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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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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은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들이 한국에도 널려 있어서 내가 감히 내색을 못하겠다. 나도 나름 그의 책을 읽었는데 말이지. 그의 경향신문과의 신년인터뷰를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타계 소식을 듣게 되어서 안타깝다. 뒤늦게나마 명복을 빈다. 여유가 되면 그가 쓴 책들 중에서 읽지 않은 것들을 중심으로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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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진보 역사학자 하워드 진 타계 (프레시안, 황준호 기자, 2010-01-28 오후 3:53:00)
노엄 촘스키 "스승이 필요할 때, 그는 언제나 맨 앞에 있었다"
 
그를 대표하는 저서 <미국민중사>는 1980년 출간해 2003년까지 10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로 기존 역사 서술과는 달리 노동자들을 역사의 주역으로 끌어올려 미국 사회에 지적 충격을 주었다. <미국민중사>에서 하워드 진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정복'을 찬양하는 기존의 역사학적 관점을 뒤집고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투쟁에 주목했고, '프론티어 정책'에 대한 칭송 대신 그로 인해 희생된 가난한 사람들과 노예제도의 희생자들을 살폈다.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명예교수는 "하워드 진의 저술은 한 세대의 의식을 바꿔 놓았고 우리 삶의 중요한 의미를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며 "우리의 활동이 신뢰할 만한 사표(師表)를 요구할 때 그는 언제나 맨 앞줄에 서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워드 진은 그의 자서전격인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서 "나는 다른 관점에 공정하고자 했지만 '객관성' 이상의 것을 원했다. 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보다 많은 지식을 얻어가기보다 침묵함으로써 안락해지는 삶을 포기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에는 언제나 맞서 싸울 자세를 가지길 원했다"고 말했다.
 
하워드 진은 지난 주 진보적 시사주간지 <더 네이션>에 생애 마지막 글을 남겼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1년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미국인들은 지금 오바마의 화려한 언변에 현혹되어 있다. 오바마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전국적인 운동이 없다면 그는 그저 그런(mediocre)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시대에 '그저 그런 미국 대통령'이란 위험한 대통령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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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소수의 시선’ 실천적 지식인 영원히 잠들다 (경향, 워싱턴 | 김진호 특파원, 2010-01-29 00:16:38)
ㆍ‘미국 민중사’ 출간 진보 역사학자 하워드 진 타계
 
그는 “비록 우리가 이상적인 세계에 살고 있지 못하더라도 내 주위의 작은 세계만큼은 충분한 기쁨이 되기를 원한다”면서 “유머 감각을 지닌 좋은 친구들과 가급적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는 생활철학을 들려주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변화는 모두 조직적인 시민운동으로 이뤄졌다. 버락 오바마도, 미국의 제도정치도 아닌, 사람이 희망”이라던 그의 말이 여전히 귓가를 맴돈다. 그 말이 언론과의 마지막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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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병합 100년]하워드 진 “강렬한 시민운동만이 역사와 사회를 바꾼다” (경향, 워싱턴 | 김진호특파원, 2010-01-04 17:52:33)
ㆍ미국 원로 사학자 하워드 진 인터뷰
 
미국의 원로 사학자인 하워드 진(87)은 미국의 양심을 대표하는 실천적 지식인이다. 유대인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일생을 반전과 노동운동에 바치고 있다. 정작 그의 삶을 관통하는 반전·민권 사상은 미국 주류 학계·언론계로부터 외면당했고, 진보진영조차 과격하다는 평가를 내릴 정도다. 그런 그가 경제위기로 고단해진 미국민들의 안방 속으로 파고 들고 있다. 보통사람들의 애환을 기록한 그의 저서 <미국 민중사>가 한 케이블 TV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재조명된 이후다. 지난달 22일 보스턴 자택에 머물던 진과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주류 미국사에서 배제된 인디언, 흑인, 백인 블루칼라, 여성의 육성으로 구성한 <미국 민중사>가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1980년) 몇천 부로 소박하게 시작했죠. (지난달 13일) 히스토리 채널이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즈음 200만부를 돌파했습니다. 책은 우리가 지금도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전쟁을 치르고 있고, 너무 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있거나, 깨끗한 물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사회적 운동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거죠. 전통적인 역사관이 대통령과 장군들, 산업주의자들의 행동을 강조했다면 나는 그 책에서 보통사람들의 에너지와 행동에 주목했습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만큼 사람들이 역사에 대한 다른 관점을 목말라하는 것 같습니다.”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취임을 환영했습니다만 1년이 지난 지금, 그가 약속한 ‘변화’와 ‘담대한 희망’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미국인들은 조지 부시의 정치를 끝내기 위해 오바마를 뽑았습니다. 부시는 두 개의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의 엄청난 부를 날려버렸습니다. 또 많은 국부를 가장 부유한 계층에 안겨준 조세정책을 펼쳤죠. 오바마는 변화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취임하자마자 부시 행정부의 군사주의 정책을 선택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더 많은 군대를 보냈고, 무인비행기를 보내 파키스탄과 같은 곳을 폭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방예산은 부시 행정부보다 더 많이 늘렸습니다. 우리는 오바마가 세계의 분노를 야기했던 군사주의적 태도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9·11 테러의 원인은 다른 나라에 개입한 미국의 대외정책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은 아직도 군사적 힘을 마구 사용하고 있습니다.”
 
-보건의료개혁을 추구하고 관타나모 폐쇄를 약속하는 등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오는 것도 사실이 아닌가요.
“오바마는 자신이 약속했던 희망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미국을 심각한 경제적 난국으로 몰아넣었던 경제학자들을 자문위원으로 두고 있습니다. 수천억달러의 예산을 필요한 사람들이 아닌, 은행과 금융업체에 주었고요. 많은 사람들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대교수를 했던 오바마가 최소한 헌법적 권리에 관심을 둘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몇가지 중요한 권리를 수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타나모는 여전히 존재하며 수감자 학대 역시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7, 8년 동안 재판정에 가보지도 못하고 고통을 받아온 사람들입니다. 오바마는 아직 유죄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사람들을 관타나모에서 빼내 다른 감옥에 보내려 할 뿐입니다.”
 
-올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시 의회를 장악한다면 상황은 더 나빠지지 않을까요.
“공화당으로부터 공포를 체험한 사람들이 민주당으로 달려갔지만 하나의 끔찍한 상황에서 다른 끔찍한 상황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민주당은 미국민의 필요와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하원의 다수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공화당이나 만족할 보건의료개혁안을 내놓았고요. 미국 정치시스템은 진정한 진보적 진전을 위한 여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오바마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희망을 저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닫고 있습니다. 자각의 초기 단계에 진입해 있다고 봅니다.”
 
-미국 정치제도에 희망이 없다는 말인가요.
미국 역사에서 어떠한 중요한 변화도 순전히 선거와 투표행위의 결과로 달성되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흑인노예, 노동조건 개선, 남부의 인종차별, 베트남전 종전 등이 그랬죠. 제도 정치권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조직적인 사회운동을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제도정치는 늘 사회운동이 일종의 국가적 분위기를 조성한 뒤에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제도정치는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지 않습니다. 시민의 요구가 충분히 강할 경우에만 반응합니다.”
 
-경제위기 1년 만에 월가는 신속히 회복하고 있지만 미국과 세계의 보통사람들은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월가의 성공을 잣대로 미국 경제시스템의 성공 여부를 측정해왔습니다. TV뉴스는 매일 밤 다우존스평균지수나 증시의 시세를 보도하고 있고요. 하지만 대다수 미국민이 처한 상황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다우존스지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가장 부유한 사람들입니다. 미국 역사를 통틀어 늘 그래왔듯이 경제시스템이 부유층에 유리하게 작동하는 한 보통사람들은 쉽게 회복하기 힘들 겁니다.”
 
-월가발 금융위기로 많은 젊은이들이 직업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변화를 가져올 시민운동을 만들어 나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자리를 민간부문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정부가 주도해야 합니다. 미국이 대공황을 겪었던 1930년대에 배운 교훈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실업자가 생겨났을 때 이른바 자유시장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었습니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800만 일자리를 제공했고 많은 젊은이들이 다리와 도로 건설에, 숲과 호수 복원을 위한 공공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정부만이 이렇게 할 능력을 가졌습니다. 개인기업은 이익이 충분치 않다면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습니다. ‘큰 정부’에 대한 의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오바마가 ‘미국의 필수적인 이익’이라고 강조한 아프간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아프간에 군대를 보내는 건 미국은 물론, 한국의 국익도 아닙니다. 양국의 군사·정치·경제 엘리트들의 이익일 뿐이죠. 남한 사람들은 정치지도자들이 북한과의 화해를 추구하고 냉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매우 강력한 시민운동으로 가능할 겁니다. 독일처럼 한반도 역시 영원히 분단돼 있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통일이 목적이 돼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인권탄압을 받는 동시에 먹을거리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선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늘 먹는 문제가 우선입니다. 사람은 충분히 먹기 시작해야만 비로소 인권상황에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북한 인권을 빌미로 북한에 대해 적의를 유지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북한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걸 먼저 도와야 합니다. 그때서야 북한 주민들이 인권을 요구할 수 있게 될 겁니다.”
 
-2010년의 세계를 전망하신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구 행성에서 벌어지는 일을 깨닫고, 분노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하늘과 땅, 물에서 일어나는 지구온난화를 깨달아야 합니다. 미래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각국 정부로 하여금 지구온난화 과정을 중단토록 하는 범세계적인 시민운동이 필요합니다. 과학자들의 경고대로 많은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움직여야 합니다. 2010년은 변화를 가져올 좋은 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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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위대한 영혼 "하워드 진"을 추모하며 (프레시안,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2010-02-02 오전 10:51:27)
[김민웅 칼럼]<49> 폭력, 착취, 거짓에 항거하여 진리와 자유를 옹호한 한 평생
 
사실은 권력이 만들어낸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대중의 생각이 괴물 같은 이데올로기가 되고, 권력의 수단으로 작동할 때 대중은 결국 스스로를 억압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자신의 진정한 이익은 그로써 박탈된다. 권력은 대중의 뇌를 조종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모두의 이익인 것처럼 믿게 만든다. 이걸 부수려는 시도와 행위는 모두 권력의 견제와 압제의 대상이 된다. 그러기에 이런 일에 나서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걸 깨기 위해 온 몸을 던져 자기희생을 각오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역사가 변화하고 대중이 눈을 뜨는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하워드 진은 역사가 변화하는 것은 위대한 영웅의 출현에서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고 소소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용기 있는 선택을 하는 순간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중의 생각을 문제 삼았으나 대중을 멸시하지 않았으며 이들에게서 미래의 희망을 찾았다.
 
그의 말을 따르자면 "인간이라면 마땅히 살아야 할 방식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에 저항하여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가치를 둔 모습으로 살아가면 그것이 곧 놀라운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때로 작은 행동이기도 하고 때로 엄청난 용기를 요구하는 선택이기도 한 일들이 미국의 역사를 바꾸고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키고 생명을 구해냈다. 흑백으로 분리된 레스토랑의 식사 규칙을 깬 사람들, 버스에서 백인이 요구하면 자리를 내줘야 하는 관습에 도전한 사람들, 징집영장을 보관한 사무실에 들어가 영장을 모조리 태워버린 사람들, 전쟁을 정당화시킨 국가최고기밀 문서를 몰래 유출해 복사한 뒤 언론에 공개한 사람들, 대학의 관료적 횡포에 저항한 사람들, 이 모두가 다 미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한 몫을 한 이들이다.
 
<미국 민중사>는 콜럼버스의 미 대륙 상륙의 역사적 해석을 완전히 바꾼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미국 역사의 출발선에 놓여 진 야만적 약탈과 전쟁, 정복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미국인 자신의 자화상을 고통스럽게 목격하도록 만든 책으로 이제는 필독서가 되었으니 시대의 변화를 절감하게 된다. <독립선언서들>은 미국의 이데올로기부터 법과 정의, 경제적 평등과 역사 등에 대한 날카로운 그의 비판의식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독립 선언서들(오만한 제국)> 첫 장의 한 구절,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단지 흥밋거리이거나 지적 토론의 대상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된다고 충분히 결론내릴 수 있다."라는 대목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은 단지 고정관념의 비 융통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폭력이 되고 죽음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깨우침은 지금까지 의미 있게 내면화하고 있는 철학의 하나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You 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에서 그가 자신의 뜻과 다를 바 없다고 여기고 소개한, 베트남 전쟁 징집 거부로 4년형을 받고 투옥된 그의 보스턴 대학 제자인 필립 서피나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건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철학자 미구엘 우나무노가 한 말의 인용이다. "때로 침묵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다."
 
침묵하지 않는 양심, 그것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이다. 하워드 진은 그 침묵을 깨는 용기와 의지, 그리고 지적 성실함의 가치를 이 시대의 교훈으로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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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했던 진 선생님 (한겨레21, 2010.02.05 제797호, 정인환 기자) 
[출판] 가지지 못한 자의 ‘편향된’ 시각으로 쓴 <미국민중사> 등을 남기고 떠난 하워드 진
 
미국 진보 진영의 큰 별이 졌다. <미국민중사>(국내판 이후 펴냄)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하워드 진 보스턴대 명예교수가 1월27일 숨을 거뒀다. 향년 87살.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그가 여행지인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에서 수영 도중 심장마비를 일으킨 뒤 회복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작가이자 언론인인 나오미 클라인은 진보적 인터넷 매체 <데모크라시나우>가 마련한 추모 방송에서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교사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하워드 진은 1922년 8월24일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유대계 이민 2세대로 태어났다. 1940년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18살 나이에 조선 노동자가 됐고, 이 무렵 그의 독서 목록엔 카를 마르크스가 더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불을 뿜던 1943년 젊은 진은 “파시스트와 맞서 싸우기 위해” 입대를 결심한다. 유럽 전선에 배치된 그의 주특기는 ‘폭격수’였다. 종전이 다가오던 1945년 4월 중순 프랑스 루아얀 지방에서 나치 잔당 소탕을 명분으로 사상 첫 네이팜탄을 퍼부었던 경험담은 <오만한 제국>을 포함한 그의 책에서 유독 자주 등장한다.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우리는 좋은 편이고 적은 나쁜 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무슨 짓이든 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믿는다. …하늘에선 지상의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폭격이 만들어낸 유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무슨 짓이든 저지르게 된다.”
 
군 복무를 마친 뒤에도 삶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는 양조장에 취직을 했고, 브루클린의 지하 셋방을 전전했다. 그러다 운 좋게 공공임대 주택을 얻게 됐고, 내처 제대군인 장학금을 받아 뒤늦게 대학에 진학하기에 이른다. ‘우리가 아는 하워드 진’ 탄생의 서막이었다.
 
1951년 뉴욕대를 졸업한 그는 컬럼비아대학으로 무대를 옮겼다. 석사학위 논문에서 1914년 콜로라도주 탄광 파업 사건을 추적한 그는 대공황의 끝자락에서 뉴욕시장을 지내며 ‘뉴딜 시대’를 이끌었던 피오렐로 라가디아의 정치와 삶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써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56년 학위를 마친 그는 ‘흑인 여성을 위한 고등교육 기관’으로 유서가 깊은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스펠먼대학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 미국 남부를 휩쓴 민권운동의 열정 속에 진은 ‘활동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학교 당국은 그런 그를 못마땅해했다. 1963년 그를 해고하면서 앨버트 맨리 당시 총장은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거론했단다. 이듬해 그는 동부의 명문 보스턴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관심도 ‘민권운동’에서 ‘반전운동’으로 서서히 옮겨갔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7년과 1968년, 그는 반전 메시지를 담은 <베트남: 철군의 논리>와 <불복종과 민주주의>를 잇따라 펴냈다. 이후 희끗희끗한 머리에 사람 좋게 웃는 그의 모습은 각종 시위 현장에서 단골이 됐다. 1980년은 로널드 레이건의 대통령 취임으로 시작됐다. 미국 사회가 급격히 보수화하던 그 무렵, 진은 자신의 대표작인 <미국민중사>를 펴냈다. 15세기 말 바하마제도에 도착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원주민인 아라와크족을 어떻게 살육했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기존의 역사관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으며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편향된 시각”이란 비판이 나올 때마다 진은 이렇게 대꾸하곤 했다.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가진 자 편에서 기술돼왔다. 나는 소외된 이들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봤을 뿐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그는 사회적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아이티의 대지진을 바라보며 “야만적이고 불의한 미국의 정책이 아이티 비극의 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임 1주년을 맞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그저 평범한 대통령에 그칠 공산이 큰데, 위기의 시대에 그런 대통령은 위험하기까지 하다”며 “그를 올바른 쪽으로 견인하는 건 오로지 시민의 몫”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인생은 ‘달리는 기차’였고, 그에게 ‘중립’이란 있을 수 없었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자서전 제목이 꼭 그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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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6 22:16 2010/02/06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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