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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비혼자들의 추석

어제 모처럼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저희집 식구는 모두 여섯,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사남매입니다. 그냥 이렇게만 보면 여느 평범한 집과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만.. 문제는 그 사남매가 한명만 빼고 다 30대에 모두 독신 가구주라는 거지요. (나머지 한명도 조만간 30대에 진입할 예정입니다.) 가족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별로 흔한 상황은 아니지요. 그러다 보니 명절때마다 부모님이 스트레스를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정작 결혼 안한 자식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ㅋㅋ 올해는 명절이 시작되기도 전에 어머니께서 한마디 하시더군요. '언제까지 내 손으로 명절음식 만들어야 하냐? 나도 힘들어서 못하겠다. 아무것도 안할꺼다.' 으~ 부끄럽게도 다들 독신가구다 보니 명절은 그냥 기간이 좀 긴 휴일정도로만 인식하고 살다가 어머니가 해 놓으신 음식 먹으라고 부르면 그제야 찾아가는 불효막심한 자식들이었지요. 어머니 연세를 생각해보니 어이구 낼모레면 칠순이더군요. 반성, 반성 -_-; 그래서 동생들에게 전화하고 이번만큼은 우리가 명절음식을 시장보기부터 다 준비해보자 이랬지요. 그리고 월요일(추석전일)에 다 찾아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인터넷으로 명절음식 목록과 재료도 찾아보고.. 그리고.. 아침에 집에 가보니 왠걸 벌써 전날 시장을 다 보셨더군요. 우리 온다는 소리에 벌써 일꺼리를 하나 가득 마련해 놓고 계셨습니다. 그럼 그렇지.. 우리 어머니가 어떤 분인데 제가 잠시 속았습니다.-_- 결국 우리가 준비하려고 계획한 것보다 훨씬 많은 음식재료들과 씨름해야 했죠. 뭐, 모처럼 모인 자식들때문에 기운이 나신 어머니가 몇가지는 손수(?)하셨기에 아주 엄청나게 많이는 아니었지만. 호박전, 두부전, 동태전, 고추전, 고구마전.. 부치다가 반죽이 좀 남는 것 같으니까 이번엔 부추를 꺼내 놓으시더군요. 도대체 어디서 재료가 자꾸 나오는지.. 생전 처음 굴소스를 이용한 고추잡채도 해보고 (첫 솜씨였지만 상당한 수준으로 성공했습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웠습니다. *^^*) 다시 이마트에 가서 샐러드 꺼리랑 기타등등 장을 보고 예정은 점심때쯤이면 일을 모두 마치고 오후엔 개인 볼일을 본다였는데 얼추 정리를 하고나니 오후 5시. 계획한 일들이 있었지만 자식들이 와서 같이 음식하고 수다떨고 그 모습만으로도 좋아하시는데 어쩌겠습니까? 부모님이 많이 외로우셨구나, 반성도 하고. 제가 전날 우리 보육노조 합니다, 말씀드렸더니 예상대로 걱정을 많이 하셔서 (몇십년을 조선일보만이 제대로 된 신문이라고 믿고 계신 분들이 생각하는 노동조합이란 대충 짐작이 되시지요?) 거기에 대한 보충도 필요했구요. 좌우지간 음식만들기와 설겆이를 하루종일 하고나서 몸은 지치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동기간에 이벤트 하나없이 보내기엔 섭섭하더군요. 그래서 동생들과 함께 집 근처에 있는 보드게임 카페에 갔습니다. 가장 젊은(?) 동생 한명만 보드게임카페에 가 본 경험이 있고 모두 처음이었습니다. 재미있더군요. 흐흐 게임이름은 잊어버렸지만 2시간동안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제가 제안해서 숫자패를 하나씩 쥐고 가장 작은 숫자를 가진 사람을 뿅망치로 때리는 게임을 했는데 진짜 오랫만에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전 역시 단순하고 유치한 게임이 체질에 맞는 듯. 그리고 근처 맥주집에서 맥주 한잔씩 하고. 오늘 아침에 밥먹고 다시 각자 갈길로 떠났습니다. 아마도 연말에 둘째 동생 생일이나 되야 다시 다같이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래서 명절휴가는 길어야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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