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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2 못난인간



사무실 한 층 아래에 자리한  '에너지 시민연대'에서 '불을 끄고 별을 켜자'라는 에너지 절약 소등 캠페인을 열었다.
사무실의 모모양에 따르면 '에너지'네 사무처장과 우리네 사무처장이 모여서 한 번씩 '뒷담화' 간담회도 열만큼 절친하다고 하는데, 그래서였는지 저녁 6시 업무를 마치고 '에너지'네 행사에 자원활동으로 '착출'되었다.
밤 9시 부터 불을 확 꺼불고, 통기타를 들고와 2020명이 다구리로다 한대수씨의 곡을 연주하면서
독일의 신기록 1768명인가 뭐시긴가에 도전한다는 거였다. '착출 일꾼'들 우리는 친절하게 통기타를 들고온 사람들의 접수를 받고 응모권을 나눠주고 물도 나눠주고 그랬다.

바람은 살랑, 시청 광장 앞은 총총.
우리도 언젠가 하짓 날 하는 소등행사 '캔들 나이트' 혹은 세계공정무역의 날 하는 '한국 페어트레이드 행사'를 여기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흠, 그 때 '에너지'들도 착출 당하겠군, ㅋㅋㅋ 도 함께. :-)
 
적어도 그 놈이 나타나고 '경희궁의  파크' 어쩌고가 도대체 어디서 쓰는 것인지 듣기 전까지 그랬다.

통기타를 매고 와 참가 신청을 하고자 하는 그는 한국어를 못하는 아시아인이었다. 키는 훌쩍, 얼굴은 반짝, 윤이 났다.
칸을 메우는 곳을 영어로 설명하다가, 한국 주소는 내가 적어주는 것이 빠를 것 같아서 메모 사 주소를 보게되었다.
경희궁 파크? 이거 광화문에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 '경희궁의 아침'의 영어판인가 하면서 옆의 모모 양에게 물어봤다.
그녀가 웃으면서 "우리 집도 여기인데"라고 한다. 경희궁 뒤에 바짝 붙어있는 5층 빌라로 한남동이나 이태원 쪽에 근무하지않는외국인, 나무가 많고 좀 고즈넉하면서 조용한 곳을 찾는 외국인 전용 렌트 빌라라고 했다. 그는 301호, 그리고그녀의'우리집'은 4층으로 폴란드 대사가 세 들어 산다고 했다. 사실 그녀의 '우리집'은 평창동이었고, 그 경희궁 파크의'우리집'은주거가 아니라, 소유 상의 '우리집'이었다.  모모양은  그와 함께 온 외국인 아줌마를보더니  저사람도 그 빌라에 사는데 유엔에서 일한다고 '내부인'용 정보도 주었다.

못났지, such a loser!
그런데도, 갑자가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어쩌면 '작은' 시민단체에서 일하거나 '저부가가치' 일임에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호사는 다만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 생각하는 것이  나쁘더냐'라고 말할 만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케리가 '빅'과 결혼한 스물 여섯의, 랄프 로렌 디자이너 나타샤를 보면서
"나는 고작 성기 이식 수술 광고 뒷면에 섹스 칼럼이나 쓰고 있잖아"라고 울먹이는 기분과 비슷했다.

대안녹색생활도 좋고, 5분 간 소등도 좋고, 자전거도 좋고, 잠시나마 불이 꺼진 서울시청 광장도 좋고, 달팽이도 좋고,아날로그도좋고, 그런 것들이 봄날의 곰새끼처럼 앙징맞다. 그런 것들은  내  속에 들어와 나를 따뜻하게만들고 살아간다는것도 괜찮아, 라는 느낌을 주고 반짝반짝 빛나는 나를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한 번씩 갑작스레닥친 '무섬증'에울컥증이 솟아오른다. 소유상의 "우리집"도 없고, 잔고도 없고, 애인도 없고 성기 이식광고 수술 뒷면에 칼럼을쓸 정도의 글빨도없는 사람, 이라는 불꺼진 시청 광장에서의 자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비가 오는 어느 날 환하게 불 켜진 대형 쇼핑마트에서 쇼핑 카트를 천천히 밀다가 갑자기 심장마비 같은 것으로  휙, 하고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어느 소설의 문구가 가슴을 칠 때, 는 더욱.

결국은 이렇게 못난 인간,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와
습기찬 반지하방을 뽀송하게 만들기 위해 30도로 보일러를 켜고
것보다 더 따뜻한 75도의 BOH 차를 홀짝이면서 생각했다.
"못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 생각하는 것도 당연지사!" :-)

p.s 아무리 환해도, 아무리 커도, 아무리 비가 와도 이랜드 계열 대형마트는 안 가야지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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