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를 넘으니 남도하고도 구례 땅이라 : <주천-산동> 구간 (2018년 5월 19일)

 

멀긴 멉니다. 어제 낮 3시에 출발했는데 남원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대전 언저리에서 조금 막히긴 했지만서도 7시간이라니요. 강릉에서 전라도. 심리적 거리만큼이나 오가는 시간도 참 머네요. 그러니 노는 날이 4일이라도 온전히 걸을 수 있는 건 오늘 하루뿐입니다. 내일은 아침나절 여유 좀 부리며 놀더라도요. 점심 먹고부터는 또 부지런히 집으로 가야하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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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 옛길을 몰랐던 때 터널을 걸어 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긴 터널 속에서 달려들 듯 내달리는 트럭들. 목줄도 없이 사납게 짖어대던 산만한 개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길 위로 뛰쳐나온 개구리와 지렁이들. 끝내 터널을 나오자마자 지나는 차를 세워 태워 달라했지요. 다시 생각하기 싫은 기억들입니다. 지금이야 왜 거길 지났을까 이유도 잘 떠오르진 않지만요.

 

주천에서 밤재를 넘어 구례 산동까지 이어지는 길은 꽤나 깁니다. 주천 쪽에서 넘어가는 길은 그래도 한 두 시간만 오르면 산동까지는 쭉 내리막이긴 한데. 산동 쪽에서는 반대로 긴 오르막을 네 시간 이상 걸어야 하니요. 이럴 땐 반대쪽으로 걷기로 한 게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시작해도 중간에 밥 먹을 곳이 마땅치 않으니까요. 배를 채우는 건 물론이고 간식도 넉넉히 챙겨야 합니다.

 

남원에서 출발한 버스가 주천면사무소를 두고 산 위쪽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더니 주천-운봉 구간 출발점에 사람들을 내려놓습니다. 탈 때 둘레길 간다고 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면사무소라는 방송에 벨을 눌렀는데, 다들 주천, 운봉 구간을 걷는 사람들이었던가 봐요. 기사님도 의례 그렇게 알고 있고. 왔던 길을 돌아 면사무소 앞으로 갈 때야 겨우 겨우 내립니다. 하는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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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걸었던 길을 10여분 남짓 되짚어오니 다행히 밥 먹을 곳이 꽤 있습니다. 시계를 보니 10시 30분이 조금 넘었네요.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든든히 먹어둡니다. 날씨야 어제까지 내렸던 비 때문에 미세먼지도 없는 화창하고. 햇볕이 조금 따갑고 자외선 지수가 높다고는 하지만, 바람은 솔솔 불어오고. 고개를 너머 가는 길이 힘들지만은 않겠다, 생각됩니다.

 

외평마을을 지나 30여분 쯤 지났을까요. 목덜미에 땀이 조금 찹니다. 좀 전에 버스타고 지났던 산 중턱 마을, 장안제라는 저수지네요. 출발할 때 봤던 돌로 된 효열비가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봤었는데. 효자각 앞 배롱나무가 300년 됐다길래 그것도 구경하려는데. 왠 시커먼 개가 요란스럽게 짖어대는 걸까요. 아무리 목줄로 매어있다고 해도 무섭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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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를 따라 줄기차게 오르니 등이 흠뻑 젖습니다. 반소매 옷으로 갈아입고 숨도 고릅니다. 아까부터 꽃망울이 하나, 둘 떨어졌는데 그것도 세어보면서요. 산길이 계속 이어지고는 있지만 쉬고 나니 한결 낫습니다. 오르락 내리락. 숨이 찰만하면 내려가기도 하고 완만하게 이어지기도 하네요. 유스호스텔을 두고 지하도를 두 번 왔다, 갔다 한 것만 빼면요.

 

올레길 6구간이라던가요. 모 재벌회장 부인이 길을 막아버렸던 곳이요. 때문에 올레길이 도로 쪽으로 우회하게 됐다던데요. 당연히 같은 이유는 아니겠습니다만. 얼핏 보면요. 유스호스텔을 통과하면 지하도를 한 번만 지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아닌가요. 물론 매일 문을 열어야하니 쉽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좀은 아쉽습니다. 매점도 있다고 하니 그곳을 거쳐 가면 둘레꾼들에게 도움이 될텐데요.

 

길이 어느새 포장도로에서 임도로 바뀌었습니다. 계속 오르막이긴 하지만 경사가 크지 않아 숨은 가쁘지 않습니다. 좀 전에 지나왔던 거 아닌가 싶게 비슷한 풍경이 이어지고 있지만요. 그늘에 누워 잠깐 쉬기도 하고, 불어오는 바람에 흐드러지게 핀 아카시아 향도 흠뻑 맡아봅니다. 이제 3분의 1쯤 왔습니다. 1시가 조금 넘었으니 이만하면 늦지도 빠르지도 않고 좋습니다.

 

밤재를 코앞에 두고 여느 고갯마루와 같이 오르막이 가파릅니다. 마지막 힘을 내기 위해 숨을 고르고는 힘차게 출발. 2시. 드디어 밤재에 올랐습니다. 올라온 쪽에서 보면 남원이 한 눈에 내려다보입니다. 반대편 내려가는 쪽을 보면 19번 국도가 꼬부랑꼬부랑. 정자에서 고기 구워 먹는 사람들만 아니었으면 한참이고 쉬었다 갔을텐데. 게다가 송전전까지 길을 가로지르고 있어 달음박질을 합니다.

 

산만한 개가 길을 가로막고 있어 어찌하나 난감합니다. 가만 보니 밭둑으로 돌아가면 될 듯합니다. 길을 내준 것만도 고마우니 길 가에 개 키운다고 뭐라 할 수 없지요. 무서우면 잠시 피해가면 되니까요. 하지만 비올 때 돌아가는 길로는 웬만해선 안 가는 게 좋겠습니다. 곧 펼쳐지는 대나무 숲을 볼 수 없으니까요. 또 쭉쭉 뻗은 편백나무가 이어진 시원한 숲도 지날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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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억서억 대숲을 지나 계곡을 이리저리 건너뛰기도 합니다. 어제, 그제 비가 와 걱정했지만 물이 많이 빠져서인지 괜찮네요. 계곡물에 땀을 씻어냅니다. 바리바리 싸 온 간식도 챙겨먹고요. 커피향이 물씬 나는 편백나무 사이에서는 조금 가다 쉬고, 또 조금 가다 의자에 퍼질러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숲길을 다 빠져나오니 아까 개 때문에 돌아가려 했던 길과 만납니다.

 

밤재 정상에서, 아니 주천에서부터 국도를 따라 길게 이어진 송전선이 눈에 자꾸 거슬리네요. 게다가 둘레길 위로 여기저기 지납니다. 산수유 시목지가 있는 계척마을에서도 그렇고. 공사 중이라 어수선한 현천제를 지나 현천마을에서도 그렇고. 우연이겠지만요. 아까부터 머리가 그렇게 아픈데 혹시나 저 고압선 때문인 건가요. 점심 먹을 요량으로 점 찍어둔 식당이 문을 닫아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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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천교를 지나 포장도로를 따라 10여분 걸으니 원촌마을입니다. 산동면사무소가 있는 곳이구요. 주천-산동 구간 시작점이자 마침점입니다. 숙소를 탑동마을에 잡았으니 20여분은 더 가야겠는데, 아이쿠 뱃속이 요란합니다. 그도 그럴만합니다. 10시 반에 아침 겸 점심 먹고 11시부터 걷기 시작해서 지금이 다섯 시니. 꼬박 여섯 시간 동안 걸으며 밥 구경을 못했거든요.

 

마침 손수 기른, 채소는 물론 쌀농사까지 지었다고 합니다. 손맛 나는 밥집에서 맞바람에 게 눈 감추듯 허겁지겁, 술도 한 잔 빼놓을 수 없겠지요. 이럴 땐 해가 길어진 게 참 다행이지 싶습니다. 식당을 나와 잠깐 길을 헤매긴 했지만요. 서시천을 따라 효동교를 건너 민박집에 도착하니 아직도 날이 밝습니다. 이제 씻고 푹 자야겠습니다. 여기는 전라남도하고도 구례 땅입니다.

 

* 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주천에서 밤재를 넘어 산동까지 15.9km와 서시천 건너 탑동마을까지 1.4km를 더하면 17.3km를 걸었네요.

 

* 가고, 오고

강릉에서 전라도 쪽으로 오고가는 길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지도를 대각선으로 쭉 그어도 꽤 긴 거리인데다 고속도로나 기차마저 이리저리 돌고 돌아오니 그렇습니다. 승용차로도 5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고, 대중교통으로는 짧게 잡아도 7시간은 걸립니다.

 

* 잠잘 곳

주천에도 밥 먹고 숙박할 곳이 여럿 있는데 남원에서 숙박을 했습니다. 오후 일찍 출발했는데도 밤 늦게서야 겨우 남원까지밖에 못 왔으니까요. 주천을 지나 밤재, 산동까지 유스호스텔에 있는 듯한 매점을 빼고는 밥집은커녕 물 사마실 곳도 없습니다. 그러니 도시락을 준비하거나 간식을 충분히 싸 가져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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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5 11:37 2021/09/1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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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서는 성이 ‘임’이요 직위나 직책이 ‘계장’인 어떤 한 사람이 쓴 글인 줄 알았습니다. 앞표지를 보면 오히려 갸우뚱합니다.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빗자루 쓰레받기를 든 뒷모습이 그려진 그림, 알 수가 없습니다. 뒤표지를 보니, 글쓴이조차 자신이 ‘임계장’이라 불리는 것이 의아했답니다. 성씨를 잘 못 알아서, 배차 계장이라는 직책과는 아무 상관없는 호칭, ‘임계장’.
 
‘임계장’은 ‘고.다.자’로도 불린답니다. 고르기도 다루기도, 자르기도 쉬어서요. 그렇습니다. ‘임계장’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었습니다. 있으나 없으며, 필요하나 필요 없는.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임시계약직이면서 고령인 노동자 일컫는. 그 ‘임계장’은 숨겨두고만 싶었을 일기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얼마만큼은 그럴 거라 생각했었던, 막상 속속들이 알고 나니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는 그 이야기들을요.
 
 
어느 이른 새벽에 꽃봉오리를 털어 내는 그의 모습을 봤다. 대빗자루로 사정없이 털어 내자 봉오리들이 힘없이 우수수 떨어졌다. 나중에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높은 곳에 맺혀 있는 봉오리까지 다 털어 냈다. 꽃봉오리들은 꽃으로 피어나지 못한 원망을 토해 내듯 땅에 부딪히자마자 마지막 힘을 다해 품고 있던 꽃잎들을 토해 냈다. 피지도 못하고 봉오리로 소멸하는 꽃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p.181
 
잡균과 오물이 묻은 손으로는 밥을 먹을 수 없고, 주민의 심부름도 할 수 없으며, 택배를 다룰 수도 없으니, 하루 평균 손을 씻는 횟수가 서른 번, 어떨 때는 쉰 번이 넘을 때도 있었다. 하루에 몇십 번씩 손을 씻는 이가 경비원 말고 누가 있을까? 우리의 손은 하루 종일 더러운 쓰레기를 만지는 손이지만 그런 이유로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손이라고, 감히 자부한다.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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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자신이 지나왔던 시.공간들을 ‘경계의 시간’이었다고 말합니다. 학교는 다니는 것도, 직장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던 때.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고 다녔던 학교, 군복대신 작업복을 입고 다녔던 공장. 분명 모두가 지나왔지만, 스스로를 소개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그 시절을. 그럼에도 “설명하지 못한 채 뒤로 미뤄두었던 이야기”를 꾹꾹 눌러 써내려갑니다. ‘탁본’을 뜨듯이요.
 
‘청년’이란 곧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편견에 가장 구석진 자리로 밀려난 이. ‘현장실습생’ 또는 ‘산업기능요원’이라 불리는 청년노동자. 그 청년노동자는 “그 누구의 삶도 버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따뜻한, “그들을 외롭게 두지 않을 것”이라는 온기로, 그들로부터 가로채간 언어를,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담담히 돌려주고 있습니다.
 
 
열아홉 할인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공장에서 일하던 나에게. 수능을 망치고 괴로워하던 H에게. 주량을 한참 넘어 술을 마시던 친구들에게. 어쩌면 학교에 다니지 않고 어른이 되어야 했던 누군가에게도 이 거리가 조금은 더 따뜻하고 위로가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도 소외당하지 않는 세상은 없는 건지,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건지 혼자 생각하며, 나는 불빛이 잦아드는 방향으로 한참을 걸었다. pp.85-6
 
몸은 차갑게 식어있는데, 가슴 속에서 자꾸만 뜨거운 게 올라와 헛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나는 왜 여기 서 있는 건지, 무엇하나 알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버려진 전단을 줍는 일이었다. 몸을 숙여 마른 낙엽처럼 흩어져 있는, 잊히고 외면되어 왔던 누군가의 삶을 하나씩, 하나씩 주워 모으는 일뿐이었다. pp. 213-4
 
 
3.
두 글 모두 각자가 겪은 일들을 속속들이, 꾹꾹 눌러 써내려간 일기장입니다. 동시에 임시계약직, 청년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생생히 살아있다는 점에서 르포르타주입니다. ‘갑’과 ‘을’이라는 계약관계 속에 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증언하고 있는 것이지요. 다만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가 “시가 담긴 수필이고 산문”이라면 「임계장 이야기」는 덜어내거나 보태지 않은 현장보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두 책이 주는 울림은 형식이 주는 낯설음과 어색함을 가뿐히 넘어섭니다. 보고도 믿기지 못하는 순간들과 맞닥뜨렸을 때의 당혹감과 낯 뜨거움을 감출 수 없다면, 함께 “여기 사람이 있다” 외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어떤 격식을 차리는, 이론이 넘쳐나는 글들보다도 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너끈히 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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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1 11:12 2021/04/01 11:12
셋째 날, 뿌연 먼지 사이를 뚫고 주천으로(2017년 5월 1일)
 
전라도를 비롯해 충청도 지역 곳곳이 그렀듯이 남원 역시 동학혁명군이 남긴 발자취들이 많습니다. 특히 김개남이 이끌던 농민군과 유생들로부터 지원을 받은 박봉양이 이끈 민보군 간의 싸움이 벌여졌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곳곳이 그렀듯이 혁명군이 남긴 흔적들은 애써 찾지 않으면 보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최근에는 방아치 전투지 비석이며, 혁명군 주둔지였음을 알리는 깃대바위가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 춘향이와 몽룡이로만 알려진 광한루원에도 어엿한 안내석이 세워졌습니다. 이는 동학혁명 당시 지휘부에서 활동했던,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해방 직후엔 남원 건국준비위원장까지 맡았던 류태홍 선생 덕분입니다.
 
그러니 비록 둘레길하고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부러 시간 내 찾아볼 만합니다. 더구나 운봉이나 주천을 가기 위해서는 남원을 반드시 거쳐야 하니까요. 농민군이 주둔했을 교룡산성, 훈련장이었던 요천(蓼川)쌈지공원, 남원부 관아로 동학대도회소로 쓰였던 곳, 패한 농민군이 남원성을 떠나던 북문(옛 남원역 부지) 터는 둘러보기 좋습니다.
 
운봉 역시 방아치와 여원재, 까막재 등 동학혁명과 관련된 곳들이 있으나 농민군이 끝내 넘지 못한 곳이라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아립니다. 또 민보군 거점으로 쌀을 저장했다 해서 합미성(合米城)이라고도 하는 합민성(合民城), 후에 일부가 훼손된 것 같아 보이는 ‘박봉양(일몰)장군비’가 있는 서림공원도 있으니 꼭 두루두루 살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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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인월에 가느라 또 오늘은 운봉에서 와 내렸던 운봉우체국 앞은 크기도 하고 비, 바람, 햇빛을 모두 피할 수 있어 좋습니다. 그제는 2시간 반, 어제는 4시간. 그리고 오늘은 6시간 남짓 걸어야 하니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는데요. 물도 준비하고 신발 끈도 다시 묶고 말입니다. 그러니 여기 정류장만큼 딱 좋은 곳이 또 있을까요.
 
미세먼지 소식에 마스크까지 챙겨들고 길을 나섭니다. 시계를 보니 12시. 어제마냥 제방길이 아니어서 다행이지 싶은 시간입니다. 양묘사업소까지 얼마 되지 않은 길이 어찌나 따갑던지요. 그래도 바로 양묘장이라 다행인가 싶었는데. 그늘은커녕 모심은 것 같은 소나무들만 빼곡. 게다가 뭔 도로 공사. 어찌나 어수선하던지요. 길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다행히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 금방 제 길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어쩔까요. 눈앞에 어제마냥 제방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아, 하, 한숨만 나옵니다. 그래도 어제보단 나무들 키가 조금은 큰지 그늘이 있네요. 나란히 걷진 못해도 줄지어 걸으면 해를 피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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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마을 입구 나무 아래 평상에서 잠시 숨을 고릅니다. 서어숲으로 이름난 곳이니 응당 그리로 가야겠는데 당장 힘드니 그렇게 됐는데요. 결국 이정표를 못 보고 마을을 가로질러 가 숲을 못 보고 갑니다. 아니요. 분명 되돌아와 마을길로 난 이정표를 찾았는데 아무리 길을 따라가도 숲이 나오질 않았던 겁니다. 대체 어디서 어긋난 걸까요.
 
덕산마을 앞 정류장까지는 평지 제방길이라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다만 배꼽시계가 하도 요란하게 울리기에 김밥이라도 먹어야겠습니다. 남원과 함양 구간들에는 막걸리며 파전 등을 파는 쉼터가 여럿 있기에 무겁게 뭘 요기할 것까지 가져가야하나 싶어 잠깐 망설이긴 했지만요. 막상 시간 맞춰 먹으려니 그것도 쉽지가 않더라구요.
 
배도 채웠고 쉴 만큼 쉬었고 둘레꾼들과 얘기도 나눴고. 덕산저수지를 끼고 이어지는 숲길은 소나무가 지천입니다. 그러다 길은 드넓은 저수지를 빼꼼 보여주다 오롯이 보여주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어느새 임도로 이어졌다가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농부들만 다니는 농로로 안내합니다. 이렇게 아기자기한 길이 또 어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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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덕산마을에서 만났던 이들인데 어째 저쪽 길에서 오는 걸까요. 아마 아까처럼 이정표를 놓쳤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얘길 들어보니 그쪽은 길이라도 찾았나 봅니다. 다른 이는 아예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길로 갔나봅니다. 아무리 표시가 잘 돼 있고 한길이라고는 하지만 방심은 금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1구간만큼은 거꾸로 걷는다고 합니다. 안 그럼 1시간이 넘게 가파른 오르막길, 아니 산행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덕치마을을 지나니 바로 이 산길이 시작되는데요. 이처럼 검은색 화살표를 따라 걷는다 해도 오르막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물론 주천에서 오는 길에 비하면 새발에 피겠지만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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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리지를 지나고 나니 분명 지도에는 구룡치라고 돼 있던데요. 아무 표시도 없고 이제 내려간다는 예고 같은 것도 없이 곧장 급경사, 내리막입니다. 시간이 늦은 탓에 아래서 올라오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가뜩이나 좁은 길에 꽤나 조마조마했을 뻔 했습니다. 그래도 조심 또 조심. 올라오는 것보다 배는 더 시간이 걸리는 것 같네요.
 
주천이 3.1km 남았다는 표지를 지나니 엔간히 내려왔나 봅니다. 계곡물도 들리고 뒤를 돌아보니 산꼭대기가 저 멀리 보이니요. 다시 주천 2.6km 표지 있는데서 남은 김밥도 먹고 힘을 내봅니다. 이제 넉넉잡아 한 시간이면 다 가겠지요. 다행히 여기서부터는 길도 좋습니다. 곧 펼쳐진 다랭이밭, 비료푸대 허수아비가 두 손 들어 반깁니다. 이제 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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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둘레길 걷기 다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첫째 날은 지난 번 걸었던 <인월-금계> 구간 중 장항마을부터 인월까지 약 7km를 2시간 30여분, 둘째 날은 <운봉-인월> 구간(9.9km)을 4시간에 걸쳐, 셋째 날은 <주천-운봉> 구간(14.7km)을 5시간 반 동안, 여전히 반대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 가고, 오고
강릉에서 인월은 시외버스만 두 번, 다시 군내버스나 시외버스를 타야 겨우 올 수 있습니다. 시간을 잘 맞춘다고 해도 여섯 시간은 잡아야 하니 멀긴 정말 먼데요. 참고로 강릉 출발 8시 30분, 대전에서는 12시 20분에 갈아탔습니다. 함양에서는 1시 50분 군내버스를 타고서야 겨우 2시 넘어 인월에 도착했답니다.
 
* 잠잘 곳
인월에는 게스트하우스가 한 곳, 다리 하나만 건너면 만나게 되는 월평마을(달오름마을)에 민박이 한집 건너 한집입니다. 그밖에 운봉읍과 인근 행정마을, 백두대간이 지나는 신기마을, 주천에도 숙박할 만한 곳이 꽤 있으니 한창 때가 아니면 따로 예약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인월은 운봉, 주천과 군내버스, 시외버스 한, 두 번으로 이어지는데다 밥집도 많고, 카페도 두 군데나 있으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에 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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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1 18:30 2021/03/11 18:30
첫째 날, 쉬엄쉬엄 마저 걷는 인월-금계 구간(2017년 4월 29일)
 
긴 연휴입니다. 물론 노동절과 석가탄신일과 어린이날을 징검다리로 하는 3일을 쉬니 생기게 된 연휴입니다. 헌데 사람마음 참 간사합니다. 촛불에 쫓겨난 대통령을 다시 뽑는 9일과 일요일 사이 8일에도 놀았다면, 하는 생각이 다 드니 말입니다. 그런데요. 딴 나라에선 한 달 여름휴가 간다고 하던데. 어찌된 나라에선 며칠 쉬는 것 가지고도 사람을 이리 갈라서 서로 헐뜯게 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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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온 보람이 있습니다. 사흘 간 짐 맡기고 걸을 요량으로 잠 잘 곳도 미리 정하고 밥도 푸짐하게 먹었는데도 아직 해가 많이 남았으니 말입니다. 사실 처음 둘레길에 왔을 땐 더위 때문에 고생을 했고. 두 번짼 산행에 혀를 내둘렀더랬습니다. 해서 요번엔 하루에 딱 한 구간씩만 걷기로 하고 짐도 가볍게 하자 맘먹었던 겁니다.
 
장항마을 입구에 내리니 아직은 햇볕이 좀 따갑긴 하지만 바람이 시원하게 붑니다. 인월에서 숙소를 잡지 않고 왔다면 일찍 더워진 날씨에 땀 좀 흘렸겠지만요. 버스 한 번 더 타고 시간 좀 지체했다 싶은 게, 마침 걷기 딱 좋은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모내기 준비에 바쁜 농부님들을 뒤로 하고 당산소나무를 지나 가파른 산길로 바로 올라섭니다.
 
전해져오는 얘기일 뿐인지, 진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한때 운봉은 호수였다고 합니다. 그때 배가 넘다들던 물길이었다는데서 생겨난 곳이 여기 배너미재인데요. 가만, 이곳까지 물이 들어왔었다구요. 그럼 대체 호수가 얼마나 크고 깊었단 말입니까. 지금은 주촌이라 불리는 배마을, 배를 묶어뒀다는 고리봉, 배를 내려다보던 갈대밭이었던 노치마을까지 넓혀보면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요, 여긴 좀 높은데요.
 
그래도 재를 넘고 나니 내리막길과 평지길입니다. 늦은 보리밥을 든든히 먹어 그냥 지나치긴 했지만요. 산청, 함양 쪽에선 없었던 쉼터도 두 개나 있구요. 좀 더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황매암 쪽과 포장길을 따라 수성대를 지나 광천을 따라 가는 쪽이 갈리는 곳까진 말입니다. 그러니 처음 30여 분이 힘들지 그 뒤론 사뿐사뿐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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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에서 등구재를 넘어 왔으니 망정이지요. 인월에서 중군마을을 거쳐 아스팔트를 왔더라면요. 아마 열에 일곱은 왜 황매암쪽으로 왔을까, 했을 겁니다. 올라야 할 길이 만만치가 않거든요. 뭐 둘레길 걷는 재미를 산길이라고 한다면야 모르겠지만.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 정말이냐를 물을 정도니, 말 다했지 않습니까.
 
다행히 황매암을 지나고 긴 내리막길을 지난 후, 일 끝내고 돌아가는 트럭들이 오가는 중군마을부터는 평지입니다. 대신 깔끔하게 포장된 길이 걷기엔 좋지 않듯 발바닥이 아프네요. 더구나 인월교까진, 한가롭게 풀 뜯으며 놀고 있는 소떼들 아니었음 많이 지루했을 긴 제방길이 이어졌으니요. 그저 빨리 숙소로 가고 싶은 맘뿐입니다.
 
둘째 날, 걷고 또 걷는 제방길(2017년 4월 30일)
 
어제 중군마을을 지나면서 만났던 제방은 그야말로 세발에 피였습니다. 나중에 지도로 확인한 걸로는 부층탑이 조금 지난 곳부터 서림공원까지 대략 4km 이던데요. 나무가 심겨있긴 한데 키가 작아 그늘을 만들기 역부족인데다. 낮에 길을 걸어 해가 머리위에서 정면으로 넘어오는 바람에 좀체 속도가 안 납니다. <국악의 성지>가 아니었으면, 비전마을과 신기마을 앞 쉼터가 아니었으면 녹초가 됐을 겁니다.
 
아무튼 그건 길을 한참 걸은 후에 일이니까 조금 있다 얘기하구요. 지금은 인월(引月)부터 얘기부터 해야겠습니다. 애초 인월에 머물기로 했던 이유는 산내 쪽 여기저기를 둘러볼 요량이었는데요. 다행히 다리 하나만 건너면 한집 건너 민박을 하는 월평마을이 있으니 싸고 괜찮은 집을 쉽게 구했습니다. 콘도만큼은 아니어도 뭐라도 해먹을 수 있는 부엌까지 딸린 방이 하룻밤에 3만원이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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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늦은 점심을 푸짐히 먹었던 보리밥집은 둘레꾼이라면 한 번씩은 들렀을 곳이고. 순대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선지로 만들었다는 순댓국집도 좋겠습니다. 손 맛 좋기로 소문난 전라도니 어디라도 밥 한 끼 먹는 데 빠질 수야 없겠지만요. 여기 인월도 들어가는 식당마다 어찌나 맛나는지요. 한 번은 외출한다고 또 한 번은 해 놓은 밥 다 떨어졌다고, 세 번 만에야 청국장찌개를 먹었던 곳도 그랬습니다.
 
산이 좋아 왔다 아예 내려와 자리 잡고 일까지 하고 있다던, 이것저것 묻는 말에 귀찮아하기는커녕 맞장구치고 깔깔 웃으시던 분, 서투른 문자지만 소홀하게 한 건 아닌지 연신 안부를 물어주셨던, 사람 좋은 웃음으로 편하게 쉬다 가시라며 지내는 동안 눈치 한 번 주지 않았던 민박집 아줌씨, 아자씨. 혹여 길을 잃은 건 아닌지 궁금해하고, 좋은 길 잘 다니라 격려해주고. 사람 사는 냄새 물씬 풍깁니다.
 
책장 속 책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지요. 니어링부부가 쓴 책이며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 할 것인가>이 꽂혀 있는 책장 주인은요. 마을 한 복판에 이런 곳이 다 있나 싶은, 여기가 월평마을이라며 환영한다는 고흐와 2코스는 끝났으니 3코스는 가든지 말든지 “힘들다 빨리 찍고 가라”는 할머니 벽화가 공존하는 곳. 어찌 차 한 잔 마시지 않을 수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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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출발이 많이 늦습니다. 분명 집에선 일찌감치 나왔는데요. 운봉까진 천천히 걸어도 4시간이면 되겠지만요. 금방 아침 먹은 것 같은데 벌써 점심때입니다. 차라리 점심까지 든든히 먹고 한낮 더위 피해서 걸을까도 싶습니다만. 여유롭게 걷고 싶기도 하고 이것저것 둘러보면서 걷기도 싶어 결국 길을 나섭니다. 다행이 여기 인월이나 운봉이 지대가 높아 햇볕만 따갑지 걷기엔 좋습니다.
 
언뜻 보면 목장 같은데 고사리가 잔뜩 자라고 있는 월평마을 뒷산은 산책길입니다. 밤나무를 많이 심었다던데 밤나무보단 바람에 흔들리는 전나무가 더 눈에 들어오는 야트막한 오르막길입니다. 그래도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평상에 주저앉아 출출한 배를 시원한 열무국수로 채웁니다. 앞으로 운봉까진 식당은커녕 쉼터도 없으니 응당 쉬어가야지요.
 
수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군데군데 길이 다릅니다. 흙길이다가도 자갈길이 나오고, 처음과 끝엔 포장길인걸 보면 모두 포장을 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휴양림부터 시작된 꼬부랑길이 옥계저수지 아래 람천까지 그렇게 이어지는데요. 하천변 제방도 그렇고 산길도 그렇고. 흙길보단 포장길이 갈수록 늘어만 가니. 덕분에 발바닥이 좀은 아픕니다.
 
몇 년 전부터 여러 지자체에서 하천 정비한다고 하더니 여기도 그런가봅니다. 인월교에서도 탁한 물이 보이기에 어디서 공사하나 싶었는데요. 운봉까지 걸어야 하는데 물이 계속 흐립니다. 여기저기 강바닥에 돌 깔고 콘크리트치고 난리도 아닌 겁니다. ‘지리산생명연대’가 2011년에 낸 보고서에는 천연기념물 수달 서식지라던데요. 다 끝나진 않았겠지만 이래서야 있던 수달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날도 더운데다 그늘 하나 없는 제방길이라 걷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해서 더위도 피할 겸 볼일도 볼 겸 <국악의 성지>를 둘러보고자 길을 벗어납니다. 헌데 밖에서 볼 땐 큼지막한 건물이라 좀은 기대하고 들어가 봤는데요. 볼거리보다는 국악 하는 분들 연습하는 장소라고나 할까요. 그나마 판소리 열 두 마당부터 국악 성지 조성 경과를 친절히 설명해주신 어르신이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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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구경한 것도 없는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덕분에 한낮 더위는 피했으니 이 다시 제방 위로 올라서야겠습니다. 그늘 하나 없긴 하지만 비전, 신기마을엔 아름드리나무가 있어 잠깐씩 쉴 수 있습니다. 동학군을 막아섰던 박봉양을 기리는 비석을 큼지막하게도 세워 놓은 서림공원도 있지만요. 거긴 못마땅한 기분에 건너뜁니다. 곧 운봉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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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4 17:20 2020/05/04 17:20
사용자 삽입 이미지스물네 번째 여행 - 그냥, 다시 바닷길 따라 걷는 길(2017년 9월 30일)
 
올 여름 무던히도 내렸던 비 때문이었을까. 아니 부쩍 요상해진 날씨 탓에 늦더위가 아직까지 남아서일까. 지난주에 비해선 좀 덜한 것 같긴 한데 여전히 많다. 낼 모래가 10월이고 곧 추석이니 그래도 오늘은 물속에서보다 물 밖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아무리 배 밑이 투명하다해도 저렇게 많이 떠 있으면 물고기들이 다 도망갈 텐데. 다 틀렸다. 맛만 보고 얼른 떠야지. 맑디맑은 바다.
 
 
이웃한 갈남항에 예상치도 못한 마을박물관이 눈길을 잡아끈다. 안 그래도 호젓한 해변 모래밭이 발길을 붙들고 있지만서도. 자물쇠만 안 걸렸더라면 여서 걷기를 마쳐도 좋을 듯. 바다와 잠시 떨어진 해파랑길 대신 걷는 길이니. 어디서 멈춘들 돌아가기 버스타기 쉬우니 말이다. 괜히 길 없는 줄 뻔히 알면서 해변을 따라 마을 끝까지 가보기도 한다.
 
뭐 어촌민속전시관은 좀 관심이 가긴 했지만 아무리 풍습이고 문화라고 하지만. 그게 뭐 잘난 거라고 수십 개나 세워놓고 돈까지 받아 시큰둥했던 해신당은 표 파는 시간이 끝났단다. 지도를 보니 공원을 따라 가면 좀 덜 도는 것 같아 혹 했지만. 그래봐야 몇 분일 테고. 곧 해가 넘어갈 것 같아도 구불구불 내리막길을 타박타박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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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시간에 쫓기고 있는데 신남항에서 일이 생겼다. 그놈의 개. 묶여 있긴 하지만 어찌나 사납게 짖어대던지. 근래 하도 개에 물려 다친 사람들이 많아 잔뜩 긴장하고 다녔건만. 언제나 그렇듯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소리. 또 가까운 길 놔두고 돌아간다. 그것도 왔던 길 되돌아서. 못해도 30분은 허비했으니. 뒤에 임원항 입구에서 마주친 늑대 같던 개도 다 이 때문이다.

 
해는 산 너머로 졌고, 멀리 임원항 불빛이 아른아른. 내려가는 길인데다 오가는 차가 없어 다행이지, 겨우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열심히 걷는다. 아니 뜀박질이다. 헌데 저 앞, 개인 건 분명한데 목줄이 보이질 않는다. 늑대처럼 어슬렁어슬렁. 여서 버스를 타야하나. 두 눈 부릅뜨고 다시 살펴보니 그제야 주인이 줄을 잡아끈다. 놀란 가슴에 배고픈 줄도 모르고 내처 달려 허겁지겁 버스에 오른다.
 
* 스물네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해파랑길은 장호항 못미처 용화에서 바다와 멀어진다. 장호항도 그렇지만 갈남항, 신남항. 마을박물관, 해신당, 어촌민속전시관 등을 둘러보려면 어쩔 수 없이 바다를 따라 걸어야 한다. 장호항에서 임원항까지는 채 9km가 되지 않지만 구경할 게 많으니 시간은 넉넉히 잡아야 한다. 4시에 출발해 7시에 도착했으니 3시간이 걸린 셈.
 
* 가고, 오고
강릉에서 장호항으로 가는 완행 시외버스는 간격이 넓다. 해서 삼척까지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거기서 시내버스로 갈아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으니 웬만하면 완행버스를 타는 게 낫다. 임원에서도 역시 완행 시간을 맞춰 타고 오는 게 빠르다.
 
* 잠잘 곳, 먹을 곳
장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번잡하다 싶을 만큼 뭐가 많다. 갈남이나 신남은 장호에 못 미치는 게 아닌데도 호젓하다 못해 썰렁하기도 하다. 뭐 어디든 먹고 잘 데는 많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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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5 09:23 2019/10/15 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