했는데, 안되면 개인적으로 선택해도 좋은지 물었고, 나중에 개인적으로 해도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애가 답답해 했다. ‘왜 절차가 복잡하냐? 자기는 급한데---엄마 맞어?’”

 

“과제를 내주는데 선생님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애들이 뭔가 과제를 집에서 계속 한다. 선생님에 대한 평가에서, 숙제에 대해 엄격하게 하면 ‘선생님답다’고 평가한다.”

 

“대학 입시 시험 보는 시기는? 대학을 선택하는 시기를 언제로 할 것인가? 12학년 마치고 바로 대학입시하면 애들이 힘들 것이다. 입시 문제, 한 번 더 논의해 보자. ‘장독 뚜껑 열고’ 논의해 보자.”

“검정고시 보는 시기와 12+1제 등에 대해서도 더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자.”

 

“검정교시에 대한 학교 규정이 무너졌다. 그 다음 무너지는 것은 일도 아니다. 입시도 개별적 선택 가능성이 있다. 동의서 백번 써도 마찬가지다. 문서상 문제가 아니라 학부모들이 ‘발도르프 교육 완성해 보자’는 결의가 있어야 한다, 스스로 규정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8학년에서 상급과정 진학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이다.”

 

역시 입시 문제는 ‘장독 뚜껑’을 열면, ‘판도라의 상자’로 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두려워 마냥 뚜껑을 닫아 둘 수만도 없습니다.

그러면 ‘개별의 선택’문제로 강제됩니다.

그래서 이런 제안이 있었습니다.

 

“입시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다시 한 번 얘기하자!”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애들 진로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제안도 있었습니다.

 

“애들이 꿈과 열정을 못갖는 것은 경험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부모들이 다양한 직업 정보를 애들에게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애들의 관심도 구체적으로 진전될 것이다.”

 

“간디학교의 경우, 한 학기에 1번 정도 특정 지역을 찾아가서 다양한 경험을 한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교육할 필요가 있다. 과천자유학교는 내부적인 커리큘럼 중심인 것 같다.”

 

“학부모들이 일일강사 풀을 만들어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학부모들이 자기 직업 경험을 이야기하는 기회를 갖자. 이에 대해서는 학교와 협의가 가능하지 않나?”

 

교육위원회에서는 그간 담임과정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해 왔는데, 2학기부터는 상급과정 대상으로 강연을 할 예정이라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급과정 간담회와 학부모회간 관계는 뭐냐는 제기에 상급과정 간담회는 ‘임의적이고 자발적인 간담회’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7.18.(일) 10:00, 학교 강당에서 젠녹 선생님과 상급과정에 대한 간담회가 있고, 이어서 14:00에 상급교사 대표의 제안으로 상급교사와 상급학부모간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상급과정 모꼬지’를 갖기로 했습니다.

일단 7월 25일(일) 14:00에 학교강당에서 갖기로 했습니다.

1박2일로 야외에 나가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일정을 잡기가 만만치 않아서 이렇게 잡혔습니다.

 

3차 간담회 내용을 정리하면서 슬슬 걱정이 됩니다.

1~3차 간담회에서 쏟아져 나온 이야기들을 어디서부터 어떤 식으로 담아갈 것인지?

혹 이런 정리가 누군가를 불편하게는 하지 않을지?

자칫 간담회에 참석한 일부 상급과정 엄마, 아빠들의 생각들이 전체 상급과정 학부모들의 생각으로 오해되지는 않을지?

아마 7월25일 모꼬지(?) 간담회에서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매듭짓는 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간담회의 결론으로 ‘제안’할 수 있는 내용들을 걸러내는 것.

앞으로 어떤 절차와 경로를 따라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그리고

불행히도

제가 다음번 사회를 다시 보기로 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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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자유학교 상급과정 두번째 학부모 간담회

‘상급과정 간담회(2차)’

 

회의 중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음 상급과정 간담회(7.9.금.20:00) 사회를 떠맡게 됐습니다.

한마디로 허를 찔린 셈(?)이죠.

사실 7월9일에 선약이 있는데, ㅠㅠ --- 참석해서 사회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간담회에서는 1,2차 간담회의 연장선에서 계속 논의를 하자고 해서, 사회를 맡은 본인으로서는 불가피하게 지난 1,2차 간담회의 내용에 대해 되새김질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차 간담회 내용은 메모를 못해서, 2차 간담회(6.25.금) 때 나온 내용을 중심으로 간략히 정리해 봤습니다.

 

1. 9~10학년 아이들의 상태

 

우리 애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 상태에 대한 진단은 우려와 걱정이 다수였습니다. 물론 낙관하는 얘기들도 있었지만 ---.

 

“천방지축이다. 천당과 지옥을 오락가락한다.”

“막연해 한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재미도 없고, 고민도 없고 ---”

“무언가 ‘힘’이 없음을 답답해 하는 상황이다.”

 

아직은 판단하기 조금 이르고 “11학년(고2)이 되야 뭘 하는지 알 수 있는 시기”니 초조해 하지 말라는 조언도 있었습니다.

이런 조언에도 불구하고 ‘안심’ 혹은 ‘확신’하지 못하는 엄마, 아빠들이 다수인 것 같았습니다.

이럴 때는 이런 말이 조금 위안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본인이 클 때를 되돌아보라.”

 

이런 말을 들으면 사실 뜨끔해지지만, 엄마, 아빠들의 마음이라는 게 그래도 자신들보다는 자식들이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지라 ---

 

 

2. 9~10학년 학부모들의 판단과 태도, 바람

 

애들을 걱정하지만 결국 아이들보다는 애들에 대한 부모들의 판단과 태도, 욕심, 바람 등에 대해 어떻게 바라 볼 것인지가 더 문제입니다.

 

결국 부모들이 문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간담회 때 이런 얘기들이 나왔습니다.

 

“애들은 자기 속도대로 간다.”

“애는 내버려두면 잘 크는 건데 --- 너무 조급하게 다그치는 것은 아닌지---”

“10년 뒤에 애한테 무슨 말을 들을까가 걱정된다.”

“자기 밥벌이라도 잘 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에서는 애들에 대한 실날같이 가느다란(?) 믿음 역시 포기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확신한다’고 하는데 그건 ‘확신’하지 않고서는 견뎌내기 어렵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고 생각해봅니다.

 

“애들이 안개가 걷히는 경험을 하게 될 거고,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조금 더 적극적인 바람도 있었습니다.

 

“미래를 두고 애들과 부딪혔으면 좋겠다.”

 

근데 애들은 알죠. 미래를 두고 부모들과 부딪혔을 때, 많은 경우 결국 부모 뜻대로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 그래서 감추거나 피하거나 얼버무리거나 ---- 헉, 이건 제 경험이었습니다.

최 모 아빠 같은 경우는 본인이 자랄 때 결코 이렇지 않았을 거라 맹세코 확신합니다.

 

한 엄마가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시면서 이런 얘기도 하셨네요.

 

“미래에 저당 잡혀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지 마라.”

 

 

3. 아이들의 ‘진로’에 대해

 

결국 본론은, 간담회를 하는 취지는, 애들의 ‘진로’ 문제와 ‘대학 입학’ 문제입니다.

여기서 조금은 예민한 문제가 있다는 걸, 그날 간담회에서 느꼈습니다.

‘진로 문제’=‘대학 입시’라고 생각하는 것.

즉 진로 문제를 대학 입시와 등치시키는 것에 대한 경계, 조심스러움 등이 표현됐습니다.

물론 두 가지가 완전히 별개의 문제는 아니지만, ‘진로’ 문제와 ‘대학 입시’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날 나온 얘기를 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사실 저는 ‘별개이기 하지만 그래도 입시도 중요한데’라는 생각을 그동안 남몰래, 속으로만 가지고 있었지만, 그날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진로 문제와 대학 입학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 진로문제는 삶에 대한 가치관의 문제이고, 자기 삶의 힘을 길러 가는 문제이다.”

 

‘진로’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들이 조금 더 진전됐습니다.

 

“진로에는 두 측면이 있다. 하나는 ‘뭘 할까?’이고, 다른 하나는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현실화시킬까?, 즉 방식과 경로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애들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할 때, 애들이 ‘뭘 할까’를 결정해 나가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느냐 만이 아니라, 애들이 진로를 고민하고 결정할 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현실화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것까지 고민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최 모 아빠로부터 지난해부터 줄기차게 들었던 이야기라 이제는 거의 외울 지경이 되었습니다.

목표만이 아니라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과 방법, 경로 등 ----.

 

 

4. 방안들

 

간담회에 참가한 엄마, 아빠들이 모두 동의했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과 판단들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애들의 ‘진로’ 문제와 관련하여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지금 정리한 것은 그 날 나온 이야기를 그냥 제 생각대로 재구성해 본 것입니다.

 

1) 내적인 힘!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견디게 하는 힘’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려면 ‘체력’이 필요하고, 또 어떤 일을 ‘끝까지 해내게 하는 에너지(힘)’가 필요하다.”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풍부해졌으면 한다. 그리고 애들이 꿈을 현실화시켜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 내는 것이 중요하다.”

“애들이 스스로 선택을 할 때, 잘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힘, 시련을 극복해 내는 힘. 이 힘을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

“생활과 교육과 운동을 결합시켜 나가야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생활이 몸에 베는 것, 현미와 채소 위주의 식사 습관을 갖는 것, 악기를 다룰 수 있고 오케스트라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이것이 장기전을 할 수 있는 베이스가 된다.”

 

아! 이렇게 정리해 보니, 그날 간담회에 참여한 상급과정 엄마, 아빠들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원하는 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상급과정 엄마, 아빠들이 애들의 지금 상태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끝 모를 걱정을 하는 지도 ---.

소극적으로는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시련을 견디고 극복해 내는 힘’, 좀 더 적극적으로는 ‘꿈을 현실화시켜 나갈 수 있는 힘’을 아이들이 상급과정에 가져주길 바라는, 그리고 그를 위해 엄마, 아빠들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학교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엄마, 아빠들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에 따라 조금은 낙관적일 수도 있고, 또 조금은 더 비관적일 수도 있지만,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봅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2) 학습, 혹은 지성을 갖추는 일

 

상급과정에 들어오면서 엄마, 아빠들이 애들의 성장, 진로와 관련하여 가장 관심을 갖는 지점이 ‘학습’ 혹은 ‘지성을 갖추는 일’일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진단과 방안에 대한 얘기들이 오갔습니다.

 

“9~10학년은 지성이 깨어나는 시기이다.”

“애들이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저학년 때의 감성적 교육 중심이 고학년 때도 그대로 지속되는 분위기가 문제다. ‘열심히 공부해야 돼’ 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지적인 깨우침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애들이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하는 바람은 모든 부모님들이 바람일 것입니다. 아마 보다 나은 삶에 대한 바람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문제는 학벌사회인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대학 입시’라는 족쇄가 우리를 괴롭히고 혼란스럽게 합니다.

사실 ‘지성’을 갖추는 것과 ‘대학 입시’는 별개의 문제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고민들도 이야기됐습니다.

 

“비행기가 뜨려면 활주로를 달려야 한다. 대학입시도 마찬가지다. 특히 국, 영, 수는 시간과 준비가 필요하다. 근데 이런 생각은 학교의 교육방침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수학은 뒤처지면 힘들다.”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입시경쟁이 모든 교육을 규정하는 이 현실에서.

입시에서 성공과 실패가 아이들의 삶과 미래를 규정하는 이 ‘학벌사회’에서.

결국 우리가 이런 현실을 어떻게 맞딱뜨리고 넘어서야 하는가?

상급과정 간담회는 그런 모색을 위한 하나의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개별적이 아닌, 통으로 ‘함께’ 풀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3) 방안들, 단상들, 제안들

 

몇 가지, 이런저런 방안들이 제안됐습니다.

아마 이런 내용을 가지고 3차 간담회에서는 좀 더 논의를 진전시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어디에서 풀어나가야 하는 건데,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 생각된 것은 다음과 같은 제안이었습니다.

 

“외부에서 찾지 말고 학교시스템 내에서 내용을 밀도 있게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학습에서 외부교육 필요한가? 학교의 학습에 충실하면 전환할 때 힘이 생긴다.”

“학습 내용은 학교 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충실히 따라가지 못할 경우에 메꿀 수 있는 방안으로 학교에서 방안을 마련하는 것, 학부모들이 학습도우미 등을 만드는 방안, 애들끼리 함께 풀어낼 수 있게 하는 방안 등이 있을 수 있다.”

“일반 학교와 비교했을 때 과천자유학교에서 교과과정이 빠지는 것은 없다. 문제는 일반학교의 경우에 고2까지 진도를 마치고 고3때는 시험 보는 스킬을 훈련시킨다는 것인데, 이 문제를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방안이 필요하다.”

“더딘 아이들에 대해서는 ‘배려’가 필요하고, 문제 아이들에 대해서는 치료교육이 필요하다.”

“잘 해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애들에 대해서도 배려가 필요하다.”

“어떤 것을 하고 싶어하는데 만약 학교의 현실이 그것을 채울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일차적으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학교 내적으로 이 문제를 얼마만큼 밀도 있게 방안을 함께 만들어 낼 수 있는가입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때 ‘학교 내적’이라고 하면, 교사와 학부모와 학생 모두가 서로 어떻게 맞물려가면서 함께 해결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점과 관련하여 이런 고민도 표현됐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형성돼야 가능하다. 분위기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인데, 불필요한 ‘오해’ 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런 제안들도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철학을 독자적인 과목으로 가르쳤으면 한다.”

“책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문법, 문장구성, 논리 등.”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상급과정과 담임과정이 분리되어야 한다. ‘따로 또 같이’가 필요하다.”

 

 

5. 마무리하며

 

3차 간담회 사회를 맡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간담회 내용을 정리하면서 이런 생각들이 언뜻 들었습니다.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괜히 그날 나온 이야기의 풍부함을 제약하거나 왜곡시키는 것은 아닌가?

다른 엄마, 아빠들은 걱정이 안되는데, 특히 최 모 아빠가 걱정이 됐습니다.

시시각각 호시탐탐 시비를 걸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이런 정리가 그 빌미를 주는 건 아닌지 이 글을 정리하면서도 계속 걱정이 됐습니다.

 

다음으로 우려가 되는 것은 고백하건데 제가 발도르프 상급과정에 대해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걱정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그런 건 이미 책에 다 나와 있다며 ‘공부 좀 해라’고 할 때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최근 어느 뒷풀이 자리에서 최 모 아빠로부터 ‘공부 안한다’는 핀찬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앞에서는 태연한 척 했지만 사실 마음이 조금은 뜨끔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정리하면서 이런 각오도 새롭게 해봅니다.

 

“상급관련 책도 빠른 시일 내에 꼭 봐야지.”

 

그럼 9,10학년 엄마, 아빠들, 금요일(7.09.) 오후 8시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0.7.01.

9학년 현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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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평화공원에서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어릴 적 제사나 명절 때마다 어른들이 숨죽이며 증언했던 4.3을 떠올렸다.

80년대 초반, 선후배⋅동료들과 4.3에 관련한 자료를 구해 토론하고, 연구하고, 분노했던 4.3이 다시 기억 저편으로부터 생경하게 떠올랐다.

지난 5월16일, 모친의 49제를 마치고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4.3평화공원에 갔을 때 가장 먼저 다가 온 것은 과거의 ‘기억’이었다.

그것은 ‘다랑쉬굴에서의 학살’에 대한 기억이었고, ‘숨막힘’과 ‘공포’의 기억이었고, ‘분노’와 ‘절망’의 기억이었다.

4.3은 할아버지의 ‘죽음’이었고, 셋아버지의 ‘행방불명’이었고, 아버지의 ‘가난’이었고, 우리 모두의 ‘숨죽임’이었다.

 

 

사실 90년대 초반 이후, 나는 4.3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 어둡고 끔찍한 기억이 싫었고, 숨막힘이 싫었고, 그 고통과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 90년대 후반쯤이라고 기억한다.

4.3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이 한창일 때, 학술토론회를 마친 뒷풀이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4.3은 더 이상 학살과 주검이 돼서는 안된다. 4.3이 더 이상 패배의 기억으로만 남아서는 안된다. 4.3은 우리 노동자민중운동의 진전만큼 밝혀질 것이다. 역사의 진전만큼만 4.3은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래서 강요배 화백의 ‘4.3 연작 그림’ 가운데, 한라산을 배경으로 제주도민들이 밝은 모습으로 서 있는 그림을 가장 좋아했다.

해방 직후 제주도민들이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바로 자신들의 힘으로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꿈이었을 거다.

진정으로 ‘해방’된 세상을 스스로 직접 만들어 가야하고 갈 수 있다는 희망이었을 거다.

 

 

어쨌든 한 매듭이 지어졌다.

2003년 ‘4.3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를 했으며, 방대한 4.3평화공원이 만들어짐으로써 한 매듭 지어졌다.

50여 년간 ‘없었던 역사’, ‘억울한 죽음의 역사’는 이제 ‘평화’와 ‘인권’의 관점에서 한 매듭됐다.

 

아버지와 함께 찾아간 위령제단에서 13,000여개가 넘는 4.3희생자 명패 가운데 할아버지와 셋아버지의 명패도 있었다.

이제 모두 ‘학살’과 ‘공포’의 기억을 잊고 편히들 쉬시라.

 

 

4.3평화공원을 나서면서 지난 20여 년간 제주를 잊고 제주를 떠나고자 했던 나의 ‘의지’도 그곳에 묻고 나왔다.

4.3 당시 ‘해방’을 꿈꾸었던, 당시 제주도민들의 꿈, 그 해방을 향한 열망만을 오롯이 가슴에 품고 나섰다.

그리고 4.3평화공원을 뒤로 하고 달리는 자동차에서 멀리 한라산을 바라보며, 이런 상념이 언뜻 스쳐간다.

 

“제주도는 자연이 역사를 압도하고, 그 자연을 거대자본이 장악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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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위 출범 축하시-송경동] 모든 것이 돌아온다

모든 것이 돌아온다

-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공동실천위원회> 출범을 맞아

 

송경동(시인)

 

 

 

유령들이 돌아온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자들이

무엇을 가졌다고 착각하던 이들이

헐벗은 몸으로, 찢긴 몸으로, 온몸과 정신에 쇠사슬을 감고

집단적으로 돌아온다

 

유령들을 따라 유령들이 돌아온다

인류의 뜨거운 열망과 생성 위에 구더기처럼 기생하며

풍요로운 대지의 자궁을 좀먹고 초토화시키던

자본의 유령들이

혼비백산 다급하게 돌아온다

 

모든 것이 돌아온다

끝났는지도 모른다던 혁명의 역사가 돌아온다

숨겨진 일상의 핏빛 적대가 결전을 향해

숨가쁘게 돌아온다. 낡고 죽은 노동의 똥통에서

찬란한 자유의 날개들이 퍼덕이며 돌아온다

 

돌아온다, 보라

모든 것이 돌아온다

살아 있다는 긍지, 잊어버렸던 연대의 따뜻한 손길

사적소유의 온갖 금기와 통제와 폭력을 넘어서는 참다운 용기의 무리들

그 새로운 인류들이 다시 돌아온다

자본의 공포와 협박으로부터 벗어난 생기발랄한 웃음들이

자유로운 농담과 춤이 경계 없는 상상이

 

돌아온다. 보라

모든 것이 돌아온다

그것은 하나로만 오지도

둘로만 오지도 셋으로만 오지 않는다

그것은 총체적으로 오고

그것은 근본적으로 발본적으로 전투적으로 온다

수치를 넘어 산술적 평준을 넘어

부문을 넘어 지역을 넘어 국가를 넘어

민족과 인종과 성의 분리와 차별을 넘어

착취받는 모든 존재의 굳건한 연대로, 총단결로, 총투쟁으로

전계급적으로, 전지구적으로, 전우주적으로

 

온다. 그것은 경이로움과 함께

무엇보다 내 안에서, 우리 안에서 온다

오랜 비만과 개량의 거푸집을 부수고

오랜 고립과 망상의 지하 생활을 뚫고,

오랜 위축과 자학의 번데기를 찢고

획일을 넘어 교조를 넘어

안일과 무지와 독선과 아집과 분열을 넘어

낡은 나와 우리를 찢는 고통 속에서

새로운 정치적 생명으로 아름답게 돌아온다

 

나의 당이, 우리의 당이

모든 피압박노동자민중의 당이 돌아올 때

이 모든 것이 돌아온다

독점자본의 금고 속에 억류당했던 인류의 모든 미래가 돌아오고

사람들이 빼앗겼던 온갖 자율적 창조적 권능이 돌아오고

자연의 모든 아름다운 가치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퇴행했던 모든 것이 뼈저리게 계면쩍게 돌아오고

생기 잃었던 모든 존재들이

새로운 생의 활기로 벅차게 돌아와

대지는 새로운 관계로 요동치고

역사도 비로소 비틀린 얼굴을 바로잡으며

환하게 돌아온다

 

하지만 잊지마, 동지들

이제 막 다시 시작이라는 것을

혁명은 과시나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을

혁명적 노동자당의 당파성은 문건의 주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권력 찬탈을 위한 상층의 이전투구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진정한 선전과 선동은

때로 아무 말하지 않고 흘리는 실천의 피 한 방울에 있기도 하다는 것을

보이지 않되 굳건한 조직의 신경망 세포 한 줄기 한 줄기에 시퍼렇게 서려 있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당당한 다수여야 하고 만인에 의한 만인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자유로운 개인들의 창조적 발현이 모든 해방의 기초와 전제가 되는 세계의 건설

그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영예이며 기쁨이며 보람이라는 것을

 

잊지마, 동지들

당당하되 겸허하게

투철하되 아름답게

오늘부터 쓰여지는 새로운 세기의 역사가

우리의 자랑을 넘어

모든 피압박노동자인민의 자랑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마, 동지들

모든 것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그 전율을, 그 긴장을, 그 전쟁을, 그 환희를, 그 적개심을, 그 사랑을

우리가 그 모든 것들을 불렀다는 것을

불러 깨워 함께 가자 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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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를 그리워하며1] 어머니의 마지막(?) 자존심

[견우를 그리워하며1] 어머니의 마지막(?) 자존심

 

 

어머니의 호인 ‘견우’가 牽牛인지 見牛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천천히 알아 볼 생각이다.

급할 것은 없다.

견우가 이제는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벌써 열흘이 지났다.

 

지난 열흘간 어머니의 영정을 볼 때마다 자꾸 떠오른 것은, 그래서 눈물을 가눌 수 없게 하는 것은 지난 3월 11일, 그러니까 돌아가시기 3주 전 제주대학교 병원에서의 어머니의 모습 때문이다.

 

***

 

제주대 병원에서의 하루 밤은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병원에서 모든 식사를 거부했다. 통증 때문에 밤새 잠도 주무시지 못했다.

“어머니! 식사를 해야 약도 드실 수 있고, 약을 드셔야 밤에 잠도 주무실 수 있지 않으꽈?”

“싫다.”

“무사마씨?”

“먹기 싫다. 설사를 자꾸하는데 먹으면 또 설사할 것 같다.”

 

***

 

“저 *(요양사)이 우리집 망허게 할 거라”

“무사 경 말햄수꽈? 어머니 도와주시는 분인디”

“우리집 망허게 할 거라”

“어머니! 돈 때문에 걱정햄꾸나”

“맞아”

“돈 걱정하지맙써. 우리집 안망헙니다. 경허고 어머니가 걱정헌덴허영 방법이 이수과?”

“그건 맞아”

 

***

 

밤새 허리 통증, 가슴 통증 때문에 잠을 못 이루시자 어머니께

“경해도 좀 자려고 해봅서”

“무사 내가 이렇게 아픈지 모르커라. 무사 내가 이렇게 아파야허는지 모르커라.”

“밤새 앉아 있지만 말고, 누워서 자젠해 봅서게. 어머니가 안 자난 나도 못잠수게. 나도 잠을 자사 내일 일 나갈 수 이신디---”

“그건 맞아. 경헌디 내가 무사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 모르커라.”

 

***

 

한밤 중 담배 피려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어머니는 병실에서 복도로 나오셨다.

다시 모시고 들어갔다. 몇 번이고 되풀이됐다.

“어머니, 지금 한밤중이고 다른 환자들도 자고 이시난 복도밖으로 나오면 안돼마씸”

“집에 가야메. 집에 아버지한테 가야메”

“아버진 내일 아침 일찍 오켄해수다. 오늘 병원이 마지막날이니까 잡서게.”

“아니라. 아버지 안올꺼라. 내가 가야메. 내가 가야메.”

“아버지 아침 일찍 오켄해수다. 꼭 옵니다. 걱정하지맙서”

“아니라, 집에 가야메 --- 집에 가야메 ---”

 

***

 

“병원에서 나가믄 우랭이(어머니 고향)에 가게”

“경헙주게. 겐디 우랭이에 옛날집 다 어서진거 알아? 다 아파트가 들어서서--”

“경해시냐? 경해도 우랭이에 가게 --- 우랭이에 가게”

 

밤새 어머니와 치르는 실랑이 속에서 어머니가 회복하기 힘든 과정을 가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왜 자신이 통증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 고통 속에서도 어머니는 당신만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곁에서, 그 자존심을 지키시려는 어머니를 위해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그 무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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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5] Adios nonino. ‘잘 가요, 할아버지’

Adios nonino. ‘잘 가요, 할아버지’

 

탱고의 ‘레퀴엠.’

현대 탱고의 거장 아스트로 피아졸라 곡 가운데 ‘보석 중의 보석.’

 

피아졸라는 1959년 10월에 ‘아르헨티나 탱고단’을 구성하여 푸에르토리코에 공연을 갔다가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뉴욕으로 돌아와서 부엌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피아졸라가 38세 때입니다.

‘nonino’는 이탈리아말로 ‘할아버지’란 애칭이고, 피아졸라와 그 자녀들은 할아버지를 ‘노니노nonino’라고 불렀습니다. 할머니는 ‘노니나nonina’라고 합니다.

부친을 위한 장송곡, 혹은 추모곡인 셈입니다.

실제 ‘Adios nonino’를 들어보면 아버지에 대한 추억, 슬픔이 애절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 1980년 서독방송에서 피아졸라의 공연

http://www.youtube.com/watch?v=QCmP4bEJfOg

 

* 1983년 스위스 루가노에서 Cologne Radio Orchestra와 피아졸라의 실황 레코딩

http://www.youtube.com/watch?v=VTPec8z5vdY&feature=player_embedded

 

* 1989년 영국 BBC에서 피아졸라의 생방송 공연

http://www.youtube.com/watch?v=ccY5IcwWyV8

 

‘Adios nonino’는 1959년에 작곡된 이후에 20번 이상 다르게 편곡되고 수천 번 이상 연주될 정도로 유명한 곡인데, 피아졸라 스스로도 “아마도 나는 천사들에 둘러싸였던 것 같다. 나는 최고의 곡을 작곡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아마 못할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피아졸라 전기>에 따르면, 이 곡은 피아졸라 탱고의 역사에서 하나의 분기점을 형성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사실 어릴 때 클래식 음악과 재즈를 더 좋아했던 피아졸라로 하여금 탱고로 이끌어주고, 처음으로 반도네온을 사주었으며, 피아졸라에게 ‘아르헨티나인’이 될 것을 강하게 요구해 왔던 사람이 아버지였는데, 아버지의 죽음은 그 이전까지 자신의 내부를 지탱해 왔던 하나의 구조가 무너지는 것을 뜻했습니다.

아버지 ‘nonino’가 죽은 이후에 피아졸라의 창조성이 최대한 발휘되고, 과거 자신이 가져왔던 클래식 음악과 재즈에 대한 사랑을 탱고와 결합시키면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 내게 된 것입니다.

 

피아졸라는 1960년 6월에 뉴욕에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향합니다.

그리고 뉴-탱고의 시대를 열어가게 됩니다.

“이제 나는 탱고에 대한 내 개념을 강조할 것이다. 나는 단지 소수 마니아를 위해 음악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양한 대중을 정복할 자신이 있다. 앞으로 지켜보면 알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 기타 4중주, Del Mar College Guitar Quartet, the University of Texas Brownsville Guitar Competition에서

http://www.youtube.com/watch?v=ns3_RlZNvpg

 

* 2006년 11월, Helycon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연주

http://www.youtube.com/watch?v=k36ifoCd_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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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내, ‘정파’는 어떻게 ‘정파’가 됐나

노동운동 내, ‘정파’는 어떻게 ‘정파’가 됐나

 

 

문제는 ‘정파’다?

 

‘정파’에 대한 융단 폭격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이 직면한 ‘총체적 위기’의 원인이 민주노조 내 ‘정파’때문이라는 비판들이 그것이다. 물론 이런 진단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다시 ‘정파’의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 민주노총의 ‘성폭력 사건’과 지도부의 총사퇴로 민주노총의 위기 논란이 본격화되면서 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 민주노조운동 역사에서 최대의 위기” 상황과 맞물리면서 위기의 주범으로 민주노조운동 내 정파의 ‘존재’, 정파간 ‘갈등’과 ‘나눠먹기’가 지목됐다.

 

내놔라하는 민주노조운동의 전현직 지도자들의 입에서, ‘정파’의 폐해를 우려하고 질타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노동운동 내 ‘정파’는 “이념도 없는 파벌”이고 “내용도 없이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재창출하는 도구”이며, 오로지 “정파간 타협을 통한 미봉책, 땅따먹기식의 정파싸움, 서로의 발목을 잡으면서 민주노총의 힘을 소진”시켜 버리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정파의 ‘논리’는 “자기 식구 감싸기”에 불과하며, 굳건하고 고질적인 정파구도는 이제 “권력이 됐고 기득권이 되어”버려서,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은 “정파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대중조직의 주요 집행단위의 결정을 무시하고 자기입장을 가지고 흔들면 흔들리는 조직”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탄식이 뒤이어졌다.

 

그래서 “정파들의 민주노총에서 조합원의 민주노총으로 거듭나기 위해”, “정파의 폐해부터 투명하게 공개”해서 정파를 철저하게 “혁신”하거나 “해체”시켜야 하고, 아니면 “한국 노동운동을 재생시키려면 제대로 된 정파를 (재)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덧붙여진다.

 

‘정파’는 노선투쟁의 역사적 산물

 

물론 민주노조의 위기의 원인을 다 ‘정파’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정파가 다 똑같은 수준에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도매금으로 평가할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피할 수는 없다. 또 그래서도 안된다. 지난 20여 년간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서 ‘정파’의 역할은 중요했기 때문이다. 중요했기 때문에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는 곧 지난 20여 년간의 ‘정파운동의 위기’이며, 바로 ‘정파운동의 위기’가 민주노총을 총체적으로 무력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파’ 자체에 대한 진단과 평가가 마녀사냥식으로 이루어져서는 곤란하다. 마치 자신은 정파적 질서와 책임으로부터 무관한 듯이 초월해서 양비론적으로 훈계하는 방식으로 진단과 평가를 하는 것은 더 더욱 곤란하다. 자칫 ‘정파’가 노동운동 내 노선투쟁의 역사적인 산물이고, 노동운동이 합법칙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의 일부라는 점을 은폐하거나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정치적 허무주의를 조장함으로써 노동운동을 탈정치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정파의 ‘폐해’에 대한 진단과 평가가 아니다. 정파의 ‘실체’, 정파의 ‘노선과 입장’, 정파의 ‘실력’을 더욱 분명하게 대중적으로 드러내 놓고 공론화하고 실천적으로 검증하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정파운동의 위기’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진단은 민주노조운동이 정파의 ‘발전’때문이 아니라 정파의 ‘미발전’ 때문에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진단이기도 하다. 목욕물을 버리려다 그 안에 있는 아이까지 버리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정파’는 어떻게 ‘정파’가 됐나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은 정파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그 분화 과정과 분리할 수 없다. 물론 1987년 이전에도 반독재 민주화투쟁과정에서 “통일과 민족 문제 중심으로 변혁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인가”, “남한 내 계급 문제를 중심에 둘 것인가”를 둘러싸서 ‘민족해방파(NL)’와 ‘민중민주파(PD)’ 등의 정파가 형성됐고, 여전히 이 두 흐름이 지금까지 노동운동 내에서 커다란 정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정파’가 ‘정파’로서 형성⋅발전⋅분화되어 온 것은 1990년대 초반 이후였다.

 

1990년 전노협이 출범한 이후 ‘전노협 사수’를 둘러 싼 두 차례의 총파업을 거치면서, ‘노동운동 위기론’이 전면적으로 제기됐다. ‘전투적 조합주의’를 둘러싼 노동운동 위기 논쟁 과정에서 주로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사회발전적 노동운동론’, ‘진보적 노사관계론’ 등이 제기됐다. 노동운동의 목표를 둘러싸서 변혁적인 ‘노동해방’의 기치를 계속 내세울 것인지, 변혁노선을 포기하고 체제내적 노동운동을 해나갈 것인지가 핵심적인 쟁점이었다. 그리고 이 때 형성된 노동운동의 목표에 대한 두 가지 노선적 경향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어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노선’의 문제가 본격화된 것은 민주노총의 출범 직후 1기 집행부가 내건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둘러싼 논쟁을 통해서였다. ‘사회개혁적 요구’를 전면에 내걸어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민적 지지를 획득해야 한다는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노선에 반대하며, 노동자의 ‘계급적 요구’와 ‘계급적 단결’을 통해 사회를 변혁시켜 나가야 한다는 ‘계급적 노동운동’노선이 제기됐다.

 

이러한 노선적 대립은 1996~97년 노동법개악 저지총파업 이후 총파업에 대한 평가와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둘러싼 입장의 차이로 분화되었다. 노동법개악저지 총파업의 패배가 노동자출신 국회의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 세력들은 이후 ‘국민승리21’을 거쳐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 건설로 나아갔다. 이에 대해 노동자민중의 전면적인 투쟁으로 진전시키지 못한 지도부의 ‘국민주의적 노선’과 ‘유연한 전술’이 패배의 원인이었다고 평가한 세력들은 변혁적인 계급정당 건설로 나아갔다. 민주노조운동 내 노선의 차이와 분화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둘러 싼 차이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정파’간 분화와 갈등이 본격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과정은 1998년 1월 정리해고제 직권조인 이후 거세져가는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공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둘러싸서였다. 특히 당시 김대중 정권의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할 지 여부를 둘러싸서 정파간 입장의 차이와 대립은 첨예해졌다. 물론 겉으로는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의 차이로 드러났다.

그러나 그 근저에는 크게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라고 보고, 자본의 틀 내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가능한 방안을 모색해보자는 입장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그 자체에 맞서 비타협적인 투쟁을 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으로 대별되었다. 현실에서는 이 두 가지 모두 현실화되지 못했고, 그 결과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는 더욱 깊어지고 확장됐다.

 

이와 더불어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적 과제의 하나인 ‘산별노조’ 건설을 둘러싸서도 산별교섭과 조직형식 전환 중심으로 산별노조를 건설해 나간 입장과 아래로부터의 계급적 산별투쟁을 통해 산별노조를 건설해 나가자는 입장이 대별되었는데, 이 역시 두 주장이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민주노총의 ‘사회연대전략’을 둘러싸서, 사회연대전략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과 ‘정규직 노동자 양보론’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 아래서 민주당까지 포괄하는 반MB연합을 결성하자는 주장과 반MB연합은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론의 연장이며 반신자유주의 진보대연합을 결성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서로 논란을 벌이고 있다.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반자본’ 정파로 서나가야

 

이렇게 민주노조운동 내 정파는 우파-중앙파-좌파의 3분립 구도로 형성⋅분화되어 왔다. 정파의 역량과 실력의 한계 때문에, 또 정파운동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정파적 이기주의나 종파주의적 활동방식 때문에, 정파 운동이 때론 대중조직운동에 폐해를 끼치고 질곡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정파’의 형성과 발전과 분화는 민주노조운동의 질적 발전을 위해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정파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전망과 주장을 하는 정파냐’, ‘어떻게 활동하는 정파냐’, ‘어떻게 정치적 책임을 지는 정파냐’로 논의 지형을 구체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정파‘다운’ 정파로 서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한국사회에서 ‘반자본’ 정파로 굳건하게 서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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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 한국사회에서 ‘인간’으로 살아남는다는 것

21c 한국사회에서 ‘인간’으로 살아남는다는 것

 

<진보교육>36호(2009.12.월호)

 

이렇게 2009년을 보낼 수는 없다

 

‘눈물’과 ‘분노’로 얼룩졌던 2009년 한 해도 다 가고 있다. 아니 ‘눈물’과 ‘분노’마저도 메말라 버리고, 오직 ‘두려움’과 ‘절망’만이 강요됐던 한 해가 지나고 있다. ‘용산 참사’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우리에게 강요한 것은 노동자와 서민을 삶의 터전에서 내쫓는 ‘구조조정’과 ‘재개발의 광풍’이 계속될 것이라는 ‘경제적 폭력’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한 어떤 몸부림도 이른바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을 피해갈 수 없을 거라는 ‘공권력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 역시 뼈에 사무치게 강요됐다. 더 더욱 이러한 경제적⋅정치적 폭력을 얼마든지 은폐하고 왜곡하고 정당화시킬 수 있는, 사법부와 언론이라는 ‘또 다른 폭력’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점이 우리를 절망으로 내몬 한 해였다. 그래서 대자본과 국가권력과 사법부와 언론의 지배동맹이 강요한,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의 ‘눈물’도 ‘분노’마저도 뒤덮어 버리려 한 2009년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하지만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이 어쩔 수 없는가? 이 위기와 두려움과 절망의 시대에 그나마 살아남으려면 눈물도 분노도 거두거나 삭힐 수밖에 없는가? 거대한 지배동맹의 ‘폭력’ 앞에서 주눅 들고, 숨죽일 수밖에 없는가? 약간 비겁하게라도 눈을 감고 숨을 죽이고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가? 살아남을 수는 있지만 진정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리고 다시 이 사회에 물어야 한다. 냉동고에 갇힌 용산 철거민들을 그대로 두고 이 한 해를 보낼 수 있는가? 감옥에 갇히고, 거리를 떠도는 쌍용차 노동자들을 방치하고 이 한 해를 보낼 수 있는가? 이렇게 2009년을 보낼 수 있는가?

 

죽거나 조금 비겁하거나, 아니면---

 

2009년은 우리에게 ‘위기’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었던 한 해였다. ‘나’ 혹은 ‘나의 가족’, ‘나의 직장’만이 아니라, ‘우리’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를 물었던 한 해였다.

저임금과 삶의 불안으로 고통받는 850만의 비정규 노동자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정규직 노동자들, 끝 모를 입시경쟁에 내몰리는 청년학생들, 직업 자체를 가져볼 기회조차 박탈당한 수백만의 청년실업자들, 저임금과 무권리 속에서 가장 바닥의 일을 떠맡은 45만의 이주노동자들, 400만이 넘는 금융피해자, 농업포기정책과 기업농 정책으로 하향 분해되는 300만의 농민들, 또 끊임없는 해체의 위협에 직면하면서 불안한 생업을 이어가야 하는 500만 자영업자들, 철거민과 노점상들--- 이들‘과 함께’, 이들‘이 함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물었던 한 해였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가”를 물어야 한다. 어떻게 살아왔는가? 이런 현실을 ‘나’만은 피할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살아왔다. 10여 년전 IMF 외환위기 이후 ‘위기 극복’이라는 명분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이 전면화 될 때, 한국사회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에 의해 철저하게 재편되어 나갈 때, 그래도 내가 ‘경쟁력’을 갖추면 나, 나의 가족, 나의 직장, 나의 국가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열심히 일하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내일이 오늘보다는 좀 더 나아질 거라는, 그래서 두 눈 감고 버티고, 잔업특근 더하고, 투잡을 하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시간을 쪼개 자격증을 따고, 영어를 공부하고, 스팩을 늘리고 처세술을 익혀 몸 가치를 높힌다면, 그래서 남과의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앞서 나갈 수 있다면, 아니 최소한 밀리지는 않아야 나와 내 가족이 지금보다는 낫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가냘픈 희망을 가꾸며 살아 왔다. 나와 내 가족의 모든 희망을 ‘좋은 일자리’와 ‘집 한 채’와 ‘자식 좋은 대학 보내는 것’에 가두며 두 눈 질끈 감고 살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환상’이었고 ‘욕망’이었다. 2008~9년 미국발 세계대공황은 다른 무엇보다도 경쟁에서 이겨 ‘혼자 살아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냉혹하게 보여주었다. 자본주의 경제공황은 우리들의 일자리와 임금, 민주적 권리만이 아니라 “좀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와 희망조차도 송두리째 앗아갔다. 우리들은 삶의 ‘근거’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삶의 ‘희망’조차도 빼앗기고 있다.

각 자 열심히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실날같은 기대도 더 이상 부질없게 됐다. 20 대 80의 구조, 아니 10대 90이라는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탄탄하게 구조화되었다. 재산과 소득은 물론 교육, 의료 혜택 등 경제와 사회 전 부문에 걸쳐 양극화와 불균형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2009년 모든 갈등의 진원지였던, 한국 사회 전체를 대립과 갈등으로 몰아갔던 이명박 정권은 이런 경제위기 시기의 자본과 지배세력의 충실한 대변자일 뿐임이 확인됐다. ‘소통’보다는 ‘독단’과 ‘폭력’으로, 가진 자들을 위해 위기 비용을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전가시키는 철저한 신자유주의 정권일 뿐임이 명백하게 확인됐다.

이런 절망적이고 숨막히는 현실에서, 생존권을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조차도 폭력적으로 탄압하는 MB정권 아래서 노동자와 서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아직 조금의 여유가 있다면 숨죽여 비겁해 지거나, 둘 중 하나뿐이다.

 

세상을 바꿔서라도 함께 살아남기

 

다시 가다듬어 물어야 한다. 그런가? 죽거나 비겁하게 숨죽이거나 둘 가운데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는가? 우리는 진정 무기력한가? 만약 우리가 과거와 같이 자본의 경쟁논리를 우리의 욕망으로 내면화해서 계속 살아간다고 하면 우리는 이런 현실을 피할 수 없다. 10 vs 90으로 양극화된 현실에서 90의 원인이 10이 아니라, 모든 90이 10될 수 있다는 헛된 기대와 환상과 결별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절망할 수밖에 없다.

MB 정권은, MB 정권의 독단과 폭력성은 바로 우리에게 내면화된 ‘경쟁 논리’와 ‘욕망’과 헛된 ‘기대’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후퇴’만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구체화된 자본의 논리, 경제공황으로 드러난 자본의 위기 자체에 직접 대면해야 한다.

 

문제는 자본주의다. 위기에 직면한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가 문제이다. 우리의 욕망으로 내면화된 ‘자본의 경쟁 논리’가 문제다. 이 지점에 직접 대면하고, 성찰하고, 그래서 찾아야 한다. “함께 살아남을 방법”을. 내가 살기 위해 남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이 ‘무한경쟁’,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세상을 끝장내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찾아내야 한다. 필요하다면, 세상을 바꿔서라도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 아니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면 세상을 뒤집어 바꿔야 한다.

2009년 용산과 쌍용차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이냐”고. “21c 한국사회에서 진정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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