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뿌연 먼지 사이를 뚫고 주천으로(2017년 5월 1일)
 
전라도를 비롯해 충청도 지역 곳곳이 그렀듯이 남원 역시 동학혁명군이 남긴 발자취들이 많습니다. 특히 김개남이 이끌던 농민군과 유생들로부터 지원을 받은 박봉양이 이끈 민보군 간의 싸움이 벌여졌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곳곳이 그렀듯이 혁명군이 남긴 흔적들은 애써 찾지 않으면 보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최근에는 방아치 전투지 비석이며, 혁명군 주둔지였음을 알리는 깃대바위가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 춘향이와 몽룡이로만 알려진 광한루원에도 어엿한 안내석이 세워졌습니다. 이는 동학혁명 당시 지휘부에서 활동했던,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해방 직후엔 남원 건국준비위원장까지 맡았던 류태홍 선생 덕분입니다.
 
그러니 비록 둘레길하고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부러 시간 내 찾아볼 만합니다. 더구나 운봉이나 주천을 가기 위해서는 남원을 반드시 거쳐야 하니까요. 농민군이 주둔했을 교룡산성, 훈련장이었던 요천(蓼川)쌈지공원, 남원부 관아로 동학대도회소로 쓰였던 곳, 패한 농민군이 남원성을 떠나던 북문(옛 남원역 부지) 터는 둘러보기 좋습니다.
 
운봉 역시 방아치와 여원재, 까막재 등 동학혁명과 관련된 곳들이 있으나 농민군이 끝내 넘지 못한 곳이라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아립니다. 또 민보군 거점으로 쌀을 저장했다 해서 합미성(合米城)이라고도 하는 합민성(合民城), 후에 일부가 훼손된 것 같아 보이는 ‘박봉양(일몰)장군비’가 있는 서림공원도 있으니 꼭 두루두루 살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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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인월에 가느라 또 오늘은 운봉에서 와 내렸던 운봉우체국 앞은 크기도 하고 비, 바람, 햇빛을 모두 피할 수 있어 좋습니다. 그제는 2시간 반, 어제는 4시간. 그리고 오늘은 6시간 남짓 걸어야 하니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는데요. 물도 준비하고 신발 끈도 다시 묶고 말입니다. 그러니 여기 정류장만큼 딱 좋은 곳이 또 있을까요.
 
미세먼지 소식에 마스크까지 챙겨들고 길을 나섭니다. 시계를 보니 12시. 어제마냥 제방길이 아니어서 다행이지 싶은 시간입니다. 양묘사업소까지 얼마 되지 않은 길이 어찌나 따갑던지요. 그래도 바로 양묘장이라 다행인가 싶었는데. 그늘은커녕 모심은 것 같은 소나무들만 빼곡. 게다가 뭔 도로 공사. 어찌나 어수선하던지요. 길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다행히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 금방 제 길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어쩔까요. 눈앞에 어제마냥 제방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아, 하, 한숨만 나옵니다. 그래도 어제보단 나무들 키가 조금은 큰지 그늘이 있네요. 나란히 걷진 못해도 줄지어 걸으면 해를 피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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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마을 입구 나무 아래 평상에서 잠시 숨을 고릅니다. 서어숲으로 이름난 곳이니 응당 그리로 가야겠는데 당장 힘드니 그렇게 됐는데요. 결국 이정표를 못 보고 마을을 가로질러 가 숲을 못 보고 갑니다. 아니요. 분명 되돌아와 마을길로 난 이정표를 찾았는데 아무리 길을 따라가도 숲이 나오질 않았던 겁니다. 대체 어디서 어긋난 걸까요.
 
덕산마을 앞 정류장까지는 평지 제방길이라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다만 배꼽시계가 하도 요란하게 울리기에 김밥이라도 먹어야겠습니다. 남원과 함양 구간들에는 막걸리며 파전 등을 파는 쉼터가 여럿 있기에 무겁게 뭘 요기할 것까지 가져가야하나 싶어 잠깐 망설이긴 했지만요. 막상 시간 맞춰 먹으려니 그것도 쉽지가 않더라구요.
 
배도 채웠고 쉴 만큼 쉬었고 둘레꾼들과 얘기도 나눴고. 덕산저수지를 끼고 이어지는 숲길은 소나무가 지천입니다. 그러다 길은 드넓은 저수지를 빼꼼 보여주다 오롯이 보여주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어느새 임도로 이어졌다가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농부들만 다니는 농로로 안내합니다. 이렇게 아기자기한 길이 또 어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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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덕산마을에서 만났던 이들인데 어째 저쪽 길에서 오는 걸까요. 아마 아까처럼 이정표를 놓쳤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얘길 들어보니 그쪽은 길이라도 찾았나 봅니다. 다른 이는 아예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길로 갔나봅니다. 아무리 표시가 잘 돼 있고 한길이라고는 하지만 방심은 금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1구간만큼은 거꾸로 걷는다고 합니다. 안 그럼 1시간이 넘게 가파른 오르막길, 아니 산행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덕치마을을 지나니 바로 이 산길이 시작되는데요. 이처럼 검은색 화살표를 따라 걷는다 해도 오르막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물론 주천에서 오는 길에 비하면 새발에 피겠지만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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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리지를 지나고 나니 분명 지도에는 구룡치라고 돼 있던데요. 아무 표시도 없고 이제 내려간다는 예고 같은 것도 없이 곧장 급경사, 내리막입니다. 시간이 늦은 탓에 아래서 올라오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가뜩이나 좁은 길에 꽤나 조마조마했을 뻔 했습니다. 그래도 조심 또 조심. 올라오는 것보다 배는 더 시간이 걸리는 것 같네요.
 
주천이 3.1km 남았다는 표지를 지나니 엔간히 내려왔나 봅니다. 계곡물도 들리고 뒤를 돌아보니 산꼭대기가 저 멀리 보이니요. 다시 주천 2.6km 표지 있는데서 남은 김밥도 먹고 힘을 내봅니다. 이제 넉넉잡아 한 시간이면 다 가겠지요. 다행히 여기서부터는 길도 좋습니다. 곧 펼쳐진 다랭이밭, 비료푸대 허수아비가 두 손 들어 반깁니다. 이제 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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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둘레길 걷기 다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첫째 날은 지난 번 걸었던 <인월-금계> 구간 중 장항마을부터 인월까지 약 7km를 2시간 30여분, 둘째 날은 <운봉-인월> 구간(9.9km)을 4시간에 걸쳐, 셋째 날은 <주천-운봉> 구간(14.7km)을 5시간 반 동안, 여전히 반대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 가고, 오고
강릉에서 인월은 시외버스만 두 번, 다시 군내버스나 시외버스를 타야 겨우 올 수 있습니다. 시간을 잘 맞춘다고 해도 여섯 시간은 잡아야 하니 멀긴 정말 먼데요. 참고로 강릉 출발 8시 30분, 대전에서는 12시 20분에 갈아탔습니다. 함양에서는 1시 50분 군내버스를 타고서야 겨우 2시 넘어 인월에 도착했답니다.
 
* 잠잘 곳
인월에는 게스트하우스가 한 곳, 다리 하나만 건너면 만나게 되는 월평마을(달오름마을)에 민박이 한집 건너 한집입니다. 그밖에 운봉읍과 인근 행정마을, 백두대간이 지나는 신기마을, 주천에도 숙박할 만한 곳이 꽤 있으니 한창 때가 아니면 따로 예약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인월은 운봉, 주천과 군내버스, 시외버스 한, 두 번으로 이어지는데다 밥집도 많고, 카페도 두 군데나 있으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에 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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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1 18:30 2021/03/11 18:30
첫째 날, 쉬엄쉬엄 마저 걷는 인월-금계 구간(2017년 4월 29일)
 
긴 연휴입니다. 물론 노동절과 석가탄신일과 어린이날을 징검다리로 하는 3일을 쉬니 생기게 된 연휴입니다. 헌데 사람마음 참 간사합니다. 촛불에 쫓겨난 대통령을 다시 뽑는 9일과 일요일 사이 8일에도 놀았다면, 하는 생각이 다 드니 말입니다. 그런데요. 딴 나라에선 한 달 여름휴가 간다고 하던데. 어찌된 나라에선 며칠 쉬는 것 가지고도 사람을 이리 갈라서 서로 헐뜯게 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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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온 보람이 있습니다. 사흘 간 짐 맡기고 걸을 요량으로 잠 잘 곳도 미리 정하고 밥도 푸짐하게 먹었는데도 아직 해가 많이 남았으니 말입니다. 사실 처음 둘레길에 왔을 땐 더위 때문에 고생을 했고. 두 번짼 산행에 혀를 내둘렀더랬습니다. 해서 요번엔 하루에 딱 한 구간씩만 걷기로 하고 짐도 가볍게 하자 맘먹었던 겁니다.
 
장항마을 입구에 내리니 아직은 햇볕이 좀 따갑긴 하지만 바람이 시원하게 붑니다. 인월에서 숙소를 잡지 않고 왔다면 일찍 더워진 날씨에 땀 좀 흘렸겠지만요. 버스 한 번 더 타고 시간 좀 지체했다 싶은 게, 마침 걷기 딱 좋은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모내기 준비에 바쁜 농부님들을 뒤로 하고 당산소나무를 지나 가파른 산길로 바로 올라섭니다.
 
전해져오는 얘기일 뿐인지, 진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한때 운봉은 호수였다고 합니다. 그때 배가 넘다들던 물길이었다는데서 생겨난 곳이 여기 배너미재인데요. 가만, 이곳까지 물이 들어왔었다구요. 그럼 대체 호수가 얼마나 크고 깊었단 말입니까. 지금은 주촌이라 불리는 배마을, 배를 묶어뒀다는 고리봉, 배를 내려다보던 갈대밭이었던 노치마을까지 넓혀보면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요, 여긴 좀 높은데요.
 
그래도 재를 넘고 나니 내리막길과 평지길입니다. 늦은 보리밥을 든든히 먹어 그냥 지나치긴 했지만요. 산청, 함양 쪽에선 없었던 쉼터도 두 개나 있구요. 좀 더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황매암 쪽과 포장길을 따라 수성대를 지나 광천을 따라 가는 쪽이 갈리는 곳까진 말입니다. 그러니 처음 30여 분이 힘들지 그 뒤론 사뿐사뿐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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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에서 등구재를 넘어 왔으니 망정이지요. 인월에서 중군마을을 거쳐 아스팔트를 왔더라면요. 아마 열에 일곱은 왜 황매암쪽으로 왔을까, 했을 겁니다. 올라야 할 길이 만만치가 않거든요. 뭐 둘레길 걷는 재미를 산길이라고 한다면야 모르겠지만.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 정말이냐를 물을 정도니, 말 다했지 않습니까.
 
다행히 황매암을 지나고 긴 내리막길을 지난 후, 일 끝내고 돌아가는 트럭들이 오가는 중군마을부터는 평지입니다. 대신 깔끔하게 포장된 길이 걷기엔 좋지 않듯 발바닥이 아프네요. 더구나 인월교까진, 한가롭게 풀 뜯으며 놀고 있는 소떼들 아니었음 많이 지루했을 긴 제방길이 이어졌으니요. 그저 빨리 숙소로 가고 싶은 맘뿐입니다.
 
둘째 날, 걷고 또 걷는 제방길(2017년 4월 30일)
 
어제 중군마을을 지나면서 만났던 제방은 그야말로 세발에 피였습니다. 나중에 지도로 확인한 걸로는 부층탑이 조금 지난 곳부터 서림공원까지 대략 4km 이던데요. 나무가 심겨있긴 한데 키가 작아 그늘을 만들기 역부족인데다. 낮에 길을 걸어 해가 머리위에서 정면으로 넘어오는 바람에 좀체 속도가 안 납니다. <국악의 성지>가 아니었으면, 비전마을과 신기마을 앞 쉼터가 아니었으면 녹초가 됐을 겁니다.
 
아무튼 그건 길을 한참 걸은 후에 일이니까 조금 있다 얘기하구요. 지금은 인월(引月)부터 얘기부터 해야겠습니다. 애초 인월에 머물기로 했던 이유는 산내 쪽 여기저기를 둘러볼 요량이었는데요. 다행히 다리 하나만 건너면 한집 건너 민박을 하는 월평마을이 있으니 싸고 괜찮은 집을 쉽게 구했습니다. 콘도만큼은 아니어도 뭐라도 해먹을 수 있는 부엌까지 딸린 방이 하룻밤에 3만원이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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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늦은 점심을 푸짐히 먹었던 보리밥집은 둘레꾼이라면 한 번씩은 들렀을 곳이고. 순대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선지로 만들었다는 순댓국집도 좋겠습니다. 손 맛 좋기로 소문난 전라도니 어디라도 밥 한 끼 먹는 데 빠질 수야 없겠지만요. 여기 인월도 들어가는 식당마다 어찌나 맛나는지요. 한 번은 외출한다고 또 한 번은 해 놓은 밥 다 떨어졌다고, 세 번 만에야 청국장찌개를 먹었던 곳도 그랬습니다.
 
산이 좋아 왔다 아예 내려와 자리 잡고 일까지 하고 있다던, 이것저것 묻는 말에 귀찮아하기는커녕 맞장구치고 깔깔 웃으시던 분, 서투른 문자지만 소홀하게 한 건 아닌지 연신 안부를 물어주셨던, 사람 좋은 웃음으로 편하게 쉬다 가시라며 지내는 동안 눈치 한 번 주지 않았던 민박집 아줌씨, 아자씨. 혹여 길을 잃은 건 아닌지 궁금해하고, 좋은 길 잘 다니라 격려해주고. 사람 사는 냄새 물씬 풍깁니다.
 
책장 속 책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지요. 니어링부부가 쓴 책이며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 할 것인가>이 꽂혀 있는 책장 주인은요. 마을 한 복판에 이런 곳이 다 있나 싶은, 여기가 월평마을이라며 환영한다는 고흐와 2코스는 끝났으니 3코스는 가든지 말든지 “힘들다 빨리 찍고 가라”는 할머니 벽화가 공존하는 곳. 어찌 차 한 잔 마시지 않을 수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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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출발이 많이 늦습니다. 분명 집에선 일찌감치 나왔는데요. 운봉까진 천천히 걸어도 4시간이면 되겠지만요. 금방 아침 먹은 것 같은데 벌써 점심때입니다. 차라리 점심까지 든든히 먹고 한낮 더위 피해서 걸을까도 싶습니다만. 여유롭게 걷고 싶기도 하고 이것저것 둘러보면서 걷기도 싶어 결국 길을 나섭니다. 다행이 여기 인월이나 운봉이 지대가 높아 햇볕만 따갑지 걷기엔 좋습니다.
 
언뜻 보면 목장 같은데 고사리가 잔뜩 자라고 있는 월평마을 뒷산은 산책길입니다. 밤나무를 많이 심었다던데 밤나무보단 바람에 흔들리는 전나무가 더 눈에 들어오는 야트막한 오르막길입니다. 그래도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평상에 주저앉아 출출한 배를 시원한 열무국수로 채웁니다. 앞으로 운봉까진 식당은커녕 쉼터도 없으니 응당 쉬어가야지요.
 
수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군데군데 길이 다릅니다. 흙길이다가도 자갈길이 나오고, 처음과 끝엔 포장길인걸 보면 모두 포장을 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휴양림부터 시작된 꼬부랑길이 옥계저수지 아래 람천까지 그렇게 이어지는데요. 하천변 제방도 그렇고 산길도 그렇고. 흙길보단 포장길이 갈수록 늘어만 가니. 덕분에 발바닥이 좀은 아픕니다.
 
몇 년 전부터 여러 지자체에서 하천 정비한다고 하더니 여기도 그런가봅니다. 인월교에서도 탁한 물이 보이기에 어디서 공사하나 싶었는데요. 운봉까지 걸어야 하는데 물이 계속 흐립니다. 여기저기 강바닥에 돌 깔고 콘크리트치고 난리도 아닌 겁니다. ‘지리산생명연대’가 2011년에 낸 보고서에는 천연기념물 수달 서식지라던데요. 다 끝나진 않았겠지만 이래서야 있던 수달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날도 더운데다 그늘 하나 없는 제방길이라 걷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해서 더위도 피할 겸 볼일도 볼 겸 <국악의 성지>를 둘러보고자 길을 벗어납니다. 헌데 밖에서 볼 땐 큼지막한 건물이라 좀은 기대하고 들어가 봤는데요. 볼거리보다는 국악 하는 분들 연습하는 장소라고나 할까요. 그나마 판소리 열 두 마당부터 국악 성지 조성 경과를 친절히 설명해주신 어르신이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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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구경한 것도 없는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덕분에 한낮 더위는 피했으니 이 다시 제방 위로 올라서야겠습니다. 그늘 하나 없긴 하지만 비전, 신기마을엔 아름드리나무가 있어 잠깐씩 쉴 수 있습니다. 동학군을 막아섰던 박봉양을 기리는 비석을 큼지막하게도 세워 놓은 서림공원도 있지만요. 거긴 못마땅한 기분에 건너뜁니다. 곧 운봉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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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4 17:20 2020/05/04 17:20
사용자 삽입 이미지스물네 번째 여행 - 그냥, 다시 바닷길 따라 걷는 길(2017년 9월 30일)
 
올 여름 무던히도 내렸던 비 때문이었을까. 아니 부쩍 요상해진 날씨 탓에 늦더위가 아직까지 남아서일까. 지난주에 비해선 좀 덜한 것 같긴 한데 여전히 많다. 낼 모래가 10월이고 곧 추석이니 그래도 오늘은 물속에서보다 물 밖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아무리 배 밑이 투명하다해도 저렇게 많이 떠 있으면 물고기들이 다 도망갈 텐데. 다 틀렸다. 맛만 보고 얼른 떠야지. 맑디맑은 바다.
 
 
이웃한 갈남항에 예상치도 못한 마을박물관이 눈길을 잡아끈다. 안 그래도 호젓한 해변 모래밭이 발길을 붙들고 있지만서도. 자물쇠만 안 걸렸더라면 여서 걷기를 마쳐도 좋을 듯. 바다와 잠시 떨어진 해파랑길 대신 걷는 길이니. 어디서 멈춘들 돌아가기 버스타기 쉬우니 말이다. 괜히 길 없는 줄 뻔히 알면서 해변을 따라 마을 끝까지 가보기도 한다.
 
뭐 어촌민속전시관은 좀 관심이 가긴 했지만 아무리 풍습이고 문화라고 하지만. 그게 뭐 잘난 거라고 수십 개나 세워놓고 돈까지 받아 시큰둥했던 해신당은 표 파는 시간이 끝났단다. 지도를 보니 공원을 따라 가면 좀 덜 도는 것 같아 혹 했지만. 그래봐야 몇 분일 테고. 곧 해가 넘어갈 것 같아도 구불구불 내리막길을 타박타박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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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시간에 쫓기고 있는데 신남항에서 일이 생겼다. 그놈의 개. 묶여 있긴 하지만 어찌나 사납게 짖어대던지. 근래 하도 개에 물려 다친 사람들이 많아 잔뜩 긴장하고 다녔건만. 언제나 그렇듯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소리. 또 가까운 길 놔두고 돌아간다. 그것도 왔던 길 되돌아서. 못해도 30분은 허비했으니. 뒤에 임원항 입구에서 마주친 늑대 같던 개도 다 이 때문이다.

 
해는 산 너머로 졌고, 멀리 임원항 불빛이 아른아른. 내려가는 길인데다 오가는 차가 없어 다행이지, 겨우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열심히 걷는다. 아니 뜀박질이다. 헌데 저 앞, 개인 건 분명한데 목줄이 보이질 않는다. 늑대처럼 어슬렁어슬렁. 여서 버스를 타야하나. 두 눈 부릅뜨고 다시 살펴보니 그제야 주인이 줄을 잡아끈다. 놀란 가슴에 배고픈 줄도 모르고 내처 달려 허겁지겁 버스에 오른다.
 
* 스물네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해파랑길은 장호항 못미처 용화에서 바다와 멀어진다. 장호항도 그렇지만 갈남항, 신남항. 마을박물관, 해신당, 어촌민속전시관 등을 둘러보려면 어쩔 수 없이 바다를 따라 걸어야 한다. 장호항에서 임원항까지는 채 9km가 되지 않지만 구경할 게 많으니 시간은 넉넉히 잡아야 한다. 4시에 출발해 7시에 도착했으니 3시간이 걸린 셈.
 
* 가고, 오고
강릉에서 장호항으로 가는 완행 시외버스는 간격이 넓다. 해서 삼척까지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거기서 시내버스로 갈아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으니 웬만하면 완행버스를 타는 게 낫다. 임원에서도 역시 완행 시간을 맞춰 타고 오는 게 빠르다.
 
* 잠잘 곳, 먹을 곳
장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번잡하다 싶을 만큼 뭐가 많다. 갈남이나 신남은 장호에 못 미치는 게 아닌데도 호젓하다 못해 썰렁하기도 하다. 뭐 어디든 먹고 잘 데는 많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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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5 09:23 2019/10/15 09:23

스물세 번째 여행 - 해파랑길 ⑤ 달갑지 않은 기찻길과 함께 한 30구간(2017년 8월 26일)

 

느긋이 길을 나선다. 점심까지 먹고. 그도 그럴 것이 30구간은 7km. 시작점인 용화를 지나 장호항까지 조금 더 걸어도 채 8km가 안 된다. 그러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 궁촌부터 원평, 문암, 용화 장호까지 고만고만한 모래톱을 찬찬히 걷겠다고 해도. 초곡항과 장호항을 두루두루 둘러보겠다고 해도 반나절이면 되니. 날이 선선해졌어도 아직 한 낮 해는 따가우니 것도 피할 겸. 궁촌에 도착하니 4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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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가 아니었음 공양왕릉이 좀 더 알려졌을까? 바이크라도 있으니 공양왕릉이 알려지는 걸까? 바이크 매표소에는 북적북적한데 문화해설사의 집 앞은 썰렁하기만 하다. 하긴 지나면서 봤던 <이사부사자공원>만큼도 해놓지 않았으니 누가 눈길이나 줄까. 도처에 있는 능이란 능을 다 꾸며 놓자는 얘긴 아니지만, 변변한 표지 하나 찾기 힘들다. 공양왕이 대체 누굴까.

 

30구간은 문암해변에서 초곡을 지나 용화해변까지만 빼곤 바이크가 다니는 기찻길과 나란히 걷는다. 궁촌해변은 방풍림으로 조성된 소나무들 사이로 길이 나 있어 햇살을 피할 수 있어 그나마 낫지만. 너머다만 봐도 꽤나 멋진 풍경을 보여줄 만한 곳인데 바이크 이용자가 아니면 들어가지도 못하고. 바이크가 다 지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건널목도 있으니. 그게 그렇게 달갑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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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문암해변 지나 만난 초곡마을과 몬주익 언덕이 이만치는 했을라나, 아니 배는 더 높아 보이는 언덕길을 올라서면. 힘든 길도 다 끝나니 조금은 심심하기도 하다. 그러니 꽤나 크게 만들어놨으나 영 관리가 시원치 않은 기념관이라도 둘러봐야 쉬어가기 좋을 듯. 한 여름에 걷는 사람이 없으니 길 찾기도 쉽지 않은 산길 대신 옛 국도를 걷는 게 그리 쉽진 않으니 그렇다.

 

자동자전용도로란 이름으로 7번 국도가 산 뚫고 다리 놓아 새로 생긴 후 옛 국도에는 자전거 종주길이 생겼다. 덕분에 해파랑길을 걷는 사람들도 넓어진 갓길에 길 걷기가 한결 수월하다. 해파랑길 자체가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 많진 않지만 가끔 만나는 이런 큰 길도 걱정거리가 안 되니 말이다. 다만 오늘처럼 여름 휴가철이 다 끝났다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빼고는.

 

나폴리니 어쩌니 하는 얘기로 잔뜩 기대했던 장호항은 난장이다. 비좁은 마을길, 인도는커녕 양쪽에서 쉴 새 없이 오가는 차들로 걷기조차 힘들다. 호젓한 곳에서 회에 소주나 할까 했는데 이래서야 뭘 먹을 수나 있을까. 강릉가는 시외버스도 서고 좌석버스도 자주 다니고. 맘 편히 먹으려면 아무래도 빨리 오는 차타고 여길 떠야 할 듯. 다행히 시내 들어가는 버스가 금방 정류장에 들어선다. 빨간 노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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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세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30구간은 난데없는 기찻길과 나란히 이어진다. 레일바이크 궁촌역에서 용화역까지. 해파랑길 홈페이지에는 7km로 2시간 30분이 걸린다고 소개돼 있으나 해변에서 노닥거리고 황영조 기념공원도 둘러보고 하니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용화에서 장호항까진 1km가 채 안 되니 그걸 감안해도 꽤 걸린 셈. 

 

* 가고, 오고
해파랑길 홈페이지(http://www.haeparanggil.org/?main)를 참고.

 

* 잠잘 곳, 먹을 곳
레일바이크가 시작되는 곳인데도 궁촌에는 슈퍼하나 찾기 힘들다. 하지만 원평부터는 민박집도 많고 여름철에는 간이매점도 드문드문 보인다. 용화와 장호는 생각했던 것보다 번잡스러워 많이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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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2 18:06 2019/03/02 18:06

스물두 번째 여행 - 해파랑길 ④ 심심하다 못해 지루했던 31구간(2016년 10월 8일)

 
가을이다. 맑고 높은 하늘과 뭉게구름, 산들산들 부는 바람과 코스모스. 언제부터였는지 한, 두 주 정도만 놓치면 봄, 가을을 느낄 수 없는데 다행이지 싶다. 고성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라 해가 앞쪽에서 내려쬐는 것만 아니면 이보다 걷기에 좋은 날씨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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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교를 넘어 호젓한 마을길을 지나니 양 옆으로 어떤 곳은 벼 베기가 끝났고, 또 어떤 곳은 아직 물을 빼고 있는 논이 양 옆으로 펼쳐진다. 겨우 경운기나 한 대 지나갈, 분명 논두렁길이었음이 분명한데 콘크리트로 발라진 길 사이로 말이다. 그 길로 땡볕에 메뚜기가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

 

여기저기 추수가 끝난 논바닥에 넣은 퇴비 탓일까. 겉보기엔 우사인데, 케이지마다 개들이 들어차 있는 곳을 지나니 악취가 진동한다. 오리인지 닭인지 당체 알아보기도 힘든 캄캄한 하우스 안에서도 코를 찌르는 썩은 내가 풀풀 난다.

 

이젠 겨울만 됐다하면 조류독감과 구제역이 온 나라를 휩쓴다. 대책 없이 파묻는 것도, 애꿎은 철새만 동네북 되는 것도 매년 되풀이된다. 언제부터 고기를 이리도 많이 먹었던가, 조금만 생각하고 주변을 돌아봐도 알 터인데. 아무래도 날씨만 좋은가 보다.    

 
다리 건너 좌측으로 이어진 길은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우후죽순 만들어지고 있는 길들이 이름만 있을 뿐이라는 기사가 떠오른다. 겨우 사람이 지나간 흔적만 있을 뿐 이정표도 없다. 다행히 좀 지나 둔치가 나온다. 하지만 그늘 하나 없는 땡볕 아스팔트다. 아까 본 메뚜기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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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동막초등학교 앞까지 와서야 겨우 버스정류장에서 해를 피한다. 주변엔 가게 하나 없다. 뭔 생각이었는지, 아니 뭐가 바빴는지 물도 안 가져 왔다. 그나마 자판기가 하나 있어 탄산음료수로 목을 축인다. 먹을 때뿐이고 되레 더 갈증 나게 하는 걸 알지만.  
     
 
표지판으로는 2.7km가 남았다. 느긋이 걸어도 1시간이면 되겠는데, 난데없는 도라지 공장에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터벅터벅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예고 없이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보며 신나게 내달리니 금방 궁촌이다. 헌데 45분이 걸렸으니 빨리 걸은 건가? 늦은 건가?
 
 

* 스물두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31구간은 팔이구기념공원에서 시작해 공양왕릉이 있는 궁촌까지 9km가 채 안 된다. 해서 7km인 30구간과 연결해 걸으면 느긋이 걸어도 하루면 충분할 듯하다. 

 

* 가고, 오고
해파랑길 홈페이지(http://www.haeparanggil.org/?main)를 참고.

 

* 잠잘 곳, 먹을 곳
근덕면사무소 근처에는 식당이 여럿 있지만 궁촌까지는 슈퍼 하나 찾아보기 어렵다. 당연히 간식이나 물은 미리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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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0 12:51 2018/06/10 1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