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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간의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공항에서.

<공항에서 책 읽으면서 비행기 기다리는 중>

 

말레이시아 KLIC에서 달달한 초코머핀과 커피를 먹으며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KLL to ICN SOON!

생각나는 것은 우편함에 첩첩히 쌓여있을 고지서들, 먼지 속에 담금질 되었을 내 식물들의 잎파리 하나하나. 박희정 만화 '마틴 앤 존'에서 존이 갑작스레 트럭에 치이면서 "그런데 왜 이 순간 고지서들만 떠오르는 걸까"라고 묻는 것이 자연스레 이해가 되는 순간.

 

한국행 비행기에 체크인 하면서부터 벌써 인천에 와 분 것처럼 좀 지긋지긋해지고(ㅎㅎ), 리무진 버스를 타고 도착한 집에서 기다리는 것은 첩첩산중의 고지서 뿐인데도, 왜 한국에 가는 것이 '또' 설레고 그런지. 주책 맞다.

여기 온지 일주일이 막 지나서는 주발양에게 "너 홈씩(Homesick)이냐"라는 말까지도 들었다. 골고루 한다. <커피빈 커피와 달달한 초코머핀>



하루 먼저 귀국한 주발양과 방콕 쑤쿰윗 거리의 J.W. Marriot에서 뷔페 식사를 했다.

먹으면서 "별 것도 없음시롱 한국돈으로 한 명당 45,000원이나 하고 지랄이야" 하고 흐흐흐, 웃었다.

음식도 훌륭했지만 (안 그러면 어쩔쏘냐.) 우리는 돈으로 익숙함을 눅진눅진하게 몸에 체화시키고, 자연스러움을 몸에 스르륵 스며들게 하는 것임을 안다.

부르디외 식으로 말하자면 그 놈의 문화자본.

 

서울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사람이 붐비는 신촌, 압구정 같은 전철역에서 주변지도를

보고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찾는 것이 좀 '족팔렸다'.(아아, 이거 말하는게 지금은 더 족팔려~) 그건 마치,밀양서 온 내 친구가 지도 남들 하는 것처럼 전철표를 '띡'하고 소

리나는데 댔는데 웬일인지 남들처럼 통과가 안 되서 당황하다가 달려나온 공익한테

(그 땐 공익 담당이었으~)고건 카드가 아닝께 들이대지 말고 -_-;;; 요기다 넣어야 한다는 지도편달을 받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스타벅스가 처음 생겼을 때에도 톨이랑 그란데도 모르고 휘핑도 모르고 해서 시골영

감 서울 온 것처럼 겁나 신기해함시롱 몸에 긴장감 팽팽 유지했었다. 주발과 나는 나

름, 긴장을 풀고 메리어트 카페를 천천히 돌면서 음식을 골랐다.

프랑스 식당 빼고는 이제 어디라도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45,000원의 입장료.

 

여행은 경험이라고들, 한다. 실제로 '선진국' 인간들은 웬만해서는 집과 차가 다 있으

니 어디를 얼마나 자주 휴가를 다녀왔는냐로 사회적 지위를 떠본다.

몸에 찍힌 사회계급의 바코드.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장시간 비행을 하려면 여름에도 파시나마 목도리 하나쯤 둘러

야 하고(추울 때 숄로 쓰면 유용하삼) 간단한 가디건이나 얼굴에 뿌리는 작은 스프레

이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콕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는 '익스프레

스' 도로 이용료 40 바트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도(난 처음엔 택시기사가 사기치나, 하고 괜시리 의심했었다), 에어 아시아 오후 비행기는 웬만해서는 늦어지니(인도 기차

저리가라다..) 혹시 바로 비행일정이 있는 경우 다른 비행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시간

을 아주 넉넉히 잡아야 한다는 것 쯤을 한달음에 '익히게' 된다.

웬만한 곳에 가서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행동하게 하는 입장료, 여행비과 항공료.

 

집에 돌아가면서, 정말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에 조금 목이 메었다.

돌아와줘서 기뻐, 라고 말해줄 사람이 있다면 말레이시아 공항의 초코머핀보다 더 달달할텐데,

나는 그런 것들이 필요해서 그런 것들의 입장료는 얼마일까하고 헤아려 보고 있다.

 

여행비와 항공료와 메리어트 부페 식사 곱하기 만 배 정도는 치른 것만 같은 기분인데 연애는 늘, 익숙하지가 않다.

 연애도, 경험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경험은 그저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나에게는.

관계가 시작될 때마다 서툴고 어색하고 구리고 긴장만 잔뜩하고, 그리고 상처받는다.

입장료를 그리도 많이 냈는데 '연애 자본'은 여전히 택도 없다.

 

고지서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안 그러면 어쩔쏘냐)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지만,

한국은 그 자체로도, 입장료 없이도 '익숙'한 일상이니. 초코머핀과 커피를 다 먹었다. 파시미나 숄을 목에 둘둘 감고 척척 체크인 데스크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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