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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4/10
    그래도, 정면을 응시하며 갈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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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4/07
    참 많은 걸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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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8/04/04
    참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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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8/04/03
    다시 '후보 단일화'에 대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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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8/04/02
    '심상정 단일화' 찬성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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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8/04/02
    '쳄발라'라는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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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04/02
    봄비, 경쾌한 피아노가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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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8/04/01
    IT산업의 (보이지 않는) 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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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8/03/31
    이런 사람들이 투표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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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8/03/29
    헤르난데즈씨 어디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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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면을 응시하며 갈수 밖에

어제 6시경, 출구조사 결과를 보며 절망했다.

 

그리고 9시경 어느새 절망감이 사라졌다. 11년전 국민승리21에 가입했을 때, 그리고 8년전 민주노동당 창당발기인으로 '민주노동당'이라는 당명에 한 표를 던졌을 때, 그 때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평가는 아파야 한다.

 

그리고 다시 정면을 똑바로 응시해야 한다. 의기소침 바닥을 쳐다보거나, 못내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하진 말아야 겠다.

 

11년 전 소수를 선택했고, 8년전 소수를 선택했고, 1달전 소수를 선택했고, 맨날 작은 수로 분열해나가는 모습이 슬프지만 눈덩이를 굴리듯이 앞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난 어떻게 활동을 할 것인가?

 

많은 걱정과 혼란함이 있지만, 그래도 가만히 서있느니 한발이라도 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쉽다.

 

정말 열병과도 같았던 시간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좀더 즐겁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된다. 좀더 행복해할 걸.

 

그래도, 진보신당의 친구들, 정말 수고했습니다. 짝짝짝

 

아프게 평가하고 또 갑시다. 즐겁게 콧노래를 부르듯이 샤방샤방하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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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은 걸 배웠다

이른바 '심상정 단일화'를 둘러싼 논란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이를테면, 진보정당의 원칙과 정체성이라는 것. 그리고 제도화의 의미에 대한 것. 그리고 소위 변한다는 것.

 

수차례 밝혀왔듯이 나는 심상정 단일화를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진보신당의 당면과제는 '살아남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의 부분에 대해선 예외없는 융단폭격을 맞은 셈이다.

 

전혀 억울하지 않다. 당연하다.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라, 불과 4년전의 나만 되었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니, 내가 민주노동당이니 진보신당이니, 제도정치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뭐 이제 내일 모레면 어떻게든 결판이 날 것이다. 진보신당도 그 결과에 따라 존폐의 기로에 설 것이다. 나는 진보정치의 미래를 낙관하지만, 살아가는 동안은 힘들 거라고 본다. 결국 나의 역할은 진보정치의 완성이 아니라 흔적을 만드는데 있다고 생각해왔다.

 

주변 사람에게 이런 감정을 설득력있게 말하기 참 힘들다.

 

내가 왜 작년 연말부터 올해초까지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는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동지는 몇개월의 불면증을 호소했는지. 그런 개인적인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으며, 그런 '불안이 나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는지를.

 

원칙과 정체성, 부르주아 정치의 속성, 합의와 대의의 과정, 당활동가의 성장을 전제로 한 진보정당. 이런 고민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나에겐 질식할 것 같은 문제들로 다가왔다.

 

내게 절망인 것은, 헌신이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진보신당의 활동가들이다. 소위 민중진영내에선 당활동가만큼 씹기에 좋은 대상도 없다. 아니 이제까지 민주노동당도 그런 처지였다고 생각한다.

 

2004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함께 해왔던 연대사업이었는데, 소위 민중단체인 어느 곳에서 난데없이 '정당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회의에서 당을 배제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자신들의 활동이 '정치적 이유'로 해석되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난, 이를 순결주의라 부른다.

 

2006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바다이야기가 한참 논란일 때, 의정부에선 화상경륜장 싸움으로 정신이 없었다. 결국 경륜을 운영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과 갈등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때 공단 노조위원장이 찾아왔다. 경륜에 딸린 노동자들의 생계는 어쩔려고 그런 주장을 하냐고. 나는 이를 자기중심주의라고 불러왔다.

 

그리고 FTA투쟁이 한참일때, 골프장 싸움을 하는 곳에 연대를 하고 있었다. FTA집회와 골프장 대책회의가 겹쳤을 때 주저없이 골프장 대책회의에 결합했다. 이에 대해 단체활동가들은 나에게 '몰정세적'이라며 조소했다. 나는, 역으로 이를 정세주의라고 생각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애정도 없는 날선 비판을 가지고 진보신당을 요리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들은 대부분 맞다. 타당한 주장을 통해 당을 발기발기 찢어놓고 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책임은 논란의 주역이 지게되고 위대한 역사적 논평가들은 스스로의 승리에 도취된다. 나는 이를 '좌파 나르시시즘'이라고 여긴다.

 

내가 옳다고 우길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경험들은 오로지 개인사에 속하는 경험들이며, 나의 주장이 그런 방향으로 흐르게 된 정신의 배경에 가깝다. 한 방향으로 가지고 못하고 끊임없이 틴들현상을 보이는 나의 입장과 주장이, 너무 위태로우면서도 지나치게 당연하다고 느껴진다.

 

갱신되지 않는 이론에 대해 절망했다. 20세기 초의 소련 역사는 꿰고 있으면서, 같은 시기 조선제국의 끝자락에 대해선 무지한 '외국인'들이 싫었다. 체게바라의 편지글에 열광하면서 일제시대 박치우와 같은 사회주의 운동가의 존재자체를 무시하는 것이 짜증났다. 왜, 영국 노동당에 대해선 잘 알면서, 우리의 진보당에 대해선 무지한가? 우리의 교훈은 어느쪽으로부터 오는 것이 타당한가?

 

결국 넋두리에 지나지 않지만 이 기억을 잊지 않을 것이다. 다들 어떻게들 살아가는지, 얼마나 원칙과 정체성에 치열하게 살아갈지를 볼 것이다. 과연 옳은 주장들이 옳은 삶을 결정지을지도 분명하게 지켜볼 것이다.

 

나 역시 악랄하게 버틸 예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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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려운 일이다.

워낙 욕먹는데 익숙하다보니 별로 걱정이 되진 않지만,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논리들과 감정들은 수용이 안된다.

이런 비교는 그렇지만, '너도 해봤어'라는 식은 피하자. 낭비적일 뿐더러, 건질게 하나도 없는 싸움이니 말이다.

나는 이번 심상정 단일화를 두고 기본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뭐 이에 대한 정치적 판단에는 다른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게 구조에 대한 이야긴지, 사람에 대한 이야긴지 헤깔리기 시작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심상정이라는 인물에 신뢰를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이런 말 하면 또 인물중심론이라고 욕하겠지만, 세상에 어떤 사람도 무늬가 없는 사람이 있는가? 에휴)

자본주의의 문제, 미제국 중심의 군사주의, 분단 현실, 불안해지는 노동조건(법무부는 오지랖도 넓다, 파업권에 지나치게 훈수를 두고 있다), 성장위주의 경제정책.

이런 현상들은 눈에 보이지만, 각각이 발생하고 나타나는 양태가 다르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건 우선 순위의 문제가 아니라 영향의 범위와 개입의 효과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내 아이가 선천적 장애가 있다.(실제 내 둘째 아이의 똥꼬도 이상하다) 이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으론 두가지라고 생각한다.

1. 그와 같은 이상이 있어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던가

2. 그와 같은 이상을 완전히 고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던가

하나의 현상을 둘러싼 해법은 '동일하게 그 해법을 향한다'하더라도 다른 방식이 있다. 문제는 이런 방식들이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이 아니다. (세상에 이렇게 결정되는 문제는 그렇게 많지 않다.)

앞서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다른 해법들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방법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따져 봐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말이다. 정치는 다른 면도 있더라는 거다. 우린 개발하면 건설업자 먹여살리는 거다라며 거품을 물지만, 실제로 낙후된 지역주민들은 그거 안하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말하는 비정규직. 나와 나이차이가 10살 가까이 나는 군대동기들, 대부분 비정규직이어도 민주노총 싫어한다. 그렇다고 비정규직 노조원이냐고? 아니, 노동운동 자체를 싫어한다. 그중 한놈은 삼성 천안 공장에 다닌다. 백혈병 운운.. 걱정되어서 전화했다.

자기는 백혈병 걸린다는 것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이 놈이 잘못된건가? 이건 이쪽 저쪽의 잘잘못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이런 상황은 '선거'라는 공간에서 더욱 그렇다. 내가 심상정 단일화를 지지하고, 또 지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심상적이 필요하다는 이유가 제일 크다. 그리고 절대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아무리 변해도 권영길보다는 나을거라는 생각에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것이고, 아무리 무능해도 서민을 위한 정책 한 두개정도는 내놓지 않겠냐는 거다.

모르겠다. 나도 학생땐, 그리고 조그만 단체나 조직에 있을 땐 좋았다. 내겐 분명한 비전과 확고한 원칙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물론 그게 아예 없었기 때문에 이모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인정..)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에 동지들만 있고, 연대해야될 대상들만 있을 땐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데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 절대 다수다.

소수인 내가 다수인 그들을 '없는 존재' 취급하더라도, 사실 '없는 것'은 내 자신 아닌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심상정 효과'가 가능하다면, 나중에 더욱 원칙적이고 분명한 입장을 가진 이가 심상정을 딛고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그 다수들에게 접근해나가는 것이 타당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은 한다.

내 주변에도, 이번 단일화때문에 '진보신당'이 싫어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심정적으론 나도 그렇다. 그런데, 억지를 부리고 있다. 아니다라고.

내가 틀렸으면 좋겠다. 심상정의 단일화가 보수 꼴통 정당의 2중대가 되어버리고 마는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차라리 개인적으론, 그게 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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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후보 단일화'에 대해

야스피스님의 [후보단일화의 딜레마] 에 관련된 글.

어제 심상정 후보 측의 단일화 합의 발표 이후, 불거지는 원칙론에 반론을 취하기 위해 급히 글을 썼었다. 이는 이번 단일화의 움직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진보신당, 혹은 향후 좌파적 정치활동의 모습에 대한 상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트랙백을 한 글에서 간단하지만 수미일관하게 정리한 10가지 명제는 후보단일화와 진보신당의 문제를 단순히 농담거리가 아니라 '숙성'시키는 제안으로 생각한다. 단, 밑의 첨부한 이상한 단체의 농담은, 그저 농담으로만 들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단일화를 둘러싼 논란에서 핵심적인 것이 존재한다.

 

1. 이번 단일화의 구도를 누가 짰으며 누구의 구도로 가고 있는가?

 

심상정후보와 민주당 후보간의 단일화는 후보간 단일화이지 당대 당 단일화가 아니다. 말장난이라고? 천만에. 이를 당대당으로 묶어서 이득을 보고자 하는 것은 맏형 노릇을 하고 싶어 하는 민주당의 구도일뿐이다.

 

이런 거리두기는 심상정 후보가 한평석 후보와 함께 출연한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잘 드러난다. 심상정은 차이를 드러내고자 하고, 한평성은 차이를 무시하고자 한다. 바로 단일화의 효과를 어느 구도로 맞추는가라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1-1. 은평과 노원의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심상정의 단일화는 '심상정'의 성과이다.

 

문제는 심상정과 한평석이라는 후보간 대외적 격차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에서는 당 지도부 차원이 아니라 후보의 판단이라고 비껴선것이다. 다시 말해, 민주당의 구도로 집어넣기엔 무리수가 따른다는 계산이다.

 

2. 소위 자주계열의 단일화는 '우리가 가는 것'이었고 이번 단일화는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야스피스가 인용한 이상한 집단의 논평은 농담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의 정치적 맥락을 놓치면 형식논리에 빠지고 만다. 우선 확실한 차이를 알기위해 확실한 사례에서 시작하자. 운동의 역사에서 등장하는 '후보단일화' 문제는 전국연합 류의 운동권에서 자주 애용하던 구호였다.

 

그런데 대부분 이 구호는 2강 구도에서 상대적으로 우월한 쪽에 힘을 실어주자는 논리로 쓰였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후보의 단일화가 아니라 세력의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는 작년 대선때건, 지방선거때건 마찬가지다. 동일한 '반 한나라당'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가는 것과 우리에게 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새로운 정치현상을 읽는데 트래픽이 걸리게 된다.

 

2-1. 오는 것과 가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당연하다. 개인적으로 정치+공학이라는 말을 무지하게 싫어한다. 왜냐하면 삶의 문제를 다루는 정치 영역이 고작 엔지니어에 의해 조작되는 부품들의 조합이라고 연상하기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 특히 제도 정치의 영역이 '이미 짜여진 판에 의해 진행된다는 점'에서 공학적 요인들을 따져봐야 한다.

 

오는 것과 가는 것의 차이는, 우리가 서있는 땅바닥에 누가 작대기로 줄을 그을 수 있는가의 문제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완전히 우리에게 오는 것으로, 그리고 그것을 진보신당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하는데 있다. 쥐뿔 가진 것도 없으면서 고집만 세면 배를 곪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 이번 총선은 살아남기의 문제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총선에 그렇게까지 목숨걸 필요가 있냐, 앞으로 오래가는 운동을 하자고 말한다. 동의한다. 난 오래가는 운동을 위해서도 이번에 살아남아야 한다고 믿는다.

 

개인적으로 난 민주노동당 선도탈당파에 대해 동지적 애정은 쥐뿔만큼도 없을 뿐더러, 그들의 정치적 진정성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고싶은 말을 다 하고 나감으로서 남아있던 이들에게 모멸감을 안겨주었다.

 

그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한, 진보신당은 도로 민주노동당의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그래서 난, 노회찬 심상정이 평범한 유권자의 지지로 국회의원이 되었으면 한다. 소위 선도 탈당파들이 그렇게 믿고 있던 조직의 힘들이 우스워질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과 강한 정치투쟁을 할 수 있도록 계기가 있었으면 한다.

 

4. 진보정당의 원칙? 난 일차적으로 생존이라고 본다.

 

우리끼리만 아름다운 민중당, 백선본의 추억은 다 가져가라. 지나간 추억만을 떠올리며 사는 것은 임종이 임박한 사람이나 하는 것이지, 아직 10년도 버텨본 역사가 없는 진보정당이 해선 안되는 일이다.

 

역사적 교훈이라고? 시간내서 찾으면, 반대의 사실들도 얼마든지 찾아낼 자신이 있다.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개인적으로 이번 단일화가 한 지역구의 후보 단일화에 불과하며, 오히려 긍정적인 에피소드로 생각한다. 전혀 심각할 것 없다는 말이다. 민주노동당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은 다수파의 패권주의와 북한 추종주의 아니었나? 그것과 심상정의 단일화는 다른 문제라고 본다.

 

5. 이런다면 후보 단일화에 반대다.

 

만약 심상정 후보가 단일화의 조건으로, 조직간 통합이나 비정규직 문제의 양보, 18대 임기동안의 정책연대 등을 합의했다면 이는 문제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말도 안된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민주당에서 한평석이라는 사람은 그저 한 후보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오죽하면 당내에서도 '제1야당이 창조한국당과 진보신당 꽁무니나 쫒아다니냐'는 불만의 소리가 나올지경이다.

 

난,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에 대해 소설을 쓰지 말자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에 대한 평가보다, 자신이 알고 있는 편견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다면, 이는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왜곡이 된다.

 

6. 솔직히 말하자. 진보신당은 계급정당이 아니다. 하지만 가장 상식적인 정당이고자 한다고 믿는다.

 

내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진보신당은 계급정당 아니다. 대중적인 민중조직을 바탕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그냥 좌파적 활동가들이 모여있는 정도다. 이게 부끄러운가? 아니다. 난 전혀 부끄럽지 않다.

 

계급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 소수자의 문제에 눈을 감고 무시하는 정당인데도 진보정당이라 한다면 난 부끄러울 것이다. 하지만, '계급정당'이 아니다라고 욕을 먹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도대체 계급정당이 뭔지 보여주고 나서 충고할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국노동당 이야길 한다. 맞다. 변했다. 제 3의 길은 오른쪽으로 열 두발 정도는 더 간 정책일 것이다. 하지만!!

 

기든스의 '제3의 길'과 '브라운씨, 이젠 당신 차례요'라는 책을 읽고 다시 한번 고민해보자. 영국의 노동당이 별 존재감도 없는 남한의 활동가에 '변절의 살아있는 화신'으로 명명되어도 되는 건지 따져보자는 말이다.

 

7. 그런데, 왜 국회 앞에서 집회들을 하는 걸까?

 

제도 정치에 대한 투항이라고? 그러면 왜 국회앞에서 그렇게 많은 집회들을 하는데? 이것은 제도 정치에 대한 환상인가? 물론, 집회는 국회를 겁주기 위한 정치적 활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효과다. 겁먹겠는가? 정말?

 

제도 정치를 이용하자는 말이 아니다. 대의민주주의. 정당정치. 선거. 이런 것들은 지금-여기에 현존하는 것이다. 있는 것 가지고 어쩌자는 것이 선거에 대한 논의다. 이 구조를 바꾸는 문제는 맥락이 다르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중요하다.

 

찍을 놈없어서 지난 대선에서 기권했다고? 속은 시원하겠다. 그런데, 그런다고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아래 있지 않나?

 

아무도 맘에 안들어서 총선에서 기권할 것이라고? 뭐, 봄 나들이라도 간다면 좋겠지. 그런데, 그런다고 한나라당이 태반인 국회의원이 만들 법/제도에서 떨어져 나와 살수 있나?

 

있는 것을 냉정하게 판단하자는 것이다. 이번 후보 단일화문제도 '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해야 한다. 국회의원 한명이 왜 중요한지, 욕을 먹더라도 진보신당의 이름을 단 그들이 왜 필요한지 함 따져보자.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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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단일화' 찬성한다

연기만 모락 모락하던 차에 결국, 단일화를 하겠다는 양측의 발표가 있었다.

환영한다. 이유는 두가지다.

- 심상정의 당선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진보신당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질 것이다.

그러면서도 경계한다. 이유 역시 두가지다.

- 지나친 단일화 전략으로 자칫 민주당 구도에 말려들 수 있다

- 순정주의를 지향하는 당내부의 반발이 거셀 것이다

그래서, 나의 입장은 뭐냐고? 난 찬성 쪽에 무게를 둔다. 왜냐하면, 심상정의 처지와 진보신당의 처지가 같기 때문이다.

간단한 사고실험을 해보자.

1. 만약 심상정이 단일화 제안을 일거에 거부하고, 독자노선을 천명한다.

: -1. 결국 한나라당 후보자가 당선되고, 심상정의 독자노선론은 현실정치에 대한 무지로 폄하된다(가능성 80%)

 -2. 천신만고 끝에 당선이 되고, 독자노선의 지고지순함이 널리 회자된다(가능성 20%)

2. 단일화 제안을 받아들인다.

 -1. 심상정으로 단일화가 되서 결국 당선된다(가능성 65%)

 -2. 민주당으로 단일화되고 심상정은 이쪽 저쪽 욕먹기에 바쁘다(가능성 35%)

만약 정확한 수치에서 차이가 날 지언정 전반적인 흐름에 동의한다면, 심상정과 진보신당이 선택해야 할 것은 하나 밖에 없다. 단일화를 수용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순정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는 쪽이라면 누구냐에 따라 이렇게 나뉜다.

1. 진보신당 당원: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심상정을 잃는 것보단 좋을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현재의 진보신당입니다. 미래의 가능성을 위한 불씨라고 생각합시다.

2. (순수)비당원: 현실정치는 힘의 논리로 작동됩니다. 아직 변절이니 의회주의니 하며 비판하기엔 이른 것 같습니다. 어짜피 선거에 출마한 것은 의회적 전술의 유효성을 인정한 것 아니겠습니까? 더욱 두 눈 부릅뜨고 발언하고 감시합시다. 도와 주십시오.

3. 진보신당 혐오파: 진보신당의 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신의 길을 보여주시오. 그러면 반성하겠소.

맞다.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진보신당의 생존과 연결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의석수가 없이도 이만큼 해오지 않았나? 맞다. 하지만 제도의 힘이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배워오지 않았나?

 

나는 순정파에게 이렇게 주문하고 싶다.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이론과 현장에 대해선 들을 만큼 들었소. 그럼에도 난 당신과 다른 길에 서있소. 제발 입바른 소리만 하지 말고, 그리고 우리가 가는 길에 침을 뱉느라 정신 빼지 말고 제발 당신의 길을 보여주시오. 라고 말이다.

 

나는 이론의 순결성이 정치적 무능력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계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나고, 우리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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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쳄발라'라는 악기

 

난 그런 악기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맨날 글렌 굴드것만 듣다보니 식상해졌다. 그래서 뭐 유명한 연주가가 있나 싶어 웹서핑을 했더니, 웬 걸, 골든베르크 변주곡이 쳄발라라는 악기를 위해 작곡된 것이라는 설명이 있지 않나?(이는 어느 바흐 전기작가가 소개한 에피소드에 따르는 것이지만 더 알아보니, 신빙성이 떨어지는 아름다운 창작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쳄발라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비도 오고, 점심먹고 산책도 못가니 뭐.

 

하프시코드, 클라브생, 클라비쳄발로라고도 하며 16~18세기가 그 전성기였다. 모양은 그랜드피아노와 비슷하나 피아노는 현을 해머로 치지만 쳄발로는 무두질한 가죽 등의 발목()이 재크를 건반의 뒤끝으로 밀어올려 현을 퉁긴다. 음 하나하나의 음절을 자유로이 변화시킬 수 없으므로 음의 높이나 음질이 서로 다른 음렬()을 만들어 놓고 기구적()으로 이들을 여러 가지로 조합해서 소리를 내어 음질이나 음량의 대비감()을 얻는다.

(아! 당최 무슨 말인지 알길이 없다.)

표준형은 음렬이 4열, 건반이 2단이며 상단에는 보통의 음높이를 지닌 음렬과 8도가 높은 음렬이, 하단에는 상단의 음과는 음질이 다른 보통 음높이를 지닌 음렬과 8도가 낮은 음렬이 배열되어 있다. 음렬은 스톱(보통 페달식)으로 어느 한쪽의 음렬을 고를 수가 있다. 현 끝에는 펠트 등을 닿게 하여 여운()이 짧은 음으로 변화시키는 장치(류트 스톱)도 있다. 소형의 것으로는 버지널 스피네트라고 하는 같은 기구로 된 것이 애용되었다. 피아노는 쳄발로 제작자에 의해서 쳄발로 본체()를 사용해서 발명되었는데, 원리적으로는 쳄발로가 발전된 것은 아니다. 19세기에 부활되어 현재 독일의 노이페르트와 슈페어하케의 악기가 유명하다. <네이버 백과사전 중>

(난 끝까지 읽어봐도, 그게 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문이 불여일청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결국 들어보기로 했다.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쳄발라로 연주한 것이다. 참고로 내가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처음 접한 것은, 예전에 어떤 대중가수가 샘플링을 해서 사용했던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딱 그것만 화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짧은 공부로 보자면, 변주곡은 일종의 주제곡(여기서는 사라방드의 아리아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름만 익숙한 이 곡이 뭔진 모르겠다^^)에 대한 다양한 변주 그러니깐 기본적인 뼈대는 같지만 연주를 달리하는 것을 말한다(고 본인은 접수했다).

뭐, 음악이라는 게 들어서 즐거우면 그만이고 관심이 꽂히면 더 찾아보고 즐기면 되니깐. 사족이지만 나는 클래식 음악평론하는 사람이 참 무지막지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연주자에 따라 이런 게 좋고 나쁘고 등 하는데, 뭐 나같은 사람이 그것을 다 찾아서 일일히 비교할리 만무하지 않나?

게다가 클래식은 찾기도 힘들다고!! 어쨋든, 나중에 더 공부할 셈치고, 이제가지 웹으로 찾아낸 내용들만 잊지 않기 위해 올려놔야 겠다.

1. 쳄발라로 연주하는 골든베르크 협주곡(구스타프 레온하르트 연주, 1953년 연주)

-1. 변주곡 1

 

-2. 변주곡 2

 

-3. 변주곡 3

 

2. 그 유명한 글렌 굴드의 변주곡 연주 모습 (변주곡 1에서 7까지. 그러니 앞의 3곡은 비교가 되겠군)

 

 

햐~~ 몰랐는데, 쳄발라라는 악기 되게 이쁘네. 뭐랄까 누군가 귀에다가 속삭이는 느낌같이 살랑살랑댄다고 할까.

암튼, 오늘은 쳄발라라는 악기를 알고 가는군.

참, 이런 뻘짓을 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진보신당' 화이팅!!(나름 열심히 선거운동중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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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경쾌한 피아노가 제격이다

뭐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생각해보면 살아가는게 다 그렇지 않나? 참, 지금 나오는 곡은 '노영심의 학교가는 길'이다.

(돈되고 여유가 되면 노영심 앨범을 사주는 센스!)

아침 출근길에 비가 내리는 줄 모르고 나왔다가, 집에 얼른 가서 우산을 꺼내 왔다.

아직 애연가인 나는, 비오는 아침 출근길에 빼어든 담배가 참 좋다.

그리고 버스-전철-버스의 난코스를 대비하고자 라디오를 귀에 꽂는다. 이러저리 돌리던 채널에 잡힌 것이 바로 이 피아노 곡이다.

 

이 역시 어쩌다보니 듣게 되었고, 출근하는 내내 꽂혀 있다. 뭐 굉장히 이쁜 소품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역시 할일이 쌓여있고, 난 겁에 질린 체 어떻게 하면 이런 일들을 안하고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고민중이다. 허허~~

그래도, 오늘은 노영심의 피아노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흐흐

다들 총선이 머지 않았다는데 분위기는 영 거시기 하다. 주변 지인들에게 나름 선전을 하고 있지만 글쎄다. 그냥 투표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다는 분위기다.

진보신당을 알리려면, 투표는 반드시 해야 한다 라는 주장에 덧붙여 '왜 진보신당인가'를 덧붙여야 하는데, 앞의 것을 설득하고 나면 시간이 없기 마련이다. 그럼 정작 투표를 하러간 그 놈은 누굴 찍는 거냐구!!  뭐 알아서들 하겠지.^^

 

암튼 아침이다. 봄비다. 누군가, 나의 5시간을 사가서 '너 맘대로 그 시간을 쓰시요'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아무런 부담도 없이 뒹굴어 본 게 언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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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산업의 (보이지 않는) 굴뚝

 

이런 이야기는 들을 적 있다.

 

2004년에 부안 방폐장 건설 반대투쟁을 할 때가. 당시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공사 였던가?)의 홍보물에는 핵발전소가 석탄이나 석유보다 더욱 환경친화적이라며 난리를 쳤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당시 평범한 부안주민들마저 알고 있었던, 사용가능한 '핵'을 얻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었다. 뭐 씨알도 안먹혔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당최 핵발전소라는 것도 시동을 걸려면, 석유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리저리 해도 석유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는 좀처럼 낮아질 수 없다는 문제의식. 곧! 에너지 소비를 낮추는 것외엔 대안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오늘 또 이런 이야길 보았다.

 

<경향신문>에 난 기산데, 우리가 굴뚝없는 산업으로 알고 있는 iT산업 역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잡아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글 검색 1건에 전구 45분을 켤 수 있는 에너지가 소비된다!

 

믿기나? 난 이 기사를 여러번 곱씹어 보았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편리함이라고 여기는 모든 물건들은 이렇게 에너지를 많이 사용해서 만들거나, 유지하는데 많은 에너지가 든다.

 

결국 불편함을 감내하는 것이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이라는 것.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추세다. 내가 진보넷에 이렇게 블로그를 운영하기 위해 드는 석유에너지는 과연 그 효율을 제대로 내고 있는 걸까? 헉.. 하고 나니 무서운 질문이다.

 

오일피크에 대해 이런 저런 경고들이 나오고 있다. 위기는 내 자식들을 겨냥하고 있다. 나만 빠져나가면 되는 세상이 아니기에 더둑 경각심이 든다.

 

(사족) 세상의 모든 허위와 편견을 까발리겠다는 책이 있었다. 그 책에선 지구온난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장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지구가 생겨나고 지금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았을 때 결코 위험한 수준이 아니다. 지구는 온도의 상승과 하강을 반복해왔다. 그러니 지금 올라가고 있는 지구의 온도도 곧 내려갈 것이다."

 

읽어 보고, 그래프도 보고...'끄덕, 끄덕'하고 말았다.

 

그리고 순간!! 그 온도가 내려간다는 지점의 조건이 혹시, 인류가 없어진다는 조건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젠장! 인류가 살아남지 못하고 지구의 온도가 내려가면 무슨 소용이냐구!

 

하긴, 그런것을 생각하지 않으니까 경제학을 할 수 있는 거겠지. 경제학도들이 일반 사람에 비해 이기적인 이유를 알 수밖에 없군. 음하하, 타도하자 경제학과!!



IT산업 ‘굴뚝만 없을 뿐’ 항공업보다 환경 더 파괴
ㆍ구글 1건 검색 소비전력이면 전구 45분 켜


‘비행기보다 위험한 컴퓨터?’

대표적 친(親)환경 산업으로 여겨져온 정보기술(IT) 산업이 실제로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항공 운수 산업보다 더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최신호에서 IT 산업의 에너지 소비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지구 전체 발생량의 2%로 항공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와 같은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문제는 항공산업이 바이오 연료 사용 등 온실가스 절감에 노력하는 반면, 급성장 중인 IT 산업은 직접적인 오염물질 배출이 없다는 이유로 환경 문제에 둔감하다는 데 있다.

IT 산업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막대한 전력 소비량 때문이다. IT 산업은 대용량 서버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엄청난 전력을 쓰고 있다. 인터넷 접속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서버는 24시간 쉼 없이 작동해야 하고 중요한 정보 손실을 우려해 항상 ‘열 받지 않도록’ 냉각팬을 돌려야 한다.

독일 뮌헨 지역 대학의 전산망 연결을 위해 지어진 라이프니츠 컴퓨터 센터는 2011년 도입을 목표로 슈퍼 컴퓨터를 주문했다. 이 슈퍼 컴퓨터를 유지하려면 ‘짐을 가득 실은 채 멈춰있던 400t짜리 고속열차가 시속 300㎞를 낼 때’와 같은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지금도 한 달 12만유로(약 1억8700만원)에 이르는 이 센터의 전기요금은 슈퍼 컴퓨터가 도입되면 더욱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촌에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전산망 운영 업체들은 수만대의 서버를 운영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IDC에 따르면 2000~2005년 사이 네트워크 서버의 전력 소비량은 2배로 늘어났다. 비평가들은 이를 ‘열풍기’에 비유하며 에너지 절약형 컴퓨터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에서 1건을 검색할 때 소비되는 전력이면 에너지 절약형 전구를 45분 동안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IT 기업들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주된 목적은 ‘환경 보전’보다 ‘비용 절감’이다. 구글은 최근 인터넷데이터센터를 미국 오리건주 댈즈 댐 인근에 새로 지었다. 캘리포니아주에 지불하는 돈의 5분의 1 가격에 수력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IBM은 160여개의 전산센터를 7곳으로 통·폐합했다.

슈피겔은 ‘굴뚝 없는’ IT 산업이 오히려 지구 온난화를 부추긴다는 점은 산업화 초기의 철강 산업을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철강 산업과 IT 산업 모두 초창기 폭발적인 성장과 그 과실만 주목받았을 뿐, 이들 산업이 유발하는 오염과 자원 소비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 정환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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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이 투표한다

재미있는 기사입니다. 영화잡지 <프리미어>에 실렸던 것이라네요..^^

글씨가 깨지는데, 밑의 그림을 한 번 클릭하면 제대로된 그림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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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난데즈씨 어디 계세요?

이 글은 1달전에 썼던 글과 연관이 있다.(클릭)

 

짧막한 글의 주고받음이었지만, 결국 확실해지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요즘은 '한반도 대운하' 반대를 주장하니 지지한다는 말들이 들린다. 에휴~~

 

좀 신랄하게 들리겠지만, 창조한국당을 지지하는 멘탈리티와 노무현을 지지했던 멘탈리티는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대운하반대하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으었으나, 너무 빨간 색이어서 가까이하기 어려웠는데 그나마 창조한국당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니깐 부담없다. 이런 것 아닐까?

 

이는 연예계에서 흔히 존재하는 '팬'적 광신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특정인을 좋아할땐 단점도 장점으로 보이다가, 아니면 단점은 작게보이고 장점이 크게보이다가, 애정이 떨어지면 모든 것이 단점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그런 광신적 태도 말이다.

 

내가 이렇게 까칠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당시 헤르난데즈씨의 영입에 침을 튀어가며 칭찬했던 이들이 결국 7번에 머물고 만 비례순번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 대운하 반대로 몰려가고 있다. 허허 참.

 

마치, 조중동 적당히 때려주면서 한미FTA 추진하던 노무현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감성적인 만족감은 얻되, 실속은 없는 정치적 게임에 빠져 있는 셈이다.

 

그래서 묻는다.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것으로 치면, 한나라당을 제외하고 다 포함된다. 진정성으로 보자면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도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앞선다고 본다. (참고로 작년 대선때 경부운하 반대에 대해 최대로 언급한 곳은 민주노동당이었다. 모두 경제살리기로 뛰어 다닐때 였다)

 

그런데도 창조한국당을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의 합리적 이성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들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노무현과 문국현이 그렇게 다른가? 난 차이점보다는 핵심적인 공통점을 더욱 많이 본다.

 

마지막으로 묻자. 헤르난데즈씨는 도대체 어디 있는가? 그 때 신문을 장식했던 사진의 잉크도 아직 증발되지 않았다. 박근혜 사당에 불과한 '친박연대'와 무엇이 다른가? 지지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동일성이 더 크지 않나?

 

참 어려운 사실이다. 내가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학교 다닐때 운동좀 했다고 하는 인간들이 창조한국당에 버글댄다는 사실이다. 그럼 운동경력이라도 말하지 말던가, 아니면 선배라는 이유로 학교나 들쑤시고 다니지 말던가. 거 참. 운동은 몸으로만 하면 이런 부작용이 생긴다니깐.(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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