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첫째 날, 2년 만에 다시 찾은 둘레길, 따뜻이 품어주다(2014년 10월 10일)
 
만만치 않을 거라 생각했으나 그리 호되게 고생할 줄 몰랐던 게 지지난 여름입니다. 그리고 2년 하고도 3개월여 만에 다시 둘레길을 찾았습니다. 한 여름에, 그것도 하루에 두 구간을 걷겠다는 게 말도 안 된다는 걸 다음날 알게 됐고. 지금 와 달리 할 말은 없지만, 둘레길 역시 지리산 자락이라는 것. 그래서 여느 걷는 길과는 다르게 맘을 잡았어야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걷기에 딱 좋은 가을 날, 하루 5시간 내외로만 걷기로 작정하고 길을 잡았습니다. 남명 조식이라는 이름이 곳곳에 보이는 덕산에서 청계호수를 바라보는 곳까지 오늘 오후 반나절. 내일은 아침 일찍 웅석봉을 넘어 재작년 여름 이틀 동안 편히 쉬었던 성심원까지. 그렇게 말입니다.
 
일단 출발은 좋습니다. 맑은 가을 하늘에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게. 길 양옆 한 없이 늘어선 감나무들을 사이를 지나자마자 시작되는 긴 오르막길도 땀 흐를 새가 없으니요. 한적한 임도로 접어들면서는 시원한 계곡물 소리까지 줄곧 따라오니, 걷기엔 금상첨화입니다. 다만 마근담교를 지나자 만나게 되는 가파른 오르막길엔 잠시 숨이 가파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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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코가 닿을 만치 가파른 오르막 산길을 오르고 나면 어디서 이만한 참나무들이 있나 싶은 숲길이 기다리니 꾹 참을만합니다. 이때쯤 잠깐 숨도 돌리고 출출한 배도 채우고 가기 알맞지요. 그렇게 쉬다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밟히는, 행여 머리에 떨어질까 싶은 도토리가 지천인 길을. 다람쥐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보면, 곧 대죽 숲길에 내리막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원래 진행방향 쪽에서 왔다면 가쁜 숨과 흐르는 땀에 시원하게 얼굴과 목이라도 훔칠 텐데. 한참 내리막길을 내려온 데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도 그렇고 해서 백운계곡에선 손만 담그고 맙니다. 그래도 얼추 남은 거리를 보니 앞으로 2시간이면 충분 할 듯. 물장구도 치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노닙니다.
 
산길이 끝나고 다시 딱딱한 아스팔트를 따라 내려오니 원정마을, 단속사지*가 금방입니다. 하지만 워낙 큰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5시가 안 됐는데도 어둑어둑하네요. 여기서 잘 거라면 모르겠지만. 청계마을까지 가야하니 잠시도 쉴 틈이 없습니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3층탑은 보고 가야할 것 같은 데, 다행히 길 가에서 멀지 않습니다.
 
청계호수로 가는 마지막 오르막길에 산 너머로 빨간 노을이 집니다. 저 노을, 언제 또 봤을까 싶은데. 가만 생각해 보니 지리산 자락을 걸을 때 늘 보여주던 수줍은 얼굴입니다. 붓으로 그려 넣은 것 같은 산줄기도 그렇고. 힘이 부칠 때면 어김없이 쉴 곳과 내리막을 내놓는 곳. 그렇게 또 지리산은 따뜻이 품어주고 있습니다.
 
 

둘째 날, 잠시나마 세상과 인연을 끊고 걷는 길(2014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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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 때문에 일정이 아침부터 어그러지고 있습니다. 일찍 길을 나서 점심 먹을 때쯤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있으려 했는데. 아침을 9시가 다 돼서야 먹은 데다, 밥 먹고 잠깐 누웠다 씻고 하니 그새 10시. 서둘러야겠습니다. 다행히 단속사지는 어제 둘러봤으니. 호수를 끼고 돌아 성불정사로 오르는 길로 접어듭니다.
 
해장도 제대로 못했으니 속은 속대로 좋지 않은데 길마저 긴 오르막입니다. 그것도 자갈길과 아스팔트가 번갈아가며. 당연지사 자주 쉴 수밖에 없고, 시간은 배 넘게 걸리는 듯합니다. 반대편에서 힘겹게 산을 올랐다 긴 내리막 임도를 걷는 사람들이 볼라치면. 연신 얼마나 남았느냐 물어보지만 야속한 대답만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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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웅석봉 아래에 도착하고 보니 벌써 2시. 4시간을 주구장창 오르기만 한 셈입니다. 간식도 먹고 땅에 굴러다니는 도토리도 줍고. 높이 오르긴 올랐나, 어느새 빨갛고 노랗게 물든 단풍도 보고. 아는 노래 모르는 노래 중얼중얼. 둘레길 걸으면서 언제 또 이 많은 사람들 만날까 싶게, 만나는 사람들마다 정답게 인사도 해보지마. 힘든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이제부턴 내리막이다 싶으니, 시간이 늦었어도 정자에 누워 신발까지 벗어젖힙니다. 그나마 입으로 풍겨나던 술기운은 좀 가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쫄쫄 굶고 걸어야 할 생각을 하니 일어날 기운이 없네요. 주먹밥을 싸달라고 했어야했는데, 이제와 생각났으니 말입니다. 이래저래 쉬어도 쉬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다 보니, 엊저녁 술자리를 함께 했던 이들이 저쪽 고개 아래서 올라옵니다. 술 마실 땐 그리 친한 척 하게 되더니만. 아침 먹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뭐지, 이 서먹함. 잠깐 언제 출발했느냐, 조금 더 가면 앞지르겠다, 말을 섞어보지만 금세 일어나게 되네요. 말이야 맞는 말이지, 더 쉬었다간 일 나겠다 싶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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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꼴딱고개를 넘는 거 보다는 낫다고 했는데, 이건 오르는 게 되레 나을지 싶습니다. 어찌나 가파른 내리막길인지요. 미끄러져 엉덩방아 찧기도 여러 차례. 휘청하며 크게 구르지 않은 게 다행이지 싶습니다. 단풍구경이고 뭐고 한 발, 한 발. 조심조심 또 조심. 올라가는 것만치로 내려가는 것도 힘들고. 다행인지 시간 가는 줄만은 모릅니다.
 
그래도 어천계곡을 지나고 나니 길이 좋아지는데. 가만, 어디서 많이 본 길 같습니다. 키 큰 소나무가 쭉쭉 뻗어있고, 그 사이로 푹신한 숲길이. 버스로만 6시간을 걸려서 온 이곳에서 강릉 바우길과 같은 소나무 숲길을 만난 것입니다. 갑자기 어디서 솟았는지 반가움에 발걸음까지 가벼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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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 이정표로는 어천계곡에서 얼마 안 되는 것 같았는데. 성심원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5시네요. 남들은 5시간 만에 걷는 다는 길을 7시간이 걸려 도착한 겁니다. 그러니 몸과 마음은 어련할까요. 염치불구하고 바구니에 담긴 사탕부터 까먹고 매점으로 달려갑니다. 산청까지 가는 버스 시간만 겨우 물어보고 말이지요.
 
금방 온다던 군내버스를 20분 넘게 기다리다 겨우 산청터미널로, 산청에서 다시 함양터미널로. 또 대구터미널로. 대구에선 서부정류장에서 북부정류장으로 택시타고 이동. 거기서 심야버스를 타고 4시간 넘게 달려 강릉에 도착하니, 새벽 1시입니다. 걷는 내내 그랬고, 버스도 그렇고. 둘레길, 역시 만만하게 볼 게 아닙니다. 아고, 힘드네요.
 
 
* 지리산 자락에는 크고 작은 절들이 그 이름을 널리 떨치고 있습니다. 하동의 쌍계사와 칠불사, 남원의 실상사, 유평의 대원사, 구례의 화엄사, 마천의 벽송사, 중산리의 법계사. 이만하면 그것들만으로도 골짜기, 골짜기 깊은 침묵과 관조로 이끌기 충분합니다. 거기다 수를 다 따지기도 어려울 만치 이쪽, 저쪽에 흩어져 있는 폐사지(廢寺址)까지 둘러본다면 더 말할 것이 없겠지요. 그 중에서도 세속과의 인연을 끊는다는 절, 단속사지(斷俗寺址)는 여러 폐사지들 가운데 단연 돋보입니다. 물론 남아있는 두 동, 서 탑(塔)이 보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탑과는 무관한 듯 무심히 서 있는 당간지주도 그렇고. 이제는 절터를 중심으로 마을이 들어서 단속사(團屬寺)가 된 모습이 처량하지만은 않기 때문일 듯합니다.
 
 
* 지리산 둘레길 걷기 두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첫 날은 덕산에서 백운계곡과 운리를 차례로 지나 청계호수까지 걸었고, 다음 날은 웅석봉 턱밑까지 올랐다 성심원까지 줄곧 내려갔습니다. 덕산에서 청계호수까지는 대략 15km, 청계호수에서 성심원까지는 13km 정도 될 듯합니다.
 
* 가고, 오고
강릉에서 지리산까지는 대전을 거쳐 가는 것이 빠릅니다. 여기서 산청은 함양이나 진주로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니, 차를 기다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적어도 6시간은 걸립니다. 다만 강릉으로 돌아올 때 대구를 거쳐서 왔던 이유는 대전보다 늦게까지 버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 잠잘 곳
청게호수 주변에는 민박과 펜션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식당은 덕산과 어천마을을 제외하고는 눈에 보이는 곳이 없습니다. 길을 나서기 전에 간식과 물은 충분히 챙겨야 하고 식사는 민박집에 미리 얘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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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3 15:19 2015/05/0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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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구제금융 이후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양극화로 치닫고 있습니다. 굳이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은 기존 소득계층을 유지하겠지만 중산층은 감소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아니라도. 팍팍한 살림살이에 동전회수율은 높아지는 반면 공항이용객은 해가 갈수록 늘어만 가는 것만 봐도. 80대 20을 넘어 90대 10으로까지 진행됐다는 얘기가 결코 빈말은 아닐 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화될 거란 우울한 전망만이 나오는 이유는, 맞습니다. 지난 20여년의 시간 속에서 체념되고 내면화된, ‘나만 잘살면 되는 겨’ 식의 삶이 너무나 보편화됐기 때문입니다. 경쟁, 아니 정확하게는 무한경쟁만이 사회를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믿음이 맹신이 된 겁니다.
 
게다가 어느 도지사가 스스럼없이 내뱉는 말마따나 신분사회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어느 순간 절망으로 떨어지곤 합니다. “상류층의 부와 신분 대물림”이라는 게 고작 아이들 밥그릇 빼앗아 교육복지에 써서 될 거였다면. 지금껏 해왔던 그 많은 ‘서민복지’들은 다 뭐였단 말입니까.
 
2.
글쓴이는 경상도 단성현의 ‘호적대장’에서 발견한 한 인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김홍발’이라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인데요, 실은 ‘김홍발’보다는 그의 조부 ‘김수봉’이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홍발’은 ‘김수봉’이 평민으로 신분상승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양반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다 알다시피 조선 시대는 신분제 사회였습니다. 왕을 최고 정점으로 양반과 중인, 평민, 천민으로 이루어지는 피라미드형 사회였던 겁니다. 책 제목과 부제에서 잘 드러나듯. 피라미드에서 가장 밑바닥이라고 할 노비였던 ‘김수봉’, 그리고 그의 자손들이 피라미드의 제일 윗부분인 양반으로 올라서기까지 과정을 추적한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대대로 주인 집안에 예속된 소유물로 신분적 억압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생계를 보장받아야 했던 대부분의 다른 노비들과는 다른 삶을 이어갔던 ‘김수봉’과 그 후손들.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급격히 신분제가 흔들리기 시작하던 때임을 감안해도. 그들이 거친 과정은 그야말로 ‘머나먼 여정’이었음이 틀림없을 터이고, 글쓴이는 그 긴 여정을 꼼꼼히 기록한 겁니다.
 
3.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자수성가’라는 말도 흔하지 않았구요. 검정고시로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대통령까지 됐던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엔 개천에서 용은커녕 모 항공사 회항사건에서 보이듯 새로운 신분사회를 알리는 말과 행동이 스스럼없습니다.
 
반면 ‘가난은 대물림된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도 복지 지출을 줄이려하는 정부를 옹호하는 데 쓰고 있구요. 물론 자기들이 하는 복지는 신분상승을 위한 ‘희망의 사다리’인 반면, 남들이 하고자하는 복지는 ‘포퓰리즘’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노비 ‘김수봉’과 그 후손들이 보여준 신분상승을 향한 의지와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이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쌓는 ‘스펙’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책에는 조선 후기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결국 노비에서 양반으로 올라선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보자면, 어찌됐거나 ‘김수봉’에서 ‘김홍발’로 이어지는 어느 한 노비 가계(家系)는 결국 양반으로 신분상승을 이뤘지만. 한 집 건너 볼 수 있는 ‘장그래’들은 과연 ‘정규직’이라도 될 수 있는 걸까요. 어찌 보면 조선시대보다도 더 한 신분사회, 그 속에서 신분상승은 꿈도 못 꿀 일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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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4 10:19 2015/04/14 10:19
이제 보름 후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년이 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참 많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참 많이 반성도 했고, 많은 다짐들도 했습니다. 다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 진실을 반드시 밝히자, 말입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 수많은 눈물, 반성, 다짐들 어느 하나라도 진정 마음이 담겼었는지 의구심이 들게 되는 시간들이었지 싶습니다.
 
전 국민이 보는 가운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던 이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유가족들 면담 요청에 경찰을 내세웠구요. 관피아다 모피아다 요란스레 굴었지만 결국 해경만 해체됐고 ‘박하산’은 여전하니까요. 곡기를 끊어가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유가족들 앞에서는 치킨과 피자를 나눠먹으며 한껏 조롱을 일삼았고,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미국 잠수함을 말하는 것이냐”며 또 ‘종북’ 타령이니 말입니다.
 
처음부터 세월호는 시간과의 싸움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배는 기울어 침몰하고 있지만 선원들만 구조하고 있었던 시간들. 대조기(大潮期)니 정조(停潮)니 하며 때만 기다렸던 시간들. 언제든 만나겠다던 말만 믿고 청와대 앞에서 밤을 지새웠던 시간들. 특별법을 제정하라며 안산에서 팽목항에서 무수히 걸었던 시간들 말입니다.
 
사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어찌됐는지 알 수 없는 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속 시원히 알 수 없는 시간들. 코앞에 닥친 선거를 위해 무슨 말이든 못하랴 싶게 연일 속없는 말들을 내뱉던 시간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며 속절없는 공방만 하는 그 시간들 말입니다.
 
유가족들이 다시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엔 416시간 농성이랍니다. 세월호 특위를 무력화시킬 시행령을 즉각 철회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청와대로 가는 길은 경찰에 막혀있습니다. ‘기레기’들은 철지난 철새들 마냥 보이지도 않고, 대통령은 그리 자주 해외에 나가면서도 청와대 밖으론 한 발짝도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세월호는 분명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시작된 농성이 비록 416시간이라고는 하지만. 416일이 되더라도 아니 4년 1개월 6일이 되더라도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왜 그들은 그렇게 죽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또 왜 우리는 그걸 지켜보기만 했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때야만 비로소 수많았던 다짐, 약속, 눈물들이 진심이었음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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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2 16:31 2015/04/02 16:31
사용자 삽입 이미지첫째 날, 꽃보다 할매, 할배(2013년 10월 5일)
 
‘꽃보다 할배’라는 프로그램이 큰 화제였던가. 할배들에 이어 누나들까지 나왔으니. 호감 가던 사람이 만든 거라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대기업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만들었다는 점. 굳이 돈까지 안 줘도 몇 번씩은 나다닐 만치 돈 깨나, 시간 깨나 있는 연예인 할배들이 나온다 해서 마땅찮았다.
 
그래도 한두 번은 봤던 것도 같은데, 통 기억에 남질 않는다. ‘꽃보다 할배’라는 말을 만든 나PD에겐 미안하지만. ‘꽃보다 할배’들은 그들이 아니란 생각이 내내 맴돌았기 때문일 듯. 모처럼 걷기여행에 나섰던 오늘도 마찬가지. 이 세상 정말 꽃보다 아름다운 할배들, 할매들은 딴 곳에 있음을 알았으니. 
 
일단, 학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출출하다. 지도를 보니 면사무소까진 마땅히 요기할 만한 곳이 없어 보인다. 가방에 이것저것 먹을 것들을 넣어오긴 했어도, 일단은 식후경이다. 게다가 높은 하늘, 뭉게구름 사이로 가을 햇볕이 따갑다. 밥도 밥이거니와 아무리 가을볕에 딸 내보낸다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찌감치 벼 베기가 끝낸 논 한 가운데 우뚝 솟은 굴산사 당간지주는 보물치곤 좀 허술하게 관리가 되고 있는 듯하다. 달랑 안내문 하나가 전부니. 그렇다고 요란하게까진 필요 없겠으나. 이웃한 곳에 굴산사지와 부도, 석불좌상 등을 엮어낼 필요는 있어 보인다. 단순히 표지판만 세워놓는 걸 넘어서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스토리텔링인가 뭔가도 있으니.
 
바우길을 걸으며 한 시간 넘게 아스팔트길을 걷는 건 처음이다. 포도, 사과, 복숭아 과수원 들을 차례로 지나 널따란 양배추 밭 끝 금광초교까지. 발바닥이 다 후끈하다. 아무래도 잠시 쉬었다 가야지. 좀 더 가면 솔 숲길이니 내처 걸을 수도 있겠지만, 에라, 모르겠다. 언제부터 생긴 버릇인지 모르겠지만. 신발부터 벗고, 발 쭉 뻗고 드러눕는다.
 
교전교를 지나 농로를 따라 5분이 넘게 딴 길을 걸었다. 분명 숲길이어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 이런 아스팔트길에서 왕복 10분길은 치명타다. 숨을 고르고 다시 걷는데, 이번엔 알림판 때문에 또 헤맨다.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제 길을 찾았을 터인데. 요상하게 한 길로 난 곳엔 표시가 잘 돼 있는데 갈림길엔 안 그렇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정감이마을 등산로에 접어드니 구름이 많아진다. 나무그늘 하나 없을 땐 해가 계속 등 뒤에서 쫓아다녔는데. 솔숲에 구름이라, 영 날씨가 그렇다. 그래도 딱딱한 길을 벗어났으니 발걸음만은 가볍다. 키 작은 소나무 사이로 길이 한참 이어지는데, 머리 위 송전선만 없었으면 금상첨화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밀양에 들어설 송전탑 아래선 전기 없이도 등이 켜진다고 한다. 대도시에서 대량 소비하는 전기 때문에 세워질 거대한 탑. 결코 우리 세대에 처리할 수 없는 핵폐기물을 전제로 해야만 하는 그 송전탑. 지금 머리 위에 있는 저 송전선은 몇 kV일까. 윙윙, 듣기에도 저리 소름이 끼치는데. 밀양은 오죽이나 할까.
 
누군들 얼마 남지 않은 삶, 한량하게 유람이나 하고 싶지 않을까. 매일 제 무덤이라 파 놓은 구덩이로 올라가는 할매들. 제 목멜 동아줄을 다시 묶고 또 묶는 할배들. 자식들, 손주들이 살 세상엔 핵폐기물을 남길 수 없다고. 한 평생 일군 땅과 집에서 떠날 수 없다고 외치는 그들이 새삼 ‘꽃보다 할매.할배’란 생각이 든다.
 
송전선 따라 난 산길을 한참 걸어 강동면사무소에 도착하니 때 마침 버스가 온다. 허겁지겁 올라 어디까지 가는 버스인가 하고고 보니, 바로 집까지 간다. 그제야 맥이 탁 풀리며 바닥에 주저앉는데. 그렇게 잠깐 졸았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내릴 때다. 멀리 대관령 너머로 빨간 노을이 진다. 오늘 ‘꽃보다 할매, 할배’들은 안녕할까.
 
둘째 날, 철길, 습지, 사구, 바다를 차례로 걷다(2014년 6월 6일)
 
바우길 요 몇 구간은 두 번에 나눠 걷게 됐다. 집이 가까워서인데, 학교 앞에 사는 친구들이 지각한다는 말이 딱 맞다. 일찍 나서 중간에 밥 먹고 또 걸으면 넉넉했을 길을. 늘 느지막이 걷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아마 딴 데서 기차타고 왔으면 서둘렀을 테고. 모르긴 몰라도 정동진까진 갔어도 이미 갔을 것 같다.
 
풍호연가 길도 그렇다.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걷지만. 서울서 온 친구와 점심까지 먹고도 한 참이나 더 놀다 겨우 강동면사무소에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남은 길을 따지자면 동네 한 바퀴 마실가는 셈밖에 안 되고. 이제 바우길도 두어 번만 더 걸으면 끝이니. 천천히 느끼는 것도 좋을 듯싶다.
 
유월치곤, 또 곧 있으면 넘어갈 해치곤 제법 따갑다. 그래도 금방 시원한 바람을 내주는 숲길로 들어서니 좀은 낫다. 언뜻언뜻 부는 솔바람이 언덕을 오르느라 흘린 땀이며, 따가운 등이며, 목덜미를 시원하게 하니까. 조금 심심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솔숲을 내주는, 바우길만이 가진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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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숲길을 지나니 이번엔 왜 풍호연가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대번에 알 수 있는 길이 기다린다. 바로 바람을 머금고 있는 드넓은 연꽃 습지가 펼쳐져 있는 것. 아직은 연꽃은커녕 연잎도 많지 않지만. 바다 쪽에서인지 산 쪽에서인지 부는 바람이 호수 위 연잎들을 휘감아 도는 곳. 이만하면 이름 한 번 제대로다.

찬찬히 습지를 둘러보고 다시 소나무 숲길을 지나고 나면 모래언덕이다. 헌데 사구(砂丘)라는 이름만 남았지 다른 모래사장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동해안에 무려 30개가 넘는 해안 사구 가운데 그나마 생태.경관 보존지구로 지정됐다는 곳이 이러니. 당장 보기에도 안 좋고 야생동물들이 지나기도 힘든 저 절책부터 없애던가.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비릿한 바다냄새가 나는 안인항을 휘돌아 철길을 건너면 길은 산우에 바닷길로 연결된다. 막바지에 비릿한 바다냄새 대신 코를 쥐게 하는 악취와 길을 다 차지하고 다니는 대형트럭들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지긴 했지만. 바람이 불고 연꽃이 피면 꼭 다시 걷고 싶은 길. 시원한 바람이 손등을 타고 간질간질 지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열여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풍호연가길은 17.5km이다. 시작은 6구간 굴사사지길 마지막 굴산사지며 끝은 8구간 산 우에 바닷길 시작인 안인항이다. 풍호연가길은 땡볕이긴 하지만 풍호마을 연꽃 밭에 연꽃이 한창 피는 8월이나,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가 바닷바람에 몹시도 한들대는 10월이 좋겠다.
 
* 가고, 오고
강릉 시내버스 노선을 참고.
 
* 잠잘 곳, 먹을 곳
시작하는 곳과 끝나는 곳 그리고 풍호마을 등에 식당이 꽤 있고, 안인항 주변엔 숙박할만한 모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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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31 16:31 2015/03/31 16:31
다음 번 수업, 목록 공시된 유기자재들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1년간 진행 됐던 과정이 모두 끝난다. 30여명으로 시작했던 인원이 지금은 10여명 남짓. 바쁜 농사일도 농사일이지만 실습보다는 이론 위주였기에 나타난 결과일 듯. 해서 유기농업에 대한 보다 성찰적인 내용이 한 두 강의 쯤 있었으면, 또 유기자재를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지 싶다. 산업기사 시험 준비 때 어설프게 암기만 했던 내용을 찬찬히 따져가며 이해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지만.
 
․ 해조추출물: 해조추출물은 세계적으로 기상이 악조건인 곳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아카디안만, 프랑스 해안 등에서 자라는 ‘아스코필름노도섬’이라는 海藻(해조)를 원료로 해 제조 과정이나 제조 후 제품에 어떤 화학적 과정이나 화합물을 첨가하지 않은 해조추출물 원재 임
 
- 100% 천연해조추출물 제품으로 국제유기농인증단체(IFORAM)의 유기농자재 인증서를 가지고 있는 제품이 안전
- SM6, 알게, 아카디안29 등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기술과 생산력을 가진 해조추출물 원료생산 회사 제품
- 양질의 해조류는 모든 성분의 비료, 농약 등과의 혼용이 용이하며 혼용하는 물질의 효과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해야 함
- 고급 해조류는 직접 액상으로 추추하는 해조추출물이 좋은 제품
- 수입 원재를 그대로 제품화해야 성능 변화가 적음
 
․ 양질의 해조류
- 천연 생장촉진제
- 검증된 천연 유기농자재
- 1차, 2차 영양분의 강력한 원료
- 여러 가지 생리활성제로 구성
- 고농도의 생리활성물질을 함유한 100% 해조추출물
- Ascophyllum nodosmu에서 추출: 천연 생장촉진과 활력 회복에 필요한 물질을 가장 많이 함유
 
․ 해조추출물의 구성 성분
- 천연식물호르몬, 생장촉진성분
- 1차, 2차 대사에 필수적인 영양분 복합체: 식물의 생육과정에서 생육촉진제 또는 유사한 역할을 함
- 여러 가지 비타민
- 생산물의 황산화 강화제
- 아미노산-유기산
- 각종 탄수화물
- 다당류: 아르기닌 산(Aliginic Acid), 매니톨(Mannitol), 라민아린(Laminarin)
- 각종 필수 미량원소 복합체: 식물에 쉽게 흡수되는 형태
- 싸이토카이닌: 옥신과 함께 세포 분열 촉진, 세포의 신장과 생육 촉진을 유인, 단백질 합성 촉진, 생육 초기의 세포 발육 촉진, 위험한 생육 단계의 작물 생육을 안정화, 과일의 낙과 예방
- 폴리아민: 식물 생장 호르몬과 유사한 효과(stimulants), 아스코필름 노도섬 추출물의 효과로 식물체 내에서 생산, 세포막의 활성 강화, 자연 재해에 대한 방어력 강화
- 베타인: 작물의 전 생육 과정에 효과, 세포막 보호, 메틸기 기증, 세포의 삼투 효과 향상, 모든 식물 생장 조절제 및 싸이토카이닌과 비슷한 효과
 
․ 목록 공시된 해조추출물
- 해조추출물: 에스엠6, 아카디안29, 뉴트리켈프, 정착(해조류+부식산), 보이네, 씨크롭케이, 씨믹스, 해조보감탕, 아그리엔에프, 알게나, 해조에끼스, 엑스티-40, 지에이14, 켈팍, 해조-2000, 알가팜, 슈퍼파워골드, 비에스7000골드, 큐크린3000, 알게아, 그린앙상블, 알기발바이오, 루트업, 바이오피쉬, 알가추, 지성감천, 미네랄과학, 슈퍼50, 타이탄, 여무러, 미아티스, 씨위드100, 피토마레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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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3 17:58 2015/03/23 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