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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9 각질과 흰머리

24살 즈음, 발 뒷꿈치에 각질이라는 놈이 낀 것을 발견했을 때, 
30살 즈음, 가르마 주변으로 흰 머리가 뻐시게 나와 삐죽 솟아있는 것을 거울을 보며 뽑고 있을 때

늙어간다는 것이 한달음에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신촌과 홍대 앞 이반 모임에 참석하면 어김없이 드는 느낌, 늙었다는 것.
도대체, 흰머리를 뽑고 발뒷꿈치 각질을 제거하는 레즈비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레즈비언 모임에서 주민등록증 출생년월일을 이렇게 열심히 밝혀야 하다니.
정통부 인터넷 실명제보다 더한, 너무한다, 라는 기분이 마구 들었다.

주말에 간 이반 모임에서는 30살 넘은 사람을 찾기도 어려웠을 뿐더러 이름표 옆에 나이를 떡 하니 명시해놓았다.

그래서 서른인 나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의 나이에 주책바가지 마냥 잔치 벌이려고 나타난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이에 따라 위계서열이 달라지고 존대말과 반말이 달라지고 모이는 층도 달라지고 대하는 분위기도 다르다.
마흔 몇 살의 전 하우스 메이트 '휴지'랑 반말을 섞고 거의 마흔이 되어가고 울 학교에서 강의도 하는 미물이랑도 반말을 섞고,
서른 여섯 오정의 여섯 살 난 아들내미 성현이도 내 이름을 부르는 막역한 사이라서
이런 분위기 영, 낯설다.
이반 모임을 몇 번 나가봤지만 웬만한 모임에서는 별칭과 부치/펨의 구분 다음으로 나이가 중요했다.
그건 너와 나의 관계를 따지는 바로 미터였다.

그러니까,
불쑥 나이가 든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 무섭다는 노화공포증이 생길 것만 같았다.
나이가 들수록 '다른' 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원하는 관계에서 소외되고
사람을 가려 사귀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고
남들이 나를 '늙은'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라는 두려움.
더군다나 여자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 은 남자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나이를 먹은 여자는 젊은 사람과 '다른'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틀린'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이가 먹은 '미혼'의 여자는 정말 '틀려' 먹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는다는 것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발 뒷꿈치 각질을 박박 문질러 없애고 흰머리를 핀셋으로 집어없애는 것처럼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이반 모임에서는 나이보다 뭐 먹을지를 먼저 물어봤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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