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토의 상상, 개토가 쓴 글, 그리고 찍은 그림들.'에 해당되는 글 262건

  1. A to Z (9) 2007/06/06
  2. 2007/06/06 (3) 2007/06/06
  3. 예술가와 디자이너 2007/05/12
  4. 2007/05/11 (2) 2007/05/11
  5. 거울조각 2007/05/07
  6. 체코드림 2007/05/07
  7. 캐러웨이 (9) 2007/04/06
  8. 2007/04/05 2007/04/05
  9. 2007/04/02 저녁 2007/04/05
  10. 2007/04/02 버스 (1) 2007/04/05

A to Z

from 그림 2007/06/06 00:55

 

from

 

전선만 찍어서 만든 a~z까지 알파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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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6 00:55 2007/06/06 00:55

2007/06/06

from 그림 2007/06/06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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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6 00:37 2007/06/06 00:37

예술가와 디자이너

- 브루노 무나리 / 디자인 하우스

 

인간은 명확히 감지할 수 있는 많은 증후들을 통해 종적인 인식을 확립하면서

이기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사실 개인주의는 모든 분야에서 어떤 천재적 가치를 태어나게 하지만,

종의 감각은 거대한 집단적 구현을 가능케 합니다.

천재는 독특하고 뛰어난 결과들을 생산함으로써

다른 개인들의 야심을 좌절시키고 열등감을 유발시킵니다.

하지만 종의 감각은 타인을 위해 일하도록 하며, 크고 작은 문제들을 공동으로 해결하도록 이끕니다.

개인적 이기주의의 제거와 타인을 위한 희생으로 얻어지는 이러한 종의 인식은,

인류로 하여금 균형있는 변화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게 하며,

각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하나로 모아 문제를 해결하게 합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각자가 자신을 위해 사고하도록 수세기에 걸쳐 훈련을 받아왔으며,

도달해야할 목표로서, 그리고 따라야 할 표본으로서 과거의 모든 천재들의 전례에 기초한

정체된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인간활동의 중간적 가치들을 등한시해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개인은 평범한 인간이거나 천재, 또는 백치일 뿐입니다.

때마침 디즈니적 문화가 급속도로 침투해 퍼짐으로써 결국 공동체적 작업은

파멸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각 개인은 어릴때부터 공동체적 인식과 공동 작업을 습관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이웃을 기만하거나 속이지 않고, 갈취하거나 훔치지 않는

보다 나은 사회의 건설에 이바지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각자의 활동분야에서 인간적 가치의 척도를 재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145P

 

어떤 집들은 혐오스럽고 빈곤한 느낌을 주는 반면에,

어떤 집들은 전혀 그런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어째서 나무, 지푸라기, 종이, 나무 껍질, 자연석 등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전통적인 집은

우리에게 빈곤한 늒미을 주지 않는 반면, 벽돌, 시멘트, 우리, 대리석 등 더 비싼 재료로 만든

서양의 집들은 스산한 느낌을 주는 걸까요?

필자는 이러한 빈곤성이 자신의 의지와 맞지 않는 환경에 살도록 강요된 상황에서

비롯된다고 믿습니다.

또한 우리의 서민 주택들이, 다행히도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애정없이 설계되며,

설계자든 주민이든 거기에 인간적으로 관여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서민주택'의 정의는 '주민들에게 참담한 상황을 만들어 주는 집'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중산층의 집에 적용될 때 불행은 가중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어도 설계자는, 거실 겸 식당, 침실, 현관 등 큰 공간이 모두 들어간

'작은 집'을 설계합니다.

그 공간들은 여러가지 설비들과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스타일 가구들로 가득 채워져

축소되기 마련입니다.

크기나 기능 면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값비싼 가짜 고가구들은

분할 상환으로 힘겹게 지불될 것이며, 공간 속에 번듯하고 균형있게 자리잡게 되기를 바랄 것이나

열악한 공간으로 인해 오히려 빈곤성을 가중시킬 것입니다.

이렇게 애정 없이 설계되고 허영으로 채워지는 집은,

모두가 부러워하고 갖고 싶어하는 사치스런 주택의 최악의 모방일 뿐이지요.

 

일본의 전통적인 주택은 수세기에 걸쳐 끊임없이 개선되고 다양해져서

이러한 빈곤한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각 세대가 이루어 놓은 창의성이 후세들에게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최소한의 경비와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전혀 스산하거나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각 개개인이 최대한의 정성과 애정을 들여 만들었으며, 그 개개인의 집약된 창의성이

그것들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특정 미학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실용, 미학, 심리 등 그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으면서 주거상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한 결과,

구석구석의 각 세부에서 창의성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거주라는 인간의 기본적 필요 가운데 하나를 해결하는 이러한 공동 참여의 작업 형태는,

개인적인 사고가 아니라 종적인 사고를 보여 줍니다.

참여가 없고 애정이 없는 삶의 빈곤성은 사치스런 집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문화적 빈곤을 보다 값비싼 재료들로 보상받으려는 욕구의 결과입니다

가격, 가치, 기능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

여기에서 하나의 특정 미학에 대한 요구가 태어납니다.

그것은 과거의 양식과도 관계가 없고, 현재의 예술적 유행과도 관계가 없으며,

디즈니적 문화의 영향과 혼합된 고전 문화의 결실도 아닙니다.

그것은 재료의 올바른 사용, 공간들 사이의 적절한 관계, 외형적이고 기능적인 일관성에 의해

탄생하는 새로운 미학인 것입니다.

 

1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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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2 20:52 2007/05/12 20:52

2007/05/11

from 사진을 배우다 2007/05/11 05:16

 

 

 

 

유치원생이라도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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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1 05:16 2007/05/11 05:16

거울조각

from 2007/05/07 03:46

그녀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찬찬히 맡아본다.

사실, 내 콧속으로 강하게 와닿는 고소한 캬라멜 향은 그녀의 냄새가 아니다.

 

그녀의 진짜 냄새는 뭘까?

 

거울조각이 핏줄 속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유리가 깨어지면 겁이 났다.

아주 작은, 너무 작아서 땀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은 조각이 몸안으로 들어가서는

핏줄을 타고 다니다가 심장에 박혀 죽어버리는 것.

 

그런 일이 정말 있을 수 있는걸까?

 

아침에 거울을 깨뜨렸다.

거울은 큰 조각들로 부숴져서 플라스틱 프레임안에 담겨있었지만,

나는 아주 작은 조각들이 혹시라도 바닥으로 튀었을까 걱정이 되어

키친타월을 여러겹모아 물에 적신 다음 바닥을 열심히 닦았다.

커다란 컴파스처럼, 허리를 꺾고 거울 주변에 최대한 손과 발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랬는데도,

어딘가의 핏줄이 근질근질하다. 관자놀이 주변이 따끔거리는 것도 같다.

 

새벽 5시, 그녀는 조금 괴로운 듯 자고 있다.

오늘 잠든 그녀는 그닥 평화롭게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꿈속에서 다음날 해야할 일을 이래저래 시뮬레이션해보고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그녀의 냄새를 크게 들이마셔 본다.

하루에 두번 씻는 그녀에게서는, 사실 옅은 샴푸 냄새와 로션냄새 뿐 체취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종이인형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종이인형같다.

 

숱이 적은 머리칼이 부스스하게 펼쳐져있다.

그녀의 머리칼은 너무 가늘다.

너무 많이 일하고 너무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야.

 

내일은 S 전자 사람들을 만난다고 했었다.

 

팔꿈치께가 간지럽다. 왼손인가? 작은 유리조각들이 몸 여기저기의 땀구멍으로 튀어들어온다.

 

S전자 사람들과 만나면 그녀는 반짝 반짝 빛이 날 것이다.

그녀는 그런 일에 천재적 재능을 지니고 있다.

 

천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 X맨에 대한 두려움.

 

나는 그녀가 사람들을 만나는데 있어 천재적 재능을 가지 고 있다는 것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매번, 사실은 결코 원치않는, 사람만나는 일을 하러 가기 직전까지

심각하게 표현하는 각종 히스테리컬한 반응들을 모두 받아주고

다녀와서는 으쓱해져서 재잘재잘 늘어놓는 어린애같은 자랑도 모두 들어주면서

나는 너무나 뿌듯해지곤 한다.

 

혹시,

그녀가 유리조각을 밟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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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7 03:46 2007/05/07 03:46

체코드림

from 영화에 대해 2007/05/07 01:22

대화란 가능한가?

 

내가 '개'라고 말할때, 너는 정말 나와 같은 '개'를 듣고있니?

내가 'FTA'라고 말할 때, 너는 나와 같은 'FTA'를 듣고 있니?

 

누군가에게 내가 경험한 무언가를 전달하려할 때 우리는 '미디어'를 사용한다.

'매체' 혹은 '매개체'라고 번역되는 그것.

순수한글이던 한자한글이던 한글로 말해보려 하지만 '미디어'가 좀 더 넓은 의미로 쓰일 수 있는 것 같아.

사실, 이게 재미있는 부분이다.

내가 '미디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좀 더 잘 나를 이해할 것이라는 믿음.

 

대체 더 잘 이해한다는 것, 서로 대화가 더 잘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미디어'를 거치면, 원본은 손상되게 마련이다.

원본은 '미디어'의 생산자에 의해 일부 강조되고 일부 삭제되는 등 편집이 되는데,

'미디어'의 소비자는 이 내용을 제 멋대로 왜곡해서 받아들인다.

 

이 사실을 모두 알면서도, 우리는 '미디어'의 순수성이라던가 '진실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죽음'에 매우 집착하는 '바르트' 따위는 사실 현실 속에서 너무 심한 사치다.

대체 '미디어'에 진실성이 없다면 우리는 너무나 고독하지 않은가.

 

'체코드림'은 '미디어'의 '진실성'에 대한, 

고독할뻔 했지만 고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다.

 

분명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같다는 말이다.

대화라는 것이 가능할 것만 같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수많은 '거짓' 미디어들에 대해서는 아주 쉽게 이해하는 것처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 하나의 '진실'한 미디어에 대해서는 정말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다.

 

'진실한' 미디어는 그 자체로 완결적이기 때문에,

다른 미디어로 그것을 옮기려하면 '원본'이 손상되어

그 고유의 것을 느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을 마주할만큼 강하지 않다.

아마도 그것이 인간사회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런 평가라니, 너무 오만한거 아니니?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나는 과연 '진실한' 미디어를 만들어 내고 있는걸까? 

 

개토는 어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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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7 01:22 2007/05/07 01:22

캐러웨이

from 2007/04/06 06:25

캐러웨이, 캐러웨이, 캐러웨이.

하고 세번 부르면 돼.

라고 나는 말한다.

캐러웨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내 말을 따라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말은 아주 위험한 주문이기 때문이다.

 

캐러웨이는 불꽃처럼, 꼿꼿하고 강하게, 그러나 부드럽고 유연하게 하늘을 향해 불타오르고 있어.

캐러웨이는 위험해.

 

캐러웨이는 거리를 걷는다.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면서 재미있는 것을 찾는다.

재미있는 것. 재미있는 것을 찾아서 카메라에 넣을 거야.

캐러웨이는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흐, 카메라를 손에 들기도 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어.

캐러웨이는 키 큰 친구를 만난다.

키 큰 친구는 캐러웨이에게 말한다.

명왕성에 갈거야.

 

캐러웨이 : 명왕성엔 가지마. 그곳은 지루해.

하지만 키 큰 친구에게는 그런 종류의 지루함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캐러웨이는 고쳐 말한다.

명왕성에 가고 싶다면 가.

 

캐러웨이의 이름은 시다.

키 큰 친구는 그것을 몰랐다.

어쩌면 지금은 알지도 몰라.

 

캐러웨이는 사랑으로 넘쳐난다.

캐러웨이는 키 큰 친구에게 말한다.

너를 사랑해.

 

키 큰 친구는 캐러웨이를 이해하고 만다.

 

캐러웨이, 키 큰 친구를 만나지 마.

나는 질투에 가득 차서 말한다.

 

캐러웨이는 싱글싱글 웃는다.

캐러웨이, 캐러웨이, 나는 캐러웨이를 사랑해.

캐러웨이는 시야.

캐러웨이는 하늘로 조금씩 사라지고 있어.

캐러웨이는 사라지지 않아.

하지만, 하늘에 속해있지.

하늘에 속해있어.

 

캐러웨이는 무관심하다.

키 큰 친구도, 배불뚝이 친구도, 나도 캐러웨이에게는 귤같은 존재.

캐러웨이는 손에 귤즙이 묻는 걸 끔찍하게 싫어해.

그래서 귤을 까지 않아.

하지만, 귤을 먹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

먹고나면 그뿐이라네.

 

캐러웨이, 캐러웨이, 나는 캐러웨이를 사랑해.

그녀는 아주 길어져서 이제 머리가 하늘에 닿아버렸어.

나는 캐러웨이를 올려다 본다.

캐러웨이는 기린이야.

캐러웨이는 기린은 아냐.

 

캐러웨이는, 캐러웨이는 하늘에서 싱글싱글 웃는다.

캐러웨이 이야기는 끝이 없어.

캐러웨이 이야기는 끝이 없어.

 

사람들이 캐러웨이를 무서워해.

사람들은 캐러웨이를 미워해.

캐러웨이는 누구에게나 보인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어.

사람들은 비겁하게 캐러웨이를 무서워해.

 

캐러웨이는 너무 잘 보여.

캐러웨이라면 조금은 비밀이 있어야지.

캐러웨이는 너무 하늘에 있어.

캐러웨이도 땅에 발을 딛고 있잖아. 분수를 알아야지.

캐러웨이는 캐러웨이는.

 

캐러웨이는 주문을 외워볼 생각이 없어.

캐러웨이는 주문을 외우지 않을거야.

 

캐러웨이는 너무 행복하니까.

캐러웨이는 캐러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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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6 06:25 2007/04/06 06:25

2007/04/05

from 사진을 배우다 2007/04/0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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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5 11:07 2007/04/05 11:07

2007/04/02 저녁

from 사진을 배우다 2007/04/0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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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5 11:05 2007/04/05 11:05

2007/04/02 버스

from 사진을 배우다 2007/04/0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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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5 11:02 2007/04/05 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