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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근교 랑싯 (Ransit)

새벽 뱅기로 방콕이 온지 15일이 지났다. CLIST (노동자교육 문화정보센터) 에서 꼬물꼬물 지내면서 하청 노동자 시위 한 번, 출산 후 부당해고를 당한 여성노동자 집 방문 한 번, 그리고 병원 노동자 조직 회의에 한 번 참석한 것을 빼곤 룰루루, 바지런을 떨면서 놀았다. :) CLIST 에는 디렉터만 빼곤 여기 중앙에서 일하는 사람은 세 명 모두 결혼 안한, 애가 있거나 없는, 나이 삼십대의 여성이다. (난 참으로 복을 타고 났나봬. 여기 옹께 내 룸메들을 대체할 여자들이 이렇게 떡 버티고 있다니!!) 우리는 일 중간에 콩을 까먹거나 따땃한 차를 마시거나, '까훼 옌' -태국식 봉지 커피로 연유를 듬뿍 넣고 설탕을 한 움쿰 넣은 뒤에 얼음을 이따시만큼 넣어서 그 위에 살짝 깡통 우유를 뿌려줌 -을 찾아서 시멘트 바닥에서 햇빛 아지랭이가 피어오르는 오후 2시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쏘다니기도 한다. 점심은 동네 야외 식당에서 먹는데 큰 나무 밑에 있는 탁자에 앉으면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날려 수프 그릇 위를 양 손으로 단단히 단도리해야 한다. 그러다가, 어느 주말 수출지향적 공장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랑싯으로 덜덜덜, 왠 (태국의 봉고버스, 주요 지역으로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봉고버스가 버스 정류장에 턱 하니 있음.)을 타고 두 시간 걸려서 놀러 갔다. CLIST의 스텝 랏(RAT)넷 부모님 집으로 랑싯에 있는 작은 마을. 나, 요새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남쪽으로 튀어' , 'Susbsistence perspective' 같은 책들을 들입다 읽어댔는데, 정작 닭과 돼지들이 마을에 떡 버티고 있는 곳을 가기는 십 년도 더 된 것 같았다. 그 동안 나, 마치 루소의 그림에 걸린 자연을 감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책을 읽었던 걸까. 아이스크림 오토바이가 삐용삐용 마을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졸랐다. 동네에는 아이들이 아주 많아서, 잠시 난감해부렀네, 쓰읍 -_-;;;;


랑싯의 작은 마을, 닭들이 마구 돌아다니는데 처음엔 축 늘어져있는 태국 개들보다 무서웠삼. 태국의 절, 불상 앞에는 요일 별로 공양을 드릴 수 있게 단지가 쭈욱 놓여있는데 자기가 태어난 요일에 맞는 단지에 돈을 넣고 절을 하면 된다. 태어난 날이 중요한 모냥인데.. 생일날은 이렇게 장에서 새를 사서 날려보낸다. 물고기 방생처럼 새 방생 :) 동네 집 뒤에는 돼지가 살고 있다. 우리 밖에서 닭이 돼지 보란듯이 밥 먹고 있다. 태국 사람들은 '모터 사이'를 느무느무 좋아한다. 한 낮에 동네를 어슬렁 걸어다니는 인간은 나밖에 없고 모두들 10분 거리도 이 오토바이 택시를 이용한다. 부릉부릉, 밤에 오토바이 택시 뒤에 타고 있으면 머리칼 속으로, 훌렁훌렁 나시 속으로 바람이 솔솔 분다. 동네 아이들, 엄마 하이힐을 신고 동네를 산보하는 아이들, 검정 멍멍이랑 아침부터 모여노는 아이들, 파우더를 얼굴에 희옇게 칠한 아이들 :) 가난한 사람들은 도시에서도 자급형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마리아 미즈가 말했듯이, 이미 DVD가 집마다 들어차고 오토바이를 타고 수출지향형 공장에서 교대로 일하고, 한 방, 한 모기장 아래에서 다섯명은 족히 함께 자면서도 집마다 TV는 두 대가 있는 이 마을에서도, 사람들은 밤마다 꼬물꼬물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내가 가져간 백세주를 돌려 마시고 동네마다 알고 보면 이리저리 다 친척이고, 그래서 딸이 혼자 낳아 떨쳐놓고 간 아이도 아주 자연스럽게, 여기저기의 친척이자 동네사람들이 알아서 키워내고, 닭과 돼지와 개와 아이들이 새벽 댓바람부터 삼삼오오 몰려다녔다. 숟가락 갯수를 아는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렇게 문을 훌쩍훌쩍 열어놓고 동네 사람들이 불쑥 들왔다가는 곳에서, 밤에는 그 문 앞의 탁자에 모여앉아 한솥밥을 먹는 곳에서 어떻게 아이를 만드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게 몸에 익질 않아 글쎄, 몸 둘 바를 모르다가, 급기야는 아,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 휘핑 얹은 달달한 놈들을 마심시롱 혼자 책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해 대면서 하루 만에 마을을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에어컨 버스에서 나오는 찬 바람을 맞으며 구공탄 향기에 향수를 느끼는 성북동 비둘기처럼 가련하게 좋아라하고 있었다. 그런 책들을 백 만권 읽어도 소용없을지도 몰라, 라고 생각했다. "비오는 날 눈이 부시도록 환하게 불을 밝힌 쇼핑몰에서 천천히 카트를 밀다 심장 마비로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가장 행복한 죽음에 대한 어느 회사원의 말처럼 나도 이미 그런데 몸이 달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들을 키운다면 기필코 시골으로 내려갈거야, 라고도 생각했다. 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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