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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2호>‘개인의 발전이 만인의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를 위해! ‘안철수’를 지지하는 2030세대 청년들에게

 

안철수! 확실히 인간적으로 ‘매력적’이고 정치적으로 ‘흥미로운’ 인물이다. 12월 대선을 앞두고는 유력한 대선 주자로서 기존 정당 질서를 흔들 수 있는 흥미로운 정치적 역동성, 새로운 정치와 리더십의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2030세대의 욕망과 열망
확실히 ‘안철수’ 에게는 이 시대 2030세대의 욕망과 열망이 투영되어 있다. “능력 있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사회 구성원 전체에 대해 책임을 지고, 가진 자의 의무에도 충실한, ‘양심적이고 착한 리더’에 대한 욕망”이 그것이다. 민주화 시대에 태어나고 자라서 권위주의적 동원에 거부감을 가지며, 자신의 실현에는 관심을 갖고 능력도 있지만 일자리 앞에서는 절망하는, 그러면서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지성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도 투영돼 있다.
그 욕망과 열망이 이제는 ‘안철수’를 앞세워서 기존 정당질서에 대한 불신,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뛰어넘어 기존 보수-자유주의진영의 정치구도를 위협하고 균열을 낼 수 있을 정도의 힘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는 ‘안철수’가 “대중이 리더에게 리더십을 요구하는 탈권위주의 시대”에 그 대중의 열망과 욕망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가졌고, 2030세대가 바라는 새로운 리더십을 체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에 갇히지 말고‘급진화’하라 
한 사람의 사회주의자로서 나는 2030세대가 가지고 있는 자기실현의 욕망과 변화에 대한 열망을, 탈권위주의적 소통과 공감의 과정을 지지한다. 그러나 그 욕망과 열망이 ‘안철수’에만 갇히지 말 것을 제안한다. 2030세대는 ‘안철수’보다 더 나아가야 한다. 더 급진화되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그 욕망과 변화에의 열망이 현실화될 수 있다. 일자리를 위해 대기업 중심의 경제발전 모델은 비판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비판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생 모델’이나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하고, 정당하게 획득한 재산을 정의롭게 환원”하는 것이 답이 될 수 없다. 실업 문제의 일부는 해결할 수 있을지언정, 2030세대 대다수가 직면하거나 직면할 ‘노동’의 문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문제, 노동3권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가 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야
‘안철수’는 “나의 성공은 사회가 내게 허락해 준 것”이고,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고, 그런 걸 인식하는 인재가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면, 그 세상이 ‘자본주의’라면, “자본주의를 바꾸어서라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데까지 두려움 없이 더 나아가야 한다. 그는 ‘보수-진보’가 아닌 ‘상식-비상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상식’을 자본주의라는 틀안에 가두지는 말자. 자본주의의 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상상력도, 가능성도 그 상식에 포함시키자.
2030세대는 ‘안철수’를 통해 ‘안철수’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안철수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안철수가 되려는 노력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안철수가 되려면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야 그 현실적 가능성이 열린다. ‘안철수’는 “우선은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자기 스스로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자연적으로 주위 사람들도 결국에는 이해하고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빼먹은 게 있다. “나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에서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박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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