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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꿀꿀해

비 오다 말다 한다. 간만에 일찌감치 출근해서 점심 먹은 직후 까지는 정신 없이 일 했는데 갑자기 할 일이 없다. 심심하다. 

 

날씨도 꾸리꾸리하고 꿀꿀한 노래 무한반복 듣고 있으니 아흐 기분이 완전히 바닥을 파고 들어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을 뚫고 들어가 맨틀에 닿을 지경이다. 차라리 맨틀에 닿으면 거긴 온도가 높으니까 뜨거워지기라도 할텐데 그렇지 못한게 아쉽다.

 

아웅~ 오늘 같은 날이 굽굽한 날은  김치찜 혹은 갈빗살 아니믄 녹두전에 소주 or 오뎅 꼬치에 청주 or 노가리에 맥주를 먹어줘야 하는데...

 

지난 일요일 '젊은 인생을 술로 탕진하지 마라'는 사장님의 사자후가 있은 후 며칠 안 되서 그런지 사무실 분위기는 영....파이다. 하긴 휴가다 뭐다 해서 사람들도 얼마 없기도 하지만. 

 

집에 일찍 들어가서 맛있는거 해먹을까?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 낸 후 가쓰오부시로 좀 더 우려내는 것이야..그래서 멸치, 다시마, 가쓰오부시는 버리고 무 반개 나박나박 썰고 갖가지 오뎅을 넣고 끓이다가 양파 반개 납작납작 썰고 고추 3개, 대파 반개 쫑쫑 썰어서 한 소끔을 더 끓이는 것이지.

 

겨자를 푼 간장을 마련하면 준비 완료. 비 구경하면서 오뎅탕이랑 청주 홀짝 홀짝 캬~

 

아무리 생각해도 청승이다ㅠㅠ 접때 혼자 메밀소바 맛있게 만든 다음 맛없게 먹은걸 생각하니 또 그러긴 정말 싫다.

 

아 평소 인간관계가 이럴 때 뽀록이 나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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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건국포장 받다. 그러나...

3일 보훈처에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47명을 포함한 214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에게 서훈을 추서한다고 밝혔다. 이번 명단에는 우리 할아버지도 포함이 됐다. 국내항일로 건국포장을 받았다.

 

호적상 이름 윤억병, 가명으로 우병을 쓰기기도 했던 우리 할아버지는 1938년 2월 일본경찰에 피체됐다. 정부공식 기록으로는 청년동지회 활동, 학계 자료에 따르면 칠곡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 경북지역 사회주의자 동맹 등으로 불리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일년 8개월 동안 지낸 우리 할아버지는 1939년 10월 14일 90여명의 동지들과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송치됐고 이 중 26명이 구속, 대구형무소에 투옥됐다. 1941년 3월까지 7회의 구류갱신처분을 당한 끝에, 1941년 3월 1년형을 언도받았으나 이미 경찰에서 20개월 형무소에서 17개월을 지냈기에 미결구류일수 산입으로 석방됐다.

 

당시 모스크바라는 별명을 받았던 대구 경북 답게 큰 조직 사건이었다. 할아버지를 비롯해 대구에서 공부하던 인물들이 대거 향리인 칠곡, 왜관 지역으로 낙향해 조선공산당 재건에 나선 것이다.(프로핀테른의 떽을 받았단다.) 왜관은 경부선 개통과 함께 커진 신흥 상업도시였지만 일개 면에서 터진 사건에 연루된 조직원이 90여명이 넘고, 구속자가 20명이 넘었다는 것은 당시 그 동네의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심지어 도쿄등지에 조직원을 파견하기도 했단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우리 할아버지는 사회주의자 였단 말이다. 적용받은 법규는 치안유지법(국가보안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법이다. 20년대 이른바 다이쇼 데모크라시 하에서 급증한 공산주의자들을 때려잡기 위해 쇼와 시대에 만든 법이다.)

 

지금은 일흔을 훌쩍 넘긴 고모들, 생전에 할머니의 전언에 의하면 형무소에 면회 갔더니 손톱이 다 빠졌더라는 등 딱히 알만한 온갖 고문들을 다 받은 모양이다. 또한 듣기로, 해방 이후에 더 힘들었단다. 일제 때 치안유지법 위반 '전과자'는 예비 검속 대상이었고 대구 경북지역에서는 10.1 항쟁등 사건이 계속 터진데다가 어찌나 못살게 굴던지 견딜 수가 없어 부산으로 식구들이 이사했단다.

 

하여튼, 뭐 정부에서 사회주의자들까지 서훈대상에 포함한 것은 전향적인 것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훈격이 문제로 터졌다. 경찰 유치장 20개월, 교도소 17개월 동안 옥살이 한 우리 할아버지는 아무리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해도 건국훈장 애족장에 해당한다. 그런데 한 등급 낮은 건국포장을 받은 것이다.

 

보훈처 공훈심사과 실무자는 '사회주의자는 한 등급을 낮추기로 결정했다'고 말해주더라. 공식적인 기준이냐는 말에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기준을 정했단다. 그러면서 이 전 정권에서는 사회주의자들에게 전혀 포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일도 전향적 인 것이란다.

 

차라리 안주고 말던가 자기들이 선심쓰는 것도 아니면서 사회주의자는 한등급 낮춘다는 기준을 어떻게 삼을 수 있는지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거지 동냥주는 것도 아니고...열받은 아버지는 이것을 받아야 되냐 말아야 되냐신다. 

 

게다가 청년동지회(보훈처 공식 표현), 칠곡공산주의자 협의회, 사회주의자 동맹으로 할아버지와 같이 옥고를 치룬 분들중 다수는 이미 노태우정권인 90년, 김영삼 정권인 95년에 훈장을 받았다. 그건 어떻게 된 거냐 물어보니까 역시 보훈처 직원은 '그때는 모르고 줬을 거고 이번엔 알았기 때문에 한 등급 낮춘거다' '형평성 문제는 우리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 분들걸 하나 낮출 수도 없는것 아니냐'고 되묻더라.

 

결국 정부에서는 사회주의자 47명을 포상했다고 떠들석하게 선전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훈격조작이 숨어 있고 사회주의자=2등 독립운동가 라는 기준이 서있는 것이다. 

 

옥신각신 끝에 보훈처 담당자는 "선생님 할아버님 같은 경우에는 순수 민족주의 활동을 한 것은 밝혀진 게 없고 사회주의건만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순수 민족주의 활동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있어야 사회주의의 흠집을 가릴 수 있단다. 

 

난 할아버지 얼굴도 본 적이 없으니 그 분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30년대 후반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에 대해서는 좀 알고 있다. 민족해방의 경로로 사회주의를 택한 사람들인게다. 물론 그 안에서도 좌우 대립이 있어서 민족주의를 탈피해야 한다는 측도 있었고 우리 할아버지께서 그 안에서 좌파였는지 우파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정부에서 이런식으로 재단 당해야 할 행위를 한 것은 아니고, 부끄러워해야 할 바는 전혀 아니라고 확신한다. 보훈처 직원은 심지어 '사회주의자였던거 아시죠? 재건공산당 사건이었잖아요'라며 비아냥 혹은 협박 식으로 이야기 하더라(그렇게 들린 건 내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

 

나도 열받았다. 그래서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수훈 공훈록(서훈을 받으면 이러이러한 공적으로 이런 상을 수상한다는 공훈록을 작성하게 돼 있다)에 '재건 공산당활동 결과로 건국포장을 수여한다'고 명기해달랬다. 그니까 돌아오는 답은 '선생님이야 그렇게 생각하실 수 도 있지만 국민감정이나 또 일가 친척분들도 그걸 원하시지 않을 것'이란다. 하긴 그 말이 맞지 우리 일가 친척들이 그걸 원할런지는 나도 자신 없다.

 

도대체, 90년에 이미 같은 사건으로 동지들이 서훈을 받았는데 자기들이 알아서 연루자를 찾아 서훈을 해도 될까 말까한 판국에 개인이 쎄빠지게(국립문서보관소에서 관련 자료 찾느라 작년에 고생좀 했다) 찾아서 올린 것도 열받는데 사회주의자는 한 등급 낮춘다니 , 무슨 선심 쓰는 것인가?

 

열받는다. 이래 놓고 국민통합이니 사회주의자 재발굴이니 선전하고 앉았다. 그래 머 국가에서 주는 훈장 받으면 머하고 안 받으면 또 머하냐 싶긴 한데...이런 식은 아니다. 누가 누구를 평가하고 감히 사회주의자는 한 등급 낮춘다는 기준을 누가 정할 수 있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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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바 없고, 머 어쩌라고? 사발 풀기도 힘들고, 사발 푼 다음에 감당키도 힘들고, 니미럴...따져보니 약속은 딱 2주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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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별안간 , 불현듯

갑자기, 별안간, 불현듯 일하기 싫어 죽겠다. 이런적은 별로 없었는데...오늘 오전에 간만에 혼자 사무실을 지켜서 더 그런가? 두시에 토론회(딴 토론회와 달리 이건 좀 재밌을것 같긴 하다만)가야 되는데 거기 가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기 싫다. 같은 노래만 한 시간째 듣고 있다. 우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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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또 한 살 먹었네

쌍놈은 나이가 벼슬이라고 하더니만, 어영부영 또 한 살 먹었다. 한반도에 그나마 평화가 온 정전협정 기념일인데 별로 기념 하는 사람들도 없더라. 하긴 누가 이긴 사람이 있어야 기념하겠지만 이긴 사람이 없는 전쟁이었으니,..

 

하튼 스물 다섯 이후 로는 그닥 내 나이가 실감나지 않는게 사실인데, 이젠 엎어치든 메치든 확실히 서른 줄에 접어 들었다.

 

대학 입학해서 바로 생일이 같은 친구를 만나서, 서로 군대 가 있을 때 빼고는 작년까지 항상 생일을 맞았기에 생일이라고 시니컬해질 틈도 별로 없었는데 ...어제 그제는 뭐 좀 저기했다. 차라리 예년처럼 하하하 떠들석하게 웃으면서 먹고 죽자 했으면 좋았겠다 싶을 정도로.

 

군대 시절 트라우마 때문에 내가 제일 싫어하게된 스타일의 '케익상' 까지 받아 맘은 바닥을 뚫어 지하실까지 가라앉고...그나마 오늘은 비가 내린 탓에 집에 일찍 와 앉아 있어도 더워서 힘들거나 그러지 않은건 다행이네.  

 

꽤나 피곤하다. 닥치는 일은 그럭저럭 하고, 또 일 하다 보면 재밌는건 여전한데 피곤하다. 작년 가을 블로그에 썼던 것 처럼 리프레쉬를 위해 뭔가 좀 해야 하겠다 싶은데 할 게 없다 ㅠㅠ 돌아보면 술 친구들만 있다 정말 무서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 때 일중독자로 불리는 한 선배가 떠올랐고 그 양반은 일이 그렇게 좋아서 저러고 있는걸까 다른 일이 없어서 회사일에만 매달리는걸까 궁금해하고 내가 그 짝 나는게 아닌가 두려워 했었는데 다시 쳇바퀴다-.-

 

아흥, 우짜 쓰까이. 귀찮고 힘들어서 눈막고 귀막고 살까 싶다가 그게 더 짜증나서 오지랖을 다시 넓혀보고 있는 중인데.....좋지 않다. 무겁다.

 

에, 그래도 날도 더운데 고생한다고 불러내서 비싼 밥 사주는 선배들도 있는데 이래서 되겠나 싶지만....내가 애도 아니잖아 ㅋㅋ

 

낙이 없구나,,,,

 

김현이 말하길 문학이 가치가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무가치하고 아무것에도 복무하지 않기 때문이랬는데(한국문학의 위상 중에서, 기억나는대로 쓰는 것이므로 당연히 원문하고 차이가 만땅) 나도 좀 무가치한 일을 하고 살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근데 무가치 한 일이 뭐지? 술 먹기나 웹서핑 혹은 티비 보기? 그런건 지금도 충분히 많이 하고 있는데 ㅋㅋ 오늘 알티비 녹화 갔다가 고 구본주를 추모하고 삼성화재를 타격하기 위한 퍼포먼스 '이~ 건희보다 못한 오리야'를 봤는데...나도 그런거 하고 싶더라.

 

에구 내일 애들 만나면  전사회적인, 전방위적인 뒷다마나 까볼까 싶다. 그런거 가끔씩 해주면 좀 후련하고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그런것 같더라.

 

아 참, 그래도 어제 간만에 간 노래방은 좋았어. 내가 부른 건 아니고 다른 사람 목소리로 들었지만 리쌍에서  비정규 보컬 뛰던 정인 노래 아주 굿! 더운 여름에 정인 같은 끈적한 목소리 가수 노래 듣는게 또 맛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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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 환장하겠다

더워 죽겠다!! 농담이 아니다. 그제 잠 자기가 힘들다고 느꼈는데 어제는 아예 잘 수 가 없었다. 밤 새도록 샤워를 몇 번 했는지 모르겠다. 눈 뻘개가지고 뒤척뒤척 거렸는데 스트레스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원룸이라는 집 구조에 바람 한 점 안 들어오고, 이건 집 밖보다 집 안이 더 더우니 어째 살라고ㅠㅠ

 

선풍기에선 뜨끈뜨끈한 바람이 나오고, 도대체 침대랑 방바닥은 왜 뜨뜻한 건데? 혹시 모르고 보일러 켜놓은건 아닌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홀랑 벗고 팬티만 입고 가만히 누워있어도 샤워 하고 오분만 지나면 땀이 삐질삐질 나오니... 

 

결국 오늘 새벽에 사무실에 나왔다. 가까이 사는 에어컨이 비치된 후배 네 집에 갈려고 했는데 그 넘은 논다고 집에도 안 들어오고..ㅠㅠ

 

오늘 오후에는 걔네 집에 가기로 했는데, 거기서 자야 되겠다. 근데 이 열대야가 과연 언제까지 계속 될라나?  신영복 선생이 말하기를 감옥에서는 겨울이나 여름이나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없는 사람 살기에는 겨울이 여름보다 덜 힘들다더니 그 말이 실감난다.

 

어떤 누나 말 마따나, 전셋집만 아니면 밥을 굶고 딸라 이자를 내서라도 중고 에어컨 이라도 하나 들여놓겠건만...

 

근데 유독 올 해가 더 힘들다는 느낌이 드는건 왜 일까? 남들도 다 그렇게 느끼는 걸까 아니면 나만 그런걸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알래스카나 뉴질랜드로 피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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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개'

molot님의 [김훈, 글쓰기, 민중언론] 에 관련된 글.

 

김훈이 새 소설을 냈다.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개'. 9,800원짜리 책이지만 장편 소설이라기엔 뭐하고 삽화도 포함되어 있고 옛날 교과서 만한 크기(이걸 4x6배판이라 그러나 국배판이라 그러나 기억이 안나네)에 231페이지 짜리인 걸 감안하면 좀 긴 중편 정도겠다.

 

이 책의 화자는 숫놈 진돗개다. 이름은 이쁘게도 '보리'..보리밥도 잘 먹는다고 주인 할머니가 붙여준 이름이랜다.  김훈은 이 책의 서문에서 "그 굳은살 속에는 개들이 제 몸의 무게를 이끌고 이 세상을 싸돌아다닌 만큼의 고통과 기쁨과 꿈이 축적되어 있었다"며 개 발바닥의 굳은 살들은 개들의 '삼국유사'이노라 선언한다.

 

에이^^ 근데 개들의 삼국유사라는 표현은 오버다. 단일자로서 한 마리 한 마리 개들에게 바로 자신의 발바닥 굳은살이 자서전이자 역사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일연이 재구성 하고자 했던 민족구성체의 역사 잖아.

 

따라서 개발바닥 굳은살의 단일성을 삼국유사는 절대 따라가지 못한다. 알만한 사람이 왜 그리 표현했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슨 선비의 문집, 일기 이런것에 견주기도 뭐하고 명확한 근대의 산물인 일기에 견주기도 덜 적절했으리라. 아마 삼국유사에서 큰 도움을 받은 자신의 이전 소설 '현의 노래'가 기억났겠지 싶다. 

 

최근 김훈은 '정치적 발언'을 몇 가지 했다. 탄핵을 맞아 하릴 없이 청와대에서 개기던 노무현 대통령이 '칼의 노래'를 읽는 다는 이야기가 그 측근을 통해 흘러나오고, 칼의 노래가 대중적 인기(사실 칼의 노래는 노무현이 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도 이미 많이 팔렸다)를 얻게 된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최근에는 조선일보가 김훈 인터뷰를 했는데 김훈은 이 정권의 중핵에 있는 386들이 '칼의 노래'를 일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감상을 늘어놓는것에 대한 불쾌감을 분명히 드러냈다. 김훈은 12척의 배로 죽을 자리에 뛰어들었던 이순신과  '민주사회'의 리더쉽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런데 그걸 조선일보 등은 자기 입맛에 맞게 이용해 먹었고, 데일리 서프 등 친노 언론들은 그 역편향의 극단을 걸었다. 데일리 서프 김훈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는 순간, 간만에 애리스토크래티즘이 나를 지배하더라. 하하하.

 

잡설이 길었다. 김훈의 신작 소설 '개'는 김훈이 그간 보였던 한계를 그대로 표출하고 있다. 충성이나 의리 같은 전근대적 가치에 대한 경도, 그리고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남녀차별의식. 

 

'소품'이라긴 뭐하지만 이 중편은 '칼의 노래' '현의 노래'보다 확실히 못하고 이상문학상 수상작 '화장'이 드러낸 그 도저한 밀어붙임에 이르지도 못했단는 것이 내 판단이다.

 

하지만 김훈 특유의 체취는 너무나 잘 드러난다. 별 거 없는 내러티브인데도 나 같이 싸늘한 사람의 눈물을 자아낼 정도로 문장들의 핍진성은 극진하다. 화자인 진돗개 보리는 태어나자 마자 “내 몸뚱이를 비벼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개가 사람보다 낫다.

 

그리고 곧  “눈, 코, 귀, 입, 혀, 수염, 발바닥, 주둥이, 꼬리, 머리통을 쉴새없이 굴리고 돌려가면서 냄새 맡고 보고 듣고 노리고 물고 뜯고 씹고 핥고 빨고 헤치고 덮치고 쑤시고 뒹굴고 구르고 달리고 쫓기고 엎어지고 일어나면서 이 세상을 몸으로 받아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지”라며 구체성을 획득한다.

 

이런 문장은 어떤가? "지나간 날들은 개를 사로잡지 못하고 개는 닥쳐올 날들의 추위와 배고픔을 근심하지 않는다" 이 소설의 한 문장만 더 소개하고 맺을란다. "세상에는 사납고 무례하고 힘센 것과 달려가서 쫓아버려야 할 것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아흐, 어린 시절 처럼 개들과 함께 뒷산을 뛰어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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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참, 참나원, 원나참

나 원 참, 원 나 참, 참 나  원, 사실 이런 말 장난은 내가 오래전 부터 치던 건데 박민규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 클럽에서 써 먹어서 다시 쓰긴 저기 하다만 그래도 뭐..니미럴.

 

뭐 알 바 없어, 오늘은 어디 산이라도 가던지 아님 하튼 몸을 쓰고 싶었는데, 혹사 시키고 싶었는데 썅.

 

덥다. 더워서 휴가들도 간다는데 어디로 누구랑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아까 우연히 알았는데 삼일전이 음력으론 내 생일이더라. 태양력으로는 좀 남긴 했지만....

 

아까 티비 보는데 제5공화국 하더라, 그랬었지 중학교 때 요상한 소설들 많이 읽을적에 일본에선 유신지사들 료마, 사카모토가 맘에 들었었고 516 세대 중에선 김종필이, 617 세대 중에선 쓰리 허가 괜히 멌있게 보였었지.

 

특히 허화평이, 멋있게 보였더랬다. 개인적 스타일은 허문도 식이지 않냐 싶기도 했지만...

 

제5공화국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혹은 머 옛날 사림달을 만나면...5공화국 들어서자마자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대중, 23일 동안 단시했던 김영삼, 머 더 이전엔 사형 선고 받고도 허허 웃었던 김병곤 등등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 앞에서의 자신감'을 내가 가지고 있는지 아주 의심스럽다.

 

쿨하지 못한 증오는 강해지고, 답없는 문자들은 횡행하고 도대체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야 되는가 하는 의심에 대한 해답은 아직 없다.

 

애들 처럼, 무슨 해병대 체험 프로그램이라도 들어갈까 싶다. 한 번 해봤던 지리산 종주  이런거라도 가볼까, 혼자 갈만큼 부지런하지도 못하고 같이 가잘만큼 용감하지 못한게 딜레마다.

 

도대체 이런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현실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단 말인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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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대략 좋지는 않다!

젠장, 블로그에 이런 걸 쓸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나에게선 블로그란 거의 공적인 매체에 다름이 없으므로.

 

힘들다. 몸과 마음이, 아니 뭐 몸은 별로 안 힘들다 솔직히^^

 

따지자면, 일이 힘든건 아니지만 일로 파생되는 이러 저러한 것들이 힘들고. 프라이빗한 문제도 쉽진 않고 아니 쉽지 않다니 그 수준이 아니지 ㅋㅋ

 

게다가 이런걸 블로그에도 쓰기 힘들어하는 현실이 더 왓 더 퍼킹이지!

 

누구 말마따나 혼자 볼라믄 포스트를 쓸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 다 보는 것도  싫고..하여튼 인간의 삶이란 참 간사하다.

 

어째? 확 까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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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당첨자께는...

뎡야핑님의 [긴급 캡쳐..랄까 후훗] 에 관련된 글.

지난 달 30일 흥미로운 외신 하나가 전해졌습니다. 세계 제2위의 갑부이자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렌 버핏 버크세 헤서웨이 회장이 '워렌 버핏과의 오찬'을 이베이 경매 상품으로 내놓았는데 버핏과의 점심식사가 35만 1100달러에 낙찰 됐다는 거죠. 버핏은 6년째 이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낙찰 금액은 전액 글라이드 재단이라는 엔지오에 기부, 무주택자를 돕는데 쓰인다고 하더군요.

 

낙찰자는 그 자신과 그가 초청한 7명과 함께 뉴욕 혹은 내브라스카 오마하에서 버핏과 식사를 하며 투자철학 등에 대해 토론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렇다고 제가 35만 1100달러씩이나 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35만 1100원을 부담하셔야 되는 것도 아니고 30000번째 방문자인 뎡야핑 님에게는  peyo와 molot의 사인이 함께 들어있는 전신 브로마이드 3종 선물과 함께 'peyo, molot와의 디너'라는 파격적 선물을 드립니다. 식사와 함께 peyo의 저널리즘 철학 그리고 molot의 블로그 철학에 대해 토론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물론 수익금은 전액 참세상 저임 노동자들을 돕는데 쓰입니다. 

 

근데 떡본김에 제사지낸다고 핑곗김에 술이나 먹을까 했는데 덩야핑 님께서 음주를 즐기시는지 전혀 알 수 가 없네요--;; 그래도 뭐...아차상에 해당하는 미류, 데이브레잌님등과 함께 오프를 진행하는 것이 어떨런지? 술 안 드시는 분은 드시지 말고 먹는 사람은 먹고 대신에 맛난 음식은 함께 먹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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