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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신문 사노위 53호> 국정원 촛불이 광장에 갇힌 이유

국정원 촛불이 광장에 갇힌 이유

 

시청 광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투쟁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실이 폭로되었음에도 경찰에 의해 사건이 축소·은폐된 사실이 다시 드러났다. 논란 끝에 여야 합의로 진행되는 국정조사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여기에 국정원은 정치개입을 ‘대북심리전’의 일환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해명을 하면서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역사의 시계를 1987년 이전으로 되돌리는 이련의 사태에 대해 연일 투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투쟁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소규모에서 시작해 이제는 수만 명이 모이는 촛불집회가 계속되고 있지만, 사태의 균형추를 돌릴 폭발적 확산은 현재로썬 존재하지 않는다. 야당은 국정조사에서 스스로의 무능함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며, 그 결과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아무렇지도 않게 국정원의 변호인 노릇을 자임하고 있는 형국이다.
10만의 인파가 모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투쟁은 시청 광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상승기에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투쟁 의제의 확산 역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전개되고 있는 국정원 촛불투쟁에서 08년과 같은 역동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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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도 의지도 없는 야당

이 사안은 어떤 식으로건 이제 갓 창출된 정권의 ‘정통성’의 문제와 직결된다. 정권이 한발 물러선다는 것은 정권 스스로 정통성에 흠집이 있음을 승인하는 것이고, 정통성에 문제가 있는 정권이 사안에 대해 책임지는 방식은 곧 정권의 퇴진 혹은 그에 준하는 조치가 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 역시 이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87년 이후 최초로 과반 이상의 지지로 창출된 정부의 집권초기에 정권퇴진의 요구를 걸고 싸울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없다. 그렇기에 이들은 ‘국정원장 퇴진’, ‘국정원 개혁’으로 요구를 한정하고 있으며, 전술적으로는 ‘의회 복귀’와 ‘장외 투쟁’을 저울질하며 갈팡질팡하고 있다. NLL논란과 국정원 대선개입을 오가며 진행된 국정조사의 난항은 ‘청문회 스타’도 배출하지 못할 만큼 답답한 형국이며, 또한 그만큼 야당의 무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국정원 개혁으로 제한된 의제

87년 이후 26년이 흘렀다. 이 나라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아무리 허술할지라도, 대중은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대중은 정권에 대한 승리가 가능하다고 여기지 않으며, 또한 이것을 가능케 할 세력이 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이 국정원 문제가 먹고사는 문제와 별로 연관이 없다고 본다는 것이다. 이는 첫째로, 이 사안 자체가 생존권 문제와 결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둘째로 주체의 측면에서 조직노동계급이 집단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을 반영하듯 박근혜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여전히 60퍼센트를 상회하고 있다. 국정조사의 진행양상보다는 세제 개편 문제가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형국이며, 실제로 세제 개편안에 대한 대중의 격앙된 반응에 화급히 증세기준을 상향조정한 정부의 조치에서도 확인된다. 이는 실로 정권의 기민한 대응이다. 정권은 세재 개편 문제가 ‘중산층·서민의 지갑 털기’라는 공격 속에 국정원 문제와 엮여 총체적 정치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우리가 답해야할 문제

앞서 말했듯, 대중에게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밥’과 별 상관이 없는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투쟁이 여전히 국정원 개혁과 국정조사로 머물러 있는다면 돌아오는 것은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는 체념과 냉소일 뿐이다. 공장 안의 노동자들에게 민주주의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고, 공장 밖의 시민들에게 지금의 이슈는 뭔가 중요하지만 자기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것보다 중요하지는 않은 그 무엇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87년 6월 이전의 감수성으로 97년 IMF 구제금융 이후의 체제를 만들어왔던 민주당은 이 문제에 결코 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정치’라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우리는 바로 이 문제에 실천적으로, 즉 우리 자신의 실력으로 답해야 한다.

 

백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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