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지-대다: 한 가지 일을 단락 지어 치우다
 
겨우내 든 촛불이 끝내 이겼습니다. ‘바람 불면 꺼질 거’라던 그 ‘촛불’이 말입니다. 끝까지 문 걸어 잠그고 제 하고 싶은 말만 하던 박근혜가 청와대에서 쫓겨났고. 국정을 농단했던 자들은 하나, 둘 법정에 서고. 앞장서 ‘창조’니 ‘정상화’를 소리쳤던 이들은 숨죽이고 있으니. 이만하면 ‘잘 했다’ 등 토닥이며 ‘박근혜 없는 봄’을 만끽할 만합니다. 하지만요. 쫓겨나가는 와중에도 끝까지 사과는커녕 웃음꽃을 피우는 모습, 난데없는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감싸고 울고 있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려니요. 이제 겨우 ‘탄핵’이라는 한 가지 일을 단락 지어 치웠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긴요. 지난 10여 년 간 줄곧 ‘잃어버린 10년’을 외쳤던 이들이니 어디 쉽게 물러나겠습니까요. 게다가 아직 감추고 폐기하지 못한 것들이 어디 한, 두 가지 여야지요. ‘블랙리스트’도 그렇고, ‘세월호’도 그렇습니다. 또 곳곳에 남아 있는 부역자들도 어디 한, 둘이어야지요. 국정원에도 그렇고 검찰에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아직 ‘촛불’을 꺼서는 안 되겠습니다. 권력 뒤에 숨어, 권력을 앞세워 떵떵거렸던 이들을 모두 야무지게 몰아내 메지대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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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3 16:39 2017/03/23 16:39
사용자 삽입 이미지스무 번째 여행 - 해파랑길 ② 기찻길 따라 걷는 길: 동해시 묵호역에서 추암까지 33구간
 
첫째 날, 기찻길 따라 묵호역에서 동해역까지(2015년 7월 4일)
 
이주 만에 또 나왔다. 여기저기 산허리에 구멍 뚫고 고속전철인가를 놓느라 폐쇄된 강릉역만 아니었다면 금방 왔을 텐데. 버스타고 시외버스타고 다시 또 버스타고. 1시간이면 올 거리를 2시간은 족히 걸린 듯하다. 그래도 집 나올 땐 꾸물꾸물하던 날씨가 맑게 개여서 그걸로 괜찮다. 
 
발한삼거리에서 늘 지나던 묵호역 앞 대신 뒤편 골목길로 해파랑길이 이어진다. 여길 얼마나 왔다 갔다 했는데 이런 길이 있나 싶다. 지도를 보니 묵호역이 아닌 묵호항역으로 향한다. 묵호역이 아니라 묵호항역이라, 이것도 처음이다. 호기심에 길 이쪽저쪽을 둘러보니 어렸을 적 뛰놀던 골목들과 고개 마루다. 배고프단 핑계 삼아 향로시장으로 들어선다.
 
묵호는 묵호항이 석탄을 실어 날랐던 곳이어서 종종 거기서 잘 못 연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깊고 맑은 바닷물이 검게 보이는 것처럼 거기서 따왔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 곳은 물도 검고 바다도 검고 물새도 검으니 먹 묵(墨)자를 써서 묵호(墨湖)라고 하는 게 좋을 듯하구나."라는 유래는 곧 몸이 까만 새, 가마우지와도 연결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묵호항역은 화물을 실어 나르는 역이라 처음부터 광장이란 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역 바로 앞 길 건너편으로 집들이 붙어 있다. 하지만 오래 전에 비워졌는지 깨진 창들이며 열려진 문들, 무너져 내린 벽까지 을씨년스럽다. 역 안쪽에 뜬금없이 서 있는 돌하르방만이  쇄락한 마을을 지키고 있다.
 
빈집 지키는 개들 소리만 요란한 묵호항역을 뒤로하고 철길 따라 바다 쪽으로 향하니 작지만 아기자기한 모래사장이 나온다. 하평해변이다. 정식으로 문을 연 건 아닌데 그래도 사람들이 많다. 열풍이 불고 있는 캠핑 족들이 풍기는 고기 냄새만 아니라면 딱 발 담그고 놀기 좋으련만. 쫓기듯 냄새 때문에 자리를 뜬다.
 
멀리 묵호항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정자가 가까이 있다. 아까 쉬지 못한 보상일까. 발 뻗고 바닷바람 맞으면 한참을 쉰다. 헌데 가만 보니 누군가 벗어놓고 간 신발 한 짝과 밀짚모자가 보인다. 해변은 아까 왔던 데까지 가면 꽤나 멀고, 정자 앞은 낭떠러지로 아래가 철길인데. 무슨 일이야 있겠냐싶지만 괜히 등골이 서늘해진다.
 
정자에서 내려오니 땡볕이다. 한낮을 피해 걷는다고 4시 다돼서 걷기 시작했는데도 이렇다. 대로 건너편은 그나마 그늘이 지는데 이쪽으론 해가 바로 머리 위다. 아까까진 좋았는데 괜한 걱정에 서둘러 나섰나 보다. 해가 잦아들 때까지 천천히 기다리며 한숨 자둘 것을. 어쩔 수 없다. 모자라도 푹 눌러쓰고 부채로 피해봐야지.
 
다행히 한섬해변에서부터 솔 숲 산책길이다. 강릉에서 한참을 걸었던 소나무 숲에 비하면 미니어처 같기도 하지만, 요리조리 소나무 사이를 피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감로수가 나온다는 감추사(甘秋寺)를 지나서부터는 야생화가 잔뜩 핀 곳, 조릿대가 늘어선 곳, 기찻길 따라 바다도 보였다 안 보였다. 산책길이 다 같은 산책길이 아니네.
 
아이들 급식할 돈은 없다면서도 골프 사랑만큼은 지극하신 어느 도지사를 떠올리게 하는 골프장에서부터 산책길이 끝이다. 산책길이 끝났다는 건 곧 땡볕이라는 뜻. 동해역이 코앞이지만 그늘 하나 없는 길이 계속된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진가보다. 어차피 추암은 버스 편이 좋지 않아 버스가 자주 다니는 곳 어디서 멈출 생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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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기찻길 따라 동해역에서 추암을 지나 삼척 증산마을까지(2016년 5월 14일)
 
강릉이 생각보단 외진 곳이라 연휴가 아니면 전라도나 경상도, 아니 충청도 쪽은 생각지도 못한다. 그래서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하는 연휴 때면 곧장 밖으로 쏘다닌다. 덕분에 바닷길 걷기 속도가 느리다. 물론 바우길을 이어 붙여 걷는다고 시간을 보냈다지만. 2010년 2월 7일에 고성에서 출발했는데 이제 동해니, 말 다했다.
 
해서 이주 전에 지리산을 다녀와 조금은 피곤한데도 날 좋다는 핑계로 길을 나섰다. 생각해보면 땅끝에서 고성까진 한 달에 두, 세 번 걸을 때도 있었지만 3년 만에 다 걸었는데. 바닷길 걷기는, 맞다. 아직 반도 채 안 됐는데 5년 넘게 걸었으니. 아무래도 이러다간 10년은 족히 걸리지 않을 듯싶다. 허나 언제까지다 정해놓은 것 없으니 서두를 필요도 없다.
 
더구나 오늘처럼 강릉 살면서도 손꼽을 만치 파란 바다와 파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을 볼 수 있는 날엔 더 그렇다. 그러니 한 번에 오는 시외버스대신 버스타고 다시 셔틀버스를 타야 하는 번거로움도 다 마다한다. 하지만 배고픔 앞엔 장사 없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얼른 자장면이라도 한 그릇씩 후딱 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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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옆에 이런 길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실은 해파랑길 홈페이지에서 지도를 출력할 때만 긴가민가했다. 아무리 봐도 여기로 가는 게 맞나. 헌데 버젓이 리본도 달려 있고 표시도 명확하다. ‘해파랑길 33코스 해물금길’. 처음엔 그래도 차가 다닐 만치 길이 뚜렷한데, 밭인지 공원인지 불분명한 곳도 지나고. 고가도로 밑을 지나더니 하천을 건너다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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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평과선교 밑을 지나고 나니 거의 모든 도시가 앞 다퉈 만들어내고 있는 예의 그 하천 옆 산책길로 연결된다. 다른 게 있다면 바다가 가깝고 물이 맑아서일까.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강물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 자전길과 산책길이 나누어져 있는 것부터 운동기구, 잔디밭, 의자, 운동장까지 강릉 남대천변과 엇비슷하다.  
 
산책길이 끝나니 바다다. 하지만 아까부터 눈에 거슬렸던 시멘트 공장이 바다 풍경을 가로막고 있다. 게다가 군부대 철조망까지 더해지니 이건 영 아니지 싶다. 그래도 잠깐이지만 철책을 끼고 소나무 숲길을 걸을 땐 조금 낫는가 싶었는데. 이번엔 미세먼지 주범, 화력발전소에 석탄을 실어 나르는 트럭이 쉼 없이 질주하는 대로다. 그것도 땡볕에.
 
추암을 바로 코앞에 두고 리본이 이쪽저쪽이다. 조각공원 쪽에도 보이고 지금껏 걸어왔던 공단길에도 바람에 날린다. 공사를 하고 있어서 더 그런지 모르겠는데, 암튼 길이 헛갈린다. 모로 가도 추암만 가면 되겠거니 싶은데 쉽지 않은 셈. 에라, 모르겠다. 일단 조각공원 쪽으로 올라선다. 그쪽이 바다도 가깝고 나무도 있으니 해는 피할 수 있겠지.
 
다행이 아까처럼 철조망을 바로 옆에 끼고 데크로 만든 길이 보이니 잘 찾아온 셈. 더구나 아찔한 절벽 옆에 있는 만큼 바다 풍경이 끝내준다. 또 촛대바위 하나 보겠다고 온 수 많은 사람들을 비켜서서 추암을 볼 수 있는 전망대로도 훌륭하다. 북평해암정하고 추암촛대만 건너뛰면 발 담그고 논 추암해수욕장까지. 해물금길 마지막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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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지난번부터 해파랑길을 걷는다. 앞으로도 쭉 그 길을 걸을지 바다를 따라 갈지 딱히 정하지는 않았다. 이번도 해파랑길을 걸었는데 아기자기한 맛이 바우길 못지않다. 아무래도 차도를 다니는 것보다 낫기도 하니 부산까진 이 길을 걸을 듯하다. 추암에서 묵호역까지 어이지는 33구간은 13.3km로 바삐 걸으면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는다.   
 
* 가고, 오고
묵호역은 강릉역이 폐쇄되기 전엔 참 쉽게 갔을 터인데. 정동진까지 버스타고 가서 기차를 타던가, 터미널 가서 시외버스타고 또 버스타고 가던가. 암튼 1시간 남짓이면 될 것을 2시간 걸려 가야한다. 2017년 말까진 하는 수 없다. 
 
* 잠잘 곳, 먹을 곳
동해역에서 추암까지를 제외하면 곳곳에 먹을 곳, 잠잘 곳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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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7 09:56 2017/03/17 09:56
사용자 삽입 이미지열아홉 번 째 여행 - 해파랑길 걷기 ① 동네 개들 다 나왔나보네: 옥계에서 묵호까지 34구간(2015년 6월 21일)
 
메르스와 가뭄으로 곳곳이 난리다. 텅 빈 도심과 쩍쩍 갈라진 논밭이 국민들 마음일까.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 이번에도 무능(無能)만을 보여주는 정부. 또 그걸 바라보는 국민들 마음 말이다. ‘살려야 한다’는 문구 앞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마른 논을 향해 소방호수를 부여잡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인기가요 순위만큼이나 자주 발표되는 여론조사 지지도?
 
강화도와 경기북부, 강원도 지역은 예년에 비해 강수량이 절반이란다. MB와 새누리당은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면서 분명 가뭄에 도움이 될 거라 했지만. 이제와 또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수로를 놔야한다고 하면 그건 분명 사기다. 하기야 약속은 자기가 해놓고 보상보육 이행은 지방정부가, 교육청이 하라고 하는 마당이니 아니라 해도 별 탈 없을 듯.
 
다행인지 지난주에 소나기가 몇 번 왔다. 그래서일까. 군데군데 가뭄피해로 보이는 메마른 밭이 보이기는 했지만. 옥계를 벗어나 작은 고개 하나를 넘고 만난 들녘엔 초록색 벼들이 씩씩하다. 해갈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하는 얘기들이 있어 걱정을 했더랬는데. 가뭄 속에 걷는 시골길, 그나마 마음이 좀은 덜 무겁다.
 
하지만 산길로 접어드는 길가 밭은 푸석푸석하다. 그 가운데 고추며 옥수수는 그나마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대신 감자 꽃은 제대로 피지도 못한 것처럼 꽃대가 축 늘어져 있다. 고구마도 한창 줄기를 뻗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하고. 하우스에 토마토만 주렁주렁 매달렸다. 그렇다. 가뭄이 끝나기엔 아직 멀었으니, 오늘은 조심조심 걸어야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지난 번 <헌화로 산책길>을 마지막으로 바우길이 끝났다. 2012년 5월에 13구간 <향호 바람의 길>을 시작했으니 꼭 3년 만이다. 처음 바우길을 걸었을 땐 13구간이었는데 그 동안 2개 구간이 추가됐다. 그 중 동해안 바닷길 걷기를 하면서 11개 구간을 걸었으니 거진 바우길을 다 걸은 셈이다.  
 
이제 7번 국도를 따라 곧장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다행히 심심치 않게 해파랑길이 기다리고 있다. 생각해보면 바우길 대신 7번 국도를 따라 해안길을 걸었다면 울진도 더 지났을 시간이긴 하다. 하지만 바다만 끼고 걷는 것보단 바닷가 마을과 산을 이어주는 길을 걷는 게 훨씬 재미 지니, 것도 괜찮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70km를 잇는 길이다. 중간 중간 강릉 바우길, 영덕 블루로드와도 겹치고 얼마 전 개통한 동해안 자전거길과도 함께한다. 이 길이 없었다면 7번 국도를 따라 지루한 아스팔트길을 걸었을 터. 덕분에 동해안 이곳저곳을 두루 걸을 수 있으니 시간이 좀 더 걸려도 상관없다.
 
옥계는 면소재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치 조용하다. 장날이나 되어야 북적부적하려나, 토요일임에도 버스 정류장 말고는 나중에 수도 없이 만나게 되는 개조차 보이질 않는다. 다행히 해가 쨍쨍 내리쬐긴 하지만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덥진 않다. 한 시간 쯤 후에 만나게 될 산길만 빼면 동네 산책 나온 길인 듯.
 
하지만 계곡물도 바짝 마른 산길 초입에서 개 세 마리가 요란하게 짖는다. 다행히 묶여 있는 것 같은데, 어째 지나가기엔 길이 매우 좁아 보인다. 버젓이 집 방문 앞을 지나는 이 길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목줄이 조금이라도 길면 다리까지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다행이 주인 할머니가 길이 맞으니 쭈욱 올라가면 되고, 개는 묶여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30분쯤 산길을 오르니 여기서부턴 <옷재>라는 이정표와 함께 동해시와 강릉시를 구분하는 안내판이 보인다. 중간에 한 번, 개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쉬었으니 그다지 높은 것 같진 않다. 경사도 그리 가파르지 않고, 바람만 안 불었다는 것 빼곤 힘들지 않다. 그래도 제일 높은 데 올랐으니 잠깐은 쉬었다 가야겠지. 
 
조용한 마을길을 지나 산불감시초소에서 또 잠깐 쉬었다 고개를 넘는데. 이번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멀리서 들리는 개소리에, 숲 속에서 고라니가 먹이 찾는 소리에 오금이 저린다. 고라니는 저도 놀랐는지 길 이쪽에서 저쪽으로 성큼성큼 뛰더니 숲 속으로 몸을 감춘다. 그제야 숨을 내쉬며 주의를 돌아보니 멀리 마을이 보인다. 
 
서둘러 고개를 내려와 여기가 어딘가 살펴보니 약천마을이란다. 한번쯤 들어봤을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를 지은 남구만이 살았던 곳이라는데. 가만 보니 유적지 바로 옆 우물이 꽤나 시끄러웠던 곳이다. 여기서 살고 있는 분들에겐 미안한 마음이지만 섬뜩한 기분이 드는지라 발걸음이 빨라진다. 어쩔 수 없다.
 
헌데 그 오싹함이 채 가시기도 전, 철조망 저쪽에서 울부짖는 개소리가 들린다. 그것도 한 , 두 마리가 아니다. 게다가 멀리 앞서 걷던 아주머니들이 되돌아 나오시는 모습이 꼭 개에 놀란 듯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그나마 주인이 어디를 가려는지 차를 빼 나오고 있어 개를 막았으니 망정이지. 산만한 개와 맞닥뜨렸을 뻔.
 
뒤도 안 돌아보고 서둘러 고개를 넘는다. 멀리 푸른 바다가 보일락 말락. 아무래도 인적 많은 곳엔 개가 없겠지,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런데 웬 걸. 이번엔 줄까지 풀린 개들이 떼로 몰려온다. 그나마 아까 만난 개들에 비한다면 강아지 수준. 그래도 앙칼지게 짖으며 발목까지 달라붙는데, 아무래도 동네 개들 다 나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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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리도 넘는다는 망상해변에서 숨도 고를 겸, 바다도 볼 겸 한참을 쉰다. 아직 물놀이하기엔 이르지만 그래도 꽤 북적북적하다. 망상역을 지나고부터는 쭉 왼편에 바다를 끼고 걷는다. 동해안 자전거길 위에 해파랑길이 얹혀있다. 간간이 자전거들이 내달리긴 하지만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고. 차도하고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걷기에 좋다.
 
보드타는 사람들이 꽤 있던 대진항을 지나고, 낚시하는 사람이 유난히 많이 보이는 어달해변도 지나고나니 곧 묵호항이다. 묵호는 태백 살 때 거의 매주 놀러왔던 곳이다. 덕분에 논골담길은 수도 없이 올랐고. 까막바위며 등대, 방파제 역시 눈에 닳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와서인지 못 보던 전망대가 새로 생겼으니 거기부터 가봐야겠다.
 
전망대에 올라 저 멀리 지나온 바닷길도 손 짚어 되 걷기도 하고. 등대로 오르는 논골담길도 손 짚어 올라보기도 하다가. 다시 방파제로 내려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히기도 하고. 해가 뜨는 동쪽 바다에서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저녁놀이 신기해 한참을 보기도하니. 어느새 집에 갈 시간인가 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열아홉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고성까지 이어진 길이다. 처음 동해안 걷기를 시작했을 땐 얼마 되지 않은 구간만 있었는데, 어느새 길을 다 잇고 번듯한 이름까지 생겼다. 덕분에 열아홉 번째 여행부터는 해파랑길이 길잡이가 됐다. 해파랑길 34구간은 동해시 묵호역에서 강릉시 옥계면 시장까지 18.9km로 제법 길다. 점심 먹고 출발해 저녁 먹기 전에 도착했으니 대략 5시간 20분 남짓 걸린 셈인데. 고성에서 내려가고 있었으니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 가고, 오고
출발지였던 옥계까지는 강릉 시내버스를 이용했으나 올 때는 동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탔다. 묵호에서 옥계로 가는 버스를 타고 옥계에서 다시 강릉 시내로 오는 버스를 타기에는 시간 맞추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간도 시외버스보다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 잠잘 곳, 먹을 곳
시작하는 옥계에는 모텔이 한, 두 개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면사무소와 시장 주변에는 식당이 여럿 있다. 이후 망상까진 마을을 몇 군데 지나긴 하나 슈퍼 하나 찾기 힘들다. 하지만 이후 망상부터 묵호역까진 숙박시설과 식당이 늘어서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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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2 16:49 2017/02/12 16:49
사용자 삽입 이미지첫 번째 여행 ② 제주의 아픈 역사를 오롯이 만나다: 10구간 화순-모슬포 올레(2015년 1월 28일)
 
제주에 가면 꼭 가야할 곳으로 두 군데는 일찌감치 정했습니다. 올레길도 마찬가지로 한 구간만큼은 걸어야겠다, 마음먹었구요. 4.3 평화공원은 도착하는 날 그리고 강정마을은 떠나기 전에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해서 여행 첫날엔 세찬 비구름에도 기념관을 둘러봤고, 강정은 이제 내일 가보려 합니다.
 
올레길은 어제 우도가는 길이 막히는 바람에 대신 예정 없이 걸었던 21구간은 제처놓구요. 바로 오늘 걸을 10구간만은 꼭 걷고 싶었습니다. 제주 어디라고 그렇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요. 모슬포항에서 얼마 떨어지지 섯알오름과 알뜨르비행장 그리고 송악산 자락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는 아픈 역사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현대사에서 제주만큼 가시밭길을 걸어왔던 곳도 많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여전히 가슴 아픈 길을 걷고 있기에 마음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온 몸으로 겪어온 곳이면서 여전히 미국과 중국이라는 세계 초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가 될 지경이니 말입니다.
 
화순-모슬포 올레는 이런 제주 역사를 생생히 보고 느낄 수 있는 구간입니다. 물론 중산간 마을들을 이어주는 다른 곳들에서도, 해안가 마을과 오름들을 걷는 또 다른 길들에서도 제주와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만큼이나 오롯이 역사와 마주설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요. 해서 오늘은 지난번과는 다른 마음으로 올레길을 걷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다들 여기 10구간은 모슬포에서 시작해 화순모래해변으로 걷더군요. 내내 산방산을 품고 걷는 게 좋았다는 사람, 송악산과 섯알오름을 지나고 나면 다소 밋밋한 길이 이어져 마무리가 아쉽다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바로 걷던 거꾸로 걷던 무슨 상관입니까. 그 안에 담긴 역사를 제대로 본다면 말이지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요. 맞습니다. 걷기 전에 배부터 든든히 챙깁니다. 대략 5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시간이 될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단 먹어야지요. 그래야 힘차게 걸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서는 배 툭툭 두드리며. 엊그제 만났던 것만큼이나 예쁜 모래밭, 이름도 비스므리한 하모라는 해변을 걷는 것 또한 나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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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에서 만나는 풍경 가운데 가장 익숙한 것이라는 건 다음 날 알았더랬습니다. 동백꽃이 예쁘다는 위미에서 떼 지어 나돌아 다니는 덩치 큰 개들을 보고 나서 말입니다. 모래밭을 벗어나 소나무 숲길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친 산만한 개. 딴에는 그저 무심한 듯 쳐다본 것 같지만, 방심하다 어찌나 놀랐던지요.
 
하는 수 없습니다. 찻길로 내려와 돌아갑니다. 다행히 얼마 가지 않아 혹시나 하며 다시 숲길로 들어섰을 때 개가 보이질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숲길이 금방 끝납니다. 별 도리 없네요. 올레길에 빨리 적응해야 할 터인데, 아직은 쉽질 않습니다. 지금은 돌아서 갈 수야 있겠지만 외길인 경우엔 어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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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뜨르는 ‘아래쪽 들판’이라는 뜻을 가진 예쁜 이름인데요. 이름만큼이나 정말 넓디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산방산과 섯알오름을 번갈아가며 마주고보고 걷던, 억새가 가득한 그 들판 말이지요. 하지만 이곳이요. 눈에 보이는 표지판 하나 없고, 위성지도를 통해서야 겨우 그 형태를 알아 볼 수 있는, 일본군 비행장이었다니요.
 
19개나 남아 있는 비행기 격납고며 고사포 진지, 탄약고, 지하벙커들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있자니 가슴 한편이 먹먹해집니다. 곧 만나게 될 송악산 일본군 진지들도 그렇겠지만, 대체 얼마나 많은 제주민들의 희생이 있었던 걸까요. 그저 전쟁이 미치지 않아 다행이었지, 하기엔 그 노역(勞役)이 너무 무거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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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납고 안에 세워진 제로센을 먼발치에서 보고 난 후 섯알오름에 오릅니다. 물론 입구에 세워진 <섯알오름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묵도(默禱)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추모비에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학살 된 200여명의 제주민들의 영령이 새겨져 있습니다. 잠깐 멈췄던 아련함이 다시 밀려옵니다.
 
10구간은 알뜨르비행장에서 섯알오름, 그리고 곧 이어지는 송악산 둘레 일주가 전부라 해도 될 만합니다. 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던가요. 이미 알고 있다면 이 길이 가진 의미를 세 곳에서 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더구나 이 세 곳에서 보는 풍경은 이 길에 보여주는 모든 풍경이라 해도 충분하니, 그것만으로도 족합니다.
 
다만 송악산에서는 다른 곳과는 달리 좀 어수선합니다. 꼭 그런 이유 때문인 것만은 아니겠지만. 중산간 지역도 모자라 여기까지 손을 뻗쳤다고 하는 중국인들이 많습니다. 거기에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도 무시하고 산 정상에 올라가는 사람들.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까지. 서둘러 자리를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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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머리해안은 이미 매표소가 문을 닫았습니다. 입장료가 있어 처음부터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닫힌 문을 보니 들어가 보고 싶네요. 참 사람마음 간사하지요. 하지만 시간도 그렇거니와 해가 뉘엿뉘엿, 곧 어두워질 것 같으니 서둘러야겠습니다. 엊그제와 같이 예상시간은 그야말로 걷는 시간만을 따진 듯합니다.
 
아무리 까치발을 해도 볼 수 가 없었던 화석지는 분명 용머리 해안 전이었을 터인데 가물가물합니다. 또 설큼바당과 산방연대, 퇴적암지대는 어둑어둑한 가운데 걸었던 탓에 변변한 사진 한 장 남기질 못했습니다. 다만 밤하늘 반짝이는 별과 같았던 검은 모래와 조개껍데기만은 선명히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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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납고 안으로 숨은 제로센에는 일제강점기 때 친일했던 이들을 써놨다던데 왜, 누가 그리로 치웠을까요. 절벽 가까이까지 데크에 계단은 만들어 놓고는 정작 일본군 진지에는 가까이 가보질 못하게 해놓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맞춤법조차 맞지 않고 읽기에는 숨이 찬 섯알오름 유적지 알림판을 제대로 해 놓을 수는 없는 걸까요.
 
동아시아의 화약고가 될 수 있을 해군기지를 만들면서 ‘세계 평화의 섬 제주’라는 현수막을 내건 이유는요. 왜 지금 이 순간 ‘재심사’라는 말을 꺼낸 걸까요, 혹시 여전히 ‘빨갱이’들 때문이라고 믿는 걸까요.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유적지들을 놔두고 오가는 버스 편도 많지 않은 곳에다 4.3 평화공원을 들여놓은 이유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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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어둠이 내려앉는 화순항에 도착하니, 이런저런 답 없는 생각들이 떠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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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 14:55 2016/11/17 14:55
사용자 삽입 이미지첫 번째 여행 ① 꿩 대신 닭이라고 하던데..... 이건, 닭이 아니라 꿩이었네: 21구간 세화리에서 종달리까지(2015년 1월 27일)
 
성산항에 한무더기 사람들을 내려놓은 버스가 성산일출봉 쪽으로 부리나케 달려갑니다. 하지만 무리들은 갈 길을 몰라 우왕좌왕, 스마트폰을 꺼내느니 지도를 펼치느니 부산합니다. 그 틈을 비집고 내리기 전 얼핏 봐둔 길을 어림잡아 들어서는데요. 이런, 함께 내린 사람들이 뒤따릅니다. 가만 보니 여행사 가이드라도 된 모양새입니다.
 
순간 난감해지지만 장난기도 발동합니다. 따르는 이들이 어쩌나 힐끔힐끔 뒤돌아보기도 하지만요. 이쪽이 맞는 길이라는 듯 선창가 쪽으로 앞장섭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건 오징어잡이 배인가 보다, 저건 뭘 잡길래 저리 작지, 두런두런. 그제야 상황파악이 된 몇 몇은 다른 길을 찾기 시작하고, 또 다른 몇 몇은 왔던 길을 되짚습니다. 
 
이왕 들어선 김에 선창가를 빙 둘러봅니다. 뭐, 항구가 크면 얼마나 크다고. 또 우도 가는 배 시간도 넉넉히 남았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저 쪽 끄트머리에 해양경찰이란 글씨도 큼지막하게 보입니다. 아까 버스에서 내렸을 때 보단 바람이 좀 세게 불어 걷기가 힘들 지경이지만, 뭐. 일단 저까지 가보고 배타는 곳이 어딘지 물어봐야겠습니다.
 
첨엔 성산항이 저쪽이다 손짓을 하는 가 싶었는데, 웬만하면 오늘은 우도에 들어가지 말랍니다. 2시 쯤 주의보가 뜰 예정이고 지금은 들어가도 나오는 배가 없을 거니 가질 말라는 얘기지요. 허참, 종달리 쪽 도선항에서도 허탕을 쳤는데 여기서도 이러면 어쩌지요. 설마, 아까 사람들 놀리던 벌이라도 받으라는 건가요.
 
덕분에(?) 이른 점심을 고등어구이에 고등어추어탕으로 아주 비리게(?) 먹고 다시 세화리로 향했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하던가요. 우도 올레길 대신, 날씨가 좋았더라면 어제 낮에 걸었을지도 몰랐을, 세화리에서 종달리까지 이어지는 21구간을 걷기로 한 겁니다. 제주도까지 와서 우도를 못 가보는 게 아쉽긴 하지만 말이지요.
 
해녀박물관은 내부를 새로 꾸미는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성산항에서도 그랬고, 여기서도 도착하자마자 무작정 바닷가 쪽으로 가 찬바람 맞고 해맨 탓에 쉬었다 가려했는데 말입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비가림치곤 꽤 큰 쉼터가 있어 몸을 녹일 수 있습니다. 올레길 가운데 비교적 짧은 구간이지만, 오름도 올라야 하니 만만하게 봐선 안 되니까요. 
 
박물관 뒤편 연대동산을 넘으니 면수동 마을회관 앞을 지납니다. 그리고는 곧, 세상에. 이런 앙증맞은 무밭과 당근밭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요. 까만 돌담들 사이로 푸른 무 잎과 당근 잎이 바람에 살랑살랑. 첨엔 그저 그 파랗고 까만 모습에 넋을 놓고 보았더랬는데. 그러다 뭘 심은 걸까, 하고 봤더니. 맞아요. 무와 당근이었답니다.
 
까만 돌이 지천에 널려서인가요. 아까 마을을 지나올 때 봤더니 담도, 집도 돌이요. 밭을 지날 땐 밭 경계도 돌들로 삼더니. 글쎄 묘를 두고도 빙 둘러 야트막한 돌담을 쌓은 게 보입니다. 아마 묘자리를 파다 나온 돌들을 어찌 처리하기 뭐해 그저 주위에 둘렀을 터임에 분명한데. 여기서 보니 저것도 좋은 풍경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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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까맣고 푸른 낯불밭길을 지나고 나니 길은 다시 마을로 이어집니다. 서문동이라고 하는데요, 조선시대에 쌓은 별방진이라는 독특한 성을 두고 있는 마을입니다. 제주도에는 이런 성곽이 곳곳에 있는데요, 올라가지 말란 표지가 없으니 한번 쯤 성 위를 걷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별방진에 올라보면 마을이며 바다 먼 곳까지도 한 눈에 들어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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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해수욕장까진 조금은 심심한 길입니다. 물론 제주니까, 그것도 올레길이니까 하는 말이지. 실은 쪽빛과 옥빛을 번갈아 보여주는 바다를 왼편에 두고 있어 한 눈 팔고 걷다간 오른편에서 오는 차에 큰일 날 수도 있습니다. 아, 다행이도 여기 제주도 찻길엔 비교적 인도가 널찍이 있는 편이고 갓길도 여유가 넘칩니다. 그러니 여유를 가져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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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바람의 여신이라는 영등할망에게 의례를 하는 곳인 각시당도 기웃하고. 꽃이 필 때면 섬 전체가 하얗게 문주란으로 덮여 꼭 토끼처럼 보인다는 토끼섬도 너머다 보고. 밀물 때 들어온 고기를 썰물 때 거두는 갯담, 특히나 멜(멸치)이 많이 몰려들어 잘 뜨는 개라서 붙여진 멜튼개에서는 멜이 있나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으니. 여간 한 눈을 판 게 아니네요.
 
저 멀리 우도와 성산이 머리를 내밀 때쯤이었을까요. 또 난생 처음 이런 모래해변을 어디서 봤을까요. 어찌나 곱고 고운 모래들이 펼쳐져있던지. 게다가 바다는 또 얼마나 푸르고도 파랗던지. 이쪽에서 저쪽까지 뛰어봐야 숨 한 번 고르면 될 만큼 작은 백사장이지만. 바람만 없다면, 작은 의자라도 있었다면 오늘은 여기까지 걸어도 괜찮겠다, 싶을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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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멀리서 보면 보아뱀 같기도 한 지미봉을 앞두고 숨고르기를 합니다. 봉우리를 아래서 돌아가는 둘레길도 있으니 마음이 흔들릴 법도 하지만. 뭍에서라면 뒷동산에도 못 미치는 166미터만 오르면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한라산과, 우도, 성산일출봉, 제주 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미봉을 놓치는 건. 맞습니다. 앙꼬 없는 진빵입니다.
 
하지만 앙꼬 없는 진빵이라도 맛보긴 쉽지 않습니다. 시작부터 격한 오르막이거든요. 게다가 자꾸만 어디서 방송 소리가 들리는데. 좀 아까 성산항에서 들은 주의보, 어쩌구 때문이던가요. 내용이라도 알면 괜찮겠는데 웅웅 소리만 들리고. 신경이 쓰여도 너무 쓰입니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만큼 스피커 소리도 거칠어지고. 아, 꼭대기 가면 좀 나아지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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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는 풍경이 눈앞에 가득합니다. 이름 그대로 소 누운 듯 펼쳐져 있는 우도와 그 옆에 우뚝 솟은 성산일출봉. 앙증맞게 오밀조밀 붙어 있는 종달리 마을 집들과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한라산. 정말 어디 한 곳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이건 분명, 꿩 대신 닭이 아니라 꿩 그 자체입니다.
 
얼마나 오래 있었던지 지미봉에서 내려오니 노을이 밀려옵니다. 출발할 때 봤던 이정표에는 3시간이나 4시간이면 된다던데. 얼추 여기까지만도 벌써 4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마 그 시간이란 게 그냥 걷는 시간만 따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고. 한참을 쉬고 한참을 구경하느라 그랬을지도 모르지요.
 
서둘러야겠습니다. 근처에 잠 잘 곳을 정했더라면 느긋이 종달리 해변을 걷겠지만. 오늘은 서귀포까지 가야 하니 그렇습니다. 또 21구간이 끝나는 곳에서 짐을 맡긴 숙소까지 더 걸어야 하니. 이러다 시간이 모자랄지도 모르겠습니다. 발걸음을 빨리해 종달바당을 걷습니다. 바닷바람을 쐬고 있는 오징어도, 살랑거리는 갈대도 그저 흘긋흘긋 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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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2 14:49 2016/07/12 1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