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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과 광기의 사이에 대해 생각해보다.

어제(그러니까 6/23) 10시쯤 서대문에서 광화문 앞길을 가로질러 가는데..정말 너무 공포스러웠다.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의 물결..이 아니라 파도가 마구 밀어닥치는 것이다. 경기 시작이 6시간 정도나 남았는데도 벌써 광화문에는 자리 잡고 앉으려는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이미 큰 전광판들이 몇 개 설치되어 있었고 레이저 쇼따위를 보여주면서 응원가들을 소리높여 틀어놓았다. 동행자와 같이 사람들을 헤치고 나오는 동안 나는 동행자와 멀어질까봐 계속 신경을 써야 했고, 너무 크게 울리는 응원가와 노점상들의 물건 파는 소리, 기타 소음들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거기를 빠져나와 미 대사관 뒷길로 들어섰을때야 겨우 한숨을 돌렸고, 살짝 소름이 끼치기까지 했다. 잠깐 있었던 술자리에서 그 얘기를 꺼냈더니, 누군가는 옛날 학생들이 우르르 뛰어나오는 시위를 했을때 일반 시민들이 느꼈던 기분이 그거랑 비슷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애들이 갑자기 쌩~하고 뛰어나가면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게 뭐야. 당장 보기만 해도 무서운걸. 그 생각을 하니 우습기도 하고 참 한심하기도 했다.

 

 

스위스전이 어떤 결과였는지는 TV를 켜자마자 나오는 뉴스를 통해 알았다. '만취한 40대 스위스 대사관 폭파 협박'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_-; 아버지는 자신의 커뮤니티 사람들과 함께 응원하느라 집에 안들어 오시고, 자식은 나와서 술 먹느라 집에 안들어 가는 날 어머니 혼자 TV를 보며 쓸쓸히 축구를 응원하고 있을것이라고 했던 술자리 동석자의 말이 갑자기 오버랩되기도 했다. 아마 대사관 폭파 협박을 했던 그 아저씨도 가정이 있겠지. 그리고 아마 16강 진출이 좌절된 이 상황에서 이제 아저씨는 가끔 스위스 얘기만 나오면 핏대를 올리겠지만 또 자신의 팍팍한 삶을 살기 위해서 악을 쓰고 살아야겠지..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지기도 했다.

 

 

응원하는 순간만큼은 서로 하나였을지 몰라도, 그 순간 사이사이 또 다른 차이를 느끼게 되기도 할거다. 누구는 이때다 싶어 재빨리 사업 아이템을 들고 거리 장사를 했을 것이고, 누구는 이때를 노려 연인과 함께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나왔을지도 모르며, 누구는 응원을 핑계삼아 집에 안들어가도 되는 시간을 만끽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상황을 가지고 대중의 심리를 하나로 파악해서 마케팅에 이용하는 기업들이 문제인지, 아니면 그걸 알고 있음에도 그냥 같이 부흥회 하듯 쓸려가는 것이 문제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월드컵 4강에도 들었던 나라이니 우리나라 좋은나라'라며 응원이나 하고 보자..하는 것이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그 순간에 모인 사람들의 '응원'이라는 공통된 목적이 사실은 공통된 목적이 아닐 수도 있음을, 그리고 그 집단의 힘이 마치 나를 지지해줄 수 있을거라는 착각만큼은 위험할 것이다.

 

 

아저씨의 대사관 폭파 협박은 어린 아이들의 객기와 뭐가 다른가. 무리를 지어서 같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신의 일방적인 생각을 그대로 실현시켜줄 것이라는 착각은 그냥 착각이고 광기다.

 

 

아.. 참 내. 어이가 없어서 별 잡설을.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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