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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에 관한 과학> 중에서 제2부, 제3장, 제3절인 <정치학 비판:인간해방과 혁명>을 번역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일단 앞 부분에 해당하는 것만 싣고, 뒷 부분에 해당되는 내용은 <정치학 비판:인간해방과 혁명2>라는 것으로 포스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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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 맑스의 과학적 혁명 #
@ 제3장. 비판으로서의 인간학 : 청년 맑스의 이론적 개념 @
** 제3절. 정치학 비판 : 인간해방과 혁명 **
『유대인 문제』에서 맑스는 브루노 바우어(Bruno Bauer)의 저작과 대립한다. 바우어는 정치적 해방에 대한 유대인의 요구에 대해, “기독교” 국가에서는 결코 해방될 수 없으며, 정치적 해방은 종교적 해방을 전제로 한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맑스는 바우어가 단순한 정치적 해방과 “인간” 해방을 혼동하고 있다고 바우어를 비난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본질적으로 맑스가 포괄적으로 사용하는 포이어바흐의 인간 “유적 존재”라는 개념에 기인한다. 『기독교의 본질』에서 포이어바흐는, 인간이 종교 속에서 자신의 유적 존재로부터 소외되고 자신의 고유한 존재에 대해 낯선(신적인) 존재로서 관계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인간) 고유한 유적 존재가 낯선 존재로서 자립화될 수도 있다는 이러한 비판적 형태를 맑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종교로부터 정치적 영역의 자립적 형태인 국가로 옮겨 놓았다. 그러나 거기서 맑스는 이러한 소외의 해소를 민주주의 속에서 보았다. 이에 반해 이제 맑스는 “유적 삶”의 자립화를 역시나 “완전한 정치적 국가”의 특징으로 파악한다. 또
한 그 정치적 국가에서 인간은 “이중적인 삶”을, 즉
“인간이 국가로 간주되는 정치적 국가에서의 삶, 그리고 인간이 사적 인간으로서 활동하며 다른 인간들을 수단으로 파악하는 시민사회에서의 삶……”(Ⅰ.2/149; Ⅰ/354)(주19-)
을 산다.
자립화의 해소, 즉 실질적인 해방은 따라서 결코 하나의 정치적 행위, 즉 민주주의의 실현일 수 없다.(주20-) 따라서 이제 맑스에게서 더 이상 특정한 국가 체제에 대한 비판만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 문제이다. 따라서 인간 해방은 정치적으로 가능할 수가 없으며 오로지 자립화된 유적 존재를 현실적 인간으로 되가져옴으로써만 가능하다 :
“모든 해방이란 인간 세계, (인간) 관계의 기원을 인간 그 자체에서 찾는 것이다. 정치적 해방은 인간을 한편으로는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 즉 이기적이며 더 이상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는 개인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 즉 도덕적 인격(Person)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바로 현실적인 개인적 인간이 자신 안에서 그리고 개인적 인간으로서 자신의 경험적 삶 속에서, 자신의 개인적 노동 속에서, 자신의 개인적 관계들 속에서 추상적 국민을 폐기할 때, 유적 존재가 된다. 바로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능력들’을 사회적 힘으로서 인식하고 조직함으로써 사회적 힘이 정치적 힘의 형태로 자신과 결코 분리될 수 없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인간 해방이 완수된다.”(Ⅰ.2/162f; 1/370)
인간이 어떻게 유적 존재가 되는가, 인간해방을 누가 완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맑스는 물론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짧은 논문 2부에서 맑스는 처음으로 소외의 경제적 원인들을 다룬다. 맑스는 이제 결코 유적인 삶이 정치적 영역에서 자립화된다는 사실만을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보다도 우선 시민사회가 “인간의 모든 유적 관계를 파괴하고” “인간 세계가 원자화되고 적대적으로 대립해 있는 개인들의 세계 속으로 해소될” 수 있다(Ⅰ.2/168; 1/376)는 사실을 비판한다. 따라서 맑스는 소외가 시민사회와 국가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시민사회 안에서 구성된다는 사실을 말하였다.(주21-)
국가라는 이성적 존재에 대해서 이제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맑스는 “시민사회가 정치적 국가를 완전히 발생시킨다”(Ⅰ.2/166; 1/374)는 사실, 따라서 정치적 해방이 오로지 제한된 목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맑스는 이제 국가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고 이성적 공공성에 대해서도 설명하거나 의식을 개혁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맑스는 이성과 비이성의 충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유적 존재로부터 인간의 소외를 문제 삼는다. 포이어바흐의 종교비판으로부터 넘겨받은 이 개념(인간 소외)을 맑스는 처음에는 오로지 시민사회와 국가의 관계에만 적용시켰는데, 이제는 그 개념을 시민사회 자체에 적용시킨다 : 맑스는 소외의 원인들과 소외의 해소 가능성을 경제에서 찾고자 하였다. 따라서 맑스는 청년헤겔학파의 표상의 영역과 부르주아-민주주의적인 요구들의 영역을 완전히 떠나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실질적인 진보에 있어서 맑스의 이론적 문제의식의 구조가 여전히 존재와 현실 사이의 모순이라는 동일한 지평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맑스가 『독불 연보』에 실은 두 번째 짧은 논문인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은 독일에서 종교 비판이 끝나야 한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맑스는 이제 인간의 종교적 자기소외의 사회적 원인에 관한 문제에 서 있게 된다 :
“그러나 인간 그것은 결코 세계 바깥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추상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 그것은 인간 세계, 즉 국가, 사회이다. 이러한 국가, 이러한 사회는 종교, 즉 전도된(거꾸로 된) 세계의식을 만들어 내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전도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인간 존재가 환상적인 방식으로 현실화된 것인데, 왜냐하면 인간 존재는 어떤 참된 현실성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Ⅰ.2/170; 1/378)
이렇게 인간 존재의 사회성을 추상적으로 파악하면서, 그렇지만 그렇게 파악한다고 할지라도, 맑스는 이미 포이어바흐의 추상적 인간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종교비판의 위상이 변하기 위해서, 종교비판은 단지 고유한 비판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종교비판으로부터 종교가 발생하는 상황들에 대한 비판으로 확장되어 나아가야 한다(Ⅰ.2/171; 1/379). 맑스가 현실적 상황에 대한 이러한 비판을 하필이면 법철학 비판과 더불어 시작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유를 맑스는 독일의 현실이 그가 다른 나라들에서 얻을 수 있었던 역사적 상태에 여전히 도달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통해 밝히고 있다. 유일하게 독일 법철학과 국가철학만이 “액면가 그대로 공식적인 근대라는 현재와”(Ⅰ.2/175; 1/383) 관계하고 있다.
이 번역문은 미카엘 하인리히가 쓴 <가치에 관한 과학>(Die Wissenschaft vom Wert)이라는 책 중에서 1부 1장 6절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앞으로 <가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장, 절 들을 번역해서 올려 볼 생각입니다. 왜 이걸 번역해 보냐 하면 여성노동의 가치와 연관된 논문을 써 볼까 하는데, 제가 생각하고 있는 맑스의 가치론과 저자가 보는 맑스의 가치론이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를 살펴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번엔 2부 3장 3절 <정치학 비판 : 인간해방과 혁명>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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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e Wissenschaft vom Wert #
- Michael Heinrich -
<1부 : 긍정적인 것으로서의 인간학 - 정치경제학의 이론적 영역>
@ 1장 : 고전 정치경제학 @
** 6절 : 자본주의 비판으로서의 가치론 - “리카르도주의 사회주의자들” **
자본주의 발달과 더불어 노동운동도 발달하였다. 19세기 초 무렵 영국에서 노동운동은 부르주아 개혁운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지만, 2~30여 년이 넘게 이 둘 사이의 대립은 아주 강했다. 이러한 발전은 상호 대립해 있으면서도 정치경제학을 둘러싸고서는 결코 대립되지 않았다. 1820년과 1840년 사이에 고전 노동가치론으로부터 나타난 서로 다른 저자들은 전체 부가 오로지 노동에 의해서만 생산될 수 있고 따라서 노동자가 전체 노동생산물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로벤탈 학파(로벤탈 1911년) 이후에 통상적으로 이러한 저자들을 “리카르도주의 사회주의자들”로 불렀다. 정치경제학이 우선 과거에 토지소유자와 봉건 지배구조에 대항하는 무기였다면, 이제 정치경제학은 노동계급에 대립하여 자본의 합법적 과학으로 비판 받고 있다. 물론 이러한 비판이 지속되고 있고, 또한 이러한 것이 정치경제학의 전제들 속에서 출발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와 연관된 중요한 지점이다.(주41-반자본주의 이론과 노동운동의 연관성은 부르크아트(Burkart, 1980)에 의해 토마스 호지스킨(Thomas Hodgskin)의 예에서 고찰된다.)
이미 1821년에 익명의 저작은 자본가의 이윤이 노동자의 잉여노동으로 환원됨을 보여 주었다. 그 저자는 자신 스스로가 잘 알고 있듯이 일반적으로 승인된 명제, 즉 노동은 모든 부와 수입의 원천일 것이다(익명 1821, 2쪽)라는 명제와 더불어 (논의를) 시작한다. 그런 후에 그는 잉여노동의 개념을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을 넘어서 생산하는 인간의 노동으로 정의한다(같은 책, 3쪽). 이러한 개념을 통해서 그는 자본소유자의 수입을 설명한다 :
“더 이상 자신의 노동을 사회의 노동과 통일시킬 수 없는 자본소유자는, 자신의 자본이 지대로부터 나오건 또는 화폐이익으로부터 나오건 간에, 자신의 자본의 사용을 위해 지불되는 타인의 잉여노동 또는 이익 위에서 자신의 삶을 유지해 나간다.”(익명 1821, 8쪽)(주42-그 다음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 “…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넘어서는 매 시간의 노동생산물을 노동자들로부터 뽑아내고자 한다.”(익명 1821, 23f))
맑스는 그 저자가 이윤을 잉여노동으로 해체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이 리카도나 스미스에 비해서 본질적으로 하나의 진보임을 인정하였다.(주43-) 사실상 여기서 이윤은 잉여노동에 대해 단순히 다른 이름으로서 이익, 지대와 통합된다. 물론 여기서 이윤이 잉여노동으로 해소되는 것이 결코 가치론에 근거하지 않고(주44-), 따라서 부르주아 경제학을 대상으로 삼는 어떠한 이론에도 근거하지 않고, 오히려 단순하고 모든 사회에 타당한 사실들에,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노동을 통해 삶을 유지한다는 사실, 하나의 계급이 전유하고 있는 사회적 잉여생산물이 다른 계급의 잉여노동을 통해 생산된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저자는 착취의 물적 내용을 인식하고 있지만, 부르주아 사회에서 착취가 매개되는 특수한 형태를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다.
이른바 “리카도주의 사회주의자들”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대표자는 토마스 허드그스킨(Thomas Hodsgkin)이다. 그에 관해서 통상적으로 이야기되는 바는, 그가 리카도의 노동가치론을 넘겨받아서 착취이론으로 폭넓게 발전시켰다는 것이다(예를 들면, Blaug 1958, 143쪽을 참조하라). 사실상 허드그스킨은 명백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공식적인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 이론, 즉 자본의 권리가 노동자계급이 빈곤해지는 원인이라는 이론을 끌어오고 있다(Hodgskin, 1825, 80쪽을 참조하라). 물론 무엇보다도 먼저 허드그스킨은 리카도에 대해서 비판적 관점을 취하고 있고 리카도의 이론을 자본주의적 (인간)관계를 옹호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주45-) 허드그스킨 자신의 고유한 이론적 싹은 리카도의 가치론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것으로 파악되기보다는 스미스의 가치론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 허드그스킨은 “자연적” 가격과 “사회적” 가격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은 것에 기초해서 말하고 있다 :
“자연 가격 또는 필요 가격은,……자연이 인간으로부터 요구하는 노동의 총량은 인간이 어떤 상품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은 과거에 최초의 화폐였고, 현재와 미래에는 자연과의 거래에서 구매 화폐가 되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사회적 가격이라고 부를 가격의 또 다른 종류가 있는데, 그것은 사회적 규칙에 의해 높아진 자연적 자격이다.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 데 요구될 수 있는 노동량이 얼마이든지간에, 노동자는 항상 사회의 현재 상태에서 자연으로부터 상품을 사는 데 요구되는 노동보다 더 많은 노동을 그 상품을 획득해서 소유하는 데 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에 대해서 증대된 자연가격(Naturel Price)이 사회가격(Social Price)이다.”(Hodgskin, 1827, 219쪽)
허드그스킨이 자연 가격을 “자연”을 요구하는 가격으로서 나타내고 있는 과장된 정식들은 말 그대로 확고하게 스미스가 노동을 가치의 척도로서 제시하는 것으로부터 유래한다(Smith 1776, 47쪽 이하와 비교해 보라). 뿐만 아니라 자연 가격을 높인 것으로서 사회 가격의 구성 역시도 스미스가 자본주의적 관계라고 간주하였던 가치 규정과 연결되어 있다 : 상품가치가 덩 이상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윤이나 지대에 대한 몫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상품 생산에 대해 요구되는 노동시간보다 더 많은 노동시간을 그 상품에 대해 지불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노동자가 “자연” 가격과 “사회” 가격 사의의 차이를 지불하고, 이러한 차이가 이윤과 지대를 형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미스와 리카도에게서보다는 허드그스킨에게서 그가 잉여가치를 “사물과 관련해서(der Sache nach)" 파악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허드그스킨은, 그 자신이 위에서 논의한 익명의 저자와 비슷하게 상품의 가치량과 평균 이윤의 규정과 같은 세부 항목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입장을 취하였다.(주46-)
맑스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모순”, 다시 말해서 “그 경제학자들의 전제들로부터 형성되는 모순”(Ⅱ.3.4/1370; 26.3/234)이 좌파 리카도주의자들에게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 경제학자들은 부르주아 경제학의 이론적 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허드그스킨은 이미 스미스와 리카도가 만들었던 독특한 인간주의의 틀 내에서 정치경제학의 대상을 규정하고 있다. 허드그스킨은 그의 저서 『대중 정치경제학』(Popular Political Economy)에서 스미스가 이미 보여 주었던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노동분업이 인간 본능의 결과일 수 있으며, 계속해서
“정치경제학이 근본적으로 취급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연적인 이해관계들, 열정들, 본능들, 그리고 성정들(affections), 더 나아가 이러한 것들의 결과들이다. 이 책은 거의 오로지 이러한 것들에 한정돼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과 이런 것들의 영속성 위에서…… 국부에 대한 자연과학이 발견된다.”(Hodgsikin 1827, 25쪽)
는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게다가 허드그스킨에게서는 자연과학이 정치경제학으로부터 시작한다. 스미스와 리카도에게서처럼 허드그스킨에게서도 상품 생산은 바로 자연적이며 인간에게 적합한 생산방식으로 나타난다. 허드그스킨에게서 등가교환은 자연적인 공정함의 표현이다. 그리고 자본과 노동의 교환에서는 분명히 노동자가 생산하는 모든 것이 노동자에게 속하지 않는 어떠한 등가물도 교환될 수 없기 때문에, 이 교환은 불공정한 것이다.(주47-) 부르주아 사회 스스로 만들어 내는 이러한 관념은 현실적인 (인간)관계들과 충돌하며 비판의 척도가 된다. 리카도주의 사회주의자들이 행하고 있는 이러한 비판은 비판행위의 전제들 안에서 변함없이 출발한다.
맑스의 비판방식은 이러한 도덕적 비판 방식과 일치하지 않을 뿐더러(이에 대해서는 4장과 비교해 보라), 종종 주장되고 있는 것처럼, 맑스는 리카도주의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자신의 가치이론과 잉여가치이론을 넘겨받지도 않았다.(주48-) 물론 이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적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다. 맑스는 1844년 처음으로 스미스와 리카도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였다.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맑스는 노동자의 비참한 상황에 직면하여서도 모든 부의 원천으로서의 노동을 이야기하고 세이의 논점들이 리카도의 노동가치설과 연결되는 스미스와 리카도의 “냉소주의”를 비판하였다(Ⅰ.2/258; EB 1/531). 맑스는 1847년에 『철학의 빈곤』에 나타나 있는 프루동과의 논쟁 과정에 노동가치설을 비로소 긍정적으로 적용시킨다. 1844년과 1847년 사이에 리카도와 리카도주의 사회주의자들의 심오한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맑스는 1845년 맨체스터에 머물고 있을 때 이들의 저작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노동가치론을 자본주의 비판에 적용시킴으로써 리카도와의 새로운 논쟁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You scored as Gre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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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is mostly associated with 'envy' but it best suits the description of freshness, rebirth and renewal. You believe that sometimes it is best to start things fresh just for the energising buzz an adventure gives you. And this is what you are all about; adventure. You love exploring, testing the limits and reaching out to what is out ther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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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모르는데, 이게 정말 내 모습일지는...
맞는 것도 있고, 안 맞는 것도 있고... ^^...
믿으시거나 말거나*^^*...
제가 좋아하는 색 중의 하나가 녹색이긴 한데,
녹색보다는 노란색이나 빨간색을 더 좋아하는데...
다시 함 해볼까나^^...
근데 귀차니즘 때문에 할 수 있을까?
뱀다리 : 트랙백을 누르긴 했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다^^...
이 글은 <작은 책 06년 11월호>에 실리 글 중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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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11 사태 이후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부시를 비롯한 미 제국주의자들에게 테러 단체나 테러 국가는 이들의 이익에 반하거나 이들에게 저항하는 모든 세력들을 의미한다. 이들의 대표적인 국가는 단연 사회주의권 국가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들 중에서도 좀 만만하다 싶은 제3세계 사회주의권 국가이다. 미 제국주의에게 이들 국가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미 제국주의는 자본의 최대한의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놓는 반면에, 이와는 정반대로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계를 최상의 가치로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3세계의 사회주의권 국가들 중 중심이 되는 국가 중의 하나가 바로 쿠바이다. 그리고 사회주의 권 국가인 쿠바를 이끌어 낸 중심인물들은 바로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회주의 사회 하면 모두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분배 받는 사회인 줄로만 안다. 그러나 이런 사회는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다. 사회주의라는 양의 탈을 쓴 전체주의 사회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산술적인 평균치로 모두 획일화시키며 개인들의 개성을 말살시키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은 사회주의 국가가 전체주의 독재 국가, 독재국가=테러국가쯤으로 알고 있으며, 따라서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암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는 위에서 말한 그런 사회가 아니다. 만일 사회주의가 이런 사회라면 맑스를 비롯한 이전의 모든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머리 풀고 통곡할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는 인간이 적대적 경쟁 속에서 ‘기계화되고 가축보다도 못한 삶’을 사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완전히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삶의 양식과 새로운 인간관계 속에서의 삶을 끊임없이 지향하는 사회를 말한다. 즉 끊임없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운동 과정 속에 있는 사회이다. 바로 이러한 사회를 지향했던 사람이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였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삶의 양식과 새로운 인간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이런 문제는 현실적으로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고 제기되어야 하는 문제이며, 체와 피델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체와 피델은 그 첫 번째 노력으로 경제에서의 생산관계를 문제 삼고 이 생산관계를 바꾸려고 하였다. ‘어떻게 생산하고 분배하며 소비하느냐’ 하는 경제에서의 생산관계는 인간의 모든 삶과 그 양식인 인간관계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체와 피델은 토지를 비롯한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화해서 모든 민중에게 민중의 필요에 따라, 즉 공공의 필요에 따라 생산물을 공급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실천했다. 이러한 생각과 실천은 모든 산업과 기업이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처럼 채산성에 그 목적을 두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것만이 사회주의의 전부가 아니다. 이러한 것에는 민중 자신이 자본주의형 인간으로부터 사회주의형 인간으로 새로이 생산해 낼 수 있는 민중 자신의 자기 생산과정이 빠져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민중 자신의 생산과정이 빠져 버리게 되면, 여전히 민중들은 자본주의의 문화, 정치 등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삶에 익숙해지게 돼서 이후에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도정에서 민중 자신이 사회주의의 커다란 장애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체는 “야수 같은 인간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을!”이라는 슬로건을 내 걸었다. 새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민중 자신의 생산과정은 동료들에게 나눔의 마음과 공동의 노력에 대한 가치를, 그리고 공동의 사회적 과업을 성취함으로써 개인으로서 민중 자신의 자기의식을, 즉 인간으로서의 자기의식(계급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 민중 자신의 자기 생산과정은 일상적인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야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도 배제되고 소외되지 않는 자유로운 의사소통 체계, 즉 민주주의적 관계가 유기적이고도 긴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글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쿠바에서는 초기부터 문맹 퇴치 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이런 쿠바의 노력에 대해 프랑스 주요한 환경운동가 중의 한 사람인 르네 뒤몽은 1965년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혁명은 완전한 기쁨 속에서 실현되었다. 그것은 그토록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던 노동자 대중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켜 주었다.…… 그들이 보여 준 문맹 퇴치 운동에 대한 집념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민중 자신의 자기 생산과정은 코뮌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쿠바에서는 이러한 코뮌 형태가 협동농장과 같은 협동생산 체제, 그리고 이러한 체제에 맞는 교육 체제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코뮌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코뮌을 구성할 수 있는 물적 기초가 있긴 하다. 그 물적 기초는 노동조합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그 자체가 코뮌은 아니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종속되어 있는 임노동자’의 연합체이며, 조합원들 자신의 자기 생산이 현실적으로 노동조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가족 형태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코뮌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우리의 당면 과제이다. 이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쿠바의 경우를 그대로 따라할 수도 없으며, 따라 해서도 안 된다. 이는 체와 피델, 그리고 쿠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아니다. 쿠바와 우리의 삶의 물적 조건은 아주 다르다. 체와 피델은 이러한 생각 위에서 쿠바만의 물적 조건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사회주의의 길을 걸었다. 이는 체가 정통 맑스주의의 주장처럼 사회주의 혁명 2단계에 따른 첫 번째 단계인 민족부르주아지 혁명의 단계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코뮌이 가족이건 국가이건 간에 개별적인 하나의 형태에 머물러서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코뮌은 그 태생 상 본질적으로 끊임없는 연대의 과정 속에 있어야 한다. 쿠바는 자신들만의 사회주의적 코뮌을 만들면서 끊임없이 사회주의권 국가와 제3세계 국가와의 교류와 연대를 추구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가 체와 피델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물론 체가 쿠바의 소련 핵무기 배치의 문제에 대한 소련의 태도와 관련해서 피델과는 다른 길을 갔지만 말이다).
이러한 쿠바의 끊임없는 연대의 노력이 미 제국주의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쿠바라는 국가 코뮌을 유지시키면서도 발전시켜 온 원동력이 되었다. 체는 체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제3세계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하여 세계 연대의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피델은 피델대로 자신의 생각과 정책을 묵묵히 밀고나가 최근에 베네수엘라, 볼리비아와의 민중무역협정 체결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민중무역협정은 자본주의 무역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자본주의 무역 방식은 채산성, 즉 얼마만큼 최대한 자본의 이익을 낼 수 있는가에 초점이 있다면, 민중무역협정은 각 국가의 민중들이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공공재를 필요한 만큼 교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쿠바는 모든 산업을 가동시킬 수 있는 연료인 천연가스와 석유가 필요하고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는 의료와 교육 자원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쿠바는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에 교육과 의료 자원인 교육자와 의사, 그리고 쿠바의 교육, 의료 시스템을 제공한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는 쿠바에 천연가스와 석유를 제공한다. 이것이 이들 세 나라가 맺은 민중무역협정의 기본 골격이다.
이러한 민중무역협정이 세 나라의 민중들의 삶을 인간다운 삶으로 바꾸는 기초이며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인간과 삶의 양식, 나아가서 새로운 세계의 모습의 현실적인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쿠바와 베네수엘라를 방문하여 공부하고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제적인 연대의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사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코뮌을 구성하기 위한 틀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어떠한 생산물(우리 자신을 포함해서)도 제공하지 못하고 또한 그들로부터 어떤 생산물도 받을 수 없다. 설령 생산물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삶의 양식과 이데올로기에 익숙한 우리 자신에게는 현실적으로 아무런 필요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야수 같은 자본주의 세상을 원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원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오늘 포스팅한 것을 보니 추석이라 괜찮은 영화를 보거나 해서
뜻 있게 보낸 것 같다.
그런데 사실상 난 잠자느라 볼일 다 봤다.
그렇지만서도 잠만 내처 잤다는 건 아니다.
(이거 앞 문장 하고 상당히 모순적인 관계에 있는 것 같구만^^...)
작년 추석 때부터인가보다.
명절 때만 되면 좀 골치 아픈 문제가 있다.
그건 다름 아니라 며느리와 딸 사이에서
누구의 역성을 들어야 하는가이다.
좀 얘기를 해 보자면 이렇다.
명절 때만 되면 명절 치르는 노동은 현실적으로 거의 모두 여성의 몫이다.
그런데 이 여성의 노동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며느리의 노동이다.
결혼을 하신 여성 분들은 시댁에서 명절 노동만 생각하면
온 몸이 아프다는 말씀을 거의 대개가 하신다.
명절 노동과 관련해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자아는
이중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며느리와 딸이라는 것으로 말이다.
결혼하신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며느리와 딸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딸로서의 사회적 지위는 며느리라는 사회적 지위와 고까운 관계에 있다.
딸은 며느리가 하는 모든 가사노동을 시원찮게 여길 때가 많이 있는 것 같다.
며느리는 시부모를 공양해야 하고 남편을 잘 내조하고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는 일종의 지독한 편견이다)이 있는데,
딸들이 이 통념에 잘 길들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딸과 며느리 사이의 다툼은 항상
이 통념의 지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이 딸들이 며느리라는 사회적 지위에 서게 되면,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된다.
며느리는 이제 딸들이 참으로 고깝다.
오죽했으면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생겨났을까.
서로 며느리라는 똑같은 처지에 있으면서도
며느리 대 며느리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며느리 대 딸로 만나는 것이다.
자, 이러한 상황에서 도대체 누구의 역성을 들어야 하는가.
물론 이러한 여성 자아의 분열은 자본주의 가부장 사회의 모순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며느리나 딸 둘 다에게 이런 원론적인(?) 얘기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얘기를 못하는 것은
거의 모두가 나의 무능 탓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내 탓이오> 하고 자빠지는 것은 98% 부족한 일이다.
며느리의 역성을 들 것인가, 딸의 역성을 들을 것인가.
며느리의 역성을 든다면, 며느리는 딸과 시어머니의 갈굼의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며느리의 삶은 더욱 고단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딸의 역성을 든다면, 이는 가부장제의 화신(마초)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이런 것은 현실적으로 고부간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이 갈등을 현실적으로 당장에 면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기회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박쥐처럼 며느리에게 붙었다가, 딸(시어머니)에게 붙었다 해야 한다.
물론 이게 오래가지 못할 뿐더러 결국에 가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딜레마이다.
그렇다고 명절을 아주 없애자고 할 수도 없고,
또 명절을 없앤다고 해서 여성의 가사노동 자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누가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좀 나누어 주시오!!!
뱀다리.
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결혼을 할지 안 할지 잘 모르지만,
결혼을 한다면 당장에 큰일이란 생각에 머리가 절레절레 흔들린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사람이 만나서 서로 몸을 기대어 불꽃을 사른 다음,
더 이상 사를 것이 없을 때 한줌의 재로 남아서 바람에 따라
각자 제 갈 길을 가면 된다.
각자 제 갈 길을 가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미련을 남기는 것은
서로의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대체로 미련을 남기고서 자신의 갈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서로에게 너무 의존하여 서로에게 집착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의존과 집착은 지배욕을 낳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존이 너무 크게 되면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노동과 수고에 기대는 삶에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그런 삶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노동과 수고를 지배하려고 하며,
따라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노예의 굴종적인 삶을 살도록 강요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삶은 어떠했는가를 깊이 반성해 본다.
답은 뻔할 뻔자이다.
누군가에게 지독하게 의존적인 삶이었다는 사실...
흐흐흐...
그래서 내 것만을 강조하고 강요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나이가 들면서 아무도 유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해 주는 것이리라.
아무도 유혹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일 테고,
자유롭지 않은 나는 그만큼 더 외로워지고...
악무한적인 악순환이다!!!
이제 의존을, 집착을, 미련을 버리는 연습을 충실히 해야 할 때이다,
4학년인 이 시점에서...흐흐흐...
더 이상 외로워지지 않기 위해, 자유로워지기 위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대학생씩이나 된 아이들에게 자란다는 표현은 격에 맞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래서 아이들이 우리들을 초등학생쯤으로 보는 것 아니냐고 티박을 놓을 줄 알면서도,
그냥 자란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굳이 이 표현을 쓰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자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조금씩 웃기 시작하고 자신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다른 때 비하면 엄청나게 빨리 일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보통 한 달 반 정도 지나야 입을 열기 시작하는데...
이런 것은 아이들의 이름을 잘 외워서 그 이름을 불러주기 때문이리라.
사실 이름을 빨리 외울 수 있었던 것은 학생 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철학 수업은 4명, 법대 지정교양 수업인 논리와 작문 수업은 2반인데,
한 반은 29명, 다른 한 반은 6명이다) 고맙게도 아이들이 처음 자신이 앉았던
그 자리에 계속 앉았기 때문이다(내가 그렇게 시킨 게 절대 아니다).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고 말을 시킬 때 처음에는 수줍어 하다가
지금은 목소리에 힘도 들어가고 자신감이 있어 보이더라.
그러면서 눈망울이 또록또록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도 있지만, 그거 정말 사실이다.
그 눈망울을 안 본 사람은 사실 잘 모른다.
보는 사람을 얼마나 설레이게 하는지...
이건 행인 님도 마찬가지일 게다*^^*...(맞지요, 행인 님?^^)
이럴 때 선생이란 직업이 얼마나 축복 받은 직업인지...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의 대화라는 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질문에 대답하는 아이들에게 똑바로 쳐다보면서 <잘 했다, 오케이, 굿>을 하면,
아이는 수줍어하면서도 어깨를 으쓱거린다.
(요게 또 점수와 연관되기도 하지만서도 말이다*^^*...>
그런 후에 아이들은 내가 하는 말 중에서 무의식적으로 실수로 한 말들은 칼 같이 잡아낸다.
오늘도 한 건 당하고 왔다!!
(칠판에 뭔가 잘못 썼다가 바로 지적을 당했다!!)
그런데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기분이 좋아서 어깨를 으쓱거릴 정도다.
(선생이 지가 틀려 놓고서도 어깨를 으쓱거리다니, 참으로 한심하지 않은가^^...)
그러면서 교실은 웃음이 넘쳐난다.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라.(孟子 盡心 章 上)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함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이 기세에 기름을 부어야 할 것이다.
그 기름은 이른바 야자!!!
(야자란 야간자율보충학습의 준말이다^^)
야자가 무엇인지 감비 님은 경험을 하셨다.
궁금하신 분은 감비 님께 여쭈어 보세용^^...
다음 주 야자가 기대된다.
아이들은 훨씬 더 신랄하고도 비판적으로 나를 교육할 것이다.
아기다리고기다리... 야자...
혹시 참여하시고 싶은 분은 덧글 다시라.
아이들에게 허락을 받도록 최선을 다해 보죠...ㅋ~~~...
오늘 비가 오고 바람도 좀 불고, 날씨가 쌀쌀해지니까 뭐 마음이 좀 거시기하다.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며칠 전에 선배와 함께 한 술자리에서 불혹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 떠올랐다.
불혹이란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40대를 이르는 말이다.
그렇지만 불혹에 관한 이러한 뜻이 적절한 것이 아닐 것 같다는 것이 그 선배와 내가 얻은 공통의 결론이었다.
그 결론인즉슨, 불혹이란 어느 누구도 유혹(?)해 주지 않는다는 의미로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유혹해 주지 않는다는 것,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유혹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유혹해 줄 사람과 별로 인간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는 말과 같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선배는 혼자서 산을 갔다온 후에 혼자서 어디에선가 술을 먹고 있을 것이며, 나는 여기서 이렇게 불질을 하고 있다.
40대에는 왜 서로서로가 유혹을 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 40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유혹을 하지 않는 것일까...
너무 일찍 늙어 버려서 쉰 내가 풀풀 나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어서일까^^...
얼핏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이런 것이 아니지 않을까...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무한한 적대적 경쟁 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한다.
1등이 되어야 한다.
남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
약육강식의 생존 양식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생존 양식을 체화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러니까 남에게 어쨌거나 약점을 잡히지 말아야 한다. 약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
유혹해 달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일이다.
특히 가부장적 조직에서는 이 정도가 더 심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놓고 말한다는 것이 점점 힘들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나이가 들어서도 젊었을 때와 같이 아프다고 말하게 되면, 겉으로야 네가 많이 아프구나
하겠지만 돌아서서는 나잇살 먹어서도 아직 철딱서니가 없다고 소문나기 십상이다.
그러면 은근하게 사람들에게 따 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아픔이라는 것이 남의 것이 아니라 곧 자신의 것이고, 자신의 아픔을 잊고자 하는데 그 아픔을 기억하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이 싫어서일 것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그 아픔은 배가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자꾸 외로워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특히 권력을 가졌다고, 어느 정도의 사회적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욱...
불혹이란 참으로 외로운 일이다.
이 외로움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내 생각엔 수다를 떨어야 외로움이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침묵은 외로움, 우울증을 낳는 병원균이라 생각한다.
지금 그 선배에게 전화해서 수다를 떨어보자.
난 권력을 가지고 있지도, 일정한 사회적 지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소시민이지 않는가*^^*..
지금 책가방을 싼다.
불혹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불혹에 대한 투쟁 승리!
반 불혹 집회로!
흐~~~
개강을 한 지도 열흘이 지났다.
가을하늘처럼 아이들의 모습도 싱그럽기 그지없다.
아이들 없는 학교는 앙코 없는 찐빵이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고,
실 없는 바늘이다.
아이들의 싱그러움은 학교를 싱그럽게 만들고 선생을 싱그럽게 만든다.
또한 한 학기 동안 아이들이 푸르고 싱그러워야
선생도 한 학기 동안 싱그러워질 수 있다.
교육이란 아이들과 선생 모두 서로에게 싱그러운 존재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아이들과 선생 모두 서로에게 싱그러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누가 누구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권력을 쥔 선생이 먼저 말을 건네야 하는 것이지 싶다.
말을 건넨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말을 건네기 위해서는 선생은 끊임없이 수신(修身)해야 한다.
수신이란 말 그대로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이다.
즉 자신을 잘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은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몸과 마음의 상태가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이 상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수업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점쟁이보다도 더 잘 선생의 상태를 잘 안다.
그리고 개코보다도 더 정확하게 선생의 냄새를 잘 맡는다.
아이들은 선생의 눈빛이나 옷 입은 상태를 보고서
선생의 몸 상태나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를 직감적으로 알아낸다.
만일 선생이 몸과 마음의 상태가 최고조가 아닐 경우
아이들은 선생 말이나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날 수업은 그걸로 끝이다.
이런 상태가 두서너 번 되풀이되면 한 학기 수업은 말 그대로 망한 것이다.
아이들은 선생이 자신들에게 집중해 주길 바란다.
그런데 선생이 몸과 마음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지 못하면
아이들에게 집중을 하지 못하게 된다.
선생의 몸과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면 아이들의 몸과 마음도 콩밭에 가기 마련이다.
선생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서 자신들에게 집중해 나갈 때
아이들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그러면서 선생과 아이들 사이에는 믿음이 쌓여가게 된다.
믿음이 쌓여갈 때 아이들은 공부에 집중하게 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의식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삶에 대해 집중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푸르고 싱그러워지면서 아주 활발해진다.
그러면 이러한 아이들의 상태가 선생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더욱더
최선의 상태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된다.
맑스가 말한 대로 교육자가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민주주의이며 이 민주주의를 아이들과 선생 모두 일상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선생의 현장 활동이란 다름 아닌 학교에서 아이들과 이러한 민주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1학기에는 나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음으로 해서 아이들의 마음도
콩밭으로 갔고, 그래서 수업은 거의 엉망의 상태가 되었다.
이는 아이들의 강의 평가에 고대로 나타나게 되었다.
거의 꼴찌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이것은 고통이었고 슬픔이었으며 나의 삶에 많은 생채기를 남기는 것이었다.
이제 이번 학기에는 내 삶에 상처를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 삶에 상처를 남기는 것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내 아이들과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는 일이 된다.
자신의 고통을 아이들에게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떠넘기는 어리석고 사악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가을하늘처럼 푸르고 가을햇살처럼 청명한 2학기를 만들어야지.
예전에 끄적였던 것이 생각나네요.
그래서 그냥 올려 봅니다,
아이들을 위해, 나를 위해 나를 장작으로 만드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서^^...
# 박남준 시인의 <흰 부추꽃> 노래를 듣고 # - 2001. 3. 13. 화 -
그래도 그때
푸르던 때 있었습니다
해와 달 별 서슬 푸르게 차갑던 시절
서툴던 우리 삶 어쩔 줄 몰라
상처 주고 상처 받고 고통 받고 고통 주며
슬픔으로 얼룩지던 밤
그렇지만
그 상처 고통 슬픔 옹글옹글 모아
소주 막걸리로 빚어
서로에게 힘과 양식되어
삼십촉 희미한 백열등 희망과 사랑으로
서로 어깨 맞대고 보듬으며
서러운 노래
시리도록 푸르게 불렀던 때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서투른 삶 더 서툴어지고
옹글옹글 모여 희망과 사랑을 빚었던
그 상처와 고통과 슬픔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밤거리에서
쓰레기되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무심한 발길에 걷어 채이고
행여 묻을세라 청소부가 쓰레기통에 처박고
이 상처 고통 슬픔 모아
도끼 만들어
세상을 도끼질하고
나를 베어내어
아궁이 장작불에 던져져
세상 상처 고통 슬픔 빚어
화롯불 따스함 전해 줄 수 있을지
희디흰 재로 뿌려져
푸른 숲이 될 수 있을지
그래도
이 세상 도끼질하여
나를 베어 장작 만드는 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때
푸르던 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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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안녕하세요! 또 왔습니다. ^^;;계속 드는 생각이지만...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가지고 계신 책이 예전 판이신가봐요. 저는 올해 새로나온 것으로 보고 있는데... 중간에 빠진 부분이 조금 있네요. 물론 전체 내용에 크게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요.
중간에 "모든 해방~~"으로 시작되는,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의 인용부분 중에서... 뒷문장을 조금 손봤습니다. 역시 차이는 아래 제가 옮긴 것을 보시면 뚜렷해질 것 같습니다.
--> 오직 현실적인 개별 인간이 추상적인 국민을 자기 자신 안에 회복하고 개별적 인간으로서 자신의 경험적 삶 속에서, 자신의 개인적 노동 속에서, 자신의 개인적 관계들 속에서 유적 존재가 될 때, 그리고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능력들’을 사회적 힘으로서 인식하고 조직함으로써 사회적 힘이 정치적 힘의 형태로 자신과 결코 분리될 수 없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인간 해방이 완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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